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나키즘 국가권력을 넘어서 - 로버트 폴 볼프 지음/ 임홍순 옮김/ 책세상(1998년)



내가 어렸을 때 영화는 흑백영화였고, FBI요원으로 등장하는 인물들은 신임을 받았으며 좋은 사람으로 묘사되었다. 그러나 오늘날 영화나 텔레비전에서 그리는 FBI요원은 대부분 악당의 모습이다. 예를 들어 대도시의 경찰 지휘본부에 모습을 드러낼 때의 그는 좀더 높은 차원의 내밀한 수사를 한다는 이유로 명백한 정의를 왜곡시키는 방해꾼으로 간주된다.


경찰 역시 악역으로 나온다. 예를 들어 매우 노골적인 영화 람보 시리즈를 생각해보자. 첫 번째 람보 영화인 「퍼스트 블러드First Blood」를 보면, 베트남 전쟁에서 훈장을 받은 참전 용사 존 람보는 조그마한 시골 마을을 걷다가 지방 보안관 브라이언 데니히에게 체포된다. 영화 속의 모든 것이 람보 편을 들고 있으며 보안관은 편협하고 어리석은 가학자로 그려지고 있다. 그런데 사실 보안관이 옳았던 것이 아닌가! 보안관은 람보가 골칫거리라고 생각했는데, 그의 생각이 옳았음을 입증이라도 하듯, 영화가 끝나기 전에 보안관 조수들 중 여러 명이 죽게 되고 그 마을은 도살장이 되어버린다.


람보 시리즈의 두 번째 영화는 더욱 노골적이다. 람보는 베트남에서 포로를 구하는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 CIA에게 차출되어 출옥하게 된다. 그러나 그 임무의 실제 목적은 람보가 실패하는 데 있었기에 생존하는 포로들에 대한 소문은 전혀 들을 수가 없다. 온갖 난관을 이기고 람보가 마침내 포로 몇 명을 찾아내어 그들을 탈출시키려고 할 때 CIA요원들은 그들을 내버려두라고 명령한다. 이 영화에서 실질적인 적은 람보를 죽이려는 북쪽 베트남인이 아니라 바로 CIA 요원이다.


(중략)


70년대에 국가의 권위를 불신했던 것은 좌익이었다. 그런데 오늘날은 소총과 중화기로 무장한 시민군인 극우파들이다. 그러나 정당한 권위에 대한 전적인 불신은 정치적인 노선과 관계없이 대중문화의 한 가지 특징이었다. 내가 언급한 영화와 그 외에 대중들에게 친숙한 대중문화에서도 권위에 대한 불신이 하나의 특징으로 드러나고 있다.


<로보트 폴 볼프 지음, 임홍순 옮김, 아나키즘 국가권력을 넘어서, 1998년판 서문, 14-17쪽>에 나오는 말이다.

나는 이 글을 모 잡지에 발표하는 글에서 인용한 적이 있는데, 이 책의 원제명이 "In Defense of Anarchism"이란 것을 생각해볼 때 볼프의 서문은 책의 본문에서 나올 이야기들을 압축적으로 설명해준다. 이때 볼프가 말하는 '좌익'이란 자본주의 체제를 완전부인하기 보다는 자본주의를 인간의 얼굴을 한 체제로 연착륙시킬 수 있다고 믿는 사회민주주의자들을 포함한 말일 것이다. 최소한 미국의 사례에 비춰보았을 때 국가는 정치적 좌파들에 의해 공격받기 보다는 1995년 4월 19일 오전 9시 5분, 미국 중부 오클라호마주의 주도 오클라호마시티 중심가에 있는 알프레드 머라 빌딩에서 일어났던 폭탄 테러 사건처럼 극우파에 의한 것이다. 당시 범인으로 잡힌 티모시 맥베이는 연방정부에 반대하는 극우파 단체 출신이었다.


사람들은 1990년대 초반의 동구에서 발생한 현실사회주의권 국가들의 몰락을 흔히들 좌파의 패배로 규정하려는 경향이 있지만, 이는 자본주의적 편견에 사로잡힌 단견이다. 실제로 좌파는 자유민주주의를 표방하는 모든 국가에서 승리했다. 확실히 초창기의 야만적 체제였던 자본주의 체제를 국가의 경제체제로 채택한 국가들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부강한 선진국으로 자리잡고 있다.  그런 점에만 주목하여 보자면 자본주의 체제가 사회주의 체제를 압도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그 실상을 들여다보면 자본주의의 발원지라 할 수 있는 영국만 하더라도 모든 의료체계를 사회가 담당하고 있다는 점을 알 수 있고, 그외에 우리가 선진국이라 생각하는 거의 대부분의 자본주의 선진국들이 과거 사회주의가 처음 태동할 당시의 주장들을 '사회복지 시스템'이란 이름으로 채택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비록 국가단위의 사회주의는 패배한 것으로 보이나 정신으로서의 사회주의는 애초에 소망했던 대부분을 획득했다. 그런 관점에서 보자면 사회주의는 패배한 것이 아니라 승리하고 있다. 문제는 야만적 자본주의를 대상으로 투쟁했던 혁명적 사회주의가 그 이후의 사회주의로, 새로운 세상으로 전진해나갈 수 있는 정신적 동력과 대안을 마련하는데 실패했다는 것인데, 그것은 비단 사회주의만의 문제가 아니라 오늘날 모든 정치 이념이 봉착하고 있는 문제이기도 하다.


이 책은 '서문, 본문, 해설, 찾아보기'의 형태로 되어있지만 전체 페이지가 200쪽이 안 되는 얇은 책이다. 한 권의 작은 논문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이렇게 얄팍한 본문에도 불구하고 옮긴이인 임홍순 선생의 해설이 40쪽 정도 할애되어 별도로 따라 붙는다. 200쪽이 안되는 책에 40여쪽의 해설이 붙는다는 것은 이 책이 읽어내기에 그리 만만치 않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렇다고 볼프의 이 책이 읽기 어렵고, 난해한 개념들로 가득하다는 뜻은 아니다. 임홍순 선생은 우리 사회에서 쉽게 이해되지 못하고, 극좌적 환상에 불과하다는 편견으로 규정된 "무정부주의"를 "아나키즘"으로 제대로 이해받도록 하고 싶다는 뜻에서 해설을 단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볼프의 저술이 다루고 있는 부분을 잘 요약하여 해설해주고 있으므로 볼프가 다루고 있는 내용이 다소 어렵다면 해설을 참고하는 것도 이 책을 이해하는 좋은 방편이 될 수 있다.


헨리 데이빗 소로우 이래 "아나키즘"은 하나의 '이상주의'로 폄하되기 일쑤였다. 물론 이 글을 적고 있는 나 역시도 실제 정치적 현실로서의 아나키즘을 대안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가에 대해서는 여전히 의문을 품고 있다. 그러나 1880년대 이래 "8시간 노동제"가 환상에 사로잡힌 일부 공상적 사회주의자들의 환상에 불과하다고 치부되었다면, 오늘날 우리가 당연시(?)하는 8시간 노동제는 결코 실현되지 못했을 것이다. 나 개인적으로는 "아나키즘"에 대해 일종의 도덕적, 정치적 근본주의(fundamentalism)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소로우가 월든 호숫가에서 은둔생활을 하고, 평생 '전분'만을 섭취하며 살다가 세상을 등진 것처럼(헬렌 니어링은 소로우가 전분만 섭취하지 않고, 다른 과일이나 곡물도 섭취했더라면 좀 더 오래 살 수 있었을 것이라고 한탄했다) 때로 아나키즘은 우리 사회의 여러 단면들에 이미 상당수 녹아들어 있다.


소로우가 그러했던 것처럼 마크 트웨인이 국가를 상대로 벌였던 전쟁에 반대하는 행위, 오늘날 우리 사회에서 문제가 되는 양심에 따라 병역을 거부하는 행위들 모두 직접적인 것은 아니라고 하더라도 "아나키즘"의 영향권 안에 있다고 볼 수 있다. 환경적인 분야에서 이런 아나키즘의 영향은 부인할 수 없을 만큼 강하다. 우리는 "아나키즘"에서 자본주의적 생산양식에 의해 규정된 사회체제에 반대하는 극렬 테러리스트들의 폭탄 세례를 자동연상하지만, 그런 식으로 치자면 "자본주의"는 "아나키즘"이 사제폭발물을 만들 때 공장에서 수없이 많은 아동노동자들을 지속적으로 살해했다는 오명을 오늘날까지 뒤집어 써야 한다. 오늘날의 자본주의가 18세기, 19세기의 자본주의와 본질적으로는 다를 바 없다고 하더라도 이전의 자본주의와는 달라진 것 이상 오늘날의 "아나키즘"은 환경분야, 정치분야, 철학적인 분야에서 각기 다른 형태를 띄고 있다.


볼프는 이 책에서 정치철학적인 측면에서 "국가"의 문제를 다루고 있다. 그는 국가의 본질을 가장 강력한 통치권력으로 규정하고, 국가 권력에 의한 지배와 복종의 관계가 곧 권력의 문제임을 지적한다. 문제는 국가의 형태가 민주공화정제를 표방한다 하더라도 이런 지배와 복종의 권력이 소수에게 집중된다는 측면에서는 전제왕정과 다를 바 없다는 사실이다. 정치철학적인 측면에서 국가를 문제삼는 것은 이렇듯 최고의 권력을 갖는 국가 권위가 정당성을 지녔는가 하는 것이다. 이때 어떤 형태의 국가도 존재해야만 하는 정당성을 지니지 못했다고 주장하는 것이 바로 아나키즘이다. 볼프 역시 어떤 국가의 권위도 정당화될 수 없고, 유일하게 정당한 정치적 신념은 아나키즘이라고 주장한다. 이때 문제는 논리 이전에 현실적으로 이미 최고의 권력으로 존재하는 국가의 권위를 어떻게 볼 것인가의 문제가 남는다.


볼프는 그 문제의 핵심으로 국가가 정당하기 위해서는 시민들에게 복종을 요구할 수 있는 도덕적 의무를 주장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하고, 한 개인이 갖는 최고의 의무는 '자율'에 대한 의무이며, '자율'이란 자신이 하는 행위에 대해 스스로 최종적인 의사결정을 내릴 수 있는 것을 말한다. 시시각각으로 자율과 복종은 충돌하게 된다. 이 책은 그런 문제들을 다루고 있다. 짧은 독후감으로 그 모든 걸 정리할 수도 없고, 그래서도 안 될 것이다. 그것은 이 책의 저자인 볼프가 바라는 바가 아닐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볼프의 이런 견해는 때때로 국가의 권위를 도덕적 권위와 동일시한다는 비판을 받기도 한다. 스스로를 '아나키스트'라고 여기는 사람은 많지 않을지도 모르겠다. 우리들의 작은 일상에도 국가의 권위는 알게 모르게 작용하고 있으며 우리는 영원히 그 틀을 벗어날 수 없을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잠시만 다시 생각해보면 우리들 모두는 크든 작든 자율적인 개인이란 측면에서 어느 정도는 아나키스트일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실망하기엔 아직 이르다. 이 책이 쉽다고는 말하지 않겠지만 한 번쯤 읽어보는 것은 분명 유익한 일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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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바람구두 windshoes

예술의 비인간화 - 호세 오르테가 이 가세트 | 미진사(1988)


"나는 단순히 난파자(難破者)의 사상을 믿는다. 나는 난파한 극적인 밑바닥에서 태어난 사상을 믿는다."

- 호세 오르테가 이 가세트

 

15~16년 전의 나는 "호세 오르테가 이 가세트"가 어떤 인간인지 알지 못했다. 다만, 그가 "대중의 반역"이라는 중요한 고전을 토해낸 스페인 출신의 학자라는 사실 정도만 알고 있었고, 당시엔 민중의 개념(정치적으로는 평등을 좀더 중요한 개념으로 생각하는)이 머리 속에 제법 확고하게 들어있었으므로 가세트의 이 책들도 그와 관련된 무슨 책들이 아닐까 싶어 구입한 것이었다. 지금에 와서 생각해보면 그야말로 코미디에 가까운 구입동기이다. 오르테가 이 가세트는 대표적인 반대중주의, 반민중주의의 기수격인 사람으로 엘리트주의 문화이론가다. 그런 사람의 책을 그저 민중예술론을 펼친 사람이려니(그것도 제목만 보고서) 하고 구입했으니 말이다. 멋지지 않은가? "예술의 비인간화"라니 ... "대중의 반역"을 구입할 무렵에야 그가 어떤 종류의 인간인지 몰랐던 것은 아니지만, 그에게서 나는 묘한 매력을 느꼈다.

 

어쨌든 이 책이 아직 절판되지 않고, 여전히 나오고, 게다가 대학 교재로 쓰이고 있는 걸 보니 반갑다고 해야할지 우울하다고 해야할지 모르겠으나 그가 이 책에서 주장하고 있는 바의 상당 부분은 현재까지 유효하다고 해야 할 것이다. 역자 서문에도 밝혀져 있듯 이 책은 원래부터 단일한 기원을 가지고 있는 책이 아니다. "예술에 있어서의 관점(points of view)에 대하여", "예술의 비인간화", "소설 노우트" 라는 각각 다른 세 편의 예술 에세이를 하나로 엮은 "The Dehumanization of Art and Other Writings on Atrs and Culture"를 저본으로 삼아 우리 말로 옮긴 책이다. 이 책에는 그의 사상을 살펴볼 수 있는 중요한 개념들 - "대중의 반역"이나 "원근법주의", "예술의 비통속성" 등 오늘의 관점으로 보아도 유의미한 여러 개념들이 잘 소개되고 있다. 내가 가진 재주로 그걸 좀더 알기 쉽게 풀어낼 능력이 없으므로 대신 다른 이야기를 좀 해보겠다. 

 

개인적으로 나는 "오르테가 이 가세트"의 삶과 그의 학문 사이엔 커다란 괴리가 존재한다고 여겨왔는데, 그 이유는 그가 학문적으로 주장한 바와 삶의 내용이 달랐기(?) 때문이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국내 학자들의 경우와는 그 괴리가 정반대로 일어났다는 점이다. 가세트는 1883년 스페인 마드리드에서 출생하여 마드리드 대학을 나와, 독일의 라이프찌히, 베를린, 마르부르크 등 독일의 주요 대학에서 수학하였다. 이 과정에서 그는 독일 형이상학과 훗설의 현상학 등에 영향을 받았다. 그는 스페인으로 귀국하여 마드리드 대학에서 형이상학 교수로 취임하여 철학, 문학에 관한 수종의 잡지를 편집하면서 현대 스페인의 중요한 작가들을 서구 문단(당시만 하더라도 피레네 산맥 이남 지역은 유럽이 아니란 식의 관념이  살아있던 시절이다)에 소개했다.

 

이 부분까지 그의 학문적 지향점과 삶의 내력이 크게 달라진다고 볼 수는 없다. 하지만 문제는 그가 스페인시민전쟁 시기를 살았던 학자라는 점이다. 스페인시민전쟁이 발발하자 가세트는 인민전선의 공화국 정부를 지지하다가 결국 국외로 되하여 프랑스, 아르헨티나 등에서 망명 생활을 했다. 인민전선 정부가 붕괴시키고 들어선 프랑코 정부는 가세트를 스페인 국가공인 철학자로 추대하고자 했으나 그는 이를 거절하고 1945년 귀국할 때까지 남미에서 망명생활을 보낸다. 귀국한 뒤에도 그가 프랑코 정부와 밀접한 관련을 맺었다는 이야기는 아직까지 듣지 못했는데, 그는 귀국 후에도 독일 등 유럽의 여러 지역을 다니며 강연 활동을 펼치는 등 스페인을 떠나서 생활하는 기간이 많았고, 1955년 세상을 떠난다.

 

오늘날의 관점으로 보았을 때 호세 오르테가 이 가세트의 사상은 대중사회에 반하는 엘리트주의 문화론으로 비판받는다. 가세트는 "대중"이라는 무자격자의 정치적인 지배를 맹렬히 반대해왔는데, 그는 민주주의에 대한 신념과 열광은 물론 미국의 실증주의(전문기술주의) 풍조에 대해서도 신랄한 비판을 가하는 인물이었다. 그와 비슷한 시기에 F. 니체의 엘리트주의와 오르테가의 엘리트주의는 종종 동일한 것으로 평가되어 동시에 비난의 대상이 되곤 하지만, 이 둘 사이엔 차이가 있다. 가세트의 입장 "다수를 차지하는 열등한 자가 보다 우수한 자에게 반역하고 있다""대중의 반역"에서 그가 염려한 것은 무자격자인 "대중의 지배" 이긴 했으나 이때 그가 말하는 대중이란 단순히 "노동자,농민 계급"을 지칭하는 것은 아니란 것이다.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것은 그가 형이상학자이란 사실이다. 그에게 중요한 것은 정신의 문제이지, 계급의 문제가 아니었다. 다시 말해 오르테가 이 가세트에게 있어 문화적 엘리트란 것은 정치적 엘리트이기 보다는 문화적으로 절대적인 아름다움을 추구할 수 있는, 그로 인해 철저한 고독에 처하더라도 물러서지 않는 그런 귀족성을 의미한다.

 

나는 스페인의 뜨거움, 열정이 만들어낸 허구의 인물 "돈키호테" "오르테가 이 가세트"와 같은 허구적인(?), 좀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비현실적인 역사 인물이 출현할 수 있는 토양이 아니었을까 생각해본다. 그렇게 생각해야 오르테가 이 가세트의 사상이 비로소 눈에 들어오게 되기 때문이다. 이 책과는 그닥 관련이 없는 이야기일 수 있겠으나 그는 1929년 마드리드 대학 학생 연맹이 지도한 반독재 학생 운동에 동참하여 대학 당국에 사표를 제출하고 반년간이나 강의를 거부한 인물이었다. 그는 이 학생 연맹의 요청에 따라 "대학의 사명"이란 주제로 강연도 하고, 대학이 황태자의 어용을 위한 울타리가 되어선 안 되며 생의 긴박과 정열의 한 가운데에서 열광에 대해서는 냉정을, 경박과 불손한 우열에 대해서는 정신의 진지한 예리함을 유지하여 자신을 변혁하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 마디로 말해 그의 사상은 정신적 고귀함을 추구하도록 대중을 일깨우는 것에 있었지, 전제왕정이나 귀족정치를 지지하는데 있지 않았다. "나는 단순히 난파자의 사상을 믿는다. 나는 난파한 극적인 밑바닥에서 태어난 사상을 믿는다." 어떤 맥락에서 읽노라면 오르테가 이 가세트야말로 진정한 아나키스트가 아니냔 생각이 들 만큼(물론 이런 고루한 엘리트주의자가 아나키스트일 수는 없겠지만) 그의 사상은 철두철미하게 고립되어 지고(至高)의 미와 덕을 추구했다. 그의 이론이나 사상이 무엇이었든 간에 나에게 그의 삶이 준 감명은 어느 한 인간이 자신의 신념(엘리트주의)을 극한으로 추구한 결과, 독재정권으로부터 망명하는 방식으로 나타났다는 그 형이상학적 귀족정신의 일단과 그 신념을 추구하는 양심이다.

 

그러니 그의 이론에 전반적으로 동의할 수는 없어도, 그란 한 인간에겐 고개가 숙여지지 않을 수 없다. 우리 사회의 지식인들이 그 반대로 걸어간 수없이 많은 사례들을 살펴보면 더욱더 그렇다. 그의 학문적 주장과 사상에 동의할 수 있는가 없는가와는 별개로 그의 학문과 삶의 내력을 비교하면 진정으로 일치하는 삶을 살았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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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바람구두 windsho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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