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축구의 영웅들 : 축구 명예의 전당 헌액 7인 열전 - 대한축구협회 엮음 | 랜덤하우스코리아(2005)


오늘날 많은 이들이 축구를 염려한다. 근대성(modernity)을 성찰하는 이들은 축구가 근대의 산물이라며, 민족국가의 정체성을 강화하는데 이바지하는 것을 염려한다. 또 반자본주의 활동가들 중에는 연원이 제법 오래된 3S(Sex, Screen, Sports)정책이나 최근 신경제의 새로운 조직이론, ‘연방주의(federalism)'의 최첨단이자 모태로서 FIFA라는 - 스포츠정신이나 도덕과는 별로 상관없어 보이는 - 조직을 연구한다. 축구를 사랑하는 사람이나 그렇지 않은 사람이나 최근 대한민국 사회에서 축구는 주목할 만한 문화적 현상이다.


축구는
정말 근대의 산물이었을까? 이 문제에 답하는 것조차 쉽지 않은 일이다. 서구에서 축구는 중세 이래 여러 지역에서 카니발 같은 행사의 여흥을 돋우는, 혹은 제의적 행사로 치러졌다. 우리나라 역시 지금의 축구와는 다른 것이었겠지만 김부식의 『삼국사기』에 의하면 신라시대 삼국 통일의 주역이었던 김유신과 김춘추가 ‘축국(蹴鞠)’이란 놀이 형태의 공차기를 했다는 기록이 있다. 어쩌면 축구란 융의 원형상징처럼 세계의 모든 민족의 무의식 속에 잠재되어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대~한민국”
에서 근대축구의 시작은 인천(제물포)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이 정설이다. 1882년 6월 인천항에 정박한 영국 군함 플라잉 피쉬(Flying Fish)호의 승무원들이 제물포에서 축구하는 것을 아이들이 구경하면서 한국에 근대 축구가 전파되었다. 인천은 한국 축구 월드컵 첫16강의 산실이자 동시에 한국 축구의 발원지이기도 하다. 또 역사적으로 보자면 한국의 근대 축구는 아르헨티나보다는 늦었지만 브라질이나 러시아보다는 좀더 이른 시기에 축구를 접했다. 다소 우스운 말이지만 아르헨티나, 브라질, 러시아 보다 한국이 축구의 역사에 있어서는 선배 격인 셈이다.


대한축구협회
가 엮은 『한국축구의 영웅들』은 그런 한국 축구의 역사 속에서 빛나는 7명을 선정해 축구 명예의 전당에 헌액하고, 이를 기념하기 위해 펴낸 책이다. 지난 2002년 한․일월드컵의 성공적인 개최 이후 우리는 우리들 자신의 축구 역사를 되돌아 볼 자신감과 여유를 얻었다. 내가 기억하는 한 1982년 미스유니버스 선발대회, 1988년 올림픽 그리고 2002년 월드컵은 대한민국이 치른 국제행사들 가운데 가장 주목해서 살펴볼 만한 것들이다. 광주민중항쟁을 처참하게 진압한 군사정권이 그 피가 채 마르기도 전에 세계의 미인들을 데려다 치른 행사, 정권 차원에서 준비하고, 민주화항쟁의 뜨거운 열기가 가시기 전에 치러진 올림픽과 2002년 월드컵은 여러 차원에서 다른 행사였다.


국민이라 부르든
, 민중이라 부르든 혹은 대중이라 부르든 그 주체의 설정 문제와 상관없이 우리들이라 이름 붙일 수 있는 자들이 절박한 욕구나 시대적 요구에 의한 것이 아닌 다른 이유로 거리로 쏟아져 나와 그야말로 난장(亂場)을 치른 것은 고려시대 팔관회(八關會)에서 가무백희(歌舞百戱)를 즐긴 이래 최초의 일이 아닐까 싶다. 1902년 배재학당에 최초로 근대적 축구부를 만든 것을 기점으로 삼더라도, 지난 2002년 월드컵 4강은 한국 축구 100년사를 기념하는 의미 있는 축제이기도 했다.


『한국축구의 영웅들』
은 그런 의미에서도 한국 축구 100년사를 정리하는 의미 있는 작업으로 명예의 전당에 헌정된 한국 축구 영웅 7인의 이야기를 열전 형태로 기록하고 있다. 우선 가장 첫 번째로 손꼽히는 인물이 1936년 베를린올림픽 본선에서 일본대표팀의 유일한 한국 선수로 나섰던 故 김용식 옹이다. 그는 지난 2004년 5월에 FIFA로부터 FIFA 100년 기념 공로상(FIFA Centenial Order Of Merit)을 수상하기도 했다. 그는 자신의 종교는 축구라고 자부했다. 김용식은 젊었을 때 훌륭한 축구 선수가 되기 위해 첫째 술이나 담배에 일절 손대지 말고, 둘째 여자를 멀리하고, 셋째 마흔 살이 될 때까지 현역으로 뛸 것이며, 넷째 훌륭한 선수가 되기 위해 어떤 경우에도 교만하지 말고 겸손할 것을 스스로에게 서약했다. 물론 그는 이 모든 서약을 철저하게 지켰고, 마흔 세 살 까지 현역 선수 생활을 했다.


『한국축구의 영웅들』
은 인물을 중심으로 한 열전의 형태이지만 동시에 당시 시대상을 함께 엿볼 수 있게 꾸며져 있다. 예를 들어 김용식 편에서 우리는 당시 중등부 팀이었던 경신이 극동경기대회에 일본 대표로 참가하고 돌아가던 길에 조선에 들른 와세다 대학 축구팀에게 4:3으로 승리한 이야기를 접할 수 있다. 그리고 승승장구하던 김용식이 광주 학생운동에 연루되어 결국 퇴학당하고 말았던 사실도 알게 된다. 그런 그가 베를린 올림픽에 일본 국가대표팀의 유일한 조선인 선수로 참가해야만 했던 심정은 어땠을까.


한국 축구의 역사
속에 영광만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이 책에는 1948년 런던 올림픽에서 스웨덴전에 0:12로 패패, 1954년 스위스 월드컵 헝가리전에서 0:9로 패하면서 가슴에 피멍이 들도록 한국 축구의 유년기를 지켜낸 골키퍼 홍덕영의 이야기도 만날 수 있다. 또 조금만 더 좋은 시대에 태어났다면 세계적인 스트라이커로 명성을 떨칠 수 있었던 한국 축구 스트라이커 계보사의 원조라 할 수 있는 이회택과 경제개발 시대 국민적 기대와 열망을 안고, 해외로 송출된 차범근, 축구계 인사들을 제외하고는 비교적 덜 알려진 편이었던 국제심판 김화집 등의 이야기가 감동적으로 펼쳐진다.


한국 축구 명예의 전당에는
벽안의 외국인 거스 히딩크도 있다. 벽안의 이방인 히딩크가 한국 축구와 인연을 맺은 것은 불과 1년 6개월이었지만 그가 남긴 족적은 같은 네덜란드인이었던 하멜이나 박연이 남겼던 것과는 확연하게 다른 것이다. 그리고 다소 논란의 여지가 있을지도 모를 인물 정몽준 대한축구협회 회장의 이야기도 있다. 물론 공과를 따지기에 앞서 정몽준의 공적은 인정받을 만하지만 자신이 재임하는 중에 명예의 전당에 이름을 남기는 것은 그 선정과정이 아무리 엄정했다 하더라도 좋은 선례라고 보기엔 아쉬움이 남는다.


근대 축구의
종가라 할 수 있는 영국에서 축구는 근대산업문명을 거치면서도 여전히 과거의 민중(folk)적 놀이문화의 전통을 고수했다는 점에서 ‘여가의 상업화’, 자본주의적 레저 활동과는 일정하게 구분되는 면모를 지닌다. 아마도 그와 같은 노동자 문화의 전통이 오늘날 영국 사회의 뿌리 깊은 축구 사랑의 원천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가 현대라 부르는 시대, (근대)문화의 대부분은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일부 역사학자들의 주장을 100% 수용하지는 않더라도 일본에 의해, 혹은 일본과 겨루는 과정에서 - 물론, 그것이 시혜적인 것이 아니었다는 사실이 당연한 만큼 - 강력하게 축적된 것들임을 부인할 수 없다.


그 대표적인 증거가
또한 축구다. 많은 이들이 한국축구에서 국가주의의 증거를 발견하려고 한다. 그런 증거로 제시될 수 있는 것 가운데 하나가 국가대표축구의 인기와 비례하지 않는 프로축구다. 하지만 이런 현상을 전적으로 국가주의의 결과물로만 보기에는 다소 무리가 따른다. 왜냐하면 한국에서의 축구문화는 지역(성)이 과소하고, 중앙이 과대화된 현실의 반영체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중앙의 문화흡인력에 저항할 수 있는 지역(이웃)문화의 부재가 축구에서 나타나 자신의 귀속대상을 찾지 못한 현상으로도 볼 수 있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에게 이보다 더 중요한 사실 한 가지는 한 사회의 행복과 건강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그 사회의 통합을 가능하게 해주는 존재가 필요하며(체제나 시대가 바뀌어도) 그것이 축구일 수도 있다는 점이다. 동시에 축구에 열광하는 이들을 우민(愚民)시 해야 할 만큼 우리 사회의 대중이 덜 떨어진 존재가 아니라는데 희망을 걸어보면 안될까. 우리가 국민이라는 단일한 호명의 대상으로만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아마도 축구와 축구를 즐기는 민중들은 자본주의 시대보다 힘이 세고 더 오래 갈 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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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3인의 역사학자가 쓴 한국사 인물 열전 - 한영우선생정년기념논총 간행위원회 엮음 | 돌베개(2003)


63인의 역사학자가 쓴 한국사 인물 열전 1 .2. 3.

- 인간에 대한 탐구와 사례 연구로서의 열전(列傳)

윌슨은 인문학을 '인간에 대한 생물학' 이라는 식으로 정의한 바가 있다. 그런 점에서 열전(列傳)은 한 개별적인 생물에 대한 연구기가 될지도 모르겠다. 나의 독서가 잡독이라는 사실은 누구보다 나 자신이 가장 잘 안다. 하지만 나 자신이 그나마 비중있게 보는 것은 역시 인문학과 역사, 사회과학, 철학, 문학 분야에 집중되는데, 그 책들을 대상으로 정의해보자면 역시 그 핵심은 '인간을 다룬, 인간에 대한 책'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역시 잡독할 수밖에). 윌슨의 정의를 빌자면 내 주된 연구대상은 인간이란 것인데, 그렇다고 거창하게 인류학적인 견지에서 그렇다는 것이 아니라 개별적인 한 인간, 인간마다의 특성에 대해 관심을 갖는 편이다. 이런 방식의 독서에서 역사를 읽는다는 것은 한 인간이 살았던 시대와 그 시대 상황을 이해하고 그 한 인간이 그 시대를 살아가며 처신한 삶의 흔적들을 조용히 되밟아 가는 것이다. 어떤 의미에서 나는 인간의 뒤를 밟는 탐정이자, 동시에 우리들의 생태학을 연구하는 생물학자이고 싶은지도 모르겠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나에게 기본 탐독서가 된다.
 
우리에게 흔히 "열전(列傳) "이라 함은 기본적으로 중국 전한(前漢)시대의 역사가 사마천(司馬遷)이 저술한 사서 "사기(史記)" 중에서도 그 고갱이라 할 수 있는 중국고대사 인물 열전을 상상하게 된다. 그만큼 사마천의 사기 열전은 탁월하다. 그런데 정작 사마천의 "사기"를 읽어 본 이들 가운데 사마천의 사기에 감동받았다고 말하는 이들을 많이 보지는 못했다. 그 이유는 사마천의 "사기"가  기전체(紀傳體)로 쓰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기열전만 따로 떼어놓고 보면 많은 이들이 감동을 표하곤 한다. 사마천은 중국 전통의 사서인 "춘추"의 세계관을 계승하여 제왕의 연대기인 본기(本紀) 12편, 제후왕을 중심으로 한 세가(世家) 30편, 역대 제도 문물의 연혁에 관한 서(書) 8편, 연표인 표(表) 10편, 시대를 상징하는 뛰어난 개인의 활동을 다룬 전기 열전(列傳) 70편, 총 130편으로 구성되었다. 여기에서 우리가 주목해보아야 할 몇 가지 사실 중 하나는 사마천이 제후나 왕을 중심으로 기술한 세가(世家) 30편 중 상갓집 개로 불리었던 공자를 집어 넣고 있다는 사실이다. 잘 알려져 있다시피 공자는 변변한 벼슬 한 번 올라본 적 없는 인물이었다.

 

또한 사마천은 시대를 상징하는 인물 열전에 별도로 5명의 자객(조말, 전제, 예양, 섭정, 형가)을 다룬 "자객열전(刺客列傳)"을 통해 이들 협객에 대한 특별한 애정을 표하고 있으며 역시 정사(正史)에서는 흔히 다루지 않을 인물들을 "유협열전(游俠列傳)"을 통해 다루고 있다. 사마천에게 있어 '협(俠)'이란 '무(武)'를 바탕으로 하되 지배계급의 이데올로기 혹은 이해관계에 따르지 않은 의인(義人)을 말한다. 사마천의 "사기"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뛰어난 사서로 언급되는 까닭은 필경 거기에 있을 것이다.

 

한국적 열전의 탄생을 바라보며....

이 책 "63인의 역사학자가 쓴 한국사 인물 열전"은 오랫동안 서울대 사학과 교수로 봉직해온 한영우 선생(현 한림대 한림과학원 특임교수)의 정년을 기념하여 그의 동료, 제자 학자 63인이 고조선 시대 이래 우리 역사 속 인물 63인에 대해 저술한 책이다. 종종 정년 퇴임하는 교수의 제자들이 스승을 기념하기 위해 만든 책들은 보기 보다 실속없는 것들이 많은데, 이 책의 경우는 그런 사례들로부터 멀찌감치 떨어져 있다. 이 책의 머리글에는 "역사 연구는 기본적으로 인물에 관한 연구라 할 수 있다"며 인물사 연구의 중요성을 새삼 확인시키고 있다. 그러나 그간 우리 역사학계의 인물사 연구는 열전이라기 보다는 나열식 인물사전, 조선시대 인물들과 같이 사료를 구하기 쉬운 대상, 분단 문제로 인해 고대사 인물이라 할지라도 상대적으로 남한 출신 인물에 치중하는 경향이 있어 왔다.

 

나는 이 책에 등장하는 인물들 모두를 알고 있지 못했다. 걔중에는 이 책을 통해 처음 접하는 위인들도 있었고, 이름 정도는 알고 있었지만 그에 대한 글을 처음 읽는 경우도 있었다. 예를 들어 제1권에서는 위만, 대흠무, 김헌창, 송유인(드라마 "무인시대"를 본 사람들은 아마 기억하실 수 있을 듯), 정서, 최해, 조준, 이문건 등이 그렇고, 제2권에서는 유희춘, 한교, 강후진, 신경준, 서명웅, 체제공(이인화의 소설 "영원한 제국"에 등장), 홍양호, 서호수, 이서구, 유신환 등이 그렇다. 제3권에서는 김병욱, 박주종, 김백선, 한상룡, 김진구, 손진태, 이종률이 또한 그렇다. 이 중에는 우리 고조선 시대로부터 현대사에 이르는 장대한 인물 열전 계보에 그 이름을 상재시킬 만한 존재인가 의아해지는 인물들도 있다. 그렇다고 우리가 매번 어린 시절 읽었던 위인전기만 되풀이해서 읽을 수는 없는 일 아니겠는가? 그런 면에서 이 책의 인물 선정에 시비를 걸고 싶은 마음이 내게는 전혀 없다.

 

다만, 이 책을 사마천의 사기열전과 비교해볼 때 몇 가지 아쉬움은 남는다. 물론 고대의 제왕은 모두 정치가이자 동시에 정복자, 군인이었으므로 특별히 무인(武人)을 홀대했다고는 할 수 없으나 고려시대의 인물인 송유인과 김방경 정도를 제외하고는 우리 민족의 무장(武將)들이 거의 대부분 제외되었다는 것이다. 이중에서도 엄밀히 말해 송유인의 경우는 무장이라기 보다는 무인정권에 빌붙은 권세지향의 정치가라고 보아야 합당할 것이다. 단순히 구색맞추기 차원이 아니라도 한 시대를 대표할만한 인물들에 대한 고려가 좀더 있었다면 하는 아쉬움이 든다. 하지만 이것은 사마천이 고대 중국사로 한정되는 인물을 다루기 위해 "사기" 130편 중 70편을 인물열전에 할애했다는 것을 감안한다면 그보다 훨씬 긴 시간대의 역사를 다루면서 사기열전보다 적은 인물 열전을 다룰 수밖에 없었다는 한계의 문제라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이다. 더우기 앞서 말한 대로 그간 잘 알려져 있지 않았던 역사 인물들에 대한 도서로는 사실상 최초로 대중의 시야를 염두에 두고 쓰여졌다는 것을 감안한다면 이 책의 가치는 더욱 높아보인다.

 

그간 역사적으로 소외되었던 인물들을 소개하고 있다는 점 이외에도 이 책의 장점은 더 있다. 그것은 이 책의 저자들이 기초자료에 대한 철저한 고증을 바탕으로 하는 역사학자들이라는 신뢰성에 있다.  더 나아가 이 책이 대중의 눈높이를 고려하여 집필되었음에도 기존의 역사학계 일반의 시각과 다소 다른 관점들을 숨김없이 드러내고 있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신문 서평들에서도 언급하고 있듯, 토정 이지함의 저서로 인정되어 오던 "토정비결"의 저자가 이지함이 아닐 것이라는 견해를 밝히고 있다던지, 실학의 선구자로 의미를 재부여하는 것 등이 그것이다. 이런 시도들은 이 책이 한영우 선생의 정년을 기념하여 저술되었다는 점에서도 찾을 수 있다. 한영우 선생은 "다시 찾는 우리 역사(경세원)" 등을 통해 우리 고대사의 의미를 다시 확인하고자 노력해온 사학자이며, 그간 우리들 자신으로부터 외면당하거나 폄하의 대상이 되었던 인물들을 새롭게 해석하여 재부각시키기 위해 노력해 온 학자이기도 하다.

 

그런 까닭에 그간 고조선을 복속시킨 왕으로만 기억되던 위만을 '고조선을 고대의 정복국가로 중흥시킨 왕'으로 재조명하거나 그간 사대주의자로 인식되던 김부식을 합리성을 중시한 합리주의자로 격상시키고, 송시열에 대한 평가도 다시 내리고 있다고 생각된다. 어떤 맥락에서 보자면 싫으나 좋으나 우리 역사이고, 우리의 인물들을 구태여 우리들 자신이 폄하하고 훼손시킬 필요는 없지 않은가 하는 의미도 되겠지만 역사적으로 다양하게 해석 가능한 인물들에 대해 새로운 시각을 제공한다는 점에서 이런 평가는 도전적인 평가이자 동시에 매우 긍정적인 방식으로 생각할 수 있다. 특히 이 책이 지닌 미덕은 사마천의 "사기 열전"이 지닌 미덕과 비교적 일치한다. 그것은 역사 속에서 패배한 인물의 전기를 적극적으로 포함하고 있다는 것이다. 김옥균의 열렬한 숭배자였고, 훗날 친일파가 된 김진구, 한상륭 등에 대한 평가가 그것이다. 이외에도 역사적으로 민감할 수밖에 없는 인물들에 대해서도 비교적 객관적인 시선을 유지하며 다루고 있는데, 이승만, 윤보선, 박정희 등에 대한 글들이 그러하다.

 

이 책을 읽고 난 뒤 느낌 소감은 기획서들이 모두 그러하듯 다루고 있는 각 인물의 저자들에 따라 글쓰기 방식이 고르지 못하다는 것이다. 대중의 수준을 의식했다는 머리글이 있음에도 일부 글들은 전형적인 논문투 글쓰기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 아쉽다. 그러나 "경향신문" 조운찬 기자의 평가("사기" 열전에서 보이는 생생한 인물묘사를 찾아볼 수 있는 글은 63편 중 '강홍립'과 '우장춘')처럼 생생한 인물묘사가 돋보이는 몇 편의 글들은 읽는 내내 새로운 감동에 젖어들게 했다.

 

역사의 주체가 인간이란 점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지만, 역사를 바라보는 사관에 따라 역사 속 인물들은  민중 혹은 사림 등과 같은 집단으로 표현되기도 하고, 계급으로 구분되기도 하고, 개인 혹은 영웅으로 보여지기도 한다. 그 대상을 어떻게 보던지 우리는 역사가 곧 사람의 이야기임을 이 책을 통해 다시금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을 읽으며 가장 바라는 것은 역시 한 사람의 독자로서 앞으로도 이런 기획이 계속되었으면 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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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유사』 - 일연 지음, 김원중 옮김 / 을유문화사(2002)

벌핀치, 오비디우스의 『그리스로마신화』를 보노라면 천지창조, 신과 영웅이야기 그리고 트로이 전쟁의 세 가지 구분으로 나뉨을 알 수 있다. 얼마 전 인도의 『바가바드 기타』를 읽어볼 생각으로 세 권의 『바가바드 기타』 관련서적을 구입했다. 함석헌 선생이 옮긴 『바가바드 기타』(한길그레이트북스 18권)와 간디의 해설로 된 기타를 이현주가 옮기고 당대에서 펴낸 『평범한 사람들을 위해 간디가 해설한 바가바드 기타』 그리고 비노바 바베가 짓고, 김문호가 옮겨 실천문학사에서 펴낸 『천상의 노래』가 그것이다. 내 생각엔 이 정도면 ‘인도 정신의 꽃’이라는 『바가바드 기타』를 읽기 위한 준비 작업이 나름대로 종료되었다고 생각했다.


처음부터 좀 수월하게 읽을 생각으로 비노바 바베의 『천상의 노래』를 펼쳐들었는데, 웬걸 도저히 읽을 수가 없었다. 뭐든 순서가 있는 법인데 마음만 급해가지고 기지도 못하는 놈이 뛸 생각부터 한 거였다. 제대로 읽자면 함석헌 선생이 옮긴 『바가바드 기타』를 읽고, 그런 뒤에 간디와 비노바 바베를 비교해가며 읽는 것이 정석일 게다. 그런데 인도인이 아닌 내가 『바가바드 기타』를 더 잘 읽으려면 『우파니샤드』를 먼저 읽어야 한다는 걸 또 알게 되었다. 그런데 『우파니샤드』란 건 또 대관절 뭔가? 이건 바라문교의 성전 베다에 속하는 것으로 베다란 인도에서 가장 오래된 신화적 제식 문학의 집대성이라 할 수 있는 거다. 그러니 『우파니샤드』를 잘 읽으려면 또한 『리그 베다』도 읽어두는 편이 좋은 거다.


아마도 근대 초기에 처음 『그리스로마신화』를 접한 사람들의 심경이 지금의 나와 같지 않았을까 싶다. 흔히 서구 정신세계의 깊은 바탕에 자리하고 있는 정신 두 가지를 일컬어 그리스로마신화로부터 기원한 헬레니즘과 유대교 전통에서 출발한 헤브라이즘을 꼽는데, 지금이야 서구식 사고가 동양적 사고를 밀어내고 교육부터 시작해서 실생활의 전반부에 자리하고 있으니 이들 이야기를 받아들이는데 별 어려움이 없지만, 근대 초반기만 하더라도 그리스로마 신화와 기독교 정신은 도통 이해할 수 없는 이야기고 이해는 한다손 치더라도 그것이 머리로만 이해되는 것이지 속속들이 이해한다고는 할 수 없었을 것이다. 지금 내가 인도인이 아닌 한 베다와 우파니샤드, 바가바드 기타를 읽기조차 힘든 것과 마찬가지 일이다. 이를 역으로 보면 서구인들의 시각으로 『삼국유사』는 참 읽기 힘든 책이다.


어떤 이는 이런 나의 이야기를 듣고 『삼국유사』? 그렇게 간단하고 읽기 쉬운 책이 뭐가 어렵단 말인가 하며 반문할지도 모르겠다. 한 가지 예를 들어 보자. 우리들은 누구라도 사찰에 들어갈 때나 나올 때 특별히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 사찰에 놓인 불상이 대충 무슨 의미인지는 알고 있다. 제 아무리 기독교 모태신앙을 가지고 태어난 이라도 자기도 모르게 우리에게 전해 내려온 문화이므로 그런 것들이 익숙한 탓이고, 그것이 비록 기복신앙이란 비난은 듣더라도 한국 기독교 내부엔 이미 충분할 만큼 샤머니즘적인 기복신앙으로 가득하다. 과거에 한국인들이 마을 뒷산의 작은 암자나 바위에 치성을 드리기 위해 새벽녘 찬물로 목욕재계하고 치성 드리러 가는 것처럼 한국의 기독교 신자들은 100일 치성이 변화된 100일 새벽기도를 다닌다.


그 기도의 내용이 자신의 영혼을 구제해달라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안위, 가족의 평안과 세속적 출세를 은연중에 담고 있음을 부인할 수는 없다. 어떤 점에서 보자면 기독교가 한국인들의 정신세계를 지배하는 것이 아니라 한국인들의 뿌리 깊은 샤머니즘이 기독교 내부로 들어가 틀 잡고 있는 것으로 볼 수도 있다. 수천수만 년을 이어 내려온 그 깊은 정신세계가 단시일 내에 없어지지 않는다는 건, 외래 종교인 불교가 수천 년의 세월을 거쳐 토속신앙인 칠성당과 산신당을 사찰 구조 내부로 받아들인 것과 다르지 않다. 그런 요소들이 삼국유사로 표상되는 한 권의 책에 전부 담겨 있다고는 할 수 없으나 현존하며 대중적으로 널리 알려진 가장 기본적인 책이 이것이란 사실엔 변함이 없다.



일연 스님이 삼국유사를 저술한 것으로 유명한 군위군 고로면 인각사


김부식의 『삼국사기』와 더불어 현존하는 우리 민족의 가장 오래된 고대 서적으로 그 의미에 대해서는 일찍이 육당 최남선이 "삼국사기와 삼국유사 중에서 어느 하나를 택하여야 될 경우를 가정한다면, 나는 서슴지 않고 후자를 택할 것"이라고 이야기한 것을 굳이 들먹이지 않더라도 그 의미는 반감되지 않을 것이다. 『삼국유사』는 고려 충렬왕(忠烈王) 때 보각국사(普覺國師) 일연(一然:1206∼89)이 신라와 고구려, 백제에 대해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들을 두루 모아서 지은 책으로 오랜 기간 여러 전란을 겪으며 민족의 문화유산이 망실되는 가운데 다른 문헌들의 내용을 유추해 살펴볼 수 있는 근거로 남은 유일한 서책이기도 하다.


또한 김부식의 『삼국사기』가 여러 사관들에 의해 이루어진 정사(正史)에 해당한다면, 『삼국유사』는 일연 혼자의 손으로 쓰인 야사(野史)의 성격을 띄고 있다. 비록 책의 구성이나 문체적인 특성은 『삼국사기』에 비해 떨어질지 몰라도, 고조선과 단군 신화, 향찰로 표기된 신라 향가 등을 담고 있어 우리 고대 문학사는 물론 우리 민족의 개국과 관련한 민족적 연원을 따라가는데도 매우 중요한 근거를 제공한다.


을유문화사판 『삼국유사』는 일연의 『삼국유사』를 건양대 중문과 교수인 김원중이 우리가 요새 읽을 수 있는 말로 옮긴 것이다. ‘왕력(王曆)’ 연표를 부록으로 뒤로 빼고, 『삼국유사』의 전내용을 600여 쪽이 넘는 분량으로 축약 없이 담아내고 있다. 그 외 나머지 구성은 일연의 『삼국유사』와 동일하게 구성되어 있다. 이 책은 <기이 제1, 기이 제2, 흥법 제3, 탑상 제4, 의해 제5, 신주 제6, 감통 제7, 피은 제8, 효선 제9>의 구성으로 되어 있다. 기이 제1에서는 우리 민족의 개국신화인 '단군신화'가 수록되어있고, 우리 민족의 구성 및 삼국의 개국신화가 수록되어 있다. 또 얼마 전 일본의 아키히토 천황이 "천황가는 본시 백제계로서, 한반도를 통해 도래한 집안이다."란 말의 근거 신화가 되는 "연오랑과 세오녀"의 이야기도 삼국유사에 수록되어 있다.


<기이 제1과 2>에는 삼국 시대의 여러 일화들을 중심으로 담고 있는데, 이 내용들이 가히 우리 민족의 신화라고 할 만한 내용들이다. 에게게, 이게 무슨 신화냐고 반문할 사람도 있을지 몰라 한 마디 쐐기를 박아두자면, 그 사람들은 그리스 로마신화의 ‘트로이 전쟁’ 이후 편을 유심히 살피지 않은 사람들이다. 그네들이 신화라고 내세우는 것들도 사실 우리 것과 별반 다르지도 않다. 단적인 예로 트로이 전쟁엔 올림푸스의 신들도 두 패로 갈려 각기 다른 영웅들을 돌보아준다. 물론 운명이 다하면 신도 도울 수는 없었다. 그런 까닭에 헥토르는 아켈레우스에게 패하여 숨지고 만다. 이를 『삼국유사』에서 찾아보면
“각간 김서현의 아들인 김유신은 나이 18세에 국선이 되는데, 그의 낭도에 백석이란 자가 있었다. 백석은 김유신이 장차 백제를 멸하고, 고구려를 정벌할 자임을 알고, 김유신에게 고구려를 관찰하러 가보자고  꼬드겨 고구려로 데려간 뒤 그를 해할 심산이었다. 이때 김유신 앞에 세 명의 여인이 나타나 함께 이야기를 나누다 밤이 되었는데 백석을 따로 떼어놓고, 김유신만 숲으로 데려가 백석이 사실은 고구려의 밀정임을 알려준다. 잠시 후에 살펴보니 이 세 여인은 신라의 수호신들인 내림, 혈레, 골화였다.”고 서술된다.


이외에도 미추왕과 죽엽군, 만파식적, 처용 이야기 등을 어찌 그리스로마신화보다 떨어지는 이야기라  할 수 있을까. 이것은 마치 고흐의 그림은 높이 치면서도 김홍도의 그림은 그만 못하다고 생각하는 우둔한 후손들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삼국유사』는 구 신라 지역의 승려가 저술한 내용이다 보니 한반도 전체에 있어서 중요한 지역이었을 북반부에 대한 이야기들이 소략하게 정리되어 버렸다는 아쉬움이 남는다. 거기에 승려란 신분 탓인지 불교적인 이야기와 사상이 깊이 배어있는 측면도 있다. 게다가 간혹 잘못 전해진 이야기들을 그대로 모아서 수록한 것도 눈에 뜨인다. 그럼에도 『삼국유사』는 우리 민족의 서사시로 우리 민족의 문화와 사상, 생활 전반에 깊은 영향을 끼치고 있다. 『삼국유사』의 가치는 『삼국사기』가 유교적 합리주의로 재단하여 수록치 아니한 우리 고대 기록의 원형들을 담아 후세에 전해주었다는 의미에서 『삼국사기』 이상의 가치를 지닌 민족의 보물단지라 할 수 있다.


물론, 조만간에 인도의 『바가바드 기타』에도 도전해보겠지만, 그런저런 사전 지식을 충분히 갖추지 않더라도 있는 그대로 읽을 수 있는 우리 민족의 서사시 『삼국유사』가 곁에 있다는 사실은 또한 뿌듯하지 아니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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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바람구두 windsho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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