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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0.11.18 야만의 시대 - 김성진/ 황소자리(2004)

야만의 시대 - 김성진/ 황소자리(2004)


세계의 분쟁지역에 대한 괜찮은 브리핑

"야만의 시대 - 영화로 읽는 세계 속 분쟁"에는 칭찬할 점과 비판할 점이 공존하고 있다. 우선 이 책의 제목 "야만의 시대"는 좀 손쉽게 붙은 제목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책의 내용이 분명 전쟁을 다루고 있기는 하지만, "야만의 시대"라는 거창한 제목에 부응할 만한 심도를 갖추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선 오히려 부제 '영화로 읽는 세계 속 분쟁'이 제목에 좀 더 어울린다. 그런데 재미있는 건 대개 "세계의 분쟁"이라고 하지 않나? 세계 속 분쟁이라고 하는 특별한 이유가 있을까? 그것이 이 책을 받아든 순간 들었던 첫번째 의문이다. 저자인 김성진, 동덕여대 교수인 그는 연합통신 외신부 기자를 거쳐 시사저널, 중앙일보의 외교전문기자를 했다고 하는데, 약력 소개와는 달리 글에서는 현장 체험이 별로 묻어나지 않았다. 자세한 내용이야 알 수 없지만 작년(2004년)에 읽었던 전선기자 정문태의 "전쟁취재 16년의 기록(한겨레신문사)"과 비교되는 부분이다.

 

먼저 이 책의 장점 몇 가지를 이야기해본다면, 동서냉전 해체 이후 벌어지고 있는 세계의 여러 분쟁들에 대한 비교적 최신 브리핑(briefing) 자료를 얻을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브리핑이란 건 간결하게 요약된 보고를 의미하는 것처럼 이 책은 기본적인 한계가 있다. 이 책에서 다루고 있는 분쟁들은 사실 어제오늘의 일은 아니지만 동서냉전 시기엔 이데올로기에 묻혀버렸던 민족분쟁들을 다룬다. 우선 최근 자이툰 부대가 주둔하게 되면서 우리들에게도 익숙해진 쿠르드족, 러시아의 골칫거리인 체첸, 중국의 두 얼굴을 보여주는 티베트, 유럽의 영원한 불씨인 발칸, 현재까지 계속되는 열전의 현장 이라크, 마약왕국의 대명사 콜롬비아, 동서교통의 중심지라는 지정학적 위치로 고통받는 아프가니스탄, 오랜 분쟁의 현장 북아일랜드, 그리고 전세계의 화약고 팔레스타인이다.

 

기획은 돋보이지만 어딘가 미진한...

이 지역들은 종종 외신을 타고 흘러나오는 뉴스들은 있으나 우리들 자신과 직접적 연관이 없다는 생각에서 혹은 외신 자체도 그다지 집중 보도를 하지 않는 탓에 쉽게 알기 어려운 지역들이다. 나 역시 이 책을 통해 새롭게 알게된 몇몇 사실들이 있다는 점에서 앞으로 많은 참고자료가 될 수 있으리란 생각이 들었다. "황소자리" 출판사는 "시간을 정복한 남자 류비셰프"와 같이 과거에 출판(아마도 정신세계사에서 나왔던가)되었던 책을 재출간하면서 최근에 등장한 출판사다. 그러고보니 류비셰프를 포함해, "위대한 남자도 자식 때문에 울었다" 그리고 이 책까지 이 출판사에서 나온 책을 3권 읽었다. 사실 모리시타 겐지의 "위대한 남자도 자식 때문에 울었다" 를 읽으며 들었던 아쉬움이 이 책에도 거의 고스란히 적용된다. 모리시타 겐지의 책도 적당히 재미있었고, 적당히 정보를 얻었다고 할 수 있지만 뭔가 아쉽고 심도가 얕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이 책 역시 그렇다.

 

즉, 이 분야에 대해 거의 처음 접하게 되는 일반인에겐 좋을 지 몰라도 그렇지 않은 이들, 이 분야에 관심이 좀 있는 이들이 읽기엔 좀 엷은 향과 맛이다. 그런 점은 신생 출판사로서 상업적인 고려를 해야한다는 점에서 이해할 수 있다. 왜 느닷없이 그런 출판사 이야기를 하는가 하면 이 책에서 가장 눈여겨보아야 할 대목 중 하나가 출판사의 기획력으로 보인다는 것이다. 저자의 프롤로그에 보면 2003년 열린사이버대학교에 개설했던 강좌를 들은 수강생 중 한 명이 출판기획자로 변신한 뒤 출판을 제의해서 책으로 엮게 되었다는 내용이 들어 있다. 즉, 이 책은 인문사회과학 분야의 교양서 중 하나로 기획된 것이다.

 

대개, 출판에서 편집자가 큰 역할을 하며 저자와 '함께' 책을 만든다는 보람을 느낄 수 있는 분야가 바로 이런 류의 책이다. 시집이나 소설의 경우엔 창작자의 몫이 편집자보다 상대적으로 크기 때문에 편집자가 관여할 몫이 그만큼 적은 편인데 비해 이런 류의 책은 편집자의 비중이 상대적으로 커진다. 독자의 입장에서 그런 편집자의 노력이 엿보이는 대목이 군데군데 보인다. 예를 들어 이 책의 여러 곳에 삽입되어 있는 각각의 개념 설명과 뒷부분에 부록으로 포함된 분쟁일지 같은 것들이 그렇다. 이런 부분들은 이 책의 장점이라 할 수 있다.

 

영화로 읽는 분쟁? 분쟁으로 읽는 영화?

하룻밤 침대에 누워 재미있게 읽으면서 나는 이 책의 몇몇 단점들이 걸렸다. 우선 국제정치를 전공한 이들 가운데 어떤 이들은 국제정세를 지나치게 파워게임의 측면에서 읽으려는 측면이 있는데, 이 책에서도 그런 부분들이 제법 도드라져 보인다. 거기에 기자 출신 필자들의 문장이 지니는 건조한 문체가 책의 재미를 좀 덜하게 만든다. 물론 문장 자체야 흠잡을 데 없지만 재미는 정확한 문장을 구사하는 것과는 별개의 것이다. 또 한 가지는 "영화로 읽는" 이라고 하는 이 책의 컨셉 부분인데, 분쟁이라는 국제정치, 역사적 맥락에서 읽어야 할 부분을 영화라는 소재를 채용해 드러내보인다는 컨셉 자체야 이를 데 없이 훌륭한 것이다. 하지만 이 영화 vs. 분쟁이라고 보았을 때 사실상 영화는 분쟁에 종속되어 있는 편이다. 물론 저자가 언급하고 있는 영화 가운데 상당수는 아직 보지 못한 것들이고, 대개의 독자들 또한 그러하리란 점을 고려해보면 이 양자 사이에서 주로 이야기될 수밖에 없는 것은 분쟁일 것이다. 다시 말해 영화적인 부분에 관심을 가지고 접근하는 이라면 그다지 재미없는 책일 수 있겠다.

 

예를 들어 이 책에서 발칸분쟁의 한 측면을 보여주는 영화 "세이비어" (국내에선 흥행에 성공하지 못했지만 영화 자체는 무척 잘 만들어졌다)는 영화의 내용만 따라가더라도 발칸분쟁의 한 단면을 드러내는데 어려움이 없다. 그런데 이 책에선 그 줄거리가 과감하게 생략되었기 때문에 혹시라도 비디오나 DVD로 이 영화를 따로 구해보는 노력을 하지 않는다면 분쟁은 이해해도 책 내용은 실감나지 않게 된다. 책의 완성도를 상대적으로 떨어뜨리게 하는 것이다. 다른 한 가지는 이 책이 세계의 분쟁을 많이 다루고 있기는 하지만 아프리카 지역과 동남아시아 지역은 전혀 다루지 않는다는 점 역시 지적해둘 만하다. 이런 부분에 대한 지적들이 이 책의 커다란 흠결이 된다고는 생각지 않는다. 책의 완성도란 점에서 다소 미진하게 여겨진다는 것을 지적한 것이다.

 

야만의 시대를 계획한 배후는 누구인가?

가장 마음에 걸리는 부분은 저자의 시각이다. 그것은 이 책의 제목이 "야만의 시대"라 하는 거창한 주제에 걸맞지 않는, 혹은 프롤로그 부분에서도 언급되고 있는 저자의 문제의식이 안이해보이거나 분쟁의 원인을 분석하는 부분에서 일면적이거나 미국의 책임을 분명히 언급해야 하는 부분이 누락되는 것으로 보인다는 것이다. "()괄호 안의 글은 내가 딴지를 거는 부분들이다."

 

미국의 이라크 점령(어째서 점령이란 단어를 썼을까? 침공과 점령은 미묘한 뉘앙스의 차이를 보인다. )은 미국에 비판적인 자세를 견지해온 시리아와 이란에게 언제라도 초라한 후세인의 몰골이 될 수 있음을 보여주는 강력한 암시임에 분명하다. 더욱이 세계 2위의 산유국인 이라크를 점령하는 것은 자원민족주의의 관점에서도 정말 뿌리치기 어려운 유혹이다. 장기적인 안목에서 아프가니스탄에 이어 이라크로 이어지는 새로운 친미벨트의 형성은 21세기의 새로운 강국 중국을 압박하는 효율적인 수단이 될 수 있다는 사실도 고려했음 직하다.


노골적인 이해관계에 매달리다보니 목적이 수단을 합리화해 나갔다. 미군에 잡힌 이라크 포로들은 이슬람교도로서는(그건 비단 이슬람교도만의 문제는 아니다. 이런 성적 학대는 종교와 관련없이 그 누구에게나 죽음보다 더한 것이다) 죽음보다 더한 성적 학대를 감내해야 했다. 세계의 경찰국가로, 매년 세계 각국의 인권 상황을 감시해 발표하는(책에서도 언급하고 있는 영화 "착한 쿠르드 나쁜 쿠르드"에서 알 수 있듯 미국의 인권은 그들이 친미적이냐, 반미적이냐, 미국의 이익에 보탬이 되는가로 구분될 뿐인 인권이다) 인권의 최후 보루로 자임해온 국가의 군대가 상부의 지시에 따라 조직적으로 자행한 포로 학대여서 그 충격은 더하다(솔직히 이 분야에 대한 전문가라는 사람이 충격이라고 말하는 것이 나로서는 도리어 충격이다. 역설적인 표현이 아니라면 미국은 늘 그래왔지 않나?). ...<중략>.... 이 시대 최고의 문명국가임을 자임해온 미국이 이럴진대 과연 인류의 역사가 정말 발전해온 것인지에 근본적인 의문을 가질 수밖에 없다. <본문 10-11쪽>

 

세계의 분쟁지역을 살펴보면 전부는 아니라고 할지라도 거의 대부분이라고 할 수 있는 곳들이 미국과 과거 유럽의 식민지배 혹은 그들의 식민지배 질서의 영향이 분쟁의 원인이 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예를 들어 발칸 지역의 분쟁의 한 원인은 물론 대세르비아주의임에 틀림없지만 그 안엔 가까운 제2차 세계대전 당시 크로아티아 지역에서 나치를 등에 업은 민족주의자들인 우스타시의 대세르비아 학살, 인종청소(이 책에 따르면 35만명을 학살)가 보다 자세하게 언급될 필요가 있다. 거기에 덧붙여져서 티토의 사망 이후 서유럽이 종교적, 인종적으로 자신들에게 가까운 몇몇 나라들의 독립을 부추겨 유고의 해체를 촉진한 사실도 언급되어야 하는데 이 책엔 그런 부분은 누락되었다.

 

판쉬르의 사자, 마수드의 암살 배후가 오사마 빈 라덴
- 그런데 왜 미국이 좋아하는 거지...



마찬가지로 판쉬르의 사자. 마수드의 암살과 그 배후에 대해 저자는 철저하게 미국의 관점에서만 접근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마수드를 직접 인터뷰한 바 있는 정문태는 "전쟁취재 16년의 기록"에서 마수드의 암살 배후에 미국이 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요지의 글을 쓴바 있는데, 이 책의 저자 김성진은 미국을 비롯한 서구 일부의 주장인 오사마 빈 라덴과 탈리반 암살설을 거의 정설로 취급한다. 살인 사건이 일어났을 때 불특정다수를 향한 목적없는 살해를 제외하고는 대개 사건의 배후를 지목할 때, 그가 죽음으로써 가장 이득을 얻는 집단, 개인이 누구인가를 추측하는 것에서 초등수사가 시작되기 마련이다. 물론 마수드를 암살하기 위한 시도는 구소련의 침공 당시부터 수도 없이 있었던 일이며, 마수드의 명성만큼이나 그의 죽음을 원하는 집단도 많았다. 그런 이유에서 마수드 자신도 암살의 위협으로부터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한 보안과 검색에 철저함을 기했다.

 

탈리반도 그들과 대립하는 북부동맹의 마수드가 눈엣가시였음을 부인하지는 않지만 구태여 그의 죽음을 자신들이 한 것이 아니라고 부인할 까닭도 없다. 그만큼 오랜 적이었으니까 부인할 까닭이 없다. 그런데도 그들은 마수드 암살에 책임이 없음을 밝혔다. 그렇다면 마수드의 죽음으로 가장 큰 이득을 보는 이들은 누구였을까? 정문태는 그로 인해 이득을 본 것은 미국이라는 것이다. 마수드의 암살은 탈리반이 축출된 후 가장 큰 정치지도자로 성장할 가능성이 있는, 가장 확실한 지도자의 제거를 의미한다. 이 땅의 해방 정국에서 김구, 여운형, 김규식 등이 비명에 간 것, 그들의 암살 배후에 누가 있는가를 생각해본다면 쉽게 추측가능한 일이다. 그런데 저자는 너무나 손쉽게 오사마 빈 라덴을 배후로 지목한다. 그것은 바미안 석굴의 파괴 과정에서 정문태가 지적하고 있는 부분, 탈리반 지도자인 물라 오마르는 오랫동안 출처를 알 수 없는 자금을 사용했다.

 

미국을 비롯한 서구의 언론들은 이 자금이 오사마 빈 라덴의 지원이라고 손쉽게 규정하지만 오랫동안 탈리반을 무자헤딘으로 칭송하며 이들에게 자금을 댄 것이 미국이라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는 사실이기도 하다. 바미안 석굴의 파괴과정 역시 정문태는 탈리반 지도자인 오마르는 오랫동안 바미안 석불을 볼모 삼아 미국과의 거래를 원했으나 결국 이 과정에서 미국의 아프가니스탄 침공에 대한 명분 쌓기를 위해 바미안 석불은 구원받지 못했다고 말한다. 이 책 "야만의 시대"는 분명 우리들에게 세계 전역의 무수한 분쟁들을 보여준다. 그러나 그 배후에 무엇이 있는가? 그 원인이 무엇인가에 대해선 명확한 진실을 보여주지 않거나 애써 외면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나는 이 책에 별 셋 이상을 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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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바람구두 windsho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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