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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1.03.29 해리 캘러한(Harry Callahan) - 아내의 누드

해리 캘러한(Harry Callahan, 1921 - 1999 , 미국)


Harry Callahan - Eleanor, Chicago, 1948


Harry Callahan - Eleanor, Chicago, 1948


Harry Callahan - Eleanor, New York, 1945


1921년 미국 미시건주 디트로이트에서 태어나 미시건 주립대학에서 공학을 전공하다가 1938년부터 사진가의 길로 들어선 해리 캘러한. 신현림의 시집에도 인용되었던 적이 있어 일반인에게도 비교적 잘 알려진 사진가이다. 그는 독일의 바우하우스 운동의 전통을 이어받아 시각적 인식이라는 새로운 방향을 제시하며 조형적인 사진의 길을 닦은 사진가라는 평을 받는다. 1941년 안셀 아담스의 사진 워크숍에 참가하면서 본격적으로 사진을 찍기 시작한 그는 1944년부터 1945년까지 제네럴 모터스(GM)사의 사진실에서 근무했으며,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뉴욕에서 개인작업에 열중하였다. 그는 1979년까지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기도 했다(해리 캘러한에 대해서는 언젠가 사진 분야에서 자세히 다룰 생각이므로 여기까지만 하도록 하고...).

때로 어떤 관심들은 괄호()안에 그냥 담겨 있다면 좋을텐데 하는 생각을 한다. 입밖으로 나와야 말이 된다는 건 사실이지만 때로 입 안에 고스란히 담겨 있을 때는 이해해 줄 수 있는 이야기가, 생각들이 있음을 생각하게 된다. 어떤 말들, 어떤 생각들은 사적인 자리에서 사적인 대화를 통해서는 충분히 납득하고 인정해줄 수 있다. 그것은 사적인 영역에 속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가령 나에게도 극도로 싫어하는 기관이나 단체에 속한 사람에게 담배 한 개비를 나눠주고 서로 살아가는 이야기 정도는 나눌 수 있을 만큼의 융통성은 있다. 적당한 파격은 즐거움을 주지만 그 파격이 도에 넘친다면 황당해진다. 이와 비슷한 맥락에서 포트레이트 사진을 촬영할 때 가장 고심 되는 것은 그(피사체)와 나의 심리적 거리이다. 그것은 글을 쓰는 행위와는 또 다른 것이다. 가까운 거리에서 망원렌즈로 잡게 되면 피사체라고 정의되는 대상의 땀구멍까지 들여다 볼 수 있다. 그런데 문제는 그 피사체가 영혼이 담긴 그릇이라는데 있다. 그는 그냥 object가 아닌 Human이니까. 카메라를 구입하고 가장 먼저 카메라에 담은 대상이 누구일까? 아마도 대개는 가족일 것이다.

사랑하는 이를 사진에 담는다. 


지금은 포기했지만 처음 카메라를 구입하고 아내에게 누드를 촬영해보자는 제안을 해본 적이 있었다. 그러나 단칼에 거절당하고 말았다. 하긴 아마추어 사진가인 나의 앵글이 담아주길 희망하는 누드가 어디 그리 흔하겠는가? 스튜디오가 있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나란 사람이 성(性)과 성(聖)을 초월한 사람도, 그러고 싶은 사람도 아니니까, 신뢰하기에도 어려움이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나는 종종 아내의 사진을 찍고 싶다. 어느 순간만큼은 세상 그 어떤 여인보다 아름다우니까.
그 순간을 영원히 기록하고 싶은 것이다.


결혼할 때 사람들은 대개 야외 촬영이란 과정을 거친다. 우리 부부는 스튜디오 촬영은 생략했지만 야외촬영까지 생략할 만큼 과감한 스타일은 아니라서 그냥 예식장에서 정해준 사람에게 부탁해 사진을 찍었다. 요새 결혼 사진이란 게 디지털 과정을 거치므로 잡티 하나 없이 예쁘게 나오긴 했지만 나는 그 여자가 예쁘다는 건 인정해도 내가 살을 섞고 사는 여자란 생각은 들지 않기 마련이다.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더 차이가 날지도 모른다. 예를 들어 연애는 환상이고, 결혼은 현실이라는 차이만큼이나 큰 것이다. 즉, 결혼 사진에 담긴 아내와 나는 서로 사랑하는 포즈는 있을지 몰라도 그럴 마음의 여유는 담기지 못한 것이다. 웃으라니 웃고, 한 쪽 다리를 옆으로 기대라면 기대고, 팔짱을 끼라면 끼는 사진에는 사랑의 포즈는 있어도 정작 사랑은 없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위의 '해리 캘러한'의 부인 엘리노어를 촬영한 동명의 작품은 내게 커다란 감동으로 다가 오곤 한다.
그녀는 뛰어난 모델이 아니므로 그 자체로 뛰어난 모델이다. 거기엔 남편을 위해 기꺼이 촬영에 응한 그녀의 사랑도, 망설임도, 기대도 고스란히 담겨져 있다. 무엇보다 남편에 대한 더할 나위없는 신뢰가 .... 침대에 앉아 창가를 바라보고 앉은 엘리노어의 모습, 아마 정면을 보지는 못했지만 거뭇하게 변해 있을 젖꼭지와 유방은 처져있을 것이고, 아랫배에도 살이 올라 겹으로 접혀있을 것이다. 허리에도 살이 올라 날씬한 처녀 때 모습은 오간데 없다.

거기에서 성적인 메시지를 느끼지 못한다면 그 사람은 바보다.
그리고 거기에서 오로지 성적인 메시지만을 받는다면 그 사람 역시 바보다. 거기엔 부부로서 당연히 갖추고 있을 세속으로서의 성(性)이 있고, 그마저 초월해버린 성(聖)이 있다. 한 인간의 인간에 대한 사랑에 오로지 성(聖)만 있을 수도, 성(性)만 있을 수도 없기 때문이다. 그 두 가지를 모두 포용한다는 거...

연애 과정에서는 알기 어려운 것. 소녀의 미성숙한 아름다움에도, 처녀의 신비로움에도, 풍만한 여인의 몸매에도 담을 수 없는 남성의 원초적 본능이 느끼는 아름다움. 그것이 아내라는 이름의 여자에게는 있다. 해리 캘러한의 사진엔 그것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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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바람구두 windsho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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