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한계급론 - 토르스타인 베블런 | 김성균 옮김 | 우물이있는집(2005)


베블런의 『유한계급론』 2005년 초판을 손에 쥐고 있는 감흥은 약간 남다르다. 이 책이 국내에 처음 나온 것은 지난 1978년 “정수용”이 옮기고, “광민사”에서 펴낸 것이었다. 출간되고 얼마 뒤 이 책은 금서(禁書)가 되었고, 1987년 해금되기까지 법적으로는 읽는 것이 금지 당했다. 오늘날엔 경제학 전공자들보다는 인문 ․ 사회학 전공자들에게 더 많이 읽히는 고전이 금서가 될 어떤 이유가 있었을까? 책을 읽는 내내 마음 한 구석을 찜찜하게 했던 것은 그런 부분이었다. 내가 너무 둔하여 혹시 이 책에서 금지될 만한 어떤 사유(思惟)들을 읽어내지 못한 것은 아닌가?

 

존 K. 갤브레이스는 『갤브레이스가 들려 주는 경제학의 역사』(2002년)에서 베블런의 생애에 대해 간략하게 정리하고 있다. 노르웨이 이민 가정의 후손이었던 베블런은 부유했다고는 할 수 없으나 『유한계급론』에서 그가 유한계급(leisure class)에 대해 보이고 있는 냉소적인 독설과 상관없이 나름대로 경제적 여유를 누리는 집안에서 태어났다고 한다. 다만 그의 부친인 토마스 베블런은 매우 검소한 사람으로 자식을 이웃한 칼턴 칼리지에 입학시키는데, 이것은 자식의 하숙비를 절약하기 위한 조처였다고 한다. 베블런이 유한계급의 “과시적 소비”“과시적 여가” 활동에 대해 보이는 냉소적인 태도는 이런 그의 경험과 무관하지는 않을 것이다.

 

『유한계급론』2005년판은 1980년판에 실렸던 존 K. 갤브레이스의 서문이 빠진 대신, 앨런 울프의 “『유한계급론』의 현대적 의미”가 새롭게 수록되어 있다.

 

마르크스와 엥겔스는 전세계 노동자들이 단결하여 자본가 계급을 타도할 수 있으리라고 생각했다. 혁명적이기 보다는 훨씬 냉소적이었던 베블런은 부자들의 자화상을 신랄하게 묘파하고자 했다. 적어도 19세기부터 부자들은 자신들을 가치 있는 계급으로 믿기 시작했고 또 그들이 소유하고 있다고 믿은 - 가난한 자들은 소유하지 못했다고 믿은 어떤 - 대단한 가치는 근검절약이었다. <앨런 울프, 본문 8쪽>

 

위와 같은 이야기는 베블런과 동시대를 살았던 막스 베버(Max Weber)는 『프로테스탄티즘의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을 통해 “오직 경건한 신앙심만으로 신의 영광을 추구했던 프로테스탄트들이 자본주의 혁명의 핵심 세력으로 부상”하게 되었음을 묘파한 이래 지속된 이데올로기였다. 베블런과 베버 보다 앞선 세대였던 고전파 경제학자 로버트 맬더스(Robert Malthus)는 그의 대표작인『인구론』에서 “빈민에게는 청결함을 권고하지 말고 그 반대의 습관을 기르도록 장려해야 한다. 도시의 거리는 좀 더 좁게 만들고 집집마다 더 많은 사람이 북적거리게 하고 전염병이 잘 돌도록 유인해야 한다.”고 말했다. 물론 베버의 관점을 맬더스의 그것과 일치시킬 수는 없다. 다만 당시 자본가 계급이 자신들이 누리는 부의 원천을 신의 은총과 동일시하고, 빈민 계급을 선천적인 게으름과 나태함으로 인해 구제받을 수 없는 저주받은 계급으로 취급했던 사실은 부인할 수 없다.

 

이에 베블런은 『유한계급론』을 통해 자본가 계급, 그의 용어를 빌자면 풍요로운 소비와 여가를 즐길 수 있는 “유한계급”의 이런 근거 없는 도덕적 자부심에 대해 일침을 가한 것이라 할 수 있다. 베블런은 경제학자로 분류되지만 경제학자 계보 가운데 특정 학파에 속한다고 할 수 없는 특이한 인물이다. 『유한계급론』에서도 역시 경제학적 방법론 보다는 사회학적인 연구 태도를 드러내고 있는데, 앞서 말했던 것처럼 오늘날 경제학 전공자들보다 사회학 전공자들이 이 책을 더 많이 찾고 있는 이유도 그것이다. 다른 측면에서 베블런은 종종 마르크스주의자로 오인되곤 했는데, 그 까닭은 쉽게 확인할 수 있다.

 

유한계급제도는 봉건시대 유럽이나 일본처럼 다른 지역보다 상대적으로 발달했던 야만문화에서 가장 잘 발달한 것으로 보인다. 그런 사회에서는 계급간의 구별이 매우 엄격하게 지켜졌다. 그러한 계급적 차이를 결정하는 것은 무엇보다도 경제적 요인이었다. <본문 23쪽>

 

문화의 진화과정에서 유한계급제도와 소유권제도의 발생시점은 일치한다. 이 두 제도는 경제력이 동일한 상황에서 생겨나기 때문에 발생시점 역시 필연적으로 일치될 수밖에 없다. <본문 43쪽>

 

『유한계급론』은 제1장 「유한계급의 기원」으로부터 시작해 제14장 「금력과시문화를 표현하는 고등학문」에 이르는 과정을 통해 당대 유한계급의 기원과 현시적 소비태도를 분석하고 있다. 그는 유한계급을 분석하기 위해 주변의 여러 학문들 - 인류학·역사학·심리학 - 로부터 여러 가지 방법론을 불러들이고 있는데, 이는 현재 문화연구(cultural studies)의 방법론과 매우 흡사하다. 어떤 의미에서든 베블런을 문화연구의 선구자로 본다 해도 이상할 것이 없어 보인다. 이 부분에 더해 베블런이 노동계급과 여성을 동일시하고 있다는 것은 이제 막 여성 참정권 운동이 시작될 무렵이었던 당시 상황을 염두에 두었을 때 그가 매우 진보적인 사람이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여자에 대한 소유권은 좀더 원시적인 야만문화에서 여성 포로나 노예를 강탈하면서 생겨난 것이 확실하다. 여자를 강탈하여 전유하게 된 최초의 이유는 여자들이 전리품으로 유용했기 때문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전리품인 여자를 적으로부터 강탈하는 관행은 소유와 결혼을 동일시하는 관례를 낳았고, 그로부터 남성이 가부장 역할을 하는 가부장적인 가족이 생겨나게 되었다. 이 과정은 여자들을 비롯한 다른 포로들이나 하층민들까지 노예화되는 과정, 그리고 적으로부터 강탈해온 여자들 이외의 다른 여자들에 대해서까지 소유 - 결혼 관례가 확대되는 과정을 동반했다. <본문 44쪽>

 

베블런은 유한계급을 분석하면서 이들의 행동 양식이 본질적으로는 과거 야만 시대의 약탈문화로부터 조금도 변화되지 않았음을 지적한다. 더 이상 공동체의 일상적인 삶이 약탈 활동에 의존하지 않게 된 뒤로도 축적된 금전이 약탈 활동의 명예와 우월함, 성공을 대표하는 인습적인 지표의 지위를 차지하게 된 것이다. 공동체에서 존경받을 수 있는 어떤 위치에 서고자 한다면 필수적으로 일정한 부를 축적해야 하며, 명성을 지속적으로 유지하기 위해서는 부를 획득하고 축적한 것 못지않은 소비가 필요해진다. 베블런은 이를 "금력과시문화(pecuniary culture)"라 불렀다. 그러나 재화를 개인의 단독 소유물로 인정하는 모든 사회에서 한 개인이 정신적 안정감, 만족감을 얻기 위해서는 친숙한 부류보다 더 많은 재화를 소유하는 것이 필수적으로 요구된다. 그런 사회에서는 다른 사람들보다 더 많은 것을 소유하는 것이 최고의 기쁨이기 때문이다. 이렇듯 약탈과 사냥을 통해 자신의 우월함을 과시하는 것이 인습적인 지표의 지위를 차지하게 되자 약탈이 아닌 생산 활동, 육체노동은 상대적으로 비천하고 가치 없는 것으로 폄하되었고, 여성과 여성의 활동 역시 마찬가지 취급을 받게 된다.

 

인권운동가 서준식은 『서준식의 생각』에서 “일찍부터 땀 흘리며 근육을 단련하는 일”이 “이 세상에서 대접을 받지 못하는 ‘짓’이라는 사실”을 어떻게 깨우치게 되었는지 이야기한다.

 

아버지께서 경영하시던 영세한 가내공장 직공들은 거의가 내일에 대한 희망도 인생설계도 없는 떠돌이들이었다. 그들은 월급을 받으면 그것을 며칠 사이에 술과 오입질에 탕진해 버렸고 월초의 일손 부족은 늘 악몽처럼 아버지를 괴롭혔다. 뼈가 다 굵은 아들들을 바라보시는 아버지의 애절한 눈길을 외면하지 못했던 나는 언제나 알아서 작업복으로 갈아입었지만 형이나 아우는 잽싸게 도망치기 일쑤였다. 땀과 먼지로 범벅이 되어 한나절을 보낸 나에게 아버지께서는 정말 고마워하시고 따뜻한 치하의 말씀도 잊지 않으셨다. 그러나 나는 아버지의 진짜 기대는, 고된 육체노동을 묵묵히 견딘 나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도망쳐 버린 아들들에게 있다는 것을 어슴푸레 알고 있었던 것이다.
‘근육’이 ‘입’이나 ‘잔머리’에 열등감을 느껴야 하는 사회, ‘근육’을 단련하면 할수록 손해를 보고 주변으로 내몰리는 사회에 대한 회의를 떨쳐내지도 못한 채 나는 고등학교 1학년말부터 근육단련 대신 지성 쌓기를 시도했다. 왠지 올바른 길을 포기하고 나 자신의 믿음을 배신한 것만 같았던 그때의 쓴맛을 나는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서준식(2003년), 「운동가의 글쓰기를 생각하며」, 『서준식의 생각』, 야간비행> 중에서

 

베블런은 남자들(유한계급)이 존경을 얻고 유지하려면 단순히 부와 권력을 소유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며 이를 증거로 제시해야 한다고 말한다. 문명화된 사회에서 여가를 즐기는 것, 낭비에 가까운 풍요로운 소비는 우아하고 고결한 것으로 보인다는 것이다. 베블런이 주장하는 유한계급의 여가는 단순한 게으름이나 아무 일도 하지 않는(無爲)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시간을 비생산적인 용도로 소비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혹은 물질적 소비를 동반한 과시적인 소비를 통해 시간을 낭비하는 것을 의미한다. 훌륭한 예의범절은 인간의 탁월함, 가치 있는 영혼의 소유자임을 드러내는 방편에서 전도되어 허례허식으로 흐를수록 더욱 높은 사회적 지위와 권력을 누리는 유한계급의 상징이 된다.

 

『유한계급론』이 오늘날 우리에게 의미하는 것은 무엇일까? 아직 IMF한파가 채 가시기 전이었던 2000년 2월 18일자 <한국일보>는 대우경제연구소의 「소득불평등의 심화에 따른 소비의 왜곡현상」란 보고서를 인용하여 “우리나라의 고소득층은 자신을 「과시」하기 위해 소비를 하며, 중산층은 이들을 「모방」하고 저소득층은 아예 「자포자기」심정으로 과소비 대열에 끼어든다.”고 보도하고 있다. 베블런은 필요(need)와 욕구(want)를 구분하고 있는데, 이를 명징하게 보여줄 수 있는 사례가 보석이다. 보석이 가치를 지니는 까닭은 그것이 결국 무가치한 것이기 때문이다. “다이아몬드는 영원하다.”는 드비어스(De Beers)의 광고는 단지 투명하고 반짝이는 돌멩이에 불과한 다이아몬드를 그 무엇과도 대체될 수 없는 가장 로맨틱한 사랑의 상징(혼인 예물)으로 만들었다. 다이아몬드는 과시적 낭비라는 명예로운 목적에 이바지함으로써 아름다운 물건(명품)이란 명성을 획득한다.

 

이는 다시 명품(名品) 소위 “럭셔리 신드롬(luxury syndrome)”으로 이어진다. 베블런은 제5장 「생활수준을 결정하는 금력」에서 현대사회의 대다수 사람들이 육체적 안락에 필요한 것보다 더 많은 소비를 하는 직접적인 이유는 “과시적 소비에 지출하는 비용을 늘리기 위한 의도적인 노력이 아니라 인습적인 체면치레의 기준에 맞추어 소비하는 재화의 양과 질을 높이려는 욕망에 있다.”고 말한다. 공동체가 인정하는 명예롭고 품위 있는 생활양식의 일반적인 수준이 최상류계급에 맞추어져 있기 때문이다. 현대 사회의 명품 소비 열풍은 이렇듯 자기 자신을 - 실제 혹은 그보다 더 높은 지위의 인간으로 - 드러내보이고자 하는 우리들의 욕망에 의한 것이다. 개념미술가(conceptual art) 제니 홀저는 과시적 소비가 일상적으로 일어나는 공간인 도시의 한 전광판에 “Protect Me From What I Want(내 욕망으로부터 날 좀 지켜줘)”란 문구를 내보내는 실험적 작품을 전시한다. 홀저는 베블런과 마찬가지로 현대인의 삶, 그 핵심에 놓인 가장 중요한 키워드를 ‘필요(need)’가 아닌 ‘욕망(want)’이라고 생각했다. 베블런은 “습관적으로 비싼 물건을 찾게 되고 아름다움과 명성을 습관적으로 동일시할수록 아름답지만 비싸지 않은 물건은 아름답게 평가되지 않기에 이른다.”고 말한다. 압구정동의 모 백화점에서 가격을 올리자 물건이 좀더 잘 팔리더라는 일화가 이해되는 대목이다.

 

경제학자들, 『국부론』의 아담 스미스, 리카도와 같은 고전학파나 시카고학파 같은 신고전학파에 이르기까지 경제학자들은 인간을 합리적인 이기주의자로 간주하고, 이런 원리에 따라 소비가 이루어진다고 주장해왔다. 그러나 베블런은 고전적 경제학자들의 가정에 반하는 논리를 주장한다. 그에 따르면 소비의 원인은 단시 필요만이 아니라 자신의 신분과 재력을 과시하여 현대 대중사회에서 자신의 우월한 지위를 자랑하고 싶은 이들에 의해 과시적으로 일어난다. 그들은 소비, 그것이 물질적인 것이든, 시간이든 낭비를 일삼는데, 이런 과시적 소비는 유한계급에 속하지 못하는 이들에 의해 다시금 모방된다. 이런 현상을 오늘날 우리는 “베블런 효과(veblen effect)” - “값이 비쌀수록 호사품의 가치는 커진다.”- 라 부른다. 즉, 경제학적 관점에서 보자면 비합리적인 소비 행태가 나타나는 것이다.

 

역사학자들이 20세기를 규정하는 가장 중요한 사건 중 하나는 분명 사회주의 체제의 출현이었다. 어떤 역사학자들은 20세기를 러시아 10월 혁명과 함께 출발해 지난 1991년 무렵 구소 연방의 해체로 종결되었다고 생각한다. 이것은 역으로 지난 18세기 무렵 서구 유럽이 제국주의를 통해 축적한 자본을 통해 본격적으로 가동된 자본주의에 대한 저항을 20세기의 가장 중요한 역사적 사건으로 평가하고 있다는 뜻이다. 자본주의를 구성하고 있는 두 가지 중요한 축은 ‘물질주의와 상업주의’이며 이것을 가능하도록 한 토대엔 인간의 욕망이 잠재해 있다. 우리들은 자신의 몸에 새겨진 안락함의 기억이 얼마나 질긴지 잘 알고 있으며, 대부분은 그 기억에 맞서 싸울 생각조차 하지 못한다. 20세기의 사람들은 기독교나, 이슬람교, 불교, 유교와 같은 종교적 가치에 의해 지배당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20세기의 인류는 이미 단일 종파, 단일 종교로 통합되었는데, 그 신의 이름은 바로 “물신(物神)”이다.

 

베블런은 인간의 소비 혹은 욕망을 합리적인 것으로 단정한 고전학파나 신고전학파 경제이론에 매우 날카로운 비판을 가했다. 그렇다고 이들의 경제이론을 완전히 부인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베블런의 비판이 날카롭긴 했으나 그가 경제학에 새로운 체계를 세운 것은 아니었고, 마크르스처럼 유한(자본가)계급에 대해 혁명을 주창한 것도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오늘날 우리가 베블런의 공적을 폄하하거나 무시할 필요는 없다. 그가 유한계급에 대해 던졌던 냉소는 현재에도 여전히 유효하니까 말이다. 베블런의 지적들은 이후 정치적인 측면에서 C.W.밀즈(『파워엘리트』), 사회학적인 측면에선 피에르 부르디외(『구별짓기 : 문화와 취향의 사회학』), 그리고 문화적인 측면에선 제임스 트위첼(『욕망, 광고, 소비의 문화사』, 『럭셔리 신드롬』)에 의해 오늘날 좀더 세부적인 측면으로 분화되어 풍요롭게 계승되고 있다.

 

『유한계급론』의 2005년판 역자는 베블런의 비판을 “슬픈 냉소”라 말한다. 나는 지난 한 학기 동안 “문화”를 공부하면서 “문화연구”란 학문이 현실 사회를 변화시킬 대안 혹은 새로운 패러다임(계몽의 기획)을 모색하는 학문이 될 수 있는가에 대한 고민에 빠져들어야 했다. 세상은 너무나 빠르게(물론, 본질적으로는 변화가 없다손 치더라도) 변하는데, 학문하는 자의 발걸음은 이리도 느리기만 한 현실 자체가 사회와 시대가 우리에게 보내는 냉소는 아닐까 라는 고민이었다. 그럼에도 여전히 “친구여! 바로 보마!”란 다짐을 할 수 밖에 없는 것은 느려터진 한 인간의 세상사는 법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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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바람구두 windsho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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