'공광규'에 해당되는 글 4건

  1. 2011.10.26 공광규 - 얼굴 반찬
  2. 2011.06.08 공광규 - 걸림돌
  3. 2011.04.19 공광규 - 한심하게 살아야겠다
  4. 2010.11.17 공광규 - 나를 모셨던 어머니 (3)
얼굴 반찬


- 공광규

옛날 밥상머리에는
할아버지 할머니 얼굴이 있었고
어머니 아버지 얼굴과
형과 동생과 누나의 얼굴이 맛있게 놓여있었습니다
가끔 이웃집 아저씨와 아주머니
먼 친척들이 와서
밥상머리에 간식처럼 앉아있었습니다
어떤 때는 외지에 나가 사는
고모와 삼촌이 외식처럼 앉아있기도 했습니다
이런 얼굴들이 풀잎 반찬과 잘 어울렸습니다

그러나 지금 내 새벽 밥상머리에는
고기반찬이 가득한 늦은 저녁 밥상머리에는
아들도 딸도 아내도 없습니다
모두 밥을 사료처럼 퍼 넣고
직장으로 학교로 동창회로 나간 것입니다

밥상머리에 얼굴반찬이 없으니
인생에 재미라는 영양가가 없습니다.

출처 : 공광규, "말똥 한 덩이", 실천문학(2008)

*

오랫동안 혼자서 밥 먹던 세월이 있었습니다. 밥을 먹을 때면 좁은 방 정면으로 전신 거울이 보였습니다. 무심결에 혼자 밥먹고 있는 나를 바라보니 정내미가 떨어졌습니다. 좁은 방 안에 거울을 치워둘 마땅한 곳도 없어 거울을 등지고 옷장을 바라보며 밥을 먹습니다. 이제 거울은 홀로 밥 먹고 있는 사내의 등을 비추고 있으리라 생각하니 등지느러미가 시큰하게 저려옵니다. 오랫동안 혼자서 밥 먹어 버릇하다가 처음으로 누군가와 마주보며 밥을 먹으니 마주한 이가 밥을 어찌 먹나 물끄러미 바라보게 됩니다. 젓가락 가는 곳마다 눈동자가 저절로 따라나섭니다. 밥 먹는 사람을 보니 신기합니다. 오물조물거리는 입술을 오래도록 쳐다봅니다. 오른쪽 발가락으로 왼쪽 발등을 꼬집어 봅니다. 살아있는 시간입니다. 살아있다는 걸 느끼는 시간입니다. 생시(生時)입니다. 밥 먹는 사람을 바라봅니다. 흐뭇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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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림돌


- 공광규


잘 아는 스님께 행자 하나를 들이라 했더니

지옥 하나를 더 두는 거라며 마다하신다
석가도 자신의 자식이 수행에 장애가 된다며
아들 이름을 아예 ‘장애’라고 짓지 않았던가
우리 어머니는 또 어떻게 말씀하셨나
인생이 안 풀려 술 취한 아버지와 싸울 때마다
“자식이 원수여! 원수여!” 소리치지 않으셨던가
밖에 애인을 두고 바람을 피우는 것도
중소기업 하나를 경영하는 것만큼이나 어렵다고 한다
누구를 들이고 둔다는 것이 그럴 것 같다
오늘 저녁에 덜되 먹은 후배 놈 하나가
처자식이 걸림돌이라고 푸념하며 돌아갔다
나는 “못난 놈! 못난 놈!” 훈계하며 술을 사주었다
걸림돌은 세상에 걸쳐 사는 좋은 핑계거리일 것이다
걸림돌이 없다면 인생의 안주도 추억도 빈약하고
나도 이미 저 아래로 떠내려가고 말았을 것이다


출처 : 『황해문화』, 2009년 봄호(통권63호)



*



술이 ‘땡기는’ 날, 마시는 술은 입에 착착 붙는다고 하더라만 시가 ‘땡기지’ 않는 날에 읽어도 착착 붙어주는 시가 있다. 내 경험으로 보면 공광규 시인의 시들이 그렇다.


불교의 연기설(緣起說)과 스님의 수행으로 시작하여 아버지 석가모니 이야기를 하더니 어느새 어머니의 “자식이 원수여!”로 슬그머니 넘어온다. 시적 정황은 금세 선술집 신세타령으로 넘어오는데 구렁이 담 넘어가듯 자연스럽다.


밖에 애인을 두고 바람을 피우는 것도

중소기업 하나를 경영하는 것만큼이나 어렵다고 한다


삶이 주는 것 중에 온전한 평온과 행복이 얼마나 되랴. TV코미디 프로그램 <개그콘서트>에 등장하는 인생의
달인처럼 “걸림돌에 걸려 넘어져 본 적이 없으면 인생에 대해 말을 하지마!”라고 공광규 시인은 그렇게 입에 착착 붙는 시로 우리에게 말을 건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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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심하게 살아야겠다


- 공광규

얼굴 표정과 걸친 옷이 제각각인
논산 영주사 수백 나한
언제 무너져 덮칠지 모르는 바위벼랑에 앉아
편안하게 햇볕 쬐고 있다
새 소리 벌레 소리 잡아먹는
스피커 염불 소리에 아랑곳 않고
지저분한 정화수 탓하지 않고
들쥐가 과일 파먹어도 눈살 하나 찌푸리지 않는다
다람쥐가 몸뚱이 타고 다녀도 아랑곳 않고
산새가 머리 위에 똥을 깔겨도 그냥 웃는다
초파일 연등에 매달린 이름들
세파처럼 펄럭여도 가여워 않고
시주돈 많든 적든 상관 않는다
잿밥에 관심이 더한 스님도 꾸짖지 않는다
불륜 남녀가 놀러 와 합장해도 혼내지 않고
아이들 돌팔매에 고꾸라져도
누가 와서 제자리에 앉혀줄 때까지
그 자세 그 모습이다
바람이 휙 지나다
하얀 산꽃잎 머리 위로 흩뿌리면
그것이 한줌 바람인 줄만 알고......

들짐승과 날새
흘러가는 구름과 바람결 속에
화도 안 내고 칭찬도 안하는
참 한심한 수백 나한들

나도 이 바람 속에서
한심하게 살아야겠다.

*

논산 영주사에 가본 적이 있던가? 아무리 궁리를 해봐도 논산에 있는 견훤의 묘까지 기어올라간 기억은 있는데 영주사 다녀온 기억은 없다. 공광규 시인의 시는 불교적이라기 보다는 장자 풍이다. 난 장자가 세상에서 말을 제일 잘하는 인간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예수랑 장자는 말 잘하기로 치면 동서양의 대표쯤 될 거 같다. 시인은 언제 무너질지 모를 위태로운 바위 벼랑 위에 앉아있는 수백 나한을 한심하게 바라본다. 어떤 이들은 그 앞에서 영험을 바라며 머리숙여, 무릎꿇어 절을 하지만 그가 보건데 영험은 커녕 지저분한 정한수, 자기 몫으로 놓아준 과일을 들쥐가 파먹어도 쫓아내지도 못하고, 산새가 머리 위에 똥을 찍 갈겨줘도 눈살 한 번 찌푸리지 못한다. 불륜남녀가 놀러와 합장을 해도 혼내지 않고, 아이들 돌팔매에 자빠져도 맥 없이 쓰러져 있을 뿐이다.

화도 안 내고 칭찬도 안 하는 ... 수백 나한들...

그런데 단 한 마디, 시인은 "나도 이 바람 속에서//한심하게 살아야겠다"고 말한다. 한심하게 산다는 거... 할 수만 있다면 나도 그렇게 한 세월 보내고 싶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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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바람구두 windshoes

나를 모셨던 어머니

- 공광규

늙은 어머니를 따라 늙어가는 나도
잘 익은 수박 한 통 들고
법성암 부처님께 절하러 간 적이 있다
납작 납작 절하는 어머니 모습이
부처님보다는 바닥을 더 잘 모시는 보살이었다
평생 땅을 모시고 산 습관이었으리라
절을 마치고 구경삼아 경내를 한 바퀴 도는데
법당 연등과 작은 부처님 앞에는 내 이름이 붙어 있고
절 마당 석탑 기단에도
내 이름이 깊게 새겨져 있다
오랫동안 어머니가 다니며 시주하던 절인데
어머니 이름은 어디에도 없었던 것이다
어머니는 평생 나를 아름다운 연등으로
작은 부처님으로
높은 석탑으로 모시고 살았던 것이다.


출처 : 『황해문화』, 2008년 여름호(통권 59호)


*


“눈에 밟히다”라는 표현이 있다. 이런 말을 흔히 관용구(慣用句)라 하는 데, 관용구란 본래의 단어가 지닌 의미만으로는 그 전체의 뜻을 잘 알 수 없기 마련이다. 한국인에게 영어 관용구(idiom)가 어려운 것처럼, 우리에겐 너무 익숙하지만 외국인들의 입장에선 한국의 어문화(語文化)에 익숙하지 않고서는 그 뜻을 쉽게 알 수 없으며 안다고 해도 그 느낌까지 전해지기 어려운 말이다. 그래서 관용구를 다른 말로 ‘숙어(熟語)·익은말’이라 하기도 한다.


공광규 시인의 시(詩)들을 읽고 있노라면 절로 ‘잘 익은 시’란 생각이 든다. 억지로 짜낸 것이 아니라 곰삭은 젓갈 맛이라고 해야겠다. 이번에 『황해문화』 작업하면서 유난히 내 눈에 밟힌 시다. “눈에 밟히다”는 관용적인 표현으로 ‘잊으려 해도 자꾸 생각나고 눈앞에 아른거리는 것’을 말한다. 시인은 늦되어도 좋았겠다. 당신의 어머니에겐 언제까지나 아름다운 연등이요, 작은 부처님이자 높은 석탑일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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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바람구두 windsho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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