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주석'에 해당되는 글 1건

  1. 2010.09.15 오주석 선생님, 당신을 그리워하며...

미술사학자 오주석(吳柱錫) 선생이 1년 반의 백혈병 투병 끝에 지난 5일 오후 9시 반 서울 여의도성모병원에서 향년 49세의 일기로 소천(召天)하셨다는 기사를 읽을 때 제 마음은 쿵하고 저 밑으로 떨어지는 기분이었습니다. 매번 당신의 건강을 묻던 김명인, 이용식, 노대명, 장석남, 백원담, 김진방 편집위원들 그리고 당신과 함께 자문회의에 참가하시던 김동춘, 홍윤기, 한홍구 선생님들이 늘 당신의 안부를 물었는데, 번번이 제가 연락을 제대로 드리지 못하다가 건강이 많이 호전되셨다는  당신의 이야기가 있었노라, 조만간 한 번 나오시겠노라, 하시더란 말씀만 그렇게 전해드렸었는데 별안간 세상을 떠나셨다는 이야기를 들으니 한 번도 병문안을 가보지 못하고 신문 기사로 그 소식을 접한 제 게으름에 부끄러움으로 몸둘 바를 몰랐습니다.

개인적으로 오주석 선생과의 인연은 "옛그림읽기의 즐거움"을 펴낸 지난 1999년으로 거슬러 올라야 하겠습니다. 저는 오주석 선생을 처음엔 저자와 독자의 관계로 만났습니다. 당신의 책을 읽고 누구인지 미술쪽, 우리 한국고미술 분야에 정말 괜찮은 감식안과 문재를 지닌 미술사학자가 등장했다고 여겼기 때문입니다. 열화당에서 근무하는 친구의 도움으로 "옛그림읽기의 즐거움"에 실린 "인왕제색도""고사관수도"의 이미지를 복사하여 액자로 만들기도 했는데, 오주석 선생과 저의 이승에서의 인연은 그런 관계만으로 끝날 일은 아니었던 모양입니다.

지난 2001년 9월부터 당신이 제가 몸담고 있는 잡지의 편집자문위원이 되셔서 한달에 한 번씩이나마 정기적으로 만날 수 있는 기회를 가질 수 있었습니다. 올해가 2005년이니 햇수로는 4년이고, 만 3년 정도의 기간동안 뵈올 수 있었던 것이죠. 당신의 부음에 즈음하여 신문에 실린 고인에 대한 학계의 평가를 살필 수 있었습니다. “엄정한 감식안과 작가에 대한 전기(傳記)적 고증으로 회화사의 저변을 넓히는 데 힘써 왔다”고 사람들은 평하더군요. 오주석 선생의 그간 활동에 비추어 보았을 때 이런 평가는 지극히 당연하나 그럼에도 당신의 넓은 도량과 흐뭇하고 온유한 미소, 우리 미술에 대한 깊은 사랑을 표현할 길은 없습니다. 참으로 애석하고 안타깝다고 말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편집자들은 본의든 아니든 일반 독자들이라면 글이나 매스 미디어를 통해서만 접할 유명 필자들을 실제로 곁에서 보게 되는 일이 종종 있습니다. 미인으로 알려진 어떤 작가는 실제로 보면 사진만 못한 경우도 있고, 누구는 작품 활동, 혹은 사회 활동은 매우 건강한 듯 보이지만 실제 생활은 그렇지 않다거나 하는 풍문을 먼저 접하게 되거나 혹은 직접 목격하게 되는 일들도 종종 있지요. 거리와 시간이라는 점에서 일반 독자들보다 가까운 거리에서 좀 더 실제 모습에 가까운 맨얼굴을 보게 되는 일들이 있습니다. 저 역시도 업무적인 특성상 그런 분들을 가까이 뵙게 되는 일들이 있었는데, 그만하면 단련이 될 법도 한데, 여전히 글보다 인격이 따라주지 못한다고 생각될 때의 실망감은 일반 독자들이 느끼는 것 못지 않을 겁니다.

그런 점에서 최소한 오주석 선생님에게서 제가 받은 인상은 글과 사람이 일치하는 분이었습니다. 당신의 문장이 풍기는 고아(古雅)한 맛이 당신의 실제 행동이나 어투에서도 고스란히 배어나오는 분이었습니다. 당신이 책에서도 밝히듯 "무릇 그림이란 마음 가는 바를 따르는 것이리라(夫畵者從于心者也)" 하였는데, 그 말씀대로 당신 역시 마음 가는 바대로 글을 썼고, 글 가는 대로 따르기 위해 노력하셨던 분입니다. 기회 닿을 때마다 주역 공부의 즐거움에 대해 말씀하셨고, 앞서간 선배이자 스승이셨던 강우방 선생님에 대해서도 늘 겸손하게 말씀하셨고, 거문고의 즐거움, 옛 선비들의 삶의 자세에 대해 이야기하곤 했습니다. 그러면서도 단호해야 하는 순간엔 물러서지 않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습니다. 종종 당신께서 말씀하는 세상사 이야기가 시대와 잘 어울리지 않는다는 생각도 들기는 했었습니다. 그러나 당신의 말씀은 결국 공자가 "논어"에서 말한 "정치란 바르지 않은 것을 바르게 하는 것이니 다스리는 이가 바르게 하면 누가 감히 부정을 하리요.(政者正也, 子歸以正, 孰敢不正)"와 같았다고 생각합니다.

당신의 병증을 자세히 알기 전에 저는 선생을 모시고, 함께 역사기행을 간 적도 있었습니다. 그 때 당신께 좀 더 많은 것을 배우지 못한 것, 좀 더 많은 추억을 만들지 못한 것이 안타까울 뿐입니다. 당신은 늘 음악과 술을 즐겨하였고, 조선시대의 도학자들이 지닌 높은 정신세계를 흠모하였습니다. 그 자신이 거문고를 익히고 연주하고, 옛그림을 보되 이를 해석하기 보다는 이를 즐기고 사랑하는 마음으로 대했습니다. 비록, 특정 이데올로기에 매인 사람은 아니었으나 주장하는 바에 자신의 이익이나 영달을 꾀하는 법이 없었고, 세사(世事)의 바르지 못함을 참지 아니했습니다. 특히 우리 옛 미술을 욕되게 하는 비평과 해석에 대해서는 더욱더 참지 아니하였습니다. 가끔 당신은 "고흐""김홍도" 중 어느 그림이 더 귀한가를 묻곤 하셨습니다. 물론 미술품 경매 시장에서는 고흐의 그림이 더욱 비싼 값에 팔릴 테지만, 그것은 단지 고흐가 복이 있어 그의 그림을 알아보는 이들, 후손이 부자여서 그럴 뿐 김홍도의 그림과 고흐의 그림의 귀하기를 비교할 수는 없다고 하시곤 했습니다. 좋은 그림과 나쁜 그림이 없으나 다만 어떻게 볼 수 있을까가 당신에게는 더욱 중했던 것 같습니다.

"사람은 하늘과 땅의 마음을 가진 존재(人者天地之心也)"라는 당신의 말씀은 어쩌면 이 책 전체, 당신의 삶 전체를 관류하는 커다란 흐름이란 생각입니다. 비록 지금 우리들은 하늘과 땅의 마음을 잊어버린 채 날마다 바뀌는 표면을 어떻게 가꾸고, 숨길까를 생각하는 약삭빠른, 천한 시대가 되어가고 있지만 당신이 펴낸 글과 마음은
"좋은 것은 변하지 않고 더욱이 가장 좋은 것은 변하지 않는다"
는 말처럼 오래도록 변하지 않을 듯 합니다.

이 책 "오주석의 옛그림 읽기의 즐거움2"에 별도로 표시되어 있지는 않으나  이 책에 수록된 6편의 글 가운데 "한 선비의 단아한 삶 : '이채 초상'"을 제외하고 나머지 "소나무 아래 산중호걸 : 김홍도의 '송하맹호도', 화폭에 가득 번진 봄빛 : 김홍도의 '마상청앵도' - 문인화, 옛 선비 그림의 아정(雅正)한 세계, 겨레를 기린 영원의 노래 : 정선의 '금강전도', 딸에게 준 유배객의 마음 : 정약용의 '매화쌍조도', 뿌리뽑힌 조국의 비애 : 민영익의 '노근묵란도' - 조선과 이조"의 5편은 "황해문화" 2001년 가을호(통권32호)부터 2002년 가을호(통권36호)에 연재되었던 글들입니다. 당신께 원고와 그림을 받아 작업을 하는 동안 매호 당신의 원고를 미리 읽는 즐거움으로 작업의 고단함을 잊었더랬습니다. 잡지의 어쩔 수 없는 여건상 그림들을 컬러 도판으로 수록하지 못해 늘 안타까와했는데, 이렇게 컬러 도판의 좋은 화질로 작업되어 책으로 묶인 것을 보니 그때의 죄송한 마음이 더욱 도집니다.

당신이 이리도 허망하게 가실 줄은 정말 몰랐습니다. 역사기행 갔을 때, 당신의 쑥빛 나는 수건을 탐내하자 지금은 땀에 젖어 안되니 나중에 서울가서 잘 빨아서 그 때 주겠노라 하셨는데, 그 뒤로 당신이 몸져 누울 줄 알았겠습니까. 당신은 우리가 서양미술가들은 알고, 좋아하되, 단원의 그림은 그만 못하다 여기는 자세를 질타하고, 우리가 우리 옛 것을 제대로 살피지 못하여 이를 마음으로부터 좋다 여기고 사랑하지 못하는 것을 늘 안타까와 했습니다. 이제 뉘 있어 우리의 이런 어리석음을 깨우쳐 주겠습니까. 조선의 그림이 초기에는 중국 그림에 묻히고, 구한말 강점기를 거치며 왜색에 침탈당한 사실을 누구보다 가슴 아파하여 이제라도 우리 옛그림의 당당한 아름다움에 대해 당신을 통해 배울 수 있었습니다. 당신의 글을 통해 우리는 우리 옛 것의 아름다움을, 당신의 그 마음과 해석을 즐겨하고 배울 수 있었습니다. 이제 학문적으로 더욱 많은 일들을 하여 주실 나이에 그렇게 세상을 등지니 애석한 마음 누를 길이 없습니다.

당신의 일주기를 맞아 나온 "옛그림 읽기의 즐거움2""이인문의 강산무진도"를 곁에 두고 오래도록 당신을 추억하고 그리워하겠습니다.

2006. 2. 風簫軒에서

저작자 표시 비영리 동일 조건 변경 허락
신고
Posted by 바람구두 windshoes
TAG
이전버튼 1 이전버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