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거벗은 여자 - 데스몬드 모리스 | 이경식 옮김 | 휴먼앤북스(2004)


영국 최초의 미술학과 교수였던 존 러스킨(John Ruskin)은 29세에 결혼했다. 그와 그의 아내는 당시 관습에 따라 상당 기간의 연애 기간을 거쳐(약혼을 포함해서) 결혼한 것이다. 당연한 말이지만 러스킨은 미술에 상당히 조예가 깊어 고대의 대리석 조각과 회화 등을 통해 여성의 신체에 대해서는 나름대로 잘 알고 있었다. 좀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여성의 벗은 몸에 대해 나름대로 잘 알고 있었다고 해야 할 것이다. 그는 심미적 관점에서 여성의 육체를 즐길 줄 알았다. 러스킨의 아내는 결혼 얼마 뒤 남편과 이혼을 결심하게 된다. 이유는 남편인 러스킨이 섹스에 전혀 관심을 보이지 않을 뿐더러 그 자신과 관계를 갖지 않으려 했기 때문이다. 관계만 갖지 않으려 했던 것이 아니라 멀리 하려 했다고 해야 옳을 것이다. 결국 러스킨의 아내는 신체검사를 받아 자신이 아직 처녀라는 사실을 증명해야 하는 창피함을 무릅쓰고 결혼을 무효로 만들었다.

> 존 러스킨(John Ruskin, 1819-1900), 런던의 부유한 포도주 상인 집안에서 태어나 캘빈주의자인 모친의 엄격하고 청교도적인 교육을 받으면서 자랐다. 부친을 따라 유럽 여러 곳을 여행하여 미술과 문학에 대한 취미를 길렀고 그림을 배웠다. 부친의 넓은 문학적 취미와 낭만파 시인의 작품, 모친의 교육에서 성서를 접하면서 그의 문학적 경향이 굳어져갔다. 처음에는 목사가 되려고 하였으나, 옥스퍼드대학 재학 중에 이 뜻을 버리고, 졸업한 이듬해인 1843년 낭만파의 풍경화가인 J.터너를 변호하기 위하여 쓴 《근대 화가론》(5권, 1843∼1860)의 제1권을 익명으로 내어 예술미의 순수감상을 주장하고 '예술의 기초는 민족 및 개인의 성실성과 도의에 있다'는 자신의 미술원리를 구축해 나갔다.

러스킨은 어째서 아내와 관계를 갖지 않았을까? 사실, 러스킨의 일화는 널리 알려진 바가 있는데 그 이유는 아내의 사타구니에 난 털(음모)때문이었다. 고대의 대리석 조각상을 통해 여성의 몸을 심미적으로 관찰해온 러스킨이었지만 빅토리아 시대의 관습으로는 상류층 남녀는 혼전관계를 맺지 않았고, 그 자신은 여성과의 섹스에 대해 완전한 무지에 가까왔다. 그로서는 사랑스런 아내의 몸, 가장 아름다워야 할 곳에 남자처럼 숭숭 솟아오른 음모가 도저히 용납되지 않았다. 결국 러스킨은 이런 사실을 아내에게 고백했고 이혼당했다.


< 루이스 캐럴(Lewis Carroll, 1832~1898)
영국 체셔 테어스베리에서 성공회 사제의 아들로 출생하였다. 본명은 찰스 루트위지 도즈슨(Charles Lutwidge Dodgson)이다. 럭비학교에서 1951년 옥스퍼드 크라이스트 처치 칼리지에 진학하여 수학, 신학, 문학을 공부하였으며, 훗날 모교의 수학 교수를 지냈다. 그는 성직자의 자격을 얻었음에도 내성적인 성격과 말더듬이 때문에 평생 설교단에 서지 않았다. 그의 성격은 괴팍했고 다른 사람들과 잘 어울리지 못했다. 엄격한 규칙으로 정한 일상을 고집스럽게 반복했으며 이를 일기에 꼼꼼하게 남겼다. 모든 일상을 기록하여 편지로 주고받았는데 약 9만 9천통의 편지를 보관하였다. 그는 글을 쓰면서 루이스 캐럴이라는 가명을 사용하였다.

우리에게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의 저자로 널리 알려진 '루이스 캐럴(찰스 루트위지 도지슨)'은 이 책을 집필하는 동안 세 명의 어린 소녀들을 초대하여 한여름의 뱃놀이를 즐겼다고 한다. 그 중 한 명인 '앨리스 리델'은 일곱 살이었다. 청년 도지슨은 옥스퍼드의 수학강사로 일하고 있었다. 그렇다고 도지슨이 어린 앨리스에게 유아성학대의 범죄를 저질렀던 것은 아닐 것이다. 그는 성을 극도로 혐오하던 사람에 속했으므로... 그는 여성에게 키스 이외에는 그 어떤 성적인 접촉도 가지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다만 그가 키스했던 여성은 대체로 열두 살이었거나 아니면 그보다 더 어렸을 것으로 생각된다. 도지슨은 사춘기 이전의 나이에 있는 어린 소녀들을 편집적으로 사랑했다. 도지슨에게 찾아온 사랑은 그런 것이었다. 도지슨은 상급자의 딸인 앨리스 리델을 사랑했다. 그는 앨리스가 다섯 살에서 열한 살때까지는 늘 만날 수 있었다. 바로 이웃에 살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어느날부터인가 도지슨은 그 소녀를 보려고 하지 않았다.

그가 12살 밖에 안 된 어린 소녀인 앨리스 리델에게 청혼했다는 소문이 파다하게 돌았고, 일설에는 앨리스의 어머니가 도지슨이 앨리스에게 보낸 모든 편지를 불태우고, 앨리스의 일기장에서도 도지슨과 관련된 모든 페이지를 찾아 찢어냈다고 한다. 이들의 관계에서 영감을 얻어 나보코프가 소설
"롤리타" 를 집필했다는 이야기 역시 이들의 이야기만큼 유명하다. 이것은 여성의 성기 일부를 가리고 있는 음모가 남성들에게 어떤 인상과 영향을 미치는지에 대한 간략한 일화들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러스킨과 같은 엄숙한 금욕주의자(?)에게 여성의 음모가 미친 영향과 거의 같은 이유로 루이스 캐럴에겐 여성의 음모가 영향을 미쳤다.


여성 자신도 자신의 신체에서 2차 성징의 하나로 자라나는 음모에 대해 대부분 혐오의 감정을 갖는다고 한다. 물론, 남성인 나는 잘 알 수 없으나 나와 애 주변의 경험에 비추어보았을 때, 남성 성기 주변에서 음모가 자라는 것에 대해서도 이와 흡사한 혐오와 자부심이 함께 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즉, 성기 주변에 자라나는 음모는 음란한 느낌과 함께 사자의 갈기와 같이 힘과 성장을 의미하는 자부심을 품게 해준다

사춘기에 들어선 영국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한 이 연구에 따르면, 사춘기 진입 후 소년들과 달리 소녀들은 거미를 싫어하는 비율이 비약적으로 증가한다고 한다. 음모가 가장 빠르게 성장하는 14세 쯤에는 이 비율이 더욱 증가해 거미를 싫어하는 소녀의 비율이 소년의 두 배로 껑충 뛴다.

언뜻 보기에 위의 연구 결과가 음모와 어떤 관계가 있을까 의아해 할 것이다. 중요한 사실은 왜 그렇게 거미를 싫어하느냐는 질문에 소녀들이 한결같이 거미가 '역겹고 털로 뒤덮인' 동물이기 때문이라고 대답했다는 점이다.  <"19장 _ 여성의 음모" 중 333쪽>

어찌되었든 독실한 종교인과 진보적 자유주의자 모두 자연 그대로의 여성 음모가 매력적이라 생각한 것처럼, 음모 제거를 찬성하는 부류에도 금욕주의자와 쾌락주의자가 모두 포함되어 있다는 것은 이 두 사람의 일화를 통해서도 알 수 있듯 여성의 신체에 대한 남성들의 그릇된(?) 혹은 본능적인 시각을 보여준다. 즉, 여성의 몸은 아무런 이유없이 오해받고 있으며, 여성의 음모가 생리적으로는 그저 성장의 표징임에도 불구하고
(성적인 이유는 의견이 제각각이긴 하지만) 남성들은 때로 각자의 성적 취향에 따라 여성의 음부를 제멋대로 파악하고 있다는 것이다. 여성의 신체는 오해받고 있다는 것이 데즈몬드 모리스가 이 책 "벌거벗은 여자"를 집필한 이유가 될 것이다. 이 책의 부제는 "여자 몸에 대한 연구"이다. 원래의 책에서도 부제가 그리 붙었는지는 확인할 수 없으나 이 책을 읽다보면 부제가 여러 이유로 적당하단 생각을 하게 된다. 첫째는 앞서 러스킨과 도지슨의 사례에서 확인할 수 있듯 우리가 여성의 몸에 대해 알지 못하므로 연구가 필요하단 것이고, 둘째는 저 부제가 아무런 꾸밈없이 이 책의 직선적이고, 어느 부분에서는 고지식해보이기 까지 하는 서술 방법에 합당하다는 것이다(데즈몬드 모리스의 이전 책들 가령 "털없는 원숭이"나 "피플 워칭" 과 같은 책들, 특히나 "털없는 원숭이"는 영국식 블랙유머가 적당히 가미된 산문 문체를 보여주고 있지만, 이 책 "벌거벗은 여자"는 상대적으로 건조해 보인다).

이 책 "벌거벗은 여자"는 모두 23장의 부분으로 나뉘어 여성의 신체를 연구한 결과를 담고 있다. 제1장 '진화'로부터 시작해서 제23장 '여자의 발'에 이르기 까지 저자 데즈몬드 모리스는 여성의 신체를 그 특유의 시선으로 샅샅이 훑어간다. 이때 데즈몬드 모리스 특유의 시선은 여러모로 편리하다. 이전의 연구서에서도 그러했듯 그는 인간을 인간이기 이전에 지구상에서 진화해 살아남은 독특한 영장류의 일종으로 연구한 것처럼, 여성을 그런 영장류의 암컷으로 연구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것이 편리하게 보이는 이유는 여성의 신체를 대상화하고, 물신화한다는 식의 여성주의적 관점으로부터 상대적으로 자유로울 수 있고, 변명할 여지가 생기는 측면 때문이다. 나쁜 의미로 보자면 이 책이 여자의 몸은 보여줄지 몰라도, 여성의 몸을 보여주지는 못할 수도 있다는 의미가 된다. 종종 과학이란 말로 혹은 객관화한다는 뜻에서 자신은 어떤 주의나 주장으로부터 상대적인 자유를 누리고자 하는 것일 수 있다는 것이기도 하다. 이 책이 객관적인 사실을 보여준다고 해서 이 책이 정치적으로도 올바르다고 할 수 없는 측면을 우리는 알아두어야 한다. 

그는 이 책을 통해 여성의 신체를 해부학적인 방식으로 시작해서 사회적인 방식, 문화인류학적 방식 등 다양한 방식을 통해 연구하고 있다. 데즈몬드 모리스와 이 책의 저자들이 구태여 '여성'이란 표현을 피하고, '여자'라고 표기한 이유도 거기에 있을 것이다.

내 개인적으로 특별히 재미있었던 부분은 제14장 '여자의 가슴' 편이었다. 프랑스의 마지막 국왕 루이 16세의 악명높은 비운의 황후 마리 앙트와네트와 관련된 재미있는 일화 한 가지를 소개한다면
(앞서 루이스 캐럴과 지금의 이 일화는 이 책에서 나온 이야기가 아니다) 그녀의 유방이 현재까지 루브르 박물관에 전시되고 있다는 것이다. 좀더 엄밀하게 말하면 마리 앙트와네트의 유방이 아니라 그녀의 유방에 석고를 대고 본을 떠서 만든 황금잔이 전시되고 있다. 어떻게 해서 그런 일이 있을 수 있었을까? 18세기 유럽을 뜨겁게 달궜던 것은 계몽주의 철학이었다. 그 중에서도 루소의 영향력은 참으로 막강했는데, 당시 귀족 출신의 부인이라면 누구도 자신들의 아이들에게 직접 젖을 먹여 키울 생각을 하지 않았다. 루소의 "에밀"을 통해 수유는 비로소 귀족사회에서도 수용될 수 있었고, 이 논리를 확장시켜 국가의 아버지, 어머니로 자부한 마리 앙트와네트는 자신의 유방을 본떠 만든 도자기 잔에 우유를 담아 따라주는 행사를 치뤘다. 이런 국가적 의례를 통해 마리 앙트와네트의 유방은 루이16세의 유방이면서 동시에 국가의 유방, 프랑스 국민의 유방이 되었다.  

오늘날에도 종종 여성의 유방 혹은 수유 행위는 국가적 관심사가 되곤 한다. 그것은 데즈몬드 모리스가 여성의 신체를 아무리 여자의 신체로 혹은 영장류 중 인간의 암컷으로 객관화시키려 할지라도 사회적인 시각에서 여성의 몸은 단순히 한 개인의 신체가 아니라 국가적으로 관리해야 할 신체, 어머니의 신체로 파악되기 때문이다. 여성의 신체는 종종 이중의 처벌 속에 놓인다. 단적인 사례가 여성의 수유행위이다. 수유행위는 국가 단위에서 미래 국민들의 보건과 건강을 위해 권장되는 사안이면서 사회적으로 엄격한 금기였다. 1975년 미국 여성 세 명이 마이애미의 한 공원에서 가슴을 내놓고 젖을 먹였다는 이유로 체포되었다. 죄목은 '부적절한 노출'이었다. 여성의 수유행위는 국가적으로 권장되는 일이면서 동시에 처벌의 대상이 되었던 것이다. 그후 이런 체포관행에 대한 반대가 늘어나면서 오늘날 대부분의 북미지역에서는 공공장소에서 행해지는 모유 수유가 합법으로 인정받는다. 

데스몬드 모리스의 책들은 분명 우리에게 여성의 신체 혹은 우리들 지구상에 살고 있는 특이한 영장류인 인간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보여준다(사실은 에드워드 윌슨의 시각을 계승한 듯 보이는). 데스몬드 모리스가 저자 서문에서 "이 책을 쓰면서 여자 몸의 복잡한 원리와 신비를 모두 깨달을 수 있었다"고 자신있게 밝히고 있는 대로 여자 몸에 대한 복잡한 원리와 신비를 모두 깨달았던 것은 아니다. 그것을 최소한 '여자'라고 국한시키더라도 나는 저자의 이런 자신만만함에 절대 동의할 수 없다. 저자가 인간을 유인원으로부터 진화해서 지상을 지배하는 강자로서의 영장류로 인간을 파악하여 보여주는 시선은 분명 새롭고, 우리들로 하여금 우리들 자신에 대해 새로운 사실들을 알게 해줌에도 불구하고, 인간은 people이면서 동시에 Human이고, sex로서의 여성이 있으면, gender로서의 여성 또한 존재하기 때문이다. 이 책은 그와 같은 의미에서 여성에 대한 새로운 시각과 우리가 그동안 간과해온 새로운 사실들을 알려주기는 하지만 그것이 저자의 말대로 여자의 모든 것은 아니며, 더더군다나 여성의 모든 것은 아니다. 그것은 여성의 음모가, 여성의 유방이 한 가지 의미망으로 포착될 수 없는 것과 같은 의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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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바람구두 windshoes



표정 없는 거리에 인간의 얼굴을 돌려주는 그래피티 테러리스트 - 뱅크시(Banksy)

뱅크시를 가리키는 말은 제법 많다. 내가 알기로 1974년 생이라고 들었는데, 그(녀)의 얼굴을 제대로 아는 사람이 별로 많지 않아서(은둔형이다) 일명 '얼굴 없는 아티스트'라고도 부른다. 그(녀)가 주로 작업하는 공간은 아웃도어다. 다시 말해 '낙서화가(Graffiti Artist)'란 것이다. 그러나 뱅크시의 의미나 명성을 세계적으로 널리 알린 사건은 이름만으로도 사람을 주눅들게 만드는 근엄한 예술공간인 '대영박물관, 런던 테이트 미술관, 프랑스의 루브르 박물관, 뉴욕 현대예술박물관' 등에 자신의 작품을 몰래 '도둑전시'했던 해프닝들 덕분이었다. 

대개의 미술관이나 박물관들은 파르테논 신전을 모사한 것처럼 굵직한 기둥이 도열하여 세워진 권위가 물씬 풍기는 건축 양식을 하고 있다. 감상자들은 작품을 감상하기 전부터 건물이 주는 위세에 주눅이 든다. 관람객들은 언론이나 매스미디어를 통해 널리 알려진 유명한 전시, 세계적 걸작이란 권위 앞에서 위축된다. 마치 성소를 순례하는 신도들처럼 줄을 서서 작품의 발바닥에 키스를 보낼 마음의 준비를 하고 앞사람의 뒤꽁무니를 따라간다. 큐레이터나 미술비평가들이 써놓은 작품 해설을 앵무새처럼 되뇌이면서 나도 모르게 작품에 대한 자유로운 감상과 해설로부터 점점 더 멀어져 간다.



예술의 권위에 침을 뱉어라!
뱅크시는 이와 같은 지금까지의 미술관람 관행에 돌을 던진다. 그를 가리켜 예술가인 동시에 문화파괴자(Vandals) 혹은 그래피티 테러리스트라고 부르는 이유는 뱅크시가 세계 유명 미술관에 관람객으로 위장해 몰래 숨어들어 자신의 작품을 슬쩍 걸어두는 행위를 했기 때문이다. 그의 이런 행동은 매우 파격적이고, 파괴적으로 보이지만 한 편으로 그 방식 자체는 최근에 유행하고 있는 퍼포먼스나 해프닝(happening)과 개념적으로 보자면 크게 다른 형식은 아니라고 할 수 있다. 해프닝이란 연극적인 퍼포먼스와 매우 유사하고, 환경미술과 마찬가지로 미술에 있어서 중요한 미덕이라고 생각해 왔던 영속성과 장인 정신과 같은 전통적인 개념에 도전하는 것으로 과거에는 응당 예술작품은 미술관이나 화랑에만 전시되는 것이라 여겨져 왔던 화랑, 미술관처럼 한정된 장소를 벗어나 외부의 공간에서 제한 없이 연극, 음악, 그리고 시각 예술을 결합시킨 미술 형태 중 하나로 퍼포먼스와 별다른 구분없이(해프닝은 관객의 참여를 유도한다는 점에서 퍼포먼스와는 구별된다) 사용되기도 한다. 

뱅크시가 이들과 달랐던 점은 그가 보여준 해프닝이 전통적으로 예술작품이 전시되는 공간, 그것도 인류가 남긴 최고의 예술적 문화유산이 전시되는 공간이라고 믿어져왔던 미술관과 박물관이란 공간의 권위, 평론가들에게 독점되어 오던 예술 작품 평가의 권위를 기본부터 해체하는 도전이었기 때문이다. 그는 유명한 예술 작품 곁에 자신의 작품을 몰래 전시해두고 관객이나 미술관 관계자가 알아채기 전까지 도둑 전시를 일삼았다. 
백문이 불여일견이라고 일단 몇몇 작품을 한 번 살펴보도록 하자.

뱅크시의 작품들은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그래피티'와는 약간 다르다. 대개 그래피티를 생각할 때 벽면에 검정색 스프레이를 뿌린 뒤 그 위에 형광 느낌이 나는 색색깔 스프레이로 화려하게 그려진 그림들을 연상하기 쉬운데 뱅크시의 경우엔 스텐실 기법을 즐겨 사용하고, 벽면에 남아있는 여러 흔적들을 기발한 발상으로 자연스럽게 연결한다. 쥐를 발견하고 의자 위로 몸을 피신한 소녀와 소녀를 올려다보고 있는 쥐를 보라. 깨진 벽면 속에 드러난 붉은 벽돌의 모양에서 뱅크시는 '쥐'를 연상(못 써요, MB를 연상하다니)했고(솔직히 나는 일부러 깬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쥐의 수염과 귀, 긴 꼬리만을 덧붙여 한 마리의 쥐가 자연스럽게 표현되고 있다. 마치 본래부터 그 자리에 있었던 것처럼 말이다.

비극적인 희극의 정신을 표현하다



그는 주로 영국에서 활동하고 영국인으로 알려져 있는데, 영국인이든 아니든 영국적인 문화 풍토가 잘 느껴지는 대목은 뱅크시의 작품 곳곳에 숨겨져 있는 '블랙유머' 감각이다. 블랙유머가 보통의 '유머'와 구분되는 결정적인 근거는 블랙유머가 삶의 부조리나 부정적인 사회 풍자에서 비롯되는 '비극적인 희극'이라는 점이다. 뱅크시의 작품들에서는 버나드 쇼나 처칠의 짧은 문장으로 압축되어 있는 풍자를 읽는 것처럼 재기 넘치는 날카로운 풍자정신이 엿보인다. 그러나 그의 작품들이 근본적으로 약자에 대한 존중과 그들의 비명을 담아내기 위해 노력한다는 점에서 비극적인 희극이기도 하다. 벽면에 그려진 메이드 복장의 여성은 담벼락을 마치 커튼처럼 들어올린다. "이거봐! 이게 벽이야? 커튼이지!" 현대예술의 거만과 위선을 폭로하는 것처럼 보이지 않는가? 

뱅크시의 '연인'이란 작품이다. 어쩌면 거리에 이런 그림이 낙서화로 그려지고 전시되는 것 자체를 폭력이라 부르고, 이런 그림이 그려진 담벼락의 건물 소유주는 당장이라도 감시카메라를 설치하고, 누군지 잡히기만 하면 혼쭐을 내리라 잔뜩 벼르고 있을 지도 모르지만 뱅크시의 작품으로 인해 그런 일들이 벌어졌다는 뉴스는 들려오지 않는다. 도리어 그 반대로 그의 작품은 세계 여러 나라 사람들에게 널리 사랑받고 있으며 그의 작품들을 흉내낸 작품들이 세계 도처에서 그려지고 있다.




디자인 서울이라는 웃기는 권위 의식
얼마 전부터 오세훈 서울 시장은 '디자인 서울'을 입버릇처럼 달고 다닌다. 그러나 우리는 그가 말하는 '디자인'이란 우리 일상의 풍경을 조금 더 아름답게, 편리하게, 여유롭게 만들어 주는, 시민이 생각하고 꿈꾸는 디자인과 개념의 온도 차이가 크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오세훈 서울 시장이 주장하는 '디자인'이란 서울 도심 한복판에 거대한 콘크리트 어항을 건설하고 그 공로로 대통령 자리까지 오르게 된 전임 시장의 업적을 계승하여 '나도 그 사람처럼 되고 싶다'는 욕망을 좀더 그럴싸하게 포장한 정책의 명칭일 뿐이다. 그가 말하는 디자인서울이란 '좀더 거창하고, 좀더 위대한, 좀더 세련된' 정책을 펼치고 싶다는 그의 공약을, 아니 그의 정치적 욕망을 대리하는 개념일 뿐이다. 우리가 오세훈 서울 시장의 '디자인 서울'이 이처럼 위대하고, 거창하지만 다른 한 편으로 속좁고, 자기 중심적이라고 판단하게 되는 근거는 그가 얼마 전 '해치맨 프로젝트'라는 몇몇 미술전공 학생들이 남긴 '디자인 서울'에 대한 풍자에 대해 보여준 너그럽지 못한 태도 때문이다.




해치맨이 공공디자인, 디자인 서울에 끼친 해악이 있다면 길 가던 시민들에게 서울의 숨겨진 진면목, 서울 시장이나 그의 수하 공무원들이 잊고 있던 공공미술의 진정성을 일깨워 준 것이며, 웃음을 잊고 살아가던 서울 시민들에게 일상의 소소한 즐거움을 선사한 정도일 것이다. 이 정도가 죄라면 서울시는 '디자인'을 입에 담을 자격조차 없다는 걸 자인한 셈이다.


 
유니폼이 가지고 있는 기능은 착용자에게 소속감, 동료 의식 및 단결심을 가지게 하며 대외적으로는 소속되어 있는 단체나 조직의 얼굴 역할을 한다. 유니폼이 착용자에게 이와 같은 기능과 의미를 할 때 유니폼을 입지 않은 일반인들은 우리가 아닌 저들로 소외되며, 억압적인 국가기구를 상징하는 유니폼은 그 자체로 하나의 권위가 된다. 그러나 뱅크시는 유니폼이 주는 권위를 조롱거리로 만들어 버린다. 토네이도에 휘말려 현대로 온 도로시는 거리에서 경찰에게 불심검문을 당하고, 그녀의 런치바구니는 검색의 대상이 된다. 과거 토네이도에 휘말려 오즈의 나라로 날아갔던 도로시를 막아 섰던 것이 마녀들이었다면 현대로 날아온 어린 소녀를 집으로 돌아가지 못하게 막는 존재들은 억압적인 국가기구인 경찰과 군대인 셈이다. 아마도 지금 이 순간 거리 어디에선가는 G20의 성공적인 개최를 위해 유니폼들이 길 가는 사람들을 막아서고 있을 것이다.


"WHAT ARE YOU LOOKING AT?"

"꽃"이란 작품은 도로의 규칙이자 질서를 의미하는 차선(Line)을 응용해 규율과 규범에 대해 도전하고 있는 자신을 형상화하고 있는 어찌보면 자화상이라 할 만한 작품이다. 대영박물관에 몰래 숨어 들어 자신의 작품을 전시하며 규율을 깨뜨리며 도전하고 있는 화가 뱅크시, 그가 이런 해프닝을 벌이고 다닌다고 해서 '국격(國格)'에 손상을 주었다는 죄목으로 수감되었다는 뉴스는 아직까지 어디에서도 들려오지 않는다. 아마도 영국을 비롯해 뱅크시의 습격을 받은 선진국들 중 어디도 그의 이런 작품행위가 자국의 국격에 손상을 준다고 여기지 않았던 모양이다. 넉넉한 인격을 갖춘 어른이 아이들의 재치 넘치는 장난을 눈감아 주듯, 천국과 지옥은 물론 연옥까지 탄생시켜 교회의 엄격한 윤리와 율법으로 중세를 지배했던 가톨릭 교회가 카니발을 통해 민중의 숨통을 틔워주었던 것처럼 통치의 정당성에 자신 있는 권력이라면 예술가들의 도전을 너그럽게 대하는 것이 당연하고 세련된 통치기법일 것이다. 



그렇다고 뱅크시의 풍자정신이나 문제의식이 그렇게 부드럽고, 유순한 것만은 아니다. 그의 불온한 의식은 미키마우스와 맥도날드의 손을 잡고 걷는 어린 베트남 소녀를 그린 "네이팜"을 통해 이렇게 말한다.


"이 세계의 거대한 범죄는 규율을 어기는 것이 아니라 규율을 따르는 것에 있다. 명령에 따라 폭탄을 투하하고 마을주민을 학살하는 사람이 곧 거대한 범죄를 저지르는 것이다."

미키마우스와 맥도날드는 미국을 상징하는 양대 아이콘이자 미국식 삶의 표본을 상징한다. 그러나 '제3세계로 미국식 삶이 이식되는 과정(아메리카나이제이션)'을 우리는 '평화'라고 부르지 않는다. 뱅크시는 단순한 낙서화가가 아니라 참여예술가이기도 하다. 그는 팔레스타인 등 억압이 존재하는 세계 여러 곳을 찾아다니며 그만의 방식으로 이에 항의하는 그래피티 작업들을 지속적으로 하고 있다. 어쩌면 그의 이런 방식은 실정법 상의 체계로 보자면 그 자체로 범죄의 형식을 구성하고 있는지도 모르겠으나 그가 공공시설물 혹은 민간시설에 낙서를 하는 행위가 범죄라면 세계 곳곳에 네이팜탄과 클러스터 폭탄을 떨어뜨리는 자들이야말로 인류에 대한 범죄자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예술은 힘 없는 자의 넋두리지만 짓밟힐 수록 그 목소리는 점점 더 커진다
얼룩말의 무늬를 빨아주는 '세탁'이란 작품을 보고 있노라면 나도 모르게 마음이 편안해지고, 선량해지는 기분이 든다. 아마도 그것이 뱅크시가 의도하고, 가고자 하는 방향이 아닐까 싶다.

뱅크시의 작품들 대부분은 결국 저(알타미라 벽화)와 같은 운명을 맞이하게 될 것이다. 이 책은 그와 같은 운명으로 소실될 운명에 처한 뱅크시의 작품들을 망실되기 전에 사진으로 기록한 일종의 작품집이다.



* 대한민국 국립경찰이 인정한 '이명박 대통령의 상징 = 쥐'
오늘 아침 일간지를 보니 국내에도 뱅크시 못지 않은 뛰어난 예술성과 풍자정신을 가진 예술가들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새삼 확인했다. 마치 뱅크시가 한국에 온 것이 아닌가 싶은 만큼 말이다.



사건의 개요는 간단하다. 20개국(G20) 정상회의를 알리고자 정부가 설치한 홍보 포스터에 낙서 그림을 그리던 40대 남성이 지나가던 시민에 의해 신고당하고,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에 의해 체포되었는데, 경찰이 과태료 정도 물리고 훈방하면 될 사안에 대해 "G20을 방해하려는 음모"라는 거창한 명분을 붙여 구속영장을 신청했으나 기각된 사건이다. 경찰이 특히 예민하게 굴었던 이유는 체포된 이들이 경찰조사에서 했다는 말을 통해 반증되고 있다.

체포된 이들은 경찰조사에서 “단지 G20의 ‘G’라서 쥐를 그린 것일 뿐”이라면서 “정부가 G20에 매몰된 상황을 유머스럽게 표현하려 한 것인데, 이 정도 유머도 용납이 안되느냐”고 말했다는데, 체포된 이들이 이렇게 변명하듯 말해야 했다는 것도 우습지만, 사실 이 사건 자체가 코미디인 것은 정부가 G20 홍보를 위해 설치한 코엑스 주변의 각종 옥외 홍보물은 옥외광물법상 불법임에도 불구하고 강남구청이 정부가 설치한 것이라 단속할 수 없다고 하는 뉴스가 나온지 불과 2~3일도 안 되어 터진 사건이라는 것이다. 


아무리 신출귀몰하는 뱅크시가 한국에 온다고 해도 그가 쉽게 작업하긴 여러모로 어려울 것 같다. 일단 신고정신이 투철한 시민(이런 건 주인의식이 아니라 관변의식이라고 부른다)이 계시고, 이를 절대로 용납해줄 마음의 여유가 없는 정부가 있으니 말이다. 하지만 바로 그런 이유에서 점점 더 뱅크시적인 반항들, 익명의 가면 뒤에 숨어서 표출하는 저항들이 점점 더 커져가고 있는 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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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바람구두 windsho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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