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법 침대(The Magic Bed) - 존 버닝햄 지음 | 이상희 옮김 | 시공주니어(2003)



개인적으로 존 버닝햄(John Burningham)의 작품 가운데에는 교육에 대한 신랄한 풍자가 녹아있는 "지각대장 존"을 가장 좋아한다. 탈민족주의를 외치는 시대 조류에 부응하지는 못할 망정 헛소리로 비칠 수도 있는 이야기 한 마디해보자. 민족을 '상상의 공동체'라고까지 하지만 같은 지역, 같은 환경, 같은 습속, 같은 문화(이때 같다는 건 절대적인 동일함을의미하진 않는다)를 공유한 이들끼리 비슷한 기질을 보이는 것을 부정할 수는 없다. 나는 개인적으로 영국식의 신랄한 풍자를 상당히 좋아하는 편이다. 예를 들어 조나단 스위프트 식의 그런 풍자 말이다.


존 버닝햄의
"지각대장 존" 역시 나는 그런 영국식 유머로 받아들였는데, 그가 이런 그림책을 써낸 배경에는 그 자신이 영국의 대안학교인 서머힐스쿨 출신이란 점도 적지 않게 작용한 듯 싶다. 우리 화가인 이중섭의 경우에도 그에게 평생을 두고 중요한 요인으로 작용한 것이 그가 오산학교 출신이란 교육 체험이 컸다고들 하는데, 버닝햄이 비록 "지각대장 존"에서 교육에 대해 신랄한 풍자를 가하긴 했으나 자기 자신은 서머힐의 교육 방식에서 비롯된 혜택을 본 수혜자이기도 하다. 인간이 만들어낸 교육이 인간에게 이토록 깊은 영향을 미치는데, 하물며 매일 들이쉬고, 내쉬며 살아온 대기와 흙, 물과 햇빛은 인간에게 얼마나 깊은 영향을 줄까.


본래 영국엔 수많은 요정들이 살고 있었다. 영국의 기후와 풍토가 수많은 요정들과 함께 살 수밖에 없는 환경을 만들어내기도 했다. 대륙과 바다로 단절된 섬이고, 사방에 많은 숲과 습지, 깊은 안개와 잦은 비가 영국에 많은 요정들이 살 수 있도록 해주었다. 그래서 영국의 여러 지방엔 그들 나름의 많은 요정 이야기가 산재해 있다. 그런 영국에서 요정이 사라지게 된 것은 대중교육이 일반화되면서부터였다. 즉, 아이들이 할머니, 할아버지와 함께 비가 부슬부슬 내리는 티 타임 시간에 마을 인근의 숲이나 습지에 살고 있는 재미난 요정 이야기를 듣는 대신, 선생님이 엄격하게 훈육하는 초등학교로 보내진 뒤부터 영국의 요정들은 점점 일반 사람들의 눈에는 보이지 않게 되었다.


갑자기 무슨 소리인가 싶을 수 있겠다. 한 마디로 축약해보면 산업 문명과 요정들은 함께 동거할 수 없다는 말이다. 아이들이 크리스마스의 산타클로스를 몇 살 때까지 믿을까? 매년 성탄 시즌이면 TV에서 방영해주는 성탄절 특집 할리우드 영화들이 도리어 아이들의 머리속에서 산타클로스를 몰아내고 있는지도 모른다. 문명화 과정을 거치며 우리의 산야에서도 우리와 함께 머물던 수많은 귀신
(왜 귀신이라고 말하면 어쩐지 싫고, 요정이라고 말하면 괜찮은가?)들도 함께 사라져버렸다.


"이디오진크라지(idyosynkraise)"
란 말이 있다. 고도로 문명화된 현대인에게도 유일하게 남아있는 원시적이고 동물적인 반응 형식을 일컫는 말인데, 예를 들어 말미잘의 촉수 같은 무조건 반응을 말한다. 이디오진크라지는 인간을 순식간에 생물학적인 원초 상태로 만든다. 예를 들어 어떤 광경이나 상태에 처했을 때 자신도 모르게 머리카락이 곤두서거나 심장이 급하게 뛰고, 사지가 경직되는 것과 같이 일순간 신체 부분들이 주변 세계에 동화되는 현상이다.


아도르노는
"계몽의 변증법"에서 근대의 계몽을 통해 새로운 방식의 사회적 삶이 새로운 종교나 사고 방식에 공간을 내어줄 때, 보통 옛 신들도 함께 내던져진다고 말한다. 예전에 사랑받던 습관이나 신성한 행동이나 경배 대상들은 가증스러운 비행이나 공포스러운 유령으로 변질된다. 이는 인류의 폭력적 진보가 만들어낸 상흔들이다. 다신교는 일신교로, 옛 신화는 계몽된 신화로, 위대한 대지모신은 여호와(분명히 남성적인)로, 토템에 대한 경배는 그리스도에 대한 경배로 변화된다. 모든 신화를 해체되고, 예전의 터부들은 미신이 된다. 교육은 아이들의 계몽과정, 문명화 과정이다.


존 버닝햄의
"마법 침대(The Magic Bed)"의 첫 장면은 의미심장하다. 조지는 자신의 작은 침대 - 아이들이 잠결에 떨어지지 않도록 사방에 난간을 댄 - 를 잡고 일어나 있다. 테디 베어 인형이 이불에 반쯤 묻혀있고, 침대 밑엔 아이용으로 만들어진 작은 변기가 놓여 있다. 할머니와 어머니가 어린 조지에게 말한다.


"조지야, 이 침대는 이제 너한테 작아. 아빠랑 쇼핑센터에 가서 새 침대 좀 사오라니까?"


머리가 훤하게 벗겨진 아버지는 안경을 쓰고, 방금 화장실이라도 다녀왔는지 신문을 반으로 접어 들고 할머니와 어머니 그리고 조지 사이의 대화를 방관자처럼 듣는 포즈다.






이제 조지는 더이상 어린 아기가 아니라 한 명의 어린이가 되어가는 중이다. 그렇기에 조지에겐 새 침대가 필요했다. 조지와 아버지는 쇼핑센터 가는 길에 중고가구점을 발견하고, 가게 주인이 말한 마법침대를 구입하게 된다. 농경민족의 마법 도구는 산신령이나 도깨비가 흘린 물건을 우연히 줍거나 연못에 빠뜨린 도끼를 줍는 것처럼 신령에게 우연히 받는 것고, 아랍 유목 민족의 마법 도구는 알라딘처럼 바자(시장)에서 우연히 구매하는 것이다. 산업화되고 도시화된 영국에서 마법 도구는 이처럼 쇼핑센터 가는 길에 우연히 들른 중고가구점에서 구매하게 된다는 차이가 있다. 이처럼 우리 주변에서 마법을 일으킬 도구들은 산재해 있다. 당신이 믿어주기만 한다면 말이다.


조지와 아빠는 침대를 가져와 깨끗하게 닦아내다가 마법의 주문을 발견한다.
"엄"으로 시작하는 다섯 글자를 읽으면 되는데, 뒤에 있는 글자들은 지워졌는지 보이지 않는다. 비록, 마법이라도 본인의 정성이 깃들지 않는다면 효험을 잃는다는 건, 신화와 전설의 서사구조에 흔히 있는 난관이다. 조지는 설레는 마음으로 어서 밤이 오길 기다린다. 첫날 밤 조지는 "엄"으로 시작하는 마법 주문을 발견해내기 위해 노력했지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고, 조지는 그냥 잠들었다. 하지만 조지는 그냥 포기하지 않았다. 이 말은 조지가 마법을 믿었다는 거다. 믿지 않는 자에겐 어떤 마법도 효험이 없는 법이다.


드디어 조지는 마법의 주문을 찾아냈고, 그 덕분에 도시 위를 날고, 들판에서 난쟁이들과 요정들을 만날 수 있었다. 조지는 밀림에도 가고, 그곳에서 아기 호랑이를 만나 부모를 찾아주고, 동굴 속에서 보물이 가득찬 상자를 발견하기도 한다. 조지는 돌고래를 만나기도 하고
(버닝햄은 위트있게 돌고래를 만났기 때문에 조지의 침대에 젖어있다고 말해준다), 빗자루를 탄 마녀들과 빨리 날아가기 시합도 벌인다. 조지와 가족이 휴가를 떠난 사이 할머니는 조지의 마법 침대를 버리고, 새침대를 들여놓았다. 조지는 잽싸게 쓰레기통에 실려있는 마법 침대를 따라 달려가 마법의 주문을 외워 마법 침대를 구출해내고, 마법 침대에 올라타고 하늘로 올라간다. 버닝햄은 마지막에 이렇게 말한다.




"여러분도 지금 침대에 누워, 그 침대의 주문을 알아 내 보세요. 조지처럼 멀리멀리 여행을 떠날 수 있을 거예요."


어떤 이는 버닝햄의 이런 마무리 보다는 조지가 침대를 타고 집으로 돌아온다는 결말을 내려주었으면 좋았을 뻔 했다고 이야기한다. 아마, 부모의 마음으로는 그것이 좀더 교훈적이고, 해피엔딩에 가까우리라 생각을 했을 법하다. 독실한 크리스찬으로 조지가 마녀들과 시합을 벌인 것이 이단적이란 생각을 할 수도 있겠다. 근대의 계몽
- 산업화, 근대화, 도시화, 과학화로 일컬어지는 -  근대화는 우리에게 많은 물질적 혜택을 주었다. 그런데 우리들은 어째서 무언가를 잃은 듯한 상실감에 젖게 되는 걸까? 어째서 무언가 순수한 세계를 잃어버린 기분이 드는 걸까? 그건 아마도 우리 안에 잠재되어 있는 순진무구한 영혼, 자연에 깃들어 있을지도 모르는 또 하나의 신성(神性)을 우리들 자신이 살해해버린 탓은 아닐까? 우리가 지각할 수 있는 것만 존재하며, 우리가 인식할 수 있는 것만 실재한다고 믿는 동안 어쩌면 우리는 우리가 발견할 수 있는 더 많은 세계의 무언가를 잊고 있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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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바람구두 windsho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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