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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1.09.09 김사인 - 늦가을 (2)
  2. 2010.10.19 김사인 - 지상의 방 한칸

늦가을


- 김사인


그 여자 고달픈 사랑이 아파 나는 우네

불혹을 넘어
손마디는 굵어지고
근심에 지쳐 얼굴도 무너졌네


사랑은

늦가을 스산한 어스름으로
밤나무 밑에 숨어기다리는 것
술 취한 무리에 섞여 언제나
사내는 비틀비틀 지나가는 것
젖어드는 오한 다잡아 안고
그 걸음 저만치 좇아 주춤주춤
흰고무신을 옮겨보는 것


적막천지

한밤중에 깨어 앉아
그 여자 머리를 감네
올 사람도 갈 사람도 없는 흐른 불 아래
제 손만 가만가만 만져보네


*


요즘 시인들은 왜 달에 대한 멋진 시 하나 토해내지 않는 건지. 제가 가장 마지막에 주목했던 소설가는 "마루야마 겐지"였습니다. 이 말은 최근엔 소설을 읽지 않는 제 현실의 문제이죠. 어쨌거나 그의 소설 <봐라 달이 뒤를 쫓는다>는 참 특이한 소설이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소설을 읽고 난 뒤 낡은 오토바이를 사서 한계령도 넘고, 한반중에 동해안 모래 사장도 달려보고 싶었지만 울애인이 다른 건 다 되어도 그것만큼은 허용해줄 수 없고 해서 결국 포기했습니다.


김사인의 이 시를 읽고난 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시인이 한창 때 연애 좀 하지 않았을까. 저는 마지막 행에 가서 폭발하는 시를 좋아하는 편인데, 김사인의 <늦가을>은 특히 첫 구절이 매력적입니다. "그 여자 고달픈 사랑이 아파 나는 우네"라는 구절 말이죠. 시에서 노래하는 대상은 불혹을 넘긴 중년의 여성입니다. 우리 사회에서 여성은 남과 북을 모두 통틀어 고달프기 마련입니다(예전에 <북한의 여성은 어떻게 살고 있을까>란 책을 읽었는데 남한에 비해 반드시 평등하다고 말할 순 없겠단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여간 시인은 늦가을을 불혹을 맞은 여성에 비유한 건지, 불혹을 맞은 여성을 늦가을에 비유한 건지 몰라도 이 둘 사이에 공통점이 있긴 있어 보입니다. 늦가을. 9월에서 11월까지를 가을이라고 한다면, 늦가을은 11월에 해당하겠죠. 늦가을 스산한 어스름에 숲속에 가보셨나요. 11월의 가을 숲속은 추워요. 술먹고 그런데서 잠들었다간 입 돌아가기 딱이죠. 오한이 들죠. 바람도 차갑고... 그런 적막천지 한밤중에 머리를 감는 여자. 무엇을 기다리고 있을까요. 외롭다는 감정은 아마 그런 게 아닐까 싶어요. 어젯밤엔 갑자기 잠이 안 오더군요.


잠자리에 든 아내를 깨워 자유로라도 나가보자고 꼬셨습니다. 추석을 며칠 앞둔 자정 무렵... 문득 여전히 달이 내 뒤를 쫓는지 알고 싶었는지도 모릅니다. 그 사람은 그냥 자자고 쿨쿨... 잠이 오지 않아 부대끼는 밤에 문득 일산 가던 길에 내 뒤를 쫓던 커다란 달이 그리웠어요. 사랑은 어느덧 늦가을에 접어들어 오한이 들고, 주춤주춤 고무신을 옮겨보아도 오는 이도, 가는 이도 없지요. 잠도 오지 않는 밤에 찬물로 샤워를 하고, 머리를 감고 앉아 담배 한 대를 피워뭅니다. 이유야 어쨌거나 다음날 출근하지 않아도 되는, 내일모레 불혹을 바라보는 사내가 창 밖을 바라봅니다.


늦가을엔 정말 쓸쓸하겠구나. 그런 생각이 들더군요. 나이가 들 수록 나의 세상은 깊어지겠지만 그 세계에 깃드는 사람이 없으면 참말 쓸쓸할 거예요. 그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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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바람구두 windshoes
지상의 방 한칸

- 김사인

세상은 또 한 고비 넘고
잠이 오지 않는다.
꿈결에도 식은 땀이 등을 적신다
몸부림치다 와 닿는
둘째놈 애린 손끝이 천 근으로 아프다
세상 그만 내리고만 싶은 나를 애비라 믿어
이렇게 잠이 평화로운가
바로 뉘고 이불을 다독여 준다
이 나이토록 배운 것이라곤 원고지 메꿔 밥비는 재주 뿐
쫓기듯 붙잡는 원고지 칸이
마침내 못 건널 운명의 강처럼 넓기만 한데
달아오른 불덩어리
초라한 몸 가릴 방 한칸이
망망천지에 없단 말이냐
웅크리고 잠든 아내의 등에 얼굴을 대본다
밖에는 바람소리 사정 없고
며칠 후면 남이 누울 방바닥
잠이 오지 않는다.


*

지붕이 없는 곳에서 잠들어 본 적이 있는 사람이라면 이 시의 절절함이 누구보다 더 가슴가득히 들어차리란 생각이 듭니다. 며칠 후면 남이 누울 방바닥에 한쪽 머리를 대고 누었을 시인은 아버지로, 남편으로 아내의 등에 가만히 얼굴을 대봅니다. 잠이 올리 없겠죠.
겨울이 되면 늘상 들려오던 불우 이웃 돕기 이야기도 올해는 선거와 맞물리고 수재와 맞물리면서 목소리 한 번 높이기 어려운 시기가 될 것 같습니다.
불우하다는 말....어쩐지 동정같아서 싫지만
정말 도움이 필요한 순간엔 동정이라도 잔뜩 받고 싶어진답니다.
오늘 지상의 거처할 방 한 칸 마련하지 못한 이웃에게 잠시 마음 한 자락 덮혀줄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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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바람구두 windsho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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