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운동의 새로운 프레임은 가능한가
- 이명박 시대의 문화운동, 어디로 가는가

저는 지역에서 발간되지만 전국적으로 소통되는 계간지 편집장으로 이 자리에 나왔습니다. 계간지는 월간지나 주간지처럼 특종을 쫓는 것처럼 시대의 이슈를 쫓아가기 보다는 담론의 생산과 매개, 비평에 주력하는 편입니다. 계간지의 책무는 시대를 읽어내고, 그 안에 은폐되어있는 구조를 밝히고 드러내어 지식사회로부터 파급되는 학문적 . 담론적 이슈를 생산하고 매개하는 역할을 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런 차원에서 계간지는 지식과 담론의 최전선일 수 있고, 또 다른 의미에서 오늘 저는 이 자리에 참석하신 분들 가운데 비교적 자유로운 입장에 서 있다고 생각합니다. 사실 제가 이런 이야기를 하는 까닭은 오늘 제가 말씀드리려는 내용이 다분히 원론적이고, 어떤 의미에서든 이미 많이 나왔던 이야기들을 반복할 수밖에 없다는 변명이기도 합니다. 그럼, 시작하겠습니다.

만약 지배계급이 합의를 상실하여, 즉 더 이상 ‘지도’하지 못하고 오로지 억압만을 행사함으로써 ‘지배’한다면, 이것은 틀림없이 위대한 대중들이 그들의 전통적인 이데올로기로부터 분리되고 과거에 믿었던 것들을 더 이상 믿지 않게 되었음을 의미한다. 위기는 바로 오래된 것은 죽어가고 있으나 새로운 것은 아직 탄생하지 못한 시기이다. 이러한 공백기에 대단히 다양한 병적 증상들이 나타난다. - 그람시, 『옥중수고』 중에서

체제에 대한 고민 없는 문화담론은 정책 판타지

그람시의 말에서 지배계급을 진보 혹은 좌파로 살짝 비꼬아놓으면 현 단계 우리 문화운동 진영이 처한 현실과 흡사합니다. 민주화 이후 문화운동의 현재는 최근 들어 정치적 투쟁에서 패배했을 뿐 아니라 문화투쟁, 즉 ‘정서와 의식’을 얻기 위한 싸움에서도 패배했습니다. 민주화 이후 대부분의 기간 동안 문화운동은 사회를 이끌어가는 아방가르드가 되어본 적도 없고, 과거 1980년대 운동적 관성으로부터 완전히 자유롭지도 못했습니다. 그 사이 변화된 현실 속에서 대중의 삶과 일상은 주변적인 것으로만 남았습니다. 경제위기 이후 새로운 문화투쟁이 대중의 경제적인 토대를 사이에 두고 치열하게 전개되고 있다는 것조차 깨우치지 못했습니다.

1970년대 이후 세계경제는 사실상 장기적인 침체 국면에 들어섰고, 제조업 분야의 이윤율 하락을 극복하기 위한 방편으로 시작된 것 - 경쟁력을 상실한 고비용 저이윤의 제조업의 과잉설비와 과잉생산을 해소 - 이 신자유주의의 시작입니다. 다시 말해 신자유주의는 세계경제위기의 원인이 아니라 결과라 할 수 있습니다. 신자유주의가 본격화된 90년대 중후반 한국사회는 미래의 성장 동력은 지식 경제 산업에 달렸다는 명분 아래 IT, BT, CT의 순으로 매달렸지만 별다른 성과를 거두지 못했습니다. 자본과 자본의 투쟁이라는 금융자본주의의 대결 속에서 한 차례 경제위기를 경험한 뒤 사회권력은 재벌권력 앞에 무릎을 꿇었고, 자본주의 체제의 대안 운동으로 출현했던 노동계급운동은 조합투쟁으로, 계급 위주의 단선적인 운동 방식을 비판하며 출현한 생태운동, 여성운동, 소수자, 문화운동 등은 자본주의를 비판하는 운동이면서 동시에 체제의 내성을 강화하는 운동으로 변질되거나 대안담론을 창안해내지 못하고 있습니다.


전효관 전남대 문화전문대학원 교수, 고명철 문학평론가, 박승옥 시민발전 대표

요즘 우리 사회에 유행하는 담론의 출처는 대부분 소비자본주의의 마케팅 이론(아마도 현존하는 모든 학문 중에서 가장 유능하고, 유효하며 급진적이고, 심지어 너무나 반혁명적이라 혁명적이기까지 한)에서 비롯되고 있으며 문화담론 역시 이윤 중심의 마케팅 이데올로기에 심각하게 오염되어 있습니다. 문제는 80년대 기동전의 시대는 끝났고, 이제 자본과의 대결은 진지전의 시대가 되었다고 주장하며 새로운 문화운동의 담론이 만들어냈던 진지는 더 이상 진지가 아니라 적과 동침하는 곳이 되었다는 사실입니다. 이제 문화운동의 새로운 프레임을 구축한다는 것은 지난하고 괴로운 투쟁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자신의 그림자와 싸워야 하는 피터팬처럼 우리는 자신의 그림자와 싸워야 하기 때문입니다. 종종 담론의 위기를 염려하는 것은 당장의 끼니를 잇는 일에 비해 덜 중요한 일로 간주되지만 당장의 끼니를 잇는 일과 더 나은 미래를 상상하는 일은 동시에 시급한 일이며, 이 둘 가운데 어느 하나도 무시되거나 과소평가될 수 없습니다. 지금의 위기는 새로운 위기가 아니라 아직 새로운 것이 탄생하지 못했기 때문에 닥친 위기이기 때문입니다.

담론의 위기 - 이명박 정부의 출현이 위기인가? 민주화 이후 20년의 위기인가?

롤랑 바르트는 “거짓말보다 신화가 더 많은 것을 속인다”고 이야기했는데, 정권을 재탈환한 측이나 정권을 빼앗겼다는 측이나 ‘잃어버린 10년’이란 표현은 생각 보다 더 많은 것들을 은폐하고 있습니다. 진보대중의 입장에서 보았을 때, ‘잃어버린 10년’은 정권교체가 실제로 일어났던 사건이었음을 전제하기 때문입니다. 1987년 이후 전반기 10년이 영남 지역주의에 기초한 노태우 ․ 김영삼의 연속 정권이었다면 1987년 이후 후반기 10년은 호남과 비영남 지역주의 연합에 따른 김대중 ․ 노무현의 연속 정권이었습니다. 전반기 10년과 후반기 10년을 ‘민주 대 반민주’, ‘진보와 보수’, ‘통일 대 반통일’의 패러다임만으로 규정한다면 현실의 일부 양태만을 확대해석하는 겁니다.

현재 담론의 위기는 1980년대 말 현실사회주의의 붕괴와 정치 / 사회 / 문화의 전 영역에서 일어난 세계자본주의체제의 혁신과 변화의 속도에 성찰과 사유의 속도가 뒤따르지 못하면서 체제의 바깥을 상상해내지 못한 데 원인이 있습니다. 현재의 위기는 표면적으로 신자유주의와 세계화에 따른 경제의 위기, 민주주의의 위기로 나타나고 있지만 이 위기의 근본적인 원인은 궁극적으로 현재와 다른 것을 상상할 수 없는 담론의 위기이기도 합니다. 몇 해 전부터 1987년 체제의 종말, 진보담론의 위기를 말하지만 우리는 스스로의 현실에 착근한 담론을 만들어 내지 못했습니다. 1980년대 사회구성체 논쟁이 있었지만 그 당시 논쟁과 요즘 민주노동당 내부에서 평등파와 자주파 논쟁 사이에 질적인 비약은 거의 없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1980년대 문화운동을 일컬어 문화연구 없는 문화운동의 시대였고, 1990년대 후반은 문화운동 없는 문화연구의 시대라고들 하지만, 1980년대 문화운동의 내부에는 사회주의적 대안 담론과 민족주의적 대안 담론이 나름대로 각축을 벌였고, 이 둘을 봉합해온 것이 민주화 담론이었습니다. 절차적 민주화 이후 새로운 담론은 생산되지 못했거나 과정 중에 있고, 1990년대 이후 문화운동은 국가의 문화정책에 비판적으로 개입하여 국가의 문화권력과 시장자본주의의 문화적 독점에 반대하는 등의 제도적 개입(다시 말해 문화정책의 비판, 기획, 실천)으로 방향을 선회해왔습니다. 1990년대 이후 2000년대 중반에 이르는 현재의 문화운동은 운동 없는(문화정책운동이 아니라) 정책문화운동이 되었고, 장기적 전망 없는 운동이었다고 부를 수 있을 겁니다.

또 한 가지는 현재까지 연결되는 문제인데 1980년대와 1990년대 문화운동에 공통적으로 내포된 문제 중 하나는 대중과 일상에 대한 중요성은 인식하면서도 운동 자체의 측면에선 여전히 대중에 대한 고려가 부족했다는 겁니다. 전자가 운동적 관점에서 예술가들의 예술적 형상화 작업을 통해 대중의 계급적 각성을 이끌어 내려는 문예운동이었다면, 후자는 비판적 현실개입을 통해 정책화하려는 과정에서 문화기획자들의 지식인 운동(시민운동, 청원권 운동)으로 변질되면서 대중을 참여로부터 소외시켜왔습니다. 2000년대 내내 지역과 대중을 이야기했지만 민주주의와 마찬가지로 이것이 대중 속에 깊이 착근하지 못했다는 점에서 문화운동의 위기는 이명박 정부의 출범에 있는 것이 아니라 민주화 이후 20년 동안 배태되어 온 것이라 말할 수 있습니다.

문화운동만이라도 다른 세상을 꿈꿔보라!

‘노동사회’로 표상되는 1980년대 문화운동 내부의 반체제적 지향과 변혁적 과제들은 1990년대 이후 문화민주주의, 문화적 권리 확대를 위한 투쟁으로 전화되어 가는데, 이 같은 방향 전환의 지향점은 국가의 문화정책에 참여함으로써 문화적 공공영역을 확대하는, 장기적으로 ‘노동사회’에서 ‘문화사회’로의 이행이었습니다. 문화사회란 자본의 발전된 생산력을 기초로 노동시간을 감축하고 자유 시간을 증대하여 자유시간의 자기조직화를 통한 문화 활동의 증대가 삶의 중심적인 활동이 되는 사회로의 이행을 의미합니다. 문화사회로의 이행을 촉진하기 위해서는 문화적 권리 확대 투쟁이 필요하다는 의미 또한 내포하고 있습니다. 이 과정에서 문화운동은 자체적으로 정치적 변화와 노동운동 및 시민사회운동과의 적극적 연대가 필요하다는 점을 인정합니다.

그러나 지금 생각해보면 ‘문화사회’론은 과연 우리 현실에 적합한 것인지, 신자유주의와 세계화의 흐름에 저항할 수 있는 담론이었는지에 대해 고민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문화사회’론은 시민혁명 이후 시민사회가 성숙했다는 유럽식 민주주의, 세계자본주의 체제의 상부를 점유하고 있는 유럽의 경제적 현실을 반영하고 있다는 점에서 ‘20대 80 사회’로 표상되는 사회양극화에 노출된 한국사회의 현실에 부합되기 어려운 측면이 있고, 자본주의 혹은 체제가 타협에 나설 것이라는 전제가 밑바탕에 깔려있다는 점에서 현실 자본주의에 대한 지나친 낙관에 의존합니다. 과거의 제3세계 담론에 비추어보았을 때, 문화사회론의 밑바탕에는 대한민국 사회를 기본적으로 제1세계 혹은 그 연장선상으로 규정하고, 다른 여타 지역에 대한 배려가 없는 담론이기도 합니다. 유럽식 민주주의, 유럽식 문화에 대한 동경을 밑바탕에 깔고 있다는 점에선 또 다른 문화적 제국주의로 흐를 수 있는 위험이 있습니다.


이 같은 낙관은 민주화 후반기 10년, 이른바 ‘잃어버린 10년’의 문화운동 전체를 관류하는 흐름이기도 했습니다. 또한 문화운동이 국가와 지방자치단체의 문화정책에 개입하고, 한정된 재원 속에서 분배와 권리보장의 시민권 운동이 되었다는 것은 체제내부로의 포섭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과연 이명박 정부의 출범이란 현재의 정치적 상황에 대해 대중이 느끼는 체감온도와 문화운동과 문화권력이 느끼는 체감온도는 비슷할까요?


전성원 황해문화 편집장, 우기동 경희대 철학과 교수, 최준영 문화연대 문화개혁센터 팀장

문화운동의 시민운동화 흐름은 대중의 시각에서 보았을 때 이미 문화적 시민권을 확보한,  이해관계에 따른 주류운동이 되었습니다. 비록 사회의 다른 영역과 비교했을 때 여전히 열악한 조건에 놓인 입장이므로 억울하겠지만 ‘잃어버린 10년’ 동안 문화운동이 좀더 마이너한 입장의 사람들(대중)과 얼마나 연대했었는지 반추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단적인 예로 1988년 UIP영화직배 이후 20년, 1998년 IMF외환위기 이후 한미투자협정을 기점으로 10년 간 지속된 스크린쿼터사수투쟁은 신자유주의 반대운동과 결합되면서 문화운동의 중요한 아젠다로 떠올랐습니다. 하지만 반대투쟁에 대한 비판 역시 만만치 않았습니다. 비판의 주된 요지는 스크린쿼터사수투쟁이 국산 영화를 “21세기 복합영상산업의 핵심 고리”이고 “미래경제의 핵심성장엔진”이라 규정하는 것 자체가 문화예술을 산업으로 파악하고 있으면서도 다른 한 편으론 영화산업 내부구조의 민주화, 영화제작에 참여하는 수많은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문제는 외면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과연 스크린쿼터사수투쟁이 농민들의 미국산 쇠고기 수입반대 투쟁보다 더 큰 공감대를 얻었는지 의심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문화운동의 새로운 프레임은 일상의 정치적 상상력에 달렸다

결론적으로 말해서 현재의 문화운동은 문화정책적 차원에서 문화산업을 육성하기 위한 하부구조로 포섭되었고, 자본주의 국가의 우파정치와 조우하는 결과를 초래하고 있습니다. 그 결과 문화운동의 공공성은 지배이데올로기를 강화하는 속성을 극복하지 못하고, 시민사회 내부의 냉소를 불러일으키고 있으며, 냉소는 다시 사회적 ‘재봉건화’의 위험으로 나타났습니다. 문화운동의 미래는 문화운동과 담론이 애초에 출현할 당시에 품었던 비판 의식 - 사회의 제 분야에 널리 분포하여 존재하는 권력의 다양한 형태를 폭로하고, 논쟁적인 비판 - 을 회복하는 데 있으며 문화운동에게 주어진 새로운 임무는 문화민주주의를 보다 급진적이고 다원적인 민주주의로 심화시키고 확장해나가는 데 있습니다. 현 단계 문화운동의 새로운 프레임을 구축하기 위해서는 운동의 중심, 운동의 주체, 운동의 대상에 대한 새로운 문제제기와 성찰이 필요합니다.

현재의 문화운동 프레임은 단순히 개혁정당의 구조화와 정책의 부재로 인해 실패한 것이 아니라 대중의 실제 생활 근거라 할 수 있는 거의 모든 정치적인 영역에서 실패한 결과입니다. 문제는 이 실패의 내용을 좀더 차분하게 살펴볼 필요가 있다는 겁니다. 좀더 나은 공동체사회를 만들어가는 방법 중 하나는 올바른 국가정책을 수립하고 실행하는 것에 있긴 하지만, 시민사회가 국가정책에 지나치게 목을 매는 현재의 방식으로는 국가권력에 너무 많은 권력을 위임하는 결과를 초래하게 되고, 이는 국가권력이 약화되는 세계화 시대의 현실에서 궁극적으로 재벌권력에 목을 매는 상황이 됩니다. 책임질 수 없는 구호를 남발하는 것과 실질적인 물적 토대(실천력)를 구축하는 일 사이에서 이제 문화운동은 일상의 생활공간에서 모든 정치적인 것들의 귀환을 위하여 싸워야 할 때이고, 문화운동의 새로운 프레임을 구축하는 일은 장기적 전망, 다시 말해 담론과 철학을 귀환시키는 일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 위의 글은 민예총이 지난 1월 24일 주최한 신년토론회 <이명박시대의 문화운동, 문화정책 ⓛ - 오늘의 문화운동, 어디로 가는가>에서 토론자로 발표한 내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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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방가르드

- 김영승


아무도 없는 곳
그게 유토피아고
아방가르드다

오늘은 청명(淸明)이고 내일은 한식(寒食)

공주횟집 진열장엔 산낙지 15,000원이라고
써 있다

나는 나의 심야(深夜)산책을 재개(再開)하고

걷고 또 걸어서
연수성당 뒷길

여성회관 옆 조일사 건물을 훤히
쓰윽 한 번 올라갔다가 내려온다

그 2층 짜리 낡은 건물 옥상엔
역시 아무도 없다

불량(不良) 청소년들도
오지 않는
적막강산(寂寞江山)

― 그렇다고 산낙지가 어떻게 한 접시에 15,000원이냐?

낙지 한 마리 없는 옥상(屋上)은
칠흑의 심해(深海)

멀리 아파트가 인공어초(人工魚礁) 같고

여자(女子)들은 다 아전인수(我田引水)
발버둥을 치고 있다


출처 : 문학들, 2008년 가을호(통권 13호)

*


김영승 시인의 <아방가르드>는 첫 구절만으로 이미 시가 되었다. 그러므로 뒷이야기는 묘사지만 묘사가 아니라 진술이다. 인공어초, 칠흑 같은 심해에 살면서도 제 논에만 물 대려는 것이 어디 여자들뿐일까. “아무도 없는 곳/ 그게 유토피아고/ 아방가르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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