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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1.03.19 시대를 빛낸 정상의 앨범 - 임진모/ 창공사(1996)

시대를 빛낸 정상의 앨범 - 임진모/ 창공사(1996)


내 나름대로는 정리할 건 정리하고 넘어가자는 차원에서 오래전부터 빚진 책들에 대해 빚을 갚는다는 생각에서 나름의 정리작업으로 하고 있다. 이 책 그러니까, 임진모의 "시대를 빛낸 정상의 앨범"은 오랫동안 내 책꽂이에 늘 꽂혀있던 몇 권의 책 가운데 하나다. 세광음악출판사에서 나온 "팝아티스트대사전" 옆자리에 늘 함께 한 책인데, 내가 늘 아쉬워하는 것은 이런 류의 책들이 쌓아올린 작업들은 나름대로 한 시대를 정리하는 중요한 지적, 학문적 작업일 수 있는데, 어째서 수정증보판이 나오지 않는가 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시대를 빛낸 정상의 앨범"은 일종의 문화사, 서구 대중음악사를 시대별로 정리하는 작업이다. 이 책의 부제 "음반으로 보는 팝과 록의 역사"는 이 책의 내용을 정의하면서 동시에 이 작업이 대중음악사의 한 부분을 연구하는 기초적인 자료가 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이 책이 지난 1994년에 출간되었으니 아무리 가깝게 잡아도 이미 10년 전의 음악사밖에 수록할 수가 없다. 즉, 이 책이 다루고 있는 음반으로 보는 팝과 록의 역사 가운데 가장 최근사인 90년대 중후반부터 2000년대 초반에 이르는 시기는 공백으로 남아있게 된다는 뜻이다. 물론 대중음악을 다루는 웹진들이 존재하고, 그런 작업들을 통해서도 이런 작업들은 진행되고, 축적되고 있겠지만, 책으로 엮는 것과 인터넷상으로 둥둥 떠나니는 작업과는 일정한 차이를 갖는다.

 

"시대를 빛낸 정상의 앨범"이 담고 있는 콘텐츠는 1950년대 발원해서 1990년대 초반에 이르는 서구 대중음악의 역사를 100장의 앨범들을 통해 시대사와 연관시켜 가며 살펴본다는 점에서 다소 과정을 섞어 말하자면 아르놀트 하우저의 "문학과 예술의 사회사" "대중음악의 사회사"로 치환한 작업이라 할 수 있다. 물론 이 책이 하우저의 작업에 비견되기 위해서는 좀더 복잡한 학문적 검증 절차와 심도 있는 비평 작업이 필요한 것이지만 말이다. 임진모는 서문에서 "대중음악은 시대를 반영한다. 또한 대중음악은 음반이라는 매개체를 통해 그 형식과 내용을 구체화한다. 따라서 음반에는 단순히 한 아티스트나 그들의 음악뿐 아니라 그가 몸담고 있는 시대와 대중의 정서가 담겨 있다. 음반만큼 그 시대상황과 직결되어 있는 수단은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라고 말한다.

 

그런 관점이 중시되다 보니 소위 음악적(이 말은 미학적이란 말이기도 하다) 관점에서 보았을 때 당연히 명반의 범주에 들어야 할 음반들보다는 그 시대의 표상 내지 상징적 의미를 담고 있는 음반을 위주로 하고 있다. 예를 들어 임진모는 마빈 게이(Marvin Gaye)의 앨범 "What's Going on"을 이야기하면서 단지 이 앨범의 음악적 가치만을 이야기하지 않는다.

 

"당신 말야. 오늘 신문 봤어? 켄트 주립대학에서 죽은 학생들에 대한 기사 읽었지? 켄트 사태는 정말 어처구니가 없어. 잠도 못자고 계속 울기만 했다니까. 이제 달이라든지 유월 어쩌구하는 3분짜리 노래를 부른 건 싫어."

 

마빈 게이는 모타운 레코드사의 작곡가인 알 클리블랜드와 레날도 벤슨이 "What's Going on"을 써 왔을 때 예전처럼 신변잡기식 노래는 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마빈 게이는 본래 흑인 프랭크 시내트라를 꿈꾸었던 가수였다. 당시 모타운은 물론 대개의 음반사들은 작곡가나 기획자들이 음반 제작의 주도권을 쥐고 있었으므로 자의식을 가진 아티스트를 원치 않았다. 마빈 게이는 이들과도 투쟁해 자신의 앨범을 세상에 내보냈고, 이 음반은 800만장의 판매고를 올렸다. 젊은 날 흑인 프랭크 시내트라를 꿈꿨던 마빈 게이는 고통을 노래하고, 기존 질서에 저항하는 흑인 소울로 되돌아와 성공했다. 이후 70년대 중반까지 계속 인기를 얻다가 70년대 후반부터 약물 문제와 우울증으로 괴로움을 겪었다. 이후 그는 모타운에서 20년 동안 활동한 뒤 컬럼비아로 옮겨 앨범 "Midnight Love"(1982)를 발표하며 재기에 어느 정도 성공하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마빈 게이는 아버지와 다투다 총에 맞아 사망했다.

 

임진모의 책은 좀더 깊이 들어가길 원하는 독자에겐 다소 얕고, 그저 음악만 즐기고자 하는 이에겐 너무 깊은 이야기를 다룬다. 마빈 게이가 "도대체 무슨 일이 생긴 거야? What's Going on?"라고 반문했던 건 잠시였다. 유럽의 68혁명은 잠시 폭풍으로 지나갔고, 미국의 반전운동은 히피들의 마리화나와 섹스 속에서 일시적인 일탈에 그쳤다. 마빈 게이 역시 다시 개인의 고통과 에로티시즘으로 침잠해들어갔다. 시대는 대중문화가 진보적이거나 저항적인 메시지를 담는 걸 별로 원치 않는 것으로 보이는 시대가 시작된 것이다.

 

임진모의 "시대를 빛낸 정상의 앨범"은 대중문화에 대한 우리 사회의 관심이 이제 막 고조되던 초기의 성과물이다. 그러므로 지금의 관점에서 보자면 많이 뒤처지거나 얕게 여겨지는 부분이 있는 것도 당연하다. 하지만 나는 이 책이 나름의 역할을 충실히 했다고 생각한다. 많은 이들이 이 책을 읽고 대중음악과 사회의 연관성에 대해 새삼 생각해보게 만들었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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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바람구두 windsho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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