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에 해당되는 글 2건

  1. 2010.12.30 앙리 미쇼 - 바다와 사막을 지나
  2. 2010.12.01 최승호 - 탈옥

바다와 사막을 지나(A travers Mers et Desert)

- 앙리 미쇼(Henri Michaux)


효력 있다 숫처녀와 씹하듯
효력 있다
효력 있다 사막에 물이 없듯
효력 있다 내 행동은
효력 있다

효력 있다 죽일 준비가 되어 있는 부하들에게 둘러싸여 따로 서 있는 배반자처럼
효력 있다 물건을 감추는 밤처럼
효력 있다 새끼를 낳는 염소처럼
조그맣고 조그맣고 벌써 비탄에 잠긴 새끼들

효력 있다 독사처럼
효력 있다 상처를 낸 단도처럼
그걸 보존하기 위한 녹과 오줌처럼
강하게 하기 위한 충격, 추락, 동요처럼
효력 있다 내 행동은

효력 있다 결코 마르지 않는 증오의 대양을 가슴에 심어주기 위한 모멸의 웃음처럼
효력 있다 몸을 말리고 넋을 굳히는 사막처럼
효력 있다 내팽개쳐 논 시체를 뜯어 먹는 하이에나의 턱처럼

효력 있다
효력 있다 내 행동은

<출처> 앙리 미쇼, 김현, 권오룡 옮김, 바다와 사막을 지나, 열음사(1985)

*


앙리 미쇼의 시집을 오랜만에 들춰보다가 '빙긋' 웃음 짓는다. "효력 있다 숫처녀와 씹하듯" '빙긋', 혹은 '벙긋' 그리고 '봉긋'... 뭔가 에로틱하다. 그러므로 "효력 있다"는 "효력 있다".


앙리 미쇼는 1899년에 태어난 시인이다. 세기말에 태어나 세기말에 죽었다. 오래 살았다. 그의 시어들은 반복된다. 반복하며 확장한다. 김현이든, 권오룡이든 왜 이 사람들은 굳이 "씹하듯"이라 했을까? 난 짖궂게도 혹은 10대 소년처럼 그 이유가 궁금하다.

김현은 "적대적인 세계와 자아 사이의 절망적인 싸움"을 벌인 시인으로 앙리 미쇼를 해석하고 있는데, 나는 앙리 미쇼보다 김현에게 더 많은 애정과 관심이 간다. 당신은 왜 구태여 "씹"이라는 표현을 썼을까? '바슐라르'를 연구하는 학자이자 점잖은 불문학 교수이자 수많은 시인을 발굴해낸 문학평론가인 그가 어째서?

난 그 이유는 오로지 한 가지라고 생각한다. 그건 그가 우리 문학사에 보기 드물게 '진짜'였기 때문이라고 그렇게 생각한다. 자기의 생각, 자기의 언어를 가진 사람만이 저렇게 당당하게 옮길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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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바람구두 windshoes
탈옥

- 최승호

내가 간수이고 내가 죄수인 세월 흐를수록
욕망은 굳어만 간다
모범수로 늙어가는 욕망
감시하는 간수와 刑을 함께 사니
이 몸뚱이가 바로 벽 두꺼운
형무소,
깨라, 내 안의 벽들이 무너지며
위험한 알몸의 욕망은 뛰어 나온다.

*

문학평론가 김현은 "프랑스비평사"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다.

  
나는 나에게 해야 할 다른 일들이 아직 많이 남아 있다라는 강박관념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그 강박관념의 대부분은, 내가 소박한 문학비평가로 남아 있고 싶다는 욕망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
이론 서적을 뒤지기 보다는, 아직도, 작품을 앞에 두고, 연금술사들의 고독한 몽상을 즐기고 싶은 것이다.
그것은 마음대로 오류를 범하고 싶다는 욕망에 다름 아니다.
그것과 다른 또 하나의 체험은, 크게 실패한 자만이 크게 성공한다라는 독서 체험이다.


시인 최승호는 삶을 감옥에 비유하고 있다. 당연한 말이지만 내 삶의 감시자는 나이고, 그런 내 삶에서 죄수 역을 하고 있는 자 역시 나이다. 모범수로 늙어가는 욕망이란 결국 발산되지 못하고 삶의 감옥 안에 갇혀 있는 나를 의미한다.

난 막 살아버리고 싶다는 욕망을 감추고 있다. 종종 일본만화에 등장하는 괴물들은 몸을 튼튼한 갑옷으로 감싸고 있다. 주인공은 괴물의 몸을 공격해 괴물이 입고 있는 갑옷을 파괴하고 뜯어낸다. 대개 그 순간 드러난 괴물의 정체는 둘 중 하나다. 괴물이 터무니없을 정도로 유약한 아기의 얼굴을 하고 있거나, 그 갑옷은 일종의 결계로서 괴물이 완전한 마수로 변하는 것을 막기 위한 억압장치였기에  이젠 이성을 완전히 상실한 괴물로 변모해 버린다.

나는 그걸 '성격갑옷(mental armor)'의 만화적 변용이라고 생각한다. 최승호는 몸뚱이가 "바로 벽 두꺼운/ 형무소"라고 말한다. 순간 몸은 형무소이자, 욕망을 감금하는 갑옷이 된다. 욕망을 감금하는 의식(성격갑옷)은 나를 보호하는 갑옷이자, 나라는 위험한 짐승으로부터 타인을 보호하는 결계이기도 하다.그럼에도 최승호는 그 벽을 깨라고 말한다. 위험한 알몸의 욕망들....

종종 인생에서 우리가 획득할 수 있는 가장 가치 있는 것들은 위험하다. 위험하지 않다면 도전할 가치도 없다. 어제는 오늘의 덫이다. "크게 실패한 자만이 크게 성공한다"는 김현의 독서체험이 가치를 얻는 것도 거기에 있을 것이다. 자신을 던지지 못하는 자는 평생 안고 갈 수밖에 없다. 내가 이렇게 글을 쓴게 92년 12월 12일의 일이다. 말만, 글만 이렇게 적어놓고 나역시 실천하지 못했다. 실천이란, 게다가 나를 던져야만 얻을 수 있는 실천이란 얼마나 어려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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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바람구두 windsho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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