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읽은 책과 그림 - 마르셀 라이히-라니츠키 | 김지선 옮김 | 씨앗을뿌리는사람(2004)




"마르셀 라이히-라니츠키""내가 읽은 책과 그림"은 한 편으론 유쾌하면서 다른 한 편으론 읽는데 힘겨운 책이었다. 이 책에서 다루고 있는 인물의 거의 절반은 이름도 처음 듣는 작가들이었고, 이름을 아는 작가들도 절반 가량은 이름만 알고, 책은 본 적이 없는 인물이고, 다시 그 절반 정도의 사람들만 책을 읽었고, 작품 이름이라도 들었던 이들이기 때문이다. 사실 "마르셀 라이히-라니츠키"를 내가 처음 알게 된 것은 중학생 때부터 좋아했던 작가 "귄터 그라스"의 당시 신작 "광야(원제 : Ein Weites Feld)"를 놓고 그가 벌인 해프닝 때문이었다. 그 무렵만 하더라도 그냥 성격 더러운 괴짜 평론가 한 사람이 있나 보다 하는 정도로 알고 있었는데, 귄터 그라스의 유명세 못지 않게 그 자신의 유명세가 더해져 독일 문화계를 떠들석하게 만들었던 사건이었다.


사실 라이히-라니츠키가 "슈피겔"지 표지에 등장한 것은 1995년 귄터 그라스의 신작을 찢는 사진말고도 또 있었다. 그는 1993년에도 표지에 등장했었는데, 이때 그는 개로 등장했었다. 1993년과 1995년에 등장한 그의 사진에 공통점이 있었다면 이 두 사진 모두 책을 찢고 있는 인물로 나왔다는 것이다. 1993년 그가 책을 찢는 장면으로 등장했던 것은 독일 문학에 대한 것이었지만, 1995년에 등장했던 것은 귄터 그라스의 신작이란 구체적인 작가와 작품을 지목한 것이었다. 비록 노벨문학상을 받기 전이지만 전후 독일 최고의 작가로 손꼽히고 있던 귄터 그라스의 작품을 신랄하게 비판하고, 분을 참지 못해 찢어 버리는 문학비평가의 모습을 우리는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가.


그는 귄터 그라스가 단치히 4부작 이후 발전과 변화가 없는 점을 참을 수 없으며, 그라스의 명작 "양철북"을 가당치도 않은 이야기라고 주장했다. 귄터 그라스가 1999년 노벨문학상 수상자(독일 작가로는 1972년 하인리히 뵐, 1981년 엘리아스 카네티 이후 18년만의 일)로 발표되었을 때, 그의 수상에 대한 코멘트를 부탁한 기자들에게 그는 "Ich bedaure nichts"라고 말했다고 한다. 우리 말로 "전 유감 없습니다."란 뜻이라는데, 독일 대통령, 수상, 마르틴 발저 같은 이들이 그의 수상 줄소식에 기뻐한 것과 비교하면 영 떨떠름한 반응이었다. 그는 다음과 같이 부연했다. "생각해 보세요. 마틴 발저가 그 상을 받는다면, 저에겐 그건 날벼락일 것입니다. 아니면 그 멍청한 페터 한트케요! 재앙이지요. 스톡홀름에겐 귄터 그라스 말고는 없었어요." 하지만 그는 귄터 그라스의 노벨상 수상을 끝끝내 축하하지 않았다.


우리 입장에서 보자면 라이히-라니츠키는 매우 편협한 인물로 비춰질 수도 있을 텐데, "문학권력"이니 "주례사 비평"이니 특정한 집단끼리 나눠먹기식의 문학상 제도니 해서 구설이 끊이지 않은 우리 풍토를 생각해보면 작가와 비평가의 사이가 이렇게 안 좋아도 노벨상도 때 되면 받아가고, 작가는 작가대로, 비평가는 비평가대로 자기 고집을 세우며 작품활동과 비평활동을 하는 모습이 꼭 나쁜 것만은 아니란 생각이 든다. 그는 귄터 그라스가 사회주의 리얼리즘의 전형을 새롭게 세워나가고 있는 모습이 고루해보인다는 비판을 아끼지 않고, 귄터 그라스는 귄터 그라스대로 자기 갈 길을 꿋꿋이 간다.


문학적인 입장에서 보자면 라이히-라니츠키(Marcel Recih-Ranicki)는 매우 보수적인 인물이다. 그는 1920년 폴란드 에서 태어난 유대인이었지만 당시 독일계 학교를 다녔다. 그는 나치시대의 베를린에서 청소년기를 보냈고, 아비투어를 치르지만 1938년 가을 폴란드 국적을 지녔다는 이유로 추방된다. 바르샤바에 거주하게 된 그는 1940년부터 바르샤바의 유대인 위원회에서 통역일을 하다 탈출한다. 이때 그의 부모와 형제들은 살해당한다. 그는 폴란드 공산당에 입당해 전후 폴란드의 외교관으로 근무(런던 주재 폴란드 대사관의 영사와 총영사를 지냄)했다.1949년 정치적인 이유로 외교관직을 박탈당한 뒤 1958년 독일로 이주한다.


'문학의 교황(Literaturpapst)' 이란 평가를 받는 그는 평론가란 정확히 어느 한 입장에 서야 한다고 말한다. "누구나 그 책에 찬성하든지 반대하든지 둘 중의 하나일 수밖에 없다"고 말하면서, 모든 작가는 결국 돼지이고, "작가는 재능이 있는 돼지 아니면 재능이 없는 돼지"란다. 이 책 "내가 읽은 책과 그림"에서도 그는 좋아하는 작가와 그렇지 않은 작가에 대한 평가가 극명하게 갈린다. 그는 모제스 멘젤스존, 루드비히 뵈르네, 하이네, 토마스 만 등에 대해서는 열렬한 애정을 귄터 그라스와 베르톨트 브레히트에 대해서는 석연찮은 표정을 짓는다. 라이히-라니츠키가 '문학의 교황'이란 칭호를 얻게 된 데에는 "프랑크푸르트 알게마이네 자이퉁(FAZ)"과의 인연이 컸다. 그는 1973년 12월 FAZ의 편집진으로 복귀하면서 이 신문의 문예비평란을 유럽의 독일어권 신문 중 가장 권위있는 것으로 만들었다. 그를 대중적인 스타로 만든 것은 독일 제2방송(ZDF)의 "문학 사중주(Das Literarische Quartett)"란 프로그램 덕이었다.


우리나라로 치자면 "TV, 책을 말하다" 정도라고 해야하겠지만, 그보다는 훨씬 더 지루하고, 재미없게 구성되어 있다고 한다. 그것도 모두 악동같은 라이히-라니츠키가 내세운 조건들 때문이었다. 그는 TV란 미디어가 지닌 가장 큰 장점일 수 있는 "보여준다는 원칙"(무엇이 되었든, 보여줄 수 없는 것은 가상의 컴퓨터 그래픽을 통해서라도 보여준다)을 허물고, 그와 초대 손님의 진지한 대화만으로 구성하는 프로그램이었다. 당시 대표적인 초대 손님은 "아도르노, 슈피겔 발행인인 루돌프 아우구스타인, 에른스트 블로흐, 하인리히 뵐, 막스 프리쉬, 귄터 그라스, 발터 옌스, 지그프리드 렌츠, 마틴 발저" 등이었다. 이 프로그램은 라이히-라니츠키를 포함한 3인의 패널과 한 명의 초대 손님으로 구성되는데, 초대 손님은 이들과 토론을 나눈다. 그것도 아주 격렬하게...(방송사는 주제 및 초대 손님을 누구로 할 것인가에 대해 관여할 수 없다. 1년에 6회 방영됨.)


어쩌다보니 "내가 읽은 책과 그림"에 대한 서평이 아니라 "마르셀 라이히-라니츠키"에 대한 소개글이 되어버린 듯 하다. 그러나 이 책의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 철저히 "라이히-라니츠키"의 책읽기와 그가 정성들여 수집한 작가들의 초상화로 구성된 책이다. 책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말하는 것보다 우리에겐 잘 알려져 있지 않지만 독일과 유럽에서는 문학의 교황으로 군림하는 비평가에 대해 좀더 잘 알게 되는 것이 이 책을 보다 더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방법이란 생각이 들었다. 이 책은 필자인 라이히-라니츠키의 친절보다는 이 책을 번역한 "김지선" 선생과 이 책의 출판사인 "씨앗을 뿌리는 사람"의 편집자들의 친절이 돋보인다. 독일어와 독문학이 우리나라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날로 격감해 가는 시점에서 이 분들의 공로가 더욱 두드러져 보인다. 잘 만든 책에는 후한 점수를 주어야 하겠지만, 이 책이 모두에게 쉽게 읽을 수 있다며 추천하기는 약간 곤란하다. 그러나 그런 문제는 어디까지나 저자와 우리 독자들이 건너야 할 외나무 다리인 것이고, 최소한 이 책에 있어서만큼 그것은 번역작가와 편집자의 책임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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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바람구두 windsho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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