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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1.02.08 반항아 제임스 딘 - 도널드 스포토 | 한길아트(1999)



반항아 제임스 딘 - 도널드 스포토 | 한길아트(1999)


“사람이 진정으로 위대해지는 것은 한 가지 경우뿐이다.
만일 사람이 삶과 죽음 사이의 간극을 넘을 수 있다면,
죽은 뒤에도 살 수 있다면 그 사람을 위대한 사람이라고 불러도 좋을 것이다.
어쨌거나 빠른 속도로 살아야 한다.”- 제임스 딘

 

언제던가 나는 “바람처럼 빨리 살고, 아직 젊을 때 죽어서, 아름다운 시체를 남기고 싶다. 그것이 나의 소망이다.”라고 일기장에 그렇게 적었던 적이 있다. 그 무렵의 나는 스스로 막장(漠場)이라 이름 붙였던 연립지하 단칸방 벽에 리바이스 청바지 회사에서 나온 제임스 딘의 커다란 포스터를 붙여 놓고 살았다. 내 방을 찾는 사람들은 간혹 뜻밖의 취향에 놀라곤 했다. 그랬다. 코카콜라를 마시는 일을 무슨 대단한 뇌물이라도 받아 챙기는 양 욕하곤 하던 시절이었으므로... 할리우드가 제작해낸 젊은 청춘 스타의 대형 브로마이드, 그것도 미제 청바지 회사의 광고 사진을 방에 붙여 놓다니... 그 무렵엔 제임스 딘이 나와 비슷한 소망을 품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 다만 그의 상처받은 듯 보이는 눈빛이 마음에 들었기 때문이었다.

 

도널드 스포토가 지은 제임스 딘 평전(한길사, 1999)을 읽다가 문득 평전에는 대개 필수적으로 딸려 있기 마련인 흔하디흔한 약력이 없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1931년 2월 8일 태어나 1955년 9월 22일 오후 5시 59분, 하이웨이 46과 41이 합류하는 지점에서 24살의 나이에 교통사고로 사망한 젊은이에게 별도로 소개할 만한 약력 같은 건 애초부터 없었을 지도 모른다. 제임스 딘이 영화배우로 활동한 기간은 불과 2년 남짓이었고, 그가 출연한 영화는 단 3편이었다. 그나마도 그의 생전에 개봉된 영화는 단 1편 “이유 없는 반항”이었다. 그의 나머지 대표작들 “에덴의 동쪽” “자이언트”는 그가 죽은 뒤에야 개봉되었다. 에드가 모랭은 『스타』(문예출판사, 1997)에서 대개 “할리우드 스타들의 신화적인 실제 생활의 절정기는 스크린에서의 그들의 절정기와 일치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제임스 딘의 실제 절정기는 스크린의 절정기와 일치하지 않으며, 그에 대한 신화는 그의 죽음으로부터 시작되었다.

 

1930년 그의 부모가 결혼할 때 나이는 아버지가 스물 두 살, 어머니는 불과 열아홉 살이었다. 이 두 사람이 갑작스럽게 결혼하게 된 것은 신부 밀드레드가 임신 2개월에 접어들었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선택에 의한 것이었다. 신랑 윈튼이 하룻밤 풋사랑으로 여겼을 법한 여인과의 하룻밤 섹스가 제임스 딘을 잉태시켰다. 내 거의 틀림없는 확신은 윈튼이 이 결혼을, 그리고 원치 않았던 아들을 그다지 사랑하지 않았나 보다. 요새보다는 이른 나이에 결혼하던 당시 분위기로서도 두 사람의 결혼은 이른 것이었고, 훗날 아내 밀드레드의 죽음과 함께 자식을 팽개치고 떠나버린 아버지로 인해 제임스 딘은 큰 상처를 받았고, 사람들을 믿지 않게 되었으며 마음을 쉽게 열지 못하는 고집불통의 아이가 되었다. 학교에선 어느날 멍하게 딴 생각을 하던 지미(제임스 딘의 애칭)를 선생님이 불러 야단을 쳤다. 어린 지미는 갑자기 반 아이들이 모두 지켜보는 가운데 울음을 터뜨리며 말했다. "어머니가 보고 싶어요."

 

아버지 윈튼은 결혼 생활 내내 그저 의무적인 역할만 했으므로 아들 지미는 어머니와 정신적으로 깊이 연루되었다. 그러나 열 살 무렵 어머니의 갑작스러운 죽음과 아버지에게 버림 받은 기억은 평생을 두고 제임스 딘에게 상처로 남았다. 제임스 딘에게 선천적으로 연기자 기질이 있었다면 그것은 아버지 윈튼 보다는 어머니의 성향을 이어받은 것이었다. 아버지 윈튼은 정기적인 수입이 있다면 그것으로 만족하는 사람이었지만, 어머니 밀드레드는 영화관에 가거나, 무용 발표회, 연극, 책 읽기를 즐겨하는 사람이었다. 두 사람의 결혼 생활은 계속 유지되었으나 남편은 의무에 충실한 아버지였을뿐 그다지 다정한 사람은 아니었다. 그럼에도 두 사람의 결혼 생활이 유지될 수 있었던 까닭은 어쩌면 대공황 때문이었는지도 모른다. 존 스타인벡의 『분노의 포도』에서 잘 묘사되고 있는 것처럼 파산한 수백만의 사람들이 길거리에 나앉아 일거리를 찾아 방랑하는 상황이었지만 윌튼은 재향군인 관리국에서 고정적으로 수입을 올릴 수 있었다. 어머니 밀드레드는 무미건조한 부부생활의 즐거움을 아들 지미에게서 찾으려고 했다. 그녀는 아들에게 늘 책을 읽어주었고, 노래를 불러주었으며, 축음기로 음악을 들려주곤 했다. 훗날 제임스 딘이 즐겨 읽었던 인디애나 주 출신의 시인 제임스 휘트콤 라일리의 시도 어머니 밀드레드가 좋아했던 것들이었다. 어머니와 자식은 정신적으로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었다.

 

나는 아버지를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아버지의 목표가 무엇인지, 어떤 사람인지 이해할 수 없었죠. 아버진 내 입장이 되어보려고 노력하지 않았죠. 어린 내가 보는 대로 보려고 하지 않았어요. 나는 늘 어머니와 함께 있었고 매우 가까웠죠. <반항아 제임스 딘, 도널드 스포토 지음, 정영목 옮김, 한길아트, 1999. 30쪽>

 

지미는 자신이 누구보다 뛰어난 재능을 가지고 있음을 알고 있었고, 이를 적절히 활용할 줄 알았다. 그는 조숙한 어린 아이들이 가질 법한 영리함과 더불어 가족에게 버림받은 경험이  있는 상처 받은 짐승의 경계심, 간교함을 함께 터득했다. 그는 타인에게 자신이 어떤 행동을 취할 때 관심을 이끌어낼 수 있는지 알고 있었으며 그것을 적절히 활용했고, 남들이 지켜보는 상태와 그렇지 않은 상태에서 정반대의 행동을 취하곤 했다. 다른 말로 하자면 그늘 늘 관객을 의식하고 있었다. 그는 칭찬 받는 일에 익숙했고, 좀더 많은 칭찬을 이끌어 내기 위해 노력한다. 그는 페어몬트 고등학교 재학 중에 아버지의 실망 - 아버지 윈튼은 미국의 아버지들이 흔히 그러하듯 아들에게 야구를 가르치며 아버지로서의 역할을 하고자 했으나 다섯 살의 어린 지미에게 심한 근시가 있어 자신과 야구를 잘 할 수 없다는 사실에 실망했었다. - 에도 불구하고 거의 모든 운동에 재능을 보였다. 그는 야구, 육상, 농구, 미식 축구 등에서 뛰어난 재질을 보였고, 농구부 주장을 맡기도 했으며, 장대 높이뛰기에서는 고교생 기록을 갱신하기도 했다. 또 모터 사이클 경주에 출전해 종종 우승하곤 했다.

 

그리고 지미는 뉴욕 액터즈 스튜디오의 최연소 단원이 되어 연기를 배웠고, 나머지는 앞서 이야기한 대로 영화 배우로서 청춘의 아이콘이 되었다. 험프리 보가트는 "제임스 딘은 제때에 죽었다. 그가 살았더라면 평새 가도 절대 이런 명성을 얻지 못했을 것이다."라고 말한다. 옮긴이는 "죽어서 아쉽다"가 아니라 "제때에 죽었다"는 표현으로 저자인 도널드 스포토가 이 책을 쓰게 된 계기가 바로 그런 궁금증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설명한다. 어째서 단 3편의 영화, 24살의 나이로 요절한 한 청년이 세대를 넘어, 시대를 넘어 계속 불멸의 존재로 남을 수 있는가. 저자인 스포토는 이 책이 단순히 24살의 젊은이에 대한 전기, 그의 양성애적 가쉽을 추적하고 밝혀내거나 성공하기 위해 어떤 노력을 기울였는가를 드러내는 수준낮은 전기에 그치길 원치 않았다. 그는 대신에 당시 미국 사회의 분위기와 제임스 딘이 어떻게 미국 사회에서 혹은 문화와 전통이 다른 나라들에서도 보편적인 청춘의 아이콘으로 자리잡을 수 있었는지에 대해 살핀다.

 

아이콘이란 상징과는 다른 의미이긴 하지만 그 사회와 시대의 정체성이 농축된다는 점에선 수 많은 이야기들을 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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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바람구두 windsho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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