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 마르크스 그의 생애와 시대 - 이사야 벌린 | 안규남 옮김 | 미다스북스 | 2001


"모든 것을 의심해 보라(De omnibus dubitandum)."


이 말은 칼 마르크스가 가장 좋아했던 좌우명이라고 한다. 모든 것을 의심해보고 이를 다시 재정립했던 사상가 칼 마르크스. 이와 같은 인물에 대해 일대기도 아니고, 평전을 쓴다는 일을 그것도 불과 28세의 나이로 해냈다면, 더군다나 그 책이 60여년이 흐르는 동안 여전히 마르크스에 대한 가장 중요한 평전의 지위를 잃지 않을 수 있다는 것, 그것을 상상해보는 것만으로도 이 책은 충분히 읽을 만한 가치가 있다. 그러나 이 책의 가장 중요한 미덕이자 피할 수 없는 난제는 마르크스에 대한 입문자용으로 읽기에는 다소 녹록치 않은 난이도를 지녔다는 점이다.

 

같은 해(2001)에 출간된 프랜시스 원의 『마르크스 평전(푸른숲)』으로부터 시작하는 것이 보다 나은 선택일 수 있다. 물론 누군가 내게 마르크스에 대한 입문서 내지 그의 평전을 추천해달라면 나는 별 고민 없이 우선적으로 이사야 벌린(Isaiah Berlin)의 이 책과 알렉스 캘리니코스의 『알렉스 캘리니코스가 쓴 마르크스의 사상(북막스, 2000)』 - 이 책은 책갈피 출판사에서 나온 『마르크스의 혁명적 사상』과 동일한 책이다 - 을 추천하겠다. 물론 캘리니코스의 책은 전체적으로 보자면 마르크스의 생애는 부분적으로 다루는 대신 그의 사상을 개관하는데 치중하는 편이고, 프랜시스 원의 경우엔 마르크스의 생애사에 집중한 편이므로 나름대로 일장일단이 있다고 할 것이다.

 

우리나라에선 명확한 구분 없이 혼용되는 편이긴 하지만 어떤 의미에서건 평전은 연대기와 전기와 명확하게 구분될 필요가 있다. 평전과 전기, 혹은 연대기를 구분해야 하는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그 중 가장 큰 차이점은 평전은 그 용어 자체가 잘 설명해주듯 작가의 비평(批評)적 관점이 삽입된다는 것에 있다. 그렇기에 당대의 뛰어난 평전 작가들은 이미 그들 자신이 뛰어난 비평가이자 역사가이고 저술가였다. 예를 들어 트로츠키와 스탈린의 평전을 저술했던 아이작 도이처, 마리 앙트와네트와 프랑스 대혁명에 대한 뛰어난 글을 남겼던(그 외에도 많지만) 슈테판 츠바이크, 바쿠닌에 대한 평전을 저술했던 E.H. 카 등은 이미 그들 자신이 뛰어난 문장가이자 사상가, 역사가들이었다. 우리는 이들의 평전을 통해 당대의 사회와 시대, 과거와 현재를 넘나드는 위인들의 대화를 엿들을 수 있는 기회를 얻는다.

 

그런 점에서 우리는 이사야 벌린의 마르크스 평전을 읽음으로써 위대한 두 사상가의 대화에 관찰자이자, 적극적인 독해자로서 참가할 수 있는 기회를 얻는다. 이 책은 사상사가(思想史家)라는 저자 이사야 벌린의 위치가 잘 드러나고 있다. 그런 까닭에 마르크스의 사상과 이론에 대해 사전 지식이 있는 사람이거나 혹은 이사야 벌린은 마르크스를 어떻게 해석하고 있을까를 견주고, 궁리해가며 읽고자 하는 사람이라면 그쪽이 훨씬 더 유익하고 재미있는 독서 체험이 될 것이다. 그와 같은 맥락에서 ‘대중적'이라는 평가가 지탄받을 무엇이 아니듯, 정당한 까닭으로 보다 ’지적인' 수준을 요구하는 독서가 지탄받을 일도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것은 마치 칼 마르크스가 노동자를 위한 투쟁을 이야기하면서도 정작 그 자신은 부르주아적 취향을 지녔다고 공격당하는 것과 흡사해 보이는데, 어떤 의미에서건 마르크스는 당대의 교양을 두루 습득한 인물이었던 것에는 틀림없지만, 이것을 당대의 속물적 과시에 연연해하는(이는 또한 마르크스가 평생을 두고 혐오했던 것이기도 하다) 부르주아적 취향과 혼돈할 필요가 없는 것과 마찬가지다. 다시 말해 교양을 부르주아만의 전유물로 생각하는 경향은 그때나 지금이나 냉소적인(좌파 혹은 노동자는 우아하게 살고 싶어하지 않는다거나 교양을 경시한다는) 착시 현상이다.

 

물론 그럼에도 이 책이 좀 더 대중적인 난이도를 지니지 못한 점, 좀 더 풍성한 내용으로 꾸며지지 못한 점은 다소 아쉬움으로 남는다. 벌린을 위해 약간의 변명을 하자면 이 평전은 그가 28세 때 집필한 것이고, 애초에 그가 집필했던 원고는 현재 우리가 알고 있는 원고의 분량 보다 많았다.(물론 그렇다고 해서 현재의 평전보다 쉬운 글이 나왔을 것 같지는 않지만) 이 책의 말미에 실린 앨런 라이언은 이사야 벌린의 책이 처음 출간될 당시 “영어권에서는 이런 종류의 주제에 관한 진지한 학문적 연구가 거의 없었다.”고 말한다. 위와 같은 고백을 논외로 하더라도 마르크스에 대한 그간의 연구는 그가 사망했을 무렵, 영어권에서는 거의 주목을 받지 못했으며, 그의 사후 러시아혁명을 통해 수립된 이른바 공식적 마르크스주의에서 바라보는 마르크스, 세계대전과 헝가리 사태를 겪으며 재발견되기 시작한 인간적(청년) 마르크스, 다시 루이 알튀세르에 의한 구조적 마르크스에 이르는 여러 연구 방향과 해석에 따라 각기 다른 얼굴의 마르크스가 출현해 왔음을 알 수 있다.

 

그와 같은 해석과 관점의 차이, 시대의 변천에도 불구하고 이사야 벌린의 마르크스의 평전이 여전히 생명력을 잃지 않는 가장 큰 요인 중 하나는 분명 마르크스의 사상 그 자체에서 발견되어야 하겠지만, 또 하나의 중요한 요인은 이사야 벌린의 뛰어난 지적 통찰과 한 인물의 사상과 지적인 흐름을 더 이상 요약하기 어려울 만큼 생생하게 살려내고 있다는 점에 있다. 이사야 벌린은 마르크스를 계몽주의 산물이자 계몽주의에 대한 낭만주의적 반동의 산물로 해석하면서 제1장 서론에서 "모든 것을 의심해 보라(De omnibus dubitandum)."던 마르크스의 모토에 지극히 합당한 인물평을 적고 있다.

 

마르크스는 선천적으로 강하고 능동적이며 실제적인 정신의 소유자였다. 그는 불의에 대한 감각이 남달랐으며 쉽게 상처를 받거나 감상에 빠지는 성격이 아니었다. 그는 부르주아지의 우둔함은 물론 지식인들의 자기만족적인 미사여구와 주정주의도 혐오했다. 그는 부르주아지를 위선적인 데다가 자기 기만적이며 부와 사회적 지위를 얻는 데 골몰해서 당대의 특징적인 사회적 현실을 전혀 보지 못하는 사람들로 평가했고, 지식인은 현실과 동떨어진데다가 진위 여부에 관계없이 하나같이 사람들을 자극하는 데 불과한 잡담이나 일삼는 사람들로 판단했다. <본문 20-21쪽>

 

이사야 벌린의 문장을 읽노라면 그 자신이 마르크스 못지않게 불친절한 사람이면서, 그가 마르크스에 대해 묘사하고 있듯 천재적인 발상에 비해 더딘 문장에 대해 조급해 하지 않았을까 하는 상상을 하게 만든다.

 

생존을 위한 필사적인 노력에도 불구하고 내부의 혼란과 궁극적 붕괴를 향해 막다른 골목으로 치닫는 사회는 반동적이다. 물론 어떤 사회 체제라도 붕괴에 직면하면 구성원들에게 비합리적으로 현체제의 궁극적 안정에 대한 믿음을 심어줌으로써 자신의 실상을 보여주는 징후들을 스스로 감추려 들게 마련이다. 그러나 어떤 사회체제라도 일단 역사의 판결을 받으면 필연적으로 사라질 수밖에 없다.
어떤 것이 구원될 수 없는 데도 구원되어야 한다고 말하는 것은 우주의 합리성을 부정하는 것이다. 인류는 바로 이러한 고통스러운 투쟁을 거쳐, 그리고 이러한 고통스러운 투쟁에 의해 자신의 힘을 완전히 실현하고자 분투하고 있다. <본문 32-33쪽>

 

위의 문장을 읽으며 이사야 벌린이 바라보는 마르크스의 얼굴이 입체적으로 잡히기 시작했다. 그는 마르크스 못지않게 신랄하고, 핵심으로 곧장 진입해가는(물론 두 사람 모두 불친절하다는 공통점을 지녔으나) 문장을 지녔다. 그렇기에 그는 마르크스의 학설에 대해 "(마르크스의)학설은 적이 보유하고 있는 모든 기지의 무기에 대처할 수단을 갖추고 있어서 직접적인 공격으로는 함락할 수 없는 일종의 거대한 구조물"과도 같다고 말할 수 있으리라.

 

이사야 벌린이 쓴 글 가운데 우리에게도 비교적 널리 알려진 이야기는 우화를 바탕으로 세상 사람들을 고슴도치와 여우로 비교한 글이다. 그는 「고슴도치와 여우」란 에세이에서 "여우는 많은 것을 알지만, 고슴도치는 한 가지 큰 것을 안다."고 말한다. 여우는 영리하고, 교활한 짐승이기에 고슴도치를 기습할 많은 전략들을 무수히 짜낸다. 그리고 고슴도치를 습격할 수 있는 적절한 타이밍을 노려 고슴도치를 덮친다. 그에 비해 고슴도치는 단지 송곳처럼 날카로운 가시를 방패삼아 숲 속 한적한 오솔길을 어슬렁거리며 돌아다닐 뿐이다. 기회를 틈타 여우는 잽싸게 고슴도치를 덮친다. 그러나 위험을 느낀 고슴도치는 제 몸을 잔뜩 웅크리고 송곳 같은 가시를 곤두세운다. 여우는 고슴도치의 날카로운 가시를 어찌하지 못해 결국 다음 기회를 노리며 물러나 어떻게 하면 고슴도치를 공략할 수 있을까 새로운 전략 세우기에 골몰한다. 여우와 고슴도치의 지혜를 따질 때, 우리는 당연히 여우의 지혜가 뛰어날 것으로 생각하지만 번번이 싸움에서 이기는 건 고슴도치다.

 

이사야 벌린은 이 우화를 통해 사람들을 두 가지 그룹, 여우와 고슴도치로 나누었는데, 여우는 여러 가지 목적을 동시에 추구하며 세상의 그 복잡한 면면들을 두루 살피고, 그런 까닭에 자신의 생각을 하나의 종합적인 개념이나 통일된 비전으로 통합해내기 보다는 모순도 한데 아우르는 편이다. 그에 비해 고슴도치는 세상이 아무리 복잡해도 자신이 가지고 있는 구상으로 종합해내고 통합해낸다. 그에 따르면 이 고슴도치들이 바로 프로이트(무의식), 다윈(자연도태), 마크르스(계급투쟁) 등이다. 그렇다고 이사야 벌린이 절대적으로 고슴도치들의 손을 들어주는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벌린이 여우에 속하는 인물로 거론하는 이(아리스토텔레스, 몽테뉴, 셰익스피어, 몰리에르, 괴테, 발자크 등)들의 면면이 또한 그렇게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우리는 누군가의 책을 읽을 때, 특히나 어떤 인물에 대한 평전을 읽을 때 다뤄지는 인물 못지않게 그를 다루고 있는 인물(저자)에 대해서도 주목해야 한다. '이사야'란 이름에서 알 수 있듯 이사야 벌린은 유대계로 구소련 영토였던 라트비아의 수도 리가에서 부유한 목재상의 아들로 태어나 제1차 세계대전 때 독일군이 리가에 진군하자 부모를 따라 러시아로 이주, 그곳에서 볼셰비키 혁명을 경험하고, 11세 무렵 영국으로 망명한다. 유대인에겐 특히나 격동의 시대였을 20세기 초엽의 유럽, 라트비아라는 슬라브 문화의 영향 아래 놓인 지역 출신의 인물이 냉전 시대 영국에서 주로 활동했다는 것, 물론 당시 독일의 박해를 피해 영국으로 망명한 유대계 지식인들과 미국인으로 망명한 유대계 지식인들 사이에는 일정한 차이가 있지만 당시 유대계 출신 지식인들의 일반적인 성향(탈민족주의적 세계주의)을 그 역시 어느 정도 공유하고 있었음을 의미한다.

 

전쟁 기간 중 영국 정보부에서 근무하며 모스크바에서 수개월간 머물며 당대의 소련 지식인들과 교유했고(그 가운데 안나 아흐마또바와는 연인 관계였다고 한다), 전후에는 사상사 연구에 집중하면서 그는 자유주의자로서의 면모뿐만 아니라 러시아 문화에 대한 애정과 유대인으로서의 정체성을 잃지 않았다. 그 자신의 삶의 역정이 한 시대의 다양한 면모를 반영하고 있는 이사야 벌린, 그 자신은 마르크스주의자라거나 정치적 좌파로 구분될 수 없음에도 (만약 그런 분류가 가능하다면 우리는 그를 우리 사회에 산재해있는 속류 우파들과 다른 진정한 의미의 ‘리버테리언’이었다고 생각한다), 칼 마르크스에 대한 균형감각과 사상사적 통찰을 통해 우리에게 마르크스와의 격조 있는 지적 대화에 동참할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해주었다.

 

* 이사야 벌린의 이 책은 1982년 신복룡 선생의 번역으로 평민사에서 출간된 적이 있다. 다만 이 책을 선택하기 전에 우리는 먼저 두 가지를 고민해봐야 한다. 첫째는 이 책이 마르크스와 그의 사상에 대한 약간의 사전 지식을 필요로 한다는 것이다. 둘째는 오탈자가 종종 눈에 띄고, 요사이 유행하는 작은 판형(이 책은 110X190)이다 보니 펼쳐놓고 밑줄 쳐가며 읽는 습관이 있거나, 좀 오랫동안 생각하며 읽기에 가독성이 떨어진다는 단점이 있다. 일부러 오탈자에 신경 쓰며 읽는 편은 아니지만 이왕 눈에 띈 오탈자가 몇 개 있어 이야기해보면  57쪽 "유대인 출신인 시인하이네"에서 시인과 하이네는 띄어 써야 하고, 276쪽의 "마르스크"는 "마르크스"로, 451쪽의 사진 캡션에 들어간 "리프크네이트"는 "리프크네히트"의 오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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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바람구두 windshoes
1년 365일이 여성의 날이었으면 좋겠습니다
- 99주년 세계여성의 날과 KTX 승무원들


오늘은 세계 여성의 날 99주년입니다. 직원들이 다 함께 점심을 먹으러 가서 우리 국장님에게 뜬금없이 오늘이 무슨 날인 줄 아느냐고 물었습니다. 여성인데도 잘 모르시더군요. 제가 “오늘은 세계여성의 날입니다.” 했더니 함께 식사하시던 다른 분이 “요즘은 365일이 모두 여성의 날인데, 별도로 여성의 날이 필요하냐?”고 하더군요. 연세 많은 분들이 요즘 대한민국 사회와 여성들을 보고 있노라면 1년 365일이 매일 여성의 날이란 표현이 전혀 이상할 게 없어 보일 수도 있단 생각은 저도 합니다.

2004년 9월에는 “성매매방지와 피해자 보호에 대한 법률과 성매매알선 처벌에 대한 법률”이 시행되었고, 지난 2005년 2월 3일 헌법재판소는 “호주제 규정 민법 781조 1항 및 778조”에 대해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렸습니다. 여성계의 50년 오랜 숙원이었던 호주제 폐지가 이루어졌던 같은 해 6월, 여성정책과 가족정책을 총괄 기획하는 정부부처로 여성가족부까지 출범하면서 우리 사회 여성의 지위가 한층 더 강화된 것처럼 보입니다. 대중문화가 표상하는 여성의 이미지도 이전과 달리 훨씬 더 건강해지고 당당해졌습니다. 연상녀와 연하남 커플은 물론, 이혼녀에 대한 표현도 어느 때 보다 긍정적으로 변모하고 있습니다.

어떤 의미에서 보자면 요즘 같으면 365일 여성의 날이라고 부를 만합니다. 그런데 정말 그렇습니까? 올해로 99주년을 맞은 세계여성의 날은 지금은 세계 최고의 산업도시이자 문화적으로도 첨단을 달린다는 뉴욕의 섬유산업 여성 노동자들의 시위를 기념하여 만들어진 행사입니다. 여러분들 가운데에도 교과서나 다른 책들을 통해 방적기 앞에 서 있는 작은 소녀의 사진을 보신 적이 있을 겁니다. 이 사진은 루이스 W. 하인(Lewis Wickes Hine)이 1908년 미국의 공장 모습을 촬영한 사진입니다. 이 사진 속의 소녀는 과연 몇 살이었을까요? 그녀의 어머니는 어째서 이렇게 어린 딸을 공장에 보냈을까요?




1870년대 이후 서구 자본주의는 커다란 전기를 맞이하게 됩니다. 이 시기의 변화 양상은 마치 오늘날 세계를 휩쓸고 있는 신자유의 열풍과 다르면서도 흡사한 일면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산업혁명 이후 자본주의가 급속도로 발전하면서 도시와 농촌간의 인구 비례가 역전되고, 임금 노동자들이 도시는 물론 농촌에서도 큰 비중을 차지하게 됩니다. 이런 현상이 빚어진 것은 당시의 자유주의, 자본주의에 의한 자본 축적, 생산의 집적이 대기업, 대자본에 집중되면서 이들을 제외한 나머지 모든 계급에게 압력이 가중되어 오늘날 우리가 중산층이라 부를 만한 부르주아지, 도시와 농촌의 중간층이 몰락하여 임금노동자로 전락한 결과였습니다. 1900년대 접어들어 미국의 노동자는 1,000만을 넘어서게 되는데, 이것은 30년 전의 수준과 비교해보면 세 배에 이르는 수치였습니다.

이런 현상 가운데 여성노동자도 함께 증가하는 추세를 보이게 됩니다. 1908년 즈음에는 섬유산업 분야에서 남성노동자보다 여성노동자의 비율이 앞서는 역전 현상이 빚어졌습니다. 이 같은 일이 빚어진 까닭은 당시 섬유산업이 과당경쟁 상태에 놓이면서 남성노동자 보다 강도 높은 노동을 싼 임금으로 부려먹을 수 있는 여성노동자를 다수 고용한 결과였습니다. 산업혁명과 자본주의는 여성들을 빅토리아 시대의 엄격한 가정에서 해방(?)시켰습니다. 그러나 해방된 여성들은 비인간적인 작업장 속에서 하루 12시간 노동, 심지어는 16시간까지 일해야 했고, 집으로 돌아가서는 여전히 가사노동과 육아노동에 종사해야 했습니다.(여성들 뿐만 아니라 아동노동에 대해서도 최소한의 연령 제한조차 없었습니다. 1880년 당시 미국의 공장에는 18만2천 명의 어린이가 일했는데, 이 수치는 산업노동자 총수의 6.7%에 해당합니다. 1895년 독일의 조사에 따르면 14세 이하 어린이 21만 5천 명이 노동자로 살았습니다.) 여성들은 장시간 노동과 가정에서 시달리면서 억압과 빈곤을 극복하고, 스스로의 족쇄를 깨뜨리기 위해서는 자신과 같은 다른 여성들과 연대해야 한다는 사실을 깨우쳤습니다. 노동자계급의 성장과 함께 남성노동자들에게도 선거권이 주어지기 시작했으나 여성들은 여전히 선거권조차 주어지지 않았습니다.

우리에게 전태일 열사의 어머니이자 모든 노동자의 어머니이기도 한 이소선 여사가 계시다면, 미국에는 또 한 명, ‘어머니(Mother)’라 불리는 메리 존스(Mary Jones)가 있습니다. 하워드 진의 『미국민중사』에는 1910년 당시 80세였던 메리 존스가 80세의 나이로 밀워키의 한 양조공장에서 일하며 당시 여성 노동자들의 노동조건에 대해 묘사하는 내용이 있습니다.

날이면 날마다 상스러운 욕을 퍼부어대는 야수 같은 십장들에게 둘러싸여 신발과 옷은 흠뻑 젖은 채 세척실에서 노예처럼 일하도록 운명지어진 …… 불쌍한 소녀들은 시큼한 맥주의 고약한 냄새를 맡으면서 45킬로그램에서 70킬로그램의 무게가 나가는 술병 상자를 옮기는 일을 한다 ……. 류마티즘은 만성병 중 하나이고 으레 폐병이 뒤따른다……. 십장은 심지어 여자애들의 화장실 사용시간까지 통제한다……. 여자애들 대부분이 집도 없고 부모도 없이 …… 일주일에 3달러로 …… 의식주를 해결해야만 한다.

1908년 미국의 한 블라우스 공장에서 일하던 어린 여성노동자 146명이 불에 타 죽는 사건이 있었습니다. 분노한 만 오천의 여성노동자들이 뉴욕의 거리로 쏟아져 나와 노동조건 개선과 여성참정권 인정 등을 내걸고 격렬한 시위를 벌였습니다. 당시 이들은 “노조 결성의 자유를 달라!”, “여성에게 참정권을!”, “미성년자의 노동을 금지하라!”, “10시간 노동제!”, “임금인상”을 요구하며 무장한 군대와 경찰과 맞섰습니다. 이날의 투쟁은 전 의류노동자의 총파업으로 번졌고 마침내 1910년 ‘의류노동자연합’이라는 조직을 탄생시키게 됩니다. 그로부터 2년 뒤인 1910년 덴마크의 코펜하겐에서 열린 국제사회주의여성회의에서 독일의 사회주의운동가 클라라 제트킨은 이들 여성노동자들을 기념하기 위해 ‘세계여성의 날’을 제정할 것을 제안하였고, 전세계 17개 국가에서 모인 100여 명의 여성들이 만장일치로 제정했습니다.

‘세계여성의 날(International Women's Day)’은 해마다 세계적으로 중요한 이슈들을 내걸고 시위를 계속해왔습니다. 1914년 제1차 세계대전에 반대하고, 물가안정을 요구하는 시위를, 1915년 멕시코와 노르웨이에서, 1917년 이탈리아에서, 1918년 오스트리아에서, 그리고 1936년 스페인 마드리드에서 80만 명의 여성들이 모여 군부독재정권에 반대하여 “진보와 자유”를 외쳤습니다. 1974년에는 베트남에서, 1979년엔 칠레에서, 1981년엔 이란에서 5만 명의 여성들이 부르카 착용에 반대하는 시위를 열었고, 1988년엔 필리핀에서 독재정권 타도를 외치는 여성들의 촛불 행렬이 있었습니다.

이제 내년이면 ‘세계여성의 날’도 100년의 역사를 갖게 됩니다. 물론 그 사이 세상은 많은 변화가 있었습니다. 1977년 유네스코는 3월 8일을 세계여성의 날로 선포했고, 1985년 아프리카 나이로비에서 개최된 제3차 세계여성대회에서는 20세기말까지 국제사회와 각국의 정부들이 성취해야할 성평등 행동지침을 채택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2005년 UN에서 발간한 보고서에 따르면, 전 세계 빈곤 인구 12억 중 70%가 여성과 어린이며, 취학연령에 이르러서도 학교에 갈 수 없는 여자 어린이는 8천 5백만 명에 이릅니다. 이 수치는 학교에 갈 수 없는 남자 어린이 4천 5백만 명의 두 배에 이르는 수치입니다. 세계 빈곤인구 중 적절한 음식, 물, 위생, 건강, 교육의 혜택을 받지 못하는 남성의 숫자는 4억 명입니다. 그러나 여성의 경우엔 그 두 배에 달하는 7억 명에 이르며 성인 여성의 문맹률은 67%입니다. 이것이 지구라고 불리는 이 작은 별에서 여성들이 처한 현실입니다.

최근 우리나라에선 몇 가지 사건들로 인해 그간 차마 입 밖에 내지 못했던 일부 사람들이 여성과 여성운동, 여성주의 일반에 대해 공공연히 말도 안 되는 분노를 내뱉습니다. 사실 여성가족부는 처음 출범 과정부터 많은 비아냥을 감수해야 했습니다. 그것은 여성부가 존재한다면 남성부도 있어야 하는 것 아니냐는 단순한 이분법적 논리로부터 여성계 내부에 이르는 우려 섞인 걱정까지 참으로 다양한 것이었습니다. 지난 연말 여성가족부가 성매매를 하지 않겠다고 약속한 남성들에게 회식비를 지급하는 이벤트를 기획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저 역시 황당했습니다. 이뿐만 아니라 여성가족부라는 명칭이 이미 다양한 한계를 노정하고 있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여성가족부가 앞장서 출산장려운동을 하는 등 이른바 혈연 중심의 정상가족에 대한 국가주의적 관리 태도를 버리지 못하고, 그간 여성운동 내부에서 논의되고, 힘써왔던 다양한 가족의 공동체의 복지와 인권 문제에 대해선 무관심한 편입니다. 지금과 같은 흐름으로 보았을 때, 여성가족부는 우리 사회 전체적으로 만연해 있는 운동의 관료화라는 암초를 피해가기 어려울 듯 합니다. 이뿐만 아니라 최근 모 대학의 여성총학생회가 보여준 성급한 문제제기와 미숙한 대응 방식으로 인해 여성계 전체가 매도의 대상이 되기도 했습니다.

우리 사회의 모든 분야에 있는 문제점이 여성계라고 빗겨갈리 없습니다. 그러나 유독 여성부만을 대상으로 부처 폐지를 거론하고, 그 예산을 국방비로 전용하라고 주장하거나 같은 여성 의원이 여성부가 이 나라 남성들을 모독했다고 나서는 모습들을 바라보노라면 우리 사회에서 양성평등이 이루어지기 까지 얼마나 더 먼 길을 가야할지 고민하게 됩니다. 지난 해 3월 8일. 어쩌면 기억하는 분들도 있을 것이고, 그렇지 못한 분들도 계시겠지만 세계여성의 날이었던 이 날, KTX 여 승무원 90여 명은 문자 메시지 한 통을 받습니다. 비정규직 여성노동자였던 이들을 직위해제하겠다는 철도공사의 문자메시지였습니다. 이들이 새로운 서울역에서 시위를 벌인지 어느새 만 1년이 되었습니다. 지난 2월 24일은 술자리에서 동아일보 기자를 성추행한지 만 1년이 되는 날이었습니다. 그는 1심 재판에서 최 의원은 1심 법정에서 징역 6월에 집행유예 1년 선고와 사회지도층으로서 부적절한 범죄행위라는 비판을 받았지만 여전히 국회의원으로 활발히 활동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기자는 사건 발생 5개월 후 국제부로 자리가 바뀌었다고 합니다. 술집 여주인인 줄 알고 그랬다는 국회의원은 1심 판결에 불복하여 항소하였고, 최근 삼성 에버랜드의 전환사채 불법증여사건이 여러 가지 석연치 않은 이유를 들어 계속 연기되는 것처럼 그 역시 임기를 모두 채우게 될 가능성이 큽니다.

기자라면 일반인들에게는 그 어렵다는 언론고시를 통과해 우리 사회의 최고 엘리트에 속한다고 인정받는 이들입니다만, 그 같은 이들을 생각하는 국회의원의 의식 수준이 그 정도입니다. 그러니 우리나라 전체 노동자의 6~70%가 비정규직 노동자이고, 그 가운데 70%가 여성인 현실이 별다르게 느껴질리 없습니다. KTX 여 승무원들이 모 대학에서 헸던 강연을 동영상으로 한참을 다시 보고 들었습니다. 예쁘냐고요? 물론 예뻤습니다. 그들의 얼굴도, 몸매도 참으로 예뻤습니다. 그러나 얼굴이나 몸매 보다 그들의 마음이 예뻤고, 그들의 의연한 태도가 예뻤습니다. 이제 스물 대여섯의 젊은 처자들이었습니다. 다들 제 막내 동생 보다도 어린 친구들이었습니다. 장장 1년여에 걸친 투쟁이었고, 언제 해결될지 누구도 예측할 수 없는 싸움입니다.

한국여성민우회 회장, 한국여성단체연합 공동대표를 역임했던 한명숙 전 총리가 다음 대선에서 유력한 대권 주자 중 한 명으로 거론되고 있습니다. 한명숙 총리는 30여년간 민주화운동과 환경운동, 여성운동을 해온 훌륭한 여성의 표본이었고, 대한민국 사상 최초의 여성 총리였습니다. 한명숙 총리 지명자는 방송인터뷰를 통해 “여성 총리가 나온다면 정치 발전에 새 지평을 열고, 여성과 국민들에게 희망을 주게 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그가 지명자로 내정되었단 소식이 전해졌을 때, KTX 승무원들은 한명숙 총리 지명자와의 면담을 요청했습니다. 이들이 한명숙 총리에게 받은 화답은 경찰에 의한 강제연행이었습니다.

한명숙 의원님께 드리는 편지

새벽부터 비가 천막을 내리쳤습니다. 비는 그쳤지만 하늘은 여전히 비를 머금고 울컥이고 있었습니다. 파업농성 50일째인 4월 19일 우리는 국회 헌정기념관에서 열린 민주노동당 주최 비정규직 관련 토론회를 마치고 ‘국무총리 내정자’인 의원님께 면담을 요청했습니다. 의원님이 여성민우회 출신이고 여성노동자의 압도적인 지지가 있었으며, 개인적으로 KTX 승무원 문제에 대해 해결의지를 보이셨다고 해서 한편으로 무례할 수도 있지만, 다음날 새로운 자회사인 KTX관광레저의 신규승무원 합격자 발표와 24일 승무사업개시라는 일사천리의 계획 앞에 더 이상은 지체할 수가 없었습니다.

국무총리실 노동사회수석 비서관이 와서는 철도공사가 합리적인 안을 내놓았는데 왜 승무원들이 그걸 받지 않아서 이렇게 하고 있는지 이해가 가지 않으며, 대우자동차 파업 때도 300명만 정리해고 하자고 했는데 그걸 받아들이지 않은 노조집행부 때문에 1700여명이 해고돼서 죽은 사람이 한 둘이 아니라고 말했습니다. 국무총리실의 노동사회수석이라는 분이 우리가 왜 이렇게 싸우고 있는지에 대해서 알지도 못하면서 양보, 잘못된 집행부 운운하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관광레저가 감사원에서 지분매각하라는 부실 자회사라는 것도 무시할 수 없는 이유이긴 하나, 근본적인 원인은 문제를 일으키는 장본인은 있지만 그 문제를 법적으로 책임질 수 있는 당사자가 없는 위탁방침 자체가 잘못되었기 때문에 우리는 철도공사의 직접고용을 주장하고 있고, 말 잘 듣고 고분고분하지 않으면 아무 때나 해고해버리겠다고 하는 일들이 발생하지 않게 하기 위해서 우리는 정규직을, 그래서 공사의 직접고용 정규직을 요구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런 얘기를 한참을 하니 노동사회수석님의 자세도 조금은 숙연해지는 듯 느껴졌습니다. 그리고는 정중히 좀 전에 자신이 한 얘기는 잘 몰라서 한 것이니 취소하겠고, 자세한 얘기를 좀 들어봤으면 좋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철도노조를 통해서 초기에 들었던 내용밖에 몰랐고 그 이후에는 우리 소관이 아니기 때문에 관심 갖지 못했다고 말했습니다. 소관이 아니라고? 노동사회수석의 소관이 아니라고요?
노동자의 문제가 소관이 아니라는 노동사회수석님께서는 당장 면담을 잡기는 어려우니 자신과 다시 한 번 만나고 다시 면담을 잡아보자고 했습니다.

한명숙 의원님! 여성노동자의 차별에 누구보다 애쓰고 계시다는 것을 알기에 총리로 임명되신 걸 그 누구보다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하지만 지금 이 나라에서 노동자가, 특히 힘이 약한 여성노동자로서는 총리님을 비롯한 저희 노동자의 문제를 같이 풀어주실 분들을 만나기란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주시길 바랍니다. 저희 20대 여리고 여린 승무원들이 경찰에 연행되는 것까지 각오하고 국회까지 들어오기란 정말 무서운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과연 아무것도 모르는 여성 노동자들이 왜 자꾸 투사처럼 변해 가는지, 이런 투사를 양산하는 장본인이 과연 누구인지에 대해서 다시 한 번 생각해 봐 주시기 바랍니다. 총리로 임명되시면서 바로 이런 어려운 문제를 안겨드려 죄송하기 그지없지만 제발 이 나라의 총리로써 저희를 외면하지 않아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간절히 부탁드립니다.

2006년 4월 20일
한명숙 의원님 면담을 요구하다 경찰서로 연행된 80여 명을 면회하러 떠나며 정지선 올림


사진출처 : 전국철도노조

이들을 해고한 철도공사 사장 이철은 또 어떤 사람입니까? 그래서 KTX 승무원 사건은 현재 대한민국 사회의 비정규직 노동자, 여성들이 처해있는 현실을 가장 극명하게 보여주는 사건입니다. 어떤 이들은 KTX 승무원들을 집단이기주의로 매도합니다. 바로 위의 편지에서도 언급된 것처럼 대우자동차의 예를 들기도 합니다. 여러분들은 얼마 전 해고되었던 대우자동차 노동자들이 희망자에 한해 전원 복직되었다는 뉴스를 들으셨을 겁니다. 그날 KTX 승무원의 강연 내용을 들었습니다. 한 대학생이 "법률적인 절차를 밟아 합법적으로 투쟁하면 되지 않느냐?"고 묻자 승무원은 자신은 인천에서 학교를 다녔지만 대우자동차 노동자들이 파업을 하는 지도 몰랐다. 법대로 하라는데 법대로 하면 3년, 5년, 8년이 걸린다. 어느 사업장에서 노동자가 무임금으로 그렇게 오래 버틸 수 있겠어요. GM대우의 파업이 5년을 끌었는데 마지막까지 남은 20명이 1,700명을 복직시킨 겁니다. 하지만 그 때는 이미 많은 수가 다른 곳에 취직을 한 상황이라 실제로 오는 사람이 별로 없었다고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는 아이 젖 달라고 우리가 삭발하고, 점거하고 불사르고 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한 승무원은 “다른 작은 노동조합에 비하면 그래도 우리는 언론과 전문가들이 관심을 가져주니 행복한 편이다”라고 말합니다.

앞서 저는 이 분들, KTX 승무원들이 참으로 예쁘다, 참으로 아름답다고 말했습니다. 처음 380명으로 시작된 KTX 승무원들의 싸움은 1년여가 지나는 동안 100명 정도의 승무원들만 남아서 싸움을 계속 해나가고 있는 상황입니다. 처음 철도공사가 지상의 스튜어디스를 뽑는다며 선전해 고시를 치르듯 어려운 시험을 통과한 아리따운 젊은(현재 자본주의가 요구하는 모든 미덕을 갖춘)  아가씨들입니다. 지금이라도 다른 직장을 알아볼 수 있을 겁니다. 그런데 그들은 이렇게 말합니다. 한 학생이 “모두 능력 있는 분들인데 지금이라도 다른 직장을 찾아가지 않고 계속 싸우는 이유가 뭐냐?”를 묻자 “그렇게 하면 저 한 사람의 문제는 해결될 수 있겠지요. 그렇지만 우리 후배들, 동생들, 이 땅의 800만이 넘는 비정규직 노동자들, 이 다음 세상에 태어날 우리의 아이들은 또다시 우리처럼 불행한 일들을 계속 겪을 수밖에 없을 거예요.” 이런 사람들에게 감히 ‘집단이기주의’를 말하는 당신이 바로 이기주의자입니다.

오늘은 99주년을 맞이한 세계여성의 날입니다. 저는 이 날이 투쟁이 아닌 축제의 날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해마다 발렌타인데이, 화이트데이, 뻬빼로데이라는 정체불명의 상업 파티들은 온갖 뉴스와 상업 자본의 호사를 누립니다. 그러나 철모르는 눈발이 펄펄 날리는 대한민국의 봄, 끝나지 않은 엄동설한이 지속되는 한, 이 땅의 여성들은 여전히 비정규직, 이등시민의 굴레를 뒤집어쓴 채 투쟁의 현장을 떠날 수가 없습니다. 1년 365일 중 하루만 여성의 날이 아니라 1년 365일이 여성의 날이어야 하는 이유입니다.

<2007-0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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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바람구두 windsho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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