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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1.01.27 손택수 - 꽃단추
  2. 2010.12.03 손택수 - 아버지의 등을 밀며

꽃단추

- 손택수


내가 반하는 것들은 대개 단추가 많다
꼭꼭 채운 단추는 풀어보고 싶어지고
과하게 풀어진 단추는 다시
얌전하게 채워주고 싶어진다
참을성이 부족해서
난폭하게 질주하는 지퍼는 질색
감질이 나면 좀 어떤가
단추를 풀고 채우는 시간을 기다릴 줄 안다는 건
낮과 밤 사이에,
해와 달을
금단추 은단추처럼 달아줄 줄 안다는 것

무덤가에 찬바람 든다고, 꽃이 핀다
용케 제 구멍 위로 쑤욱 고개를 내민 민들레
지상과 지하, 틈이 벌어지지 않게
흔들리는 실뿌리 야무지게 채워놓았다

<출처> 손택수, 『창작과비평』, 2009년 봄호(통권 143호)

*



시(詩)는 어째서 행과 연을 구분하는 것일까? 그 이유를 한 마디로 말하자면 리듬(律) 때문이다. 그럼, 시에서 리듬이 왜 중요한가? 그건 시가 본래 노래였기 때문이다. 행갈이 하나가 시의 폭발력과 긴장을 좌우한다. 읽는 사람의 입장에서 현대시는 대체로 내재율(內在律)이기 때문에 또 시를 읽을 때 요즘 사람들은 소리 내어 읽기 보다는 속으로 읽는 묵독(黙讀)을 주로 하기에 시의 리듬을 맛보기가 쉽지 않아서 그렇지 시는 소리 내어 낭송(朗誦)해봐야 그 본래의 맛을 알 수 있다. 김지하의 「오적(五賊)」이 문학적으로도 위대한 작품으로 살아남은 까닭은 단지 촌철살인(寸鐵殺人)하는 풍자의 맛이나 시대적 조건이 맞아떨어진 뿐만 아니라 이 시가 우리 전래의 판소리 리듬을 문학적으로 계승한 시였기 때문이다. 김지하의 「오적(五賊)」을 소리내어 읽어보면 낭창낭창하게 감기면서 깐족거리는 맛이 판소리의 리듬뿐만 아니라 정신까지 계승하고 있음을 느낄 수 있다.


행갈이는 그렇다 쳐도 연갈이는 문제가 좀더 복잡하다. 이형기는 “의미(내용)와 소리(형식)의 유기적 결합이 운율의 핵심”이라고 말하기도 했는데 같은 맥락에서 행갈이 보다 더 큰 구분이 연이다. 그러나 연 구분은 아무래도 단락의 의미가 더 크기 마련이다. 낭송보다 묵독이 일반화된 이후 시인들은 음악적인 측면보다는 회화성을 확보하는 일에 우선적으로 매달리게 되었다. 우리가 흔히 시란 이미지(image)라고 배우는 바로 그것 말이다. 자신이 말하고자 하는 주제나 소재와 같은 내용을 어떻게 시적으로 형상화할 것인지 고민하다보면 리듬에 대해 배려한다는 것은 더욱더 어려워진다. 그래서 시의 리듬은 재즈 뮤지션의 그것처럼 타고나는 것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손택수 시인의 「꽃단추」를 읽다가 갑자기 「오적」에서 재즈 뮤지션의 리듬 타령까지 흘러간 이유는 내 보기에 이 시는 한 편이 아니라 두 편의 시이기 때문이다. 하나의 시적 정황만으로 한 편의 시가 되기도 하고, 여러 개의 시적 정황들이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한 편의 시가 되기도 한다. 그런데 이 시 「꽃단추」는 두 개의 시적 정황이 참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게 연결되어 있다는 느낌이다. 해와 달, 금단추와 은단추의 시적 정황과 민들레 꽃단추라는 시적 정황이 민들레의 “흔들리는 실뿌리”처럼 야무지게 두 개의 각기 다른 시적 정황을 연결해주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읽지 않는 이도 있겠지만 내 눈엔 그리 보인다. 아쉽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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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바람구두 windshoes

아버지의 등을 밀며


- 손택수


아버지는 단 한 번도 아들을 데리고 목욕탕엘 가지 않았다
여덟살 무렵까지 나는 할 수 없이
누이들과 함께 어머니 손을 잡고 여탕엘 들어가야 했다
누가 물으면 어머니가 미리 일러준 대로
다섯 살이라고 거짓말을 하곤 했는데
언젠가 한번은 입속에 준비해둔 다섯살 대신
일곱 살이 튀어나와 곤욕을 치르기도 하였다
나이보다 실하게 여물었구나, 누가 고추를 만지기라도 하면
잔뜩 성이 나서 물속으로 텀벙 뛰어들던 목욕탕
어머니를 따라갈 수 없으리만치 커버린 뒤론
함께 와서 서로 등을 밀어주는 부자들을
은근히 부러운 눈으로 바라보곤 하였다
그때마다 혼자서 원망했고, 좀더 철이 들어서는
돈이 무서워서 목욕탕도 가지 않는 걸 거라고
아무렇게나 함부로 비난했던 아버지
등짝에 살이 시커멓게 죽은 지게자국을 본 건
당신이 쓰러지고 난 뒤의 일이다
의식을 잃고 쓰러져 병원까지 실려온 뒤의 일이다
그렇게 밀어드리고 싶었지만, 부끄러워서 차마
자식에게도 보여줄 수 없었던 등
해 지면 달 지고, 달 지면 해를 지고 걸어온 길 끝
적막하디적막한 등짝에 낙인처럼 찍혀 지워지지 않는 지게자국
아버지는 병원 욕실에 업혀 들어와서야 비로소
자식의 소원 하나를 들어주신 것이었다


손택수, 호랑이 발자국, 2007, 창비


*


얼마 전 문화대통령 서태지가 돌아왔다. 방송 인터뷰를 보니 만약 자신이 평범한 사람으로 돌아간다면 ‘북공고 1학년 1반 25번 정현철’로서 아버지와 대중목욕탕에 가는 것이 바람이라며 이야기하는 것을 보았다. 평범의 기준이 어디에 있는지도 알 수 없고, 못지않게 얼굴이 알려진 다른 연예인들 중엔 대중의 시선에 아랑곳하지 않고 대중목욕탕을 이용하는 이도 있으리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중목욕탕은 인터넷과 흡사한 구석이 있다. 나는 그를 모르지만 그는 나를 알 수 있는 상황에서 익명(匿名)의 욕탕 앞에서 옷을 훌훌 벗는다.


익명이란 존재하지 않기에 익명이 아니라 인식되지 않기에 익명이다. 마치 우리가 카페에서 이야기를 나눌 때 옆에 사람들이 있음에도 그 사람들이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대화를 나눌 수 있는 것처럼, 익명 속의 사람들은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존재하지 않는 존재로 치부되는 것이다. 익명(匿名)과 유명(有名) 사이의 하중이 바로 존재의 무게이다.


그런데 평범하기 그지없는 어떤 이들 가운데도 아버지와 함께 목욕탕에 가는 것이 바람인 사람들이 있다. 시인 손택수가 그럴지도 모르겠다. 아버지와 함께 목욕탕에 가는 유년(幼年)이 누군가에게는 별스럽지 않은 평범한 일일지 몰라도 그렇게 할 수 없었던 시인에겐, 그리하여 아버지 대신 어머니와 누이를 따라 목욕탕엘 가야 했던 시인에게 목욕하는 일은 어느 정도의 굴욕을 감수해야 하는 일이었다.


아버지와 목욕탕에 가는 평범한 일을 평범하지 않은 것으로 가로막은 것은 아버지 “등짝에 살이 시커멓게 죽은 지게자국” 때문이다. 아들에게만은 누구 못지않게 유명한, 그리하여 존재의 무게가 시커멓게 죽은 살처럼 묵직한 아버지는 아들에게만은 그 자국을 보여주고 싶지 않았다. “해 지면 달 지고, 달 지면 해를 지고 걸어온 길”의 “끝”을 아들에게만은 끝끝내 보여주고 싶지 않았다. 그런 아버지가 적막하기만 한 당신의 등짝을 내어준 것은 당신이 세상을 떠나기 직전의 일이었다. 아비는 그렇게 마지막에 가서야 자식의 소원을 들어준다. 이제 아들은 아비의 존재가 드리었던 무게를 온몸으로 짊어지게 된다.


이 시를 읽으며 나는 개인적 상념들에 사로잡혔다. 어릴 적 아비와 손잡고 목욕탕엘 가보는 것이 필생의 소원이었으나 평생 단 한 번도 이루어질 수 없게 된 나의 바람과 서태지가 중퇴했다는 “북공고”. 아비와 내 몸에 아로 새겨진 흉터는 서로를 정면으로 바라볼 수 없는 아픔이었을 게다. 결국 우리는 한 번도 벌거벗은 채 서로의 상처를 대면하지 못한 채 아비만 먼저 세상을 떠났다. 그리고 북공고. 87년 서울지역고등학생연합은 인문계 고등학생들이 주축이 되었지만 그 가운데는 몇몇 실업계 고교 친구들도 함께 했다. 그 중 하나가 북공고였다. 서울지역고등학생연합의 명동시위가 끝나고 난 뒤 인문계 출신 아이들 중엔 퇴학  당한 아이가 없었다. 하지만 실업계 고교 아이들 중엔 결국 학교를 떠날 수밖에 없었던 이들이 있었다. 이젠 소식조차 끊겨버린 그들, 그 아이들의 삶이 내게 여전히 묵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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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바람구두 windsho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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