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터의 편지 - 에즈라 잭 키츠 | 이진수 옮김 | 비룡소(1996)



에즈라 잭 키츠의 작품 속에 등장하는 여러 주인공들이 한 차례 반짝 등장하고 사라지지 않는다는 이야기는 앞서 "피터의 의자"편에서 이미 한 차례 이야기했다. 이번에 이야기할 "피터의 편지"도 역시 전작의 주인공인 피터가 등장하고 있다. 그런데 "피터의 의자" 속에 등장한 피터에게 아기 시절의 피터가 액자 속 사진으로 등장하는 것처럼 "피터의 편지"에 등장하는 피터는 같은 주인공이지만 이전의 주인공과는 다른(좀더 성장한) 인물이다. 피터는 생일을 맞이해 한 친구를 부르고 싶어한다. 그 친구는 "에이미"란 여자 아이다.

 

이 책을 읽다가 나도 모르게 어린 시절의 내 추억 하나가 설핏 떠올라 혼자 흐뭇하게 잠시 웃었다. 초등학교에 처음 입학하던 날, 가재수건을 잘 접어 안전핀으로 가슴에 고정시키고 앞으로 나란히를 했다. 도토리 키재기겠지만 교실 문 앞에 남녀 학생들이 두 줄로 나란히 늘어서 키높이대로 짝궁을 지었다. 그런데 내 짝궁이 말이다. 세상에 아주 예쁜 거다. 게다가 깔끔한 차림하며 새초롬하니 앉아있는 모습을 곁눈으로 훔쳐보니 작은 가슴은 왜 그리 콩닥콩닥 뛰던지... 하지만 어린 마음이라 그랬을까. 그 짝궁에게 특별히 말을 걸어본 기억이 내겐 없다. 다만 초등학교 1학년 난생 처음 가는 봄소풍 날 일어난 일만 기억에 남았다.

 

요새 같으면 아이들이 유치원 시절부터 서로 한데 어울려 지내지만, 나는 유치원에 다니질 않고 바로 초등학교, 그러니까 국민학교에 입학했다. 그래서일까 여자 아이랑 한 곳에서 지내게 된 건 초등학교 때가 첫 경험이었다.  소풍을 가는데 지금은 한 반에 40명 내외지만 그때만 해도 인구 비례해서 초등학교 수가 많이 부족했기 때문에 한 반에 무려 60-70명의 아이들이 버글버글하던 시절이 아닌가. 그런 학교 환경에 소풍이라는 건 어마어마한 대군이 움직이는 행사일 수밖에 없다. 당연히 담임 선생님의 신경이 날카로울 수밖에 없었을 거다. 우리는 짝궁과 손을 잡고 일렬 종대로 선생님 뒤를 따라가야 했다. 그런데 문제는 남들은 다 옆 짝궁이란 덥석덥석 손도 잘 잡고 가는데, 나는 짝궁 손을 차마 못 잡겠는 거다. 결국 선생님이 이 모습을 보고 달려와서 강제로 옆 짝궁의 손을 잡게 했지만 나는 짝궁의 맨손을 잡지 못하고, 그 아이의 옷자락 하나를 대신 쥐는 것으로 해결을 보고 말았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참 기가 막힐 일이다. 내가 이 기억을 좀더 오래 지니게 된 까닭은 초등학교 1학년 1학기를 마치고, 2학기엔 고만 전학을 가게 되었기 때문일 거다. 만약 내가 1학년을 거기서 마치고, 졸업할 때까지 다녔다면 1학년 때 옆짝궁이 자라는 모습을 계속 지켜볼 수 있었을 텐데, 나와 그 친구와의 인연은 거기서 끝나고 말았다. 지금와서 생각해봐도 영 아쉬움만 남는다. 그런데 왜 아쉬움이 남는 거지... 나 원참... 흐흐. 에즈라 잭 키츠는 자신의 동화에서 그려지는 어린 주인공들의 모습을 자기 자신의 추억 속에서 얻는 영감으로 그려내고 있다고 이야기한다.

 

"나도 전에는 어린이였다.우리들은 모두 어린 시절의 추억을 간직하고 있다. 나는 내 마음속에 살고 있는 어린이들에게 솔직하게 말을 건다. 그리고 최고의 영감이 떠오르기를 기대한다.(엘렌 E. M. 로버츠, 그림책 쓰는 법, 문학동네, 164쪽)"

 

앞서 에즈라 잭 키츠가 폴란드 유대계 이민자의 후손이란 이야기는 한 바 있다. 원래 그의 이름은 "야고보 에즈라 카츠(Jacob Ezra Katz)"란 유태계 이름과 성씨였다. 그가 이민자의 후손으로 자신의 성씨 때문에 소수자로 어떤  인종차별을 받았는지 구체적으론 알 수 없으나 1950년대 미국의 반유대 분위기 때문에 스스로 이름을 바꿨다고 한다. 그가 어째서 자신의 첫 작품에서 푸에르토리코 소년 "화니토(Juanito)"를 등장시켰는지(유색 인종을 택했는지) 미루어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기도 하다(동화 속에 유색인종이 등장한 것은 그가 처음이라고 한다).

 

이 책 "피터의 편지"에 등장하는 흑인 소년 피터는 그가 1940년 5월 13일자  "라이프Life" 잡지에 소개된 조지아주의 한 흑인 소년의 기사에 감흥을 얻어 구상하게 된 것이라고 한다. 사진이 너무 작아 글자를 판독할 수는 없지만 "Blood Test"란 글자로 보아 남부 지역의 흑인 문제를 다룬 것이 아닐까 추측해본다(누구 좀더 자세히 아시는 분이 알려주시면 좋겠다-음, 니그로 보이란 말이 좀 걸리지만 기사 내용 자체는 그보단 아이가 주사 맞는 걸 두려워하지 않고 웃고 있는 것에 촛점을 맞춘듯). 에즈라 잭 키츠는 자신의 어린 시절에서 영감을 얻는다고 했는데, 그가 자신의 페르소나라고 할 수 있는 흑인 소년을 등장시키고 있는 것은 자기 자신이 차별받았던 경험이 녹아들었다고 할 수 있다.

 

"내 인생을 바꿀만한 경험이 시작되었다 - 흑인아이가 영웅(주인공)인 책을 쓰기 시작한 것이다.
지금까지 내가 썼던 그 어느 책에서도 흑인아이가 등장하지 않았었다  배경속의 아주 작은 모습으로밖에. 그 아이가 내 책에 있는 이유는 그 아이가 지금까지 마땅히 그곳에 있어야했기 때문이다. 몇년전에 한 흑인꼬마아이의 사진을 잡지에서 오려둔적이 있다. 내가 동화를 쓰기 시작하기 전부터 난 그 사진을 내 책상머리에 붙여두었었는데 그 사진을 바라보는 일을 참 좋아했다. 바로 이 아이가 내 책속의 영웅이었던 것이다."

 

피터가 처음 등장한 "눈오는 날(The Snowy Day, 1962. 미국도서관협회에서 수여하는 칼데콧상을 수상했다)"로부터 시작해 "Whistle for Willie(1964), Peter's Chair(1967), A Letter to Amy(1968), Goggles!(1969), Hi Cat!(1970), Pet Show(1972)"에 이르는 동안 피터는 끊임없이 성장해간다. "애완동물 쇼"에 이르러 피터는 어린이에서 청소년의 세계에 진입한다. "피터의 편지"의 원제는 "A Letter to Amy"로 "피터의 의자"가 쓰여진 이듬해(1968) 발표되었다.

 

피터는 자신의 생일에 초대하고 싶은 여자 친구 에이미에게 보낼 초대장을 쓰느라 궁리 중이다. 이건 피터가 태어나 처음 쓰는 편지이자 처음 생긴 여자 친구이기도 하다. 그건  "그-렇-지-만-요, 이번엔 좀 특별하거든요."라고 말할 만큼 피터 자신이 더 잘 알고 있다. 처음하는 경험이므로 피터는 최선을 다하지만 역시 심장이 마구 뛰는지 실수를 연발한다. 편지를 여러번 접어 봉투 안에 집어 넣고, 가려는데 급하게 서둔 나머지 시간을 적어넣지 않거나, 우표를 붙이지 않는 등 실수를 연발한다. 애완견 윌리에겐 비가 오니 집에 남으라고 말하고 뛰어나간다. 아마 이번 일만큼은 혼자서 처리하고 싶었던 모양이다. 노란 우비를 입고서 말이다. 하지만 우리의 애견 윌리가 누구인가? 전편격인 "피터의 의자"에서 함께 가출을 감행하기도 한 주인공이기도 하지 않은가.


 

우체통으로 가면서 윌리는 에이미 집 앞 창가를 지난다. 그런데 M.K와 S.J가 누구인지는 모르겠으나 하트와 화살표로 사랑에 골인했음을 알리는 아이들의 낙서가 그려진 담벼락 사이로 애견 윌리가 고개를 빼곰히 내밀고 있다. 얄궂게도 화살표는 정확히 피터의 시선과 윌리의 시선을 교차하게 만든다. 서로 뻘쭘히 바라보는 애견 윌리와 피터의 시선을 에즈라 잭 키츠는 독자들에게 "놓치지 마시라. 개봉 박두" 하고 외치는 듯 보인다. 사실 윌리가 이렇게 허둥지둥하고 있는 건 '생일 파티에 여자애가 오면, 남자애들이 보고 뭐라고 할까?' 하는 염려때문이었다. 그렇다. 남자아이들이 가장 싫어하는 놀림은 바로 "알나리 깔나리, 누구랑 누구는 그렇고 그런 사이, 알나리 깔나리"가 아닌가. 그런 생각을 하는 동안 천둥이 치고 피터는 편지를 그 서슬에 그만 놓치고 만다. 바람에 불려 여기저기 날아다니는 편지를 잡으려고 뛰다가 피터는 누군가와 쿵하고 부딪치고 만다.





사실은 에이미가 바람에 날리는 편지를 잡아주려 달려가는 걸 피터는 "에이미가 편지를 보면 안돼. 그러면 덜 놀랄 거야!" 하며 서두르다 고만 부딪치고 만 것이다. 피터 이 친구, 깜짝 쇼의 묘미도 벌써 터득하고 있는 대단한 녀석이다. 하지만 에이미는 그것도 모르고 울면서 달려간다. 과연 이 두 친구 에이미와 피터의 이야기는 어떻게 될까? 에즈라 잭 키츠의 작품은 이후에도 계속 이어진다. 그는 지난 1983년 5월 6일 심장마비로 숨질 때까지 모두 여든 다섯 편의 작품을 남겼고, 어린이 그림 동화 부문의 여러 상을 받았다. 그의 사후엔 에즈라 잭 키츠의 고향인 브룩클린의 프로스펙트 공원(Prospect Park)에 그를 기리는 뜻음 담아 피터와 윌리의 청동상에 세워졌다.

 

그의 동화 속 캐릭터들과 이야기들은 우리의 일상에서, 우리의 추억 속에서 발견하게 되는, 누구나 한 번쯤 경험한직한 사람과 이야기를 정교하게 다듬은 것들이다. 그럼에도 에즈라 잭 키츠의 동화를 읽노라면 신영복 선생의 "화이트와 블랙은 색을 가리키는 단어가 아니라 선(善)과 악(惡), 희망과 절망의 상징이었습니다" 라는 이야기가 떠오른다. 검은 피부의 소년 피터가 등장하는 에즈라 잭 키츠의 동화는 지금까지 접해온 동화 속 캐릭터들의 뽀얗고 발그레한 뺨을 물들이고 있는 그야말로 동화 속에 등장할 법한 캐릭터가 아니다. 그래서인지 종종 이질감 같은 걸 느끼는 나 자신을 발견하기도 한다.  영어사전에서 'black'이라는 단어를 찾아본 적이 있는 사람들은 안다. 그 말엔 '검다'는 의미를 제외하고, '음산한, 침울한, 화가 난, 험악한, 심사가 고약한, 사악한, 죄악으로 더럽혀진' 등의 뜻이 있음을 말이다. 반대로 'white'의 의미는 '희다'는 의미를 제외하고, '결백한, 순진한, 오점이 없는, 악의가 없는, 정직한, 공정한, 훌륭한' 등의 뜻이 된다는 것도 말이다.

 

예전에 우리가 스스로를 소중화(小中華)라고 여겼던 것처럼 지금 우리는 스스로를 동아시아의 백인으로 간주하고 있는 건 아닌지... 한 번쯤 생각해볼 시기가 되었다. 우리 안에 수많은 이방인들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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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바람구두 windshoes

그림책 쓰는 법 - 엘렌 E. M. 로버츠 (지은이) | 김정 (옮긴이) | 문학동네어린이(2002)


엘렌 E.M.로버츠의 "그림책 쓰는 법"을 읽고 떠오른 단상 몇 가지... 우선 이 책에 실린 엘렌 E.M로버츠의 프로필 사진은 너무 젊을 때 것이 아닌가 하는 거다. 이 책이 쓰인 것이 1981년이고 그 이전부터 20여년간 그림책 전문 편집자로 활동했다니 지금 연세가 어느 정도실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음, 이 말은 웃자고 한 이야기니 너무 나무라지 마시길...

 

이 책은 창작에 관한 책이다. 일종의 창작법 책인데 이 방면에 관한 한 나도 꽤 여러 종의 책을 읽었다. 스티븐 킹의 창작론 "유혹하는 글쓰기"부터 시작해서 오규원 선생의 "현대시작법", 전상국 선생의 "당신도 소설을 쓸 수 있다", 송하춘 선생의 "발견으로서의 소설기법", 이호철 선생의 "소설창작강의", 린다 시거의 "시나리오 거듭나기",  사이드 필드의 "시나리오란 무엇인가" 등등이다. 지금 기억이 나지 않아서 언급 못하는 것도 수 종 있으니 이만하면 대문호까지는 못되더라도 뭐 하나쯤은 건져볼 만하지 않겠나?

 

본래 무엇무엇에 대한 "작법"이란 시중의 처세술과 크게 다를 바 없는 성격을 지닌다. "카네기 처세술"부터 시작해서 "전두환 리더십 노태우 처세술"까지 세상의 온갖 처세술을 읽는다고 해서 세계 최고의 처세가가 될 수 있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처세술을 읽는 것과 처세하는 것은 다르기 때문인데, 처세술을 읽었다고 그대로 처세할 수 없는 것이 첫째요, 처세술 책이란 것이 대개는 바른 말만 하기 때문에 책장을 덮으면 고스란히 날아가버리는 게 둘째다. 이를 창작법 책에 대입해보면 100이면 8에 90은 흡사하다. 자, 과연 그런가?

 

읽다보면 뜻밖에 처세술이란 게 무척 재미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사람들이 혈액형별 성격 분류를 믿지 않는다고 하면서도 어딜가나 혈액형을 물어보곤 짐짓 무언가 알아챈 듯 고개를 끄덕이곤 하는 것처럼 처세술 도서를 읽고 그대로 따라는 못해도, 이런 자리에선 어떻게 처신할까 정도는 알게 해주기 때문이다. 처세술의 재미와 핵심은 누군가의 행동과 말에 대해 의도가 있음을 간파하고, 이를 분석하는 것이다. 처세술 책을 뭐 꼭 처세에 관심있는 이들만 있으란 법이 없듯이 창작법 책들도 창작하는 이들만 읽으란 법은 없다.

 

그 방면에 대해 좀더 잘 알고, 이해하면 읽기에도 무척 도움이 된다. 흔히 예술을 그 행위 주체로 구분할 때, 창작자와 감상자, 비평가의 구분으로 보는데, 비평가를 뭐 대단한 것으로 보지 않고, 그냥 프로야구 해설자 하일성 씨처럼 생각해보자. 하일성의 야구해설이 재미있는 건 누구나 아는 바다. 그런데 그 양반의 야구 해설이 재미있는 이유가 뭘까? 우선 그 양반의 구수한 입담, 맥을 짚어주는 선견지명일 것이다. 그 바탕엔 그가 창작자라고 할 수 있는 선수들의 심리 혹은 경기의 구조를 꿰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작법책을 독자가 읽어두면 재미있는 이유도 거기에 있다. 그림책 작가의 의중을 꿰고, 그림책의 구조를 이해하는데 보탬이 된다는 것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재미있고, 모범적인 책이다. 아동출판 시장은 점점 더 커지고 있지만, 상대적으로 이에 대한 비평은 시장 규모를 따라가지 못한다. 아동출판물 시장이 그토록 많은 종수를 차지하고 있는 배경엔 출산율이 저하되면서 하나둘밖에 없는 아이들에게 부모들이 좀더 많은 관심과 투자를 하기 때문이다. 비평은 드물고, 장사는 되니까 좀 심하게 말하면 시장이란 측면에선 눈먼 돈이 돌아다니까 출판물 가운데서도 그만큼 옥석이 뒤섞이게 마련이다. 과거의 가족단위에서라면 할머니나 할아버지들이 감당해주었어야 할 몫들 - 육아나 아이들에게 구수한 옛 이야기 - 이 초보 엄마, 아빠들에게 떨어진다. 게다가 7차 교육과정 개편 이후엔 아이들에게 떨어지는 숙제는 사실상 엄마들 숙제나 진배없다. 이제 교육의 최전선은 가정이고, 초보 엄마들이 최일선의 교사들이다.

 

그러다보니 엄마들이 책을 골라주고, 아이에게 읽어주고, 설명해주어야 한다. 어허, 그것 참 엄마들이 가정교사이고, 보육원 원장이고, 그림책 평론가에, 이야깃꾼이 되어야 하니 그 하중이 얼마나 크겠나. 그런 점에서 이 책은 좋은 길라잡이 역할을 해줄 수 있을 것이다. 서평을 너무 약장사처럼 쓰고 있나.

 

"에헴, 그렇다면... 뭐 본격적인 약장사 버전으루다가... 이야기해보면, 이 책으로 말씀드릴 것 같으면 다년간 그림책 분야에 종사해오신 엘렌 선생께서 심혈을 기울여 집필하신 책으로, 그림책이란 무엇인가? 어떻게 읽을 것인가? 를 창작자에 대한 가장 친숙한 조언자의 입장에서 다루고 있습니다. 또한 이 책의 특장점으로 말씀드릴 것 같으면 책에서 예제로 언급하고 있는 그림책들은 우리 시대의 필독 그림책이라고 할 수 있을 만큼 뛰어난 그림책들로써 그 자체로 하나의 그림책 리스트가 될 수 있으며, 아이들의 독서지도의 지침서로 이용해도 좋을 만큼 대중적인 눈높이에서 과히 높지도 낮지도 않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

 

이 책의 특이한 점 한 가지는 대개의 경우 창작론이란 것이 작가들에 의해 집필되는 것인 반면에 이 책의 경우엔 편집자의 시선으로 다뤄지고 있는 창작론, 다시 말해 창작실무집이라고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런 경우 서로 장단점이 있겠지만, 작가들의 창작론은 다소 뜬구름 잡는 이야기나 알게 모르게 자기 자신을 미화하고 포장하려는 경향을 보인다는 단점이 있다. 대신에 집필자로서의 좀더 구체적인 경험담, 독자로서 자신이 좋아하는 작가의 이야기를 직접 들을 수 있다는 장점은 있다. "그림책 쓰는 법"은 제임스 미치너의 "소설"과 함께 읽는다면 참 재미있는 경험일 수 있다. 이 책은 말 그대로 "소설"에 대한 소설인데 책의 구성 자체가 재미있다. "1부-작가, 2부-편집인, 3부-비평가, 4부-독자"로 책 한 권에 얽힌 입장에 따라 다른 각각 다른 주체들의 등장이다. 이 중에서 가장 흥미로운 대목은 우리나라와 확연히 다른 서구의 출판 문화를 엿볼 수 있다는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소설가로 입문하기 위해선 먼저 신춘문예나 각종 문예계간지, 대회에 입상해야 한다.  하지만 서구에서 소설가로 입문하기 위해선 출판사에 의해 책이 출간되어야 한다는 차이가 있다. 즉, 서구에선 먼저 편집자가 읽고, 출판할 만한가를 판별하고, 그런 뒤 작품에 대해 조언을 해주고, 새로 엮어가면서 완성된 소설로 출판한다. 우리나라 출판사의 편집자들은 문학작품에 대해선 거의 조언을 해주지 않으며, 작가나 시인들도 원치 않는다. 편집자들은 대개 띄어쓰기, 맞춤법 정도의 교정만 한 채 책으로 내보내므로 편집자들은 수동적이 될 수밖에 없다. 그런 까닭에 편집자들이 기획력을 발휘한다거나 적극적인 역할을 하게 되는 것은 주로 인문사회과학서들이 주종을 이룬다. 이런 경우에도 대개 한 명의 필자와 공동으로 작업을 하는 예는 드물고, 편집팀이 기획한 것을 여러 필자에게 나누어 청탁하고, 이를 한데 묶어 책으로 내는 것이 대부분이다.

 

"그림책 쓰는 법"은 서구의 사례를 든 것이니 당연히 국내의 경우와는 다소 차이가 있다. 이런 점들을 조금 유념하여 읽는다면 실제로 그림책 쓰는 작가가 되고 싶은 이들에게도 큰 무리 없는 작법이 될 수 있단 생각이 든다.  편집자와 창작자의 긴장이란 늘 기분 좋은 일은 아니더라도 반드시 필요한 것이지만, 이 책과 실제 우리나라의 그림책 창작자 사이의 가장 큰 간격은 외국의 작가는 7년에 한 작품만 해도 먹고 사는데 별지장이 없는 출판시장을 갖고 있지만(우리는 수입해서까지 보지 않는가?) 우리는 한 달에 한 두편씩은 해줘야 그나마 남들처럼 먹고 살 수 있다는 차이다(물론 돈욕심에 공장차린 이들도 있다는 소문도 들리긴 하지만). 해묵은 이야기이긴 하지만, 우리나라에서 유독 잘 먹히는 류의 광고 카피는 "내 아이는 남 다르다"는 것과 "내 아이는 내가 책임져야 한다"는 거다. 전자의 경우엔 동의하기 어렵겠지만, 후자는 어쩔 수 없이 동의하게 되는 측면이 있는데, 그림책은 범람하고, 그에 대한 안목이 필요한 시점이지만 비평은 태부족인 상황에서... 이 책은 최고의 선택은 아니어도 꽤 괜찮은 선택이라 사료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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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바람구두 windsho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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