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 신화 - 에드거 파린 돌레르 | 인그리 돌레르 | 최영미 옮김 | 시공주니어(1999)


집에 신화와 관련된 책자들은 나름대로 꽤 된다. 그 가운데 원작자는 같지만 번역자가 다른 그리스로마신화가 몇 종되고, 같은 원작자와 같은 번역자이지만 기획 의도에서 차이가 나거나, 출판사가 다른 경우도 꽤 있다.

 

예를 들면

토마스 벌핀치, 이윤기 옮김(1996), 『그리스와 로마신화』, 대원사.
토마스 불핀치, 최혁순 옮김(1995), 『그리스․로마신화』, 범우사.
이윤기 편역(2001), 『벌핀치의 그리스로마신화』, 창해.
오비디우스, 이윤기 옮김(1998), 『변신이야기1.2』, 민음사.
미하엘 쾰마이어, 유혜자 옮김(1999), 『신그리스 신화』, 현암사.
이경덕(2002), 『신화 읽어주는 남자』, 명진출판.

와 같은 책들이 그것이다(이외에도 더 있지만).

 

종종 그리스로마신화는 토마스 벌핀치의 작품으로 착각할 수도 있을 만큼, 그리스로마신화의 대명사로 벌핀치판 그리스로마신화의 영향력은 대단한다. 서양에서도 거의 정본으로 인정받는다 할 수 있지만, 실제로 벌핀치는 이윤기 편역과 마찬가지로 산재해있는 그리스로마신화를 그가 모아들이고, 그의 관점에서 저술했을 뿐이다. 즉, 한 가지 신화에 한 가지 의미와 판본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무수히 많은 다른 판본들, 다른 이야기들이 또 있다는 것이다.

 



신화를 의미하는 그리스어 '뮈토스(mythos)' 는 사람이 하는 얘기를 의미하는 말이다. 뮈토스는 문명화된 종교의 '로고스(logos)' 와 대립한다. 즉, 인간과 신, 성과 속, 이승과 저승, 선과 악을 이원화하는 것과 대립한다는 것이다. 신화(무속을 포함해서)는 뮈토스는 자연과 신, 사회, 인간 등을 분화시키지 않고 단일체계로 이루어진 것으로 바라본다. 피에르 그리말은 “로고스와 뮈토스는 말의 양면이며, 양자 다같이 정신생활의 기본적 기능이다. 논증으로서의 로고스는 올바르고 논리에 닿을 경우는 진실이지만 뭔가 속임수가 있을 경우는 허위가 된다. 그러나 뮈토스는 오로지 뮈토스 외에 아무 목적도 없다.”고 말한다.

 

지금 우리 나라에서는 신화가 열풍이다. 무슨 이유에서인지 말하는 사람들은 없지만, 신화의 시대가 도래한 것처럼 출판계에서도 신화 바람이 거세다. 그런데 왜 신화를 읽고, 신화를 이야기하는가에 대한 논의는 태부족인 상황이다. 우리는 어째서 신화, 신화의 세계에 흥미를 느끼는 것일까?

 

신앙의 시작은 자연을 섬기는 것에서부터 출발했다. 사람들이 섬김의 대상으로 삼았던 자연은 하늘과 땅, 해와 달, 별처럼 우주의 천체와 함께, 바람과 구름, 비 등 기상현상 및 산과 강, 바위, 나무 등 자연물들을 두루 포괄한다. 한정된 수명을 지닌 인간에 비해 자연현상은 끊임없이 순환하며, 사라지는가 하면 다시 나타나고 죽었는가 하면 되살아나는 힘을 지녔다. 해는 서쪽으로 지는가 하면 동쪽에서 다시 뜨고, 달은 그믐에 죽었는가 하면 초사흘에 초승달로 다시 살아나며, 너무들 또한 겨울이 닥쳐 잎을 떨어뜨리고 죽었는가 하면 봄을 맞아 싹을 틔우며 되살아나는 힘을 지녔다.

 




그것이 바로 자연의 생생력(生生力)이자 순환적 생명력이다. 일생의 삶을 단 한 차례만 누리는 사람들로서는 이러한 자연현상이 초월적 생명으로 인식될 수밖에 없다. “사람이 세상을 처음 볼 때 자연만큼 자연스럽지 않은 것이 없었다. 그들에게 자연은 커다란 경이이자 큰 공포였으며, 그것은 불가사의이자 영원한 신비였다.” 고대인들의 신화적 사고는 인지력이 결여된 미개 사고가 아니며, 신화적 사고는 근대의 과학적 사고 못지않게 지적이고 논리적이다.

원시인이나 고대인들의 자연에 관한 지식과 근대인의 과학적 지식에 차이가 있다면 전자는 후자처럼 자연을 대상화하고 객관화하는 지식이 아니라, 인간이 가야할 길을 알려주는 지혜이다. 인간은 자연과 대화를 나누고 자연의 질서와 오묘한 섭리에 귀 기울여 자연에 동화되어 살아야 함을 일깨워주는 지혜인 것이다. 이렇듯 신화적 사고로 바라본 자연은 인간이 마음껏 이용하기만 하면 되는 물질적 대상의 천연자원이 아니라 자연과 인간은 서로의 삶에 영향을 주고받으며 교감하는 동일 유기체의 일부라는 사고에서 유래하기 때문이다. 신화적 사고는 또한 생태적 사고와도 연결 고리를 갖는다.

 

그 힘이 우리로 하여금 역사(계몽, 이성, 합리)의 시대가 저무는 현대가 신화에 열광하게 만드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막상 어린이들에게 신화에 대한 읽을 거리를 제공해주고 싶어도 마땅한 책을 찾기가 어렵다. 얼마전 대히트를 친 만화 그리스로마신화가 있긴 하지만, 어쩐지 선뜻 권하고 싶지 않은 찜찜함이 있다. 그런 이들에게 에드거 파린 돌레르, 인그리 돌레르의 글과 그림, 시인 최영미의 번역으로 이루어진 "그리스 신화"는 꽤 괜찮은 대안일 수 있다.

 

우선 이 책의 첫장을 넘기면 속표지가 시작되는 우측에 그리스 신들의 계보도가 살짝 드러나고 있다(물론 전원은 아니고, 주로 주신들을 중심으로 구성된다). 가이아로부터 크로노스, 제우스, 아폴론에 이르는 계보도가 보기 쉽게 설명되어 있다. 그리고 속표지를 넘기면 그리스 신화의 진정한 고향이라 할 그리스 반도와 지중해 연안의 지도가 함께 수록되어 있다. 물론 이들 모두는 새롭게 그려진 것들이라 유아들도 쉽게 흥미를 느낄 수 있도록 꾸며져 있다. 돌레르 부부는 컬러와 흑백 그림을 풍부하게 사용하여 아이들도 쉽게 신화의 세계에 다가갈 수 있도록 한다. 아마 밤에 아이들을 앉혀놓고 하루에 한 장씩 이야기를 들려주다보면 아이들은 어른들보다 더 빨리 그리스 신화의 세계로 들어갈 수 있을 것이다. 아무래도 역사적 사고에 익숙한 어른들보다 아이들은 신화적 사고에 좀더 근접해 있는 존재들이니 말이다.

 

만약 아이들에게 신화의 세계, 신화적 사고(물론 서구 문화의 원형질을 익히는 기회도 되겠지만)를 손쉽게 익히게 해주고 싶다면 그 시작을 이 책으로 하는 것은 훌륭한 선택이 될 것이다. 수록된 삽화의 완성도, 판형과 지질, 인쇄 등을 고려할 때도 12,000원이란 가격은 그리 비싸 보이지 않는다. 다만, 한 가지 지적해두고 싶은 것은 그리스로마신화는 결국 서양의 신화이다. 물론, 신화의 세계에서 동서양으로 구분하는 것은 다소 우스운 일일지도 모르나 앞서도 말했다시피 현재의 그리스로마신화는 신화의 원형이 아니라 후세인들에 의해 그들의 입맛에 맡게 다소 각색되고 깍여나가며 정의되었다는 점에서 서구적이란 점을 먼저 기억해두자는 것이다. 서구에서 기독교에 의해 신화적 세계의 다원,다층성이 억압되었다면, 동양에서는 유교적 세계관에 의해 신화의 세계가 오랫동안 부정되어 왔다. 그런 까닭에 동양의 신화는 아직까지 그리스로마신화처럼 정제된 것을 얻기가 쉽지 않다. 그런 점은 앞으로도 꽤 오랫동안 아쉬움으로 남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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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바람구두 windsho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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