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가 4인이 바라본 전쟁의 표면 - 성남훈, 이상엽, 이성은, 노순택
2007. 5.2. ~ 6.19(5.24 휴관)
평화공간 SPACE*PEACE
주최: 평화박물관 건립추진위원회

재현된 전쟁의 표면과 재구성해야 할 전쟁의 진실

영구혁명은 하나의 유토피아지만 영구전쟁은 하나의 현실이다. 1914~1985년 사이에만도 주요한 전쟁을 꼽자면 제1차 세계대전, 모로코전쟁, 스페인내전, 제2차 세계대전, 인도차이나전쟁, 베트남전쟁, 알제리전쟁, 소위 '냉전' 등이 벌어졌다. 전쟁은 언제나 인간들의 기억 속에 자리 잡고 있다. 영웅적인 기억과 치욕스러운 기억 그리고 인위적으로 재구성된 기억, 남을 죽이도록 명령받거나 허용된 끔찍한 순간 또는 살인의 면책을 부여받은 순간 등이 뇌리에 잡은 것이다. - 제라르 뱅상


1854년 12월, 수염을 기른 신사와 두 명의 조수를 태운 마차가 5대의 카메라와 7백 장에 이르는 촬영용 유리판을 가득 싣고 크리미아 지방으로 향한 이래, 거의 대부분의 전쟁은 사진에 의해 증언되어왔다. 당시 변호사로서 상류계급의 일원이었던 로저 펜톤이 이듬해 6월까지 촬영한 360장의 사진은 이후 영국 각지에서 전시되었고, 수많은 사람들의 반향을 이끌어냈다. 비록 전사자의 시신은 담지 말라는 엄격한 촬영조건이 있었으나 이전까지 회화가 독점해 오던 전쟁 기록은 사진이라는 새로운 매체로 옮겨지게 되었다.

오늘날까지도 사람들은 사진이라는 매체를 마음속으로부터 깊이 신뢰한다. 그 이유는 사진이 언제나 존재하는 실체를 담아내고, 재현(representation)한다는 고정관념에서 기인한다. 이전까지 전쟁의 기록을 담당했던 미술, 전쟁회화는 그것이 아무리 전쟁의 비참함을 적나라하게 고발하려는 의지를 담았다 하더라도 대중에게 회화는 본질적으로 관념적인 추상이다. 그에 비해 사진은 사진가의 시선, 뷰파인더 저 너머로 실제 전쟁이 벌어지고 있으며, 사람들이 죽어가고 있다는 실체를 상상하게 한다. 그런 점에서 모든 사진은 문서 ․ 증서를 의미하는 다큐멘터리의 어원인 라틴어 ‘도큐멘텀(documentum)’에 좀더 가깝다.

"연출되지 않았단 이유로 진실을 담았다고 말할 수 있을까"

그렇다면 사진은 언제나 진실을 재현하는가? 우리는 그 같은 의문을 품을 수 있다. 전쟁을 표현한 유명한 전쟁사진들이 있다. 조 로젠탈이 이오지마의 격전 끝에 미 해병대 병사들이 스리바치산 정상에 성조기를 게양하는 사진, 예프게니 칼데이가 불타는 베를린에서 소련 병사들에 의해 독일제국의회 건물 꼭대기에 적기를 게양하는 사진들은 작가들이 현장에서 촬영한 것들이다. 그러나 이 사진들이 연출된 사진들이란 사실 역시 오늘날 널리 알려져 있다. 사진가 성남훈은 현재 1991년부터 루마니아, 보스니아, 코소보, 아프가니스탄, 이라크 등 세계의 분쟁현장을 찾아 이를 기록하고 있다. 그의 다큐멘터리 사진들은 무엇을 증명하는가? 아마도 우리는 그의 작품들을 통해 성남훈이 현장에 있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그는 1996년의 사라예보, 1997년의 자이레, 1999년의 알바니아, 2000년의 에티오피아, 2003년의 이라크에 있었다. 그러나 성남훈의 사진이 연출된 것이 아니라고 해서 이 모든 전쟁과 살육, 학살과 강간, 빈곤과 기아의 진실을 담고 있다고 말할 수 있을까.


▲ 보스니아, 사라예보. 1996년. ⓒ성남훈

1992년 시작된 보스니아 내전은 1995년 말 파리에서 열린 ‘데이튼 협정’으로 막을 내리기까지 4년 동안 25만 명이 목숨을 잃었고, 전체 인구 400만 명 가운데 40%가 난민이 되었다. 비록 내전은 끝났지만 스레브레니차에서 암매장된 시신 2만여 구가 발견되는 등 곳곳에서 시신 발굴 작업이 진행 중이다. 보스니아와 마찬가지로 유고연방에서 독립하고자 했던 코소보는 비폭력저항을 계속 했으나 데이튼 평화협상에서 의제로 다뤄지지 못했다. 폭력만이 국제적 관심을 불러일으킨다고 판단한 코소보 해방군 지도자들은 세르비아를 자극했고, 예상대로 세르비아는 무자비한 진압을 강행했다. 1999년 한 해 동안 조직적인 인종 학살과 집단 강간으로 1만여 명이 죽임을 당했고, 86만 명의 난민이 발생했다. 1999년 3월24일부터 6월11일까지 나토(NATO)는 78일간 3만 8,000여 차례 출격해 1만500회의 공습을 퍼부었다. 나토군은 단 한 명의 희생자도 내지 않았으나 공습기간 동안 코소보와 세르비아의 민간인 피해는 급증했다. 전쟁이 끝나자마자 미군은 코소보 남동부에 400만 평의 땅을 빼앗아 군사기지인 본스틸 캠프(Bondsteel Camp)를 건설했고, 인종 학살을 수수방관하던 유럽의 주요 국가들 역시 UN을 등에 업고 트레프차 광산 등 코소보의 국가기간산업을 헐값에 매각하거나 차지했다.

"소비되는 전쟁, 사진가들은 왜 무모한 시도를 계속하는가"

다른 한 편, 아프리카의 르완다에서는 1994년 4월 6일 후투족 출신 대통령이 암살당하면서 후투족이 투치족을 무차별학살하기 시작했다. 정부군(후투족)과 반군(투치족)의 갈등이 민간인에 대한 보복 행위로 이어지면서 1994년 4월 9일부터 100일 동안 80만 명이 학살당했다. 보스니아, 코소보 사태 때와 마찬가지로 국제사회는 이를 방관했고, 학살이 잦아진 뒤에야 비로소 UN과 프랑스의 개입으로 르완다는 일시적으로 안정을 되찾았다. 그러나 승리한 투치족 반군 세력을 피해 후투족 정부의 주요 인사들과 3만여 명의 정부군, 르완다 국민 814만 명 중 250만 명이 난민으로 떠돌게 되었다. 이들은 인근의 자이레(현 콩고민주공화국)를 비롯해 우간다, 탄자니아, 부룬디 등으로 피신했으나 부룬디, 자이레 등에서 내전이나 분쟁에 휘말리며 20만 명이 실종되거나 학살되는 등 피해가 속출하고 있다. 그렇다면 이와 같은 연도 표기와 지명, 희생자 통계수치가 전쟁의 진실을 알려줄 수 있는가.

로저 펜톤이 습판 콜로디온법으로 담아낸 전쟁 영상이 일반 대중에게 보여지기 까지 정확히 반년의 시간이 걸렸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는 전투가 벌어지는 순간, 동영상을 통해 좀더 적나라한 전쟁의 모습을 확인한다. 그렇다고 우리가 1854년의 대중들보다 전쟁의 진실에 좀더 가까이 다가갔다고 믿는 것은 착각이다. 그 시절의 대중들과 마찬가지로 우리 앞에는 언제나 TV 모니터와 현장이라는 도저히 건너뛸 수 없는 간극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동시대, 같은 순간을 바라본다 하더라도 우리는 학살당하는 자와 그것을 지켜보는 자라는 간극을 극복할 수 없다. 죽은 자들과 죽어가는 자들 그리고 곧 죽을 자들의 모습을 담은 영상은 오늘날 차고 넘친다. 로버트 카파는 “종군기자란 전쟁의 내장을 세계 인류 눈앞에 드러내 보이고, 지구상에서 그것을 없애기 위해 어떻게 하면 좋을까를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캐묻는 것이다”라고 말했지만 오늘날 전쟁의 내장은 그 어느 때보다 속속들이 파헤쳐지고 있다. 우리에게 전쟁은 스펙타클한 세계의 일부로서 소비될 뿐이며, 그로인해 총성은 멈추지 않는다. 어쩌면 우리가 바라보는 모든 전쟁은 표면일 뿐이다. 그런데 어째서 사진가들은 여전히 전쟁의 진실을 담아내려는 무모한 작업을 계속하는 것일까?

"절망에 직면한 '사진'이 책임질 것은 아직 남아 있다"

아도르노는 1951년 자신의 저서 『문화비판과 사회』에서 “아우슈비츠 이후에는 더 이상 시를 쓸 수 없을 것이다”라고 말했지만, 인간들은 아우슈비츠의 진실 이후에도 여전히 시를 쓰고 있다. 죽이는 행위는 죽는 인간만 시체로 변화시키는 것이 아니라 죽이는 인간조차 다른 인간으로 변화시킨다. 그 같은 변화의 이면에서 우리는 우리를 대신하여 그 자리에 서 있었던 한 명의 인간, 사진가가 바라보고, 재현한 한 장의 사진을 통해 전쟁의 진실을 상상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영구전쟁’이라는 참혹한 현실 앞에 서있는 성남훈의 사진들은 우리가 예상하는 것처럼 참혹하지 않다. 이것은 학살과 기아를 저지할 수 없었던, 거듭 반복되는 우리들의 무기력과 무력함을 반영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어쩌면 이것이 적나라한 참혹보다 더욱 진실에 가까운 슬픔일 것이다. 우리는 그 적나라함을 대신해 젤라틴 프린트의 저 편에서 일어난 참혹한 현실의 체험을 상상적으로 재구성(restructure)해야만 한다.


▲ 보스니아, 사라예보. 1996년 ⓒ성남훈

우리는 어째서 이것을 성남훈의 사진을 통해 재구성해야 하는가? 나는 그 까닭을 다시 아도르노의 말을 인용하여 설명하고 싶다. 아도르노는 “절망에 직면해 있는 철학이 아직도 책임져야 할 것이 있다면 그것은 오직 사물들을 구원의 관점에서 관찰하고 서술하려는 노력이 아닐까 한다. 인식이란 구원으로부터 지상에 비추어지는 빛 외에는 어떠한 빛도 가지고 있지 않다”고 말한다. 이 말에서 철학을 성남훈의 사진으로 바꾸어보자. 15년간 고통스러운 현장을 찾는 두려움과 의문, 외로움 속에 항해를 계속해온 성남훈의 외눈박이 행위는 사실 ‘동무여 이제 바로 보마’라는 김수영의 시론과 닮아있다. 학살이 계속되듯 삶 역시 지속된다. 비록 우리가 직면한 현실이 절망일 뿐이더라도 우리는 바로 보려는 노력을 게을리 할 수 없다. 다만, 바로 보는 일의 주체는 사진가만의 몫이 아니라 우리의 몫이기도 하다. 그것은 참혹하지 않아서 아니, 도리어 아름답기까지 하여 더욱 참혹한 사진 앞에서 잠시 멈춰서는 일, 표면의 저 너머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일에서 시작된다.

전성원 (계간 황해문화 편집장)

출처 : <전. 쟁. 표. 면.> 展에 쓰인 글

이 글은 프레시안(http://www.pressian.com) 에 "이제 사진이 던지는 질문에 답할 때"라는 제목으로 "2007-05-04 오전 11:15:24"에 다음과 같은 편집자 주와 함께 게재되었습니다.
  
  사진은 갈 수 없는 곳의 풍경을 전해준다. 전세계 곳곳에서 벌어지는 전쟁에 관해서도 우리는 몇 장의 사진을 보며 상황을 짐작한다. 그러나 '사진가에 의해 선택된 특정한 시간과 공간'에 놓인 그 사진들이 생사가 오가는 전쟁의 실상을 말해줄 수 있을까.
  
  지난 2일부터 오는 31일까지 서울 인사동 평화공간 스페이스피스(SPACE*PEACE)에서 진행되는 사진전 <전. 쟁. 표. 면>은 이 같은 물음에서 출발한다. 성남훈, 이상엽, 노순택, 이성은 등 다큐멘터리 작가로 널리 알려져 있는 사진가 4인이 각기 다른 전쟁을 다룬 작품을 내놓았다.
  
  이들은 전시에 앞서 "보이지 않는 것은 필름에 담기지 않는다"라며 사진이 가진 한계를 고백했다. 그러나 이들은 "다만 사진은 그 표면 뒤에 숨은 내면에 대해 우리에게 묻고 있다"며 "죽은 자의 모습에서 그를 죽인 자를 짐작할 수 있듯 우리는 사진을 통해 전쟁이 벌어진 이유와 전쟁의 참극, 그리고 모순을 발견할 수 있지 않을까"라고 물었다.
  
  관객들은 이번 전시에서 보스니아 전쟁(성남훈의 'Made in Man'), 실크로드 고대 전쟁(이상엽의 '고대 전쟁의 흔적, 생태 혹은 문명 사이에서'), 한국전쟁 민간인 대학살(이성은의 '경산 코발트 폐광 대원골 유해 발굴 현장, 2005'), 5.18 광주민중항쟁(노순택의 '망각 기계') 등 4개의 전쟁을 접하게 된다.
  
  특히 각 작가들이 다룬 전쟁에 관한 전문가들의 기고가 작품과 함께 전시돼 관객들의 이해를 돕는다. 전성원 <황해문화> 편집장, 문건영 변호사, 노용석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 조사관, 김태현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큐레이터가 필자로 참여했다.
  
  <프레시안>은 이 중 보스니아 전쟁을 다룬 성남훈 작가의 작품에 관해 쓴 전성원 <황해문화> 편집장의 글을 소개한다. 전 편집장은 '영구전쟁'이라는 참혹한 현실 앞에 서 있는 성남훈의 사진들은 우리의 예상처럼 참혹하진 않다"며 "이것은 학살과 기아를 저지할 수 없었던, 거듭 반복되는 우리들의 무기력과 무력함을 반영하고 있는지도 모른다"고 밝혔다. 그는 "그것이 어쩌면 적나라한 참혹보다 더욱 진실에 가까운 슬픔일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편집자>

오는 31일까지 계속되는 이번 전시에 관한 보다 자세한 사항은 평화박물관 건립추진위원회 홈페이지(www.peacemuseum.or.kr)에서 알 수 있다. 오는 12일에는 '작가와의 대화'도 마련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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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바람구두 windshoes



낡은 카메라를 들고 떠나다 | 강제욱, 노순택, 이상엽, 임재천 지음 | 이미지프레스 기획 | 청어람미디어(2004)

내 소유의 카메라가 생긴 건 지난 1997년의 일이었을 게다. 구입하기 까지 특별한 기억이 없을리 없건만 그런 사실을 구구절절 밝히는 건 재미없는 일이겠다. 그래도 몇 마디 하자면 대개 제법 가격이 나가는 물건을 구입하기 위해서는 주변 사람들에게 이것저것 꼼꼼하게 물어보거나 따져보는 편인 나이지만 카메라 구입에 관해서만큼은 특별히 누군가에게 문의해본 기억이 없다. 대학 시절 아는 사진과 녀석이 사용하는 카메라를 보고 오래전부터 탐내고 있었기 때문인데, 그 놈은 캐논 EOS-5 였다.  무엇이든 처음의 기억은 오래 가는 법인데, 중간에 기기변경의 유혹을 느끼긴 했지만 가격을 고려해봐도 그렇고, 이 녀석을 사용하면서 특별히 아쉬움을 느낀 적이 없어서 지금까지 대략 7년여의 기간 동안 내 곁을 떠난 적이 없다.

디지털 카메라를 넘어서 폰카메라까지 횡행하는 편의주의 시대에도 여전히 이 녀석에 대한 나의 애정은 변함이 없다. 그것이 꼭 남성에게 국한되는 일은 아니지만 종종 어떤 물건들은 성인이 된 남성들에게 여전히 특별한 장난감이다. 가령, 자동차, 오디오, 카메라 같은 물건들은 그것들 본래의 용도를 넘어선 특별한 애정관계가 된다.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대장장이 신 헤파이스토스의 성별이 남성인 것은 굳이 여성들의 눈치를 보지 않더라도 당연해 보일 지경이다. 글쎄, 어머니들이 만들어낸 신화일지는 모르겠으나 남자 아이들은 어려서부터 특별한 물건들에 애착을 보인다. 영화 "나홀로 집에"에서 매컬리 컬킨이 아버지와 형의 면도기를 이용해 면도 시늉을 하고, 스킨 로션을 바른 뒤에 지르는 비명처럼 말이다.

물신주의(Fetishism)란 말은 특정한 사물과 신체(특정부위)에 대한 애착을 넘어선 집착을 일컫는 말로 통용된다. 원래 페티시즘의 어원은 15-16세기 해양무역을 독점한 포르투갈인들이 서아프리카 원주민 사회에서 배워온 것이라 한다. 그네들이 돌이나 나무 등 특정 대상물에 대해 예배하는 것을 보고, '부적'이란 의미의 라틴어 "팍티키우스(facticius)"에서 기원한 포르투갈어인 "페이티소(feitico)"라 불렀다. "페이티소"란 말에는 '인공적인', '마술에 걸린 대상', '마술'을 의미한다. 이 용어를 학술적으로 다시 부활시킨 것은 마르크스의 공로이다. 그는 자본주의 사회의 성격을 설명하면서 자본(즉, 돈)에 대한, 자본주의적 생산체제 아래에서 인간과 물건(자본, 돈)의 관계를 이와 같이 신앙의 대상, 또는 숭배의 대상으로 표현하면서 이를 물신주의라 비판했다. 나는 "마르크스의 통찰"이 없었다면 우리가 사는 이 사회를 도무지 설명할 길이 없다는 생각을 종종 한다.

니체의 표현법을 빌어 말하자면 현재의 우리는
"신을 죽였으나 새로운 신을 만들었다." 그것이 바로 물신이다. 이 책 "낡은 카메라를 들고 떠나다"는 우리가 숭배하는 특정한 물신(카메라)에 대한 숭배의 방식을 보여 주면서, 동시에 자본주의적 물신을 극복하는 하나의 방법으로의 물신을 보여주기도 한다. 모 통신회사의 핸드폰 광고 카피는  ‘이츠 디퍼런트(It’s different)’ 이다. 해석하자면 "이것은 다르다" 정도가 될까? 오늘날의 우리들은 남과 동일한 방식과 수준으로 살지 못하면 그에 대한 불안과 불만이 증폭되는 시대에 살면서 동시에 남과 조금이라도 다른 자신만의 개성을 표현하지 못해 안달난 시대에 살고 있다. 이 책 "낡은 카메라를 들고 떠나다"는 어떤 의미에서 디지털(남과 다르지 못함, 동일한 복사가 무수히 가능한 몰개성)이 폭주하는 시대의 나만의 자아를 찾아 떠나는 아날로그(핸드메이드, 마이너리티의 즉 개성적인)에 대한 송가이다.  바로 그런 이유때문에 이 책 역시 ‘이츠 디퍼런트(It’s different)’ 를 부추긴다.

이 책은 그런 의미에서 절반의 성공을 거두었지만 동시에 절반의 실패 속에 놓여 있다. 이들이 정의하는 "
나의 아름다운 클래식 카메라"는, 과거 장인들의 아름다운 손길이 묻어나는 아날로그 시절의 카메라는 이제 만들어지지 않는다. 이들이 낡은 카메라에 대해 집착하는 것은 어찌보면 모든 것이 빠르게 발전해가는 이 시대를 거스르는 도전이다. 이들의 정의에 따르면 마이스터들의 열정과 도전 정신이 빚어낸 예술품으로서의 카메라 시대는 "Leica M3"에 그친다. 이후 만들어진 카메라는 거대 다국적 자본이 찍어낸 기성품에 불과하다. 이 책의 저자들은 그렇게 자본이 폭주하는 시대에 대중에게 잊혀졌으나 여전히 아름다움을 촬영하는 오래된 카메라의 진가를 드러내고자 한다. 그리고 보다 많은 이들이 잊혀져가는 이들 물건을 사랑해주기 바란다.

- 라이카 M3

일반인들에게 카메라는 그것도 똑딱이라 불리는 자동카메라가 아닌 완전 수동의, 하나하나 손으로 조작해야 하는 카메라는 일부 전문가들이나 사용하는 카메라이다. 그 일부 전문가들이 앞장서서 그런 대중의 인식을 불식시키고 싶어한다. 이 책은 그런 점에서 매우 친절하다. 책에서 다루고 있는 카메라들
- 라이카 M3, 콘탄스2, 니콘F2, 키에브, 조르키, 캐논F1, 롤라이플렉스TLR, 하셀블라드500CM, 롤라이35SE, 자이스 이콘타, 미놀타 하이매틱, 올림푸스 펜, 폴라로이드 - 등은 몇 가지 기종을 제외하고는 디지털 카메라 염가판을 구입할 정도의 금액이면 누구나 시중에서 구할 수 있는 것들에 속하고, 그만큼 대중적(?)인 카메라들이기도 하다. 이 책의 저자들은 저마다 자신과 카메라, 자신과 카메라 촬영여행 중에 일어난 일화를 읽기 쉬운 대중적인 감성으로 잘 그려내고 있다는 점에서 이 책은 카메라에 대한 이야기이면서 동시에 훌륭한 에세이의 역할을 감당한다. 

아마 이 책의 저자들은 이 책이 대중적으로 큰 성공을 거두길 그리 희망하지 않을 지도 모른다. 한때 대단한 베스트셀러가 되었던 여행기 '나의 문화 유산 답사기'가 본의는 아닐지라도 실제로는 문화 유산을 파괴(?)하는데 이바지한 것처럼 이네들이 소개하고 있는 아름다운 클래식 카메라가 품귀 현상을 빚길 바라지는 않을 테니까 말이다. 1711년 영국의 할리 백작이 세운 '남해회사' 는 남아메리카 광산 등에 대한 개발독점권을 따내면서 주가가 폭등하기 시작한다. 실제 이 회사의 경영실적은 소문만 무성했을 뿐 실적은 거의 없었지만 사람들은 저마다 이 회사의 주식을 사들인다. 얼마 뒤 이 회사의 주식은 폭락하고 수많은 사람들이 파산하고 만다. 그때 큰 손해를 본 인물 중 한 사람이 우리에게 만유인력을 발견한 인물로 유명한 '뉴턴'이었다. 17세기 네덜란드에서는 희귀한 꽃 튤립에 대한 인기가 점차 높아지면서 어느 순간 이를 투자 대상으로 삼으려는 이들이 생겨났다. 그 결과 황소 한 마리의 가격이 120플로린 하던 시절에 40뿌리의 튤립의 가격이 10만 플로린에 이르렀다
.<찰스 맥케이 지음, 이윤섭 옮김, 대중의 미망과 광기, 창해, 2004>

물론 나는 이 책 한 권이 그런 파장을 불러일으킬리 없다고 생각한다. 첨단 디지털 시대의 편리함에 길들여진 사람들이 쉽게 수동 카메라의 불편함으로 회귀할리는 없기 때문이다. 다만, 나는 이 책에서 우리 시대의 물신을 아름답게 길들이는데 성공한 소수의 사람들이 누리는 행복을 보다 많은 이들이 누릴 수 있도록 하자는 이들의 소망이 얼마나 어렵고 힘든 일일지를 말하고 싶었을 뿐이다. 자본주의 시대의 욕망은 점차 자본의 속도와 초월성을 닮아간다. '얼리어댑터'라는 신조어가 만들어지는 시대에 낡은 시대로 회귀하고자 하는 욕구는 아름답지만 그래서 위험하다. 다른 이들의 훌륭한 리뷰를 읽어보니 나는 갑자기 이 책의 부분들을 소개하는 것보다는 나의 이런 괜한 염려를 옮기고 싶어졌다.

* 2006년에 "낡은 카메라를 들고 떠나다 2: 단순하고 아름다운 시선, 필름 카메라"도 나왔다. 두 권을 연계해서 읽어보는 것도 카메라와 사진을 즐기는 이들에겐 즐거운 체험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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