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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ing 책과 만나다 - 수유연구실+연구공간 너머 지음 / 그린비(2002)


book+ing 책과 만나다를 비롯해 올해는 ‘책에 관한 책' 혹은 '책을 소개하고 있는 책' 10여 권을 집중적으로 만날 기회가 있었다. 올해는 인터뷰를 엮은 책도 꽤 많이 나왔는데, 『book+ing 책과 만나다』 역시 어떤 의미에선 책을 주인공으로 한 인터뷰를 엮은 책이라 할 수 있다. 가끔 남을 인터뷰한 책들을 읽다보면(직업상의 이유로 나 역시 종종 누군가를 인터뷰하는 자리에 따라 나설 기회가 있지만) 인터뷰 내용의 질적인 문제를 떠나 천편일률적이란 생각이 든다.

한 인물을 각기 다른 사람이 인터뷰할 때도 그렇고, 각기 다른 인물을 한 사람이 인터뷰할 때도 그렇고 어째서 인터뷰 글들은 하나 같이 뻔한 이야기를 반복하게 되는 걸까. 그 이유야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우선 내가 생각하건데 인터뷰를 하는 사람이 인터뷰를 당하는 사람보다 덜 유명한, 그래서 명성자본이란 측면에서 약자의 위치에 있기 때문이다. 다른 한 가지는 인터뷰를 하는 사람이 인터뷰를 당하는 사람보다, 인터뷰 전에 아무리 열심히 공부한다 하더라도 그 방면에 비전문가이거나 문외한일 수밖에 없는 경우가 많아서 그런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을 종종 한다.

우리들이 제 아무리 스승보다 전문적인 지식이나 식견에서 모자란다고 하더라도 그 무식함을 솔직히 인정하고 대드는 학생의 무모한 용기와 치기를 높이 평가하는 까닭은 공부란 그 과정에서 축적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대개의 인터뷰 혹은 인터뷰로 엮은 글들은 뒷부분에 가서 "아, 좋은 게 좋은 거죠. 하하, 앞으로도 열심히 좋은 일 많이 해주시길"이라며 마무리 된다. 인터뷰어로 나선 이가 인터뷰이에게 잘 보이는 방식(일종의 면접)으로 마무리되는 인터뷰가 재미있을 리 없다. 그래서 공격적인 인터뷰를 찾아보기란 공격적인 서평 찾아보는 것만큼이나 어렵다.

그게 이 책과 무슨 상관인가? 그건 이 책 역시 그런 점에서 자유롭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 책의 날개에 적힌 필자 소개는 우습게도 개인이 아닌 집단을 필자의 위치에 놓고 있다. 물론 책 날개 하단엔 이 책의 작업에 참여한 고미숙, 고병권, 고봉준, 권보드래 등을 비롯한 필자 18명의 명단을 나열해두고 있지만, 이들 필자들의 프로필을 확인하고 싶다면 모모 사이트에 접속해보라는 설명이 달랑 놓여 있을 뿐이다.

물론 고미숙, 권보드래 등은 책줄이나 읽는다는 사람들 가운데 알만한 이들은 알만큼 유명인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이 책의 저자는 '수유연구실 + 연구공간 너머'다. 이 집단은 아예 사람 행세를 하고 싶은지 생년월일, 출생지, 출생에 얽힌 사연(일종의 태몽이라고 해야 하나?), 화두, 꿈꾸는 것, 주로 하는 일, 좋아하는 일 등을 소개한다.

참고로 좀더 자세하게 소개하면 "화두: 아는 것은 즐겁다. 즐겁지 않으면 지식이 아니다. 꿈꾸는 것 : 자신의 신체를 극한적으로 실험하는 구도로서의 지식과 저잣거리의 아우성이 끊임없이 접속하는 꼬뮨, 주로 하는 일 : 공부, 세미나, 글쓰기, 강의하기 - 듣기, 제도 밖 교육을 꿈꾸는 사람들이 모여 지식과 삶을 나누고 있다. 좋아하는 일 : 학력, 성별, 전공, 나이에 상관없이 맞짱 뜨고 엉겨 붙기" 란다. 자기소개만 놓고 보면 적당한 치기와 그에 상응하는 자신감을 엿볼 수 있다. '책머리에' 쓴 글을 보자.

만약 누군가가 '너희가 사랑하는 책들의 선별 기준은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우리는 500년 전 한 철학자의 입을 빌려 이렇게 말할 것이다. "발분하지 않았는데 저술을 하는 것은 마치 춥지도 않은데 떠는 것과 같고 병도 없는데 신음하는 것과 같다." 이성의 힘으로는 도저히 멈출 수 없는 욕망으로, 토해내고 싶지만 토해낼 수 없을 만큼 켜켜이 쌓인 분노로, 바로 지금 당신과 더불어 눈물과 웃음의 축제를 벌이고자, 우리는 이 책을 세상에 내보낸다.

만약 윗글 그대로의 내용이라면 이들이 낸 이 책은 발분하여 쓴 책, 멈출 수 없는 분노로 토해낸, 이 책을 읽는 나와 더불어 눈물과 웃음의 축제를 벌이기 위해 써낸 책이란 말이 된다. 이 글을 읽는 내내 신영복 선생의 책 강의의 겸손한 서문이 떠올랐다. 자신만만한 것도 좋다. 자신들이 한 말에 책임을 질 만큼 당돌한 "학력, 성별, 전공, 나이에 상관 없이 맞짱 뜨고 엉겨 붙기"라면, 그렇게 자신들이 대면한 세상의 책, 저자들과의 당당한 겨룸이라면... 말이다. 그런데 책의 본문을 읽는 내내 나는 '수유연구실 + 연구공간 너머'의 화두와 주로 하는 일이 떠올랐다.

"아는 것은 즐겁다. 즐겁지 않으면 지식이 아니다. 주로 하는 일 : 공부." 이 책을 읽는 내내 머리 속을 맴도는 말이 있었는데 "공부가 가장 쉬웠어요"다. 그렇다고 공부가 즐거운 이들이 부럽다는 말은 아니다. 어쩐지 '책머리에'에 그토록 거창하게 써 논 글의 느낌과 발분이 본문을 넘기면서 점차 시드는 거시기처럼 오그라드는 느낌을 받아서 말이다.
책이 주인공인 책이다 보니 남들에게 권하기 뭐한 책, 자신이 읽었을 때 별다른 감흥을 얻지 못한 책을 이야기할 수는 없는 노릇이란 사실을 감안하더라도 이건 내용이 좀 빈약하다. 대략 90권 가량의 책을 다루고 있는데, 판권 뒤의 백지까지 포함해서 368쪽이다. 이를 다시 90권으로 나눠보면 책 한 권당 4쪽씩 할애된 꼴이다.

새로운 장이 시작될 때마다 중간에 속표지 한 장씩, 새로운 글이 시작될 때마다 여백을 반쪽씩 할애하고, 본문 중간에 작가 사진 혹은 책과 관련된 도판을 삽입하고 있다. 예를 들어 이 책의 "4장. 한 시대의 철책을 뛰어넘은 광인과의 만남"이란 이름으로 시작된 장의 첫번째 책인 "디디에 에리봉"의 책 "미셸 푸코"를 이야기하고 있는 글 "저기 푸코가 있다"란 글은 239쪽에서 시작하는데, 제목 나오고 3분지 1가량은 여백이고, 글자로 가득찬 부분은 240쪽 하나, 241쪽은 푸코가 앞니를 드러내고 웃는 사진 한 장과 "푸코는 늘 전투의 먼지나 술렁임을 환기하고 있습니다. 사유 자체가 그에게는 하나의 전쟁 기계인 것처럼 보입니다." - 1986년 클레르 파르네와의 대담에서 들뢰즈가 한 말로 뚝딱 한 페이지를 해치워버리고 말았다.

이래서야 "한 시대의 철책을 뛰어넘은 광인과의 만남"은 방금 지나간 것이 뒤통수인지 앞통수인지 알아낼 재간이 없다. 전부하자면 3쪽이지만 실제론 이 글의 원고 매수는 얼핏 짐작으로 보아 200자 원고지 기준으로 6매 가량 되는 글이다.
참고로 "디디에 에리봉"의 책 "미셸 푸코"는 국내에선 "시각과언어"란 출판사에서 상하 분권으로 출간되었으며 상권이 352쪽, 하권이 316쪽의 책이다. 전부 668쪽의 책을 200자 원고지 6매로 압축해 리뷰할 수 있는 능력은 나로서는 매우 부럽다. 이 책의 글 면면에 무슨 문제가 있다거나 하는 지적을 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한 권의 책에 너무 많은 책과 저자를 담아내려는 욕심이 이 책이 지녀야 할 가장 중요한 미덕을 해치고 있다는 사실을 지적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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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바람구두 windsho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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