쥐 - 아트 슈피겔만 지음, 권희종 외 옮김 / 아름드리미디어 / 1994년 9월




1958년 무렵 뉴욕 레고 파크. 여름이었다고 기억된다. 내가 열 살인가 열 한 살이었을 때…. 난 하우이, 스티브와 어울려 롤러스케이트를 타고 있었는데 그만 스케이트 끈이 끊어지고 말았다.
“야! 얘들아! 기다려.”
“꼴찌다! 꼴찌! 하하하”
“같이 가! 얘들아.”
아버진 마당에서 뭔가를 고치는 중이셨다.
“마침 들어오는구나. 이리 와서 이것 좀 잠깐 잡아주렴.”
“훌쩍, 네?”
“아티, 그런데 너 왜 우는 거니? 나무를 잘 붙들려무나.”
“제가 넘어졌는데요. 친구들이 절두고 가버리잖아요.”
아버진 톱질을 멈추셨다.
“친구? 네 친구들?”
“그 얘들을 방 안에다 먹을 것도 없이 일주일만 가둬놓으면….”
“…그 땐 친구란 게 뭔지 알게 될 거다.…”
<1권 본문 5-6쪽>


아트 슈피겔만의 『쥐(Maus)』는 모두 2권으로 구성되어 있다. 1권은 아버지 블라덱 슈피겔만의 청년기인 1930년대 중반부터 1944년 폴란드의 유대인 게토에 머물던 시기를 다루고, 2권은 악명 높은 아우슈비츠(작가는 ‘마우슈비츠’란 익살을 부리기도 하지만) 수용소에서 극적인 생존에 이르는 시기를 다룬다. 그러나 아트 슈피겔만의 『쥐』는 과거사를 연대기적으로 구성하는 단순한 회상투로만 구성되진 않는다. 우리는 『쥐』를 통해서 작가인 아들 아트 슈피겔만이 아버지 블라덱 사이에 놓인 경험의 차이, 감정의 차이를 느낄 수 있다. 그 이유는 작가가 『쥐』를 통해 일정하게 의도하는 바가 성공적이었음을 뜻한다.


무엇보다 아트 슈피겔만의 『쥐』가 홀로코스트를 다룬 수많은 작품들과 다른 차이를 만들어내는 것은 이 작품이 과거와 현대를 번갈아 가며 대비시키고 있는 구조를 취하는데서 발생한다. 즉, 현대를 살아가고 있는 나(작가)와 과거 아우슈비츠에서 생환한 아버지 블라덱 사이의 현재적 갈등 구조는 끝내 해결되지 않지만, 작가는 『쥐』의 작업을 위해 사이가 결코 좋을 수 없는 아버지를 정기적으로 방문해야만 한다. 두 사람의 사이가 좋을 수 없는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그 궁극적인 원인은 앞서 인용하고 있는 『쥐』의 첫 도입부에서 이미 극명하게 드러난다.


유대인 강제수용소의 체험을 나에게 최초로 각인시켜준 인물은 우리에게도 『죽음의 수용소에서』라는 책으로 잘 알려진 빅토르 프랑클(Viktor E. Frankl) 박사였다. 그는 이 책에서 죽음의 유대인 강제수용소(실제로는 가스처형실을 갖춘 유대인 최종해결시설)에 갇힌 수인들에 대해 외부인들은 선입견을 가지기 쉽다고 말한다. 그들은
“죄수들 사이에 불붙는, 생존을 위한 격렬한 투쟁”에 관해 거의 모르고 있으며, 매일 끼니와 자기 자신을 위한, 친구를 위한 무자비한 투쟁에 대해 알지 못한다는 것이었다. 수용소에 갇힌 모든 사람들이 한 사람이 구원받으면 다른 한 명의 희생자가 채워져야 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으면서도 자기의 이름이나 자기의 친구를 희생자 명단에서 지우려고 아우성을 쳤다는 사실 말이다. 빅토르 프랑클은  결국 이 수용소에서 저 수용소로 수년간 끌려 다닌 끝에 삶을 위한 투쟁에서 도의심이라고는 손톱만큼도 없는 수인들만이 살아남을 수 있었고, 이들은 자신의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 잔혹한 폭력, 도둑질, 심지어는 친구까지도 팔아 넘겼다.


아버지 블라덱이 바로 그런 경험들을 통해 마지막까지 살아남은 생존자였다. 전후 세대인 아들 아트와 아우슈비츠를 경험한 아버지 블라덱 사이에는 이렇게 경험하지 않으면 결코 넘어설 수 없는 커다란 간극이 있었고, 이 두 사람의 간격을 회복하기 어렵게 만든 것은 아트 슈피겔만이 스무 살 때 겪은 어머니 안나(아냐)의 자살이었다. 물론 어머니의 자살이 블라덱의 책임은 아니었지만 두 사람을 묶어주던 하나의 울타리가 무너진 것이다. 우리는 이 작품 『쥐』가 단순히 히틀러의 만행을 그림으로써 우리들로 하여금 홀로코스트에 대해 반성을 촉구하는, 좋은 의도를 지니고 있으나 그만큼 그저 그런 교훈적인 유형의 만화가 아니란 사실을 알고 있다. 이 작품은 그런 의도
(그런 의도도 있겠지만)로 그려진 것이기 보다는 아트 슈피겔만이 아버지 세대와의 일정한 단절과 소통, 이해를 위해, 다시 말해 스스로의 정리를 위해 그린 작품이란 느낌이 더욱 강렬하다.


그는 자신과 다른 체험을 가지고 있는 부모 세대와 대화함으로써 끝끝내 넘어설 수 없을 것 같았던 아버지 블라덱을 이해하게 되고, 단절을 경험한다. 추측컨대 아마도 그는 이 작업을 통해 성장했을 것이다. 사실 나는 아버지 블라덱의 삶에 대한 태도를 이해할 수 있다. 살아온 과정이 너무나 각박했던 이들 가운데 블라덱이 거쳐 온 극단적인 체험까지는 아니라 하더라도 이와 흡사한 태도를 지닌 이들을 종종 볼 수 있다. 당장 우리의 조부모 세대, 부모 세대 혹은 앞으로 우리들도 우리의 아이들에게 이와 흡사한 이야기를 할지 모른다.


나 역시 생활보다는 생존을 우선해야 했던 체험이 있었고, 이 무렵 내가 즐겨 입에 담던 경구
“강한 자이기 때문에 살아남는 것이 아니라 살아남았기 때문에 강한 것이다.”란 경구는 최고의 가치를 지닌 말이었다. 일단 살아남는다는 것, 그것은 어떤 비굴이나 치욕, 폭력도 감내할 만한 가치 있는 일로 여겼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그와 같은 태도만이 현실적이고, 어른스러운 자세라고 여겼던 것이다. 아픔과 슬픔을 극복하는 냉혹함만이 삶의 진정한 자세라고 여기는 동안, 나는 주변에서 순수나 소박한 낭만을 이야기하는 이들을 얕잡아 보았고 경멸했다. 그들은 삶의, 현실의 냉혹함을 모르는 철부지 어린애 같은 존재들이라 여겼고, 결국엔 삶의 과정에서 도태될 것이라 믿었다. 아버지 블라덱이 어린 아들 아트에게 했던 말 “친구? 네 친구들? 그 얘들을 방 안에다 먹을 것도 없이 일주일만 가둬놓으면…. 그 땐 친구란 게 뭔지 알게 될 거다.…”와 같이 말이다.


그러나 아트 슈피겔만의 『쥐』는 공개할 필요 없을, 어찌 보면 아우슈비츠를 드러내는데 도리어 군더더기 같은 대목들에서 도리어 진실을 보여주는 미덕을 지니고 있다. 아버지와 자식의 갈등, 아버지가 청년기에 했던 연애 이야기, 어머니의 자살, 그리고 아버지 블라덱 자신이 유대인이란 이유로 가스실에 보내질 뻔 했던 경험에도 불구하고 흑인종에 대해 지닌 편견들, 마트에 가서 이미 개봉한 음식물을 바꿔오는 인색함 등등의 이야기를 접하면서 우리는 블라덱과 아들의 이야기를 남의 이야기가 아닌 우리들 자신의 이야기로, 그들의 이야기가 지난 한 시대의 과거사가 아닌 오늘에도 이어지는 이야기일 수 있음을 느끼게 된다. 그리고 우리는 중요한 사실 한 가지를 더 깨우칠 수 있을 것이다.


아무리 잔혹한 시대를 살더라도
“인간의 구원은 사랑으로, 그리고 사랑에서 이루어진다.”는 사실이다. 빅토르 프랑클이 유대인 강제수용소에서 살아남을 수 있었던 까닭, 그는 이렇게 말한다. “사랑은 사랑하는 사람의 육신을 초월해서 존립하는 것이다. 나의 아내가 죽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 그러한 사실을 알았다는 것에 조금도 구애되지 않고 그녀의 모습을 관조함에 여전히 내 자신을 송두리째 바쳤을 것이며, 그녀와 나의 정신적 대화는 전과 다름없이 생생했을 것이며 만족할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나를 그대의 가슴에 새겨주소서. 그러면 사랑은 죽음과 같이 강해지리다.” 그는 F. 니체의 말을 인용해 (비록 강제수용소에서의 삶과 죽음의 과정이 선택의 여지가 없는 것이긴 했으나)강제수용소에서 살아남은 사람들에게는 한 가지 공통점이 있었다고 증언한다. 그 말은 “살아갈 이유를 알고 있는 사람은 거의 어떠한 상황에서도 견뎌낼 수 있다.” 중요한 것은 삶이 우리에게 거는 기대다. 그렇기에 우리가 삶의 도상(途上)에서 받게 되는 가장 중요한 질문들은 대개 “어떻게”가 아닌 “왜”이다.


아버지 블라덱의 냉정하고, 각박한 심성과 삶의 자세를 우리는 『쥐』의 여러 곳에서 발견할 수 있으며, 그를 둘러싸고 있었던 여러 조건들 속에서 그의 기대를 배신했거나 믿음을 버림받았던 무수한 경험들이 그를 그렇게 만들 수밖에 없었음을 알게 된다. 아우슈비츠의 유대인들이 숱한 배신과 희망의 박탈에도 불구하고 살아남은 것을 어찌 과거의 일이라고만 말할 수 있을까. 오늘날 우리들이 살아가고 있는 이 사회, 임금 노예로 자신의 삶에 대한  통제권을 상실한 채 살아가길 강요당하는 현실에서도 역시 배신과 희생은 반복된다. 그러나 블라덱이 끝끝내 살아남을 수 있었고, 살아남기 위해 그토록 노력했던 까닭은 바로 그의 사랑하는 아내 ‘아냐’를 만나기 위해서였다. 물론 블라덱의 이런 태도를 지긋지긋한 가족주의의 발현이라고 간단히 치부해버릴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인류의 역사는 오로지 인간만이 자신이 아닌 타인
(가족을 포함해서)과 공동체를 위해 스스로를 희생할 수도 있음을 보여준다. 타인을 위해 봉사할 수 있는 자만이 타인의 종이 되기를 거부할 수도 있는 법이다. 지금은 비록 아우슈비츠가 인류에게 별다른 교훈을 주지 못한 것처럼 보이더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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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바람구두 windshoes

내가 읽은 책과 그림 - 마르셀 라이히-라니츠키 | 김지선 옮김 | 씨앗을뿌리는사람(2004)




"마르셀 라이히-라니츠키""내가 읽은 책과 그림"은 한 편으론 유쾌하면서 다른 한 편으론 읽는데 힘겨운 책이었다. 이 책에서 다루고 있는 인물의 거의 절반은 이름도 처음 듣는 작가들이었고, 이름을 아는 작가들도 절반 가량은 이름만 알고, 책은 본 적이 없는 인물이고, 다시 그 절반 정도의 사람들만 책을 읽었고, 작품 이름이라도 들었던 이들이기 때문이다. 사실 "마르셀 라이히-라니츠키"를 내가 처음 알게 된 것은 중학생 때부터 좋아했던 작가 "귄터 그라스"의 당시 신작 "광야(원제 : Ein Weites Feld)"를 놓고 그가 벌인 해프닝 때문이었다. 그 무렵만 하더라도 그냥 성격 더러운 괴짜 평론가 한 사람이 있나 보다 하는 정도로 알고 있었는데, 귄터 그라스의 유명세 못지 않게 그 자신의 유명세가 더해져 독일 문화계를 떠들석하게 만들었던 사건이었다.


사실 라이히-라니츠키가 "슈피겔"지 표지에 등장한 것은 1995년 귄터 그라스의 신작을 찢는 사진말고도 또 있었다. 그는 1993년에도 표지에 등장했었는데, 이때 그는 개로 등장했었다. 1993년과 1995년에 등장한 그의 사진에 공통점이 있었다면 이 두 사진 모두 책을 찢고 있는 인물로 나왔다는 것이다. 1993년 그가 책을 찢는 장면으로 등장했던 것은 독일 문학에 대한 것이었지만, 1995년에 등장했던 것은 귄터 그라스의 신작이란 구체적인 작가와 작품을 지목한 것이었다. 비록 노벨문학상을 받기 전이지만 전후 독일 최고의 작가로 손꼽히고 있던 귄터 그라스의 작품을 신랄하게 비판하고, 분을 참지 못해 찢어 버리는 문학비평가의 모습을 우리는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가.


그는 귄터 그라스가 단치히 4부작 이후 발전과 변화가 없는 점을 참을 수 없으며, 그라스의 명작 "양철북"을 가당치도 않은 이야기라고 주장했다. 귄터 그라스가 1999년 노벨문학상 수상자(독일 작가로는 1972년 하인리히 뵐, 1981년 엘리아스 카네티 이후 18년만의 일)로 발표되었을 때, 그의 수상에 대한 코멘트를 부탁한 기자들에게 그는 "Ich bedaure nichts"라고 말했다고 한다. 우리 말로 "전 유감 없습니다."란 뜻이라는데, 독일 대통령, 수상, 마르틴 발저 같은 이들이 그의 수상 줄소식에 기뻐한 것과 비교하면 영 떨떠름한 반응이었다. 그는 다음과 같이 부연했다. "생각해 보세요. 마틴 발저가 그 상을 받는다면, 저에겐 그건 날벼락일 것입니다. 아니면 그 멍청한 페터 한트케요! 재앙이지요. 스톡홀름에겐 귄터 그라스 말고는 없었어요." 하지만 그는 귄터 그라스의 노벨상 수상을 끝끝내 축하하지 않았다.


우리 입장에서 보자면 라이히-라니츠키는 매우 편협한 인물로 비춰질 수도 있을 텐데, "문학권력"이니 "주례사 비평"이니 특정한 집단끼리 나눠먹기식의 문학상 제도니 해서 구설이 끊이지 않은 우리 풍토를 생각해보면 작가와 비평가의 사이가 이렇게 안 좋아도 노벨상도 때 되면 받아가고, 작가는 작가대로, 비평가는 비평가대로 자기 고집을 세우며 작품활동과 비평활동을 하는 모습이 꼭 나쁜 것만은 아니란 생각이 든다. 그는 귄터 그라스가 사회주의 리얼리즘의 전형을 새롭게 세워나가고 있는 모습이 고루해보인다는 비판을 아끼지 않고, 귄터 그라스는 귄터 그라스대로 자기 갈 길을 꿋꿋이 간다.


문학적인 입장에서 보자면 라이히-라니츠키(Marcel Recih-Ranicki)는 매우 보수적인 인물이다. 그는 1920년 폴란드 에서 태어난 유대인이었지만 당시 독일계 학교를 다녔다. 그는 나치시대의 베를린에서 청소년기를 보냈고, 아비투어를 치르지만 1938년 가을 폴란드 국적을 지녔다는 이유로 추방된다. 바르샤바에 거주하게 된 그는 1940년부터 바르샤바의 유대인 위원회에서 통역일을 하다 탈출한다. 이때 그의 부모와 형제들은 살해당한다. 그는 폴란드 공산당에 입당해 전후 폴란드의 외교관으로 근무(런던 주재 폴란드 대사관의 영사와 총영사를 지냄)했다.1949년 정치적인 이유로 외교관직을 박탈당한 뒤 1958년 독일로 이주한다.


'문학의 교황(Literaturpapst)' 이란 평가를 받는 그는 평론가란 정확히 어느 한 입장에 서야 한다고 말한다. "누구나 그 책에 찬성하든지 반대하든지 둘 중의 하나일 수밖에 없다"고 말하면서, 모든 작가는 결국 돼지이고, "작가는 재능이 있는 돼지 아니면 재능이 없는 돼지"란다. 이 책 "내가 읽은 책과 그림"에서도 그는 좋아하는 작가와 그렇지 않은 작가에 대한 평가가 극명하게 갈린다. 그는 모제스 멘젤스존, 루드비히 뵈르네, 하이네, 토마스 만 등에 대해서는 열렬한 애정을 귄터 그라스와 베르톨트 브레히트에 대해서는 석연찮은 표정을 짓는다. 라이히-라니츠키가 '문학의 교황'이란 칭호를 얻게 된 데에는 "프랑크푸르트 알게마이네 자이퉁(FAZ)"과의 인연이 컸다. 그는 1973년 12월 FAZ의 편집진으로 복귀하면서 이 신문의 문예비평란을 유럽의 독일어권 신문 중 가장 권위있는 것으로 만들었다. 그를 대중적인 스타로 만든 것은 독일 제2방송(ZDF)의 "문학 사중주(Das Literarische Quartett)"란 프로그램 덕이었다.


우리나라로 치자면 "TV, 책을 말하다" 정도라고 해야하겠지만, 그보다는 훨씬 더 지루하고, 재미없게 구성되어 있다고 한다. 그것도 모두 악동같은 라이히-라니츠키가 내세운 조건들 때문이었다. 그는 TV란 미디어가 지닌 가장 큰 장점일 수 있는 "보여준다는 원칙"(무엇이 되었든, 보여줄 수 없는 것은 가상의 컴퓨터 그래픽을 통해서라도 보여준다)을 허물고, 그와 초대 손님의 진지한 대화만으로 구성하는 프로그램이었다. 당시 대표적인 초대 손님은 "아도르노, 슈피겔 발행인인 루돌프 아우구스타인, 에른스트 블로흐, 하인리히 뵐, 막스 프리쉬, 귄터 그라스, 발터 옌스, 지그프리드 렌츠, 마틴 발저" 등이었다. 이 프로그램은 라이히-라니츠키를 포함한 3인의 패널과 한 명의 초대 손님으로 구성되는데, 초대 손님은 이들과 토론을 나눈다. 그것도 아주 격렬하게...(방송사는 주제 및 초대 손님을 누구로 할 것인가에 대해 관여할 수 없다. 1년에 6회 방영됨.)


어쩌다보니 "내가 읽은 책과 그림"에 대한 서평이 아니라 "마르셀 라이히-라니츠키"에 대한 소개글이 되어버린 듯 하다. 그러나 이 책의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 철저히 "라이히-라니츠키"의 책읽기와 그가 정성들여 수집한 작가들의 초상화로 구성된 책이다. 책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말하는 것보다 우리에겐 잘 알려져 있지 않지만 독일과 유럽에서는 문학의 교황으로 군림하는 비평가에 대해 좀더 잘 알게 되는 것이 이 책을 보다 더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방법이란 생각이 들었다. 이 책은 필자인 라이히-라니츠키의 친절보다는 이 책을 번역한 "김지선" 선생과 이 책의 출판사인 "씨앗을 뿌리는 사람"의 편집자들의 친절이 돋보인다. 독일어와 독문학이 우리나라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날로 격감해 가는 시점에서 이 분들의 공로가 더욱 두드러져 보인다. 잘 만든 책에는 후한 점수를 주어야 하겠지만, 이 책이 모두에게 쉽게 읽을 수 있다며 추천하기는 약간 곤란하다. 그러나 그런 문제는 어디까지나 저자와 우리 독자들이 건너야 할 외나무 다리인 것이고, 최소한 이 책에 있어서만큼 그것은 번역작가와 편집자의 책임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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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바람구두 windsho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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