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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0.11.05 최두석 - 달래강
달래강

- 최두석

임진강이 굽어 흐르다 만나는 휴전선, 그 달개비꽃 흐드러진 십 리 거리에서 부모 없이 과년한 오누이가 살고 있었다.
오누이는 몇 마디씩 고구마 넝쿨을 잘라서 강 건너 밭에 심고 돌아오는 길이었다. 갑자기 쏟아지는 소나기 고스란히 다 맞고 바라본 누이의 베옷. 새삼스레 솟아 보이는 누이의 가슴 언저리. 숨막히는 오빠는 누이에게 먼저 집에 가라 하고 집에 간 누이는 저녁 짓고 해어스름에도 아직 돌아오지 않는 오빠를 찾아 나섰다. 덤불숲 헤매다 반달이 지고 점점점 검게 소리쳐 흐르는 강물, 그 곁에 누워, 오빠는 죽어 있었다. 자신의 남근을 돌로 찍은 채.
하여 흐르는 강물에 눈물 씻으며 누이가 뇌었다는 말,
"차라리 달래나 보지, 달래나 보지 그래....."

*



최두석 시인의 이 시를 낭송해보면 웬만큼 뻔뻔한 이도 마지막 구절에 가면 절로 얼굴이 붉어진다.

인간의 여러 욕구와 감정을 일컬어 불가(佛家)에서는 오욕칠정(五慾七情)이라 하는데, 오욕이라 함은 인간은 다섯 가지 욕구를 말한다. 물욕(物慾)·명예욕(名譽慾)·식욕(食慾)·수면욕(睡眠慾)·색욕(色慾)이 그것이고, 희(喜)·노(怒)·애(哀)·낙(樂)·애(愛)·오(惡)·욕(欲) - 기쁨, 노여움, 슬픔, 즐거움, 사랑, 미움, 욕심 - 을 인간의 일곱 가지 마음이라 하여 칠정이라 한다. 사람들은 모두 저마다의 개성을 가지고 있어 속담 중엔 열 길 물 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알기 어렵다고 한다. 이는 오욕칠정이 시시각각으로 천변만화하여 사람의 마음이 변화하는 속을 알 수 없다는 것을 뜻한다. 그 모든 감정의 변화가 오욕칠정에 의한다고 옛선인들은 보았다.

최두석 시인의 이 시 <달래강>은 우리 전통의 구비설화인 "달래 고개 설화"를 시로 담아내고 있다. 달래 고개 설화와 관련있는 곳이 우리나라에 30여 군데나 있다는 것으로 보아 이 전설이 어느 특정 지역만의 것이 아니라 전국적인 이야기임을 알 수 있다. 지형에 따라 고개로 혹은 강, 산으로 변하는 이 전설은 다시 그 전설의 주인공들에 따라 오빠와 여동생이 되었다가 누나와 남동생이 되곤 하지만 그 구체적인 내용은 위의 시와 같다. 인간의 오욕 중에서 특히 마지막까지 강한 처벌 혹은 터부로 남은 것은 식욕에서는 인육을 먹는 카니발리즘에 대한 것과 근친상간에 대한 색욕이다. 이 시 <달래강>은 바로 그런 터부로부터 민간전승된 설화를 시의 한 가운데로 옮겨 두었다.

이 설화는 남자의 자살로만 끝나는 것이 아니라 여러 변종이 있는데, 그 중 어떤 것은 이 두 오누이가 결국 근친 관계를 맺는 이야기도 있다. 그런 경우의 결말은 대개 벼락이 쳐서 두 오누이가 죽게 된다. 그러나 이 설화의 이야기가 꼭 그런 비극으로 결말짓는 것은 아니다. 달래 고개 설화의 다른 변종이랄 수 있는 홍수 설화는 그와는 약간 다른 형태를 보여주고 있다. 마치, 성서에 등장하는 노아의 방주 이야기처럼 세상에 홍수가 나서 두 오누이 이외에 다른 남자와 여자가 없을 때 이 오누이는 두 사람이 결합해도 괜찮은가를 하늘에 묻고 하늘이 이에 대한 표징을 보여줌으로써 두 사람의 성적 결합을 용인해주는 사례 - 가령, 산 위에서 맷돌(종종 성적인 상징물로 사용되는)의 아귀를 맞물려 굴렸는데 떨어지지 않고 붙어 있다는 식의 - 를 보여준다.

인간의 욕구를 오욕으로 지칭할 때 물욕, 명예욕, 수면욕 등은 일종의 예의범절에 의하여 통제되는데 반해서 식욕과 성욕은 그와는 완연히 다른 터부로서 존재해 왔다. 그런 강한 처벌의 대상, 터부임에도 유독 민간의 전승으로서 "달래 고개 설화"가 끈질기게 살아남은 의미가 무엇일까? 윤리가 생명력을 이길 수는 없을 것이다. 난 그것이 우리가 말하는 민중의 생명력이라고 생각한다. 제 아무리 엄격한 도덕률로 인간을 통제하려 든다해도 살아남고 싶다는 인간의 태생적인 욕구를 이겨낼 수 있는 도덕은 없다. 지난 80년대 혹자들, 어떤 민중론자들은 민중의 무오류성을 설파하곤 했다. 어느 경우에라도 민중의 선택은 옳고 그들과 함께 하는 것이 지식인들의 의무인양 이야기하곤 했다. 난 이 말에 어느 정도는 동의한다. 다만 민중이란 말 대신에 사람이란 말을 대입한다면 말이다. 인간의 생존에 염치나 도덕은 없다. 그것이 내가 생각하는 인간의 비극이자, 장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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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바람구두 windsho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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