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읽은 책과 그림 - 마르셀 라이히-라니츠키 | 김지선 옮김 | 씨앗을뿌리는사람(2004)




"마르셀 라이히-라니츠키""내가 읽은 책과 그림"은 한 편으론 유쾌하면서 다른 한 편으론 읽는데 힘겨운 책이었다. 이 책에서 다루고 있는 인물의 거의 절반은 이름도 처음 듣는 작가들이었고, 이름을 아는 작가들도 절반 가량은 이름만 알고, 책은 본 적이 없는 인물이고, 다시 그 절반 정도의 사람들만 책을 읽었고, 작품 이름이라도 들었던 이들이기 때문이다. 사실 "마르셀 라이히-라니츠키"를 내가 처음 알게 된 것은 중학생 때부터 좋아했던 작가 "귄터 그라스"의 당시 신작 "광야(원제 : Ein Weites Feld)"를 놓고 그가 벌인 해프닝 때문이었다. 그 무렵만 하더라도 그냥 성격 더러운 괴짜 평론가 한 사람이 있나 보다 하는 정도로 알고 있었는데, 귄터 그라스의 유명세 못지 않게 그 자신의 유명세가 더해져 독일 문화계를 떠들석하게 만들었던 사건이었다.


사실 라이히-라니츠키가 "슈피겔"지 표지에 등장한 것은 1995년 귄터 그라스의 신작을 찢는 사진말고도 또 있었다. 그는 1993년에도 표지에 등장했었는데, 이때 그는 개로 등장했었다. 1993년과 1995년에 등장한 그의 사진에 공통점이 있었다면 이 두 사진 모두 책을 찢고 있는 인물로 나왔다는 것이다. 1993년 그가 책을 찢는 장면으로 등장했던 것은 독일 문학에 대한 것이었지만, 1995년에 등장했던 것은 귄터 그라스의 신작이란 구체적인 작가와 작품을 지목한 것이었다. 비록 노벨문학상을 받기 전이지만 전후 독일 최고의 작가로 손꼽히고 있던 귄터 그라스의 작품을 신랄하게 비판하고, 분을 참지 못해 찢어 버리는 문학비평가의 모습을 우리는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가.


그는 귄터 그라스가 단치히 4부작 이후 발전과 변화가 없는 점을 참을 수 없으며, 그라스의 명작 "양철북"을 가당치도 않은 이야기라고 주장했다. 귄터 그라스가 1999년 노벨문학상 수상자(독일 작가로는 1972년 하인리히 뵐, 1981년 엘리아스 카네티 이후 18년만의 일)로 발표되었을 때, 그의 수상에 대한 코멘트를 부탁한 기자들에게 그는 "Ich bedaure nichts"라고 말했다고 한다. 우리 말로 "전 유감 없습니다."란 뜻이라는데, 독일 대통령, 수상, 마르틴 발저 같은 이들이 그의 수상 줄소식에 기뻐한 것과 비교하면 영 떨떠름한 반응이었다. 그는 다음과 같이 부연했다. "생각해 보세요. 마틴 발저가 그 상을 받는다면, 저에겐 그건 날벼락일 것입니다. 아니면 그 멍청한 페터 한트케요! 재앙이지요. 스톡홀름에겐 귄터 그라스 말고는 없었어요." 하지만 그는 귄터 그라스의 노벨상 수상을 끝끝내 축하하지 않았다.


우리 입장에서 보자면 라이히-라니츠키는 매우 편협한 인물로 비춰질 수도 있을 텐데, "문학권력"이니 "주례사 비평"이니 특정한 집단끼리 나눠먹기식의 문학상 제도니 해서 구설이 끊이지 않은 우리 풍토를 생각해보면 작가와 비평가의 사이가 이렇게 안 좋아도 노벨상도 때 되면 받아가고, 작가는 작가대로, 비평가는 비평가대로 자기 고집을 세우며 작품활동과 비평활동을 하는 모습이 꼭 나쁜 것만은 아니란 생각이 든다. 그는 귄터 그라스가 사회주의 리얼리즘의 전형을 새롭게 세워나가고 있는 모습이 고루해보인다는 비판을 아끼지 않고, 귄터 그라스는 귄터 그라스대로 자기 갈 길을 꿋꿋이 간다.


문학적인 입장에서 보자면 라이히-라니츠키(Marcel Recih-Ranicki)는 매우 보수적인 인물이다. 그는 1920년 폴란드 에서 태어난 유대인이었지만 당시 독일계 학교를 다녔다. 그는 나치시대의 베를린에서 청소년기를 보냈고, 아비투어를 치르지만 1938년 가을 폴란드 국적을 지녔다는 이유로 추방된다. 바르샤바에 거주하게 된 그는 1940년부터 바르샤바의 유대인 위원회에서 통역일을 하다 탈출한다. 이때 그의 부모와 형제들은 살해당한다. 그는 폴란드 공산당에 입당해 전후 폴란드의 외교관으로 근무(런던 주재 폴란드 대사관의 영사와 총영사를 지냄)했다.1949년 정치적인 이유로 외교관직을 박탈당한 뒤 1958년 독일로 이주한다.


'문학의 교황(Literaturpapst)' 이란 평가를 받는 그는 평론가란 정확히 어느 한 입장에 서야 한다고 말한다. "누구나 그 책에 찬성하든지 반대하든지 둘 중의 하나일 수밖에 없다"고 말하면서, 모든 작가는 결국 돼지이고, "작가는 재능이 있는 돼지 아니면 재능이 없는 돼지"란다. 이 책 "내가 읽은 책과 그림"에서도 그는 좋아하는 작가와 그렇지 않은 작가에 대한 평가가 극명하게 갈린다. 그는 모제스 멘젤스존, 루드비히 뵈르네, 하이네, 토마스 만 등에 대해서는 열렬한 애정을 귄터 그라스와 베르톨트 브레히트에 대해서는 석연찮은 표정을 짓는다. 라이히-라니츠키가 '문학의 교황'이란 칭호를 얻게 된 데에는 "프랑크푸르트 알게마이네 자이퉁(FAZ)"과의 인연이 컸다. 그는 1973년 12월 FAZ의 편집진으로 복귀하면서 이 신문의 문예비평란을 유럽의 독일어권 신문 중 가장 권위있는 것으로 만들었다. 그를 대중적인 스타로 만든 것은 독일 제2방송(ZDF)의 "문학 사중주(Das Literarische Quartett)"란 프로그램 덕이었다.


우리나라로 치자면 "TV, 책을 말하다" 정도라고 해야하겠지만, 그보다는 훨씬 더 지루하고, 재미없게 구성되어 있다고 한다. 그것도 모두 악동같은 라이히-라니츠키가 내세운 조건들 때문이었다. 그는 TV란 미디어가 지닌 가장 큰 장점일 수 있는 "보여준다는 원칙"(무엇이 되었든, 보여줄 수 없는 것은 가상의 컴퓨터 그래픽을 통해서라도 보여준다)을 허물고, 그와 초대 손님의 진지한 대화만으로 구성하는 프로그램이었다. 당시 대표적인 초대 손님은 "아도르노, 슈피겔 발행인인 루돌프 아우구스타인, 에른스트 블로흐, 하인리히 뵐, 막스 프리쉬, 귄터 그라스, 발터 옌스, 지그프리드 렌츠, 마틴 발저" 등이었다. 이 프로그램은 라이히-라니츠키를 포함한 3인의 패널과 한 명의 초대 손님으로 구성되는데, 초대 손님은 이들과 토론을 나눈다. 그것도 아주 격렬하게...(방송사는 주제 및 초대 손님을 누구로 할 것인가에 대해 관여할 수 없다. 1년에 6회 방영됨.)


어쩌다보니 "내가 읽은 책과 그림"에 대한 서평이 아니라 "마르셀 라이히-라니츠키"에 대한 소개글이 되어버린 듯 하다. 그러나 이 책의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 철저히 "라이히-라니츠키"의 책읽기와 그가 정성들여 수집한 작가들의 초상화로 구성된 책이다. 책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말하는 것보다 우리에겐 잘 알려져 있지 않지만 독일과 유럽에서는 문학의 교황으로 군림하는 비평가에 대해 좀더 잘 알게 되는 것이 이 책을 보다 더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방법이란 생각이 들었다. 이 책은 필자인 라이히-라니츠키의 친절보다는 이 책을 번역한 "김지선" 선생과 이 책의 출판사인 "씨앗을 뿌리는 사람"의 편집자들의 친절이 돋보인다. 독일어와 독문학이 우리나라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날로 격감해 가는 시점에서 이 분들의 공로가 더욱 두드러져 보인다. 잘 만든 책에는 후한 점수를 주어야 하겠지만, 이 책이 모두에게 쉽게 읽을 수 있다며 추천하기는 약간 곤란하다. 그러나 그런 문제는 어디까지나 저자와 우리 독자들이 건너야 할 외나무 다리인 것이고, 최소한 이 책에 있어서만큼 그것은 번역작가와 편집자의 책임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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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바람구두 windshoes

수호 유령이 내게로 왔어 - 크리스티네 뇌스틀링거 | 김경연 옮김 | 풀빛(2005)


우리 집에 굴러다니는 책 중에 헌책방에서 구한 크리스티네 뇌스틀링거의 책 "그해 봄은 빨리 왔다"란 책이 있다. 원제는 "날아라 풍뎅이" 1988년에 출간된 동서문화사의 "에이스88" 아동문학전집 중 44번째 책이다. 그리고 엊그제 집에 굴러다니는 뇌스틀링거의 책 한 권을 새로 읽었다. "수호유령이 내게로 왔어"(원제는 "Rosa Riedl Schutzgespenst"로 "수호유령 로자 리들" 정도가 되겠다) 였다. "이거 무슨 책이야?" 하고 책을 집어드니 집사람이 "누가 좋아하는 누구 책이야"하며 놀린다. 흐흐... 웃어주고 낼름 책을 들고 나와 버렸다.

 

책을 읽는 동안 너댓 번 정도는 소리내서 웃고, 대여섯 번 정도는 미소 지었다. 나중에 아내의 설명으로 알게 된 사실이긴 하지만 뇌스틀링거는 굉장히 유명한, 거장 대접을 받는 동화 작가였다. 크리스티네 뇌스틀링거는 1936년 10월 오스트리아 수도 빈에서 출생했다. 1936년 오스트리아에서 태어났다는 것을 우리 사회에 고스란히 대입시키기는 곤란하겠지만, 우리 식으로 바꿔보면 1945년 서울에서 태어난 세대의 경험과 흡사한 삶의 체험을 했다고 할 수 있겠다. 독일이 제2차 세계대전에서 패망한 1945년 뇌스트링거의 나이는 대략 10세 가량이었을 것이다.

 

크리스티네 뇌스틀링거는 1970년부터 글을 쓰기 시작해서 200여 종의 책을 써냈고, 1984년엔 아동문학 분야의 노벨문학상이라 한다는 "한스 크리스티안 안데르센 상"을 수상하는 등 활발한 작품 활동과 명성을 쌓았다. 국내에도 20종 가량의 작품이 번역되어 있다고 하는데, 나는 그 중에 단지 두 권을 읽었을 뿐이다. 시계공 아버지와 빈의 변두리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크리스티네 뇌스틀링거가 국내 모언론과 가진 인터뷰를 살펴보니 "어린 시절의 추억은 대부분 잘못된 것들이다. 나는 과거의 기억을 소재 삼아 글 쓰는 걸 좋아하지 않는다. 유년기 영향이라면 나치와 2차 세계 대전을 겪었다는 사실뿐이고, 그것으로써 세상 보는 눈을 갖게 됐다."라고 말한다.

 

작가들이 자신의 작품과 실제 체험을 결부시키려는 외부의 시선에 대해 저항하는 몸짓을 보이는 것이야 어제오늘의 일은 아니지만, 뇌스틀링거의 경우엔 나치와 제2차 세계대전이란 유년기의 역사적 체험이 작가의 시선을 규정하는 중요한 근거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전쟁을 경험한 모든 독일인들이 사회주의자가 되거나 좌파가 된 것이 아니듯 뇌스틀링거를 좌파적 이념을 지닌 작가로 몰고가려는 시도는 위험한 규정으로 보인다. 왜냐하면 뇌스틀링거는 "자유와 연대(혹은 평등)"라는 서로 상충될 수도 있는 두 가치 가운데 어느 하나도 포기하려 들지 않기 때문이다. 앞서의 인터뷰에서 젊은 부모들에 대한 조언을 부탁받고 그녀는 "나는 기본적으로 교육이란 이름으로 행해지는 모든 것에 반대한다. 어른들의 꾸중과 칭찬을 통해 아이들은 깨닫지 않는다. 경험과 고통을 통해 스스로 배우고 자란다."고 말한다.

 

"수호유령이 내게로 왔어"는 지난 1998년 출간되어 독일과 오스트리아에서 청소년문학상을 수상한, 뇌스틀링거의 최근작이다. 원제에서 알 수 있듯 이 작품의 주인공은 "로자 리들", 검은 머리에 흰 머리카락이 몇 개 섞여있고, 코에는 둥근 니켈 안경이 얹혀져 있고, 뺨이 늘어진, 이제는 날지도 못하는 뚱뚱보 아줌마 유령이다. 그녀가 유령이 된 것은 1938년 나치에 의해 부당한 처벌을 당하는 유대인을 도와주러 달려가다가 전차에 치인 사건 때문이다. 이 책의 독자층이 주로 초등 5-6학년생이라는 것을 염두에 두었을 때, 1938년 무렵 나치가 지배하는 독일과 오스트리아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약간의 보충 설명이 필요하다. 이 해에는 나치 독일이 오스트리아를 병합하고, 나치에 의한 유대인 대탄압, 이른바 "제국 수정의 밤(크리스탈 나흐트, 11. 9)" 사건이 벌어진 해이다. 이 이전에도 나치에 의한 유대인 탄압은 있어 왔지만, 본격적이고 대규모 탄압은 이 해를 기점으로 종전되던 1945년까지 계속되었다.

 

그것 한 가지만으로도 아줌마 유령 "로자 리들"이 무엇을 말하고 싶은지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하지만 그렇게 단정지어 버리는 건 이 작품의 재미를 반감하는 선입견이기도 하다. 작가도 그런 선입견을 염려한 탓인지 이야기를 시작하는 첫 머리에 '이 이야기를 1944년부터 시작하지 않는 편이 좋은 까닭' 이란 소제목의 글을 배치해두고 있다. 작가는 이야기를 가까운 과거인 1978년부터 시작한다. 1938년 전차에 치어 죽은 로자 리들은 1978년 열한살짜리 어린 소녀 나스티에게 나타나 말을 건다. 나스티는 공부는 잘하지만  겁도 많고, 외동 아이로 자라 소심한 데다가 아주 이기적이라고는 할 순 없지만 개인주의적이긴 한 소녀다. 한 마디로 말해 친구들보다 몇몇 과목에서 좀더 성적이 좋다뿐, 우리 주변에서 쉽게 볼 수 있는 평범한 소녀란 말이다. 다만 한 가지 나스티가 티나에겐 있는데 자신에겐 없는 존재를 부러워한단 사실 한 가지만 빼놓고...

 

티나에겐 있지만 나스티에겐 없는 존재는 무엇일까? 그건 어느날 체육 시간 티나의 목에 걸려 있는 작은 펜던트였다. "작은 금빛 원판인데 한쪽 면은 에나멜"로 된 펜던트에는 볼이 포동포동하고, 날개가 달린 어린 아이의 얼굴이 새겨져 있었다. 티나는 자랑스럽게 자신의 "수호천사"라고 말한다. 나스티는 짐짓 관심없는 척하지만, 마음속으로는 자신에게도 수호천사가 있었으면 하는 바람을 품는다. 그런 나스티에게 어느날 갑자기 유령 로자 리들이 나타난다. 볼이 포동포동한 천사는 커녕 뺨이 축 늘어진 데다 날개도 없고, 게다가 날지도 못하는 유령의 출현은, 마치 나비를 꿈꾼 소녀에게 갑자기 나방이 날아든 격이었다. 하지만 로자 리들의 인간적인 매력은 나스티를 사로잡았다. 나스티에겐 수호유령이 생겼고, 로자 리들에겐 좋은 말벗이 생겼다. 두 사람, 아니 한 명의 유령과 한 명의 소녀는 서로에게 의지하며 과거와 현재에 대한 많은 이야기를 나눈다.

 

유령 친구가 생긴 나스티에게 많은 변화가 생긴다. 그 변화는 "다른 아이들과 잘 놀지도 않을 뿐더러 친했던 여자 친구와 사이가 나빠지고, 파티에 가지 않고, 대신 홀로 외로이 오후를 다락방에서 선인장과함께 웅크리고 앉아 있는 것"이다. 물론 나스티가 혼자인 건 아니었다. 로자 리들과 함께 하지만 엄마 안네마리의 눈엔 유령이 보이지 않을 뿐이다. 엄마는 나스티를 다그치지만 나스티는 엄마에게 거짓말을 하는 것도 싫고, 엄마에게 진실을 말했을 때 생길 충격이 두려워 입을 다문다. 엄마는 우연히 나스티와 유령의 존재를 알게 된다. 이때부터 나스티와 로자의 관계에는 변화가 생기기 시작한다. 나스티의 엄마, 아빠를 포함한 나스티 가족과 로자, 그리고 관계가 점차점차 확대되어 가는 내용을 다룬다.

 

아빠인 좀머 씨가 유령 로자와 관계 맺는 과정을 살펴보자. 로자 리들의 존재를 알게 된 아빠는 깜짝놀라 말한다.

 

"다만, 제 세계관이 완전히 뒤집어졌다는 걸 아시는지!"
로자 리들이 외쳤다.
"난 누구의 세계관도 뒤집은 일은 없어! 그렇고 말고! 유령이 있는 걸 알아도 부자들은 여전히 부유하고, 가난한 사람들은 여전히 가난하지! 그래, 자네가 나를 알게 되었다고 해서 비열한 것, 선한 것에 대한 생각이 달라지기라도 했나? 아니면 자네가 가능하다고 여기지 않았던 것이 가능해졌다고, 다음 번 선거 때 다른 정당을 뽑을 건가? 말도 안 되는 소리야! 자네는 분명 올바른 선택을 할 걸세!"
<본문 145쪽>

 

다행히도 아빠 좀머 씨는 로자 리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게 되었고, 엄마 안네마리 역시 나스티와 로자를 이해하며 한 가족으로 맞아들인다. 이렇듯 로자 리들은 처음엔 나스티만의 수호유령이었으나 점차 나스티 가족의 친구로 옮겨간다.

 

어느 날 학교에서 나스티는 영어 선생님이 예고도 없이 한 친구에게 시험을 치르도록 하는 것에 대해 항의하는 사건이 벌어진다(우리하고는 교육환경이 많이 다르기 때문에 이것이 얼마나 부당한 일인지 나로서는 잘 체감할 수 없지만). 나스티로서는 영어에 자신없어 하는 게롤트에게 미리 준비도 없이 시험을 치르도록 하는 일이 부당하게 여겨졌기 때문이다. 영어 선생에게 항의하다 교실 밖으로 뛰쳐나온 나스티는 역사 선생을 만나 아이들이 동조해주지 않은 억울함을 호소한다.

 

"사람은 자기 권리를 위해 투쟁해야 해요!"
나스티가 훌쩍이며 말했다. 역사 선생이 말했다.
"얘야, 내가 보니 너는 투쟁하는 게 아니라, 울고 있다!"
 .....< 중략 >.....
"반 아이들 모두에게 반장을 잘못 뽑았다고 납득시키기까지는 너무 오래 걸리는 걸요! 걔들은 영어 선생님이 얼마나 비열한지도 모르고 있어요!"
"투쟁이란 대부분 지루하고 힘든 일이란다, 얘야!"
역사 선생이 말했다.
"그렇지만 반 아이들 대부분은 다른 아이가 어떻든 전혀 관심이 없어요. 자기 자신만 생각한다고요!"
<본문 165쪽>

 

영어 선생은 평소 공부를 잘하는 나스티를 귀여워했는데, 나스티가 영어 선생에게 대든 것은 분명 자기만 생각한 행동은 아니었다. 역사 선생의 말대로 반장을 교체하려는 나스티의 시도는 나스티네 반 아이들을 반장 토미 패거리와 나스티 패거리로 양분시켜 버렸고, 싸움까지 벌어졌다. 나스티는 억울함을 풀지 못하고, 수호유령 로자 리들에게 달려가 말한다. 로자는 뭔가를 이루려면 단결해야 한다며 나스티를 설득하지만, 나스티는 토미 패거리를 멍청하고, 비열한 바보 천치들이라고 비난한다.

 

"나스티, 설마 너도 반 아이들 절반 이상이 멍청하고 바보 천치고 비열하다고 믿지는 않겠지! 너와 몇몇 아이들만 얌전하고 친절할까! 네가 티나랑 하는 말을 들었다. 토미는 돼지야! 가브리엘레는 사팔뜨기야! 후버트는 아버지가 부자니까 밥맛이야! 요하나는 정신병자야! 잉게는 다리가 X자야! 너희들 둘은 그렇게 이야기하지! 그런 게 대체 예고 시험하고 무슨 상관이 있지?"
....< 중략 >....
"로자, 어쩔 수 없이 서로 욕을 하게 돼요! 저절로 그렇게 된다고요!"
그러면 로자는 이렇게 말했다.
"그러나 그것은 피해야 할 일이야. 그렇지 않으면 진정 원하는 게 무엇이었는지 깡그리 잊어먹게 된단다."
<본문 188-189쪽>

 

수호유령 로자 리들은 비록 날지도 못하고, 열쇠 구멍 같이 작은 구멍으로 몸을 빼내는 재주는 없었지만 정치적으로(?) 아니 무엇보다 오래 산 사람의 지혜와 균형잡힌 시선을 지닌 양심적인 유령이었다. 그런 수호유령 로자 리들에게도 결정적인 약점이 있었는데, 하나는 평발이라 오래 걸어다니지 못하는 것이었고, 다른 하나는 오랫동안 지하실에 묻혀 있었던 경험으로 생긴 폐쇄공포증이었다.

 

이제 나스티와 가족으로부터 뗄래야 뗄 수 없는 존재가 된 로자 리들이 불의의(로자 리들이 파출리향이  나는 궤짝에 갇혀 궤짝째 필츠마이어 씨 집으로 팔려가는) 사고로 행방불명 되어버리는 사건이 생긴다. 나스티와 티나, 온가족의 갖은 노력을 기울였지만 로자 리들은 집으로 돌아오지 않았다. 과연 나스티의 수호유령 로자 리들에겐 어떤 일이 생긴 걸까?(아쉽지만 그건 책으로 읽으시라.)

 

크리스티네 뇌스틀링거의 "수호유령이 내게로 왔어"는 이렇듯 재미와 교훈이 절묘하게 배합된 작품이다. 착하지만 외동딸로 자라 개인적인 나스티, 남을 배려해줄 줄 알지만 엘리트적인 면도 있는 나스티는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아이다. 자식이 7남매, 8남매 되는 대가족은 이제 "인간극장"류의 휴먼 다큐에서나 볼 수 있는 과거의 흔적이 되었다. 과거의 아이들은 넘쳐나는 가족, 형제들 틈에서 서로 미워하고, 싸우고, 화해하는 과정에서 저절로 공동체의 미덕과 사회화 과정을 배울 수 있었다. 가족이란 그저 사회 교과서에서 배우는 사회를 구성하는 기초단위 이상의 의미가 있는 중요한 학교였다. 그러나 이제 아이들에게 가족은 늘 부모라는 어른이고, 그나마 동년배 가족은 명절에나 만날 수 있는 존재이다. 아이들은 가족 속에서 고립되어 있다. 그건 1978년을 경험하며 어른이 된(그 이후에 태어난 이들도 있겠지만) 우리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작가 크리스티네 뇌스틀링거는 우리의 80년대라 할 수 있는 유럽의 68혁명과 동구 현실사회주의 몰락을 경험한다. 그런 까닭일까. "70년대만 해도 나는 문학이 세상을 개선할 수 있다고 믿었다. 그러나 문학은 독자들을 웃고 울릴 뿐, 세상을 바꿔 놓지는 못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란 아이들의 현실에 대한 통찰력을 높여 주고 그들이 느끼는 불안감, 경험했지만 말로써 표현하지 못하는 것을 표현할 수 있게 도와주는 것뿐이다."라고 말한다. 작가가 문학을 통해 세상을 개선할 수 있다고 믿었던 시대로부터 벗어나버린 현시대의 문학이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언제나 되풀이되는 질문이지만, 문학은 단지 그것을 읽고, 표현함으로써만 경험할 수 있는 무엇을 우리에게 선사한다. 아마도 작가는 수호유령 로자 리들을 만나는 어린이들로 하여금 현실에 대한 통찰을 통해 우리가 살아온 시대보다는 덜 편협한 새로운 미래를 만들어가도록 일깨워주고 싶었던 건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 불과 200여쪽이 조금 넘는 이야기임에도 이 작품 속에 등장하는 로자 리들이 나스티와 우리들에게 가르쳐 주는 게 단지 그것뿐은 아닐 거다. 훌륭한 작품들의 미덕은 늘 겉으로 보이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은 이야기들을 품고 있기 마련인데, 바로 이 작품이 그렇다. 이 책을 읽고 혹시 내게도 수호유령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면, 당신 가슴 속 양심의 목소리에 귀기울여 주기 바란다. 거기 당신의 수호유령이 말을 걸기 시작할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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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바람구두 windsho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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