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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1.01.04 100만 원 짜리 다섯 뭉치는 누가 포장했을까?


사소한 일에 목숨을 걸어야 할까?


살다보면 주변 사람들에게 종종 “사소한 일에 목숨 걸지 말라”는 농담 섞인 충고를 많이 받게 됩니다. 저도 간혹 신참들에게 이런 말을 한 적이 있습니다. 그리고 혹시 “동네 무당에겐 영험이 없다는 말을 들어보신 적도 있을 겁니다. 나사렛에서 태어나고 자란 예수는 갈릴리 호수에서 시작한 수많은 기적들을 통해 전 이스라엘에 그의 이름이 알려집니다. 하지만 명성을 얻은 뒤 찾아간 고향 마을 나사렛에서 그는 뜻밖에 냉담한 반응을 겪습니다. 자신이 어린 시절을 보낸 고향 마을 사람들은 "저게 누구야? 목수 요셉의 장남 예수가 아닌가?"라며 예수를 별로 신뢰하지 않았고, 도리어 갖은 모욕과 조롱을 쏟아댑니다. 이런 일을 겪은 뒤, 예수는 “예언자들은 자신의 고향에서 배척 받는다”고 말했습니다. 영험이 있다고 소문난 무당이나 나사렛 마을에서 자란 예수 그리고 교회에선 신자들에게 존경받는 목사님들도 집에 가서는 사모님들에게 타박을 받는다고 하지요. 아마도 같은 맥락이겠죠. 친숙하다는 건 그만큼 흔한 것이어서 귀한 대접을 받기 어려운 모양입니다. 우리의 일상도 마찬가지인 듯 싶습니다.

자기기만과 자기 합리화

요즘 도스토예프스키는 러시아 민족주의를 부추긴 작가, 러시아 차르 체제에 저항하다가 나중에 친 차르적인 인물로 표변한 작가란 이유로 비판받곤 합니다. 저도 비슷한 입장에서 도스토예프스키를 비판하지만, 반대로 문학적인 입장에서는 여전히 그를 위대한 작가로 생각하는 편입니다. 그 이유는 도스토예프스키의 작품을 통해 드러난 정치적 입장이나 사상에 동조하기 때문이 아니라 그가 인간 영혼의 심연을 잔인하리만치 냉정하게 파헤쳤던 작가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잘 알려진 대로 러시아의 통치자인 차르는 전근대적인 차르의 봉건체제에 저항하는 지식인과 예술가들을 시베리아로 유배하거나 사형에 처했습니다. 간혹 자비로운 사면을 베풀기도 했는데, 총살 직전에 차르의 특명으로 사면시켜주는 기만술을 펼쳤다고 합니다. 도스토예프스키 역시 그런 방식으로 목숨을 건졌다고 합니다. 아마도 이 순간 지식인으로서 도스토예프스키의 생명은 끝났지만, 작가로서 도스토예프스키는 새로운 생명을 부여받았던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인간의 운명이란 때로 이토록 잔인한 것이겠지요. 도스토예프스키가 만약 사형대 위에서 죽었다면 그 자신은 양심대로 살았겠지만, 아무도 그의 이름을 기억하지 못했을 겁니다. 비록 그는 살아남은 뒤 친(親)차르적인 작가로 거듭나지만 동시에 한 명의 작가로서 인간의 내면에 잠재해 있는 이기주의와 폭력성, 기회주의와 자기기만(합리화)에 대해 얼음장처럼 차가운 시선으로 깊이 있게 그려내기 시작합니다. 시인 황인숙은 <나를 믿지 마세요>란 시에서 “믿지 마세요./ 당신이 믿음을 저버리고, 들킨 적이/ 단 한 번이라도 있는 사람을.”라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한 번이라도 자신의 믿음과 신념을, 아니 사소하게라도 친구나 애인을 배신해본 적이 있는 사람이라면 알 겁니다. 사실 가장 믿을 수 없는 자는 바로 나 자신이라는 것을 말이지요. 마찬가지 이유로 그 사람이 배신한, 가장 큰 존재는 바로 자기 자신일 겁니다. 배신자가 배신하는 것은 타인과의 믿음이나 신뢰, 다시 말해 타인과의 ‘관계’만을 파괴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스스로에게 보내는 믿음과 신뢰의 ‘관계’ 역시 파괴하게 됩니다.


오로지 인간만이 자신의 삶에 의미를 부여하고, 그 의미를 통해 생(生)의 의지를 다집니다. 예수가 인간은 빵만으로 살지 않는다고 했던 이유, 황야의 돌멩이 하나에도 의미가 깃들었다고 말하는 이유가 거기 있겠지요. 인간만이 자신이 존재하는 이유에 대해 스스로 의미를 부여하고, 그 의미망에 기대어 삶을 조직해 나갑니다. 저는 그 과정을 ‘자기합리화’라고 부릅니다. 그러나 한 번이라도,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든, 조직의 이익을 위해서든 자신의 양심을 속이는 기만행위에 참여해 본 사람은 그 행위로 인해 파괴된 의미망(존재의 의미)을 재구축하기 위해 - 다시 말해 생존하기 위해 자신을 기만했던 자는 - 다시 한 번 자신을 기만해야만 살아갈 수 있습니다. 지난 반세기 악명 높은 사상전향공작이 감옥에서 자행되었던 이유가 무엇이었을까요? 단 한 번만 반성문을 쓰면, 사상전향서를 작성하면 풀려날 수 있었던 사람들이 갖은 고문과 수난에도 불구하고, 개인이 품었던 사상을 지키기 위해 목숨을 걸었던 이유가 무엇이었을까요? 그건 아마도 자기 자신을 온전히 지키고 싶었기 때문일 겁니다. 


개똥같은 일상이 당신을 지배한다

거짓말이 거짓말을 낳는다거나 작은 거짓말이 눈덩이처럼 커지는 이유는 달리는 호랑이 등에 올라탄 이상 떨어질 수 없기 때문인 거죠. 과거 80년대 나름대로 양심적인 지식인, 운동가들이 어느 날 갑자기 태도를 바꾼 이유는 거듭되는 절망 때문이기도 했겠으나 보다 근본적인 이유는 거기에 있었을 거라고 추측합니다. 제가 도스토예프스키를 위대한 작가로 기억하는 이유도 사실 거기에 있습니다. 그는 스스로를 기만하는 자신을 냉정하게 살폈습니다. 마치 실험대 위에 놓인 개구리처럼 자신을 관찰하고, 관계를 살피고, 그것을 소설로 남겼습니다. 『까라마조프가의 형제』에서 그는 ‘세상을 위해 순교할 수는 있어도 냄새나는 한 인간과 같은 방 안에서 공존하는 것을 참을 수 없는 존재’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사형대 위에서 구차하게 목숨을 구명하지 않고 순교하는 일은 가능해도 매일 같이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 우리는 매순간 '현실 적응'이라는 미명 아래, 사소한 일이기 때문에 상관없다는 이유로 양심과 신념의 배반을 강요받습니다.

“개똥도 약에 쓰려면 없다”고 할 때의 ‘개똥’이 바로 우리의 일상입니다. 사소하고, 흔해빠졌기 때문에 아무 의미 없는 것 같지만 막상 그 평온한 일상이 깨졌을 때 우리는 일상의 행복이 얼마나 유지되기 어려운 것인지 알게 됩니다. '행복'이란 그 상태가 지속되길 바라는 상황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일상의 행복은 얼마나 연약한 것인가요? 일상의 행복은 와인 잔보다도 약한 것이라 우리는 매일매일 수많은 상황 속에서 갈등하며 살아갑니다. 예를 들어 손님이 왔을 때 여직원에게 부탁하는 커피 한 잔, 아무도 보지 않는 주차장에서 남의 차를 슬쩍 건드렸을 때, 상사가 업무 외에 부탁하는 지시를 들어줘야 할지 말아야 할지 같은 일들 말입니다. 그처럼 소소한 부딪침으로 일상은 불편해지곤 합니다. 어떤 이는 우리가 살고 있는 ‘오늘’은 어제의 누군가가 그토록 갈망하던 ‘내일’이라고 말합니다. 인생을 마라톤에 비유하는 까닭도 그것이겠지요.

하지만 때로 그 평범한 일상이 역사의 한 순간이 되고, 개인의 사소한 선택에 대해 역사가 책임을 묻는 순간이 있습니다. 군대를 경험해본 분들은 아시겠지만 경계 활동, 보초 서는 일은 누구에게나 반복되는 지겨운 일상입니다. 예를 들어 베를린 장벽을 지키던 동독 병사에게도 그 하루하루는 지겨운 일상이었을 테죠. 어느 날 동베를린에 살던 한 사람이 갑자기 장벽을 넘어 서베를린으로 탈주하려 들었던 순간이 하필이면 그 병사가 보초를 서던 날만 아니었다면 말입니다. 서베를린으로 탈주하는 시민에게 사격을 가해서라도 저지하라는 것이 병사에겐 거부할 수 없는 명령이고, 일상이었을 겁니다. 어쩌면 그 탈주자로 인해 병사는 일상의 평온을 방해받았다고 느낄 수도 있을 겁니다. 이른바 제2차 세계대전의 전야에 독일에서 자행되었던 유대인 박해, 수정의 밤 이후 독일 내에서 유대인들이 박해받는 것 역시 일상이었습니다. 수많은 유대인들이 영혼이 없는 공무원 역할을 수행했던 합리적인 제도의 뒷받침을 받아 숨쉬기도 어려울 만큼 빼곡하게 들어선 동포들과 함께 다카우와 아우슈비츠로 실려 보내졌습니다. 그곳에서 죽일 사람과 살릴 사람을 선별하는 일도 그곳의 병사들에겐 수많은 진부한 일상 가운데 하루였을 겁니다.

악은 진부하지만 일상을 통해 우리를 지배할 수 있다

아이히만 재판을 보고난 뒤 한나 아렌트는 “악의 진부함, 악의 평범함에 놀랐다”고 했던 것을 기억하실 겁니다. 이 말은 사실 악이 우리 주변에 개똥처럼 흔하게 널려있다는 말입니다. 세계평화와 인권을 노래했던 밥 말리는 거리 콘서트를 앞둔 어느날 밤 괴한의 침입으로 목숨을 위협받았습니다. 다들 그가 공연을 취소할 것이라고 예상했지만 밥 말리는 공연을 강행했습니다. 사람들이 그에게 물었습니다. "어째서 공연을 포기하지 않습니까?" 그러자 밥 말리는 이렇게 답했다고 합니다. "악은 밤낮을 가리지 않고, 쉬지 않고 번성하는데, 내가 어떻게 쉴 수 있겠습니까?" 김용철 변호사의 내부고발에 대해, 그 진정성이 무엇일까 의심하는, 의심할 수밖에 없는 것도 우리들에겐 필요악일 수 있고, 심심 파적삼아 화제로 올릴 수 있겠지요. 하지만 그보다 앞서 우리는 이런 생각을 먼저 해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신문에서, 혹은 방송을 통해 특검에 호출 받아 나가는 중역들을 바라보면서 저는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저 사람들 밑에도 역시 부장이 있을 테고, 그보다 많은 과장들이 있을 테고, 또 그들 밑에는 더 많은 대리가, 주임이 평직원이 있겠지. 과연 이용철 전 청와대 비서관에게 500만 원 짜리 다섯 뭉치를 묶고 포장하는 일은 누가 했을까? 설마 그날 포토라인 앞에 카메라 세례를 받은 높은 분들이 로비하려고 필요하니 100만원 뭉치 다섯을 종이박스에 넣고 포장하라고 아랫사람에게 시켰을까? 그 같은 허드렛일을 본인이 직접 했을 리는 없고, 누군가 아래 직원을 시켰을 텐데 그 사람은 지금 무슨 생각이 들까 하는 그런 상상이 들었습니다. 그 직원은 김용철 변호사의 내부 고발을 어떻게 받아들였고, 또 어떻게 이해하고 있을까?를 생각해봤습니다.

김용철 변호사는 이종찬 대통령민정수석비서관이 지난 2000년에서 2002년 삼성그룹의 관리대상자 명단에 포함됐다고 주장했습니다. 또 2000년 여름에는 이 수석이 삼성본관빌딩의 이학수 당시 구조조정본부장 사무실을 방문해 휴가비를 직접 받아갔다는 의혹까지 제기했습니다. 하지만 김용철 변호사가 자기만 본 것이 아니라 함께 보았다고 말한 다른 직원들 가운데 누구도 “그런 사실을 목격한 일이 일절 없다”고 특검에서 진술했다고 합니다. 김용철 변호사와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이 누군가를 악의적으로 모함하려고 한 것이 아니라면 이 진술과 관련해 누군가는 거짓말을 하고 있는 것이겠지요. 저는 누가 진실을 말하고 있는지 입증할 수 있는 방법도, 수단도 없는 사람입니다만, 이번 특검 결과를 지켜보면서 김용철 변호사에 대한 특검의 입장이 진실규명에 있는 것이 아니란 생각이 들어 서글펐습니다.

특검 발표를 보니 이번 수사를 시작하게 만든 김용철 변호사의 주장이 신빙성이 없다거나 증언에 일관성이 없다는 등의 이야기를 무려 아홉 차례에 걸쳐 했던데 그렇게 강변해야했던 이유가 무엇일지 궁금합니다. BBK시와 마찬가지로 '김경준' 씨처럼? 자신을 비호하기 위해서? 그 자신에게 무슨 이득이 있다고 김용철 변호사는 왜 구속될 것도 각오하고, 배신자라는 낙인을 받아가며 나섰던 것일까? 그야말로 튀고 싶은 '또라이'였나? 그것이 아니라면 사실 조준웅 특검 자신이 삼성을 수사하고 싶지 않았던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특검이 발동하게 된 계기는 김용철 변호사와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의 삼성이 정관계에 전방위적으로 로비를 해왔다는 의혹을 제기했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용철 변호사와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 측에서 삼성의 로비 대상자로 지목했던 사람 중 단 한 명도 특검은 소환해 조사하지 않았습니다. 단지 한 장의 진술서를 받은 것으로 특검의 발단이 되었던 로비 의혹에 대해서는 모두 무혐의 처리를 내리고, 검찰의 추가수사 가능성 마저 막아선 꼴이 되었습니다. 대신에 삼성의 불법 경영권 승계 과정에 대해서는 이미 시효가 지나 법적으론 아무 책임도 물을 수 없도록 합리화시켜주고, 정당화시켜준 결과만 내준 꼴이 되었지요.

정신적 불구를 강요하는 사회 - 세상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우리는 일상에서 매일 같이 마주치게 되는 부당한 지시, 내가 스스로 판단하고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얼굴을 대면하고 항의할 수도 없는, 마치 카프카의 소설 "성(城)"에 나오는 "K"처럼 저항해야 할 상대를 알지도 못한 채 종이박스 100만 원 짜리 다섯 뭉치를 챙겨넣은 것은 아닐까요. 이번 사건은 좀더 윗선의 명령과 의도라는 모호한 배경을 깔고 다가오는 비리의 연쇄사슬 속에서 가장 하부 구조의 피라미처럼 연루되어가는 우리들 자신을 다시 한 번 생각해볼 기회라고 생각합니다.

그냥 평범하게 직장생활을 하고 있는 나에게 내려온 명령과 지시에 불복종하는 일은 과연 사소한 일일까요? 어떤 사람들이 김용철 변호사가 삼성그룹의 막대한 임금을 받았으면서 이제 와서 삼성을 배신한 것이라고 말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저는 그 분들에게 묻고 싶더군요. 과연 배신이란 무엇인지? 자기 자신의 양심을 속이는 것이 배신인지 아니면 잘못된 관행이나 비리조차도 마치 야쿠자나 조폭의 의리처럼 한 번 보스(boss)로 모셨으니 끝까지 그의 잘못을 덮어주는 것을 의리라고 부르자는 말인지 묻고 싶었습니다.

얼마전 진행된 ㄷ그룹 공채에서 ㅎ(27)씨는 6명이 함께 들어간 면접에서 ‘김용철 변호사에 대한 소견을 말하라’는 면접관의 질문을 받고 “회사가 더 발전하려면 김 변호사처럼 발설하고 제대로 치료를 해야 할 것 같다”고 말한 뒤 더 이상 면접관들로부터 질문을 받지 못했다. ㅎ씨는 “면접이 끝날 무렵 ‘원래 지원부서 말고 다른 부서에서 일을 할 수 있겠느냐’고 물어 ‘네’라고 대답했는데도 결국 떨어졌다”고 말했다.

82만여명이 가입한 인터넷 취업카페 ‘취업뽀개기’(cafe.daum.net/breakjob)에도 “면접에서 김용철 변호사의 행동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질문을 받고 김용철 변호사 옹호했어요. 당연히 떨어지겠죠?”(아이디 제우스호), “삼성 자회사 면접을 봤는데 최근 신문에서 읽은 내용을 얘기하래서 김용철 변호사가 생각나 얘기했는데 정적만 흘렀어요. 어쩌죠?”(아이디 힘내자앙) 등의 글이 올라와 있다.

청년실업이 중대한 사회문제로 부각되는 시대입니다. 취업재수니, 취업고시니 하는 말이 실감나는 이 시대에 대기업은 신입사원 최종면접 시험에서 김용철 변호사에 대해 질문한 뒤 김 변호사를 두둔한 지원자는 모두 탈락시켰다는 증언이 있었다는 기사를 읽었습니다. 김용철 변호사를 배신자라고 부른 사람들만을 합격시켰다는 것은 사회, 공동체에 대한 의리를 대신하여 조직의 의리를 우선하는 사람들을 선발하겠다는 것이겠지요. 그것은 그간 기업들이 주장해왔던 글로벌 스탠더드니, 세계화 시대를 이끌어가는 창의적 인재라는 것이 사실은 자기기만을 일상적으로 범할 수 있는 ‘정신적 불구’를 원하는 것이 아니냔 의심이 듭니다. 어쩌면 과거 도스토예프스키처럼 오늘의 젊은이들도 취업전선이란 사형대 위에서 과거와 마찬가지로 자신의 양심을 기만하라고 강요받고 있는 건 아닐까요? 그래서 비슷한 시대를 살았던 푸시킨은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슬퍼하거나 노여워 말라”고 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이제 삼성 특검 결과 발표를 바라보면서 우리는 세상이 우리를 속일지라도 나 스스로를 속이는 일은 하지 말자고 당부해 봅니다.

'정신적 불구'를 거부하지 못하도록 하기 위해 우리는 사소한 일에 목숨 걸지 말라는 충고를 자주 듣게 되는 모양입니다. 일상은 혁명이 움트는 곳이자 혁명이 소멸하는 공간이기도 합니다. 당신의 일상을 무엇으로 재구축하느냐에 따라 당신의 삶도 달라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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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바람구두 windsho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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