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우와 유방(전3권)』 - 시바 료타로 | 양억관 옮김 | 달궁(2002)


요시카와 에이지와 시바 료타로


책을 열심히 읽는 이가 아니더라도 재미삼아 "내 인생의 책 10권"을 선정하는 일을 한 번쯤은 해보았을 것이다. 그렇다면 내 인생의 책 10권 중 하나는 틀림없이 "삼국지"에 할애해야만 한다. 그런데 불행히(?)도 내가 처음 접하는 "요시카와 에이지(吉川英治)"의 일어판 번역본이었다. 지난 10여년 동안 국내에서 "삼국지"가 여러 차례 다시 번역되거나 평역되어 발간되었다. 내가 기억하는 것만으로도 황석영, 이문열 등 작가의 이름을 내건 삼국지가 있고, 다시 그 판본을 어느 것으로 하느냐에 따라 청년사판, 범우사판 등 출판사마다 삼국지의 저본을 어느 것으로 했으니 자기네 삼국지가 정본 삼국지라고 주장하며 새로운 삼국지를 발간했었다. 어떤 의미에서 이런 삼국지 발간 붐은 요시카와 에이지가 뿌린 요시카와 에이지판 삼국지의 독소를 해독하기 위한 시도인지도 모른다. 일본식 역사 소설의 시작은 요시카와 에이지로부터 비롯되었지만, 그 완성자라 불리우는 사람은 바로 시바 료타로이다.

이 두 사람을 극명하게 가늠하는 것은 '요시카와 에이지가 책상 위의 원고지와 펜 하나로 소설을 탈고했다면, 시바 료타로(司馬遼太郞)는 트럭 한 대분의 자료가 필요하다.' 는 말이다. 요시카와 에이지의 "삼국지"에는 나관중의 원작엔 어디에도 없는 부분이 과감하게 삽입되어 있곤 한다. 가령, 유비가 낙양의 차를 구하기 위해 우여곡절 끝에 장비의 도움을 받고 부용 낭자를 만나 처음 사랑에 눈뜬다는 식의 에피소드는 원작 삼국지엔 없는 대목이다. 이런 에피소드가 기억나는 분이라면 요시카와 에이지판 삼국지의 영향력 아래 놓여 있음을 의미한다. 다른 의미에서 당신이 만약 와츠키 노부히로의  "바람의 검심"이나 히데키 모리의 "묵공" 등을 인상적으로 읽었다면 당신은 본의든 아니든 시바 료타로의 영향력 아래 있다고 생각할 수 있다. 종종 일본의 만화가들이 만든 역사만화들을 읽노라면 그들의 치밀한 고증과 역사에 대한 관심에 놀랄 때가 있다. 일본의 메이지 유신 당시의 정경과 사회 분위기를 이해하는데 나는 그 어떤 역사책보다 "바람의 검심"에서 더 많은 정보를 얻을 수 있었고, 춘추전국시대의 묻혀진 사상 묵가(墨家)를 상상 속에서 구현해내는데 "묵공"이란 만화의 도움을 얻었다.

일본의 국사(國士), 시바 료타로
- 한국에서 사(士)는 선비를 의미하지만 일본의 사는 사무라이를 의미한다

대관절 일본의 만화가들은 어디에서 그런 정보들을 얻을 수 있었을까? 그것이 어느 한 작가의 공로라고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일본은 세계 제1의 출판대국으로 다양한 분야의 다양한 책들이 출판되고, 중고도서의 유통망 역시 우리가 상상할 수 없을 만큼 정교하게 짜여져 있어 한 번 출판된 책이 영영 사라지고 없어지는 일은 좀처럼 일어나지 않는 나라이기 때문이다. 우리의 출판문화가 많이 발달했다고는 하지만, 아직 일본의 출판문화를 따라가기엔 먼 얘기이다. 우리는 이제야 비로소 "조선의 뒷골목" 풍경에 대한 책이 나오기 시작했지만, 일본의 경우엔 외국의 저자가 "도쿄이야기"를 펴낼 만큼 풍부한 자료들을 비축해놓고 있다. 한 권의 책이 나오기 위해서는 트럭 한 대분의 자료가 필요하다. 설령, 직접 그 책을 소장하고 있을 필요는 없지만 어딘가에서는 그런 이야기들을 상상해낼 수 있을 만큼의 사회적 문화 콘텐츠가 비축되어 있어야 한다. 그런 문화가 형성되어야만 요시카와 에이지도 책상머리에서 펜과 원고지만으로도 이야기를 만들어낼 수 있는 것이다.

나는 일본에서 그 길을 연 인물이 바로 '시바 료타로' 라 생각한다. 지난 1996년 시바 료타로가 73세의 나이로 죽었을 때 일본 요미우리 신문이 사설을 통해 '국사(國士)가 서거하셨다'라며 그의 위치를 국가적 스승의 위치로 승격시킨 것은 고인에 대한 공치사의 의미만 지닌 것은 아니었다. 시바 료타로. 본명은 '후쿠다 사다이치(福田定一)'로 1923년 일본 오사카 후쿠오카현에서 태어나 오사카외대 몽골어과를 졸업하고, 산케이 신문 오사카 지사에 입사한 그는 처음엔 저널리스트의 길을 걸었다. 그의 문장이 건조하면서 힘있는 문체, 특별히 명문장이라 할 수는 없어도 쉽게 이해되고, 이야기 전개에 빨려드는 문체를 지니게 된 것은 그가 처음 문장을 가다듬은 곳이 신문사였기 때문일 것이다. 1955년 "페르시아의 환술사"가 당선되면서 본격적인 작가의 길을 걷게 된 그는 5년 뒤인 1960년 "올빼미의 성"으로 나오키 문학상을 수상하면서 대중의 관심을 받기 시작한다. "올빼미의 성"은 지난 1999년 시노다 마사히로 감독에 의해 영화로도 제작되었는데, 일본 전국시대의 효웅 오다 노부나가(織田信長)와 도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 그리고 숙적 도쿠가와 이에야스(德川家康) 사이의 암투를 닌자(忍者)라는 존재를 통해 다룬다.


일본의 역사적 자부심 부흥

우리 역사에서도 정사(正史)가 있는가 하면 야사(野史)가 있듯 일본에서 닌자의 존재는 마치 우리의 '활빈도'와 마찬가지로 매력적이긴 하나 정사에 얼굴을 내미는 일은 거의 없는 존재들이다. 시바 료타로는 그들을 일본 문화의 한 가운데로 끌어낸다. 이외에도 그가 다루었던 역사 소재들은 오늘날에도 끊임없이 수많은 작가들에게 영감을 제공한다. 일본의 검성이라 할 수 있는 "미야모토 무사시",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시대를 여는 최대의 전투였던 "세키가하라 전투" 등등 그는 일본 역사의 주요 사건들을 그만의 시각으로 새롭게 해석하고 의미를 부여하며, 새로운 인물상을 발굴해낸다. 시바 료타로의 대표작이라 할 수 있는 것은 1966년 발표된 "료마가 간다"일 것이다. 그는 이 작품을 통해 일본 역사소설의 정상에 우뚝 서게 되고, 키쿠지칸 문학상을 수상한다.

"사카모토 료마(坂本龍馬)" 그가 어째서 그토록 일본인들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 있었을까? 그는 일본의 최대 격동기였으며, 근대화라 할 수 있는 메이지 유신의 전반기를 살았던 일본의 지사(志士)이자 풍운아였다. 처음엔 존왕양이파로 출발했던 그는 친서양파인 가쓰 가이슈(勝海舟)를 암살하기 위해 에도에 갔다가 그의 설득에 감화되어 오히려 가이슈의 제자가 된 인물이다. 이것이 뭐 그리 대단한 일이냐고 생각하신다면, 1894년 김옥균이 상해에서 자객 홍종우(洪鍾宇)에게 암살당하지 않고, 홍종우가 도리어 그의 제자가 되었다면 하는 상상을 해보라. 이렇듯 사카모토 료마는 역사의 중요한 시기에 일본 역사를 새로운 흐름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만든 중요한 역할을 담당한다. 사카모토 료마는 일본인들이 상상하고 좋아할 수 있는 인물, 일본인들이 그토록 중요하게 여기는 기백(氣魄)이 살아 있는 인물로 그려진다.


일본이 제2차 세계대전에서 패한 뒤, 일본인의 정신 속에서 이런 기백을 부흥시킨 존재 셋을 꼽자면, 아마도 교진(巨人)이라 불리는 요미우리(讀賣) 자이언츠 구단과 시바 료타로가 재창조해낸 인물 사카모토 료마, 그리고 일본 애니메이션의 신이라 불리운 데즈카 오사무(手塚治蟲)의 아톰. 이렇게 셋을 꼽을 수 있다. 시바 료타로는 그렇게 일본인들이 가장 좋아하는 말을 부활시켜 놓았다. 기백(氣魄)! 우리 말로 '넋'이라 번역할 수 있는 이 말을 일본인들은 참 좋아한다. 백(魄)이란 한자에서는 어쩐지 같은 백(白)을 사용하는 박(迫)자의 느낌이 난다. 압도해오는 느낌이랄까. 도검(刀劍)을 숭상하는 민족이라 그럴지도....

앞서 일본의 역사만화들에 대해 잠시 이야기했는데, 특히 일본 만화는 결말 부분에 가면 모든 것이 일본으로 환원되는 구조를 갖추고 있어 마지막에 가서 한국인으로서는 맥빠지는 경험을 하곤 한다. 가령, 만화 "묵공"에서 주인공은 결국 중국에서 묵가의 정신을 펼치는데 실패하고 일본, 지팡구에 간다. 칭기스칸도 우연히 일본에 와서 한 수 가르침을 익히고, 몽골로 돌아가 천하를 통일한다. 일본만화 속에 종종 등장하는 역사적 사실은 진실을 가장하고 있지만 진실이 아니란 점에서 의사역사(疑似歷史)이고, 이를 부추긴 책임에서 시바 료타로는 자유로울 수 없다. 시바 료타로는 일본의 역사에서 한 발 더 나아가 대륙의 역사, 중국의 역사에 관심을 기울인다.

일본의 역사관과 동아시아 역사관의 차이
-민중을 어찌 볼 것인가?

"항우와 유방"을 읽으며 - 나를 민중주의자로 구분해야 하는지는 잘 알 수 없으나 - 께름직한 느낌을 감출 수 없었다. 마치 "엑스 파일"의 주인공들만이 온세상이 외계인의 존재를 눈치 채지 못하고 바보처럼 행복의 진구렁 속에 있을 때 이들을 구원해야만 하는 소수의 깨어있는 지식인 행세를 하는 것처럼 시바 료타로의 "항우와 유방"에 등장하는 주변 인물들은 모두 신랑신부를 장식하기 위한 들러리들에 불과한 것처럼 그려진다. 어쩌면 그것이 일본의 역사적 전통에 해당하는 일인지도 모르겠다. 한 번도 제대로 된 민중혁명, 민란을 경험하지 못한 나라 일본의 한계 말이다.

이렇게 말하면 왜 일본에 민란이 없었는가 하고 되물을지도 모르겠다. 아마쿠사 시로우 토키사다도 있지 않은가 하고 말이다. 일본 역시 수많은 민란을 거쳐 왔으나 일본 역사에서 민중이 주된 주체로 떠오른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하고 되물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일본의 역사에서 민중은 주로 수동적인 존재로서 동원의 대상이 된 반면 우리의 민중이란 역사적으로 수많은 외침을 통해 주체적으로 무장한 경험이 있다. 즉, 조선시대의 예만 놓고보더라도 민중이 자발적인 무장을 통해 의병을 형성해 지배계급을 구원하는 사례가 많았으므로 그에 따른 문화 전통은 무시할 수 없는 것이 된다.

일본의 전쟁은 철저히 내부적인 요인에 의한 것이 많았던 반면에 우리의 전쟁은 철저히 외부적인 요인들에 의해 민중의 자발적인 동원없이는 지배계급이 지탱할 수 없었던 경험의 차이가 오늘날 한국과 일본의 결정적인 차이로 작용한다. 그것은 현재 일본의 시민운동과 한국의 시민운동이 보여주는 형태의 차이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이 책 "항우와 유방"에서도 시바 료타로의 철저한 역사고증은 역시 돋보이는 대목이다. 시바 료타로가 중국의 고전들 특히 역사서들을 탐독해왔을 뿐만 아니라 실제 자신의 발로 중국의 역사 현장들을 찾아다닌다.

이 소설 "항우와 유방"에서 중요한 소재와 배경 중 하나로 등장하는 중국의 식량창고에 대한 묘사 역시 그의 이런 자료 수집 열정을 통한 것이다. 이 책 "항우와 유방"은 매우 재미있는 소설이지만, 같은 의미에서 매우 재미가 없다. 이것을 시바 료타로의 소설의 한계라고 한다면 필부의 식견이라 미안한 이야기겠지만 그의 소설들이 일본의 이야기를 다루는 동안엔 재미있지만, 그의 소설이 일본이란 작은 섬나라를 벗어나 대륙으로 넘어가면 어딘가 한 귀퉁이가 허물어진 듯 느껴지는 까닭 그것은 시바 료타로가 사람의 바다, 즉 인해(人海)로서의 중국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시바 료타로가 일본의 역사소설가 중 최고의 자리에 놓인다면 중국에서는 누구를 손꼽아야 할까? "나관중"을 그 자리에 놓는다고 해서 이견을 달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이 책 "항우와 유방"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항우와 유방을 제외하고도 수많은 인물들이 있다. 그러나 책을 덮고 난 뒤 기억에 남는 인물들은 거의 없거나 기억에 남는다고 해도, 항우와 유방을 제외하고는 그 의미가 생생하게 살아나는 이가 없다. 만약 시바 료타로의 "항우와 유방"만을 읽은 이라면 중국 역사상 가장 드라마틱한 사건인 진말한초의 역사가 밍숭하기 짝이 없는 것으로 기억될 것이다.

우리에게 수많은 고사들을 전해준 장자방 장량과 한신, 범증과 번쾌, 소하와 조참, 하우영과 전영 등등 이 시기를 주름잡았던 인물들의 이야기는 그저 스쳐가는 풍문처럼 전해지고 만다. 우리는 한 가지 질문을 던져야 한다. 시바 료타로를 나관중의 반열에 놓아도 좋은가? 하고 말이다. 이것은 여러모로 불리한 게임이다. 삼국지는 나관중 한 사람의 작품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리고 삼국지의 저자가 나관중이 정말 맞는가 하는 문제는 셰익스피어가 과연 실존하는 인물이었냐는 질문만큼 오랫동안 수수께끼로 남아 있다.

앞서 조선과 일본의 차이를 민중의 차이로 이야기한 바 있다. 물론 조선은 전제왕정의 국가였다. 하지만 조선에서 소위 '백성'이라 불린 민중을 제외하고 기술되는 역사소설을 오늘날 우리들이 상상할 수 있을까? "장길산"이나 "임꺽정"에서 민초들을 배제한 상황에서 이 역사소설들을 읽어낼 수 있을까? 마찬가지로 중국에서 "인해(人海)"를 제외하고 기술되는 역사소설이 과연 뚜렷한 생명력을 가질 수 있을까? 그것은 삼국지를 보면 알 수 있다. 삼국지를 일견 세 영웅, 조조와 유비, 손권의 세력 다툼만으로 보는 사람은 삼국지를 제대로 읽은 것이 아니다. 삼국지의 바탕에 깔려 있는 것은 바로 인해이다. 삼국지만큼 민심의 동요와 그에 따른 영웅들의 성쇠를 주도면밀하게 다루고 있는 역사소설도 매우 드물다. 유비가 그토록 오래 버틸 수 있었던 이유 그것은 제갈량과 결의 형제들만의 덕이 아니었다. 그것이 가능하게 만든 것은 바로 민심이었다는 것을 저자 나관중은 끈질기게 설득한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의 제목을 살펴보자. "항우와 유방"이다. 어떤 의미에서 이 책의 주인공은 "유방"이 아니라 "항우"이다. 시바 료타로는 승자가 아닌 패자로서의 항우에 좀더 매력을 느끼고 있는 듯 보인다. 책의 전개 역시 유방이 어떻게 승리했는가하는 것보다는 항우가 어떻게 패배하게 되었는가에 중점을 두고 있는 듯 보인다. 유방은 중국의, 혹은 중국 민중의 표상처럼 묘사되고 있으며, 중국의 민족성을 그대로 상징하는 인물로 평가받는다. 유방의 전술은 기본적으로 마오쩌뚱에게 고스란히 전수된다. 1927년의 호남폭동에 실패한 마오쩌뚱은 불과 1천여 명의 패잔군을 이끌고 호남성과 강서성의 접경지역에 있는 정강산으로 퇴각한다. 그는 이른바 `정강산 투쟁`을 전개하면서 마오만의(사실은 이미 유방을 비롯한 중국 왕조 건설의 역사적 전통에 기반한) 농촌혁명전략을 구체화시킨다. 그는 농민의 지지를 바탕으로 홍군을 조직하고 `혁명 근거지`를 구축하고, 유격전술에 입각하여 지구전을 전개함으로 농촌이 도시를 포위하여 혁명을 승리로 이끌어 간다는 농촌혁명전략을 세운다.

인해(人海): 사람의 바다를 이해하지 못한 시바 료타로

사람들은 중국의 인해전술을 단순히 머리수로 밀어부치는, 사람을 총알받이로 내세우는 전술인양 오해하지만 그건 인해전술에 대한 대단한 착각이다. 중국의 인해전술은 단순히 사람의 머리수로 밀어부치는 전술이 아니라 사람의 마음을 얻어 사람의 바다에서 물고기처럼 유유히 헤엄치며 승리하는 전술이다. 미국 등 자본주의 제국들의 강력한 지원을 등에 업은 국민당 군대는 결국 사람의 바다에 빠져 익사한 것이다. 이때 마오는 유방이고, 장쩨스는 항우가 된다. 그러나 어찌된 까닭인지 시바 료타로는 유방보다는 항우를 더욱 부각시킨다. 그는 마오보다 장쩨스가 좀더 좋았던 모양이다. 시바 료타로를 읽는 것은 이렇듯 여러모로 재미있는 경험이다.

작가와 두뇌 싸움을 벌이며 어떤 대목에서 작가는 어째서 이런 표현을, 이런 대목을 이렇게 묘사하고 있는가를 심리적으로 겨뤄가며 읽을 수 있는 체험을 하도록 해주는 이는 오늘날 참 드물다. 분명한 건 나는 황석영의 삼국지보다는 이문열의 삼국지가 재미있고, 이문열의 삼국지보다는 고우영의 삼국지가 보다 더 재미있다. 그러나 내가 동의하는 시각은 이문열도, 고우영도 아닌 황석영의 시각(황석영의 삼국지에 황석영의 것이라 할 만한 시각이 두드러지지 않는다는 것이 나로선 앞서 삼국지에 대한 나의 시각이 옳았다는 것을 새삼 확인할 수 있는 대목이기도 했다. 나관중은 이미 민중을 바탕에 깔고 있었기에 새로운 평역은 그에겐 사족일 것이기에)이다.

시바 료타로의 책은 재미있다. 그에게는 그만의 사관이 있고, 그가 펼쳐놓는 여러 장치들, 가령 역사적 고증이나 인물에 대한 그만의 해석 솜씨, 부분적으로 동의할 수밖에 없게 만드는 사건에 대한 의미 재부여 등을 갖추고 있다. 만약 시바 료타로식 표현법을 빌어 말하자면 그와 나는 적이지만, 나는 그를 인정하고, 존경한다. 하지만 기회가 온다면 나는 그대의 목을 베어주리라. 한편에서는 시바 료타로를 두고 국수주의적이라는 비판을 가한다. 그도 그럴 것이 그의 서술에는 일본 중심주의가 두드러진다. 일본 만화들 혹은 문학작품들에서 두드러지는 것들 중 하나는 선과 악의 경계가 매우 모호하다는 것이다.

대표적으로 "슬램덩크" 하나만 놓고보더라도 이 만화에 등장하는 그 어떤 악한 캐릭터도 궁극적으로 악하지 않다. "바람의 검심"에 등장하는 악한도 궁극적으로 악한 것은 아니다. 그들 나름의 사연을 가지고 있으며 그들 나름의 이유를 가지고 싸운다. 메이지 유신 당시 사카모토 료마를 죽인 것으로 추정되는 막부파의 무사집단 신선조(신센구미) 역시 그들의 명분을 가지고 일본을 위해 싸운 존재가 된다. 료마가 주인공이라도 신선조 역시 나쁜 이들은 아니다. 그들은 각자 자신이 옳다는 것을 위해 싸운 것뿐이고, 죽은 료마도, 죽인 신센구미의 무사에게도 죄는 없다. 이것이 일본식이다.

한.중.일 동아시아 삼국은 모두 피흘린 근대화를 경험한다. 이들 세 나라는 모두 내전을 경험하며 근대화에 도달한다. 중국은 국공내전을 한국은 한국전쟁을 치뤘다. 그리고 일본 역시 존왕양이파와 막부파 사이에서 내전을 치른다. 그러나 중국과 한국의 내전과 일본의 내전엔 결정적인 차이가 있다. 중국과 한국의 내전엔 체제 대결, 이념 대결의 요소들이 있는 반면, 일본의 내전엔 그것이 없었다. 이 말을 우리의 개화기에 접목시켜 보면 이렇다. 김홍집 내각은 친일적인 인사들로 구성된 내각이었다. 그러나 이때의 김홍집을 친일파로 욕하지 않는다. 이때의 친일파라는 것은 일제강점기의 친일파와는 다른 의미이다. 척사파와 개화파를 두고 우리는 어느 일방을 편들 수 없다. 그들 모두 나름의 의미를 가지고 그들의 방식으로 애국한 것이 되기 때문이다. 그것이 일본과 한국, 중국의 결정적 차이 중 하나를 낳았다고 생각한다면 지나친 억측일까?

일본 역사의 악역은 외부로부터 온다
- 엘리트주의, 국수주의, 냉소주의

일본의 역사에서 악역을 담당해야 할 존재가 없다보니 일본의 역사에서 악역은 주로 외부에서 온 것들이 된다. 앞서 일본의 민란이 없었다고 말하면서 실제 했던 민란의 주인공 '아마쿠사 시로우 토키사다(天草四郞)'를 말한 바 있다. 어떤 의미에서 아마쿠사는 국수적이고, 폐쇄적인 국가 일본이 상상해낼 수 있는 역사적 요수의 이미지를 그대로 담고 있다. 그는 외국의 종교인 기독교를 받아들여 민란을 일으킨다. 기독교의 혁명적 요소들이라 할 수 있는 만민평등은 막부를 무너뜨리는 그들의 이념이 될 수 있었지만, 종교란 기본적으로 혁명의 이념으로 삼기엔 불완전한 것이었다. 결국 아마쿠사의 난은 가혹할 정도로 철저히 짓밟히고 만다. 일본에서 악은 내부에서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 철저히 외부로부터 들어오는 것이다. 후지타 가츠히로의 만화 "요괴소년 호야"에서 절대적인 악으로 그려지고 있는 "백면인"의 존재도 일본 내부에서가 아닌 외부에서 들어온 악마적 존재를 일본의 소년과 일본의 토착 요괴들이 힘을 합쳐 물리치는 내용으로 구성된다.

일본 작가들의 작품들 가운데 역사적인 사건들을 배경으로 하는 것을 읽을 때마다 내가 느끼는 갑갑증의 원천은 사실 '시바 료타로'로부터 비롯된 것인지도 모르겠다. 국적을 가지고 작품 세계를 논하고 싶지는 않지만, 일본 작가들 가운데 일부에게서는 확실히 "반민중적 엘리트주의"와 "국수주의" 그리고 세상 만사를 일종의 파워게임으로 해석하고자 하는 "냉소주의"가 물씬 풍겨난다. 나는 "항우와 유방"에서도 역시 그런 갑갑증을 느꼈다. 그가 죽은 뒤 일본에서는 시바 료타로상을 제정하여 뛰어난 저술을 남긴 작가들에게 이 상을 수여해왔다. 이 상의 1회 수상자가 "다치바나 다카시"였고, 제2회 수상자가 "시오노 나나미", 3회 수상자가 "미야자키 하야오"란 것을 생각해보면 시바 료타로상과 그 상의 실제 주인공이라 할 수 있는 시바 료타로가 어떤 인물이었는지 유추해보는 것은 어렵지 않다. 어떤 의미에서 시바 료타로의 진정한 계승자는 바로 "시오노 나나미"일 것이다. 위에서 말한 일본 작가들의 세 가지 요소 "반민중적 엘리트주의", "국수주의", "냉소주의"를 가장 잘 실천하고 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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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바람구두 windshoes

『에도의 패스트푸드 : 죠닌의 식탁, 쇼군의 식탁』 - 오쿠보 히로코 | 이언숙 옮김 | 청어람미디어(2004)


에드워드 사이덴스티커의 『도쿄이야기』를 읽고, 나는 묘한 질투심에 사로잡혔었다.  1921년 미국 콜로라도 주에서 태어나 컬럼비아·하버드·도쿄 대학에서 일본문학을 전공한 벽안의 외국인이 빠져든 '미시마 유키오, 다니자키 준이치로, 가와바타 야스나리'는 어떤 존재들이었을까. TV에는 종종 한국에 빠져든 외국인의 모습을 보여주지만 아직까지 우리 문화의 진수랄까, 내면을 깊숙이 이해하고 그에 대해 책을 쓴 외국 학자의 모습을 발견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단지 그뿐이라면 질투심이라고 하기엔 미약한지도 모르겠다. 서양사가 미시사까지 속속들이 이를 수 있는 바탕엔 작은 도시 시청 지하실의 문서고에 저장된 중세 서민의 출생신고 서류뭉치를 비롯한 시의 장부들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동아시아 삼국 가운데 사실상 유일하게 외국의 침탈이나 식민지화 과정을 거치지 않은 일본이기에 문화의 단절을 경험하지 않은 일본이기에 외국인인 에드워드 사이덴스티커가 도쿄이야기』 같은 책을 쓸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나의 질투심이란 어쩌면 그런 류의 것이리라.

 

우리의 경우를 살펴보면 조선이란 확신에 찬 도학자들의 국가는 양대 왜란(임진, 정유년)과 양대 호란(정묘, 병자년)을 겪으며 국가의 중추가 부러지는 최악의 국가 위기 상황을 맞이한 뒤 결국 이를 회복하지 못하고 나라를 일본에 빼앗긴 것이라 할 수 있다. 우리에게 근대의 경험이 주체적인 것이 되지 못한 이유는 여러가지가 있겠지만, 그 중 하나는 분명히 이렇듯 국운융성기가 아닌 국운쇠퇴기에 들이닥친 외부적 요인들에 능동적으로 대처할 수 있는 국가적 에너지와 능력이 쇠퇴한데서 비롯된 것은 아닐까. 어찌되었든 기록을 중시했던 조선시대의 자료들조차 양대 전란을 겪으며 미처 회복하기도 전에 다시 국가를 빼앗기는 사태가 빚어지고 우리 역사는 커다란 굴절을 겪게 된다. 조선시대의 양대 전란은 해양세력과 대륙세력의 과도기에 각각 조선을 상대로 벌인 전쟁이라 할 수 있지만, 한국전쟁은 이데올로기적인 관점말고 단순히 정치역학적인 관계로만 보았을 때는 한반도를 전장으로 대륙세력과 해양세력이 격돌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한국전쟁은 그나마 보존되던 우리 사료를 또 한 차례 불살라버리고 만다.


 덴푸라(天ぷら) 같이 현재 일본을 대표하는 음식 역시 에도시대 죠닌들의 주요 간식 거리가 발전한 것이다.

일본단기대학 생활과학과 교수인 '오쿠보 히로코' 『에도의 패스트푸드- 죠닌의 식탁, 쇼군의 식탁』은 에도 시대(도쿠카와 시대, 1603-1867)의 일본 '에도(도쿄)'를 풍미한 음식들 덴푸라(天ぷら), 스시(すし), 소바(蕎麦) 등을 바탕으로 당시 일본의 생활사를 짚어보이고 있는 책이다. 부제격인 죠닌의 식탁, 쇼군의 식탁에서 알 수 있듯 상하귀천의 음식 문화를 일본인 특유의 섬세한 시각으로 들여다 본다. 마치 우리가 에도의 번화가 뒷골목 포장마차에 앉아 소바 그릇을 놓고, 덴푸라를 먹고 있는 것처럼 말이다. 에도시대는 도쿠가와 이에야스(德川家康)가 정이대장군(세이이다이쇼군, 征夷大將軍)에 임명되어 도쿠가와 막부(幕府)를 개설하면서부터 시작된다. 장장 260여년간 지속된 에도 시대는 막부 성립 이후 100년간을 전기, 18세기 전반부터 19세기 전반에 이르는 시기를 중기, 그 이후 막부의 멸망에 이르는 과정을 후기로 본다.


오늘날 중국의 전통 복장이나 풍속 중 상당수가 만주족이 세운 나라인 청(淸)의 것인 것처럼, 우리에게 조선은 아주 먼 과거 우리 민족이 세운 여러 나라들 중 하나가 아니라 지금도 단절과 굴절, 변화와 지속을 거듭하며 이어지는 나라이다. 에도시대를 주목해보아야 할 이유는 우리에게 조선이 식민지시기를 거치며 현재의 대한민국에 이르는 것처럼 일본에게 있어 에도 시대는 역시 그들이 현재 탈아입구하여 서구화된 바탕 깊숙한 곳에 자리하고 있는 일본적인 것들의 원류에 해당하기 때문이다. 인구 백만에 이르렀던 거대도시 에도(江戶)는 쇄국이라는 특수한 조건 속에서 260여년간 지속된 막부체제가 빚어낸 일본 문화가 있다. 비록 쇄국이라고는 하지만, 중국, 조선은 물론 네덜란드 등의 나라들과 교류를 계속하며 이 시기 일본은 독자적인 문화를 형성해갔다.

 

『에도의 패스트푸드』는 단순히 음식에 대한 이야기만은 아니다. 음식이란 사람이 먹는 것이고, 음식에 대한 이야기는 결국 사람에 대한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에도 시대 죠닌들의 생활사라고도 할 수 있다. 에도 시대의 패스트푸드들이 등장한 까닭을 보자. 그것은 워낙 에도 시대의 죠닌들이 바쁘게 살았고, 또 인구 백만의 대도시답게 흥성했기 때문이다. "에도의 패스트푸드"는 '제1장 에도 패스트푸드의 활약상'을 통해 에도 특유의 음식문화가 사회의 변천과 어떻게 결부되어 발전해가는지를 덴푸라, 스스, 소바 등의 역사를 따라가며 추적한다.



일본에서 소바를 으로 만들어 먹기 시작한것은 덴쇼(1573-1592)시대 조선에서 건너온 승려 원진이 일본 도다이지에 전파해준 이후부터라고 한다. 에도 시대 일본에선 엄청난 소바 열풍이 불어 승려들이 소바를보고자 월담하는 사태까지 생겨 일본 불교 사찰 중엔 지금까지 소바를 금지시킨 곳도 있다고 한다.  


'제2장 에도의 맛 탄생'에선 에도(일본) 음식하면 떠올리게 되는 특유의 단맛과 짠맛, 일본 과자류하면 달콤짭짜름한 특유의 맛이 생각나는데 이것은 에도 특유의 미각이기도 하다. '제3장 쇼군의 식탁, 죠닌의 식탁'에는 밥상에서 일어나는 봉건제하 계급간의 차별과 차이를 엿볼 수 있고, '제4장 에도의 식도락 붐'에서는 일본의 국물 맛내기의 대명사인 '가츠오부시'와 '화과자'의 세계를 다룬다. 우리말처럼 쓰이고 있는 한자어인 요리(料理)는 사실 일본식 한자어이다. '제5장 에도 최고의 요리집, 야오젠' 일본 외식 산업의 시작이라 할 수 있는 야오젠의 출현은 비록 신분제의 속박은 남아있지만 신분과  상관없이 돈만 있으면 누구나 꿈을 이룰 수 있는 사회상의 변화를 보여준다. 우리에게 '한정식' 혹은 '궁중요리'는 대표적인 한국식 정찬으로 생각되는 것처럼 일본의 정찬으로 평가받는 것은 가이세키 요리이다. '제6장 일본 요리의 완성'은 이런 가이세키 요리의 탄생과 처음엔 귀족들의 향응을 위한 이 요리가 어떻게 서민대중에게까지 널리 퍼지게 되는 지를 보여준다. 중국요리에 영향을 받은 일본 요리와 남만
(네덜란드, 포르투갈 등)의 영향을 받은 요리 등에 대한 이야기로 마무리 짓는다. 

 

오쿠보 히로코는 이런 에도 시대의 문화 가운데 특히 '패스트푸드'라고 할 수 있는 죠닌(町人)의 식문화(食文化)에 주목하고, 이것을 에도시대 중기 이후 일본의 중요한 하나의 문화로 자리잡는 과정을 면밀하게 분석하고 있다. 면밀하게 분석한다고 해서 이 책이 학문적이기만 한 것은 아니다. 음식 이야기인 만큼 흥미를 유발하고, 미각(味覺)을 자극하는 요소들을 적절히 끼워넣는 것을 잊지 않는다. 그런데 쇼군(將軍)은 익히 들어 알겠는데, 죠닌은 무엇인가? 그것을 이해하면서 읽는 것이 이 책을 읽는 재미를 배가시킬 것임에 틀림없다. 일본은 전후 부흥 과정을 거치며 서구인들에게 "경제동물"이라는 혹평을 받기도 할만큼 장사수완과 그들만의 기술력을 확보했다. 이 밑바탕엔 에도시대 형성된 그들의 장인정신과 상인정신이 밑바탕을 이루고 있었다.
 



 일본을 대표하는 음식으로 잘 알려진 '스시'의 유래에 대해서는 지금까지도 설이 분분하다. 본래부터 일본에 존재했다는 설부터 동남아시아 전파설, 11세기 중국 송대에 유행했던 초밥이 한반도를 타고 일본으로 전파되었다는 설 등등 여러가지 설이 있다. 기존에 일본에 있었거나 외래에서 전래되었거나 우리는 맛있게 먹으면 될 일이긴 하다. ^^  


잘 알려진 대로 일본은 에도 시대 이전 100여년간의 내전, 즉 전국시대를 경험했다. 이를 평정한 것이 오다 노부나가, 오다 노부나가가 암살되고 난 뒤 그의 유업을 이어받아 완성한 것이 토요토미 히데요시이고, 다시 이를 계승하여 봉건제를 기반으로 평화를 지속시킨 것이 도쿠카와 이에야스이다. 전국시대는 거듭되는 전란으로 사회가 불안정하여 상공업이 정착되기 어려웠다. 문화와 상공업은 주로 전쟁과 관련된 것이거나 전쟁과 무관한 평화를 지속한 천황가의 궁중문화만이었다. 전란을 수습하고 에도에 막부를 설치한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봉건지배체제를 단단히 하기 위해 사농공상의 신분제를 실시하고, 신분간 이동 및 직업을 차별하도록 했다. 지배계급인 쇼군과 다이묘(大名)는 그들의 본거지인 성(城) 밑에 죠카마치
(성하정, 城下町)을 두어, 마치 거대 사찰 밑에 사하촌이 형성되는 것처럼 다이묘를 정점으로 이들을 호위하는 무사계층의 거주지를 조성한다.

 

지배계급인 무사계층은 조선 시대의 양반처럼 농사, 제조, 상업에 직접 종사할 수 없었기 때문에 죠카마치 인근에 상인과 공인을 집단으로 거주시켜 자신들의 생활에 편의를 돕도록 했다. 이들이 바로 죠닌(町人)이었다. 지배계급은 죠닌을 통해 생활에 필요한 물품이나 서비스를 직접 제공받았고, 이들을 보호 육성함으로써 필요한 재화를 얻기도 했다. 봉건신분상으로 가장 최하층에 속했지만 실제로는 농민이 최하층이었다. 농민은 그야말로 굶어죽기도 어려울 만큼의 식량만을 제공받았다. 이런 사회 환경과 전쟁이 없는 평화로운 분위기 속에서 죠닌을 중심으로 한 상공업문화가 오늘날 에도 문화, 즉 일본문화의 중추가 되었다고 할 수 있다. 중세 유럽의 왕족과 귀족들을 열광시켜 금값으로 대접받던 청화백자나 조선도예의 맥이 끊긴 데 반해 일본의 일생일업(一生一業)에 바탕한 대를 이은 가업 정신은 죠닌들에 의해 면면이 이어져 오고 있다.  예를 들어 일본도(刀)의 명인으로 손꼽히는 가네코는 25대, 700년을 이어오고, 포목전으로 시작한 미츠이 등은 이후 금융업에 손을 대는 등 사업영역을 확대하여 라면에서 인공위성까지 생산하는 일본 최고의 종합상사가 되었다.

 

이 책의 뒤에는 저자가 참고한 여러 문헌들이 나오고 있는데, 걔중에는 1638년의 것들도 있었다. 물론 생각하기에 따라 우리에게도 이런 자료들이 풍족하다면 풍족할지도 모르겠으나 공부가 부족한 나로서는 그런 자료들을 찾는 것은 물론 우리 문화의 여러 단층들을 이렇게 주도면밀하게 관찰한 책들이 하루빨리 나와주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 독서였다.


* 참고로 이런 나의 아쉬움은 책과는 상관없는 것이고, 책의 만듦새는 나무랄 것 없이 좋았고, 번역에도 공이 많이 들었으리란 생각이 든다. 다만 한 가지 남는 아쉬움은 비록 가까운 일본이고, 이것저것 일식에 대해 알아볼 수 있는 기회는 있다손 치더라도 도판이 일본 판화만으로 한정되어 있어, 소개되고 있는 요리들을 눈으로 직접 보는 즐거움이 적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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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바람구두 windsho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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