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악의 범죄자도 감옥에 보낼 수 있는 증빙자료, 회계장부
브라이언 드 팔마 감독이 1987년에 감독한 영화 <언터쳐블(The Untouchables)>는 미국 역사상 가장 부패했던 시대였던 금주법 시대를 배경으로 경찰도, 검찰도 감히 손대지 못하던 갱단 두목 알 카포네(Al Capone)가 엘리오트 네스(Eliot Ness)라는 한 풋내기 열혈수사관에 의해 세금 포탈 혐의로 수감시키기까지의 과정을 다룬다. 알 카포네는 1920년대 당시 시카고의 라이벌 갱단 두목이었던 조지 벅스 모렌을 암살하기 위해 경찰관 복장을 한 부하들을 시켜 상대편 조직원 7명을 기관단총으로 살해할 만큼 잔인무도하기로 악명 높은 인물이었다. 경찰과 언론은 물론 시카고의 삼척동자도 이 범죄가 알 카포네의 짓이란 것을 알고 있었지만 무능한 경찰은 범죄의 증거를 찾아내지 못해 도리어 알 카포네의 명성만 높여주게 된다.


시카고 시민들은 알 카포네의 갱단의 횡포는 물론 암흑가 조직과 결탁해 있는 시카고 경찰과 시 당국에 대해 실망하고 있었지만 감히 분노를 드러내지 못한다. 이럴 때 나타난 인물이 시카고 대학을 졸업하고 불과 26세의 나이에 미국 법무성(U.S. Department of Justice)의 금주국(Prohibition bureau) 특별수사관으로 임용된 엘리오트 네스였다. 그는 범죄 집단과 깊이 결탁된 경찰을 배제하기 위해 20대의 열혈 청년들로 수사진을 편성했는데 언론은 이들을 ‘언터처블(Untouchables)’이라 불렀다. 그의 업적은 브라이언 드 팔마 감독에 의해 영화로 재조명되었는데 무자비한 갱단의 두목이었던 알 카포네를 감옥에 보낸 죄명은 다름 아닌 탈세였다. 영화에서 네스와 사법기관이 알 카포네를 감옥에 집어넣을 수 있었던 것은 그의 비밀장부를 정리한 회계사와 장부를 확보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오는 10월 26일에 있을 서울시장 보궐선거에 출마한 나경원 한나라당 후보와 박원순 범야권단일후보는 지난 10일 밤 SBS방송의 ‘나경원 VS 박원순 서울시장 후보토론’에 출연해 서울시 부채 규모를 놓고 때 아닌 ‘부기논쟁’을 벌였는데 나 후보와 박 후보가 서울시 부채 규모를 놓고 각각 단식부기와 복식부기에 의한 회계처리기준을 제시하며 상이한 수치를 제시했기 때문이다. 박원순 후보가 “서울시 부채가 25조 5000억 원에 이른다”며 “오세훈 前 시장의 전시성·낭비성 예산”에 대해 비판하자 나경원 후보는 “25조는 복식부기에 의한 것이고 단식부기에 따르면 19조 가량 된다”고 이에 맞섰다. 서울시의 부채 문제는 워낙 중요한 사안이었기 때문에 두 사람간의 설전은 토론 종반까지 이어졌는데 박원순 후보는 “나 후보가 부채계산 방식을 단식부기로 하는데 복식부기로 할 경우와 6조 차이”라며 “정부와 공기업·공공기관에는 다 복식부기로 쓰고 있는데 (서울시만)단식부기를 쓰는 이유를 알 수 없다”고 지적했다. 그러자 나 후보는 “정부회계 기준은 단식부기”라며 “잘 모르시나 본데 서울시는 단식부기로 쓰는 것이 원칙”이라고 맞서며 말끝마다 국민의 혈세 운운하는 중앙정부나 지방정부가 과연 아직까지도 일반 가정에서나 쓰는 가계부 같은 단식부기를 쓰고 있다는 것인지, 복식부기를 쓴다면 는 어떤 이점이 있으며 이것이 부채를 줄이는데 과연 도움이 될 것인지 의문이 들었다.


인류의 경제활동과 함께 시작된 부기의 역사
부기(簿記)란 장부기입(帳簿記入)의 약자로 정부·가계·기업과 같은 경제주체에서 경영활동을 통해 발생되는 재산의 증감과 자본의 증감(손익의 발생)을 계정이라는 계산형식을 이용해 화폐가치에 의해 계속적으로 기록, 계산, 정리하여 그 원인과 결과를 명백히 하는 방법을 말한다. 나일강 삼각주를 통해 수학과 천문학이 발달했던 이집트, 수메르 문명은 물론 아시리아, 중국, 그리스, 로마까지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부기의 역사는 인류가 고대국가를 형성한 이래 세입을 통해 국가재정을 충당했던 모든 문명권에서 조세징수나 간단한 거래에 관한 기록들이 발굴되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인류 경제활동의 역사와 함께 시작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그 역사가 오래된 것이다.


특히 부기는 경제활동 가운데에서 상업의 발달과 밀접한 연관을 맺고 있는데 해양민족으로 지중해 상권을 장악했던 고대 페니키아인들과 그리스인들도 상업 활동과 거래에 대한 보고를 위해 기록을 남겼고, 노예가 재산을 관리·운영하던 로마에서는 노예들이 주인에게 보고하기 위해 부기가 발달했다. 아직 자본주의가 발달하기 이전이었던 고대와 중세시대의 부기는 단순히 거래 당사자 간의 분쟁의 소지가 있는 채권·채무 관계의 기록, 재산을 관리하고 보전하기 위한 단순한 형태의 단식부기가 일반적이었고, 손익을 계산해 이를 분배하는 데까지는 발달하지 못했었다.


르네상스 회계의 거장 루카 파치올리와 대항해시대
인류의 문명은 특정분야만 갑자기 발달하는 것이 아니라 문화 전반이 고르게 발달하고 그것을 밑바탕으로 해 그 문명의 꽃이라 할 수 있는 거장들이 탄생하는 것인데 우리는 흔히 서구문명의 문예부흥이라고 하는 이탈리아 르네상스의 거장으로 레오나르도 다 빈치, 미켈란젤로, 라파엘로 같은 예술계의 거장들만을 기억하지만 이들과 동시대에 활동했던 인물 가운데 오늘날 전 세계가 사용하는 복식부기의 아버지라 할 수 있는 루카 파치올리(Luca Pacioli)가 있다. 레오나르도 다 빈치가 천재이긴 하지만 인류 역사에 끼친 영향만 놓고 보자면 일반 대중에겐 잘 알려져 있지 않지만 루카 파치올리가 끼친 영향이 결코 작다고 말할 수 없을 것이다.


프란체스코회 수도사이자 저명한 수학자였던 파치올리는 1494년 『산술집성(Samma de Arithmetica, Geometria, Proporcioni e Preporrcionalita)』이란 저서를 통해 베니스에서 사용하고 있는 회계시스템이 장점이 많기 때문에 소개한다며 당시 베니스를 비롯한 이탈리아의 상인들이 손에서 손으로 이어져오던 복식부기를 체계적으로 정리했다. 파치올리를 통해 정리되고 체계화된 복식부기의 구조는 그로부터 500여 년이 지난 오늘날까지도 거의 변함없이 그대로 적용되고 있다. 인류의 역사에서 특히 수학 발전에 크게 기여한 나라 인도에서 탄생한 복식부기는 바그다드의 상인들을 거쳐 이탈리아의 제노바로 들어왔고, 프란체스코회 수도사이자 레오나르도 다 빈치와 교분이 있었던 수학자 루카 파치올리에 의해 유럽에 전파되었다.


그는 공놀이에서 승리할 가능성이라는 문제를 놓고 게임이론적 접근을 시도한다. 이러한 접근방식은 나중에 확률과 연결되어 존 내쉬 같은 경제학자에 의해 더욱 발전된다. 루카 파치올리는 그의 저서 『산술집성』에서 당대의 수학적 지식을 집대성했다. 이 책에서 그는 상인들과 학자들이 지켜야 할 복식부기 규정을 정리했다. 초기 르네상스 시대의 ‘복식부기 보편화’는 ‘자본주의 탄생의 순간’으로 꼽힌다. 역사 서술에 있어 ‘만약에’라는 말은 없다지만 파치올리의 복식부기가 없었다면 서구의 신대륙 발견과 그로부터 시작된 신대륙으로부터 막대한 은의 유입과 이를 토대로 한 서양의 발흥은 불가능했을 것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다. 파치올리의 복식부기가 없었더라면 ‘대항해시대’는 없었을 것이라는 주장은 이렇다.


잘 알려진 대로 대항해시대의 개막은 애초부터 서구가 의도했던 것이 아니라 이슬람세력에 의해 가로막힌 인도와의 향료 무역을 위해 신항로를 개척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사건이었다. 당시 탐험을 빙자로 한 사기가 워낙 극성이었기 때문에 돈을 떼일까 염려하던 투자자들에게 콜럼버스는 자신은 탐험에 사용될 비용을 복식부기를 통해 정리할 것이기 때문에 자금의 사용내역을 속일 수 없다고 설득해 경비를 마련했다고 한다.

 


<그림>야코포 데 바르바리의 ‘루카 파치올리의 초상’(1495년), 이탈리아 나폴리 국립 미술관 소장.


세계에서 가장 정교한 부기로 알려진 사개송도치부법(四介松都治簿法)
사회학자 막스 베버는 복식부기를 통한 회계의 투명성이 서구사회와 비서구사회를 나누는 기준이 된다고 말하기도 했는데, 1997년 독일 베를린에서 열린 G7회담에서 당시 미국의 부통령이었던 고어가 “금속활자는 한국이 세계 최초로 발명하고 사용했지만, 인류 문화사에 영향력을 미친 것은 독일의 금속활자”라고 말했던 것처럼 우리 민족은 서양에서 복식부기가 사용되기 시작한 것으로 생각되는 13~14세기 보다 약 200여년 정도 앞선 고려시대 때부터 우리만의 방식으로 세계에서 가장 정교한 부기법로 알려진 사개송도치부법(四介松都治簿法)을 사용해 왔다.


KBS <역사스페셜>같은 프로그램을 통해 다뤄지기도 했는데, 사실 그 기원에 대해서는 여러 설이 있는데 고증 가능한 기록이 많지 않아 명확히 어느 것이 옳다고 답하긴 어렵다고 한다. 회계학계의 원로학자인 조익순 교수는 사개송도치부법이 외국에선 전래된 것이기 보다는 우리 고유의 복식부기법으로 조선시대에 생성되었을 가능성에 무게를 싣고 있는데, 조 교수의 견해에 따르면 사개송도치부법의 ‘사개’는 우리 고유의 말인 ‘사개를 물리다’에서 온 표현으로, 그 뜻은 ‘박거나 잇는 나무가 서로 꼭 물리도록 하기 위하여 나무의 끝을 들쭉날쭉 어긋나게 파낸 짜임새’를 말한다. 따라서 ‘사개’는 말이나 사리의 앞뒤 관계가 빈틈없이 딱 들어맞는 경우를 뜻하는 것으로 사개송도치부법의 셈법 역시 이처럼 딱 맞아 떨어지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 고유의 복식부기법인 사개송도치부법이 어느 시대에 출현했는지 그 기원에 대해서는 이처럼 명확치는 않지만 사개송도치부법은 갑오개혁 이후 우리나라에서 은행이 설립되고 회사가 만들어진 뒤에 꾸준히 사용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1897년에 설립된 조선은행과 한성은행, 1899년에 설립된 대한천일은행 등은 모두가 우리의 전통 부기인 사개송도치부법을 사용했다. 그러나 1903년 한성은행이, 1905년 대한천일은행 등이 서양식 부기를 도입하면서, 우리 전통부기는 점차 실무 현장에서 사라지게 되었다. 어쨌든 개성상인들이 사용했던 ‘사개송도치부법’은 복식주기의 이중성에 자본주의 관계까지 명확하게 나타냄으로써 서양부기보다 훨씬 우수한 측면이 있었다고 한다.


단식부기냐? 복식부기냐?
다시 본론으로 돌아와 단식부기와 복식부기에 대해 이야기해보자. 단식부기는 법칙에 얽매이지 않고 기본적인 사항만으로 장부를 기입하는 단순한 장부 기입법으로 계정 없이 재산구성부분의 변동만을 기록하는 방식으로 손익계산의 상세한 내용을 표시하지 못한다. 그래서 소규모 기업이나 손익산출의 필요성이 없는 관공서 등에서 주로 사용해왔는데 2009년 1월 1일부터 정부부문에서는 새롭게 발생주의·복식부기 회계제도를 도입해 사용하도록 법으로 규정하고 있다. 따라서 지난 10일에 있었던 토론에서 나경원 한나라당 후보가 “잘 모르시나 본데 서울시는 단식부기로 쓰는 것이 원칙”이라고 말했던 것은 분명히 틀렸고, 사실이 아니다.


국가회계법 - 제11조(국가회계기준) ① 국가의 재정활동에서 발생하는 경제적 거래 등을 발생 사실에 따라 복식부기 방식으로 회계처리하는 데에 필요한 기준(이하 "국가회계기준"이라 한다)은 기획재정부령으로 정한다.<개정 2008.12.31>


지방재정법 - 제53조(재무회계의 결산) ① 지방자치단체의 장은 그 지방자치단체의 재정상태 및 운용결과를 명백히 하기 위하여 발생주의와 복식부기 회계원리를 기초로 하여 행정안전부장관이 정하는 회계기준에 따라 거래 사실과 경제적 실질을 반영하여 회계처리하고 재무보고서를 작성하여야 한다.


포탈사이트 네이버 지식IN에는 위 사항에 대해 2011년 2월 25일 방송통신위원회가 다음과 같이 답변한 내용이 있다.


o 도입배경
- 예산집행의 자율성 확대, 재정수요의 급증 등 재정여건의 급속한 변화에 따라 선진 재정운용체계 구축 필요
- 국가재정의 종합적·체계적 관리 및 효율적인 재정성과 관리를 위하여 발생주의· 복식부기 회계제도 도입을 추진


o 발생주의·복식부기 특징
- 발생주의는 경제적·재무적 자원의 변동이 발생하는 시점에서 거래로 인식하고 회계처리
- 복식부기는 경제적 거래나 사건이 발생할 때 자산·부채, 수익˙비용의 변동을 서로 연계시켜 동시에 기록·관리


o 도입효과
- 국가 재정의 상태와 운영성과 및 향후 재정전망 등을 종합적으로 파악하여 재정에 관한 유용한 정보를 생산· 제공할 수 있음
- 사업별 투입원가정보를 산출하여 성과 중심의 재정운영 체계를 통해 불필요한 사업을 통제할 수 있음
- 일정 시점에서 실질적인 채권·채무 산출이 가능하여 재정위험 및 재정 건전성 관리·유지가 실질적으로 가능


정부기관인 방송통신위원회의 답변을 풀어보면 단식부기와 복식부기의 장단점, 그리고 정부가 어째서 복식부기를 도입했는지 그 이유를 알 수 있는데 지금까지 관공서와 지방정부 등에서 사용해온 단식부기는 일정한 원리, 원칙 없이 현금의 유입과 유출이 있을 때마다 장부에 기록하는 것이고, 복식부기는 재산에 영향을 미치는 모든 거래를 파악함으로써 재산이 변화한 원인과 그에 따른 결과를 동시에 기록한다는 차이가 있다.


단식부기의 대표적 사례인 가계부엔 일반적으로 일자, 적요, 지출이나 수입금액, 계, 잔액 같은 항목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것은 돈이 나가면 무조건 지출, 돈이 들어오면 수입으로 처리해서 가계부의 잔액과 보유하고 있는 현금을 맞추도록 되어 있는데 이 방식을 통해 알 수 있는 것은 매우 단순해서 현금의 수입, 지출과 현금잔액 정도뿐이다. 단식부기는 채권, 채무, 재산, 물품관리가 복식부기방법에 의한 것처럼 하나의 표로 연계 집합되지 못하기 때문에 재정 상태를 제대로 파악하기 위해서는 실사방법을 동원할 수밖에 없는 불편한 제도로 한 마디로 이야기해서 지방정부나 관공서가 단식부기 같이 주먹구구 방식으로는 채무상태를 제대로 파악할 수 없다는 말이다. 이에 비해, 복식부기에서는 현금의 지출과 함께 지출원인이 즉, 재산변동의 원인과 결과가 모두 나타나도록 되어 있다. 복식부기는 거래형태를 표현하는 계정과목을 설정하도록 되어 있는데 모든 거래는 자산, 부채, 자본, 수익, 비용이라는 5개의 계정과목을 이용하여 차변과 대변에 기입하고, 이렇게 해서 기록된 계정과목별 차·대변거래를 집계함으로써 대차대조표와 손익계산서가 작성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이 말도 어렵다면 한 마디로 말해 복식부기제도는 오랜 세월을 거쳐 인정된 자본주의 경제사회의 회계관리수단으로 지난 15세기에 출현한 이래 동서양을 막론하고 복식부기가 불변토록 사용되어 온 까닭은 복식부기가 지닌 ‘자기검증기능’ 때문이다.


복식이냐, 단식이냐는 핵심이 아닐지도 모른다
국가회계에 복식부기가 도입된 까닭은 IMF 외한위기라는 초유의 경제난을 맞이하며 출범한 국민의 정부가 당시 최대 현안이었던 경제문제의 해결차원에서 민간기업 부문에서는 경영의 투명성과 경쟁력 강화를, 국가재정관리 부문에서는 부정부패와 비능률의 추방을 위해 복식부기 도입을 적극적으로 추진한 결과다. 사실 정부와 공공기관에 복식부기를 도입하려는 시도는 이전에도 있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복식부기가 쉽게 정착되지 못했던 가장 큰 이유는 복식부기에 대한 담당 공무원들의 인식 부족 때문이었다. 복식부기 도입을 꺼려한 정부 내 공무원들의 논리는 ‘정부부문은 영리를 추구하는 사기업과 달라서 대차대조표와 손익계산서가 필요 없으며, 정부와 자치단체의 회계실무진에 복식부기 전문가가 없기에 이들을 재교육하고 시스템을 구축하는데 드는 비용이 엄청나서 도입의 실익이 적다’는 이유로 그동안 거부해오던 것을 더 이상 미룰 수 없다는 당시 정부의 판단으로 도입된 것이었다.


복식부기 도입 당시의 효과에 대해서는 앞서의 답변에도 나와 있지만 “국가재정에 관한 업무를 능률적으로 수행하고, 재정의 투명성을 확보하자”는 것이었다. 그러나 세계에서 가장 민주적인 헌법이었다던 독일 바이마르헌법이 히틀러의 출현을 제지할 수 없었던 것처럼 복식부기를 도입한다고 해서 저절로 국가재정에 관한 업무들이 능률적으로 수행되고, 재정의 투명성이 확보되는 것 또한 아니란 것이다. 복식부기는 회계정보를 산출하는 하나의 방법, 즉 수단에 불과할 뿐이지 이것이 곧 회계나 회계정보가 될 수는 없기 때문이다. 물론 복식부기를 도입한 까닭은 정부회계에서 사용하는 단식부기로는 제대로 된 회계정보가 나올 수 없고, 회계투명성을 보장받을 수 없기 때문에 이것을 개선하자는 것이지 단순히 복식부기를 도입하는 것만으로 이런 목적들이 저절로 성취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다음의 사례를 보자. 사실 서울시 부채 문제가 논란의 원인이 되었던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었다. 지난 2010년 서울시의회 김정태 의원은 시정 질의에 앞서 보도자료를 내고 “작년 말 현재 서울시와 투자기관 부채 규모는 서울시가 발표한 19조5천333억 원이 아닌 25조754억 원”이라며 서울시가 5조5천421억 원을 의도적으로 축소·조작했다는 의혹을 제기한 적이 있는데 그때도 서울시는 해명자료를 배포하면서 “우리는 단식부기 방식으로 산정한 부채 규모를 발표했고, 김 의원이 인용한 것은 복식부기 방식으로 작성한 재무보고서여서 다른 숫자가 나온 것”이라며 반박했다. 서울시는 “단식부기는 채무 불이행이 재정 위험으로 이어지는 외부 차입금만을 부채로 계상하는데 비해 복식부기는 임대보증금과 퇴직급여 충당금 등 재정위험이 없는 비차입금이 포함된 더 넓은 개념”이라고 설명했고 “단식부기에 의한 부채를 기준으로 하는 것이 재무위험 관리에서 실효성이 크다”며 “지방재정법 시행령 제108조에서도 채무관리 범위를 지방채 등 외부차입금만으로 규정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이와 관련해 행정안전부 관계자 역시 “지방자치단체의 재정 위험을 따질 때는 직접적 지급과 관련된 개념인 단식부기상 채무를 기준으로 하는 게 적합하다”며 서울시의 편을 들어줬다.


그렇다면 지방재정법 시행령 제108조를 보자.


제108조(채무관리사무의 범위) 법 제87조 제3항의 규정에 의하여 관리하여야 할 지방자치단체의 채무의 범위는 다음 각 호와 같다.
1. 지방채증권
2. 차입금
3. 채무부담행위
4. 보증채무부담행위


시행령 제108조는 지방재정법 제87조에서 정한 방법으로 지방자치단체가 관리해야 할 채무의 범위를 규정하고 있는데, 다시 말해 복식부기로 만들어진 회계상 서울시 부채는 25조원이 맞지만 서울시가 시행령에 따라 관리해야 할 채무는 19조원이 맞는 셈이다(법률 용어에 따르면 서울시 부채는 24조 9,943억 원이고, 서울시의 채무는 19조 5,318억 원). 문제는 서울시가 시행령에 따라 관리하는 채무의 범위가 이것일 뿐이지 이것이 단식부기에 의한 건 아니란 말이다.


서울시는 처음부터 복식부기냐 단식부기냐는 이야기를 할 필요가 없었던 것인데, 서울시의 이 같은 답변은 마치 서울시가 단식부기를 하고 있는 것으로 오해 아닌 오해를 하도록 나경원 후보를 부추긴 셈이 되었다. 앞서도 이야기했지만 단식부기는 다만 현금의 수입과 지출, 그리고 현재 잔고가 얼마인지 정도의 정보만을 제공해주는 것일 뿐 부채에 대한 개념 자체가 없는 것인데 서울시는 어째서 이런 이상한 변명을 들고 나왔을까? 그리고 이를 받아서 보도한 언론사들은 단순히 행정안전부 관계자의 법률 해석만을 놓고 누가 누구의 손을 들어주었다는 식으로만 보도해 버린 것인지 잘 이해할 수 없다.


처음 저 사단이 일어났을 때 언론사들은 자신들이 심정적으로 지지하는 후보가 누구냐와 상관없이 이런 맥을 정확히 짚어 보도했더라면 나경원·박원순의 복식부기 논쟁 같이 우스꽝스럽고 본질에서 벗어난 논쟁은 애초에 빚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다만 한 가지 덧붙이자면 나경원 후보는 법률가(판사) 출신이긴 하지만 정치인으로서 서울시장직을 수행하겠다고 나선 후보로서 지금 시민이 원하는 서울 시장은 법률적 해석을 내리는 법률가가 아니라 시장으로서 서울시의 건전한 재정 운영을 통해 시민들의 삶의 질을 높여줄 사람을 찾고 있다는 점을 유념하는 것이 좋을 듯하다. 그러나 그 사이 언론이 정신을 차렸다는 증거는 어디에도 없어 보인다. 이 문제의 정확한 맥을 정확히 짚어준 것은 언론이 아니라 도리어 이 문제에 관심이 많은 일반 네티즌들이었다.


진짜 문제는 단식부기냐, 복식부기냐가 아닌 우리 중앙정부와 지방정부들의 재정상황을 아직도 낙관적으로 인식하는 공무원들과 정부, 집권여당의 태도에 있을지도 모르는데 말이다.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Posted by 바람구두 windshoes

『헌법의 풍경 : 잃어버린 헌법을 위한 변론』 - 김두식 | 교양인(2004)


개인적으로 지난해(2004년) 책을 통해 알게 되고, 만나게 된 저자 혹은 사람 가운데 가장 인상적인 인물을 꼽자면 한동대 법대 교수로 재직하고 있는 김두식 선생을 꼽아야겠다. 해마다 반복되는 다사다난(多事多難)이란 말이 무색할 만큼 많은 일이 일어났던 지난 한 해였지만 가장 많은 이들이 사건 1위로 꼽은 것은 대통령 탄핵 사태였다. 헌법재판소의 대통령 탄핵 기각처분은 민주주의란 곧 법에 의한 통치를 의미한다는 사실을 깨닫게 만들었다. 그러나 10월 21일 헌법재판소가 관습헌법이란 논리로 "신행정수도건설특별법"에 대해 위헌판결을 내리자 우리는 헌법을 새삼 고민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는 우리 정치권이 사회의 다양한 의견과 논쟁 등 갈등 요소를 효과적으로 조율하는 역할을 상실했음을 의미하는 반증이기도 하다. 그 내막이야 어찌되었든 헌법재판소의 탄핵 기각 결정과 신행정수도 위헌 판결은 우리에게 법에 의한 통치의 의미를 다시금 깨닫게 만들어준 소중한 정치적 경험이자 자산이 되었다. “헌법의 풍경 - 잃어버린 헌법을 위한 변론”은 그 의미가 무엇인지 우리에게 일깨워준다.

헌법 - 법에 의한 통치에 대한 고민
“헌법의 풍경”은 이런 2004년의 분위기를 미리 예견이라도 한 것처럼 시의적절한 시기에 출판된 책이다. 그러나 앞서도 말한 것처럼 “헌법의 풍경”은 헌법 자체를 문제 삼고 있지는 않다. “헌법의 풍경”은 민주공화국의 기본 틀이 되는 헌법이 만들어 낸 우리 사회의 다양한 풍경들을 때론 원경으로, 때론 클로즈업하듯 깊이 있게 다루고 있다. 우선 이 책은 그 제목이 암시하고 있듯 헌법학 개론서이거나, 우리 헌법을 역사적으로 개괄하는 책은 아니다. 그보다는 몇 가지 문제의식을 통해 우리가 헌법 혹은 우리가 당연시해 왔던 법에 의한 통치에 대해 고민하게 만든다. 내게 있어선 그 점이 약간의 아쉬움으로 남았지만, 그와 관련해서는 김두식 선생이 차후에 이와 관련한 좋은 책을 써줄 것으로 믿어 본다. 

이 책이 주는 가장 큰 미덕은 일반인들 누구나가 알고 있는 상식이면서도 실제 일상사에서는 쉽게 인식하기 어려운 교훈을 풀어주고 있는 점이다. 그 교훈이란
“법이 절대적인 규범이 아니란 사실, 헌법은 국가라는 괴물을 시민에 의해 통제하기 위해 만들어졌다는 것, 시민사회의 감시 없는 법률(헌법)은 때때로 독재(권위주의) 정부로 흐르며, 법률가, 그들만을 위한 사회를 만들어낸다는 것, ‘그럼에도 불구하고’보호되어야 할 시민의 권리가 보호받지 못한다는 사실”이다. 일견 당연해 보이나 그간 우리들이 실감하지 못했던 중요한 문제의식들이다. 이 책은 서장을 제외하고 모두 8장의 구성으로 되어 있다. 서장 “법학과의 불화”는 저자인 김두식 선생이 법대를 졸업하고, 사법시험에 합격하여 군법무관과 검사라는 법조인 양성시스템의 컨베이어 벨트에서 일탈하게 되었는지, 그 과정에서 우리 법조계와 법체계, 우리 사회에 대해 어째서 문제의식을 갖게 되었는지를 잘 드러내주고 있다. 서장은 저자 자신의 개인적인 신상에 대한 이야기를 소개하는 것으로, 이후 다뤄질 다소 딱딱해지기 쉬운 법에 대한 문제의식과 대안 모색의 전 과정을 친근하게 접근해 들어갈 수 있게 해준다.

‘1장 정답은 없다’에서 김두식 선생은 우리에게 “법은 절대적인 규범인가?” 라는 질문을 던진다. 이런 문제의식은 ‘2장 국가란 이름의 괴물’로 이어지며 다시 “국가는 언제나 선인가?”, “괴물의 시대는 갔는가?”와 같은 질문에서 반복된다. 이는 그동안 법은 존재했으나 국민을 위해 보호하는 법치가 아닌 국민을 억압하고 통제하는 권위주의 정부의 합법성을 가장하기 위한 장치로서의 법, 국민을 위해 봉사하는 정부가 아닌 국민 위에 군림하는 독재 정부의 국가안보를 빙자한 국가주의에 대한 환상을 깨뜨리는 질문이기도 하다. 저자는 법도, 국가와 마찬가지로 절대선, 절대적인 규범이 아니며 각기 다른 해석을 내릴 수 있는 것임을 밝히고 있다. 이는 민주주의의 당연한 원칙이자 상식이지만 그간 국가주의, 권위주의의 무게에 짓눌려온 우리들의 상식을 복원시키는 작업이기도 하다.

‘3장 법률가의 탄생, 4장 똥개 법률가의 시대, 5장 대한민국은 검찰공화국’부분은 이 책의 가장 재미있는 부분이다. 이 부분이 가장 재미있는 이유는 다루고 있는 내용이 마치 조선시대 민초들에게 지방 수령의 전횡보다 그 권위에 빌붙어 가렴주구(苛斂誅求)하는 아전의 착취가 더 밀접하게 다가오는 것처럼 우리가 실생활에서 접하게 되는 법률가들에 대한 날카로운 풍자와 비판이 드러나고 있기 때문이다. 고시공화국이라 불릴 만큼 우리 사회의 고시 열풍은 과연 대단한 것이다. 요즘 상식을 뛰어넘을 정도로 많은 수의 서울대생들이 전공 불문하고 ‘사법고시’를 준비하고 있다. 서울대는 물론 전국의 대학들에서 기초학문 연구가 사라진 것은 어제오늘의 현상이 아니다. 고시에 청춘을 건 사람들은 비단 학생뿐만이 아니라 청년 실업자, 직장인들 사이에서도 그 열기가 뜨겁다. 수많은 젊은 인재들이 일개 자격증 시험에 인생의 가장 중요한 시간을 투자하는 사회를 건강하다고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어째서 이런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일까? 현재의 고시제도는 결국 조선시대 과거(科擧)제도와 실시 방식이나 그 결과 발생하는 현상이 똑같다는데 그 문제가 있다. 우리 사회에서 ‘사법시험 합격’은 곧바로 ‘신분의 수직상승’을 의미한다. 조선시대 양반들이 과거를 통해 신분제 사회를 온존시키는 방편으로 삼고, 지배 엘리트들의 권력기반을 공고하게 만드는 수단으로 삼은 것처럼 오늘날 사법시험은 특권 지배 엘리트들을 양산하는 시스템으로, ‘그들만의 대한민국’을 형성하는 수단이 되었다. 김두식 선생은 우리에게 새로운 법조문화가 시작되는 분기점으로 1997년과 1998년의 법조비리 사태를 꼽는다. 아는 이들은 다 아는 이야기지만, 난마처럼 얽혀있던 법조비리가 하필이면 1997, 98년 무렵에야 터져 나오게 되었을까? 

이것은 정권의 정통성과 관련이 있다. 5.16군사쿠데타, 유신독재, 12.12쿠데타로 집권한 정권은 법조계를 채찍과 당근을 통해 길들여왔고, 법조계는 정경유착이나 권언유착처럼 권법유착 관계를 유지해왔다. 우리는 오랫동안 개혁이란 말을 들어왔지만, 개혁은 여러 곳에서 좌절되는 광경을 보아야 했다. 개혁이 이토록 어려운 까닭은 ‘조직의 논리와 조직의 쓴 맛’때문이다. 저자 자신이 사법고시를 보고, 사법연수원을 거친 경험을 살려 한 명의 법률가가 탄생하는 과정을 다룬 ‘3장 법률가의 탄생’은 처음엔
“가난하고 소외된 이웃을 돕기 위해서” 법조인이 되길 꿈꾼 한 젊은이가 “평생 가난하고 소외된 이웃을 돕겠다고 생각만 한 사람. 여기 잠들다”(124쪽) 묘비명밖에 남길 수 없게 특권 의식에 길들여지는가를 조목조목 따진다. 이렇게 길들여진 이들은 언제든지 괴물로 변할 수 있는 국가의 충복이 된다. 

국가의 범죄는 절대 권력을 지닌 소수의 독재자들이 야욕과 그들에게 복종하는 다수 봉사자들의 협력에 의해 현실화됩니다. 몇 명의 정신 나간 사람들에 의해서는 이런 거대한 범죄가 이루어질 수 없습니다. 다수의 평범한 사람들이 독재권력의 전횡에 참여하거나 방관할 때에만 비로소 국가라고 하는 괴물이 힘을 발휘하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본문 99쪽>

서울 사는 특별시민들은 덜 심각하게 느낄 수도 있는 부분이지만, 지방사는 사람들은 소위 지역사회란 좁은 울타리를 실감하게 될 때가 종종 있다. 우리나라야 워낙 땅덩이 자체가 좁은 곳이니까 하며 방심했다간 어느 순간 지역사회의 텃세에 희생양이 되어야 할지도 모른다. 권력이라고 하면 국가권력같이 거대 권력만을 연상하기 쉽지만 개미에겐 어린이의 장난도 생명의 위협이 되는 것을 떠올려 보면 작은 권력도 거대권력 못지않게 잔인하며, 비엘리트적일 수도 있다는 점에서 더욱 잔인하기도 하다. 지역사회의 숨통을 죄는 것은 휴먼 네트워크, 소위 인맥에 의한다. 지연은 당연하고, 학연에, 혈연에 복잡하게 얽혀 있으므로 마치 인터넷 링크 따라 조금만 가보면 사방 천지에 아는 이투성이인 것과 같다. 어디서 누구에게 무슨 말을 했는지 조금 있으면 좁은 지역 판에 환하게 전해진다.

사람 사는 곳은 어디나 같다고, 굳이 “헌법의 풍경”에서 김두식 교수가 전관예우나 사법고시 선후배 관계 등을 들먹이지 않아도 우리 모두가 너무나 잘 알고 있는 사실이다. 인간은 혼자 살 수 없는 사회적 동물인지라 누군가와 관계를 맺지 않고는 살아갈 수 없다. 국회에서도 낮에는 서로 잡아먹을 듯이 다투는 여야 정치인들조차 밤에는 형님, 아우님, 선배님, 후배님 해가며 그들만의 네트워크로 든든하게 엮여있다. ‘그들만의 엘리트 공동체’는 공식적인 관계보다 더 끈끈한 힘을 발휘한다. 아니, 그 힘이야말로 실제 세상을 움직이는 힘이다. 교수는 제자의 취업을 위해 학점에 온정주의를 베풀고, 교사는 제자의 대학입학을 돕기 위해 성적에, 시험에 온정을 베푼다. 한 두 번 술 자리에서 만난 사이도 몇 순배 술잔이 돌아가고 나면 유사가족관계를 맺으려 한다.

가족적인 사회는 가장 합리적이어야 할 법조계조차 온정주의, 예외주의, 특별주의의 덫으로 법조인들을 빠뜨린다. 나는 얼마 전 읽은 책에서 MBC 아나운서 손석희 씨 이야기를 들었는데, 그는 방송에 지장을 줄 수 있는 만남은 갖지 않는다고 한다. 이 말은 우리 사회가 개혁되기 위해서 우리는 좀더 고독해져야만 한다는 이야기가 된다. 저자는 우리 헌법이, 우리 법조계가 제대로 서기 위해서는 특권 의식으로부터 자유로워져야 하며, 그러기 위해서는 보다 많은 법률가들이 특별한 시험제도가 아닌 로스쿨에 의해 배출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잃어버린 헌법을 위한 변론”, 과연 만들어진 적은 있는가?

-‘국가 만들기(state building)’에 있어 헌법은 곧 국가다.

‘6장 그럼에도 불구하고의 헌법 정신, 7장 말하지 않을 권리, 그 위대한 방패, 8장 잃어버린 헌법, 차별받지 않을 권리’는 앞 부분과 달리 헌법의 기본 정신에 대한 이야기이다. 민주주의를 법에 의한 통치 즉, 법치주의라고 규정한다고 해서 이상하다고 반문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우리 헌법 제1조 1항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란 말을 바꿔 말하면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오는 공화국이란 뜻(헌법 제1조 2항)이다. 그러나 이 말은 오랫동안 그저 말뿐이었다. 좀더 엄밀하게 말해 우리 헌법의 역사는 대한민국의 건국사와 같다. 

우리는 신생 이라크 민주공화국의 수립을 목전에 두고 있다. 오랫동안
"법보다 주먹" 앞서는 독재 시대를 살아왔던 이라크 인들에게 미국은 서구식 민주주의 헌법을 도입(제헌의회구성을 위한)하기 위한 총선을 내년 1월 중에 실시하려고 한다. 그것은 새로운 헌법은 새로운 민주공화국의 수립을 의미한다. 그런데 이라크인들은 어째서 이에 저항하고 있을까? 이라크인들이 어째서 자유와 평등, 인권이 보장되는 민주공화국의 수립에 저항하고 있는가 의문을 품고 있다면, 우리 대한민국의 건국과 헌법의 역사를 살펴보는 것이 의미가 있을 듯 하다.

일본의 강압에 의해 식민지가 된 조선의 해방은 1945년 8월 15일 일본의 패망과 함께 왔다. 어떤 이들은 우리 민족이 일본의 식민 치하에서 자주 독립을 위한 준비에 소홀했고, 국제 정세에 둔감했다고 말하고 싶겠지만, 실은 준비가 전혀 안되어 있었던 것은 아니다. 해방 직후인 1945년 9월 이미 전국인민대표자회의가 열리고, 민주주의적 정부를 즉시 수립할 것과 몇 가지 사안을 의결했다. 주권재민과 국호를 조선민주공화국이라 할 것, 친일파와 민족반역자를 제외한 근로인민의 이익을 중심으로 전민족적 행복을 위한 민주주의 국가를 수립하자는 내용이었다. 몽양 여운형과 우사 김규식 선생 같은 이들은 신탁통치를 받아들이고, 이 과정을 통해 한반도에 좌우정치세력이 합작하여 통일 민족 국가 수립을 이룩하도록 힘썼다. 그러나 결과는 각 정파, 정치 세력이 각각의 이해관계로 나뉘어 결국 남북한은 분단국가로 현재에 이른다.

비록 해방은 타의에 의한 것이었으나 국가수립만큼은 주체적으로(헌법 제정을) 이룩하고 싶은 열망  만큼은 근대화된 것이었다. 그러나 미 군정은 이런 모든 시도를 단속하고, 통제하며 좌우합작을 방해하고, 이간하는 공작을 폈다. 이 과정에서 몽양을 비롯한 좌우합작세력은 좌우 양극단을 아우를 수 있는 사실상 유일한 정치세력이었으나 미소 양대 냉전세력과 이를 추종하는 각 정파의 이해관계 속에서 몽양 여운형 등의 암살과 더불어 다시는 봉합될 수 없는 길을 향해 나아갔다. 분할하여 통치하라는 제국의 세계 지배 원칙은 이 때에도 그대로 관철되었다. 미국은 패전국 일본과 마찬가지로 정국의 주도권을 장악하되 간접적인 통치방식을 취한다. 전직이냐, 현직이냐는 구분을 제외하곤 미 군정청의 하지 중장과 이라크임시행정처 장관, 제이 가너, 폴 브레머는 사실상 같은 역할을 하고 있는 인물인 셈이다. 

김구를 비롯한 임정 세력은 이승만과 달리 미군정의 헌정구상(단독정부 수립)을 이해하지 못했고, 반대하였으므로 제거되었다. 이와 같은 과정들은 미군이 이라크를 점령한 뒤의 상황을 냉정하게 살펴보면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일이다. 이라크에서 시아파 최고 지도자급에 속하는 성직자들이 희생당하고 있는데, 미국은 이라크를 점령한 뒤 친이란적인 시아파 지도자의 출현을 염려해 왔다. 1947년부터 미 군정청 내부에 헌법기초분과위원회를 설치하고 본격적인 헌법제정 작업에 착수하였다. 이 과정에 좌파, 좌우합작파를 비롯해 미국에 협조적이지 않았던 정치세력이 배제되었음은 물론 남한만의 단독 총선에 반대하는 운동은 무력으로 진압되었다. 초대 대한민국 헌법을 만든 이들이 모두 그런 것은 아니었지만 민주주의를 자각한 이들에 의한 것이 아닌 일제에 친화적인 관료, 지주, 법관 출신 인사들로 구성된 정치세력에 의해 미 군정의 지도 감독 아래 만들어진 것이다. 단독정부 수립을 위한 남한만의 총선거에서 우리들 역시 많은 피를 흘리며 저항했었다. 그렇다면 이라크인들의 저항이 이해되지 않는가?

사실 김두식 선생이 이 책에서 말하고자 하는 내용 -
6, 7, 8장의 - 을 잘 이해하기 위해서는 이런 과정들, 우리 헌법의 태생에 얽힌 부분을 함께 이해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당시 제헌의회에서 수립한 우리 헌법은 보통선거와 같이 당시 선진국 일부에서도 미처 시행하지 못하고 있는 선진적인 제도를 도입한 것이었다. 그러나 우리가 우리 민족의 의지로, 우리 사회 구성원 전체의 열망을 담아 만들어내 지 못한 헌법은 제1차 세계대전 직후 수립된 독일 바이마르 공화국의 헌법처럼 오랜 시간 국민의 권리를 수호하지 못했다. 오랫동안 권리 위에서 잠든, 아니 그 권리를 되찾기 위한 피 흘림의 역사는 계속 되었고, 우리는 지난 해 작지만 우리의 권리, 우리의 헌법이 살아 숨쉬고 있음을 깨달을 수 있었다. 그러나 김두식 선생은 우리에게 로버트 프로스트의 싯구를 떠올리게 만든다. “숲은 아름답고, 어둡고, 깊다/ 그러나 나는 지켜야 할 약속이 있고/ 잠들기 전에 가야 할 길이 있다/ 잠들기 전에 가야 할 길이 있다(And miles to go before I sleep).”라고. 시민사회의 감시 없는 헌법은 독일 바이마르 헌법처럼 히틀러의 출현을 막을 수 없다는 사실 말이다.

저작자 표시 비영리 동일 조건 변경 허락
신고
Posted by 바람구두 windshoes
이전버튼 1 이전버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