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엔진, 전쟁과 시장 - 김동춘 | 창비(2004)



현재 성공회대 사회학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는 김동춘 교수는 그간 우리 사회의 굵직한 이슈마다 중요한 이론적 잣대를 제공해온 지식인 가운데 한 명이다. 이제는 우리 사회의 대표적 시민단체로 자리 잡은 "참여연대"의 창립(1994)과 "한국전쟁전후민간인학살진상규명위원회" 창립 등 그는 단순히 학문적 차원이 아닌 행동하는 진보적 지식인의 면모를 보여 왔다. 이 책은 그가 숨 가쁘게 지내온 뒤 찾아온 2003년 연구안식년을 맞이해 미국 UCLA대학의 박사후 연수를 마친 산물로 저술된 것이다.

 

미국이 세계 제1의 강대국이란 사실에 대해 의문을 품는 것은 물론 미국을 패권국가라고 부르는 인식에는 정치적 좌우를 막론하고 공통된 인식이다. 다만, 미국을 과거 대영제국과 서구 선진국의 식민지 경영을 일컫는 말 “제국”으로 인식할 것인가 하는 문제는 아직 일부 사람들에겐 다른 문제인 듯싶다. 이라크 전쟁이 시작되고 열흘 정도가 지날 무렵 알자지라 방송은 럼스펠드를 인터뷰하며 미국이 “제국 건설(empire building)을 하고 있는가?”라고 묻자 럼스펠드는 “우리는 제국을 추구하지 않는다. 우리는 제국적이지 않다. 그리고 과거에도 그런 적이 없다”고 화를 내며 말했다. 나는 우리가 배우는 세계사에서 미국에 대한 기본적 오해의 출발은 ‘고립주의’라고 배운 “먼로 독트린”부터라고 생각해왔다. 엄밀히 말해 먼로독트린은 미국의 고립주의가 아니라 유럽에 대해 아메리카 대륙에 대한 배타적 권리가 미국에 있음을 주장한 선언이다. 즉, 먼로 독트린은 미국이 국제정치에 참가하지 않겠다는 것이 아니라 아메리카 대륙에 대한 독점적 권리가 미국에 있음을 유럽에 알린 것이다. 그것을 우리는 오랫동안 스페인의 식민지로 있던 라틴 아메리카의 독립을 지원하기 위한 미국의 정책으로 오해해 왔다.

 

미국의 엔진, 전쟁과 시장의 네 가지 주제

김동춘 교수가 책머리에 밝히고 있듯 2003년 3월 이라크 전쟁이 시작될 무렵 그는 미국에 있었다. 그는 TV토론 프로그램의 "한 백인 시청자가 전화를 해서 전쟁을 지지하지 않는 자국내 흑인들은 '반역자'라고 공격"하는 에피소드를 통해 미국의 분위기를 전한다. '자유와 관용의 땅' 이라 생각해온 미국에서 듣는 '반역'이란 언사가 주는 문제의식은 이 책 전체를 관통하는 하나의 흐름이다. 김동춘 교수는 국제관계학이나 정치학자가 아닌 사회학자이다. 미국 유학파가 아닌 국내에서 학위를 받은 그가 자신의 전공과 상관없어 보이는 미국에 대한 연구와 책을 낸 것은 그간 우리 사회에 미국은 전방위적으로 존재해왔지만, 우리 사회에서 바라보는 미국은 친미와 반미라는 두 가지 잣대만이 존재해왔기 때문이다. 이런 문제는 가장 냉정한 현실론자임을 자부하는 이들로부터 미국에 반대하는 이상론자들이 주장하는 양극단의 스펙트럼 사이에 놓인 일반인들을 헤매고 만든다. 이런 극단의 논리 속에서 미국은 점점 장님 코끼리 만지기식이 되어 왔다.

 

"미국의 엔진, 전쟁과 시장"은 그런 양극단의 논리로부터 어느 정도 자유롭게 기술하기 위해 노력한 흔적이 엿보인다. 그간 김동춘 교수가 보여 온 면모를 살핀다면 이 책에도 그의 관점은 분명히 녹아있고, 그가 지향하는 가치와 세계가 현실론자들의 그것과는 분명히 다른 것임은 충분히 알 수 있다. 다만 중요한 것은 저자는 양극단의 논리 속에서 미국의 현실, 미국을 상대해야 하는 세계의 현실, 무엇보다 미국과 밀접한 관계 속에서 살아갈 수밖에 없는 우리의 현실을 고민하고 있다. 이 책은 주와 참고문헌을 포함해 모두 368쪽, 7개의 장으로 구성되어 있지만 주제 혹은 목적은 다음 네 가지로 압축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의 첫 번째 주제는 앞서 말한 바와 같이 그간 "한국 사회가 생각해 온 미국이란 국가에 대한 오해를 불식하는 것"이다. 김동춘 교수는 책머리에서 "이 책은 주로 미국의 좋은 점만 알고 있는 대다수의 한국인들에게 미국의 또 다른 면을 보여주기 위해 쓴 것이지만, 미국에 대해 막연한 거부감과 반감을 갖고 있다가 미국에 직접 가서 보고 겪고 나서는 그 엄청난 힘에 완전히 압도당하고 기가 질려버리는 사람들에게 미국의 실체와 문제점을 함께 생각해보자는 뜻"도 가진다고 밝히고 있다.

 

두 번째는 제목 "미국의 엔진, 전쟁과 시장"이 암시하듯, 미국의 시스템 혹은 국가 동력이 무엇인가를 규명하는 것이다. 첫 번째 주제가 미국의 탄생으로부터 팽창, 제국에 이르는 역사와 밀접한 연관을 맺고 있는 부분이라면 두 번째 주제에 해당하는 부분은 미국을 기존의 국제정치, 국제역학관계로 바라보는 방식을 배제하고, 사회학적 틀을 이용해 미국 사회에 대한 그간의 연구 성과와 그가 미국에 체류하면서 경험하고, 미국 현지의 자료들을 직접 접하면서 분석한 결과에 해당한다. 이때 그가 발견한 미국의 주요 동력원은 "전쟁" 혹은 전쟁을 통해 보장받고, 확대될 수 있는 시장이다. 그는 여기서 멈추지 않고, 그것이 가능하도록 만든 배경을 찾는다.

 

앞서 말한 “전쟁과 시장”이란 미국의 주요 동력원의 문화적 구성 방식과 역사를 밝히는 것이 이 책의 세 번째 주제에 해당한다. 한국 사회에 존재하고 있듯, 미국에도 분명히 존재하고 있는, 아니 우리 사회보다도 더 선진화된 시민사회를 구성하고 있는 미국 사회가 어째서 철저하게 시장의 논리로만 움직이는 보수 우익의 메커니즘에 종속되어 있는가? 혹시 "전쟁과 시장"의 맥락 이면에 실재하는 미국의 보수 우익의 메커니즘은 미국 시민들로 하여금 세계 시민이 아닌 제국 시민으로 살아가도록 강요하거나 이에 자발적으로 동조하도록 부추기고 있지 않은가? 하는 궁금증을 가지고 미국 사회의 내부를 보다 면밀하게 파고든다. 다시 말해 이 책은 국제정치질서 속에서 미국을 분석한 것이 아니라 미국 사회의 내부를 사회학적 시각으로 고찰하고 있다는 것이다.

마지막 네 번째는 세계 유일의 초강대국이자 패권국가로서의 면모를 숨기지 않는 현재 미국과 앞으로의 미래를 예견해 보고, 우리의 선택을 고민하게 만드는 일이다. 과거 또는 현재의 상황을 바탕으로 미래사회의 모습을 예측하고, 그 모델을 제공하는 학문의 역할은 사회학의 몫이 아니라 미래학(futurology)의 몫이다. 더구나 현재 유일강대국으로 부상한 미국의 역할을 감안할 때 미국의 붕괴 혹은 제국으로서의 미국의 역할이 해체되는 상황을 예견해보는 것은 미래에 대한 예측이 아니라 신성불가침의 영역을 넘겨다보는 것처럼 불온 혹은 불경해보이기까지 한다.

 

친미, 반미적 관점을 떠난 냉정한 관찰

오늘날 가장 많은 교포, 이민이 거주하고 있는 것은 물론 가장 많은 유학생들, 가장 많은 박사 학위가 미국으로부터 비롯되고 있음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그런 현실에도 불구하고 과연 우리는 미국을 잘 알고 있을까. 김동춘 교수가 고백하고 있듯 미국에 대한 특집, 기획 등을 준비하노라면 뜻밖에 미국에 대한 전문가가 태부족이란 사실을 절감해야 할 때가 있다. 미국 전문가를 자임하는 이들 가운데 상당수는 미국과의 현실, 혈맹 관계를 강조하다 보니 우리의 입장 보다는 미국의 시각이 앞서는 이 혹은 논리적 근거보다는 감정적인 부분이 앞서 냉정하게 접근해야 할 부분에 주장이 앞서 버리는 경우가 많은 것도 사실이다. 미국에 대한 바른 이해를 위해서 우리는 친미적 관점, 반미적 관점과도 적절한 거리를 두어야 한다.

 

지난 20세기 미국이 세계 문명을 주도하게 된 것, 그 문명의 혜택을 우리 한국을 비롯한 세계 모든 사람들이 누려왔던 현실을 모두 부인하거나 부정해 버리고 출발하는 것도, 미국이 실제 자국의 이익에 충실하여 전쟁을 벌이고, 시장을 개척하는 차원에서 원조했던 사실을 망각하고 이를 마치 구원자의 손길로 인식하는 것도 현실을 제대로 파악할 수 없게 만든다. 미국이 제2차 세계대전에서 파시즘에 맞서 유럽을 구원한 것은 사실이고, 한국전쟁을 비롯한 수많은 고비마다 중요한 역할을 한 것 역시 사실이다. 그러나 우리가 미국에 대한 객관적 시선을 얻기 위해서는 다음과 같은 사실도 함께 알고 있어야 한다.

 

미국이 제2차 세계대전에 참전한 까닭 가운데 자유와 민주주의를 수호하기 위한 측면이 없다고는 할 수 없겠으나 미국이 철저한 반파시즘 노선을 걸었기 때문은 아니다. 미국은 프랑코의 파시스트 독재를 용인했고, 독일에서 히틀러, 나치의 등장과 집권에 대해 비판적이지 않았다. 당시 월스트리트의 자본가들은 히틀러의 나치당을 지원했고, 헨리 포드는 그들이 반유대적이란 점을 들어 히틀러와 협력했다. 전후 미국은 뉘른베르크와 동경의 전범 재판에서 구파시즘 세력을 선별하여 미국 이주를 허용하고, 트루먼의 냉전 전략은 전세계 특히 한국과 그리스에서 구파시즘 세력을 파트너 삼아 이들을 다시 부활시켰다.

 

김동춘 교수는 "미국 내부의 비판적 지식인들조차 이라크 선제공격이 마치 미국 역사상 최초의 일인 것처럼 보는 경향"이 있지만 이는 사실과 다르다고 말한다. 가까운 과거인 1961년 쿠바 피그만 침공 작전, 1983년 레이건 정부 당시 그라나다 침공, 1989년 베를린 장벽 붕괴 직후 파나마 무력 침공 등 미국은 수많은 전쟁을 선전포고 없이 단지 ‘경찰 행동’ 차원에서 해 왔다. 그라나다 침략의 명분은 그곳에 거주하는 미군이 위협에 처했다는 것이었지만, 실제 그라나다의 미군은 위협받은 적이 없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일반적인 분석이었고, 파나마 침공 역시 독재자 “노리에가”의 제거가 명분이었으나 누가 보더라도 파나마 운하에 대한 통제권을 미국이 장악하기 위한 것이었음을 알 수 있다. 선제공격전략(예방공격)은 냉전이 미국의 공세적 소련 봉쇄 전략의 일환으로 시작된 것처럼, 냉전 기간 내내 미국의 가장 중요한 전쟁전략이었다.

 

"미국이 전쟁을 먼저 벌이지 않았다고 생각하는 또 하나의 이유는 미국이 공식적으로 전쟁을 선포한 예가 거의 없기 때문이다. 미국 헌법에는 오직 의회만이 전쟁을 선포할 권리가 있다고 되어 있다. 그러나 1950년 북한의 남침에 맞서 미국이 의회의 동의를 구하지 않은 채 '전화 한 통으로' 개입했고 이는 이런 방식의 가장 대표적인 예로 자주 거론된다. 이것은 전쟁이 국민의 동의에 기초하기보다 대통령의 자의적인 결정에 의해서, 그리고 은밀하게 추진되었다는 뜻일 게다. 공식적으로 선전포고한 것만 전쟁이라 한다면 한국전쟁도 미국의 주장했듯이 전쟁이 아니라 '경찰행동'이고, 베트남 전쟁도 전쟁이 아니다." <본문 82쪽>

 

1950년 당시 한국전 파병을 앞두고 미 국회에서 조사한 자료에 따르면 미국은 19세기 이후 제2차 세계대전까지 85차례나 전세계 각 지역에 파병했고, 전쟁을 벌여왔다.

 

미국이 주장하는 평화를 위한 전쟁

미국의 건국은 자유와 민주주의의 증대란 세계사적 의미를 지닌다. 미국은 물론 미국 시민들은 프랑스인들이 프랑스 대혁명에 대해 느끼는 것 못지않은 자부심을 가질 권리가 있다. 미국은 이런 선조들의 역사를 배경으로 전세계를 향해 자유와 인권의 수호국을 자부한다. 우리가 미국을 연상할 때 가장 먼저 떠올리는 것이 자유의 여신상과 세계 최고의 인권국가임을 상기해볼 때 어쩌면 미국은 그런 주장을 할 수 있는 입장이다.

 

미국이 처음 이라크를 침공할 당시의 이유는 대량살상무기(WMD)의 확산을 방지하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지난 걸프전 이래 12년간 미국의 경제봉쇄로 사실상 전쟁 상태에 있던 이라크는 대량살상무기도, 대량살상무기를 만들 재정도, 대량살상무기를 만들 의지도 없었다. UN조사단 역시 이라크에서 아무런 증거를 찾아낼 수 없었다. 그러자 미국은 전쟁의 이유를 다시 이라크 국민들의 인권과 자유, 민주화로 돌렸다. 후세인이 쿠르드 난민들을 무자비하게 학살했던 독가스는 미국제품이었다. 죄 없는 민간인들이 처참하게 학살당할 무렵 이라크를 방문해 후세인을 격려한 인물이 바로 현재의 국방장관 럼스펠드였다. 이라크에 가장 많은 무기를 수출한 핼리 버튼의 총수가 현재 미국 부통령인 딕 체니였다. 핼리 버튼이 총수로 재직할 당시 다른 어떤 회사보다도 가장 많은 무기를 이라크에 수출했다. 미국은 한 때 무자헤딘이라 부르며 무기를 지원한 탈레반 정권을 붕괴시킨 뒤 자신들이 이슬람의 율법에 갇힌 아프간 여성들을 해방시켰다고 공언했다. 그러나 미국의 인권은 여성에 대해 가장 강력한 이슬람 율법을 강제하는 사우디아라비아에 대해서는 침묵한다. 미국이 악의 축으로 지목하고 있는 이란에서 여성들은 차도르를 쓰기는 하지만 사무실에서 남성들과 함께 근무한다.

 

미국은 냉전 해체 이전까지는 직접적인 무력개입을 자제해왔다. 국제 정세가 미국의 직접 개입을 용인하지 않은 탓에 미국은 현지에 수립한 정권과 CIA의 공작을 통한 '작은 전쟁(저강도 전쟁)' 전략을 구사해 왔다. 그 결과 인도네시아 수하르토 군부는 쿠데타를 일으켜 50여만 명에 달하는 인도네시아 민간인들을 살해했다. 1973년 칠레의 피노체트 쿠데타, 1970년대 후반의 니카라과 콘트라 반군의 민간인 학살, 멀리 갈 것이 아니라 1980년의 광주를 상기했을 때 미국이 주장하는 인권과 민주주의, 자유는 선별된 대상에 의한 것이고, 설령 그것이 세상 더할 것 없는 독재라 하더라도 미국의 이익에 부합된다면 그것이 민주주의였다. 미국이 주장하는 평화 역시 미국의 팽창 전략에 장애가 되지 않는 것을 의미한다.

 

미국이 중동지역의 패권을 장악하기 위해 전략적으로 지원하는 이스라엘의 예를 보자. 최근 MBC에서 방송한 5부작 다큐멘터리 “중동”에서 네탄야후 전 총리를 비롯한 이스라엘 정착민들은 중동에 평화가 오지 않는 이유를 하나같이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 지역을 불법 점령했기 때문이 아니라 바로 자기 땅에서 쫓겨난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이스라엘의 지배에 복종하지 않고, 계속 저항하기 때문"이라고 주장하는 것을 알 수 있다. 예루살렘 지역은 “6일 전쟁” 이전까지만 하더라도 유대인, 팔레스타인인, 기독교도, 이슬람교도가 평화롭게 공존하는 지역이었다. 예루살렘을 무력으로 점령한 이스라엘은 이 지역에서 철수할 것은 요구한 UN결의를 무시한 채 팔레스타인인들을 쫓아내며 유대인 지역을 넓혀가고 있는 현실이다. 이런 이스라엘의 전략은 바로 미국의 전략을 고스란히 추종한 것이다. 미국이 주장하는 평화란 미국의 원하는 것을 다른 민족이나 국가가 따르는 것이다. 미국의 평화 전략에 따르면 상대에게 보다 빠른 항복을 받아내기 위해 핵을 사용하거나 무차별 융단 폭격을 실시하는 것도 평화를 위한 길이 되고, 이런 전쟁조차 평화를 위한 전쟁이 된다. 그것이 지금까지 미국이 벌이고 치른 전쟁 가운데 ‘평화를 위한 전쟁’ 이 아닌 것이 단 하나도 없는 까닭이다.

 

미국 최고의 대박사업은? 전쟁!

미국의 많은 이들이 매달 이라크에서 사용하고 있는 40억 달러면 전세계 빈곤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한다. 에릭 홉스 봄은 "극단의 시대"에서 "제2차 세계대전 동안 미 육군은 5억 1,900만 켤레 이상의 양말과 2억 1,900만 벌 이상의 바지를 주문했고, 독일군은 1943년 한 해만 440만 개의 가위와 620만 개의 군대용 스탬프를 주문"했다고 말한다. 전쟁은 돈이 많이 드는 사업이고, 애초에 미국은 이라크 전비와 재건 비용을 세계 매장량의 11%를 차지하고 있는 이라크의 석유를 팔아 충당하겠다고 말한 바 있다. 미국이 이토록 많은 돈을 이라크에 퍼붓고 있는 이유는 과연 이라크인들의 해방을 위한 것이었을까. 미국은 어째서 이런 막대한 비용을 들여 전쟁에 나서는 것일까. 그것은 미국을 움직이는 엔진이 “전쟁과 시장”이기 때문이다.

 

1993년 소말리아에서 미군 18명이 전사(영화 "블랙 호크 다운"은 이 사건을 배경으로 한 것)하자 미국에는 외국에 미군을 파견하지 말라는 여론이 일어났다. 당시 클린턴 대통령은 "국익에 결정적이지 않은 전쟁에는 한 명의 미국인도 목숨을 잃어서는 안 된다"고 강조한다. 이 말은 명분이 인권, 세계 평화와 직접 관련이 있는 것이라 할지라도 인도적인 이유만으로는 개입하지 않겠다는 것이고, 다시 말해 그것이 미국의 국익에 관련된 것이라면 언제라도 무력 개입하겠다는 뜻이다. 미국이 전쟁을 국가의 성장 동력으로 인식한 것은 언제부터일까.

 

"미국 역사상 가장 큰 대박을 터뜨린 전쟁사업은 2차 대전 참전과 전후 복구를 위한 마샬플랜 그리고 냉전전략일 것이다. 2차 대전으로 미국은 세계 총생산의 반을 차지하는 경제적 초강대국이 되었다. 흔히 뉴딜이 미국자본주의를 공황에서 구해냈다고 말하지만, 좀더 정확하게 말하면 2차대전이 미국 경제를 살렸다. 전쟁은 자본 이득을 증가시켰으며 투자 기회를 확대했다. 고용문제나 경제난이 전쟁으로 한방에 해결됐다. 더구나 자기 영토에서 전쟁을 벌이지 않았으니 인명손실을 제외하고는 별로 손해본 것이 없었다. 2차대전 개입 후 미국은 전쟁 호황에 스스로도 놀라서 입을 다물지 못할 정도였다. 이 전쟁으로 미국 사람들은 전쟁이 경제문제를 해결하는 매우 좋은 수단이 된다는 것을 알아챘다. 더구나 파시즘을 멸망시켰다는 명분도 얻었으니 그보다 더 좋은 일은 없었다."<본문 124쪽>
 
이후 미국의 전쟁은 명분은 무엇이 되었든 실제로는 시장개척을 위한 전쟁(프론티어)가 되었고, 고조되는 무력분쟁 위기는 미국의 무기 수출을 위한 좋은 호재였다. 지난 2002년 미국의 무기 판매고는 133억 달러로 전년도 121억 달러에 비해 크게 늘어났고, 2위 국가인 러시아(50억 달러)의 두 배가 넘는다. 이는 세계 전체 무기 판매고의 45.5%에 해당한다. 그중 86억 달러는 중동 국가들에게, 36억 달러는 미국의 잠재적인 적대국으로 평가받는 중국이 수입했다. 단일 국가 규모로는 중국이 1위, 한국이 2위(19억 달러)이다. 미국이 아시아의 평화체제 구축, 남북 화해 협력 분위기 조성에 적대적인 까닭도 거기에 있다.

 

미국의 세계지배전략 - 지배 엘리트 육성

지난 대선 후보 시절의 노무현 대통령이 인정한 것처럼 우리 대한민국은 건국 과정부터 미국에 자유로울 수 없었다. 정부 수립과정, 제헌 과정, 정치, 경제, 문화, 교육, 국방 등 우리 사회의 어느 한 분야도 "미국의, 미국에 의한, 미국을 위한" 대한민국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2004년 12월 1일자 프레시안 기사에서 노희찬 의원은 한 달 전 관저로 초청 받아 만난 모 주한유럽대사로부터 "한국은 미국의 식민지라 생각"한다는 말을 들었다고 하는데, 엄밀하게 말하면 그들도 미국으로부터 썩 자유로운 입장은 아니다. 걸프전이 끝난 이후 현재까지 13년 동안 미국은 사우디아라비아, 쿠웨이트 등 중동 국가에 미군을 주둔시키고 있으며 소련 붕괴 이후엔 우즈베키스탄, 카자흐스탄, 루마니아, 불가리아, 폴란드에 군대를 주둔시키고 있다. 미국은 냉전 종식 이후 현재까지 전세계 35개 국가에 700여 개 이상의 군사기지를 구축하고 있다. 만약 이것을 로마제국식으로 한정해 말하자면 로마의 시선이 닿는 곳 어디나 로마화가 진행된 것처럼, 미국의 시선이 닿는 곳 어디나, 미국이 필요로 하는 곳은 어디나 팍스 아메리카나의 제국이 건설된 것이다.

 

미국에 대한 우리들의 짝사랑 이야기는 고종 황제 시절까지 거슬러 올라야 하지만, 그 핵심은 광복 직후 단정 수립을 지지했던 미군정청 경무부장 조병옥의 말 "일본과 달리 미국은 땅이 크고 자원이 풍부한 나라이므로 우리의 영토 따위에는 관심이 없고, 따라서 우리를 도와줄지언정 침략은 하지 않을 것"과 같다. 그러나 조병옥은 틀렸다. 그가 미국에 유학해 있던 1930년대 이미 미국은 많은 식민지를 거느리고 있었다. 쿠바, 푸에르토리코, 하와이, 아이티, 니카라과, 필리핀, 파나마 등이 그들의 식민지였다. 미국은 로마 제국과 흡사하면서도 다른 측면에서 보자면 오랫동안 동아시아의 질서를 구축했던 중화 제국과도 흡사한 측면을 가지고 있는데, 단 이들과의 차이는 보다 타산적이고, 냉혹한 실리 계산에 따르되 표면적으로는 잘 드러나지 않는 시스템을 통한다는 것이다.

 

미국의 통치전략은 군사력을 동원해 이들 나라를 직접통치하는 방식이 아니라 자유와 민주주의란 관념을 통한 것이었다. 미국은 직접통치 방식을 대신해 "나라만들기(state-builing)", 즉 법, 제도, 엘리트 이식작업을 통해 치고 빠지는 방식으로 통치한다. 그래도 못 미더운 나라들은 미군을 반식민지화한 중국의 상해처럼 치외법권화된 지역에 주둔시키는 방식으로 압력을 행사한다. 나라만들기의 시작은 보통선거를 통한 대표자 선출인데, 미국의 사전정지작업을 통해 그들의 입맛에 맞지 않는 세력은 과감히 제거한다. 해방 직후의 남한과 현재 이라크 상황을 비교해보면 금방 알 수 있는 일이다. 민주적인 절차에 따라 성립된 신생 정부는 내용이야 어찌되었든 합법성을 인정받게 되고, 그런 뒤 현지의 지배엘리트들 가운데 선발해 미국 유학의 형태로 미국의 대학에서 장학금을 지급하며 교육시킨다.

 

이들이 귀국한 뒤엔 미국식 교육제도를 도입하고, 미국식 이데올로기를 전파한다. 과거 로마 제국이 그러했듯 점령지역의 세력가들을 포섭하여 그들의 파트너로 육성하는 것이다. 과거 영국이 식민지 경영을 위해 자국의 관리들, 군인, 기업인들을 훈련시켜 보냈다면 미국은 현지 관리, 군인, 기업인을 육성하여 그들로 하여금 미국식 가치관과 세계관으로 무장시켜 그들로 하여금 지배엘리트가 되도록 만드는 것이다. 오늘날 미국은 전세계에서 가장 우수한 대학을 가지고 있는데, 그것은 미국의 대학이 다른 선진국의 대학들보다 우수해서가 아니라 미국에 전세계에서 가장 우수한 학생들이 유학가기 때문이다. 미국은 오랫동안 제3세계의 군부엘리트들을 그들의 군사학교에서 육성해 왔는데, 앞서 말한 파나마의 노리에가는 물론 한국의 전두환, 노태우 등도 모두 미국의 군부엘리트 학교 졸업생들이었다.

 

미국을 제국으로 파악할 것인가에 대한 이견은 존재해왔고, 앞으로도 존재할 것이다. 그러나 방식이 아닌 그 본질로 파악했을 때의 제국주의(imperialism)를 한 국가의 정치, 경제적 지배권을 다른 민족, 국가의 영토로 확대시키려는 국가의 충동이나 정책이라 했을 때 미국의 본질은 제국에 가깝다.

 

우파국제주의자들의 발전전략 "영구전쟁론"

미국에도 내부 비판자들, 시민사회가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어떻게 지속적으로 제국의 길을 걸어갈 수 있었는가. 김동춘 교수는 미국이 실질적으로는 이념적으로는 일당독재국가이기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레이건 집권 8년 동안 미국 정치사회에서 중도좌파는 완전히 제거되고, 중도파가 좌파로 간주되고, 민주당의 정책 역시 지속적으로 우경화되는 정치 지형의 변화가 있었다. 그 결과 "화씨 9/11"의 감독 마이클 무어 같은 이는 민주당을 향해 "위선의 가면을 벗고 차라리 공화당과 합당하라"고 비판한다. 현재 미국을 주도하는 정치세력의 면면을 살펴보면 과거 좌파 국제주의의 정확히 반대 측면에 서 있음을 알 수 있다. 현재 미국의 주류는 우파 국제주의(세계화)에 해당한다. 과거 좌파 국제주의가 ‘영구혁명론’을 주장했다면 그들은 미국의 패권을 지속시키기 위한 일종의 ‘영구전쟁론’을 추진한다. 냉전 시대를 거치며 미국 우파는 유럽과 달리 집요하게 애국주의 담론, 반공 담론의 장에 민주당과 좌파들을 끌어낸다. 그 결과 미국의 정치집단은 스스로 국가이익을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는 것을 강조하는 애국게임에 휘말리게 되어 이성적인 판단보다는 과도한 충성심을 보여야만 살아남을 수 있게 되었다. 이번 대선에서 부시가 승리했지만 캐리가 당선되었다고 해도 크게 달라질 것은 없다는 것이다.

 

미국이 이라크에 대한 공격을 선포하기 직전인 2003년 2월 미국 언론에는 경건하게 기도하고 있는 부시와 파월, 럼스펠트 등 각료 사진이 크게 실렸다. 부시가 개신교도 가운데 가장 보수적인 교파에 속해 있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지만 공적인 자리인 각료회의 자리에서 다 함께 기도드리는 광경은 자유주의 국가 미국을 연상하는 이들에게는 낯선 모습이다. 미국인들은 유대인들 못지않게 스스로를 신에 의해 선택된 국민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을 가지고 있다. 그들은 “명백한 운명(Manifest Destiny)”을 지닌 국가라고 생각한다. 트루먼 대통령은 "나는 신이 우리 미국인들을 만들었으며, 어떤 위대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우리에게 이처럼 힘을 주었다는 느낌이 든다"고 말한다. 중동에서의 이슬람 근본주의 못지않게 미국의 정치 지형 속에서 기독교 근본주의(복음주의 프로테스탄트)는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이들은 1960년대 베트남전을 경험하면서 미국의 가톨릭 우익, 유대교 우익과 합세하면서 "도덕적 다수, 기독교 연합" 등 적극적인 정치 세력화에 나섰고, 종교와 정치를 같은 맥락에서 보고 있다. 미국이 전쟁에서 패배하지 않는 까닭은 그들이 신이 보기에 합당한 전쟁을 치르고 있기 때문이다. 오늘의 미국 사회를 "기독교 파시즘"이라고 부르는 것 역시 이런 현상을 두고 말하는 것이다.

 

우리는 “하워드 진”이나 “노암 촘스키” 같은 미국의 비판적 지식인들의 목소리를 통해 미국 사회의 지식인들 가운데 상당수가 비판적 지식인들로 구성되어 있을 것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1960년대 미국의 반전운동세대들은 우경화의 흐름 속에서 스스로를 아카데미 가둬두거나 전문가주의로 퇴보하면서 더 이상의 비판을 멈추고 있다. 어쩌다 나오는 이들의 비판적 발언조차 하워드 진에게 어느 어린 여학생이 "그렇다면 왜 미국을 떠나지 않는가"라며 비판한 것처럼 반애국적인 행위로 단정된다.

 

모든 제국은 팽창한다, 고로 제국은 붕괴한다

우리는 지난 역사 속의 제국들을 통해 한 가지 교훈을 얻을 수 있다. 모든 제국은 팽창한다. 한 번 팽창하기 시작한 제국은 스스로의 힘으로는 팽창을 멈출 수 없다. 최대한 팽창한 제국은 내부로부터 붕괴한다는 것이다. 로마제국은 하드리아누스 장벽을 건설한 뒤로부터 몰락하기 시작했고, 중화제국의 최대 판도는 청조 시대의 일이었으나 이후 중국은 급격한 몰락을 경험한다(물론 현재 중화인민공화국은 청나라보다도 넓은 판도를 차지하고 있다). 미국은 현재 세계 유일의 초강대국이며 전 세계 가솔린 소비량의 40%를 차지하는 나라다. 팍스 아메리카나 시대는 세계적으로 두 번의 미국화(Americanised)를 불러왔다. 한 번은 냉전을 통해, 다른 한 번은 세계화를 통한 것이었다. 이제 미국의 패권은 현재 절대적이다 못해 초월적으로 보이기까지 한다.

 

김동춘 교수는 바로 지금이 '제국의 위기' 라고 진단한다. 그 부분을 말하는 것은 이 책에 대한 악독한 스포일러가 될지도 모르겠으나 핵심적인 부분은 미국은 바로 그들이 주장하고 전파한 "인권과 평화, 자유와 민주주의"로 인해 내부로부터 붕괴하게 될 것이란 예측이다. 미국이 주도한 세계적 불평등(세계화 혹은 자유무역)은 국가 단위를 해체하는 듯 보이지만 미국만큼은 철저하게 국가의 경계를 유지한다. 미국이 세계 최고의 강대국으로 성장할 수 있었던 힘은 구대륙의 차별받던 시민들을 받아들여 국가의 동력으로 삼은 덕이다. 그러나 미국의 보편주의는 점차 약해지고 있다. 제국의 시민이 되기 위해서는 보다 엄격한 절차를 따라야 한다. 미국은 자국에 비판적인 지식인들을 입국조차 할 수 없도록 통제하고 있다. 이처럼 미국은 노쇠한 제국이 빠지는 딜레마에 똑같이 빠져들고 있다.

 

미국이 자랑하는 최첨단 무기가 공화국 수비대를 한 달도 못되는 기간에 붕괴시킬 수는 있지만 종전 선언 1주년이 지난 오늘날까지 이라크에서 총성을 멈추게 할 수는 없는 것처럼,  미국이 자유와 민주주의 이념으로 세계인의 마음을 사로잡지 못한다면 그들이 지닌 돈과 힘에만 의존하는 국제질서는 위험하고, 위태로운 것이다. 이매뉴얼 월러스틴은 미국은 자본축적의 한계 혹은 자본주의 붕괴 시나리오에 의해 붕괴할 것이라고 예언하고 있다. “붕괴”란 말은 너무 엄청난 느낌을 주기 때문에 마치 로마 제국이 게르만 용병대장의 손에 의해 약탈되는 것을 연상하게 된다. 하지만 로마 제국의 붕괴가 이미 그보다 훨씬 오래 전부터 왔던 것처럼 미국의 붕괴 역시, 대영제국의 붕괴가 디즈레일리, 글래드스턴 시절에 시작된 것처럼 그렇게 시작될 것임을 예측할 수 있다. 미국의 붕괴는 당연히 소련의 붕괴가 가져온 충격파보다도 더한 충격을 가져올 것이다. 미국을 제외한 전세계 국방비를 합쳐도 미국보다 적은 현실, 그런 상황에서 미국에 대해 비판적으로 말하는 것은 참으로 맥 빠지는 일이며, 보수우파가 주장하는 것처럼 그런 현실을 인정하는 것이 가장 현실적인 방책으로 보이기도 한다. 로마 제국의 붕괴가 중세의 어둠을 불러왔다고 믿는 이들에게 미국의 붕괴는 이보다 더한 고통을 불러올 수 있다는 예견 또한 가능하겠지만, 대영제국의 붕괴 과정처럼 조용히 올 수도 있다. 그것이 어떤 형태의 것이든 우리가 미국의 패권을 막을 수 없는 것처럼, 그들의 붕괴 또한 막을 수 없을 것이다. 세계 초강대국, 절대적 패권국가인 미국의 붕괴는 미국이 영원한 패권국가로 존재할 것이라는 믿음이 부질없는 것만큼이나 부질없는 것이다. 그것은 누구도 알 수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로마가 그렇게 붕괴할 것이라고는 누구도 믿지 않았던 것처럼 말이다.

 

이 책에 대해 몇 가지 아쉬운 점 가운데 하나는 이 책이 좀더 일찍 나왔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 까닭은 이 책에서 이야기하고 있는 부분 중 상당수는 이미 국내에 출간된 상당수의 미국 비판 서적들과 중첩되는 부분이 있다는 것이고, 다른 한 가지는 이 책에 대한 조선일보의 서평에서도 알 수 있듯, 이 책을 읽는다고 해서 우리 사회의 보수우익이 미국에 대한 일방적인 짝사랑을 그만두지 않을 것이란 점이다. 전자는 "미국의 엔진, 전쟁과 시장"이 가장 최근의 미국 사회를 보여주고 있으며, 사회학적으로 내부를 고찰하고 있다는 장점과 대중적으로 읽기 쉽고, 이해하기 쉽게 구성되어 있다는 점으로 상쇄되고, 후자의 경우엔 미국에 절대적으로 의존하는 것이 국제 사회에서 대한민국이 살아남는 아니면 그들이 살아남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믿는 이들에겐 어차피 무슨 이야기를 해도 소용없을 것이란 점에서 상쇄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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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바람구두 windshoes

선의 방관은 악의 승리를 꽃피운다


미국의 엔진, 전쟁과 시장| 김동춘 지음| 창비| 2004.

패권인가 생존인가 - 미국은 지금 어디로 가는가( Hegemony or Survival : America's Quest for Grobal Dominance, 2003)|노암 촘스키 지음|오성환, 황의방 옮김 | 까치글방 | 2004 
  

   『미국의 엔진, 전쟁과 시장』은 책머리에 밝히고 있듯 김동춘(성공회대 사회학과) 교수가 2003년 이라크 전쟁이 시작될 무렵 안식년을 맞아 미국에 체류하면서 미국 사회를 분석한 결과물이다. 김동춘은 9.11 이후 이라크 전쟁에 이르며 본격적인 슈퍼 파워를 과시하고 있는 미국이란 거대 제국을 구성하고 있는 다양한 요소들을 전쟁과 시장이란 키워드를 통해 비판적으로 재구성하고 있다. 독창적인 언어학자이자 반전운동가인 노암 촘스키의 『패권인가 생존인가』는 냉전 해체 이후 초강대국으로 부각된 미국의 영속적인 세계 패권(global hegemony) 전략에 대한 비판을 담고 있다.

9.11의 잿더미에서 제국을 선포한 미국
  김동춘과 노암 촘스키의 책은 9.11과 이라크 전쟁, 그리고 부시2세의 재선 승리라는 결과를 앞에 놓고 미국의 과거로부터 시작해 현재와 미래를 묻고 있다는 공통점을 지닌다. 이외에도 두 권의 책이 지닌 공통점은 또 있다. 9.11 이전의 미국 연구들은 대개 냉전 해체 이후의 미국을 좀더 우월한 위치를 점하고 있는 국민국가(nation-state)들 가운데 하나로 파악하고 있었던데 반해 김동춘과 노암 촘스키는 애초부터 미국을 제국(empire)으로 상정하고 있다는 점이다. 9.11의 잿더미는 미국이 새로운 제국으로 탈바꿈했음을 알리는 극적인 신호탄이자, 세계만방에 제국엔 제국의 작동방식이 있음을 공포하기 위한 막간극이었다.

이라크 전쟁이 시작된 지 10일 정도 지난 2003년 3월 28일 아랍 위성방송인 알자지라가 럼스펠드를 인터뷰하면서 미국이 “제국건설(empire building)을 하고 있는가”라고 물었다. 그러자 럼스펠드는 마치 여자 속옷을 입고 있다가 들킨 사람처럼 “우리는 제국을 추구하지 않는다. 우리는 제국주의적이지 않다. 그리고 과거에도 그런 적이 없다”고 화를 내면서 대답했다. 그런데 이에 대해 미국 내에서는 “그래 미국이 제국인 것은 맞지만 뭐가 잘못됐냐? 우리는 ‘비제국주의적 제국’ 아니면 ‘좋은 제국’이다”라는 공세적인 긍정론이 엇갈렸다. <김동춘, 165쪽>

  미국이 제국의 길로 나아가는 것을 반대하는 이나, 옹호하는 이나 암묵적으로 동의하고 있는 전제는 미국이 이미 제국이 되었다는 사실이다. 그런데 미국은 언제부터 제국이 되어 있었던 것일까?

  2002년 가을, 가장 중대한 세계적 어젠다는 역사상 최강의 국가가 군사력 사용 및 위협을 통해서 패권을 유지하겠다는 의사를 공표한 것이었다. 국가안보전략에 대한 공식발표는 다음과 같다. “우리의 군사력은 잠재적인 적들이 미국의 국력을 능가하거나 대등해지겠다는 희망하에서 군사력 증강을 추구하는 것을 단념하도록 할 만큼 충분히 강해질 것이다.”
저명한 국제문제 전문가인 존 아이컨버리는 이 같은 선언을 “미국이 대등한 경쟁자가 존재하지 않는 일극(一極)세계(a unipolar world)를 유지하겠다는 근본적인 공약에서 시작되는 대전략”이라고 설명한다. <노암 촘스키, 19쪽>

위대한 공화국의 '명백한 운명(manifiest destiny)'

  미국은 2002년 가을, 비로소 제국이 될 결심을 한 걸까? 김동춘에 따르면 ‘제국주의’라는 말은 미국인들이 가장 싫어하는 용어 가운데 하나이다. 1823년 미국은 흔히 ‘고립주의’ 외교정책으로 표현되는 먼로독트린을 내놓는다. 이후 미국은 실질적으로는 제국적 팽창을 지속하면서도 정치인들 스스로는 ‘제국주의’를 비난하는 이율배반적인 행태를 보여 왔다. 노암 촘스키는 미국이 먼로주의를 주창할 때, 다른 남북 아메리카 국가들의 안전도 간간이 고려했으나 결코 그 자체가 목적은 아니었다고 말한다.

  현직 대통령인 부시2세의 정치적 배경이기도 한 텍사스는 미국에서 2번째로 큰 주로 미국 전체 영토의 7.4%를 차지하고 있다. 친구를 뜻하는 인디언 말 ‘테하스(Tejas)’에서 유래했다는 텍사스는 석유 생산량이 미국 전체의 35%를 차지하고 있다. 멕시코 정부는 멕시코 북동부 테하스주를 개척하고자 미국 식민지 개척자들에게 토지를 양도해 주었고, 스티브 F. 오스틴이 모집한 미국 출신의 이주민들은 1822년 텍사스에 도착했다. 당시 텍사스는 멕시코 코아우일라주 소속의 영토로 대략 25,000명의 미국인이 거주하고 있었는데, 분리 독립을 원한 미국 이주민들은 1831~1832년 사이에 무력을 동원하여 멕시코측 세관과 요새들을 파괴하고, 1836년 2월 독립을 선언한다.

  개척을 위해 받아들인 이민이 주인이 혼란스러운 틈을 타 새로운 주인을 받아들이겠다며  일으킨 반란이 텍사스 독립전쟁이었다. 멕시코 정부와 산타 안나는 1836년 3월 6일 텍사스의 알라모 요새를 점령하지만, 4월 21일 산하신토(San Jacinto) 전투에서 패배하여 미국으로 압송당한다. 그후 산타 안나는 미국의 잭슨 대통령에게 텍사스의 독립을 약속하고서야 6월말 멕시코로 귀국할 수 있었다. 1836년 독립을 성취한 텍사스 공화국은 남북전쟁이 끝난 뒤인 1845년 미국의 한 주로 편입되었다. 헨리 데이빗 소로우가 부당한 전쟁으로 지목하며 멕시코 전쟁에 충당될 세금 납부를 거부해 투옥된 것도 이 무렵의 일이다. 장차 세계의 미래에 영향을 미치고, 인류의 모든 행위를 제어해야 할 운명을 짊어진 위대한 공화국 미국의 '명백한 운명(manifiest destiny)'은 이렇듯 제국의 길을 가리키고 있었다.

상상의 공동체, 미국의 신화가 만들어낸 이미지
  권용립(경상대 정치외교학과 교수)은 『미국의 정치문명』(삼인, 2003)에서 우리가 흔히  서구 문명 속에 포함시키는 미국이 사실은 서유럽 국가들과 태생적으로 다른 정치문명을 가지고 있음을 지적한다. 서유럽 국가들이 피를 나눈 역사적 민족과 집단적 기억이 교직되면서 형성된 민족 국가인데 반해 미국은 그 역순을 밟은 나라, 즉 국가와 이념을 먼저 설계해놓고, 그 이후 여러 인종과 민족을 받아들여 미국인이란 새로운 민족과 기억을 제조해온 국가라는 것이다. 그런 미국이기에 먼 과거로부터 물려받은 기억보다는 국가의 설계과정을 담당한 지배담론이 신화가 되고, 이것이 국가의 정체성을 제공해준다. 그런 의미에서 미국이야말로 진정한 “상상의 공동체”이다.

  19세기말 미국이 유럽의 제국주의 국가들과 다를 바 없는 명백한 제국주의 국가로 등장했음에도 미국의 역사학자들은 이를 미국 민주주의의 변형된 한 형태로, 즉 미국의 역사적 예외성을 강조해왔다. 이런 태도는 비단 우파 지식인들만이 아닌 좌파로 분류되는 지식인들에게도 정도의 차이를 두고 나타난다. 촘스키는 이런 무의식적인 태도를 미국이 세계체제 구축과정에서 만들어낸 레토릭과 프로파간다라고 비판한다. 할리우드 영화 “알라모(The Alamo, 1960)”를 통해 멕시코 전쟁은 존 웨인으로 상징되는 서부 개척 시대의 영웅들이 압제자 멕시코 군을 맞아 싸운 전투로 뒤바뀐다. 비록 미국의 건국과정이 실제로는 인디언 학살로 점철된 피의 역사라 하더라도, 미국의 건국이 구대륙의 전제정치로부터 탈출하여 새로운 정치질서를 만들어낸 것은 사실이다. 공화주의 전통 아래 생겨난 이런 자부심은 캘빈주의의 소명의식과 결합하면서 미국은 선택받은 나라라는 도덕적 절대주의를 만들어냈다.

  촘스키는 미국적 가치와 동일시되는 자유, 평화, 인권, 민주주의가 프로파간다와 레토릭에 의해 구축된 이미지+이데올로기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날카롭게 비판한다. 미국의 본래 모습을 보기 위해선 이런 이미지들에 현혹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김동춘은 이라크전쟁이 진행되는 동안 미국의 TV매체들이 사실상 정치선전자의 역할을 했으며 TV매체가 전황을 보도할 때면 언제나 “이라크 해방작전(Operation Iraqi Freedom)”이란 구호를 화면 하단에 띄웠다고 한다. 세계로 송출되는 미국 TV매체에 의해 침공은 해방이 되고, 미국적 질서에 순응하지 않는 나라는 악의 축이 된다. 상대를 문명화 혹은 미국화(Americanized)해야 할 존재로 보는 것은 “전 세계를 미국과 같은 나라로”로 만들자는 윌슨 외교의 본질이었으며, 로마제국이 2,000여 년 전 갈리아 지방의 골족 수십만을 학살하며 주장했던 것이기도 하다.

  김동춘은 미국의 이런 의식이 기독교 근본주의와 결합하면서 더욱 강화되었다고 주장한다. 트루먼 대통령은 "나는 신이 우리 미국인들을 만들었으며, 어떤 위대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우리에게 이처럼 힘을 주었다는 느낌이 든다."고 고백한다. 중동에서의 이슬람 근본주의 못지않게 미국의 정치 지형 속에서 기독교 근본주의(복음주의)는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이들은 1960년대 베트남전을 경험하면서 미국의 가톨릭 우익, 유대교 우익과 합세하여 "도덕적 다수, 기독교 연합" 등으로 적극적인 정치 세력화에 나섰고, 종교와 정치를 같은 맥락에서 바라본다. 미국이 전쟁에서 패배하지 않는 까닭은 그들이 신이 보기에 합당한 전쟁을 치르고 있기 때문이다. 오늘의 미국 사회를 "기독교 파시즘"화 되고 있다고 보는 것도 그런 까닭에서다.

미국의 슈퍼 파워를 뒷받침하는 토대들
  미국이 스스로를 제 아무리 특별하고 예외적인 국가로 인식하고 있더라도 이를 뒷받침하는 현실적인 힘이 존재하지 않았다면 미국은 그저 자부심이 강한, 약간 예외적인 국가로 치부되고 말았을 것이다. 그러나 미국은 세계 질서를 좌우할 수 있는 패권(hegemony)을 뒷받침하는 실질적인 토대를 가지고 있다. 김동춘과 달리 촘스키는 토대의 문제를 직접적으로 언급하지는 않지만, 그 토대가 전쟁과 시장이라는데 별다른 이견이 있을 것 같지는 않다. 군산복합체로서 미국의 전쟁과 시장은 어떻게 작동하고 있는 걸까? 그 핵심엔 무엇이 있을까? 미국은 언제부터 이런 초강대국이 되었을까?

제2차 세계대전이 시작되기 오래 전에 이미 미국은 역사상 세계 최대의 경제 강대국이었으나, 세계를 지배하는 강대국은 아니었다. 전쟁이 상황을 바꾸었다. 경쟁하던 강대국들은 파괴되거나 심각하게 악화된 반면 미국은 거대한 국력을 키웠다. 준통제경제체제에서 산업생산은 근 4배로 증가했다. 1945년 미국은 경제적으로 압도적인 우위를 차지했을 뿐만 아니라 안전보장 측면에서도 독보적인 지위를 구축했다. <노암 촘스키, 187쪽>


"미국 역사상 가장 큰 대박을 터뜨린 전쟁사업은 2차 대전 참전과 전후 복구를 위한 마샬플랜 그리고 냉전전략일 것이다. 2차 대전으로 미국은 세계 총생산의 반을 차지하는 경제적 초강대국이 되었다. 흔히 뉴딜이 미국자본주의를 공황에서 구해냈다고 말하지만, 좀더 정확하게 말하면 2차대전이 미국 경제를 살렸다. 전쟁은 자본 이득을 증가시켰으며 투자 기회를 확대했다. 고용문제나 경제난이 전쟁으로 한방에 해결됐다." <김동춘, 본문 124쪽>


  미국은 제2차 세계대전을 기점으로, 냉전 해체 이후엔 위협 혹은 균형이 될 수 있는 어떤 세력도 존재하지 않는 역사상 유일한 제국이 되었다. 제국의 엔진인 전쟁과 시장을 가동시키는 연료는 무엇일까? 그것은 아마도 달러, 인터넷, 미사일, 그리고 할리우드일 것이다. 신영복 교수는 지난 2003년 계간『황해문화』와 가진 대담에서 1945년 이후 석유결제 화폐가 줄곧 미국 달러였음을 지적한다. 오일 달러가 미국의 금융과 증시를 뒷받침하고, 미국의 무역적자와 재정적자를 메우는 재원이 된다. 석유결제 화폐가 달러라는 사실은 반대로 달러가 국제통화로서의 지위를 유지하지 못할 때, 미국 경제가 하루아침에 붕괴할 수 있음을 반증한다. 석유와 달러가 경제적인 측면에서 제국의 생존을 위한 필요불가결한 요소라면, 미 국방성이 군사적 목적에서 개발한 인터넷은 로마 제국의 아피아 가도(Via Appia)이다. 인터넷은 미국 상업의 심장부가 되고, 영어는 세계인의 언어가 된다. 할리우드의 문화상품들은 세계를 석권한다.

  로마제국 이래 모든 제국은 전쟁과 정복이란 수단에만 의존하지 않았다. 사실상 로마가 이룩한 가장 위대한 정복은 창끝이 아니라 거대한 공중목욕탕에서 나왔다. 미국의 통치전략은 최근 이라크의 사례에서도 알 수 있듯 군사력을 동원한 직접통치가 아니라 자유와 민주주의란 관념을 통한 것이다. 비협력 세력을 과감히 배제하며 추진되는 미국의  "나라 만들기(state-builing)"는 친미 엘리트들을 지배계급으로 이식하는 작업이다. 해방 직후 남한과 현재 이라크 상황을 비교해보면 금방 알 수 있는 일이다. 이식된 지배 엘리트들은 미국식 교육제도를 도입하고, 미국식 이데올로기를 전파한다. 오늘날 미국은 세계에서 가장 우수한 대학을 가지고 있다. 그 이유는 미국의 대학이 다른 선진국 대학들보다 우수해서가 아니라 세계의 가장 우수한 학생들이 유학가기 때문이다. 미국 군부는 오랫동안 엘리트 군사학교에서 제3세계의 군부엘리트들을 육성해 왔는데, 파나마의 노리에가는 물론 한국의 전두환, 노태우 등도 모두 이 과정을 거쳤다.

So What? 을 넘어서
  김동춘과 촘스키의 분석이 아니라도 최근 우리 사회는 물론 국제적으로 미국에 대한 연구와 분석들은 숨가쁘게 쏟아져 나오고 있다. 대개는 미국이 슈퍼 파워를 추구하는 과정에서 벌인 정치, 군사, 외교 정책에 대한 비판이 주류를 이룬다. 이런 책들을 읽노라면 국가의 정책 결정과정은 물론 개인의 일상까지 제국의 입김이 미치지 않는 것이 없고, 세계라는 ‘거대한 체스판’은 마치 미국의 음모를 위해 존재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미국은 너무나 거대한 제국이기에 이에 대해 알면 알수록 도리어 초월적 존재, 감히 도전할 의지조차 품을 수 없는 존재가 된다. 미국의 정책에 대해 비판적인 사람들은 미국이 이라크를 공격해 영토를 지나치게 확장한 결과 제국이 해체되는 길로 접어들 것이라고 믿고 싶어 한다. 하지만 미국이 자랑하는 최첨단 무기는 공화국 수비대를 한 달도 못되는 기간동안 전멸시켰다. 그런 까닭에 지금 미국의 세계질서에 반대하는 것은 마치 디즈니 만화영화에 등장하는 걸리버를 포획하려는 소인국 사람들의 안간힘처럼 보인다.

  지난 20세기 세계는 평화를 유지하기 위한 세력 균형에 힘써왔다. 제1차 세계대전은 당시 세계 패권을 장악한 유럽 국가들이 다극 지배 체제의 세력 안정에 실패한 결과이고, 제2차 세계대전 이후의 양극 체제는 유럽을 제외한 지역에서 국지적 분쟁을 조장해왔다. 그 과정들은 너무나 잔인해서 인간의 본성 자체가 살육과 학살을 즐기는 것으로 보이도록 만든다. 인간은 본래 잔인한 존재이기에 미국과 이에 우호적인 사람들은 미국을 정점으로 한 일극 체제가 도리어 팍스 로마나와 같이 힘에 의한 평화 체제를 유지하는 방법이라고 주장한다. 촘스키 같은 지식인은 현재 미국 사회의 주류가 아니며, 이념적으로 차이가 없는 민주당은 공화당과 합당하란 비난을 받는다. 그런 상황에서 미국을 비판하는 것은 필연적으로 “So What? 그래서 어떻다는 말이냐?”는 냉소 섞인 반문을 피할 수 없다.

이에 대한 김동춘과 노암 촘스키의 결론 혹은 대안은 본질적으로 안토니오 네그리와 마이클 하트의 『제국』에서 주장하는 내용과 크게 다르지 않다. 촘스키는 인류가 패권과 생존 사이의 명백한 선택을 강요당하는 중대한 기로에 서 있으며, 이 상황에서 미국을 견제할 세력으로 저항과 비판 의식, 평화와 인권을 염원하는 ‘세계 여론(world public opinion)’이라는 제2의 초강대국을 설정해야 한다는 주장을 펼친다. 김동춘은 국가나 시장은 19세기에는 인간을 해방으로 이끄는 수레바퀴였으나 이제는 인간을 예속하는 굴레로 변했다고 지적하며 시장의 법칙을 극복하고, 우리 모두가 자기 운명의 주인이 되자고 말한다. 두 사람은 미국에 대항하기 위해 세계적 연대의 필요성을 역설한다. 네그리와 하트는 제국에는 내부와 외부가 따로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이제 제국의 네트워크는 지구를 통째로 포섭하고 있으며 자율적인 개체의 민주적 연대인 다중은 이 ‘제국 기계’를 해체하고 새로운 사회를 창출할 수 있다고 전망한다. 그러나 전망이 밝지는 않다. 미국이 제국으로 성장하는 과정에 위기와 저항이 없었던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미국은 이런 저항을 도리어 자기 혁신의 에너지, 내적 동력으로 삼아버리는 놀라운 탄력성을 자랑하며 성장해왔다.

  그렇다면 우리는 다만 냉소를 곱씹고 있어야 하는가? 우리는 지난 역사들을 통해 한 가지 교훈을 얻을 수는 있다. 모든 제국은 필연적으로 팽창하지만 한 번 팽창한 제국은 스스로의 힘으로는 팽창을 멈출 수 없다. 세계 가솔린 소비량의 40%를 차지하는 미국의 붕괴는 내부로부터 시작될 것이다. 미국이 주도하는 세계적 불평등(세계질서 혹은 자유무역)은 국가 단위를 해체하는 듯 보이지만 미국 자신은 철저하게 국가의 경계를 유지한다. 미국이 세계 최고의 강대국으로 성장할 수 있었던 힘은 구대륙의 차별받던 시민들을 받아들여 국가의 동력으로 삼은 덕이지만, 미국의 보편주의는 점차 약해지고, 제국은 본래의 탄력을 잃어 폐쇄적인 사회가 되어 간다. 미국은 팽창한 모든 제국이 빠지는 똑같은 딜레마에 빠져들고 있다. 이제 저항은 제국의 포섭 양식 속에서 소통하고 있으며 전 지구적 차원에서 새로운 저항을 준비한다. 이제 미국이 즐겨 읊조리던 에드먼드 버크의 “선의 방관은 악의 승리를 꽃피운다.”는 격언을 되돌려 줄 때다.

*출처 : 녹색평론 2005년 3~4월 - 통권 81호 | 녹색평론 편집부 (엮은이) | 녹색평론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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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바람구두 windshoes


오늘(2008. 1.17.) 망명지를 살펴보니 1,634,035명의 사람들이 다녀갔다고 카운터에 기록되어 있더군요. 처음 홈페이지를 만든 이래 셀 수 없이 많은 사람들과 하루도 빠짐없이 대화를 나누고,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또 제 이야기를 하며 살았습니다. 인터넷 공간에 작으나마 사람들과 소통할 공간을 만들기로 결심하고 실행에 옮겼던 건 지난 2000년 8월 1일의 일이었으니까, 햇수로는 올해가 9년, 다가오는 8월이면 만 8주년이 됩니다. 홈페이지 이름이 왜 하필이면 ‘망명지’일까? 때로는 스스로에게 반문합니다.


뭔가 대단한 고민이 있었다기 보다 점점 새로운 해몽을 저의 꿈에 덧대어갔던 것이란 생각이 듭니다. 이를테면 꿈보다 해몽이었던 거죠. 아니면 최인훈 선생이 어디선가 들려주었던 말이 오래도록 제 뇌리에 남았던 탓인지도 모릅니다. 오래전 일이라 어쩌면 저 혼자만의 기억이 최인훈 선생을 들먹이게 만든 건지도 모르겠는데 ‘한국의 지식인들은 유럽의 지식인들과 달리 망명을 할 수가 없어서 불행하다’는 말이 저는 이 땅의 숨막히는 현실, 분단의 현실, 상상의 한계를 미리 규정지어 버리게 만든 답답한 현실을 드러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제발 그만해둬. 나는 너의 인형은 아니잖아!

말은 삼천리 화려강산이라지만 반 토막 난 땅에 살다보니 어딜 가나 늘 고추장, 된장에 쌀밥, 김치를 먹고, 다 같은 모국어를 사용하는 탓에 몇몇 사투리의 단어 뜻을 몰라서 그렇지 서로 못 알아 듣는 말이 없고, 통하지 않는 곳이 없습니다. 근대화 이후 일일생활권이 된 덕분으로 전국 어디든 하루면 왕복할 수 있는 땅에 살고 있습니다. 망명은커녕 숨어서 못된 짓 한 번 하기도 어려운 곳이 우리가 살고 있는 조국입니다. 그런 탓인지 가끔 민족애(民族愛)의 발로와 전혀 상관없는, 지극히 개인적인 이유로 휴전선이 답답하고, 갑갑해지곤 합니다.

기차를 타고, 자전거를 타고 밑도 끝도 없이 먼 이역으로 달려가고 싶은 충동, 살다보면 실제로 하기는 어려워도 계획조차, 상상조차 할 수 없는 현실, 휴전선은 땅만 분단시킨 것이 아니라 우리들의 상상 속에도 이미 깊숙하게 자리하고 있다는 생각만으로도 숨이 막혀오곤 합니다. 조국을 떠나기 위해 우리는 섬나라 사람들처럼 배 아니면 비행기를 이용해야만 하기 때문이죠. 가도 가도 첩첩산중인 개마고원의 깊은 품에서 쌓인 눈을 견디지 못하고 부러지는 잔가지 소리를 들으며 하룻밤을 하얗게 지새워 보고 싶지만 이미 마음으로부터 불가능합니다.

우리는 태어나면서부터 가족, 학교, 사회에 이르기까지, 단일민족의 신화는 구성원들의 실제 혈연적 구성이나 유전적인 측면에선 사실이 아니라도 문화적으로는 매우 강력한 중심축으로 작동하는 것도 사실입니다. 그러다보니 가족은 때때로 남이 보지만 않는다면 가져다 버리고 싶은 족쇄가 되기도 하고, 한 번의 입시로 결정되는 학교라는 이력은 수단이 아니라 목적이 되어 평생 동안 발목을 잡는 굴레가 됩니다.

혈연, 지연, 학연은 네트워크를 형성하는데 큰 도움이 되지만 동시에 사회라는 거대한 매트릭스(네트워크)의 하부 구조 중 하나로 ‘나’라는 존재의 위치를 옴짝달싹할 수 없도록 규정짓는 틀이 되곤 합니다. ‘나’는 문화라는 거대한 매트릭스 속에서 한 번도 나 아닌 다른 존재, 아니 진짜 내가 서 있는 자리가 어디인지 고민해볼 틈도 없이 족보에 기록되고, 학적부에 기록되고, 주민등록부에 기록된 자로 살아가게 됩니다.

문화망명지라는 거창한 이름, 문화와 망명의 개념을 결합시키면서 나는 타락하지 않겠노라. 이곳에서 나의 깃발을 올리고 타협하지 않는 마음으로 홀로 비장하게 싸우다 장렬하게 산화하겠다는 결심은 아니었습니다. 그저 '바람구두'라는 익명의 페르소나 뒤에 숨지 않으면 안될 만큼 나약한 한 인간이 세상에 홀로 남은 것 같은 쓸쓸함과 변해버린 사람들과 세상에 대한 씁쓸함을 담아 누군가 나와 같이 세상으로부터 고립된 이들에게 보내던 유리병편지 같은 것이었습니다. 지금까지 인터넷 공간에 띄어 보냈던 무수한 유리병편지들은 때로 감당할 수 없을 만큼 많은 응답을 받았고, 때로 차라리 만나지 않았으면 좋았을 법한 인연을 만들기도 했습니다.

이 공간은 그 자체로 생명을 가진 것처럼 제 멋대로 무수한 인연의 가지들을 만들어냈습니다. 세상의 근원을 더듬어가며 우주의 끝으로 갔던 우주비행사가 마지막에 만난 것은 그저 심심하다는 이유로 우주를 만들어냈던 컴퓨터와 대면하게 되는 SF만화의 허무한 엔딩 장면처럼 어쩌면 “문화망명지”의 끝은 허무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종종 하게 됩니다. 나 스스로가 허무한 걸지도...

20년 전 그날, 20년 후 오늘

당신이 먼 이역으로 떠난다 하니 무심결에 이런 이야기를 하고 있군요. 망명지를 만들게 된 것은 물론 제 자신을 위해서였습니다. 어떤 의미에서 망명지는 네덜란드의 작은 이층집 다락에 아지트를 만들었던 안네 프랑크의 사랑스런 일기장 ‘키티’처럼 제게도 그런 공간 하나가 필요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던 탓입니다. 그런 마음을 먹기까지 저는 마치 살아있는 좀비처럼 온몸이 썩어가는 듯 불쾌한 느낌에 사로잡혀 있었습니다.

87년 고등학생이었던 제가 어떤 인연으로 당시 운동과 결합하게 되었는지를 설명하는 건 너무 구구한 사연이 될 듯합니다. 다만, 1987년 12월 명동성당이란 시대의 막간극 무대에 저도 잠시 편승했던 적이 있었다는 정도를 밝혀두는 것이 좋겠습니다. 우리 역사의 향방을 바꿀 수 있는 중요한 선거를 앞두고 50여개 학교, 200여 명의 고등학생들이 명동성당에 모여 ‘공정한 대통령 선거와 교육민주화’를 외쳤습니다. 그것이 세상 사람들 중 일부만이 기억하는 ‘서고련’의 명동성당 시위였습니다.

일제 치하부터 해방 이후 면면히 이어지던 고등학생 운동은 4.19혁명을 기점으로 역사의 물꼬를 트는 주요한 흐름 중 하나였으나 유신과 전두환 독재 시대에 이르러 사실상 그 맥이 완전히 끊겨 있었습니다. 중학교에서 고등학교에 이르는 치열한 입시교육과정 속에서 학생들은 대학 진학과 입신양명을 위한 입시기계로 전락해버렸던 시대였지요. 올해는 1987년 민주화운동으로부터 만 20년이 되는 시점이라 여러 매체들이 당시 운동에 참여했던 많은 사람들을 취재하고 기사화했습니다. 저도 몇몇 언론을 통해 그 당사자가 되기도 했지요.

조세희 선생은 1987년 12월 대선의 그 날을 ‘악이 드러내놓고 선을 가장하고, 선이 악에게 패배한 날’로 불렀습니다. 우리가 염원했던 민주화 20년의 역사는 처음부터 그렇게 잘못 시작되었습니다. 만 17살의 어린 학생이었던 당시의 저는 그 날의 충격과 비참함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비록 국민의 다수는 독재 권력의 하수인이자 후계자였던 노태우를 지지하지 않았지만 당시의 정치인들, 운동세력은 독재의 문민화를 전복시키는데 실패했습니다. 독재의 문민화 전략이 먹혀들고, 현실사회주의가 몰락하면서 명망 높았던 운동가들은 속속 전향 선언을 발표하기 시작했습니다.

민주화를 위한 투쟁경력은 제도권에서 자신의 입지를 쌓는 업적으로 변신되었습니다. 지역주의가 선거에서 가장 중요한 선택의 기준이 되자 그들 가운데 일부는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과거 독재 권력에 뿌리를 둔 정당에 투신해 새로운 지배 권력의 일원이 되었습니다. 민주화 20년의 역사는 동시에 전향의 역사이고, 패배의 역사였습니다. 어린 나이였던 제게 그 같은 일련의 흐름들은 대단한 충격이었고, 저 자신의 삶마저도 굴절시킬 만큼의 치욕으로 받아들여졌습니다. 저는 그로부터 거의 10여 년 간 냉소와 자기비하를 최선의 방책으로 삼았습니다.

20년 전, 그 날의 나는

당시 고등학생 운동 혹은 대학생 운동세력으로 하여금 출세와 성공이라는 일반적인 삶의 궤도를 이탈하게 만든 중요한 역사적 사건은 ‘5.18광주’였습니다. 국가가 국민에게 테러를 가했던 ‘5.18광주’는 우리로 하여금 이 나라 대한민국의 본질과 우리 앞에 민주주의의 얼굴로 미소 짓고 있던 미국이란 나라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만드는 기회가 되었고, ‘5.18광주’의 진실을 접했던 우리들은 시대와 양심의 부름에 호응하는 것이 청년의 의무라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20년 전 명동성당 시위를 마무리 짓는 비참한 현장에서 저는 두 가지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첫째. 진실을 깨우치게 된다고 해서 누구나 자신의 삶과 안위를 떨치고 일어나 진실을 바로 세우는 일에 동참하게 되는 것은 아니란 것이었습니다. 다시 말해 세상은 보이는 것과 다른 이면을 가지고 있으며 자신에게 직접적인 해가 되거나 이득이 되는 일이 아닐 때 사람들은 그것을 자신의 일처럼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로부터 제가 평생을 두고 공부하고 싸워나가야 할 것이 무엇인지 고민하게 되었습니다.

둘째. 이 싸움은 내가 평생을 전력투구한다 할지라도 도달할 수 없을지도 모르는 목표를 향한 투쟁이 될 것이란 깨우침이었습니다. 저는 진보란 축적되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진보란 당대의 현실을 고민하고, 모순을 극복하기 위한 투쟁을 말합니다. 그러므로 진보는 언제나 현실을 토대로 미래를 상상하는 겁니다. 마르크스주의가 지녔던 가장 강한 매력은 계급착취가 없고, 인간이 인간 그 자체로 대접받고, 존재하는 인간해방의 평등세상이란 구체적인 유토피아를 상정했습니다. 그것도 마치 역사의 법칙처럼 부르주아자본주의 생산력이 최고조에 달한 뒤 공산주의 세상이 도래한다는 엄밀한 사적 유물론에 입각한 것이었지요.

진실이 지닌 거의 유일한 딜레마는 진실이 진실로 존재할 때, 나머지 것들은 어쩔 수 없이 진실이 아닌 것으로 보일 수 있다는 겁니다. 현실사회주의의 몰락이라는 진실 앞에서 종종 저는 그 같은 딜레마를 경험합니다. 현실사회주의의 몰락과 그 원인은 진실이지만 그 진실이 진실로 존재하기 위해 자본주의 체제만이 유일한 대안으로 존재한다고 믿어지는 것 말입니다. 결론적으로 우리에게 20세기는 러시아혁명이라는 자본주의에 대한 대안체제를 실험하고, 결과적으로 그 실험이 실패함으로써 끝났습니다.

그 이후 현재까지 우리 인류는 자본주의 체제의 문제점에 대해서는 모두가 공감하면서 이를 극복할 만한 구체적인 대안을 마련하지 못하고, 자본의 신자유주의 세계질서에 떠밀려가고 있는 형국입니다. 자본주의 체제에 대한 비판과 반대는 가능하지만, 그 대안이 사회주의 혹은 좌파적 사유 밖에 없느냔 질문에 우리들은 아직까지 적절한 답을 내놓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담론의 위기’입니다.

그 대안을 마련하기까지 우리는 매우 오랜 세월, 어쩌면 20세기 자본주의의 성장 동력이었던 석유가 완전히 고갈될 때까지 지옥 같은 고통을 맛보아야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이유야 어찌되었든 대한민국이란 국가는 건국 당시부터 미국이 심어놓은 DNA에 따라 미국이 만들어낸 세계체제에 편승해 지금까지 먹고 살았습니다. 지금까지 우리가 미국을 애지중지하며 살아가는 이유가 단순히 과거의 혈맹이기 때문이라는 ‘의리론’에 입각해 생각한다면 큰 착각입니다.

우리는 미국을 중심으로 한 세계체제에 협조하면서 이득을 얻는 작은 제후국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의 고민은 때때로 국경을 넘어서는 것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작게는 대한민국의 보수우경화를 걱정해야 하지만 크게는 다음 세대에게 물려줄 미래가 존재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우려까지가 오늘날 진보를 고민하는 사람들이 품어야 할 고민은 근본적입니다. 너무 거창하지만 제가 생각하는 현실이 그렇습니다.

좌절이라면 좌절이었을 법한 그 경험 이후 97년까지 10년여를 방황했습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공장에 갔었고, 다시 막노동판을 전전하며 3년여를 보내다 대학에 진학했습니다. 그 무렵의 제가 스스로 대단히 불행하다거나 불운하다고 느끼지는 않았습니다. 대학을 졸업하고 작은 광고회사에 취직했고, 연애도 했으니까요. 그러나 세상에 대해 받았던 느낌은 오래도록 민감한 상처로 남았습니다. 버림받은 느낌, 상실감, 배신감에 저는 세상을 향해 실천 없는 냉소만을 보냈습니다.

작업장 마당에서 바라 본 작은 하늘

작년 12월 대통령 선거가 있던 날, 저는 그날처럼 비참하지는 않았습니다. 20년 전의 고등학생 무렵 여드름이 송송 맺혔던 시절 만났던 친구들을 20년 만에 만났기 때문일지도 모르죠. 20년 전 ‘서울지역고등학생연합’이란 결사체를 만들어 함께 활동하고, 거리를 뛰어다니고, 명동성당에서 농성을 함께 했던 마지막 날, 농성해산을 결정하면서 들었던 비참함이 워낙 컸던 탓인지 우리들은 2007년의 대통령 선거를 자못 침착하게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그날 이후의 제 삶이 이전과 같을 수 없다고 할 만큼 ‘그날의 기억'들은 현재까지도 제 삶의 중요한 자양분이자 아물지 않는 상처가 되고 있는 탓이었겠지요.

80년대 초반 어느 운동권 학생은 “슬픔도 노여움도 없이 살아가는 자는 조국을 사랑하고 있지 않다.”고 말했습니다. 이 말을 처음 들었던 순간의 감동은 지금도 잊히지 않습니다. 그러나 지금의 저는 이 말이 지극히 오만한 표현일 수도 있겠단 생각을 합니다. 그런 생각을 하게 된 것은 비정규직 법안 때문에 강제 해직당한 뒤 삼성 본관 앞에서 시위를 하던 삼성 비정규직 여성노동자가 썼다는 편지글을 접했기 때문입니다.

그 편지의 내용은 이랬습니다. 고등학교 졸업식 날 학교 운동장에 대기하고 있던 삼성 버스를 타고 공장기숙사로 직행했습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사회에 내딛은 첫 걸음은 그대로 학교의 연장이었습니다. 비정규직 보호 법안이 통과되고 법률이 실제로 적용되면서  강제 해직당한 이 분은 고교를 졸업한 18살 때부터 지금까지 하루 12시간 맞교대로 일하면서 회사와 집, 집과 회사를 오가는 다람쥐 쳇바퀴 돌듯 살았다고 말합니다. 김진숙 선생의 『소금꽃나무』란 책에도 나오는 이야기인데, 당신이 일했던 시절엔 숙련공이 아니어도 고등학교를 나왔다는 이유로 완장 하나 채워주고 관리자 보조로 다른 노동자를 감독하는 일을 시키면서 노동자 사이에도 벽이 만들어지도록 했다고 합니다.

막 학교를 졸업하고 공장에 들어선 노동자들은 노동자를 길러내는 학교에서 다른 학교로 진학한 셈입니다. 관리자들은 종종 부모인 양, 교사인 양 마치 학생들 다루듯 이들을 훈육했다고 합니다. 볼 일이 있어도 잔업 때문에, 할당량 때문에 쉴 수가 없었고, 자기 맘대로 하루 쉬었다고 해서 하루 종일 손바닥만 한 유리창을 닦도록 하거나 일을 시키지 않고 남들 일하는 기계 앞에서 하루 종일 세워두는 것처럼 부당한 처우와 인격모독을 당할 때도 이들은 스스로 항의해볼 생각을 못했다고 고백합니다. 왜냐하면 우리들은 학교에서부터 늘 그렇게 살아왔기 때문에 원래 세상이 다 그런 것 아니냐고 체념 속에 살았다고 합니다. 우리들이 실제 직장 속에서 경험하듯 말입니다. 세상은 원래 그런 것 아니냐고요.

이 분을 무시하려고 하는 말이 아니라 이 분의 편지를 읽고 난 뒤 저는 돌아가신 제 할머니가 생각났습니다. 7남매 중 맏딸로 태어나 학교 문 앞에도 가보지 못했던 할머니는 나중에 간신히 한글을 떼셨지만 평생 동안 학교에 보내주지 않았던 외증조부, 당신의 부모님을 원망하셨습니다. 할머니와 이야기를 나누다가 가끔 저는 할머니의 하늘이 꼭 저만 하겠단 생각을 했습니다. 우리는 모두 자신의 우물 속 하늘을 보고 있을 테지요. 아마도 18살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내내 공장에서 살아야 했던 그 분에겐 공장 마당에서 올려다 본 하늘이 당신이 알 수 있는 하늘의 전부였을 거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제 할머니가 그러했던 것처럼 말입니다. 제 할머니에게 조국이란 과연 슬퍼할 만한 대상이었을까, 조국을 위해 노여워해야 할 무엇이었을까? 조국을 사랑하지 않는다고 지탄을 받아야 하는 것인지 스스로에게 되묻게 됩니다.

되돌릴 수 없는 민주주의, 그러나 소외된 민주주의

저는 노동자의 노동자 정체성 문제는 나중으로 하고, 민주화 20년 동안 진행된 민주주의로부터도 그들이 얼마나 멀리 소외된 채 살아가고 있는가를 새삼 느끼게 되었습니다. 제가 언제나 과로 체제에 시달리며 먹고 사는 문제에 시달리고 쫓기는 이들이라서 이들이 바보 멍청이라고 이야기하려는 게 아닙니다. 다만, 그것이 80년대 이후 우리 사회가 누린 민주화, 민주주의의 진실한 결과였다는 말을 하고 싶은 겁니다. 슬프게도 지난 80년대로부터 시작된 민주화는 아직까지 일상의 차원, 문화의 차원까지 뿌리내리지 못했습니다.

물론 좀더 많은 사람들이 민주화의 과실을 얻어냈고, 우리들 역시 그 수혜자들입니다. 그러나 우리 중 많은 사람들이 해외펀드에 투자하고, 융자를 끼고 아파트를 구입했고, CMA통장에 월급을 넣어놓고 어떻게 하면 주식 재테크에 성공하여 보다 나은 중산층적인 삶을 살아갈 것인가 고민합니다. 모든 투쟁은 그 당사자들이 주체가 되어야 하고, 누구도 대신 싸워줄 수 없습니다. 지금 당장은 내가 아니지만, 청년 세대들이 우리를 대신하여 그 잔을 받고 있지만, 지금의 신자유주의 경제 질서 패러다임은 결국 우리 앞에도 쓴 잔을 내려놓을 겁니다.

선거가 있던 날, 친구들을 만나러 가면서 택시를 탔는데, 기사 분이 투표를 했느냐고 묻더군요. 그 분이 하시는 말씀의 개별적인 사안은 구구절절이 진보적인 대안을 찾고, 진보적인 성향의 문제의식을 가졌지만 결론은 이명박에게 투표했단 것이었습니다. 여론조사를 해보면 우리 국민의 절반 이상이 스스로를 진보적이고, 개혁적인 성향을 지녔다고 응답합니다. 그러나 투표결과는 그와 정반대로 나타나고 있지요. 지금 대한민국이 맞닥뜨리고 있는 이 결과, 누군가에게는 잃어버린 10년을 되찾은 듯 미소 짓고 있는 이 결과는 결국 좀더 많은 것을 알 수 있는 기회가 있었던 사람들, 좀더 많은 것을 알고 있는 사람들이 이미 예전에 했던 소리를 내가 이 나이 먹고도 또 해야 하나?

작년에 왔던 각설이도 아니고, 앵벌이도 아닌데 사람들에게 이 체제가 어떤 것인지 무엇인지 말하기도 귀찮고, 현재의 내 삶이 그럭저럭 살만하고, 길거리에 나앉을 정도가 아닌데 뭐? 다시 말해 이 일이 내 일이 아닌 걸 하며 안주해온 결과란 말입니다. 더 많은 걸 누릴 기회를 얻었던, 이 말은 위만 올려다보지 말고, 밑도 한 번 내려다보란 말입니다. 민주주의를 일상의 차원, 문화의 차원으로까지 만들어서 모두가 자신이 처한 위치를 알 수 있도록 더 이상 되돌릴 수 없다고 생각되는 단계까지 만들어가는 일, 그것이 현재의 우리가 해야 하는 일입니다.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일과 할 수 없는 말

지금으로부터 7년 전 아마 그 해 여름도 올해만큼 더웠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처음 “바람구두연방의 문화망명지”를 인터넷이란 망망대해에 띄울 때, 아마도 제가 만든 홈페이지는 익명의 바다에 떠 있는 작은 모래톱 정도도 되지 못했을 겁니다. 이제 나름의 시간이 흘러 태풍과 홍수, 범람과 가뭄의 7년 세월을 보내며 “문화망명지”는 익명의 바다에서 모여든 작은 산호와 모래알과 물고기와 이름 모를 2,500여 씨앗들이 날아와 섬이 되었습니다.

처음 홈페이지를 시작할 무렵의 저는 이제 막 결혼을 했고, 갓 서른이 된 이십대의 젊음과 십대 시절을 통과하며 온몸에 맺혔던 고통의 기억들이 생생한 사람이었습니다. 이곳에서조차 저는 종종 사막 한 복판에서 홀로 모래바람에 맞서는 것처럼 외롭고 쓸쓸했다는 걸 고백하렵니다. 사람으로 나서 사람처럼 살고 싶다는 믿음을 배신하도록 하는 건 언제나 사람이니까, 나 자신도 그런 사람의 부류에서 크게 달라질 수 없다는 거 너무 잘 아니까. 힘이 드는 것이겠지요.

어쩌면 이런 저의 쓸쓸함은 인간은 서로 연대하며 살아갈 수 있다는 믿음, 신념이 소년의 신기루처럼 허망한 유토피아였다는 깨달음, 80년대의 해방적 기획들 속에서 잠시 형성되었던 공동체의 따뜻함조차 알고 보면 거품처럼 얄팍한 것이었다는 서글픈 기억들로부터 비롯되었는지 모릅니다. 그럼에도 그 안에서의 나는 너무나 자유로웠고, 행복했으며 무엇보다 따뜻했었다는 일종의 향수병 같은 것에서 연유한 것일지도…. 하지만 그 시절이 아무리 좋았다한들 삶은 좋았던 한 시절의 기억만으로는 살 수 없습니다. 또한 그 시절의 기억이 과연 깊어가는 겨울밤 어린 아이들에게 군밤을 구워주며 그때는 모두의 인심이 넉넉하고 자유로웠던 태평성대였다고 회고할 수도 없었겠지요.

새로운 절망 없이 새로운 희망을 꿈꿀 수 없다고 짐짓 자신 있게 말하면서도 누군가와 술 한 잔을 나눌 때, 나는 내 말을 잘 믿지 못합니다. 나쁜 현재 없이는 보다 나은 미래에 대한 낙관과 희망도 존재할 수 없다고 믿습니다. 하지만 그 미래가 정말 나은 미래일지 누가 알 수 있겠습니까.

제가 만든 홈페이지의 이름이 “문화망명지”인 까닭은 근대 이후, 신(神)이 없어진 시대 이후, 인간 스스로가 만들어낸 이성의 신, 과학의 신, 역사의 신조차 믿을 수 없게 된 오늘날 우리들을 둘러싸고 있는 이 현실의 내부와 외부의 구분이 무의미해진 현재의 체제를 극복해보자는 의도를 담고 있습니다. 말은 거창하지만 거기에 도달할 방도가 저라고 해서 있는 건 아닙니다. 다만 지금 다른 세상을 상상해보는 일 이외에 무엇을 또 할 수 있을까? 희망도 없이, 말도 없이 사랑하는 일이 분명 허무할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이와 같이 내부와 외부를 구분할 수 없었던 시대가 지금이 처음은 아니란 겁니다. 같은 의미에서 서구의 중세 기독교 사회야말로 내부와 외부, 인간의 삶과 죽음까지 모두를 기독교라는 거대한 문명체계가 장악했던 시대입니다. 중세의 인간들은 탄생부터 삶과 죽음 그리고 이후의 세계까지 모두를 기독교라는 거대한 문화체계 속에 살았습니다. 그러나 이와 같은 문화 속에서도 인간은 다른 세상을 상상했고, 중세시대의 이단자들은 그와 같은 문화망명을 단행했던 이들이겠죠.

만약 제게 어떤 창조성이 숨겨져 있다면 그것은 서로 소통을 희망하는 공간을 만들어내고, 그 공간을 7년 동안 한결같이 지속해온 성실성일 겁니다. 하지만 제게 숨겨진 가장 큰 힘은 아마도 누군가와 더불어 세상과 자연, 우주에 대해 함께 이야기하고, 기뻐하고 싶다는 결핍의 감정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세상 모든 이에게 절망하면서도 다시 사람들에게 말을 거는 것은 결국 희망을 건다는 의미이겠지요. 그것이 아마도 모든 창조자의 힘이리라 생각합니다.

사람의 발목을 잡는 것은 절망이 아니라 체념, 사람을 앞으로 가게 만드는 것은 희망이 아니라 의지라는 것을 알게 되기까지 저에겐 꽤나 오랜 시간이 필요했었습니다. 오늘도 저는 희망도, 기대도 없이 사랑하고 있습니다. 이 짓을 왜 하느냐고 누군가 묻는다면, 사랑하는 일마저 멈춘다면 도대체 무슨 일을 할 수 있겠느냐고 되묻고 싶습니다.

그때 그때 최선을 다하고 시시한 후회 따위는 하지 않는 것, 어차피 사람은 그 정도 일밖에 할 수 없는 것이라고. 사랑하라! 희망도 없이, 말도 없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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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바람구두 windsho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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