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망의 끝에서 - 에밀 시오랑 지음, 김정숙 옮김 / 강 / 1997년 3월


"죽음이란 생을 낭만화하는 원리이다. 생에 로맨틱(낭만적) 차원을 주는 원리이다" - 노발리스


 

희랍어 "아포리아"는 해결 방안을 찾을 수 없는 난관을 의미하는 말로 막다른 길이란 뜻을 함께 가지고 있다. 소크라테스는 상대방의 논리를 아포리아 상태에 빠뜨리는, 무지의 자각이란 교육법으로 젊은이들을 가르쳤다. 소크라테스의 제자 플라톤은 대화에서 로고스의 전개로부터 필연적으로 생기는 난관을 일컬어 아포리아라고 말한다. 아포리아란 철학의 막다른 길은 아니지만 말이 끊기는 곳에서 사유가 꽃핀다는 점에서 가장 "끊을 절 + 입구 = 철학"적이다. 


내가 위치한 지점(혹은 입장)을 어느 순간부터 자각하게 되었는가? 그 시기는 잘 알 수 없으나 그것을 자각하게 되는 순간부터 나는 망명을 꿈꾸었는지도 모르겠다. 한반도, 이론상으로는 대륙으로도 해양으로도 원하는 어느 방향으로도 뻗어나갈 수 있음에도 내가 살고 있는 남한, 대한민국은 대륙의, 그리고 해양의 섬이다. 바다를 통하지 않고서는 그 어느 곳에도 이를 수 없다. 그로부터 내 막연한 답답함과 로망이 시작되었다.


부산역에서 출발하는 열차를 타고, 대구, 대전, 천안을 거쳐 서울로, 서울에서 다시 열차를 터고, 개성, 평양, 신의주 그리고 다시 블라디보스톡과 사할린을 따라 모스크바나 키에프를 거쳐 폴란드 크라코프와 바르샤바를 지나 베를린에 이르는 대륙횡단열차를 타보고 싶다는 열망 말이다. 내가 갇힌 것이 아니라 대륙의 한 끝에 살고 있으며 내 사유의 연장이 휴전선 철책이나 현해탄을 건너야만 다른 세상으로 건네지는 것이 아닌 자유로운 분출과 두 발로 디디며 갈 수 있는 무한대의 경험을 나는 꿈꾸었다. 소박하게는 부산에서 출발하는 열차를 타고 막힘없이 한반도를 건너 대륙으로 그리고 유럽으로 통하는 대륙횡단철도를 이용해보는 것이고, 크게는 그 막연한 답답함의 뿌리인 분단과 냉전의 잔재와 금기들로부터 자유롭게 내 사고를 맘껏 풀어버려도 상관없는 시대를 살아보는 것이다.


한반도에서 태어난 조선인 가운데 디아스포라가 아닌 진정한 의미에서의 망명을 경험한 이는 과연 누구인가? 작가, 철학자가 자신의 모국어를 버리는 경험을 자발적으로 선택하는 일이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여기 한 명의 사람이 있다. 루마니아에서 태어났으나 젊은 시절 모국어인 루마니아말을 버리고 평생을 미혼으로 살아가면서 파리의 어느 다락방에서 짤막하지만 깊숙한 사유를 이어간 사람. 에밀 시오랑. 내가 그를 처음 접하게 된 것은 "작가세계"를 통해서였다. 작가세계는 국내 작가 1인과 외국 작가 1인을 지정해 집중적으로 탐구하는 기획을 특장점으로 하는 계간지였는데, 그 가운데 한 명이 에밀 시오랑이었다. 나는 그 잡지를 통해 에밀 시오랑을 처음 접하고 숨이 막히는 기분을 경험했었다.


그리고 때마침 출간된 에밀 시오랑의 이 책 "절망의 끝에서"를 구해 읽을 수 있었다. 그를 어떻게 불러야 할까? 철학자? 수필가? 그의 글을 특징짓는 형태는 아포리즘(aphorism)이다. 우리에겐 그저 짤막한 경구 정도로 이해되는 아포리즘은 격언이나 명언, 명구와는 다른 것이다. 이들 사이를 가르는 가장 큰 차이는 작가의 창작 유무이다. 에밀 시오랑은 아포리즘 형태를 빌어 그가 사유한 모든 것들을 가장 아름다운 프랑스어로 옮겨 두었다. 일설에는 지난 세기 프랑스인들이 가장 사랑한 문장가였다고 하는데, 프랑스와 루마니아는 그리 가까운 나라라 할 수 없다. 모국어를 버린 망명자의 글을 사랑한 프랑스인들과 모국어를 스스럼없이 버린 에밀 시오랑.


그는 1911년 4월8일 루마니아의 라시나리에서 태어나 1995년 파리에서 사망했다. 그는 늘 절망과 죽음을 이야기하고, 자살을 말했지만 오래 살았다. 그에겐 세상에 태어났다는 것 자체가 절망의 시작이자, 그를 절망의 꼭대기로 올리는 일이었다. 부카레스트와 베를린에서 철학을 공부한 그는 베르그송에 대한 박사학위 논문을 쓴다는 구실로 26세에 파리로 건너간다. 그러나 에밀 시오랑은 논문을 완성하지 않았다. 33세 되던 어느날 에밀 시오랑은 노르망디 해안 도시 디에프의 한 여관 방에서 말라르메의 시를 루마니아어로 번역하고 있었다. 그러다 문득 아무도 읽어줄 사람 없는 모국어에 절망한다.


유럽이란 세계 문화의 수도에서 살았으나 그는 변방인이었다. 그는 늘 철학적인 통찰이 돋보이는 글을 썼으나 철학자로 대접받지 못했다. 나이 마흔이 넘도록 그의 직업란엔 언제나 대학원생 혹은 번역가, 출판사의 객원편집자로 적혀 있었다. 그의 절망은 짤막한 신음처럼 잠언으로 터져나왔다. 그의 문장들은 푸른 빛이 어린 날카롭고 예리한 비수였다. 그의 문장 하나하나가 단순히 아름답기만 한 것은 아니다. 그의 문장은 무엇보다 인생의 비의에 대해 논하는 것들이었다. 그는 절망의 소크라테스였다. 에밀 시오랑은 젊은이들에게 인생에 기대할 것은 아무 것도 없다는 깨달음을 가르쳤다.


"우리는 죽음을 향해 달려가는 것이 아니라 태어났다는 재앙을 피하기 위해 달아나고 있다."


그에게 있어 "철학이란 번민과 괴로움을 위장하는 기술"이다. 그것은 번민과 괴로움 속에서 움트기 때문이다. 어쩌면 움이 튼다는 것은 생명력이 있어 보이기 때문에 그릇된 생각일지 모른다. 삶이 죽음보다 아름다울 이유는 어디에도 없지만, 나는 살아간다. 죽지 못해 살아가는 것이 아니고 죽기 위해 사는 것도 아니다. 죽지 않았기 때문에 사는 것이다. 청춘의 어느 연대기에 삶과 죽음이란 극명하게 갈리는 인생의 순간에 대해 고민해보지 않았을까. 에밀 시오랑은 인터넷 모 자살사이트처럼 죽음을 포장하거나 도피처로 권하진 않는다.  에밀 시오랑은 ‘죽음이 없다면 생은 용서할 수 없는 것이 될 것이다’라고 말하는데, 그의 말이 자살을 권장하진 않는다. "절망의 끝에서" 중에서 자살의 의미를 논한 그의 글을 보자.



"자살에서 중요한 것은 더 이상 살 수 없다는 사실이다. 그 느낌은 일시적인 변덕이 아니라 몸서리쳐지는 내적 비극에서 온다. 더 이상 살 수 없다는 사실을 삶의 긍정이라고 그래도 우기겠는가? 더욱이 자살의 서열을 정하다니 놀라울 뿐이다. 이유의 숭고함이나 천박함에 따라 자살을 분류하고자 하는 것보다 어리석은 일은 없다. 이유를 따지지 않더라도 자신의 생명을 제거했다는 것 자체만으로 충분히 충격적이지 않은가? 사랑 때문에 자살한 것을 비웃는 사람들을 나는 아주 경멸한다. 사랑에 빠진 사람에게 실현될 수 없는 사랑이란 자신을 규정할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하며, 존재의 완전한 상실을 의미한다는 사실을 그들은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다. 채워지지 않는 완전한 사랑에 대한 욕구는 존재의 분열로 귀착될 수밖에 없다. 내가 경탄해 마지 않는 인간들의 범주는 둘뿐이다. 어떤 순간에도 미칠 수 있는 사람들과 매순간 자살할 수 있는 사람들이다. 또 그중에 두 번째 범주의 사람들만이 내게 깊은 인상을 주는데, 그들만이 강한 정열과 큰 변화를 경험하기 때문이다. 자신들의 과거와 현재와 미래에 만족하면서, 순간순간의 확신 속에서 긍정적인 방식으로 삶을 경험하는 사람들을 나는 존경할 수밖에 없다. 이면의 현실과 끊임없는 접촉을 유지하는 사람들만이 내게 진실로 감동을 준다.


왜 나는 자살하지 않는가? 왜냐하면 내게는 삶만큼 죽음도 혐오스러우니까. 나는 내가 왜 이 지상에 존재하는지 전혀 모른다. 나는 지금 우주를 놀라게 할 울부짖음을 토하고 싶은 절박한 욕구를 느낀다. 전에 없던 포효가 내 안에서 솟구치는 것을 느낀다. 그 포효가 터져나와 세상을 뒤덮어버리지 않고, 나를 무 속에 삼켜버리지 않는 이유를 나는 모르겠다. 나는 나 자신이 역사 속에 존재했던 가장 끔찍한 존재, 불꽃과 어둠으로 가득 차 넘치는 참담한 짐승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무한히 수축하고 팽창하며, 죽으면서 동시에 성장하고, 무에 대한 희망과 모든 것에 대한 절망 사이에서 흥분하며, 향기와 독약을 들이켜고, 사랑과 증오로 불타오르며, 빛과 암흑으로 압살된, 그로테스크한 미소를 짓는 야수다. 나를 상징하는 것은 빛의 죽음이며 죽음의 불꽃이다. 내 속의 짧은 번득임은 꺼져 천둥과 번개로 다시 태어난다. 내게서 타오르고 있는 것은 무엇인가?"

<에밀 시오랑의 『절망의 끝에서』중 '자살의 의미'>


그가 절망의 꼭대기에서 자발적인 추락의 방법으로 자살을 선택하지 않은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언제라도 죽을 수 있다는 '자살의 가능성' 때문이었다. 언제라도 자발적인 선택으로 스스로의 인생을 막내릴 수 있다는 점에서 자살은 그에게 열린 가능성(동시에 죽음 역시 혐오스러운 것이었으므로)이었고, 그의 생을 연장시켜 주었다. 우리는 언제라도 죽을 수 있으므로 살아간다.


루마니아에서 태어나 서른의 나이에 프랑스로 귀화한 이 사람은 죽음에 대한 어떤 철학적. 종교적 설명도, 위안도 믿지 않았다. 죽음에는 어떤 형이상학적 의미도 들어 있지 않다. 삶이란 그저 죽음을 향해 일직선으로 나 있는 고속도로나 다름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삶과 죽음 사이에는 아무런 장벽도, 장애도 존재하지 않는다. 죽음은 생생한 육체의 고통과 두려움, 그리고 허무를 약속할 따름이다. 말하자면 죽음은 끝이다. 거기엔 아무 것도 없다. 이 치명적인 진실을 뿌리치지 않고 대면하면서, 천국이든, 지옥이든, 신이든, 악마든 기댈 수 있는 모든 것을 제거해낸 뒤 이를 대면하기란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나는 에밀 시오랑을 그런 사람으로 기억한다.


그것은 나 역시 마찬가지다. 언젠가 "자살"에 대하여 진지하게 고민한 적은 있었다. 철 나기 훨씬 전의 일이긴 하지만 나고, 살고, 죽고의 문제를 존재의 문제로 치환해서 고민해본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체질적으로 그런 류의 고민에는 취약한 의식구조 탓인지도 모르겠지만 자살을 생각했던 것은 87년을 경험하면서부터였던 것 같다. 그러나 그때조차 죽으려는 시도를 절박하게 궁리하지는 않았던 것 같다. 사는 게 어렵다는 것을 아주 일찌감치 깨우쳤으므로, 현세의 삶에 대해 고민하면 할수록 그냥 이 길의 끝을 가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기 때문이지도 모르겠다. 어차피 죽을 것을 미리 앞당길 필요는 없겠단 편리한 생각 덕이다. 죽는 문제가 내게 중요했던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내게는 언제나 사는 문제가 사무쳤기 때문이다.


에밀 시오랑은 있는 그대로도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다. 그의 글들은 비극적이지만, 그와 같은 이유로 희극적이다. 그의 글들이 뿜어내는 염세주의와 허무에도 불구하고, 그는 죽을 때까지 살아남은 사람이기 때문이다. 이 책을 절망의 막다른 골목에 서 있는 당신에게 권하고 싶다. 당신이 늙지 않은 사람이라면 더욱 좋겠지만, 설령 늙었다고 해도 괜찮을 것이다. 죽음은 언제나 당신과 한 몸이 되어 살고 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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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바람구두 windshoes

만철 :일본제국의 싱크탱크 - 고바야시 히데오 | 임성모 옮김 | 산처럼(2004)


혹시 "근대화연쇄점"을 기억하시는가?

내가 어렸을 때 "근대화"는 오늘날의 세계화 혹은 지역화처럼 유행어였던 모양이다. 구멍가게보다는 조금 크고 오늘날 우리가 마트 혹은 수퍼마킷이라는 호칭으로 익숙한 잡화점보다는 조금 작은 규모의 가게들 중에 일종의 체인점인지는 잘 모르겠으나 근대화연쇄점이라는 구멍가게가 있었다. 굳이 "근대화의 역군"이라든지 하는 우리 주변의 떠들석했던 여러 구호들을 들먹이지 않더라도 박정희 정권 아래에서 "근대화""반공"과 함께 최고의 이데올로기였다. 근대화가 의도하고자 했던 숨겨진 정서는 아마도 "못 살겠다 갈아보자""갈아봤자 더 못산다"던 이승만 정권 시절의 지긋지긋한 가난, 우리 민족 반만년을 억누른 배고픈 설움을 극복해보자는 것이었을 게다.

 

근대화의 핵심 키워드는 "우리도 한 번 잘 살아보세"였다.

"만철: 일본제국의 싱크탱크"란 책에 대해 말하면서 왜 느닷없이 "근대화" 타령인가, 그것은 "만철", 아니 "만주국"이 우리 근대화의 실제 모델이기 때문이다. 사람들에 따라 "근대화(近代化, modernization)"는 각기 다른 의미를 가지고 있다. 쉽게 정의되기 어려운 말이면서 시대 상황과 그 말이 쓰이는 장소에 따라 각기 다른 의미를 가지게 되는 말이다. 그렇다면 먼저 내가 생각하는 근대화란 무엇을 의미하는지 정의해볼 필요가 있다. 내가 생각하는 현재 시점에서 우리의 근대화는 크게 두 가지을 의미한다. 그것은 '산업화와 민주화'이다. 막스 베버식의 관점을 차용했을 때 근대화란 봉건사회의 시스템을 해체하고 자본주의 사회로 진입하는 것이다. 그것을 아시아 혹은 다른 여타 후진 사회에 도입했을 때 근대화는 단순하게 보자면 서구화 혹은 서유럽화를 의미한다.

 

그러나 이를 협소한 개념으로 보는 이들은 어느 한 사회가 다른 단계로 전이되어 가는 상황에서 응당 겪어야 하는 일종의 통과의례로 파악하기도 하는데, 이때의 근대화는 단순하게 서구화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어찌되었든 근대화는 문화적인 측면에서 보자면 "전통적인 사회"에서 "근대적 사회"로 이행해 하는 과정을 의미하고, 그런 의미에서 아시아의 근대화는 어찌 보자면 서구화(경제적으로는 산업화, 정치적으로는 민주화를 의미한다)를 의미한다.

이 책의 저자인 고바야시 히데오(小林英夫) - 같은 발음이지만 다른 한자를 사용하는 일본의 유명한 평론가 고바야시 히데오(小林秀雄, 1902~1983)와 착각하지 마시길 -  교수는 "대동아공영권, 쇼와 파시즘, 중일전쟁" 등 일제 침략사를 연구해온 일본의 중량급 역사학자다. 그의 연구 제목들이 알려주듯 그는 전쟁전 일본의 과거를 탐문하고 있다. 그의 저서 "만철"에서 종종 일본에 의해 피지배자들에 대한 연민의 정서가 묻어나는 것은 역시 그가 이런 관점에서 연구를 진행하고 있는 탓이다. 스티븐 E. 앰브로스의 저서 "대륙횡단철도"는 미국의 건국과 발전 과정에서 남북전쟁보다 더욱 중요한 사건을 대륙횡단철도 부설에 놓고 있다.


▶ 만주철도(전쟁 중에는 무장한 장갑열차들이 운행되었다.)


1865년 미국에서 시작된 센트럴 퍼시픽과 유니온 퍼시픽의 대륙횡단철도가 연결되는 대사업은 미국의 동부와 서부를 같은 시간대, 같은 공간대의 삶으로 이어주는 역할을 했으며, 나아가 대서양과 태평양을 이어주었다. 그리고 이것은 더 나아가 필리핀이 스페인 식민지에서 미국 식민지로 바뀌게 되는 과정, 20세기 최대의 사건이랄 수 있는 미국의 태평양 진출의 도화선이자 바탕이 되는 사상 초유의 사건이 되는 초석을 놓아기 때문이다. 중국은 상해와 같은 동부 해안으로부터 옌안과 같은 내륙으로 100km 들어갈 때마다 시대적으로 10년씩 뒤로 밀려난다고 한다. 근대화가 동부 해안 저지를 중심으로 이루어진 탓이다. 중국이 장강 삼협댐 건설과 같은 내륙의 개발에 열을 올리는 이유 역시 거기에 있다.

 

우리는 얼마전 고속철도가 개통되었다. 부산에서 서울까지 3시간만에 주파한다는 고속철도는 그러나 서울에서 멈춰버렸다. 만약 이 열차가 평양을 거쳐, 신의주, 그리고 블라디보스톡, 모스크바, 바르샤바, 베를린에서 파리로 이어진다면 우리는 반도국가라는 지리점 잇점을 십분 살릴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은 비록 일제강점기였기는 하나 우리의 선조들이 열차를 타고 만주와 세계를 향해 떠날 수 있던 시절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중국의 동북공정 문제로 새롭게 주목받기 시작한 만주와 고구려사, 과거 우리 민족의 활동 무대였던 만주, 연해주, 시베리아에 대한 관심을 불러 일으키는데도 이 책은 재미난 도입부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만주국과 박정희의 경제개발5개년 계획

그러나 무엇보다 우리가 지금 시점에서 만철에 주목해야 하는 것은 미국의 대륙횡단철도가 단순한 철도회사가 아니라 서부개척의 총본부였던 것처럼, 만철이 단순한 철도회사가 아니라 일제의 만주경영을 맡은 사실상 식민기구였다는 점이다. 그리고 더 나아가 일본이 일종의 모델하우스처럼 만들고 싶었던 나라 만주국의 실질적인 브레인이었다는 점이다. 그리고 오늘날까지 우리가 극복하지 못한 근대화 모델 박정희의 사상적 뿌리와 모델이 바로 그곳 만주에 있었다. 박정희는 만주의 신경(新京:現 長春)군관학교를 거쳐 1944년 일본육군사관학교를 졸업하였고, 8·15광복 이전까지 관동군에 배속되어 중위로 복무하였다.

 

우리가 이 책에서 만철보다는 만주국에 더 주목해야 하는 이유도 거기에 있으며, 저자 자신이 만철을 이야기하며 만철을 통해 만주국 경영 문제가 전쟁 전과 전쟁 후를 잇는 주요 맥락으로 살피고 있는 이유이다. 만주국은 전후인 1950년대 일본이 이룩한 경제기적의 기본 정책을 실험했던 곳이고, 현재 남북한의 지배 엘리트들의 양대 뿌리를 이룬 박정희와 김일성이 청년기를 보낸 곳이다. 만주는 동북아 근/현대사의 블랙박스인 것이다. 박정희만 만주 출신인 것이 아니라 박정희 정권 아래에서 최장기 국무총리를 지냈던 최규하 전 대통령 역시 만주국 관리 출신이란 점에 주목해 보자. 경제개발5개년 계획의 원형이 시작된 곳, 관치금융과 정경유착에 의한 재벌중심의 경제 성장 정책이 시작된 곳이  바로 그곳이다.


▶ 이만희 감독, <쇠사슬을 끊어라(1971)> 만주를 배경으로 한동안 즐겨 제작되었던 만주웨스턴 장르 영화는 서부영화의 대륙간횡단철도가 그러하듯 만주철도가 주요 배경으로 종종 등장한다.
 

근대화의 두 얼굴 - 착취와 풍요

이 책을 읽노라면 종종 이 책의 저자 고바야시 히데오가 간과하고 있는 몇 가지가 느껴져서 개운하지가 못하다. 그것은 고바야시 히데오가 만철의 낭만적인 면모에 몰입한 나머지 만철의 기본적인 속성과 숨겨진 의도를 적절하게 노출시키지 못하거나 가볍게 넘어가는 것들이다. 네덜란드는 인도네시아에 동인도회사를 건립한 뒤에 네덜란드를 식민지배했고, 영국인 인도에 동인도회사를 설립한 뒤 인도를 식민지배했다. 만철은 일본이 만주를 식민지배하기 위한 고육지책이었다는 사실을 간과해선 안된다. 일본은 민간회사를 가장해 제국주의적 침식의 한 수단으로서 만철을 이용한 것이다. 제국주의적 침탈을 실질적으로 주도한 일본 정부는 만철이 주도한 식민 침탈을 단지 민간회사의 실수로 자신들과 상관없는 일로 잡아 뗄 수 있었다.

 

앞서 우리 사회 근대화의 핵심 키워드는 "우리도 한 번 잘 살아보세"라고 말했다. 저자 고바야시 히데오는 만철의 경제개발, 경제발전에 주목하면서 만주철도와 근대화가 지닌 다른 어두운 측면을 손쉽게 건너띈다. 오늘날 지역사회에 침투해 들어온 거대자본의 유통업체들이 지역 사회의 작은 구멍가게들을 질식시키듯, 지역사회에 침투해 들어온 거대자본의 서점들이 지역 사회의 영세 서점들을 붕괴시키는 것처럼, 철도를 통해 이룩한 근대화(산업화)는 지역 혹은 한 국가, 민족의 자급자족적 경제 질서를 붕괴시키고 장기적으로는 자본주의적 팽창을 좀더 손쉽게 만들어 준다. 조선의 근대화가 단발을 강요했던 것처럼, 철도 부설을 위해 저임금과 비인간적 노동환경에 시달리던 식민지 조선 백성들의 얼굴은 고스란히 박정희 정권 시절의 근대화 역군들의 얼굴과 정확하게 오버랩된다.

 

우리는 경부고속도로가 세계 역사상 유래가 없을 만큼 싼 값, 최단기간에 건설되었다는 근대화의 업적에 도취해 종종 그 뒤안길에서 살인적인 노동강도, 안전없이 강행된 공사로 인해 77명의 노동자가 사망했다는 사실을 쉽게 망각하곤 한다. 마찬가지로 오늘날 참여정부가 추진하고 있는(기존의 대통령 자문기구인 '동북아경제중심추진위원회'를 '동북아시대위원회'로 개칭하고 그 구조와 기능을 크게 확대) 동북아시대위원회의 미래 비전은 종종 과거 만철과 일본이 추진하고자 했던 '대동아공영권'- 과는 질적으로 다른 것이기는 하지만 외형상으로 보았을 때 '동북아네트워크'를 구축하고자 노력한다는 점에서는 - 다른 성질의 유사한 지향을 보인다는 사실을 망각하게 만든다. 동북아네트워크 건설은 최근 중국의 동북공정문제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양날의 칼이기 때문이다.

 

우리 사회에서 근대화의 두 가지 덕목 중 한 가지인 산업화는 분명하게 성취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우리들은 아직도 전근대적인 방식으로 추진한 근대화의 후유증으로 인해 절름발이 근대 속에 놓여 있다. 우리는 서구에서는 일찌감치 통과해왔고, 이제는 극복의 대상이 된 "민족국가" 건설이란 측면에서 아직 절름발이 상태에 놓여 있고, 식민지 지배 마인드 속에 추진되었던 "경제개발계획"에 따른 산업화의 후유증 속에 놓여 있다. 더 나아가 우리는 근대화의 가장 중요한 덕목인 민주화의 추진과정에서 끊임없이 박정희 모델이라는 이전의 망령 속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고 있다. 정치적으로 중요한 싯점마다 되풀이 되는 과거 청산과 수구보수세력의 역공은 물론 그들 자체가 이땅의 견고한 지배 세력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는 문제도 있지만 민주화를 추진한다는 세력, 민주화를 성취하겠다는  개혁세력이 박정희 모델로 표현되는 근대화 이데올로기를 극복할 만한 대안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는 데에 더 큰 책임이 있다고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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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바람구두 windsho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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