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한 자의 가면

- 베르톨트 브레히트

내 방 벽에는 일본제 목제품인
황금색 칠을 한 악마의 가면이 걸려 있다.
그 불거져 나온 이마의 핏줄을 보고 있노라면
악할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가를
느낄 수 있을 것만 같다.


출전 : 악한 자의 가면/  브레히트/ 김길웅 옮김/ 청담사/ 1991


*

 
새해 벽두에 마음을 잡아끄는 시가 있어 옮겨 보았다. 비록 매우 짧은 시이지만 브레히트적인 위트와 풍자가 녹아있어 읽는 재미가 제법 삼삼하다. 늘 착하고 선하게 살라는 가르침들을 받아왔고, 무의식적으로라도 그렇게 살기 위해 노력하지만 막상 그리 산다는 일은 얼마나 많은 노력과 고통이 필요한가. 그런데 브레히트는 정색을 하고 "악할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가"라고 되묻는다. 황금가면을 뒤집어 쓴 악의 번드르한 얼굴은 사실 선과 악을 불문하고 살아가는 일 자체가 힘이 든다는 고백같이 들린다. 악마도 오죽하면 가면을 써야했겠나. 가면을 쓰고서도 인상 쓰느라 불거져 나온, 그것이 아니라면 악한 표정을 짓노라면 저도 모르게 이마의 핏줄이 불거져 나온다는 일본 사람들의 표현력도 가상하지만, 방 벽에 걸려 있는 악마의 가면을 보고 저런 시를 지을 수 있는 브레히트의 감각도 높이 평가해야 한다.


우리가 흔히 쓰는 말 가운데 "경원시(敬遠視)하다"는 말이 있다. 본래 이 말은 『논어(論語)』 옹야편(雍也篇)에 나오는 말로 공자의 제자 번지(樊遲)가 "지(知)란 어떤 것이냐”고 공자께 묻자 공자가 말하길 "백성의 도리(義)를 힘쓰고 귀신을 공경하면서도 멀리하면 지(知)라고 말할 수 있다(務民之義 敬鬼神而遠之 可謂知矣)"라고 답하였다는 데서 나온 말이다. 본래의 말 뜻은 공경하되 멀리하라는 말이지만 오늘날엔 공경의 개념은 사라지고, 낮추어 보거나 멀리한다, 겉으로는 공경하는 체 하지만 속으로는 멀리한다는 정도의 의미로 쓰인다.

물론 이때 공자의 태도는 "삶도 모르거늘 어찌 죽음을 알랴(未知生 焉知死)"라는 태도의 연장에 있음을 알 수 있다. 귀신의 존재 (사후 세계)자체는 인정하되, 그보다는 현세에서의 도덕적 완성을 기하는 데 인간 자신의 노력을 쏟아붓도록 촉구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공자의 유학이 지닌 태도는 서구의 인본주의적(人本主義的) 전통과도 유사한 점이 있다. 다만 공자의 이런 태도가 서구의 인본주의, 휴머니즘과 같은 각박함으로 흐르지 않은 것은 동양의 전통적인 인식, 생사여일(生死如一)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생사여일", 말그대로 하자면 '삶과 죽음이 하나'란 것인데, 삶과 죽음의 이치가 하나이므로 삶의 의미를 모른다면 죽음 이후가 무슨 의미를 지니겠는가라고도 할 수 있으리라.

선과 악도 이와 별반 다를 것 같지 않다. 그러나 무엇이 선의 의미인지 모르는 채, 선하게 살겠다는 다짐만으로는 선하게 살 수 없으며 스스로 선한 행위로 믿고 행한 일조차 결과적으로 악을 돕는 일이 되기도 한다. 그래서 불경의 어떤 가르침에서는 진리란 "깨우친 자에게는 진리이지만 깨우치지 못한 자 즉 미(迷)한 사람에게는 진리가 아니라 장애"가 되는 것이라 한다. 그렇기에 공자는 귀신에 대한 경원의 태도를, 미혹되지 않는[不感]의 지혜로움(知)으로 파악하였는지도 모르겠다. "악할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가" 그러나 선과 악이 어찌 따로 존재하는 것일까. 그것은 우리 안에 이미 항상 공존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쉴러가 말하길 "지나치게 반성하는 사람은 성취하는 일이 별로 없다"고 했다는데, 스스로 늘 경원하는 태도를 지니지 않는다면 언제라도 우리들은 미오(迷吾)의 세계에 빠진 생의 미아(迷兒)가 될 수밖에 없다.



▶ 일본 전통 연희인 '노(能)'는 기본적으로 가면극이지만 등장인물 전원이 가면을 쓰는 것은 아니다. 경우에 따라서는 가면을 쓰지 않고 출연하는 경우도 있다고 하는데, 이 경우에도 얼굴이 마치 가면인양 연기한다. '노'에 사용되는 가면의 종류는 200개 이상이지만 크게 6종류로 구분할 수 있는 데 오키나(翁)계, 죠(尉)계, 남성계, 여성계, 귀신계, 원령계가 그것이다. 흔히 악마의 가면이라고 하는 위의 가면은 원령계의 대표적인 가면으로 전쟁으로 원통한 죽음을 맞이한 무장이나 살생을 해서 사후에 성불할 수 없는 망자 등을 나타낼 때 주로 사용한다. 보통 눈이 금색으로 칠해져 있고 과장된 표정을 짓고 있어 그로테스크한 느낌이 절로 배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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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렌 굴드, 피아노 솔로』 - 미셸 슈나이더 | 이창실 옮김 | 동문선(2002)


"내가 기억하는 한, 나는 대부분의 시간을 늘 혼자서 보냈다. 그건 내가 비사교적이기 때문이 아니고, 예술가가 창조자로서 작업하기 위해 머리를 쓰기 바란다면 자아 규제 ― 바로 사회로부터 자신을 절단시키는 한 방식 ― 라는 것이 반드시 필요하기 때문이다. 관심의 대상이 될 만한 작품을 산출하고자 하는 예술까라면 누구나 사회 생활면에서 다소 뒤떨어진 존재가 될 수밖에 없다." - 글렌 굴드, 피아노 솔로 중에서

 

연예인들의 자살을 바라보면서, 이후 나는 점점더 나의 죽음 이후를 상상해본다. 내가 죽은 뒤 나의 사체를 사람들이 발견할 수 없는 아주 깊은 산 속에 버려두거나 아니면 깊은 심연 속에서 두번 다시 햇살 아래로 떠오르는 일 없이 그렇게 조용히 부패해가기를... 한 사람이 죽었다. 그것도 아주 극적인 방식으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나는 잠시 전 한 회사 동료로부터 그(녀)의 죽음과 관련한 그럴 듯한 X파일 하나를 전해들을 수 있었다. 우습다. 사람의 죽음이 소모되는 방식이란 구더기가 눈구멍으로부터 스멀스멀 기어나오는 것처럼 잔인하다.

 

브레히트의 시를 약간 비틀어 말하자면 "물론, 나도 알고 있다. 그들도 모두 죽는다. 오직 운이 좋았던 덕에 타인의 죽음을 오래도록 곱씹을 수 있다는 사실을... '강한 자는 살아 남는다.'가 아니라 살아남았으므로 강한 자임을 깨닫노라면 나는 자신이 미워진다." 오직 인간만이 타인의 손에 자신의 시신을, 최후 처리를 넘긴다. 짐승들은 영혼이 빠져나간 육신을 푸줏간의 고기처럼도 취급해주지 않는다. 죽은 건, 그냥 죽은 거다. 한밤의 연예 프로그램에서 성남 분당의 아파트에서 하얀 시트에 포장된채 들려나오는 여인의 시신을 바라보면서 나는 누군가의 죽음에 질질 끌려들어가는 기분이 들었다. 그러자 문득 잠이 오지 않았다. 나는 글렌 굴드의 <골드베르크 변주곡>을 오디오에 삽입한다.


"딴따아앙 따라다라 퉁두르"

 

뉴욕 필하모닉과 함께 토론토 순회 공연 중이던 레너드 번스타인이 어느날 굴드를 방문했다. 굴드는 자신의 아파트에 번스타인과 함께 있으려 하지 않았고, 그에게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일을 함께 하자고 제안했다. 곧 두 사람은 자동차를 타고 떠났다. 모피와 털로 안을 댄 외투, 목도리 속에 얼굴이 묻힐만큼 깊이 파묻힌 굴드는 창문을 모두 닫고 난방을 최고로 높였다. 그리고 볼륨을 최대한 올린 라디오가 악을 쓰는 상황에서 번스타인은 굴드와 함께 서너 시간 동안 도시 주변을 배회해야 했다. 소음과 땀에 파묻힌 번스타인이 이런 일이 자주 있느냐고 했더니 굴드는 이렇게 대답했다.

 

"매일!"

 

하루에 육백마흔네가지 망상에 사로잡히는 나 같은 인간도, 병들어 몸져 누워 있는 동안 욕실 거울을 앞에 두고 면도칼로 스스로의 목울대 대신에 머리카락을 스윽쓱 밀어댄 나 같은 인간도, 회사를 그만두고 삼개월여 동안 두문불출하고 방 안에서만 지내 괴물같이 자란 수염을 보며 텅빈 미소를 지어 보였던 나 같은 인간도 글렌 굴드와 서너 시간 동안 도시 주변을 배회하라면 이렇게 말할 거다. "넌 참 짜증나는 인간이야!"라고...

 

그런 점에서 나는 이 책의 저자 '미셸 슈나이더'를 감히 존경하고 싶다. 어떻게 하면, 어느 정도로 글렌 굴드를 사랑하면 이런 글을 쓸 수 있는 거지요? 하고 그에게 묻고 싶다. 굴드는 종종 마약이 필요한 나에게 마약 이상의 값어치를 한다. 엄밀하게 말하자면 지금쯤 백골이 진토되어 나뒹굴고 있을 굴드 자신이 아니라 그가 웅얼대며 남겨논 음반 덕이다. 나는 굴드의 골트베르크 변주곡 뿐만 아니라 골트베르크 변주곡 자체를 무진장 좋아해서 이 곡이 수록된 음반만 대여섯장 가지고 있다. 그래도 내 귀엔 굴드가 최고다. 그의 악보엔 온갖 낙서들이 난무한다. 상념 많은 인간은 스타인웨이 CD318 피아노 앞에서도 끊임없이 웅얼대고 싶어했다. 그가 그랬다.



 

굴드는 만년에 잠시 야마하를 쓰기는 했지만 그가 즐겨쓰고 좋아한 피아노는 역시 <스타인웨이 CD318> 그것도 그만의 174번째 생산된 피아노였다. 그 피아노를 불의의 사고로 잃기 전까지는 말이다. 1960년 초 굴드는 자신이 가지고 있는 피아노의 건반을 좀 더 가볍게 하기 위해 스타인웨이사의 전속 조율사 윌리엄 후퍼를 불렀다. 후퍼는 스타인웨이 피아노를 애용하는 호로비츠와 굴드를 위해 스타인웨이사측에서 특별히 채용하고 있는 조율사였다. 굴드의 집에 온 후퍼는 굴드와 이야기를 나누다 친근감의 표시로 그의 등을 가볍게 한번 툭 쳤다. 그러나 아무리 친한 사이라도 절대 악수하지 않는다는 결벽증의 소유자. 소련에서 니콜라예바와 악수할 때조차 장갑을 낀 채 였던 굴드에게 이것은 경천동지할 일이었다. 그는 즉시 왼팔과 등에 통증과 왼손 넷째 손가락과 다섯째 손가락이 마비되었다고 주장하며 스타인웨이사에 30만달러의 손해배상을 청구했다.

 

이 재판에서 누가 승소했는지는 정확히 모르겠지만 이 사건이 굴드의 노이로제 증세를 더욱 악화시킨 것만은 확실했다. 게다가 굴드는 이전부터 '감기에 걸렸다' 혹은 '신장에 이상이 있다'는 등의 핑계댈 만한 것만 있으면, 아니 핑계될 것이 없다면 만들어서라도 예정된 연주회를 취소하는 것으로 악명이 높았었다. 그는 함부르크에서 휴식하던 중 번스타인에게 이런 편지를 보낸 적도 있었다. "나는 앞으로 유용하게 써먹을 병의 이름들을 적어놓은 리스트를 가지고 있지요. 그리고 특히 콘서트 매니저들에게 효과가 있을 병들을 앞으로도 더 찾아볼 생각입니다." 그의 나이 26세때의 일이다. 결국 이런 글렌 굴드의 꾀병과 노이로제 증세는 정작 그의 몸에 중한 병이 찾아왔을 때 의사가 그의 말을 귀담아 듣지 않는 부메랑이 되어 변변한 치료조차 받을 수 없었다.

문득 독일 작가 파트릭 쥐스킨트가 떠올랐다.

이 인간(파트릭 쥐스킨트)은 사진 한 장 보기가 어렵다. 그런 점에서라면 J.D. 샐린저도 만만치 않은데, 쥐스킨트는 사람 만나는 걸 꺼리고, 빛을 싫어하고, 누가 그에게 문학상을 수여할 테니 시상식장에 나와달라고 요청할까 두려워서 문학상도 거부한다. 어디가서 자신의 얘기를 전하는 친구에겐 주저없이 절교를 선언한다. 그는 개도 무서워하고, 비위생적이란 이유에서 악수도 거절한다. 그가 만들어낸 가상의 인물 좀머씨는 그래서 쥐스킨트 자신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저 침묵한 채 걸을 뿐, 누가 말이라도 걸라치면 "나를 좀 제발 그냥 놔두시오"라고 외치는... 자기 안에 심연을 가지고 있는 인간은 타인과의 대화를 꺼리게 되는 걸까.

 


▶ 캐나다 토론토시 CBC빌딩 앞에 있는 글렌 굴드의 조각상 벤치


두 번째 <골드베르크 변주곡>을 녹음한 얼마 후 글렌 굴드는 자신이 거주하던 토론토의 아파트에서 뇌졸중으로 숨졌다. 불을 모두 켜둔 채 잠을 자던 그는 토론토의 찌는 듯한 열기 속에서 죽어갔다. 그의 <데뷔 레코딩곡>이었던 <골드베르크 변주곡>은 그의 마지막 녹음이 되었다. 굴드는 두 번째 녹음 이듬해인 1982년 10월 4일 토론토에서 51세의 나이로 사망한다. 그가 피아노 건반에 코를 박듯 허리를 깊숙이 숙인 채 연주하는 모습은 더 이상 볼 수 없는 일이 되었다. 우리는 파트릭 쥐스킨트의 소설 속 결말이 어찌 끝나는지 잘 알고 있다. 소설 속의 좀머씨는 호수를 향해 그냥 걸어 들어갔고, 그것을 지켜보는 어린 나는 그가 과연 자살을 위해 호수로 걸어 들어갔는지 그냥 걸어들어갔는지 알 수 없다.

 

오늘날 클래식 연주자들은 본인이 원하든 원치 않든 스타성을 발휘하길 원하는 청중들에 의해 둘러싸여 있다.(그렇게 말하고 있는 본인을 포함해서) 사실 고전 음악의 최전성기 때조차 연주자와 작곡가들이 받은 대접이 그렇게 훌륭한 것이라고는 할 수 없는 것이었다. 모차르트는 자신의 몸을 누일 만한 그럴 듯한 관짝 하나도 허용되지 않았고, 오페라 작곡가들은 온갖 연애담과 구설수의 대상이 되어야 했다. 그들이 진정한 예술가로 대접받았던 시기는 고전음악사 전체를 통틀어도 얼마 안 되는 기간 동안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현대에 이르러 연주자들은 더 이상 예술가라기보다는 메이저 음반사에 묶인 상품이 되어가고 있다. 대중들은 마음의 심연을 두드리는 음악보다는 듣기 좋게 짜깁기된 콤필레이션 음반들을 더 선호하고, 불황으로 활로를 찾을 수 없는 음반사들은 음악성보다는 뛰어난 외모를 갖춘 연주자들을 통해 매출을 극대화하려 든다. 글렌 굴드가 이와 같은 이유들로 청중들을 싫어했다고는 할 수 없다. 다만 그는 '음악에 대해 잘 알고 있는 청중일수록 연주자에 대해 가학적인 욕망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했다.




잘 안다는 건, 어떤 의미에선 더 잔인해질 수 있다는 뜻이다. 그건 서로 사랑하다가 이별한 경험이 있는 연인이라면 더 뼈저리게 느낄 수 있다. 내가 당신을 아는 만큼 나는 당신에게 더 잔인해질 수도 있다. 왜냐하면 나는 바로 당신이 사랑해달라고 애걸했던 그곳, 당신의 가장 취약한 곳에 비수를 박아넣을 수도 있으니까. 글렌 굴드는 미치도록 위대한 사람이 되고 싶어했다. 그래서 외로왔고, 무대에서, 콘서트 장에서 홀로 피아노 앞에 앉았을 때 누군가에게 손가락질 당하고 있다는 강박에 사로잡혔을지도 모르겠다. 종종 내 자신이 강박적인 인간이란 사실을 자각하게 될 때마다 나의 상처들이 벌어져 오래된 고름들이 뚝뚝 떨어지는 느낌이 든다. 그럴 때 글렌 굴드는 나에게 좋은 위로가 된다. 사랑이란 모든 걸 다 아는 존재로서의 대상을 상정하지 않는다. 사랑이란 거기 오랫동안 있어주는, 그것이 무엇일지는 나도 모르는 존재를 상정할 뿐이다.

 

고독 속에 있을 때 우리는 어디에 있는가? 안에 있는가. 밖에 있는가? 음악 속에 있을 때 우리는 어디에 있는가? 이따금 음악이 일체를 엄습해 깡그리 지워버리고 만다. 그리고 음향 외에는 아무 것도 존재하지 않는다. 나는 그곳에 없을 수도 있지만, 음향은 거기에 있다. 그것은 거기에 있는 것이다. 때론 아주 미미한 것, 거의 무효화된, 아니면 부서진 무엇일 때도 있다. 하지만 어디에 있는 것일까? 음악은 내 안에 있고, 나는 음악 안에 있다. 피아노를 연주한다는 것은 끊임없이 내부에서 외부로, 내면이 된 외부로 나아감이다. 마치 내면에 외부가 존재하는 양. 음악은 신의 자질들을 지니고 있어 성 아우구스티누스가 말했듯이 보존하면서 채운다. 그것은 에워싸고 조여 온다. 그러면서도 귀로 올라오는 기쁨, 혹은 첨예한 고통으로서, 아주 작은 부분이 되어 내부에 머문다. <글렌 굴드, 피아노 솔로 中에서, 미셸 슈나이더 지음, 이창실 옮김, 동문선 현대신서>

 

지난 88년 프랑스에서 출간돼 유명한 페미나 바카레스코상까지 수상한 전기문학이지만 매우 특별한 구조를 취하고 있다. 미셸 슈나이더는 굴드에 대한 특별한 애정을 담아 그의 내면으로 침투해 들어간다. 우리는 이 책을 통해 기인 글렌 굴드를 조금더 이해할 수 있게 된다. 누군가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닌 다른 존재에 대해 만약 추억하거나 회상해야 할 필요가 있다면, 그것이 혹시 나라면 이처럼 해준다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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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손들에게

- 베르톨트 브레히트

I

참으로 나는 암울한 세대에 살고 있구나!
악의없는 언어는 어리석게 여겨진다. 주름살 하나없는 이마는
그가 무감각하다는 것을 나타낸다. 웃는 사람은
단지 그가 끔직한 소식을
아직 듣지 못했다는 것을 말해 줄 뿐이다.

나무에 관해 이야기 하는 것이
그 많은 범죄행위에 관해 침묵하는 것을 의미하기에
거의 범죄처럼 취급받는 이 시대는 도대체 어떤 시대란 말이냐!
저기 한적하게 길을 건너는 사람을
곤경에 빠진 그의 친구들은
아마 만날 수도 없겠지?

내가 아직 생계를 유지하고 있다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믿어 다오. 그것은 우연일 따름이다. 내가
하고 있는 그 어떤 행위도 나에게 배불리 먹을 권리를 주지 못한다.
우연히 나는 해를 입지 않았을 뿐이다.(나의 행운이다하면, 나도 끝장이다.)

사람들은 나에게 말한다. 먹고 마시라고. 네가 그럴 수 있다는 것을 기뻐하라고!
그러나 내가 먹는 것이 굶주린 자에게서 빼앗은 것이고,
내가 마시는 물이 목마른 자에게 없는 것이라면
어떻게 내가 먹고 마실 수 있겠는가?
그런데도 나는 먹고 마신다.
나도 현명해지고 싶다.
옛날 책에는 어떻게 사는 것이 현명한 것인지 쓰여져 있다.
세상의 싸움에 끼어 들지 말고 짧은 한평생
두려움 없이 보내고
또한 폭력 없이 지내고
악을 선으로 갚고
자기의 소망을 충족시키려 하지 말고 망각하는 것이
현명한 것이라고.
이 모든 것을 나는 할 수 없으니,
참으로 나는 암울한 시대에 살고 있구나!

II

굶주림이 휩쓸고 있던
혼돈의 시대에 나는 도시로 왔다.
반란의 시대에 사람들 사이로 와서
그들과 함께 분노했다.
이 세상에서 내게 주어진
나의 시간은 그렇게 흘러갔다.

싸움터에서 밥을 먹고
살인자들 틈에 누워 잠을 자고
되는대로 사랑에 빠지고
참을성 없이 자연을 바라보았다.
이 세상에서 내게 주어진
나의 시간은 그렇게 흘러갔다.

나의 시대에는 길들이 모두 늪으로 향해 나 있었다.
내가 사용하는 언어는 도살자들에게 나를 드러내게 하였다.
나는 거의 아무 것도 할 수 없었다.
그러나 지배자들은
내가 없어야 더욱 편안하게 살았고, 그러기를 나도 바랬다.
이 세상에서 내게 주어진
나의 시간은 그렇게 흘러갔다.

힘은 너무 약했다. 목표는
아득히 떨어져 있었다.
비록 내가 도달할 수는 없었지만
그것은 분명히 보였다.
이 세상에서 내게 주어진
나의 시간은 그렇게 흘러갔다.

III

우리가 잠겨 버린 밀물로부터
떠올라 오게 될 너희들.
부탁컨대, 우리의 허약함을 이야기할 때
너희들이 겪지 않은
이 암울한 시대를
생각해 다오.

신발보다도 더 자주 나라를 바꾸면서
불의만 있고 분노가 없을 때는 절망하면서
계급의 전쟁을 뚫고 우리는 살아왔다.

그러면서 우리는 알게 되었단다.
비천함에 대한 증오도
표정을 일그러뜨린다는 것을.
불의에 대한 분노도
목소리를 쉬게 한다는 것을. 아 우리는
친절한 우애를 위한 터전을 마련하고자 애썼지만
우리 스스로 친절하지는 못했다.

그러나 너희들은, 인간이 인간을 도와주는
그런 세상을 맞거든
관용하는 마음으로
우리를 생각해 다오.


An die Nachgeborenen
- Bertolt Friedlich Eugen Brecht (1898-1956)

I

Wirklich, ich lebe in finstern Zeiten!
Das arglose Wort ist töricht. Eine glatte Stirn
Deutet auf Unempfindlichkeit hin. Der Lachende
Hat die furchtbare Nachricht
Nur noch nicht empfangen.

Was sind das für Zeiten, wo
Ein Gespräch über Bäume fast ein Verbrechen ist
Weil es ein Schweigen über so viele Untaten einschliesst!
Der dort ruhig über die Strasse geht
Ist wohl nicht mehr erreichbar für seine Freunde
Die in Not sind?

Es ist wahr : ich verdiene noch meinen Unterhalt
Aber glaubt mir : das ist nur ein Zufall. Nichts
Von dem, was ich tue, berechtigt mich dazu, mich sattzuessen.
Zufällig bin ich verschont.(Wenn mein Glück aussetzt, bin ich verloren.)

Man sagt mir : Iss und trink du! Sei froh, dass du hast!
Aber wie kann ich essen und trinken, wenn
Ich dem Hungernden entreisse, was ich esse, und
Mein Glas Wasser einem Verdurstenden fehlt?
Und doch esse und trinke ich.

Ich wäre gerne auch weise.
In den alten Büchern steht, was weise ist:
Sich aus dem Streit der Welt halten und die kurze Zeit
Ohne Furcht verbringen
Auch ohne Gewalt
auskommen
Böses mit Gutem vergelten
Seine Wünsche nicht erfüllen, sondern vergessen
Gilt für weise.
Alles das kann ich nicht:
Wirklich, ich lebe in finsteren Zeiten!

II

In die städte kam ich zur Zeit der Unordnung
Als da Hunger herrschte.
Unter die Menschen kam ich zu der Zeit des Aufruhrs
Und ich empörte mich mit ihnen.
So verging meine Zeit
Die auf Erden mir gegeben war.

Mein Essen ass ich zwischen den Schlachten
Schlafen legte ich mich unter dir Mörder
Der Liebe pflegte ich achtlos
Und die Natur sah ich ohne Geduld.
So verging meine Zeit
Die auf Erden mir gegeben war.

Die Strassen führen in den Sumpf zu meiner Zeit.
Die Sprache verriet mich dem Schlächter.
Ich vermochte nur wenig. Aber die Herrschenden
Sassen ohne mich sicherer, das Hoffe ich.
So verging meine Zeit
Die auf Erden mir gegeben war.

Die Kräft waren gering. Das Ziel
Lag in grosser Ferne
Es war deutlich sichtbar, wenn auch für mich
Kaum zu erreichen.
So verging meine Zeit
Die auf Erden mir gegeben war.

III

Ihr, die ihr auf tauchen werdet aus der Flut
In der wir untergegangen sind
Gedenkt
Wenn ihr von unseren Schwächen sprecht
Auch der finsteren Zeit
Der ihr entronnen seid.
Gingen wir doch, öfter als die Schuhe die Länder wechselnd
Durch die Kriege der Klassen, verzweifelt
Wenn da nur Unrecht war und keine Empörung.

Dabei wissen wir doch:
Auch der Hass gegen die Niedrigkeit
Verzerrt die Züge,
Auch der Zorn über das Unrecht
Macht die Stimme heiser. Ach, wir
Die wir den Boden bereiten wollten für Freundlichkeit
Konnten selber nicht freundlich sein.

Ihr aber, wenn es so weit sein wird
Dass der Mensch dem Menschen ein Helfer ist
Gedenkt unsrer
Mit Nachsicht.


출전 : 한마당 출판사/브레히트 전집 시리즈 10권 브레히트 시론 <시의 꽃잎을 뜯어 내다>/이승진 편역/1997.1 초판


*



오늘 문득 1848년과 1871년, 1905년, 그리고 1968년을 떠올려 본다.
그리고 우리들의 1987년도 거기에 슬그머니 끼워본다.

브레히트의 시 <후손들에게>가 내뿜는 정서는 쇠잔한 것이다. 산에서 내려올 때 비로소 더 많은 세상을 볼 수 있는 것처럼 혁명의 퇴조기에 이르러서야 격변의 시절을 살아온 인간은 더 많은 것을, 더 잘 할 수도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된다.

비록 암울한 시대를 살아왔던 탓이라고 변명할 수도 있지만, 브레히트는 그와 같은 변명 대신에 “비천함에 대한 증오도/ 표정을 일그러뜨린다는 것을// 불의에 대한 분노도/ 목소리를 쉬게 한다”며 “우리 스스로 친절하지 못했다”는 것을 말한다.

그러나 너희들은, 인간이 인간을 도와주는
그런 세상을 맞거든
관용하는 마음으로
우리를 생각해 다오.

“관용의 세상으로 가기 위해 우리는 증오와 분노의 강을 건너야만 하는가?”라는 의문이 삶에 대한 태도를 결정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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