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전명 발키리 - Valkyrie



 

난제 - 역사성과 오락성(흥행성적) 그리고 작품성
역사 속에 실존했던 인물과 사건을 영화나 드라마, 소설로 재구성하는 일은 화살 하나로 세 개의 바늘구멍을 통과하는 일처럼 어렵다. 역사성과 오락성(흥행성적) 그리고 작품성을 동시에 만족시킨다는 일이 어디 그렇게 쉬운 일이겠는가? 언젠가 어느 신문 기자던가, 평론가가 영화 <트로이>에서 헥토르가 아킬레스에게 죽임을 당한다는 이야기를 썼다가 인터넷 누리꾼들을 중심으로 스포일러를 유포했다고 혹독한 비난의 대상이 된 적이 있었다. 내가 이 일을 기억하는 이유 중 하나는 그 무렵 지하철을 타고 가다가 옆 좌석의 젊은 여성 둘이 나누는 대화를 실제로 들었기 때문이다. 두 사람은 기자인지, 평론가인지를 혹독하게 비판했고 그 덕분에 영화 보는 재미가 반감되었다고 했다.


호메로스의 『일리아드』를 읽지 않았다는 것을 힐난하고 싶어서 꺼낸 이야기가 아니다. 대성(大聖) 공자도 태어나면서부터 모든 것을 알았던 사람이 아니라고 고백하는데, 뉘라서 태어나면서부터 세상의 모든 고전을 읽을 수 있을까. 영화를 통해서이든, 원작을 통해서이든 누구나 그 이야기를 처음 접하는 순간은 있는 법이다. 고전이란 인류의 문화유산이란 점에서는 보배이겠지만 다른 관점에서 보자면 수많은 세월 동안 대중들에게 다양한 형태로 널리 전파된 이야기란 뜻이기도 하다. 이것을 영화화하거나 드라마로 장르 전이(轉移)를 할지라도 기본적인 이야기 틀을 바꾸긴 매우 어렵다. 고전이 살아남는 이유 중 하나는 그 익숙한 이야기 스타일이 대중에게 이미 숱하게 검증받았다는 증거이기 때문이다. 천재가 아니고서야 누가 감히 이에 도전할 수 있을까?


두 번째 장편영화인 <유주얼 서스펙트>에서 스릴러물에 놀라운 재능을 보여주었던 신예감독 브라이언 싱어였지만, 이후 <엑스맨> 1편과 2편, 그리고 <수퍼맨 리턴즈>에서는 할리우드의 상업영화 감독으로 안주하는 것으로 보였다. 어릴 때부터 제2의 스티븐 스필버그를 꿈꿔왔던 브라이언 싱어로서는 선배가 <쉰들러 리스트>로 보여 주었던 길을 따라가고 싶은 의욕도 있었을 것이다. 그는 자진해서 영화 <발키리>의 감독을 맡았다. 사실 역사를 공부하다보면 매력적인 인물과 유난히 끌리는 사건, 극적인 요소들로 인해 깊이 매료되는 시대가 있는 법이다. 나는 나치 독일 치하에서 억압에 저항했던 숄 남매의 <백장미단> 이야기를 처음 접했던 것과 거의 동시에 슈타우펜베르크 대령의 히틀러 암살 음모 사건을 접했다.


결과를 빤히 아는 역사영화(EPIC)를 보는 재미는 어디에서 오는가?

아돌프 히틀러는 생전에 모두 42차례의 암살 기도(『독재자들』, 교양인, 2009)에도 불구하고, 결국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 정치지도자로서 가장 많은 암살 시도가 있었던 인물은 아마도 쿠바의 피델 카스트로였으리라 싶은데, 『피델 카스트로 - 마이 라이프』(현대문학, 2008)에 따르면 모두 600여 차례나 있었다고 한다. 그를 제외하고는 비슷한 시대를 살았던 프랑스의 샤를르 드골 대통령이 6차례의 암살 기도에도 불구하고 살아남았다. 늑대 무리는 조직적으로 사냥감을 공격하지만 우두머리를 잃으면 사냥을 포기한다고 하는데, 국가조직의 수장을 제거함으로써 정치적 목적을 달성하겠다는 암살은 역사적으로 가장 오래된 정치수단 중 하나다.


제임스 1세를 암살하려 했던 가이 포크스(Guy Fawkes)를 비롯해서 링컨 대통령을 암살했던 존 윌크스 부스(John Wilkes Booth), 존 F. 케네디 대통령의 암살범이라는 리 하비 오스월드(Lee Harvey Oswald), 그의 동생인 로버트 케네디 상원의원을 암살한 시르한 비샤라 시르한(Sirhan Bishara Sirhan)에 이르기까지 정치인을 겨냥한 암살은 성공유무와 상관없이 대중의 관심이 쏠린다. 이런 사건들이 수많은 음모론의 대상이 되는 까닭은 누군가 한 개인의 죽음이 시대의 향배를 어긋나게 하거나 방향을 바꿀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기도 하다.


예를 들어 올리버 스톤 감독을 비롯해 수많은 미국인들은 케네디 대통령이 살아있었다면 미국이 베트남전의 수렁에 빠지지 않았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유력한 대통령 후보였던 동생 로버트 케네디가 암살당한 까닭 역시 그가 범죄와의 전쟁을 강력하게 추진했던 법무부 장관 출신이었고, 대통령에 당선된다면 당시 미국의 군산복합체가 막대한 이득을 얻고 있던 베트남전에서 미군을 철수시키겠다고 공약했던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역사를 움직이는 것이 개인으로서의 위인(偉人)인지, 아니면 평범한 다수를 차지하는 대중(大衆)인지는 역사학의 오래된 논쟁거리로 남겨두자.


어찌되었든 역사영화를 보는 재미 중 하나는 그것이 우리 인류의 생애사 속에 포함되는 실존했던 인물들이 시대를 고민했던 흔적이란 것이고, 두 번째 재미는 과연 나폴레옹이 불면증과 위장장애에 시달리지 않았다면 워털루 전투에서 패배하지 않았을 것이며 워털루 전투에서 패배하지 않았다면 프랑스의 역사, 나아가 유럽의 역사 더 나아가 인류의 역사가 어떻게 달라졌을까와 같은 역사 속 작은 국면들이 차지하는 결과를 되짚어봄으로써 교훈을 얻을 수 있다는 점이다. 마지막으로 서양의 역사를 우리 한국의 역사에 대입시켜봄으로써 우리가 처해있는 실제 현실의 문제와 한계 등을 점검해 볼 수도 있을 것이다. 비록 영화 <발키리>는 <유주얼 서스펙트>라는 걸출한 스릴러를 연출했던 감독의 작품이라고 하기엔 극적인 요소가 약한 편이긴 하지만 이와 같은 점들을 감안해서 본다면 상당히 재미있는 작품이기도 하다.


슈타우펜베르크 vs. 김재규

정치적 수장을 제거하는 암살의 상당 부분은 브루투스와 케사르의 예에서 알 수 있듯 측근에 의해 실행될수록 성공 확률이 높아진다. 최고 권력자는 항상 삼엄한 경호를 받기 때문에 암살을 실행에 옮길 수 있는 기회를 포착하기 어렵다. 그렇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접근할 수만 있다면 암살의 성공가능성은 비약적으로 높아진다. 그러나 암살이 암살만으로 정치적 의도까지 성공했다고 볼 수 있을까?


정치적 보복이 아니라면 한 개인에 불과한 정치인의 암살을 통해 정치적 의도까지 관철된다고 보기는 어렵다. 아버지와 마찬가지였던 케사르를 암살한 브루투스의 의도는 로마공화정을 수호하고자 했던 것이지만 그의 죽음은 공화정의 몰락을 앞당기는 결과만을 초래했다. 야수의 심정으로 유신의 심장을 겨냥해 민주주의를 회복하려고 했다는 김재규의 의도와 달리 그의 죽음으로 군부독재를 청산할 수는 없었다. 현대적인 국가조직은 ‘관료제’라는 단단한 배후조직에 의해 보호되기 때문이다.


영화 <발키리>에서 암살 음모의 주동자였던 슈타우펜베르크 대령이 정치인들과 군인들의 논의에 답답해했던 이유는 히틀러 암살 이후 무주공산(無主空山)이 될 최고 권력을 어떻게 할 것인지에 대한 논의가 없었다는 점이다. 그런 점에서 슈타우펜베르크 대령은 독일 군부의 뇌리에는 쉽게 자리 잡을 수 없는 논의, ‘쿠데타’를 끌어들인 장본인이었다. 비록 규모나 역사적 의의란 차원에서 여러 가지 차이는 있지만 슈타우펜베르크와 김재규는 상당히 닮은꼴이다. 이 두 사람을 닮은꼴이라 비교한다는 것은 본의든 아니든 박정희 전 대통령과 아돌프 히틀러를 비교하게 된다.


일제 식민 통치와 한국전쟁을 치르며 출발한 신생공화국 대한민국은 좌우 갈등, 분단, 부정부패, 경제난 등으로 최악의 위기 속에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박정희 전 대통령은 군부쿠데타를 통해 집권했지만 이후 형식상으로는 민주선거를 통해 연속해서 재집권에 성공한다. 그의 최대 업적은 경제개발에 성공하여 수백 년 가난에서 벗어나지 못했던 한국인들에게 ‘보릿고개’란 단어를 입에 올리지 않게 되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는 3선 개헌에 성공한 뒤 유신이라는 초헌법적 쿠데타를 통해 독재의 길로 들어섰다. 뒤이어 오일쇼크 등으로 인한 경제위기, 민주화를 바라는 국민의 열망을 철권으로 억압하는 독재에 염증을 느낀 민중의 저항 속에 최측근이었던 김재규 중앙정보부 부장의 총에 살해당한다.


히틀러는 제1차 세계대전에서 패한 뒤 제정을 대신해 출범한 바이마르공화국의 정치, 경제적 무능과 볼셰비즘의 발흥에 위기를 느낀 독일의 일부 민족주의자들, 군국주의자들과 결합해 국가사회주의당(나치당)을 독일 의회의 주요 정당으로 성장시킨다. 이후 힌덴부르크 대통령의 사망과 독일제국의회 방화사건 등을 통해 박정희 전 대통령의 유신에 비견할 만한 ‘비상대권’을 차지하고 독일 내 유일무이한 최고 권력자가 된다. 유신체제가 정권에 대한 어떤 비판, 헌법 개정에 대한 발언만으로 처벌되었던 것처럼 히틀러가 비상대권을 차지한 독일 역시 나치 체제와 총통에 대한 어떤 비방, 비판도 처벌의 대상이었다.


서민적 독재자와 귀족적 민주주의자

내가 아는 한 독일 역사에서 군부에 의한 쿠데타는 거의 상상할 수 없는 일이다. 물론 제1차 세계대전에서 패퇴한 빌헬름 제정을 물러나게 한 키일 군항의 반란은 있었지만 그것은 쿠데타라기보다는 혁명이었다. 어떤 이는 독일에서 군부 쿠데타가 일어나지 않았던 까닭을 독일의 민주주의가 그만큼 강력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내가 생각하기엔 그와 정반대의 이유로 독일에선 군부에 의한 쿠데타가 일어나지 않았다. 독일을 통일한 프로이센을 일컬어 ‘국가가 군대를 소유한 것이 아니라 군대가 국가를 소유한 이상한 체제’라는 평가가 있을 만큼 독일은 국가구조 속에 군대의 전통이 강력하게 존재했다. 그러나 한국의 역사적 전통 속에는 군부가 민간권력을 장악하는 일이 고려 무신정권을 제외하고는 거의 없었다. 어떤 의미에서 군부의 정치화는 일제의 식민통치 기간 동안 일본 군대를 통해 습득하게 된 경우라 할 수 있다.


한국의 최고통치자들과 떼려야 뗄 수 없는 풍경 중 하나는 막걸리를 마시는 대통령이다. 민주공화정의 주인이라는 대다수 국민들이 맥주와 위스키를 섞어 마시는 동안에도 대통령은 논두렁에 앉아 막걸리 마시는 풍경을 즐겨 연출한다. 이런 풍경이 연출되는 까닭은 단순하다. 최고통치자들의 실생활이 서민적이지는 않지만 서민적이라는 인상을 줄수록 통치에 유리하기 때문이다. 박정희가 그의 정적이라 할 수 있는 윤보선이나 장면에 비해 우위에 설 수 있었던 중요한 부분 중 하나가 이 두 사람과 달리 서민적인 풍모와 출신이었던 것과 마찬가지로 독일의 최고통치자였던 히틀러는 그동안 독일을 지배해왔던 기존의 지배엘리트들과 달리 매우 서민적인 인물이었다.



▶ 헤밍 폰 트레스코프(Henning von Tresckow) 대령

히틀러 암살음모를 추진했던 클라우스 폰 슈타우펜베르크 대령은 물론 에빈 폰 비츨레벤 장군, 헤닝 폰 트레스코프, 메르츠 폰 크비르하임, 베르너 폰 헤프텐, 파울 폰 하세, 하인리히 폰 헬도르프 등 히틀러 암살 음모의 주역들 대다수는 중간 이름에 귀족을 뜻하는 폰(von)이 들어있는 것에서도 알 수 있듯 독일의 전통적인 귀족(융커)계급 출신이었다. 하사출신이었던 히틀러는 귀족계급이 지배하던 독일군 수뇌부를 신뢰하지 않았고, 제1차 세계대전의 패배를 자초한 무능한 무리로 멸시하기 까지 했다. 그가 에르빈 롬멜을 총애했던 까닭 중 하나는 그가 자신과 마찬가지로 서민 출신이었기 때문이기도 했다. 히틀러 암살 이후 권력수반에 앉을 계획이었던 루드비히 베크 전 독일육군 참모총장을 비롯해 칼 프리드리히 괴들러(전 라이프치히 시장) 같은 인물들이 히틀러 암살 이후 수립하려 했던 독일은 과거와 같은 지배엘리트들의 복귀를 의미하는 것이기도 했다.


사실 히틀러 암살 음모에 가담했던 이들이 처음부터 히틀러의 반대파는 아니었다. 도리어 이들은 히틀러의 지지자들이었고, 그로부터 훈장을 받기도 했다. 그런 이들이 히틀러에게 등을 돌리게 된 까닭에 대해 영화 <발키리>는 유대인학살 등 인류에 대한 범죄, 역사 앞에 선 인간으로서의 양심적 갈등을 집중적으로 부각시킨다. 히틀러가 권좌에 앉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은 볼셰비즘의 발호에 위기감을 느낀 독일 내 자본가들과 중산층, 영국과 프랑스의 무관심 등 여러 요인들이 합쳐진 결과이긴 하지만 일반 서민들의 열렬한 지지가 밑바탕이 되었다. 한국전쟁을 전후해 외국 유학을 다녀온 지배계급의 자식들이 사회주의자가 되고, 서구로부터 들어온 기독교식 교육을 받은 피지배계급의 자식들이 청교도적 민주주의 사상을 받아들여 자신의 계급적 뿌리와 이반된 사상을 지니게 되었던 것처럼 히틀러를 가까이에서 접한 귀족적 민주주의자들은 히틀러를 제거하고자 했고, 그의 통치로 가장 큰 피해를 겪어야 했던 대다수 독일 서민들은 여전히 히틀러를 지지했다.


쿠데타로 나치지배가 종식될 수 있었을까

역사가들이 가장 즐겨하는 질문이자 가장 꺼리는 질문은 “만약에~”란 것이다. 역사란 이미 과거에 일어난 사건 중에서 현재까지 영향을 미치는 주요한 사건을 찾아내 인과관계와 그 의미를 찾아 묻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과거에 아무리 중요한 사건이었다 할지라도 그것이 현재에 영향을 주지 못한다거나 의미가 없다면 그것은 역사적 사건이 될 수 없다. 브라이언 싱어 감독이 영화 <발키리>로 우리에게 묻고 싶은 질문은 무엇이었을까?

 


사실 영화 <발키리>는 역사영화로서는 매우 훌륭한 편이다. 할리우드에서 제작되는 역사 영화들이 지닌 문제점의 상당수는 역사를 희화화하거나 제멋대로 왜곡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발키리>는 마치 한 편의 다큐멘터리를 보는 것처럼 진지하다(물론 다큐멘터리도 허구이며 창작자의 의도가 반영된다는 점에는 변함이 없다). 브라이언 싱어 감독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에 ‘나치’만 있었던 것이 아니라 히틀러와 나치체제에 저항하려다 목숨을 잃은 이들도 있었다는 사실을 전세계인들에게 보여주고자 했다. 그의 이런 의도는 톰 크루즈라는 대중적인 스타에 의해 충분히 담보되었고 나름대로 성공을 거두었다.


영화 <발키리>의 장점은 이처럼 진지하다는 데 있지만, 동시에 관객들에게 왜 진지해져야 하는지 충분히 설명해주지 않는다. 역사 속의 사건이 그 자체로 극적인 요소들을 풍부하게 가지고 있기는 하지만 호메로스의 『일리아드』를 관객 모두가 읽었다고 할 수 없는 것처럼 히틀러 암살이란 대의에 목숨을 거는 요 인물들의 당위적 결의는 영화 내부에 있지 않고, 관객들의 영화 외부에서 배운 역사에서 나온다. 그 결과 논리적으로는 공감할 수 있어도 영화를 보는 동안 정서적으로 공감하기란 쉽지 않다. 


슈타우펜베르크는 영화 서두에 이미 히틀러의 제거를 결심한 사람이었고, 베를린의 히틀러 암살 음모 세력 역시 이미 준비된 사람들이다. 그들이 왜 목숨까지 걸면서 히틀러를 제거하려 하는지에 대해 관객들 보고 스스로 역사에서 배우라고 말하는 것 같다. 영화의 진행상 필요한 등장인물 수가 너무 많은 것은 어쩔 수 없다고 하더라도 영화 <발키리>자체가 지닌 극적인 요소에만 천착해버리면 역사영화가 줄 수 있는 재미로부터 너무 멀어지는 것이기도 하다.


일반 관객들이 히틀러 암살 음모 사건을 접하게 될 때, 가장 먼저 던지게 될 핵심적인 질문이 무엇이었을까를 상상해보면 쉽게 알 수 있다. 아마도 그 질문은 ‘만약 히틀러가 슈타우펜베르크 대령과 그의 동지들이 계획했던 대로 암살당했다면 과연 역사는 어떻게 달라졌을까?’였을 것이다. 역사는 정말 달라졌을까? 슈타우펜베르크의 히틀러 암살 작전은 노르망디 상륙작전이 있었던 1944년 6월 6일로부터 44일이 경과한 1944년 7월 20일의 일이었고, 독일이 연합국에 무조건 항복한 것은 발키리작전으로부터 10개월쯤 뒤인 1945년 5월 8일의 일이었다. 과연 한 명의 정치지도자가 암살당하고, 쿠데타로 나치 정권은 전복될 수 있었을까? 그 결과 독일은 연합국, 소련 등과 휴전을 맺을 수 있었을까?


우리는 이 영화 <발키리>를 통해 역사 앞에 무수한 질문들을 던질 수 있을 것이다. 김재규의 총탄이 유신에 종지부를 찍기는 했으나 뒤이어 12.12쿠데타와 5.18광주학살을 불러들인 것처럼 히틀러의 암살이 역사의 냉정한 잔혹성을 보여주었을지도 모른다. 역사에는 가정(假定)이 없다고 하지만 어쩌면 그와 반대의 경우를 보여주었을지도 모른다. 어쩌면 그와 같은 질문은 그저 영화를 재미있게 보면 그뿐인 관객의 입장에서 호사스러운 질문일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우리는 내일을 살기 위해 반드시 거쳐야 하는 어제가 있는 법이다. 설령, 그것이 역사의 잔인한 수레바퀴 앞에서 실패라 불리게 될지라도 목숨을 걸고 넘어서지 않으면 안 되는 오늘도 있는 법이다.



영화 <발키리>는 의인이 10명만 있어도 소돔을 멸망시키지 말아달라던 아브라함의 질문을 우리에게 던진다. 비록 실패로 끝났고, 대중의 지지도 받지 못했지만 그들이 있어 두 차례의 세계대전과 홀로코스트의 광기에 휩싸인 독일이 역사 앞에서 그래도 우리 속에 이 체제에 저항한 사람들이 있었노라고 말할 수 있지 않은가. 마찬가지로 1980년 5월 광주의 마지막 날은 우리에게도 많은 것을 시사해준다. 계엄군이 탱크를 앞세워 광주도청으로 진격해오던 날 밤을 어떤 소설가는 이렇게 말했다. "그날, 살고자 하는 사람은 모두 살았고 죽고자 하는 사람은 모두 죽었다." 대한민국 민주주의의 역사는 그날 죽고자 마음 먹은 시민들의 피를 통해 산 사람들의 의식을 일깨우는 역사이기도 했다. 나는 역사가 어느 한 사람에 의해 결정되거나 이끌려 간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하지만 천하흥망에는 필부에게도 책임이 있는 법(天下興亡 匹夫有責)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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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바람구두 windshoes

선의 방관은 악의 승리를 꽃피운다


미국의 엔진, 전쟁과 시장| 김동춘 지음| 창비| 2004.

패권인가 생존인가 - 미국은 지금 어디로 가는가( Hegemony or Survival : America's Quest for Grobal Dominance, 2003)|노암 촘스키 지음|오성환, 황의방 옮김 | 까치글방 | 2004 
  

   『미국의 엔진, 전쟁과 시장』은 책머리에 밝히고 있듯 김동춘(성공회대 사회학과) 교수가 2003년 이라크 전쟁이 시작될 무렵 안식년을 맞아 미국에 체류하면서 미국 사회를 분석한 결과물이다. 김동춘은 9.11 이후 이라크 전쟁에 이르며 본격적인 슈퍼 파워를 과시하고 있는 미국이란 거대 제국을 구성하고 있는 다양한 요소들을 전쟁과 시장이란 키워드를 통해 비판적으로 재구성하고 있다. 독창적인 언어학자이자 반전운동가인 노암 촘스키의 『패권인가 생존인가』는 냉전 해체 이후 초강대국으로 부각된 미국의 영속적인 세계 패권(global hegemony) 전략에 대한 비판을 담고 있다.

9.11의 잿더미에서 제국을 선포한 미국
  김동춘과 노암 촘스키의 책은 9.11과 이라크 전쟁, 그리고 부시2세의 재선 승리라는 결과를 앞에 놓고 미국의 과거로부터 시작해 현재와 미래를 묻고 있다는 공통점을 지닌다. 이외에도 두 권의 책이 지닌 공통점은 또 있다. 9.11 이전의 미국 연구들은 대개 냉전 해체 이후의 미국을 좀더 우월한 위치를 점하고 있는 국민국가(nation-state)들 가운데 하나로 파악하고 있었던데 반해 김동춘과 노암 촘스키는 애초부터 미국을 제국(empire)으로 상정하고 있다는 점이다. 9.11의 잿더미는 미국이 새로운 제국으로 탈바꿈했음을 알리는 극적인 신호탄이자, 세계만방에 제국엔 제국의 작동방식이 있음을 공포하기 위한 막간극이었다.

이라크 전쟁이 시작된 지 10일 정도 지난 2003년 3월 28일 아랍 위성방송인 알자지라가 럼스펠드를 인터뷰하면서 미국이 “제국건설(empire building)을 하고 있는가”라고 물었다. 그러자 럼스펠드는 마치 여자 속옷을 입고 있다가 들킨 사람처럼 “우리는 제국을 추구하지 않는다. 우리는 제국주의적이지 않다. 그리고 과거에도 그런 적이 없다”고 화를 내면서 대답했다. 그런데 이에 대해 미국 내에서는 “그래 미국이 제국인 것은 맞지만 뭐가 잘못됐냐? 우리는 ‘비제국주의적 제국’ 아니면 ‘좋은 제국’이다”라는 공세적인 긍정론이 엇갈렸다. <김동춘, 165쪽>

  미국이 제국의 길로 나아가는 것을 반대하는 이나, 옹호하는 이나 암묵적으로 동의하고 있는 전제는 미국이 이미 제국이 되었다는 사실이다. 그런데 미국은 언제부터 제국이 되어 있었던 것일까?

  2002년 가을, 가장 중대한 세계적 어젠다는 역사상 최강의 국가가 군사력 사용 및 위협을 통해서 패권을 유지하겠다는 의사를 공표한 것이었다. 국가안보전략에 대한 공식발표는 다음과 같다. “우리의 군사력은 잠재적인 적들이 미국의 국력을 능가하거나 대등해지겠다는 희망하에서 군사력 증강을 추구하는 것을 단념하도록 할 만큼 충분히 강해질 것이다.”
저명한 국제문제 전문가인 존 아이컨버리는 이 같은 선언을 “미국이 대등한 경쟁자가 존재하지 않는 일극(一極)세계(a unipolar world)를 유지하겠다는 근본적인 공약에서 시작되는 대전략”이라고 설명한다. <노암 촘스키, 19쪽>

위대한 공화국의 '명백한 운명(manifiest destiny)'

  미국은 2002년 가을, 비로소 제국이 될 결심을 한 걸까? 김동춘에 따르면 ‘제국주의’라는 말은 미국인들이 가장 싫어하는 용어 가운데 하나이다. 1823년 미국은 흔히 ‘고립주의’ 외교정책으로 표현되는 먼로독트린을 내놓는다. 이후 미국은 실질적으로는 제국적 팽창을 지속하면서도 정치인들 스스로는 ‘제국주의’를 비난하는 이율배반적인 행태를 보여 왔다. 노암 촘스키는 미국이 먼로주의를 주창할 때, 다른 남북 아메리카 국가들의 안전도 간간이 고려했으나 결코 그 자체가 목적은 아니었다고 말한다.

  현직 대통령인 부시2세의 정치적 배경이기도 한 텍사스는 미국에서 2번째로 큰 주로 미국 전체 영토의 7.4%를 차지하고 있다. 친구를 뜻하는 인디언 말 ‘테하스(Tejas)’에서 유래했다는 텍사스는 석유 생산량이 미국 전체의 35%를 차지하고 있다. 멕시코 정부는 멕시코 북동부 테하스주를 개척하고자 미국 식민지 개척자들에게 토지를 양도해 주었고, 스티브 F. 오스틴이 모집한 미국 출신의 이주민들은 1822년 텍사스에 도착했다. 당시 텍사스는 멕시코 코아우일라주 소속의 영토로 대략 25,000명의 미국인이 거주하고 있었는데, 분리 독립을 원한 미국 이주민들은 1831~1832년 사이에 무력을 동원하여 멕시코측 세관과 요새들을 파괴하고, 1836년 2월 독립을 선언한다.

  개척을 위해 받아들인 이민이 주인이 혼란스러운 틈을 타 새로운 주인을 받아들이겠다며  일으킨 반란이 텍사스 독립전쟁이었다. 멕시코 정부와 산타 안나는 1836년 3월 6일 텍사스의 알라모 요새를 점령하지만, 4월 21일 산하신토(San Jacinto) 전투에서 패배하여 미국으로 압송당한다. 그후 산타 안나는 미국의 잭슨 대통령에게 텍사스의 독립을 약속하고서야 6월말 멕시코로 귀국할 수 있었다. 1836년 독립을 성취한 텍사스 공화국은 남북전쟁이 끝난 뒤인 1845년 미국의 한 주로 편입되었다. 헨리 데이빗 소로우가 부당한 전쟁으로 지목하며 멕시코 전쟁에 충당될 세금 납부를 거부해 투옥된 것도 이 무렵의 일이다. 장차 세계의 미래에 영향을 미치고, 인류의 모든 행위를 제어해야 할 운명을 짊어진 위대한 공화국 미국의 '명백한 운명(manifiest destiny)'은 이렇듯 제국의 길을 가리키고 있었다.

상상의 공동체, 미국의 신화가 만들어낸 이미지
  권용립(경상대 정치외교학과 교수)은 『미국의 정치문명』(삼인, 2003)에서 우리가 흔히  서구 문명 속에 포함시키는 미국이 사실은 서유럽 국가들과 태생적으로 다른 정치문명을 가지고 있음을 지적한다. 서유럽 국가들이 피를 나눈 역사적 민족과 집단적 기억이 교직되면서 형성된 민족 국가인데 반해 미국은 그 역순을 밟은 나라, 즉 국가와 이념을 먼저 설계해놓고, 그 이후 여러 인종과 민족을 받아들여 미국인이란 새로운 민족과 기억을 제조해온 국가라는 것이다. 그런 미국이기에 먼 과거로부터 물려받은 기억보다는 국가의 설계과정을 담당한 지배담론이 신화가 되고, 이것이 국가의 정체성을 제공해준다. 그런 의미에서 미국이야말로 진정한 “상상의 공동체”이다.

  19세기말 미국이 유럽의 제국주의 국가들과 다를 바 없는 명백한 제국주의 국가로 등장했음에도 미국의 역사학자들은 이를 미국 민주주의의 변형된 한 형태로, 즉 미국의 역사적 예외성을 강조해왔다. 이런 태도는 비단 우파 지식인들만이 아닌 좌파로 분류되는 지식인들에게도 정도의 차이를 두고 나타난다. 촘스키는 이런 무의식적인 태도를 미국이 세계체제 구축과정에서 만들어낸 레토릭과 프로파간다라고 비판한다. 할리우드 영화 “알라모(The Alamo, 1960)”를 통해 멕시코 전쟁은 존 웨인으로 상징되는 서부 개척 시대의 영웅들이 압제자 멕시코 군을 맞아 싸운 전투로 뒤바뀐다. 비록 미국의 건국과정이 실제로는 인디언 학살로 점철된 피의 역사라 하더라도, 미국의 건국이 구대륙의 전제정치로부터 탈출하여 새로운 정치질서를 만들어낸 것은 사실이다. 공화주의 전통 아래 생겨난 이런 자부심은 캘빈주의의 소명의식과 결합하면서 미국은 선택받은 나라라는 도덕적 절대주의를 만들어냈다.

  촘스키는 미국적 가치와 동일시되는 자유, 평화, 인권, 민주주의가 프로파간다와 레토릭에 의해 구축된 이미지+이데올로기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날카롭게 비판한다. 미국의 본래 모습을 보기 위해선 이런 이미지들에 현혹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김동춘은 이라크전쟁이 진행되는 동안 미국의 TV매체들이 사실상 정치선전자의 역할을 했으며 TV매체가 전황을 보도할 때면 언제나 “이라크 해방작전(Operation Iraqi Freedom)”이란 구호를 화면 하단에 띄웠다고 한다. 세계로 송출되는 미국 TV매체에 의해 침공은 해방이 되고, 미국적 질서에 순응하지 않는 나라는 악의 축이 된다. 상대를 문명화 혹은 미국화(Americanized)해야 할 존재로 보는 것은 “전 세계를 미국과 같은 나라로”로 만들자는 윌슨 외교의 본질이었으며, 로마제국이 2,000여 년 전 갈리아 지방의 골족 수십만을 학살하며 주장했던 것이기도 하다.

  김동춘은 미국의 이런 의식이 기독교 근본주의와 결합하면서 더욱 강화되었다고 주장한다. 트루먼 대통령은 "나는 신이 우리 미국인들을 만들었으며, 어떤 위대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우리에게 이처럼 힘을 주었다는 느낌이 든다."고 고백한다. 중동에서의 이슬람 근본주의 못지않게 미국의 정치 지형 속에서 기독교 근본주의(복음주의)는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이들은 1960년대 베트남전을 경험하면서 미국의 가톨릭 우익, 유대교 우익과 합세하여 "도덕적 다수, 기독교 연합" 등으로 적극적인 정치 세력화에 나섰고, 종교와 정치를 같은 맥락에서 바라본다. 미국이 전쟁에서 패배하지 않는 까닭은 그들이 신이 보기에 합당한 전쟁을 치르고 있기 때문이다. 오늘의 미국 사회를 "기독교 파시즘"화 되고 있다고 보는 것도 그런 까닭에서다.

미국의 슈퍼 파워를 뒷받침하는 토대들
  미국이 스스로를 제 아무리 특별하고 예외적인 국가로 인식하고 있더라도 이를 뒷받침하는 현실적인 힘이 존재하지 않았다면 미국은 그저 자부심이 강한, 약간 예외적인 국가로 치부되고 말았을 것이다. 그러나 미국은 세계 질서를 좌우할 수 있는 패권(hegemony)을 뒷받침하는 실질적인 토대를 가지고 있다. 김동춘과 달리 촘스키는 토대의 문제를 직접적으로 언급하지는 않지만, 그 토대가 전쟁과 시장이라는데 별다른 이견이 있을 것 같지는 않다. 군산복합체로서 미국의 전쟁과 시장은 어떻게 작동하고 있는 걸까? 그 핵심엔 무엇이 있을까? 미국은 언제부터 이런 초강대국이 되었을까?

제2차 세계대전이 시작되기 오래 전에 이미 미국은 역사상 세계 최대의 경제 강대국이었으나, 세계를 지배하는 강대국은 아니었다. 전쟁이 상황을 바꾸었다. 경쟁하던 강대국들은 파괴되거나 심각하게 악화된 반면 미국은 거대한 국력을 키웠다. 준통제경제체제에서 산업생산은 근 4배로 증가했다. 1945년 미국은 경제적으로 압도적인 우위를 차지했을 뿐만 아니라 안전보장 측면에서도 독보적인 지위를 구축했다. <노암 촘스키, 187쪽>


"미국 역사상 가장 큰 대박을 터뜨린 전쟁사업은 2차 대전 참전과 전후 복구를 위한 마샬플랜 그리고 냉전전략일 것이다. 2차 대전으로 미국은 세계 총생산의 반을 차지하는 경제적 초강대국이 되었다. 흔히 뉴딜이 미국자본주의를 공황에서 구해냈다고 말하지만, 좀더 정확하게 말하면 2차대전이 미국 경제를 살렸다. 전쟁은 자본 이득을 증가시켰으며 투자 기회를 확대했다. 고용문제나 경제난이 전쟁으로 한방에 해결됐다." <김동춘, 본문 124쪽>


  미국은 제2차 세계대전을 기점으로, 냉전 해체 이후엔 위협 혹은 균형이 될 수 있는 어떤 세력도 존재하지 않는 역사상 유일한 제국이 되었다. 제국의 엔진인 전쟁과 시장을 가동시키는 연료는 무엇일까? 그것은 아마도 달러, 인터넷, 미사일, 그리고 할리우드일 것이다. 신영복 교수는 지난 2003년 계간『황해문화』와 가진 대담에서 1945년 이후 석유결제 화폐가 줄곧 미국 달러였음을 지적한다. 오일 달러가 미국의 금융과 증시를 뒷받침하고, 미국의 무역적자와 재정적자를 메우는 재원이 된다. 석유결제 화폐가 달러라는 사실은 반대로 달러가 국제통화로서의 지위를 유지하지 못할 때, 미국 경제가 하루아침에 붕괴할 수 있음을 반증한다. 석유와 달러가 경제적인 측면에서 제국의 생존을 위한 필요불가결한 요소라면, 미 국방성이 군사적 목적에서 개발한 인터넷은 로마 제국의 아피아 가도(Via Appia)이다. 인터넷은 미국 상업의 심장부가 되고, 영어는 세계인의 언어가 된다. 할리우드의 문화상품들은 세계를 석권한다.

  로마제국 이래 모든 제국은 전쟁과 정복이란 수단에만 의존하지 않았다. 사실상 로마가 이룩한 가장 위대한 정복은 창끝이 아니라 거대한 공중목욕탕에서 나왔다. 미국의 통치전략은 최근 이라크의 사례에서도 알 수 있듯 군사력을 동원한 직접통치가 아니라 자유와 민주주의란 관념을 통한 것이다. 비협력 세력을 과감히 배제하며 추진되는 미국의  "나라 만들기(state-builing)"는 친미 엘리트들을 지배계급으로 이식하는 작업이다. 해방 직후 남한과 현재 이라크 상황을 비교해보면 금방 알 수 있는 일이다. 이식된 지배 엘리트들은 미국식 교육제도를 도입하고, 미국식 이데올로기를 전파한다. 오늘날 미국은 세계에서 가장 우수한 대학을 가지고 있다. 그 이유는 미국의 대학이 다른 선진국 대학들보다 우수해서가 아니라 세계의 가장 우수한 학생들이 유학가기 때문이다. 미국 군부는 오랫동안 엘리트 군사학교에서 제3세계의 군부엘리트들을 육성해 왔는데, 파나마의 노리에가는 물론 한국의 전두환, 노태우 등도 모두 이 과정을 거쳤다.

So What? 을 넘어서
  김동춘과 촘스키의 분석이 아니라도 최근 우리 사회는 물론 국제적으로 미국에 대한 연구와 분석들은 숨가쁘게 쏟아져 나오고 있다. 대개는 미국이 슈퍼 파워를 추구하는 과정에서 벌인 정치, 군사, 외교 정책에 대한 비판이 주류를 이룬다. 이런 책들을 읽노라면 국가의 정책 결정과정은 물론 개인의 일상까지 제국의 입김이 미치지 않는 것이 없고, 세계라는 ‘거대한 체스판’은 마치 미국의 음모를 위해 존재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미국은 너무나 거대한 제국이기에 이에 대해 알면 알수록 도리어 초월적 존재, 감히 도전할 의지조차 품을 수 없는 존재가 된다. 미국의 정책에 대해 비판적인 사람들은 미국이 이라크를 공격해 영토를 지나치게 확장한 결과 제국이 해체되는 길로 접어들 것이라고 믿고 싶어 한다. 하지만 미국이 자랑하는 최첨단 무기는 공화국 수비대를 한 달도 못되는 기간동안 전멸시켰다. 그런 까닭에 지금 미국의 세계질서에 반대하는 것은 마치 디즈니 만화영화에 등장하는 걸리버를 포획하려는 소인국 사람들의 안간힘처럼 보인다.

  지난 20세기 세계는 평화를 유지하기 위한 세력 균형에 힘써왔다. 제1차 세계대전은 당시 세계 패권을 장악한 유럽 국가들이 다극 지배 체제의 세력 안정에 실패한 결과이고, 제2차 세계대전 이후의 양극 체제는 유럽을 제외한 지역에서 국지적 분쟁을 조장해왔다. 그 과정들은 너무나 잔인해서 인간의 본성 자체가 살육과 학살을 즐기는 것으로 보이도록 만든다. 인간은 본래 잔인한 존재이기에 미국과 이에 우호적인 사람들은 미국을 정점으로 한 일극 체제가 도리어 팍스 로마나와 같이 힘에 의한 평화 체제를 유지하는 방법이라고 주장한다. 촘스키 같은 지식인은 현재 미국 사회의 주류가 아니며, 이념적으로 차이가 없는 민주당은 공화당과 합당하란 비난을 받는다. 그런 상황에서 미국을 비판하는 것은 필연적으로 “So What? 그래서 어떻다는 말이냐?”는 냉소 섞인 반문을 피할 수 없다.

이에 대한 김동춘과 노암 촘스키의 결론 혹은 대안은 본질적으로 안토니오 네그리와 마이클 하트의 『제국』에서 주장하는 내용과 크게 다르지 않다. 촘스키는 인류가 패권과 생존 사이의 명백한 선택을 강요당하는 중대한 기로에 서 있으며, 이 상황에서 미국을 견제할 세력으로 저항과 비판 의식, 평화와 인권을 염원하는 ‘세계 여론(world public opinion)’이라는 제2의 초강대국을 설정해야 한다는 주장을 펼친다. 김동춘은 국가나 시장은 19세기에는 인간을 해방으로 이끄는 수레바퀴였으나 이제는 인간을 예속하는 굴레로 변했다고 지적하며 시장의 법칙을 극복하고, 우리 모두가 자기 운명의 주인이 되자고 말한다. 두 사람은 미국에 대항하기 위해 세계적 연대의 필요성을 역설한다. 네그리와 하트는 제국에는 내부와 외부가 따로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이제 제국의 네트워크는 지구를 통째로 포섭하고 있으며 자율적인 개체의 민주적 연대인 다중은 이 ‘제국 기계’를 해체하고 새로운 사회를 창출할 수 있다고 전망한다. 그러나 전망이 밝지는 않다. 미국이 제국으로 성장하는 과정에 위기와 저항이 없었던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미국은 이런 저항을 도리어 자기 혁신의 에너지, 내적 동력으로 삼아버리는 놀라운 탄력성을 자랑하며 성장해왔다.

  그렇다면 우리는 다만 냉소를 곱씹고 있어야 하는가? 우리는 지난 역사들을 통해 한 가지 교훈을 얻을 수는 있다. 모든 제국은 필연적으로 팽창하지만 한 번 팽창한 제국은 스스로의 힘으로는 팽창을 멈출 수 없다. 세계 가솔린 소비량의 40%를 차지하는 미국의 붕괴는 내부로부터 시작될 것이다. 미국이 주도하는 세계적 불평등(세계질서 혹은 자유무역)은 국가 단위를 해체하는 듯 보이지만 미국 자신은 철저하게 국가의 경계를 유지한다. 미국이 세계 최고의 강대국으로 성장할 수 있었던 힘은 구대륙의 차별받던 시민들을 받아들여 국가의 동력으로 삼은 덕이지만, 미국의 보편주의는 점차 약해지고, 제국은 본래의 탄력을 잃어 폐쇄적인 사회가 되어 간다. 미국은 팽창한 모든 제국이 빠지는 똑같은 딜레마에 빠져들고 있다. 이제 저항은 제국의 포섭 양식 속에서 소통하고 있으며 전 지구적 차원에서 새로운 저항을 준비한다. 이제 미국이 즐겨 읊조리던 에드먼드 버크의 “선의 방관은 악의 승리를 꽃피운다.”는 격언을 되돌려 줄 때다.

*출처 : 녹색평론 2005년 3~4월 - 통권 81호 | 녹색평론 편집부 (엮은이) | 녹색평론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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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바람구두 windsho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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