격동의 서양 20세기사 -
박무성 지음 / 한울(한울아카데미) / 2002년


세기말이었던 지난 2000년 무렵 나는 혼자서 이런저런 궁리 끝에 내나름으로 지난 20세기 세계사적으로 의미가 있었던 혹은 세계를 움직인 10대 사건을 정리해보기로 결심했었다. 생각외로 이런 궁리는 재미있다. 오늘 하루 내게 일어난 일 가운데 재미있었던 혹은 재미와 상관없이 기억할만한 일 3가지를 정리해보는 일, 한달 동안, 아니면 1년을 마무리하는 시점에서 10대 사건을 언론사에서 정리하는 것처럼 혼자 해보라. 그렇게 해서 막상 정리된 사건들을 보면 정말 이 한 해동안 이렇게 많은 일이 있었던가? 싶기도 하고, 저 일이 올해 있었던가? 싶기도 하다.

내가 궁리 끝에 정리해낸 "20세기, 세계를 움직인 10대 사건"은 다음과 같았다.

1.유럽중심의 세계통합과 그 유산들
2.제1차 세계대전과 유럽 제국주의의 몰락(새로운 패권국가로서 미국의 등장)
3.사회주의 혁명과 전체주의의 등장
4. 대량생산·소비 사회의 도래와 경제 대공황
5. 제2차 세계대전과 핵시대의 도래
6. 팍스 아메리카나와 유럽의 재건
7. 제3세계와 청년운동
8. 환경파괴와 여성해방운동
9.대중사회의 도래와 정보기술혁명
10. 현실사회주의 몰락과 세계화
 
한 세기를 움직인 사건을 정리해보니 소위 '역사의 맥락' 이 잡히는 것 같기도 했다. 이를 다시 주제별로 분류하고, 이와 관련해 읽어볼만한 책 10권씩을 선정하고, 이것을 스터디한 뒤에 내나름의 생각을 원고지 100매 내외로 정리해보려는 야무진 계획을 세웠었다. 물론 2001년이 시작되기 전에 이 모든 것(내가 나에게 내어준 숙제)을 마무리하리라 마음 먹었지만, 모든 면에서 역부족이란 분루를 삼키며 물러났었다.

박무성 단국대 명예교수의 이 책 "격동의 서양 20세기사"는 그런 점에서 나에게 중요한 참고서적 중 하나였다. 역사를 기술하는 방식에서 역사가의 몫을 어디까지 인정할 것인가? 역할을 어떻게 규정할 것인가? 는 역사학계의 오랜 화두 가운데 하나이다. 물론 역사서를 읽는 독자들의 입장에서도 에세이적으로 자신의 생각을 많이 녹인 책을 읽을 것인지, 아니면 랑케식으로 실증에 치중해서 단순히 역사적 사실관계를 추적한 책을 읽을 것인지... 그렇다면 이 둘 가운데 어느 것이 옳은 방식일지, 어느 것이 보다 유익할지, 어느 것이 보다 재미있을 것인지는 고민해볼 만하다.

내 체험에 의거해 이야기해보자면 둘 다 읽는 것이 가장 좋다. 예를 들어 부부 혹은 애인 사이에 다툼이 있는데, 나는 이들 양자와 친분이 있다고 하자. 이쪽의 이야기와 저쪽의 이야기를 번갈아 들어보면 다들 나름의 입장이 있기 마련이다. 이유없는 무덤 없다는 격언이 증명하듯 모든 행위에는 그 이면에 도사린 원인이 있다. 이럴 경우 어느 일방의 이야기만 듣노라면 입체적인 모습은 그려지지 않는다. 만약 영국이 도발한 어느 전쟁에 대해 알고 싶다면 영국 이야기만 듣는 것으로는 부족하단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보았을 때 미국인들이 저술한 미국의 범죄 혹은 파렴치한 역사 이야기를 미국인 저널리스트들의 기술로 읽는 것은 일정한 한계를 노정하기 마련이다. 이런 한계를 보정하기 위해서는 굳이 국적에 의하지 않더라도 다양한 관점을 알기 위해서라도 여러 종의 책을 읽는 것은 필요한 일이 된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와서 박무성 교수의 이 책은 그런 점에서 유익하고, 일정한 한계를 지닌다.
물리적인 시간으로서의 20세기는 분명 1901년에 시작해서 2000년에 종료되었지만, 역사적으로 20세기를 어떻게 규정할 것인가를 놓고는 아직도 많은 이견들이 있다. 어떤 이는 대영제국의 마감을 알리는 빅토리아 여왕의 죽음 이후를, 어떤 이는 그로부터 훨씬 뒤인 제1차 세계대전을 기점으로 하기도 한다. 또 어떤 이는 러시아 10월 혁명을 기점으로 잡기도 한다. 이는 역사를 기술하는 이의 관점을 어디에 두고 있는가를 묻는 일이기도 하다. 박무성 교수는 이 책의 시발점을 제1차 세계대전으로 놓고 있는데, 이는 저자가 독자들에게 은연중에 보내는 일종의 메시지일 수 있다. 다시 말해 저자가 이 책을 통해 이야기할 20세기의 역사는 서양을 중심으로 한 정치학적인 접근이 될 것이며, 현실 정치가 서로의 세력 균형을 어떻게 잡아가는가? 균형의 파괴가 역사적으로는 어떻게 드러나는가? 를 중심으로 기술할 예정이란 뜻이 된다.

그것은 전체 29장으로 되어 있는 이 책의 소제목들만 살펴보더라도 알 수 있는 일이다.
"인류사를 격변시킨 제1차 세계대전, 유익한 베르사유 체제의 성립과 붕괴, 비운의 바이마르 공화국, 러시아 볼셰비키 혁명 ...(중략)... 동유럽의 자유화운동과 공산체제의 붕괴, 독일의 통일과 그후, 북유럽 및 남유럽 국가들의 민주화, 세기말엽 영국의 변혁, 1990년대의 미국, 유럽의 변혁, 20세기의 서양문화, 서양 20세기사의 장을 닫으며"
서양의 20세기를 문화적인 관점에서 다룬 부분은 실질적으로는 맨마지막에 해당하는 28장에 배치해두고 있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을 통해 서양의 문화나 예술을 이해하기 위한 필요로 접근하는 이에겐 그다지 도움을 얻을 수 없을 것이다. 이 책이 지닌 미덕은 그런 부분에 있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게 분야를 한정시킨 덕에 이 책은 몇 가지 장점을 지닌다. 우선 지리학적으로 그 대상을 서양(미국과 유럽)으로 국한시켰다는 점, 주로 다룰 분야를 정치적인 부분으로 한정했다는 점이다. 그 결과 이 책에서는 그간 우리가 쉽게 접하기 어려웠거나 정리하기 어려웠던 가까운 근과거의 유럽과 미국을 발견할 수 있고, 미국과 유럽이 주고 받는 체스게임의 관전자로 동참할 수 있게 되었다.

전체 29장을 다시 구분해보면 1장부터 9장에 이르는 부분은 제1차 세계대전으로부터 시작된 유럽의 몰락과정을 추적한다. 나는 개인적으로 제1차 세계대전과 제2차 세계대전을 실제로는 동일한 목적과 원인으로 시작된 하나의 전쟁으로 파악하고 있다. 동일한 목적이란 유럽의 통합 - 물론 그 안에는 기존(식민지 시장을 이미 확보한) 공업국가인 영국과 프랑스, 신흥 공업국가인 독일의 대립이라는 경제적 요인들, 신흥강국으로 부상하는 미국을 견제하며 세계적 패권국가로서 유럽을 지속시킬 - 필요성을 느낀 유럽 제국들이 힘의 균형이 아닌 통일로 나아가는 과정에서 벌어진 전쟁이란 것이고, 원인이란 이런 요인들이 민족주의와 결합하면서 서로 그것을 주도 혹은 견제하고자 했던 것을 말한다. 영국과 프랑스는 균형과 견제를, 독일은 통합을 주장한 셈인데, 여기에 러시아 혁명 이후 등장한 사회주의 세력에 대한 서구 자본주의 세력의 통일 역시 중요한 몫을 한다. 히틀러가 마지막까지 구원의 희망을 찾고자 했던 부분도 여기에 있다.

제10장부터 제19장까지는 크게 보아 서구의 냉전에 대해 다루고 있는데, 진정한 의미에서 제2차 세계대전은 1939년 9월 1일 독일의 폴란드 침공에서 시작하여 1945년 8월 15일 일본의 항복으로 끝난 전쟁이 아니라 1947년 3월 트루먼 독트린 이후 시작되어 1991년 8월 19일 소련의 보수강경파에 의한 군부 쿠데타 실패로 끝난다. 이 시기에 서유럽 일부 지역을 제외한 세계 각처에서는 전쟁, 무력분쟁, 군부 쿠데타, 민간인 학살 등 다양한 이름으로 불리웠으나 궁극적으로는 전쟁 상황일 수밖에 없는 충돌이 지속되었고, 나는 이것을 명칭은 어찌되었든 또 하나의 세계대전으로 보고 있다. 제20장부터 제27장까지는 소련의 해체 이후 미.소의 양극체제에서 미국에 의한 일극체제로 변모해가는 과정과 동서냉전 시기의 막바지에 유럽이 어떤 과정을 거쳐 현재에 이르게 되었는지를 다룬다.

앞서 말한 이 책의 장점은 20세기사에 대한 기술이 주로 미국과 소련의 냉전에 치중된 나머지 소홀해지기 쉬운 유럽에 대해 다루고 있다는 점이다. 제11장 '영국의 변혁' 편에서 우리는 노동당과 보수당의 양당 체제가 확립된 영국과 대영제국의 붕괴 과정을 살필 수 있다. 제12장 '프랑스의 변혁' 편에서는 제2차 세계대전의 패배자에서 나치 제3제국의 협력국, 그리고 다시 제2차 세계대전의 전승국으로 극적인 변환을 거친 프랑스가 어떻게 강력한 대통령 중심제 국가, 드골이즘의 '위대한 프랑스'가 되어가는가를 볼 수 있으며, 제13장 '독일.오스트리아.이탈리아의 대변혁'에서는 세계대전의 패자였던 이들 나라들이 마셜 플랜과 미국의 후원으로 소위 자유진영의 일원이 되는가를 살필 수 있다. 이외에도 제21장 '동유럽의 자유화운동과 공산체제의 붕괴', 제22장 '독일의 통일과 그후', 제23장 '북유럽 및 남유럽국가들의 민주화' 등은 우리가 쉽게 접하기 어려웠던 나라들의 역사를 살펴볼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된다. 여기에서 한 가지 언급해둘 필요성을 느끼는 부분은 우리가 서양이라 하면 쉽게 느끼게 되는 지리적 인상과 상관없이 이 책에서 다루고 있는 서양에서 '라틴아메리카'는 완전히 제외되었다는 것이다.

당연한 말이겠지만 우리가 이 한 권의 책을 통해 20세기 서양정치사를 통달할 수는 없다. 하지만 이 책은 20세기 서양정치사를 이해하는데 반드시 필요한 역사적 사실들을 충실하게 다루는 중요한 텍스트 구실은 할 수 있을 것이다. 역사는 가까운 근과거를 다루기엔 여러가지 문제를 지닌다. 과거의 여러 사건들 가운데 당시로서는 하찮은 사건에 불과한 것이 결과적으로 중대한 사건으로 재해석할 필요가 생기기도 하고, 당대에는 중요한 사건이었음에도 후세의 평가에 따라서는 달라질 수 있는 것이다. 그런 까닭에 저자는 "역사는 새롭게 쓰여지는 것"이란 역사학의 중요한 화두를 다시 끄집어낸다. 물론 개인적으로 이 책을 읽으며 다소간의 불만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관점이란 측면에서 서구와 비교해 동구 진영에 대해서는 보다 냉정한 시선을 유지한다는 점은 그에 대해 다소 동정적인 입장을 지닌 독자의 입장에서는 보다 객관적일 수는 없었을까 하는 아쉬움을 남긴다.

나는 제1차 세계대전+제2차 세계대전을 포함해 하나의 전쟁으로 인식하고 있다는 말을 했고, 진정한 의미에서 제2차 세계대전은 트루먼 독트린 이후 소련의 붕괴 사이에 있었던 냉전을 다른 의미에서 세계대전으로 보았다. 그렇다면 제3차 세계대전은 언제, 누구에 의해 시작할 것인가? 라는 의문을 품을 수도 있겠다. 그에 대한 나의 답변은 이렇다. 제3차 세계대전은 지난 2001년 9월 11일 이미 시작되었다. 물리적 시간으로의 21세기가 시작되었을 때 세계 인류는 이제야말로 인류가 번영과 평화를 향해 나아갈 수 있을 것이라 믿었다. 그러나 20세기 인류가 남긴 죄악의 유산들은 여전히 인류가 짊어질 형벌로 남았다.

* 참고로 한 말씀 드리자면 2000년 현재 프랑스의 국방비 총예산은 343억불이다. 미국은 프랑스의 국방비 총예산보다 많은 금액을 단지 무기개발연구비용으로 사용하고 있다. 미국을 제외한 세계 모든 나라의 국방비 총예산을 합친 금액은 미국의 국방비 총예산인 2,947억불 보다 적다. 여기에 더 추가해서 말하자면 우리가 자주국방의 상징처럼 숭앙해 마지 않는 이스라엘이 한해 사용하는 국방비는 94억불이고, 우리가 사용하는 국방비는 128억불이다. 물론 국민 1인당으로는 우리가 더 적다. 전세계 국방비의 1%를 감축할 수 있고, 그 비용을 기아구제로 돌릴 수만 있다면 우리가 살고 있는 지구상에서 굶주리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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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바람구두 windshoes

작전명 발키리 - Valkyrie



 

난제 - 역사성과 오락성(흥행성적) 그리고 작품성
역사 속에 실존했던 인물과 사건을 영화나 드라마, 소설로 재구성하는 일은 화살 하나로 세 개의 바늘구멍을 통과하는 일처럼 어렵다. 역사성과 오락성(흥행성적) 그리고 작품성을 동시에 만족시킨다는 일이 어디 그렇게 쉬운 일이겠는가? 언젠가 어느 신문 기자던가, 평론가가 영화 <트로이>에서 헥토르가 아킬레스에게 죽임을 당한다는 이야기를 썼다가 인터넷 누리꾼들을 중심으로 스포일러를 유포했다고 혹독한 비난의 대상이 된 적이 있었다. 내가 이 일을 기억하는 이유 중 하나는 그 무렵 지하철을 타고 가다가 옆 좌석의 젊은 여성 둘이 나누는 대화를 실제로 들었기 때문이다. 두 사람은 기자인지, 평론가인지를 혹독하게 비판했고 그 덕분에 영화 보는 재미가 반감되었다고 했다.


호메로스의 『일리아드』를 읽지 않았다는 것을 힐난하고 싶어서 꺼낸 이야기가 아니다. 대성(大聖) 공자도 태어나면서부터 모든 것을 알았던 사람이 아니라고 고백하는데, 뉘라서 태어나면서부터 세상의 모든 고전을 읽을 수 있을까. 영화를 통해서이든, 원작을 통해서이든 누구나 그 이야기를 처음 접하는 순간은 있는 법이다. 고전이란 인류의 문화유산이란 점에서는 보배이겠지만 다른 관점에서 보자면 수많은 세월 동안 대중들에게 다양한 형태로 널리 전파된 이야기란 뜻이기도 하다. 이것을 영화화하거나 드라마로 장르 전이(轉移)를 할지라도 기본적인 이야기 틀을 바꾸긴 매우 어렵다. 고전이 살아남는 이유 중 하나는 그 익숙한 이야기 스타일이 대중에게 이미 숱하게 검증받았다는 증거이기 때문이다. 천재가 아니고서야 누가 감히 이에 도전할 수 있을까?


두 번째 장편영화인 <유주얼 서스펙트>에서 스릴러물에 놀라운 재능을 보여주었던 신예감독 브라이언 싱어였지만, 이후 <엑스맨> 1편과 2편, 그리고 <수퍼맨 리턴즈>에서는 할리우드의 상업영화 감독으로 안주하는 것으로 보였다. 어릴 때부터 제2의 스티븐 스필버그를 꿈꿔왔던 브라이언 싱어로서는 선배가 <쉰들러 리스트>로 보여 주었던 길을 따라가고 싶은 의욕도 있었을 것이다. 그는 자진해서 영화 <발키리>의 감독을 맡았다. 사실 역사를 공부하다보면 매력적인 인물과 유난히 끌리는 사건, 극적인 요소들로 인해 깊이 매료되는 시대가 있는 법이다. 나는 나치 독일 치하에서 억압에 저항했던 숄 남매의 <백장미단> 이야기를 처음 접했던 것과 거의 동시에 슈타우펜베르크 대령의 히틀러 암살 음모 사건을 접했다.


결과를 빤히 아는 역사영화(EPIC)를 보는 재미는 어디에서 오는가?

아돌프 히틀러는 생전에 모두 42차례의 암살 기도(『독재자들』, 교양인, 2009)에도 불구하고, 결국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 정치지도자로서 가장 많은 암살 시도가 있었던 인물은 아마도 쿠바의 피델 카스트로였으리라 싶은데, 『피델 카스트로 - 마이 라이프』(현대문학, 2008)에 따르면 모두 600여 차례나 있었다고 한다. 그를 제외하고는 비슷한 시대를 살았던 프랑스의 샤를르 드골 대통령이 6차례의 암살 기도에도 불구하고 살아남았다. 늑대 무리는 조직적으로 사냥감을 공격하지만 우두머리를 잃으면 사냥을 포기한다고 하는데, 국가조직의 수장을 제거함으로써 정치적 목적을 달성하겠다는 암살은 역사적으로 가장 오래된 정치수단 중 하나다.


제임스 1세를 암살하려 했던 가이 포크스(Guy Fawkes)를 비롯해서 링컨 대통령을 암살했던 존 윌크스 부스(John Wilkes Booth), 존 F. 케네디 대통령의 암살범이라는 리 하비 오스월드(Lee Harvey Oswald), 그의 동생인 로버트 케네디 상원의원을 암살한 시르한 비샤라 시르한(Sirhan Bishara Sirhan)에 이르기까지 정치인을 겨냥한 암살은 성공유무와 상관없이 대중의 관심이 쏠린다. 이런 사건들이 수많은 음모론의 대상이 되는 까닭은 누군가 한 개인의 죽음이 시대의 향배를 어긋나게 하거나 방향을 바꿀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기도 하다.


예를 들어 올리버 스톤 감독을 비롯해 수많은 미국인들은 케네디 대통령이 살아있었다면 미국이 베트남전의 수렁에 빠지지 않았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유력한 대통령 후보였던 동생 로버트 케네디가 암살당한 까닭 역시 그가 범죄와의 전쟁을 강력하게 추진했던 법무부 장관 출신이었고, 대통령에 당선된다면 당시 미국의 군산복합체가 막대한 이득을 얻고 있던 베트남전에서 미군을 철수시키겠다고 공약했던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역사를 움직이는 것이 개인으로서의 위인(偉人)인지, 아니면 평범한 다수를 차지하는 대중(大衆)인지는 역사학의 오래된 논쟁거리로 남겨두자.


어찌되었든 역사영화를 보는 재미 중 하나는 그것이 우리 인류의 생애사 속에 포함되는 실존했던 인물들이 시대를 고민했던 흔적이란 것이고, 두 번째 재미는 과연 나폴레옹이 불면증과 위장장애에 시달리지 않았다면 워털루 전투에서 패배하지 않았을 것이며 워털루 전투에서 패배하지 않았다면 프랑스의 역사, 나아가 유럽의 역사 더 나아가 인류의 역사가 어떻게 달라졌을까와 같은 역사 속 작은 국면들이 차지하는 결과를 되짚어봄으로써 교훈을 얻을 수 있다는 점이다. 마지막으로 서양의 역사를 우리 한국의 역사에 대입시켜봄으로써 우리가 처해있는 실제 현실의 문제와 한계 등을 점검해 볼 수도 있을 것이다. 비록 영화 <발키리>는 <유주얼 서스펙트>라는 걸출한 스릴러를 연출했던 감독의 작품이라고 하기엔 극적인 요소가 약한 편이긴 하지만 이와 같은 점들을 감안해서 본다면 상당히 재미있는 작품이기도 하다.


슈타우펜베르크 vs. 김재규

정치적 수장을 제거하는 암살의 상당 부분은 브루투스와 케사르의 예에서 알 수 있듯 측근에 의해 실행될수록 성공 확률이 높아진다. 최고 권력자는 항상 삼엄한 경호를 받기 때문에 암살을 실행에 옮길 수 있는 기회를 포착하기 어렵다. 그렇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접근할 수만 있다면 암살의 성공가능성은 비약적으로 높아진다. 그러나 암살이 암살만으로 정치적 의도까지 성공했다고 볼 수 있을까?


정치적 보복이 아니라면 한 개인에 불과한 정치인의 암살을 통해 정치적 의도까지 관철된다고 보기는 어렵다. 아버지와 마찬가지였던 케사르를 암살한 브루투스의 의도는 로마공화정을 수호하고자 했던 것이지만 그의 죽음은 공화정의 몰락을 앞당기는 결과만을 초래했다. 야수의 심정으로 유신의 심장을 겨냥해 민주주의를 회복하려고 했다는 김재규의 의도와 달리 그의 죽음으로 군부독재를 청산할 수는 없었다. 현대적인 국가조직은 ‘관료제’라는 단단한 배후조직에 의해 보호되기 때문이다.


영화 <발키리>에서 암살 음모의 주동자였던 슈타우펜베르크 대령이 정치인들과 군인들의 논의에 답답해했던 이유는 히틀러 암살 이후 무주공산(無主空山)이 될 최고 권력을 어떻게 할 것인지에 대한 논의가 없었다는 점이다. 그런 점에서 슈타우펜베르크 대령은 독일 군부의 뇌리에는 쉽게 자리 잡을 수 없는 논의, ‘쿠데타’를 끌어들인 장본인이었다. 비록 규모나 역사적 의의란 차원에서 여러 가지 차이는 있지만 슈타우펜베르크와 김재규는 상당히 닮은꼴이다. 이 두 사람을 닮은꼴이라 비교한다는 것은 본의든 아니든 박정희 전 대통령과 아돌프 히틀러를 비교하게 된다.


일제 식민 통치와 한국전쟁을 치르며 출발한 신생공화국 대한민국은 좌우 갈등, 분단, 부정부패, 경제난 등으로 최악의 위기 속에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박정희 전 대통령은 군부쿠데타를 통해 집권했지만 이후 형식상으로는 민주선거를 통해 연속해서 재집권에 성공한다. 그의 최대 업적은 경제개발에 성공하여 수백 년 가난에서 벗어나지 못했던 한국인들에게 ‘보릿고개’란 단어를 입에 올리지 않게 되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는 3선 개헌에 성공한 뒤 유신이라는 초헌법적 쿠데타를 통해 독재의 길로 들어섰다. 뒤이어 오일쇼크 등으로 인한 경제위기, 민주화를 바라는 국민의 열망을 철권으로 억압하는 독재에 염증을 느낀 민중의 저항 속에 최측근이었던 김재규 중앙정보부 부장의 총에 살해당한다.


히틀러는 제1차 세계대전에서 패한 뒤 제정을 대신해 출범한 바이마르공화국의 정치, 경제적 무능과 볼셰비즘의 발흥에 위기를 느낀 독일의 일부 민족주의자들, 군국주의자들과 결합해 국가사회주의당(나치당)을 독일 의회의 주요 정당으로 성장시킨다. 이후 힌덴부르크 대통령의 사망과 독일제국의회 방화사건 등을 통해 박정희 전 대통령의 유신에 비견할 만한 ‘비상대권’을 차지하고 독일 내 유일무이한 최고 권력자가 된다. 유신체제가 정권에 대한 어떤 비판, 헌법 개정에 대한 발언만으로 처벌되었던 것처럼 히틀러가 비상대권을 차지한 독일 역시 나치 체제와 총통에 대한 어떤 비방, 비판도 처벌의 대상이었다.


서민적 독재자와 귀족적 민주주의자

내가 아는 한 독일 역사에서 군부에 의한 쿠데타는 거의 상상할 수 없는 일이다. 물론 제1차 세계대전에서 패퇴한 빌헬름 제정을 물러나게 한 키일 군항의 반란은 있었지만 그것은 쿠데타라기보다는 혁명이었다. 어떤 이는 독일에서 군부 쿠데타가 일어나지 않았던 까닭을 독일의 민주주의가 그만큼 강력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내가 생각하기엔 그와 정반대의 이유로 독일에선 군부에 의한 쿠데타가 일어나지 않았다. 독일을 통일한 프로이센을 일컬어 ‘국가가 군대를 소유한 것이 아니라 군대가 국가를 소유한 이상한 체제’라는 평가가 있을 만큼 독일은 국가구조 속에 군대의 전통이 강력하게 존재했다. 그러나 한국의 역사적 전통 속에는 군부가 민간권력을 장악하는 일이 고려 무신정권을 제외하고는 거의 없었다. 어떤 의미에서 군부의 정치화는 일제의 식민통치 기간 동안 일본 군대를 통해 습득하게 된 경우라 할 수 있다.


한국의 최고통치자들과 떼려야 뗄 수 없는 풍경 중 하나는 막걸리를 마시는 대통령이다. 민주공화정의 주인이라는 대다수 국민들이 맥주와 위스키를 섞어 마시는 동안에도 대통령은 논두렁에 앉아 막걸리 마시는 풍경을 즐겨 연출한다. 이런 풍경이 연출되는 까닭은 단순하다. 최고통치자들의 실생활이 서민적이지는 않지만 서민적이라는 인상을 줄수록 통치에 유리하기 때문이다. 박정희가 그의 정적이라 할 수 있는 윤보선이나 장면에 비해 우위에 설 수 있었던 중요한 부분 중 하나가 이 두 사람과 달리 서민적인 풍모와 출신이었던 것과 마찬가지로 독일의 최고통치자였던 히틀러는 그동안 독일을 지배해왔던 기존의 지배엘리트들과 달리 매우 서민적인 인물이었다.



▶ 헤밍 폰 트레스코프(Henning von Tresckow) 대령

히틀러 암살음모를 추진했던 클라우스 폰 슈타우펜베르크 대령은 물론 에빈 폰 비츨레벤 장군, 헤닝 폰 트레스코프, 메르츠 폰 크비르하임, 베르너 폰 헤프텐, 파울 폰 하세, 하인리히 폰 헬도르프 등 히틀러 암살 음모의 주역들 대다수는 중간 이름에 귀족을 뜻하는 폰(von)이 들어있는 것에서도 알 수 있듯 독일의 전통적인 귀족(융커)계급 출신이었다. 하사출신이었던 히틀러는 귀족계급이 지배하던 독일군 수뇌부를 신뢰하지 않았고, 제1차 세계대전의 패배를 자초한 무능한 무리로 멸시하기 까지 했다. 그가 에르빈 롬멜을 총애했던 까닭 중 하나는 그가 자신과 마찬가지로 서민 출신이었기 때문이기도 했다. 히틀러 암살 이후 권력수반에 앉을 계획이었던 루드비히 베크 전 독일육군 참모총장을 비롯해 칼 프리드리히 괴들러(전 라이프치히 시장) 같은 인물들이 히틀러 암살 이후 수립하려 했던 독일은 과거와 같은 지배엘리트들의 복귀를 의미하는 것이기도 했다.


사실 히틀러 암살 음모에 가담했던 이들이 처음부터 히틀러의 반대파는 아니었다. 도리어 이들은 히틀러의 지지자들이었고, 그로부터 훈장을 받기도 했다. 그런 이들이 히틀러에게 등을 돌리게 된 까닭에 대해 영화 <발키리>는 유대인학살 등 인류에 대한 범죄, 역사 앞에 선 인간으로서의 양심적 갈등을 집중적으로 부각시킨다. 히틀러가 권좌에 앉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은 볼셰비즘의 발호에 위기감을 느낀 독일 내 자본가들과 중산층, 영국과 프랑스의 무관심 등 여러 요인들이 합쳐진 결과이긴 하지만 일반 서민들의 열렬한 지지가 밑바탕이 되었다. 한국전쟁을 전후해 외국 유학을 다녀온 지배계급의 자식들이 사회주의자가 되고, 서구로부터 들어온 기독교식 교육을 받은 피지배계급의 자식들이 청교도적 민주주의 사상을 받아들여 자신의 계급적 뿌리와 이반된 사상을 지니게 되었던 것처럼 히틀러를 가까이에서 접한 귀족적 민주주의자들은 히틀러를 제거하고자 했고, 그의 통치로 가장 큰 피해를 겪어야 했던 대다수 독일 서민들은 여전히 히틀러를 지지했다.


쿠데타로 나치지배가 종식될 수 있었을까

역사가들이 가장 즐겨하는 질문이자 가장 꺼리는 질문은 “만약에~”란 것이다. 역사란 이미 과거에 일어난 사건 중에서 현재까지 영향을 미치는 주요한 사건을 찾아내 인과관계와 그 의미를 찾아 묻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과거에 아무리 중요한 사건이었다 할지라도 그것이 현재에 영향을 주지 못한다거나 의미가 없다면 그것은 역사적 사건이 될 수 없다. 브라이언 싱어 감독이 영화 <발키리>로 우리에게 묻고 싶은 질문은 무엇이었을까?

 


사실 영화 <발키리>는 역사영화로서는 매우 훌륭한 편이다. 할리우드에서 제작되는 역사 영화들이 지닌 문제점의 상당수는 역사를 희화화하거나 제멋대로 왜곡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발키리>는 마치 한 편의 다큐멘터리를 보는 것처럼 진지하다(물론 다큐멘터리도 허구이며 창작자의 의도가 반영된다는 점에는 변함이 없다). 브라이언 싱어 감독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에 ‘나치’만 있었던 것이 아니라 히틀러와 나치체제에 저항하려다 목숨을 잃은 이들도 있었다는 사실을 전세계인들에게 보여주고자 했다. 그의 이런 의도는 톰 크루즈라는 대중적인 스타에 의해 충분히 담보되었고 나름대로 성공을 거두었다.


영화 <발키리>의 장점은 이처럼 진지하다는 데 있지만, 동시에 관객들에게 왜 진지해져야 하는지 충분히 설명해주지 않는다. 역사 속의 사건이 그 자체로 극적인 요소들을 풍부하게 가지고 있기는 하지만 호메로스의 『일리아드』를 관객 모두가 읽었다고 할 수 없는 것처럼 히틀러 암살이란 대의에 목숨을 거는 요 인물들의 당위적 결의는 영화 내부에 있지 않고, 관객들의 영화 외부에서 배운 역사에서 나온다. 그 결과 논리적으로는 공감할 수 있어도 영화를 보는 동안 정서적으로 공감하기란 쉽지 않다. 


슈타우펜베르크는 영화 서두에 이미 히틀러의 제거를 결심한 사람이었고, 베를린의 히틀러 암살 음모 세력 역시 이미 준비된 사람들이다. 그들이 왜 목숨까지 걸면서 히틀러를 제거하려 하는지에 대해 관객들 보고 스스로 역사에서 배우라고 말하는 것 같다. 영화의 진행상 필요한 등장인물 수가 너무 많은 것은 어쩔 수 없다고 하더라도 영화 <발키리>자체가 지닌 극적인 요소에만 천착해버리면 역사영화가 줄 수 있는 재미로부터 너무 멀어지는 것이기도 하다.


일반 관객들이 히틀러 암살 음모 사건을 접하게 될 때, 가장 먼저 던지게 될 핵심적인 질문이 무엇이었을까를 상상해보면 쉽게 알 수 있다. 아마도 그 질문은 ‘만약 히틀러가 슈타우펜베르크 대령과 그의 동지들이 계획했던 대로 암살당했다면 과연 역사는 어떻게 달라졌을까?’였을 것이다. 역사는 정말 달라졌을까? 슈타우펜베르크의 히틀러 암살 작전은 노르망디 상륙작전이 있었던 1944년 6월 6일로부터 44일이 경과한 1944년 7월 20일의 일이었고, 독일이 연합국에 무조건 항복한 것은 발키리작전으로부터 10개월쯤 뒤인 1945년 5월 8일의 일이었다. 과연 한 명의 정치지도자가 암살당하고, 쿠데타로 나치 정권은 전복될 수 있었을까? 그 결과 독일은 연합국, 소련 등과 휴전을 맺을 수 있었을까?


우리는 이 영화 <발키리>를 통해 역사 앞에 무수한 질문들을 던질 수 있을 것이다. 김재규의 총탄이 유신에 종지부를 찍기는 했으나 뒤이어 12.12쿠데타와 5.18광주학살을 불러들인 것처럼 히틀러의 암살이 역사의 냉정한 잔혹성을 보여주었을지도 모른다. 역사에는 가정(假定)이 없다고 하지만 어쩌면 그와 반대의 경우를 보여주었을지도 모른다. 어쩌면 그와 같은 질문은 그저 영화를 재미있게 보면 그뿐인 관객의 입장에서 호사스러운 질문일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우리는 내일을 살기 위해 반드시 거쳐야 하는 어제가 있는 법이다. 설령, 그것이 역사의 잔인한 수레바퀴 앞에서 실패라 불리게 될지라도 목숨을 걸고 넘어서지 않으면 안 되는 오늘도 있는 법이다.



영화 <발키리>는 의인이 10명만 있어도 소돔을 멸망시키지 말아달라던 아브라함의 질문을 우리에게 던진다. 비록 실패로 끝났고, 대중의 지지도 받지 못했지만 그들이 있어 두 차례의 세계대전과 홀로코스트의 광기에 휩싸인 독일이 역사 앞에서 그래도 우리 속에 이 체제에 저항한 사람들이 있었노라고 말할 수 있지 않은가. 마찬가지로 1980년 5월 광주의 마지막 날은 우리에게도 많은 것을 시사해준다. 계엄군이 탱크를 앞세워 광주도청으로 진격해오던 날 밤을 어떤 소설가는 이렇게 말했다. "그날, 살고자 하는 사람은 모두 살았고 죽고자 하는 사람은 모두 죽었다." 대한민국 민주주의의 역사는 그날 죽고자 마음 먹은 시민들의 피를 통해 산 사람들의 의식을 일깨우는 역사이기도 했다. 나는 역사가 어느 한 사람에 의해 결정되거나 이끌려 간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하지만 천하흥망에는 필부에게도 책임이 있는 법(天下興亡 匹夫有責)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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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치 시대의 일상사 - 개마고원신서 33
데틀레프 포이케르트 지음, 김학이 옮김 / 개마고원 / 2003년 7월


국가규모의 범죄집단은 폭력과 공포만으로 지배하는가?

007 시리즈에 등장하는 "스펙터"와 같이 국가적 규모를 갖춘 범죄집단은 과연 가능할까? 어떤 만화나 영화들을 보면서 가끔 설명이 불충분하더라도 으레 그러려니 하고 넘어가야 할 부분들도 나는 심각하게 궁리할 때가 있다. 앞서 말한 스펙터같이 국가와 경쟁할 수 있는 범죄집단의 가능성이 그렇고, 영화 "혹성탈출"에 등장하는 유인원 인류가 사용하는 자동소총(혹은 반자동소총)이 과연 영화 속에서 그리고 있는 문명 수준에서 개발 가능했을까? 하는 의문들이 그렇다(세계 최초의 반자동소총은 미국이 제2차 세계대전에서 주력으로 사용한 M1소총이었다).


과연 영화 속에서 그리고 있는 원숭이들의 문명 수준이 당시 미국의 문명 수준에 이르렀는가를 생각해보면 이런 의문이 나름대로 정당하다는 생각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소총 한 자루 만드는 것에도 그에 합당한 기술 수준이란 것이 있으니까. 007 시리즈뿐만 아니라 거대한 조직을 유지하는 폭력집단(유사국가 혹은 국가 그 자체라고 해도 좋은)이 단순히 폭력과 억압을 이용한 공포만으로 국가라는 조직과 헤게모니를 장악할 수 있었을까? 소규모 폭력조직이라면 가능하겠지만 국가 단위의 폭력구조를 유지하는 일은 구태여 그람시의 이론을 끌어들이지 않더라도 폭력과 공포 이상의 무엇인가가 필요하다는 것을 감지하기란 그리 어렵지 않은 일이다.


이 책 "나치 시대의 일상사"는 역사란 "과거의 의미있는 사실만을 기록한다"는 원칙에 따라 그간 의미없음으로 치부되어 왔던 일상의 역사적 진실을 들춘다. 저자는 독일 나치 시대를 살던 평범한 사람들의 일상에 주목하여 나치의 인종주의와 같은 중세적 야만성이 선진사회에서 돌출할 수 있었는지를 탐구하고 있다. 결론삼아 저자의 주장을 미리 말하자면, 이것은 결코 돌출이 아니라 서구의 근대성, 선진 사회가 내세우는 '진보' 안에 내재된 당연한 귀결이었다. 저자 데틀레프 포이케르트 (Detlev Peukert)는 독일의 역사가로 '나치 시대 공산당의 저항운동' 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이 책은 그가 81년에 저작한 것으로 나치 시대의 일상사를 선구적으로 개척했다는 평을 받는다. 그래서인지 포이케르트의 이 책의 전체를 관통하며, 부제로 되어 있는 세 가지 "순응, 저항, 인종주의"란 맥락 가운데 좌파의 역할은 "저항"에서 두드러져 보인다.


제3공화국의 기억과 제3제국의 기억

평소 제1차 세계대전 이후 전유럽에서 소비에트 러시아를 제외하고는 가장 강력한 좌파 정당들이 존재했던 독일에서 어떻게 나치즘과 같은 극우파 정당이 정권을 장악할 수 있었는가?에 대한 풀리지 않는 의문을 가지고 있었던 나에게 그의 책은 가뭄 끝에 내리는 단비처럼 느껴졌다. 물론, 이 책 한 권으로 그런 의문이 모두 해갈된 것은 아니나 상당 부분 도움을 얻게 되었다. 포이케르트는 우선 "순응"이란 측면에서 나치즘이 폭력적인 권력 탈취 방식을 일부(?) 사용한 것은 사실이나 권력을 장악할 수 있었던 것은 독일내 중산층과 부르주아지들이 이에 순응했기 때문으로 규정한다.


영국의 웰링턴 장군은 나폴레옹 군대를 격파한 뒤  “워털루의 승리는 이튼 교정에서 이루어졌다.”고 말한 적이 있는데, 이 말을 독일식으로 바꿔보면 1866년 프로이센-오스트리아 전쟁의 승리는 신무기인 후장식 소총의 도입이 아니라 프로이센 교사들의 몽둥이 찜질에 의한 훈육 덕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독일 국민들에게는 1866년부터 일반적이었다. 독일의 민족주의는 모든 면에서 군대식으로 각을 잡은 직각형 인간들을 선호했다. 그들에게 직장에서 빈둥거린다거나 공연히 공적인 장소에서 모나게 행동하는 일탈 행위를 처벌하는 것이 사회적 책무라고 여겼다. 저자의 지적은 때때로 우리에게도 뼈아픈 일침이 된다.


제3제국은 오늘날까지도 많은 노인들의 기억 속에 두 가지 업적으로 기억된다. 당시에는 자전거에 자물쇠를 채우지 않고, 문 앞에 세워둘 수 있었다는 것과, 당시에는 장발과 싸움패는 제국노동봉사단에 끌려갔다는 것이 그것이다. 물론 그러한 생각이 당시 유행하던 사형 혹은 가스실에 대한 요구로 이어졌던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러한 생각은 특수한 형태의 테러, 즉 일탈적인 입장 혹은 일탈적인 존재를 수용소에 집어넣고, 죽이지는 않는다고 하더라도 적어도 그곳에 격리시키고 훈련시키는데 테러 방식에 동의하는 것을 의미한다. 잊지 말아야 할 것은 히틀러 치하에서는 자전거에 자물쇠를 채우지 않아도 도둑맞지 않았다는 판에 박힌 좋은 기억이 "절도할 가능성이 있다고 여겨지는" 집시들이 수용소에 수감된 것에 대한 기억과 함께 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데틀레프 포이케르트, 나치 시대의 일상사, 303-304쪽 중에서>


질서를 위한 폭력을 권장하는 세력들

오늘날 우리들의 기억 속에 있는 제3공화국 박정희에 대한 향수와 독일 제3제국 히틀러에 대한 독일 노인들의 향수는 어딘지 모르게 일탈 행위를 그나마 용납해주는 현재의 사회 분위기에 대한 반감으로 이어지고, 이런 판에 박힌 기억은 과거 독재 시대를 미화하는데 일조하고 있다. 우리는 얼마전 광화문 광장에서 있었던 극우파들과 일부 교회의 목사들이 성조기를 나부끼며 벌였던 시위를 기억하고 있다. 독일에서 나치가 집권하기 전인 바이마르 공화국 시절 독일 개신교 총감독 디벨리우스가 "포츠담의 날"에 행한 설교 내용을 살펴보도록 하자.


국가사의 새로운 장은 언제나 폭력과 더불어 열립니다. 왜냐하면 국가는 권력이기 때문입니다. 새로운 결정, 새로운 지향, 변화, 전복은 언제나 한 편에 대한 다른 한 편의 승리를 의미합니다. 그리고 국가의 존망이 걸린 경우, 국가 권력은 안을 향해서든 밖을 향해서든 강력하게 행사되어야 합니다. (...) 국가가 국가질서를 파괴하는 자들, 특히 더럽고 비열한 언어로 국가의 명예를 실추시키고 신앙을 경멸하는 자들, 그리고 조국을 위해 희생한 목숨을 비방하는 자들에 대해 자신의 직분을 다한다면, 그것은 신의 이름으로 행동하는 것입니다. (...) 질서가 수립되면 다시 정의와 사랑이 지배해야 합니다.


그날 광화문에서 있었다는 쿠데타 선동 발언에 버금가는 말이다. 독일 개신교 세력이 모두 그러했던 것은 아니지만, 독일에서 나치즘이 발호할 수 있었던 근본 배경에는 독일 개신교 세력의 은근한, 때로는 적극적인 지지가 작동한다. 그들은 좌파에 대한 두려움으로 도리어 나치즘을 선동하고 나섰다. 1933년 초 몇달 동안 독일 내 좌파들에게 행해졌던 가혹한 억압 상황에서 독일의 일반 국민들은 이것을 위협받고 있는 질서를 회복하기 위한 것으로 받아 들였다. 그들은 원하는 것을 얻었다. 좌파에 대한 공포로 반공에 대한 공포를 잠시 잊은 결과 독일 국민은 최악의 전쟁을, 최악의 패배를, 최악의 생존을 감수해야 했다.


독일 제3제국의 신화

오늘날까지 독일 제3제국의 신화는 여전하다. 인터넷상으로도 쉽게 볼 수 있는 밀리터리 매니아들은 나치즘에 대한 이해보다는 그들이 보여준 절도와 형식에 깊이 매료된다. 수많은 사람들의 기억 속에 전쟁 발발 이전의 나치 시대는 부흥과 복지의 시대로 미화된다. 그러나 그것은 세계대공황과 전쟁동안, 전후(제1차 세계대전)의 질식할 듯한 궁핍과의 비교를 통한 것일 뿐이다. 실제 나치가 집권한 뒤인 1930년대의 경제 분위기도 낙관적이진 않았다는 것이 저자의 해석이다. 요컨대 사람들은 경제의 호전 기미만으로 이를 반가워했고, 이를 곧바로 경제호황에 대한 낙관적 기대와 연계시켰지만, 여전히 생필품은 치명적으로 부족했다. 지금 노무현 정부는 그와는 정반대의 입장에 처해있다. 국가차원에서 보았을 때 경제는 여전히 나름의 수준을 유지하고 있으나 내수경제가 살아나지 않아 실질경제는 불황 속에 처해 있는 현실은 전적으로 언론의 탓이라 할 수는 없어도, 부분적으로는 언론의 부풀리기가 경제위기를 고조시키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또 한 가지는 히틀러가 실업문제를 조속히 해결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사실과 다르다. 실제 제3제국의 현실이 아니라 나치의 선전이란 측면에서만 그러했다. 현실에서 수치와 통계로 드러난 실업자 감소 추세는 매우 느린 속도로 일어나고 있었다. 과거 5.16직후 군사정부가, 1978년 오일쇼크 이후 급증한 실업자 문제를 제5공화국이 해결한 방식은 이미 1930년대 독일에서 실시된 것이다. 그들은 최소한의 임금만을 받고 노동봉사대와 긴급노동대로 결성되어 체제 위신용 건물 건설에 동원되었다. 실업자 수치 자체가 감소한 것은 사실이나 그것이 실질적인 실업자 감소로 이어진 것은 아니었다. 실제 독일에서 완전고용이 이루어지게 된 것은 1936년 무렵 전시 경제에 접어들어 군수산업이 폭발적인 호황을 누린 뒤부터이다.


다른 하나의 신화는 독일 (나치)관료 집단이 청렴했다는 것인데, 이 역시 실제와는 완전히 다른 사실이다. 공직과 권위를 충분히 획득한 그들은 관료로서 권력과 직위, 특권을 마음대로 전용함으로써 그들 자신이 과거 비판해 마지 않던 바이마르 공화국 시절의 공무원들과 아무런 차이가 없는, 아니 더욱 부패해 있었다. 그럼에도 히틀러 개인에 대한 인기는 조금도 줄어들지 않았는데, 아이러니하게도 이것은 그가 최초의 권력기반으로 삼았던 돌격대를 무자비한 폭력을 통해 해체한 결과로 얻은 것이었다. 초기 나치당의 지도자였던 에른스트 룀과 그의 사조직이라 할 수 있는 돌격대는 나치의 중요한 권력기반이었지만, 권력을 장악해 더이상 사병집단이 필요없어진 히틀러에게 그들은 골칫거리이자 장차 그의 권력에 도전할 수 있는 세력으로 비춰졌다.


히틀러는 재빨리 룀을 제거함으로써 권력기반을 공고히하는 결과를 나았다. 그러나 이것이 독일 국민들에게는 묘하게도 그 자신의 권력 기반을 공고히 한 일로 비춰지기 보다는 독일의 골칫거리가 된 자신의 신뢰하는 수하들인 돌격대를 국민들을 위해 제거한 것으로 보였다. 히틀러는 알기만 한다면 이를 악물고 부패한 자신의 수족을 잘라낼 만큼 결단력있고, 공정한 총통으로 비춰졌고, 실제로 그렇게 선전되었다. 독일 국민들이 전쟁에서 패배하는 그 순간까지도 독일 국민들의 총통에 대한 신뢰는 절대적이었다. 이승만이 모든 실정의 근간이자, 부패의 근본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모든 비난이 이기붕과 자유당에 집중되었던 것처럼 히틀러는 나치당의 모든 부패와 실정으로부터 격리될 수 있었다. 과연 대통령 중심제 국가에서 대통령과 상관없이 집권당만 실책을 거듭할 수 있는가? 우리는 오늘의 현실에도 물어보아야 한다.


새로운 고전의 기미를 엿볼 수 있었던 책...

"나치 시대의 일상사"가 고전이 될 수 있을까? 나는 가능하단 생각이 들고, 이미 어느 정도는 고전의 지위를 얻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럼에도 몇 가지 이 책의 단점이랄까, 아쉬움이 남아 딴지를 걸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독일 내 좌파들의 맥없는 몰락에 대해 저자의 "일상사"적인 분야에 대한 연구는 매우 훌륭했다. 그러나 독일 내부의 문제만으로 독일 좌파의 몰락이 빚어진 것은 아니다. 이 부분이 저자의 주된 연구 분야이므로 저자의 다른 책을 보노라면 더 세세한 지적들이 있을 것이고, 이 책의 주제가 일상사이므로 국제사적인 맥락을 짚기는 어려웠겠으나 당시 독일내 좌파가 나치에 대한 이렇다 할 저항을 하지 못한 가장 큰 원인 중 하나인 스탈린과 코민테른의 실책(소련은 영국과 프랑스의 대 소련 고립정책을 타개할 방편으로, 나치 독일이 프랑스와 우선적으로 경쟁할 것이란 판단에서 독일 내 공산주의자들의 나치에 대한 저항을 금지시켰고, 독일 좌파는 사분오열되고 만다.), 영국과 프랑스의 오판 등에 대해 거의 언급이 없다는 사실은 아쉽다.


그러나 가장 아쉬움이 남는 것은 저자의 단명이다. 그는 너무 이른 나이에 세상을 등졌다. 살아 있었다면 좋은 연구 업적들을 보다 많이 남겨주었을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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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법의 풍경 : 잃어버린 헌법을 위한 변론』 - 김두식 | 교양인(2004)


개인적으로 지난해(2004년) 책을 통해 알게 되고, 만나게 된 저자 혹은 사람 가운데 가장 인상적인 인물을 꼽자면 한동대 법대 교수로 재직하고 있는 김두식 선생을 꼽아야겠다. 해마다 반복되는 다사다난(多事多難)이란 말이 무색할 만큼 많은 일이 일어났던 지난 한 해였지만 가장 많은 이들이 사건 1위로 꼽은 것은 대통령 탄핵 사태였다. 헌법재판소의 대통령 탄핵 기각처분은 민주주의란 곧 법에 의한 통치를 의미한다는 사실을 깨닫게 만들었다. 그러나 10월 21일 헌법재판소가 관습헌법이란 논리로 "신행정수도건설특별법"에 대해 위헌판결을 내리자 우리는 헌법을 새삼 고민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는 우리 정치권이 사회의 다양한 의견과 논쟁 등 갈등 요소를 효과적으로 조율하는 역할을 상실했음을 의미하는 반증이기도 하다. 그 내막이야 어찌되었든 헌법재판소의 탄핵 기각 결정과 신행정수도 위헌 판결은 우리에게 법에 의한 통치의 의미를 다시금 깨닫게 만들어준 소중한 정치적 경험이자 자산이 되었다. “헌법의 풍경 - 잃어버린 헌법을 위한 변론”은 그 의미가 무엇인지 우리에게 일깨워준다.

헌법 - 법에 의한 통치에 대한 고민
“헌법의 풍경”은 이런 2004년의 분위기를 미리 예견이라도 한 것처럼 시의적절한 시기에 출판된 책이다. 그러나 앞서도 말한 것처럼 “헌법의 풍경”은 헌법 자체를 문제 삼고 있지는 않다. “헌법의 풍경”은 민주공화국의 기본 틀이 되는 헌법이 만들어 낸 우리 사회의 다양한 풍경들을 때론 원경으로, 때론 클로즈업하듯 깊이 있게 다루고 있다. 우선 이 책은 그 제목이 암시하고 있듯 헌법학 개론서이거나, 우리 헌법을 역사적으로 개괄하는 책은 아니다. 그보다는 몇 가지 문제의식을 통해 우리가 헌법 혹은 우리가 당연시해 왔던 법에 의한 통치에 대해 고민하게 만든다. 내게 있어선 그 점이 약간의 아쉬움으로 남았지만, 그와 관련해서는 김두식 선생이 차후에 이와 관련한 좋은 책을 써줄 것으로 믿어 본다. 

이 책이 주는 가장 큰 미덕은 일반인들 누구나가 알고 있는 상식이면서도 실제 일상사에서는 쉽게 인식하기 어려운 교훈을 풀어주고 있는 점이다. 그 교훈이란
“법이 절대적인 규범이 아니란 사실, 헌법은 국가라는 괴물을 시민에 의해 통제하기 위해 만들어졌다는 것, 시민사회의 감시 없는 법률(헌법)은 때때로 독재(권위주의) 정부로 흐르며, 법률가, 그들만을 위한 사회를 만들어낸다는 것, ‘그럼에도 불구하고’보호되어야 할 시민의 권리가 보호받지 못한다는 사실”이다. 일견 당연해 보이나 그간 우리들이 실감하지 못했던 중요한 문제의식들이다. 이 책은 서장을 제외하고 모두 8장의 구성으로 되어 있다. 서장 “법학과의 불화”는 저자인 김두식 선생이 법대를 졸업하고, 사법시험에 합격하여 군법무관과 검사라는 법조인 양성시스템의 컨베이어 벨트에서 일탈하게 되었는지, 그 과정에서 우리 법조계와 법체계, 우리 사회에 대해 어째서 문제의식을 갖게 되었는지를 잘 드러내주고 있다. 서장은 저자 자신의 개인적인 신상에 대한 이야기를 소개하는 것으로, 이후 다뤄질 다소 딱딱해지기 쉬운 법에 대한 문제의식과 대안 모색의 전 과정을 친근하게 접근해 들어갈 수 있게 해준다.

‘1장 정답은 없다’에서 김두식 선생은 우리에게 “법은 절대적인 규범인가?” 라는 질문을 던진다. 이런 문제의식은 ‘2장 국가란 이름의 괴물’로 이어지며 다시 “국가는 언제나 선인가?”, “괴물의 시대는 갔는가?”와 같은 질문에서 반복된다. 이는 그동안 법은 존재했으나 국민을 위해 보호하는 법치가 아닌 국민을 억압하고 통제하는 권위주의 정부의 합법성을 가장하기 위한 장치로서의 법, 국민을 위해 봉사하는 정부가 아닌 국민 위에 군림하는 독재 정부의 국가안보를 빙자한 국가주의에 대한 환상을 깨뜨리는 질문이기도 하다. 저자는 법도, 국가와 마찬가지로 절대선, 절대적인 규범이 아니며 각기 다른 해석을 내릴 수 있는 것임을 밝히고 있다. 이는 민주주의의 당연한 원칙이자 상식이지만 그간 국가주의, 권위주의의 무게에 짓눌려온 우리들의 상식을 복원시키는 작업이기도 하다.

‘3장 법률가의 탄생, 4장 똥개 법률가의 시대, 5장 대한민국은 검찰공화국’부분은 이 책의 가장 재미있는 부분이다. 이 부분이 가장 재미있는 이유는 다루고 있는 내용이 마치 조선시대 민초들에게 지방 수령의 전횡보다 그 권위에 빌붙어 가렴주구(苛斂誅求)하는 아전의 착취가 더 밀접하게 다가오는 것처럼 우리가 실생활에서 접하게 되는 법률가들에 대한 날카로운 풍자와 비판이 드러나고 있기 때문이다. 고시공화국이라 불릴 만큼 우리 사회의 고시 열풍은 과연 대단한 것이다. 요즘 상식을 뛰어넘을 정도로 많은 수의 서울대생들이 전공 불문하고 ‘사법고시’를 준비하고 있다. 서울대는 물론 전국의 대학들에서 기초학문 연구가 사라진 것은 어제오늘의 현상이 아니다. 고시에 청춘을 건 사람들은 비단 학생뿐만이 아니라 청년 실업자, 직장인들 사이에서도 그 열기가 뜨겁다. 수많은 젊은 인재들이 일개 자격증 시험에 인생의 가장 중요한 시간을 투자하는 사회를 건강하다고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어째서 이런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일까? 현재의 고시제도는 결국 조선시대 과거(科擧)제도와 실시 방식이나 그 결과 발생하는 현상이 똑같다는데 그 문제가 있다. 우리 사회에서 ‘사법시험 합격’은 곧바로 ‘신분의 수직상승’을 의미한다. 조선시대 양반들이 과거를 통해 신분제 사회를 온존시키는 방편으로 삼고, 지배 엘리트들의 권력기반을 공고하게 만드는 수단으로 삼은 것처럼 오늘날 사법시험은 특권 지배 엘리트들을 양산하는 시스템으로, ‘그들만의 대한민국’을 형성하는 수단이 되었다. 김두식 선생은 우리에게 새로운 법조문화가 시작되는 분기점으로 1997년과 1998년의 법조비리 사태를 꼽는다. 아는 이들은 다 아는 이야기지만, 난마처럼 얽혀있던 법조비리가 하필이면 1997, 98년 무렵에야 터져 나오게 되었을까? 

이것은 정권의 정통성과 관련이 있다. 5.16군사쿠데타, 유신독재, 12.12쿠데타로 집권한 정권은 법조계를 채찍과 당근을 통해 길들여왔고, 법조계는 정경유착이나 권언유착처럼 권법유착 관계를 유지해왔다. 우리는 오랫동안 개혁이란 말을 들어왔지만, 개혁은 여러 곳에서 좌절되는 광경을 보아야 했다. 개혁이 이토록 어려운 까닭은 ‘조직의 논리와 조직의 쓴 맛’때문이다. 저자 자신이 사법고시를 보고, 사법연수원을 거친 경험을 살려 한 명의 법률가가 탄생하는 과정을 다룬 ‘3장 법률가의 탄생’은 처음엔
“가난하고 소외된 이웃을 돕기 위해서” 법조인이 되길 꿈꾼 한 젊은이가 “평생 가난하고 소외된 이웃을 돕겠다고 생각만 한 사람. 여기 잠들다”(124쪽) 묘비명밖에 남길 수 없게 특권 의식에 길들여지는가를 조목조목 따진다. 이렇게 길들여진 이들은 언제든지 괴물로 변할 수 있는 국가의 충복이 된다. 

국가의 범죄는 절대 권력을 지닌 소수의 독재자들이 야욕과 그들에게 복종하는 다수 봉사자들의 협력에 의해 현실화됩니다. 몇 명의 정신 나간 사람들에 의해서는 이런 거대한 범죄가 이루어질 수 없습니다. 다수의 평범한 사람들이 독재권력의 전횡에 참여하거나 방관할 때에만 비로소 국가라고 하는 괴물이 힘을 발휘하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본문 99쪽>

서울 사는 특별시민들은 덜 심각하게 느낄 수도 있는 부분이지만, 지방사는 사람들은 소위 지역사회란 좁은 울타리를 실감하게 될 때가 종종 있다. 우리나라야 워낙 땅덩이 자체가 좁은 곳이니까 하며 방심했다간 어느 순간 지역사회의 텃세에 희생양이 되어야 할지도 모른다. 권력이라고 하면 국가권력같이 거대 권력만을 연상하기 쉽지만 개미에겐 어린이의 장난도 생명의 위협이 되는 것을 떠올려 보면 작은 권력도 거대권력 못지않게 잔인하며, 비엘리트적일 수도 있다는 점에서 더욱 잔인하기도 하다. 지역사회의 숨통을 죄는 것은 휴먼 네트워크, 소위 인맥에 의한다. 지연은 당연하고, 학연에, 혈연에 복잡하게 얽혀 있으므로 마치 인터넷 링크 따라 조금만 가보면 사방 천지에 아는 이투성이인 것과 같다. 어디서 누구에게 무슨 말을 했는지 조금 있으면 좁은 지역 판에 환하게 전해진다.

사람 사는 곳은 어디나 같다고, 굳이 “헌법의 풍경”에서 김두식 교수가 전관예우나 사법고시 선후배 관계 등을 들먹이지 않아도 우리 모두가 너무나 잘 알고 있는 사실이다. 인간은 혼자 살 수 없는 사회적 동물인지라 누군가와 관계를 맺지 않고는 살아갈 수 없다. 국회에서도 낮에는 서로 잡아먹을 듯이 다투는 여야 정치인들조차 밤에는 형님, 아우님, 선배님, 후배님 해가며 그들만의 네트워크로 든든하게 엮여있다. ‘그들만의 엘리트 공동체’는 공식적인 관계보다 더 끈끈한 힘을 발휘한다. 아니, 그 힘이야말로 실제 세상을 움직이는 힘이다. 교수는 제자의 취업을 위해 학점에 온정주의를 베풀고, 교사는 제자의 대학입학을 돕기 위해 성적에, 시험에 온정을 베푼다. 한 두 번 술 자리에서 만난 사이도 몇 순배 술잔이 돌아가고 나면 유사가족관계를 맺으려 한다.

가족적인 사회는 가장 합리적이어야 할 법조계조차 온정주의, 예외주의, 특별주의의 덫으로 법조인들을 빠뜨린다. 나는 얼마 전 읽은 책에서 MBC 아나운서 손석희 씨 이야기를 들었는데, 그는 방송에 지장을 줄 수 있는 만남은 갖지 않는다고 한다. 이 말은 우리 사회가 개혁되기 위해서 우리는 좀더 고독해져야만 한다는 이야기가 된다. 저자는 우리 헌법이, 우리 법조계가 제대로 서기 위해서는 특권 의식으로부터 자유로워져야 하며, 그러기 위해서는 보다 많은 법률가들이 특별한 시험제도가 아닌 로스쿨에 의해 배출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잃어버린 헌법을 위한 변론”, 과연 만들어진 적은 있는가?

-‘국가 만들기(state building)’에 있어 헌법은 곧 국가다.

‘6장 그럼에도 불구하고의 헌법 정신, 7장 말하지 않을 권리, 그 위대한 방패, 8장 잃어버린 헌법, 차별받지 않을 권리’는 앞 부분과 달리 헌법의 기본 정신에 대한 이야기이다. 민주주의를 법에 의한 통치 즉, 법치주의라고 규정한다고 해서 이상하다고 반문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우리 헌법 제1조 1항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란 말을 바꿔 말하면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오는 공화국이란 뜻(헌법 제1조 2항)이다. 그러나 이 말은 오랫동안 그저 말뿐이었다. 좀더 엄밀하게 말해 우리 헌법의 역사는 대한민국의 건국사와 같다. 

우리는 신생 이라크 민주공화국의 수립을 목전에 두고 있다. 오랫동안
"법보다 주먹" 앞서는 독재 시대를 살아왔던 이라크 인들에게 미국은 서구식 민주주의 헌법을 도입(제헌의회구성을 위한)하기 위한 총선을 내년 1월 중에 실시하려고 한다. 그것은 새로운 헌법은 새로운 민주공화국의 수립을 의미한다. 그런데 이라크인들은 어째서 이에 저항하고 있을까? 이라크인들이 어째서 자유와 평등, 인권이 보장되는 민주공화국의 수립에 저항하고 있는가 의문을 품고 있다면, 우리 대한민국의 건국과 헌법의 역사를 살펴보는 것이 의미가 있을 듯 하다.

일본의 강압에 의해 식민지가 된 조선의 해방은 1945년 8월 15일 일본의 패망과 함께 왔다. 어떤 이들은 우리 민족이 일본의 식민 치하에서 자주 독립을 위한 준비에 소홀했고, 국제 정세에 둔감했다고 말하고 싶겠지만, 실은 준비가 전혀 안되어 있었던 것은 아니다. 해방 직후인 1945년 9월 이미 전국인민대표자회의가 열리고, 민주주의적 정부를 즉시 수립할 것과 몇 가지 사안을 의결했다. 주권재민과 국호를 조선민주공화국이라 할 것, 친일파와 민족반역자를 제외한 근로인민의 이익을 중심으로 전민족적 행복을 위한 민주주의 국가를 수립하자는 내용이었다. 몽양 여운형과 우사 김규식 선생 같은 이들은 신탁통치를 받아들이고, 이 과정을 통해 한반도에 좌우정치세력이 합작하여 통일 민족 국가 수립을 이룩하도록 힘썼다. 그러나 결과는 각 정파, 정치 세력이 각각의 이해관계로 나뉘어 결국 남북한은 분단국가로 현재에 이른다.

비록 해방은 타의에 의한 것이었으나 국가수립만큼은 주체적으로(헌법 제정을) 이룩하고 싶은 열망  만큼은 근대화된 것이었다. 그러나 미 군정은 이런 모든 시도를 단속하고, 통제하며 좌우합작을 방해하고, 이간하는 공작을 폈다. 이 과정에서 몽양을 비롯한 좌우합작세력은 좌우 양극단을 아우를 수 있는 사실상 유일한 정치세력이었으나 미소 양대 냉전세력과 이를 추종하는 각 정파의 이해관계 속에서 몽양 여운형 등의 암살과 더불어 다시는 봉합될 수 없는 길을 향해 나아갔다. 분할하여 통치하라는 제국의 세계 지배 원칙은 이 때에도 그대로 관철되었다. 미국은 패전국 일본과 마찬가지로 정국의 주도권을 장악하되 간접적인 통치방식을 취한다. 전직이냐, 현직이냐는 구분을 제외하곤 미 군정청의 하지 중장과 이라크임시행정처 장관, 제이 가너, 폴 브레머는 사실상 같은 역할을 하고 있는 인물인 셈이다. 

김구를 비롯한 임정 세력은 이승만과 달리 미군정의 헌정구상(단독정부 수립)을 이해하지 못했고, 반대하였으므로 제거되었다. 이와 같은 과정들은 미군이 이라크를 점령한 뒤의 상황을 냉정하게 살펴보면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일이다. 이라크에서 시아파 최고 지도자급에 속하는 성직자들이 희생당하고 있는데, 미국은 이라크를 점령한 뒤 친이란적인 시아파 지도자의 출현을 염려해 왔다. 1947년부터 미 군정청 내부에 헌법기초분과위원회를 설치하고 본격적인 헌법제정 작업에 착수하였다. 이 과정에 좌파, 좌우합작파를 비롯해 미국에 협조적이지 않았던 정치세력이 배제되었음은 물론 남한만의 단독 총선에 반대하는 운동은 무력으로 진압되었다. 초대 대한민국 헌법을 만든 이들이 모두 그런 것은 아니었지만 민주주의를 자각한 이들에 의한 것이 아닌 일제에 친화적인 관료, 지주, 법관 출신 인사들로 구성된 정치세력에 의해 미 군정의 지도 감독 아래 만들어진 것이다. 단독정부 수립을 위한 남한만의 총선거에서 우리들 역시 많은 피를 흘리며 저항했었다. 그렇다면 이라크인들의 저항이 이해되지 않는가?

사실 김두식 선생이 이 책에서 말하고자 하는 내용 -
6, 7, 8장의 - 을 잘 이해하기 위해서는 이런 과정들, 우리 헌법의 태생에 얽힌 부분을 함께 이해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당시 제헌의회에서 수립한 우리 헌법은 보통선거와 같이 당시 선진국 일부에서도 미처 시행하지 못하고 있는 선진적인 제도를 도입한 것이었다. 그러나 우리가 우리 민족의 의지로, 우리 사회 구성원 전체의 열망을 담아 만들어내 지 못한 헌법은 제1차 세계대전 직후 수립된 독일 바이마르 공화국의 헌법처럼 오랜 시간 국민의 권리를 수호하지 못했다. 오랫동안 권리 위에서 잠든, 아니 그 권리를 되찾기 위한 피 흘림의 역사는 계속 되었고, 우리는 지난 해 작지만 우리의 권리, 우리의 헌법이 살아 숨쉬고 있음을 깨달을 수 있었다. 그러나 김두식 선생은 우리에게 로버트 프로스트의 싯구를 떠올리게 만든다. “숲은 아름답고, 어둡고, 깊다/ 그러나 나는 지켜야 할 약속이 있고/ 잠들기 전에 가야 할 길이 있다/ 잠들기 전에 가야 할 길이 있다(And miles to go before I sleep).”라고. 시민사회의 감시 없는 헌법은 독일 바이마르 헌법처럼 히틀러의 출현을 막을 수 없다는 사실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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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바람구두 windshoes

『막스와 모리츠(Max and Moritz)』 - 빌헬름 부쉬 지음, 곰발바닥 옮김 / 한길사(2001)

독서 시간은 10분이지만 생각할 거리는 ...

빌헬름 부쉬(Wilhelm Busch)의 초기작이자 가장 대표작이기도 한 막스와 모리츠 를 읽는데 걸린 시간은 채 10분도 걸리지 않았다. 그야말로 전광석화처럼 읽었는데, 하루가 지나고, 이틀이 지나도 진한 여운이 남았다. '허, 거참 신기한 일이다.' 읽는데 10분도 걸리지 않았는데, 다 읽고 이틀 동안 다른 사무 때문에 몹시 바쁘게 보냈는데도 계속 생각이 나다니 드문 경험이었다. 이 책을 읽는 10분 동안 들었던 주된 생각은 "거 참 장난이 심한 녀석들이네." "헉, 그렇다고 주인공들을 그렇게 죽일 것까지야."란 생각이었다. 문학적으로 볼 때 작가가 주인공을 죽임으로써 뭔가 그럴 듯한 걸 보여주고, 보여줄 수 있던 시대는 호메로스 이래, 셰익스피어를 거쳐 괴테 시대에 이르러 사실상 막을 내렸다(내가 생각하기에 근/현대는 죽음을 소외시킨 시대이다). 그 이후 시대의 작가들 가운데 죽음을 이보다 더 의미있게 보여준 작가들은 찾아보기 힘들다. 그들은 죽음보다는 어떻게 살았는지, 살아가는지를 보여주는데 치중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문학과 예술에서 죽음은 그렇게 서서히 비중 없는 지위로 격하되었고, 문학 기술상으로도 죽음을 다루는 솜씨는 점차 퇴보하게 되었다. 생각해보라. 지금 햄릿이나 오델로, 리어왕처럼 멋있게 혹은 의미있는 죽음을 맞이하는 주인공이 몇이나 되는가를...

하지만 빌헬름 부쉬가 그리고 있는 막스와 모리츠의 죽음은 해도해도 좀 심했다
(혹시 이걸 스포일러라고 비난받지는 않겠지). 책을 읽는 10분간 그리고 마지막 책장을 덮은 뒤 나는 작품 속 악동들이 볼테 아주머니의 닭들이 나무에 매달려 헐떡이는 광경을 지켜보며 토해냈을 법한 미소를 지었다. 혹자는 이를 "그로테스크(grotesque)"라고 말하는데, 그로테스크란 말은 우리가 무신경하게 종종 사용하는 '매너리즘','댄디즘'과 같이 역사적 연원이 있는 말이다. 그로테스크한 묘사, 그로테스크한 표현, 혹은 미술의 표현 양식이든, 그것이 무엇이든 그로테스크가 등장하는 시대의 공통점은 사회적인 불안과 불만이 고조되는 시대라고 보면 된다. 그로테스크한 표현이 출현하는 시대는 고대의 토템이나 페티쉬와 같은 괴이한 조형물로부터 중세의 교회질서가 붕괴되기 시작한 15-16세기, 절대왕정에서 근대자본주의 사회로의 변혁기, 제1차 세계대전 이후의 시기에 집중된다. 빌헬름 부쉬에게서 그로테스크를 읽었다면 그건 아주 잘 읽었다고 해야 할 것이다.



막스와 모리츠는 장난꾸러기를 넘어선 그야말로 악동이었다. '팜므 파탈'이 치명적인 요부를 의미한다면 이들은
'앙팡 테리블' 을 넘어선 '앙팡 파탈' 이라고 봐야 할까? 과부댁인 볼테 아주머니의 닭들을 교수형시킨 것도 모자라 재봉사 뵈크를 물에 빠뜨리고, 렘펠 선생의 담배 파이프에 화약 가루를 쟁여넣고, 프리츠 삼촌의 침대에는 온갖 벌레들을 잡아 넣어둔다. 결국 농부 메케의 곡식 자루에 구멍을 내는 장난 끝에 방앗간에 탈곡기에 들어가 낟알이 되어 거위들 먹이가 되고 마는데, 누구 하나 이들의 죽음을 슬퍼하거나 애태우지 않는다. 그로테스크라 하면 커다란 도끼로 이마를 쪼개거나 전기톱으로 신체를 절단하는 식의 하드 고어 스타일을 연상할 수도 있겠지만, 철 모르는 아이 둘을 방앗간 탈곡기에 집어넣고 낟알을 만든 뒤에 이를 새 먹이로 먹게 한다는 스토리도 충분히 하드 고어 스토리다.  동화책 하면 안데르센의 눈물겨운 성냥팔이 소녀를 자동적으로 연상하는 이들이라면 이 동화책을 아이들에게 읽히고 싶지 않을 것이다.

동화란 반드시 교훈(체제순응)적이어야 하는가?
무릇 "동화란 교훈이다."란 고정 관념에 사로잡혀 있는 이들에게 이 동화는 모리스 샌닥(Mourice Sendak) 의 동화들과 함께 끔찍한 악몽일 것이다.  모리스 샌닥의 대표작이기도 한 "괴물들이 사는 나라"는 하마터면 판매금지 처분을 받을 뻔 했다. 이유인즉 소년 맥스가 늑대로 변장하고 놀다가 엄마에게 야단을 맞자 “엄마를 잡아먹어 버릴 거야”라고 말하는 대목이 너무 괴기스럽고, 아이들의 정서를 해칠 수 있다고 생각되었기 때문이다. 종종 음식점에서 떼 쓰는 아이를 달래는 엄마들을, 그런 엄마에게 대드는 아이들을 본다. 엄마는 아이들을 달래다 지치면 "너 이따 집에 가서 혼날 줄 알아"라고 으름장을 놓거나 좀더 심한 말을 하기도 한다. 아이들은 아이들대로 엄마의 부아 긁는 소리를 한다. 좀 심하게 말하는 아이들 가운데는 "엄마를 죽여버릴 테야." 와 같이 듣기 끔찍한 소리를 내뱉곤 한다. 아이의 입에서 그런 소리가 들려오면 끔찍하다. 이때 자동적으로 연상되는 건 근친살해에 대한 뉴스 같은 것이다. (나는 이 대목에서 일본의 걸작 하드 고어 애니메이션 '우르츠기 도지'의 한 장면을 떠올렸다. 냉장고를 열어보니 제 부모의 시신이 토막쳐진 채 담겨있는)어려서 저 모양이니 크면 어찌될까? 하는 걱정일 수도 있겠다.



과연 빌헬름 부쉬나 모리스 샌닥 같은 작가들의 동화책을 아이들에게 읽혀야 할까? 고민스럽지 않을 수 없다. 나의 결론은 물론 읽도록 내버려두라는 것이고, 좀더 나아가서 잘 읽도록 도와주고, 널리 권장해야 한다는 거다. 아이들이 재미있어 하니 좋지 않은가? 이것이 내가 이 책을 권하는 첫 번째 이유다. 물론 더 중요한 이유는 이제부터 말하고자 하는 두 번째 이유에 있다. 이 책의 저자 빌헬름 부쉬는 아동문학을 전공하거나, 이 분야에 제법 관심을 가지지 못한 이들에겐 잘 알려져 있지 않다. 국내에선 그다지 대중적인 인지도가 없는 편이지만 독일에는 그의 기념관이 있고, "막스와 모리츠"는 독일 어린이들이 즐겨 읽는 동화 가운데서도 고전으로 평가받는다.
(선진국에서 널리 읽도록 하고 있으니 우리도 읽도록 하자는 말을 하고자 하는 건 아니다.) 빌헬름 부쉬는 1832년 4월 15일 독일 하노버의 작은 마을인 비덴살에서 태어났다. 그의 부친은 아들이 기계공학자로 살아가길 바랐기에 부쉬는 부친의 뜻에 따라 괴팅겐에서 기계공학을 공부했다. 그러나 그 자신은 화가의 꿈을 포기하지 못하고, 뮌헨에서 뜻을 같이하는 친구들과 함께 그들만의 예술활동을 한다. 

사회변혁기에 출현하는 그로테스크와 풍자
앞서 그로테스크란 역사적 격변기에 주로 등장하는 기법이라 말한 바 있는데, 역사적 격변의 시기에 등장하는 것이 그로테스크만은 아니다. 이런 시기엔 '신랄한 풍자' 역시 등장한다. 어떤 의미에서 그로테스크는 종종 풍자의 한 방식이기도 하다. 예를 들어 1970년대  미국 사회가 급격히 보수화되고, 10대의 성 문란이 가속화되면서 출현한 피가 낭자한 호러영화들은 풍자이면서 동시에 그로테스크이기도 했다. 호러영화의 모든 공식을 풍자하기로 작심한 "스크림"은 1970-80년대의 '청춘'호러영화의 공식 - 섹스를 하면 죽는다. 처녀가 아니면 죽는다 - 를 비틀고, 그 후에 나온 영화는 '처녀면 죽는다'는 공식을 도입하기도 했다. 그로테스크는 이렇게 풍자와 결합한다. 빌헬름 부쉬가 태어나고 살았던 1800년대 초중반의 독일은 어떤 사회였을까? 차이코프스키의 "1812년 서곡"은 나폴레옹의 러시아 원정에서 프랑스가 패하고, 러시아가 승리한 것을 기념한 곡이었다. 1812년엔 이것말고도 중요한 일들이 또 있었는데, 이 해 영국의 런던에는 세계 최초의 광고 대리점이 창설되었다. 즉, 자본주의가 보다 중요한 지점으로 옮겨가게 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나폴레옹의 패배는 전유럽에 '복고(정통, 보수, 반동)주의'의 바람 '메테르니히 체제' 가져왔다. 



프랑스 시민혁명의 기운은 이미 전유럽 시민사회에 속속들이 스며들었으나 메테르니히 체제는 이를 인정하지 않았고, 사회 분위기는 냉각되었다. 1848년 맑스, 엥겔스는
"공산당선언"을 작성하여 출판한다. 1866년엔 프로이센 중심의 독일 통일을 위한 전쟁 프로이센.오스트리아 전쟁이 일어났다. 이런 분위기의 독일에서 자유주의와 시민에 의한 개혁은 발 붙일 자리를 잃었고, 독일 사회는 프로이센을 중심으로 한 통일을 위한 '병영사회'가 되어갔다. 영국의 웰링턴 장군은 나폴레옹 군대를 격파한 뒤  “워털루의 승리는 이튼 교정에서 이루어졌다.”고 말한 적이 있는데, 이 말을 독일식으로 바꿔보면 1866년 프로이센-오스트리아 전쟁의 승리는 신무기인 후장식 소총의 도입이 아니라 프로이센 교사들의 몽둥이 찜질에 의한 훈육 덕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독일 국민들에게는 1866년부터 일반적이었다. 독일의 민족주의는 모든 면에서 군대식으로 각을 잡은 직각형 인간들을 선호했다. 그들에게 직장에서 빈둥거린다거나 공연히 공적인 장소에서 모나게 행동하는 일탈 행위를 처벌하는 것이 사회적 책무라고 여겼다. 파시즘은 직각을 사랑한다. 빌헬름 부쉬는 이런 사회 분위기와 관료들을 비롯한 통치 체제를 날카롭게 풍자하는 작품들을 잇따라 발표한다. 

막스와 모리츠 - 일탈이 곧 죽음인 사회
그렇게 생각해보니 빌헬름 부쉬의 "막스와 모리츠"도 이해될 수 있었다. 막스와 모리츠의 장난은 다소 심하긴 했다. 그러나 그들의 장난이 마을의 평온을 잠시 흔든 것이긴 하지만 볼테 아주머니는 닭털을 뽑아 맛 좋은 닭 훈제구이를, 양복쟁이 뵈크는 젖은 옷을 말리면 되었다. 모리츠의 삼촌도 벌레들을 인정사정없이 짓밟아 죽인 뒤에 다시 평온한 잠자리에 들지 않았는가? 그러나 이 평온한 마을은 막스와 모리츠를 용납해주지 않았다. 그들은 탈곡기에 들어간 뒤 고루 획일적인 낟알이 되어 나왔다. 빌헬름 부쉬의 이런 풍자가 나를 웃을 수도, 울 수도 없게 만든다. 그러나 우리나라에 번역 출간된 이 동화책에는 그런 역사적 배경에 대해서는 전혀 언급이 없다. 그뿐만 아니라 작가 소개도 빈약하다. 아동문학평론가 김경연 선생의 미디어 리뷰를 보니 번역에도 다소 문제(번역은 이 작품의 풍자적 성격보다는 막스와 모리츠의 ‘장난’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었다. - 김경연, 국민일보)가 있었던 모양이다. <경향신문>에 게재된 이 책의 옮긴이들이 했다는 말 "어린이책 코디네이터 모임 ‘곰발바닥’은 유익하지는 않아도 실컷 웃을 만한 책”이라고 소개했다는 말은 도무지 이해가 안 되는 건 둘째고, 화가 날 지경이긴 하지만 그건 그렇다고 하더라도 이 작품이 지닌 감동이나 생각할 거리의 유익함은 전혀 줄어들지 않는다. 그런 역사적 배경 따위 몰라도 괜찮다.



좋은 작품은 작품 그 자체로 말해주기 때문이다. 시오노 나나미는 로마를 '기독교 이전의 로마'와 '기독교 이후의 로마'로 구분한다. 기독교의 유일신앙이 기존 로마의 다신교적인 기풍, 즉 자유로움과 융통성을 앗아갔다고 비판한다. 마찬가지 맥락에서 중국을 보면 성리학 이후의 중국에선 여성의 발을 옭죄는 전족이 유행하기 시작한다. 우리 사회에서는 어느 순간부터 어린이 교육에 있어 창의력이 강조되기 시작했다. 창의력은 자유로운 상상에서 비롯되지만, 내 아이가 태양을 검게 그리면 부모들은 뭔가 우리 아이가 잘못된 것이 아닐까 걱정하기 시작한다. 태양은 붉은 것이란 교육을 받은 부모가 아이들의 창의력에 간섭하기 시작한다. 아이들을 미래의 어른이란 근시안적인 시선으로 지켜보는 동안 아이들의 창의력은 저절로 고갈되고 말 것이다. 어떤 이들은 이 동화를 마치
"호랑이와 곶감"에서처럼 울면 '호랑이가 와서 물어간다'는 식으로 아이들을 윽박지르는 반면교사의 교훈을 삼기 위해 만들었고, 그런 의미에서 훌륭한 동화라 할 수 있다고 생각할지 모르겠다. 그런 설정 자체가 이 동화를 오해하는 지름길이 아닐까?

만약 이 동화에서 우화적인 풍자의 교훈이 아닌 아이들을 교육하기 위한 훈육의 의미로서의 풍자로 이해한다면, 이 책이 주는 교훈은 실로 비루한 것이 되고 만다. 독일인들이 빌헬름 부쉬의 동화를 오해한 결과
- 프로이센의 병영같은 학교에서 아이들의 일탈을 강하게 통제하고, 몽둥이 찜질을 가하고, 훌륭한 병사, 국가를 위한 동량으로 길러내 - 가장 민주적인 제도를 갖춘 바이마르 공화국이 가장 폭력적인 나치 독일로 탈바꿈하게 된 것은 아닐까? 그 결과 막스와 모리츠 같은 사회적 일탈자들은 그들이 탈곡기에서 낟알이 되어 나온 것처럼 강제수용소란 탈곡기에서 생을 마감하게 되고, 파시즘이 원하는 직각형 인간으로 바뀐 '과거의 어린이, 미래의 어른'들은 전장의 이슬로 사라진 것이 아닐까? 가장 민주적인 제도를 갖춘 나라일지라도 가장 민주적인 시민을 얻지 못한다면 결국 민주국가 수립은 요원한 일이 아닐까? 빌헬름 부쉬의 이 책을 통해 반면교사로 삼아야 할 것은 막스와 프리츠와 같은 악동, 사회적 일탈을 꿈꾸는 어린이가 아니라 그들을 탈곡기에 집어 넣고 낟알로 만들고 싶은 우리 어른들의 몫일 것이다. 

만약 당신에게 우리 사회가 허용하는 자유의 폭이 어느 정도인가 알고 싶다면 먼저 당신이 타인에게 허용하는 자유의 폭이 어느 정도인지를 보면 된다. 당신이 타인에게 허용하는 자유의 폭만큼 당신에게도 그 자유가 허용될 것이기 때문이다. 다양성이 인정되는 사회, 광범위한 개인의 자유가 보장되는 사회에서는 '일탈'의 허용범위가 넓고, 그만큼 폭력적인 범죄의 비율이 낮다. 그러나 획일성이 강요되는 사회, 개인의 자유가 극도로 제한되는 사회는 그 사회가 규정하고 있는 '정상'의 범위가 협소하고, 자신들과 조금만 다르면 폭력적으로 이를 교정하려 한다. 사회적 소수자들을 비정상으로 여기고, 이들을 소외시키는 사회는 결코 건강할 수 없으며 이들을 용납할 수 없다는 의식은 결국 폭력적인 해법을 불러들이게 된다.  일탈에 대해, 마이너리티에 대해 관대한 사회는 전체주의, 편견에 가득찬 협소한 정상(?)의 사회에 비해 훨씬 더 많은 사회적 에너지를 생산해낼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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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바람구두 windsho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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