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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0.12.15 아리엘 도르프만 - 둘 곱하기 둘

둘 곱하기 둘


- 아리엘 도르프만(Ariel Dorfman)

동지여, 감방에서
그 방까지
몇 걸음 걸리는지 우리 모두 알고 있다오.

스무 걸음이라면
화장실로 그대를 데려가는 게 아니라오.
마흔다섯 걸음이라면
운동하라고
그대를 데리고 나가는 건 절대 아니라오.

여든 걸음을 세고 나서
장님처럼 고꾸라지듯이
층계를 오르기
시작하면
오, 여든 걸음이 넘는다면
오직 한 군데가 있을 뿐이오
그들이 그대를 끌고 갈 수 있는 곳은.
오직 한 군데가 있을 뿐이오
오직 한 군데가 있을 뿐이오
그들이 그대를 끌고 갈 수 있는 곳은
이제는 오직 한 군데밖에 없다오


출처 : 아리엘 도르프만, 이종숙 옮김, 『싼띠아고에서의 마지막 왈츠』, 창작과비평사, 1998.

*

내 주변엔 감옥에 다녀온 사람들이 꽤 많다. 그러다보니 주변 사람들에게서 감옥살이 이야기 듣는 것이 친구들에게서 군대 이야기 듣는 것처럼 익숙하다. 4.19세대로 5.16군사법정에 섰던 한 사람은 비록 정치깡패이긴 했지만 당당했던 이정재가 사형을 언도받은 뒤 사형대에 설 때까지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아리엘 도르프만의 시처럼 그 역시 ‘여든 걸음’ 너머의 세계로 끌려갔다. 서대문형무소에는 면회소 가는 길과 사형대 가는 길이 서로 이어져 있었으므로….

반공주의와 북진통일 이외에 모든 것은 친북좌파이던 시절 당당하게 평화통일론을 펼쳤던 죽산 조봉암은"법이 그런 모양이니 별수가 있느냐. 길가던 사람도 차에 치어 죽고 침실에서 자는 듯이 죽는 사람도 있는데 60이 넘은 나를 처형해야만 되겠다니 이제 별수가 있겠느냐, 판결은 잘됐다. 무죄가 안될 바에야 차라리 죽는 것이 났다. 정치란 다 그런 것이다. 나는 만사람이 살자는 이념이었고 이 박사는 한 사람이 잘 살자는 이념이었다. 이념이 다른 사람이 서로 대립할 때에는 한쪽이 없어져야만 승리가 있는 것이다. 그럼으로써 중간에 있는 사람들의 마음이 편안하게 되는 것이다. 정치를 하자면 그만한 각오는 해야한다."라고 했다. 그는 사형언도를 받은 직후 곧바로 사형대의 이슬로 사라졌다. <민족일보> 조용수 사장, 인혁당 등 수많은 사람들이 법으로 이름으로 죽음을 맞이했다. 이른바 법살(法殺)이었다. 엊그제(2008. 9. 26) 60주년을 맞이한 사법부의 수장 이용훈 대법원장이 과거 사법부의 잘못에 대해 사과했다.

이제 세월을 지내놓고 보니 내가 감옥은커녕 유치장에도 가보지 못했던 것은 좋은 시대를 살았던 덕분이 아니다. 다만 운이 남들에 비해 조금 더 좋았을 뿐이었다. “스무 걸음, 마흔 다섯 걸음, 여든 걸음이 내 앞에도 여전히 놓여있다. 나는 다만 다른 이들에 비해 조금 운이 좋았을 뿐이다.

죽산은 교수대 앞에서 목사에게 마지막으로 성경의 <누가복음> 23장 22,23절을 읽어달라고 부탁했다. 그 내용은 이러하다.

"재판장인 빌라도가 말한다. 나는 그의 죄를 찾지 못하겠다. 그러나 처형을 외치는 군중의 소리가 이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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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바람구두 windsho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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