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로운 여자들은'에 해당되는 글 2건

  1. 2011.05.12 마리 로랑생(Marie Laurencin) - 잊혀진 여자
  2. 2011.05.11 최승자 - 외로운 여자들은
잊혀진 여자        


- 마리 로랑생


권태로운 여자보다
더 불쌍한 여자는
슬픈 여자

슬픈 여자보다
더 불쌍한 여자는
불행한 여자

불행한 여자보다
더 불쌍한 여자는
버려진 여자

버려진 여자보다
더 불쌍한 여자는
떠도는 여자

떠도는 여자보다
더 불쌍한 여자는
쫓겨난 여자

쫓겨난 여자보다
더 불쌍한 여자는
죽은 여자

죽은 여자보다
더 불쌍한 여자는
잊혀진 여자

잊혀진다는건          
가장 슬픈 일

*

최승자의 <외로운 여자들은>을 읽고 생각난 김에 마리 로랑생(Marie Laurencin, 여성 화가, 프랑스)의 <잊혀진 여자>를 읽는다. 마리 로랑생은 잊혀진 여자가 가장 슬프다고 말했는데, 사람들의 기억 속에 많이 남아있는 구절이지만 마리 로랑생, 스스로가 염려했던 것처럼 정작 이 말을 했던 것이 그녀였다는 사실은 제대로 기억되지 못하는 편이다. '권태-> 슬픔-> 불행-> 버려짐-> 떠돔-> 쫓겨남-> 죽음-> 잊혀짐' 마리 로랑생이 이야기하는 불쌍한 여자의 순서다. 그녀는 잊혀진다는 것이 가장 슬픈 일이라고 했다. 어째서 일까? 남자와 여자의 차이일지는 모르겠으나 나는 화가로서의 마리 로랑생이 이야기하는 것은 이해할 수 있으나 그냥 일반인의 개념으로는 지금도 저 맥락이 가슴에 와 닿지는 않는다.

얼마 전 모 결혼정보회사에서 미혼남녀 593명을 대상으로 통계를 내어보니 10명 중 8명이 연인과 헤어질 때 거짓말한다는 조사결과가 나왔다. 연인과 헤어질 때 남성의 92%, 여성의 77%가 거짓말을 한 것으로 조사되었는데, 연인과 헤어지는 이유 중 가장 말하기 곤란한 것은 남녀 33.5%가 '다른 사람이 생겼기 때문에'이고, 뒤를 이어 26%가 '질려서', 16%가 '사랑한 적이 없다', 14.5%가 '더이상 사랑하지 않는다', 불과 7%만이 '서로가 맞지 않는다'로 답했다.

남성들이 거짓말을 하는 이유는 절반에 가까운 46%가 '나쁜 사람이 되고 싶지 않아서'라 답했고, 여성의 33%가 '상대방에게 상처주기 싫어서'라고 했는데, 남성이 거짓말하는 이유의 2번째(22%)에 해당하기도 한다. 여성이 거짓말하는 두 번째 이유는 '좋은 기억으로 남고 싶어서(31%)'인데 비해 이 같은 응답비율에 비해 남성은 12%이다. 남녀의 통계수치가 매우 다른 듯 보이면서도 사실 꼼꼼이 따져보고 생각해보면 응답의 형식이나 내용은 달라도 이유는 사실 흡사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는데, 굳이 별로 신용이 가지도 않는 이 통계를 인용한 까닭은 비슷하면서도 미묘하게 차이를 보이는 부분들이 있기 때문이다.

남성이 거짓말하는 이유 중 상당 부분은 마지막 순간까지도 상대방의 평가에 연연한다는 것이고, 그에 비해 여성은 상대의 마음이나 처지에 집중하려는 경향을 보인다. 그렇다고 해서 여성들이 인격적으로 좀더 훌륭하다는 뜻은 결코 아니다. 어차피 헤어지려고 꾸며낸 거짓말에 대한 이야기인 데다 여성이 거짓말하는 이유 중 두 번째인 '좋은 기억으로 남고 싶어서(31%)'란 말이나 '나쁜 사람이 되고 싶지 않다'는 남성들의 이유나 어찌보면 거기서 거기이긴 하니까. 미묘한 차이이긴 하지만 남성은 여성을 통해 자신을 비춰보고 평가하는 존재란 것이고, 여성은 가치 평가보다 존재에 집착하는 경향을 보인다는 차이다.    

그렇게 생각해보면 마리 로랑생의 시가 이해될 수 있다. 그녀의 시를 역순으로 살펴보면 '존재(存在, being), 그 자체'에게 있어 죽음보다 무서운 일은 '망각'이니까. 사랑했던 사람을 잊겠다고 발버둥쳐 본 사람은 '망각(존재의 죽음)'이 주는 달콤함을 알 것이다. 그래서 '망각'은 에로스가 아니라 타나토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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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로운 여자들은


- 최승자

외로운 여자들은
결코 울리지 않는 전화통이 울리길 기다린다.
그보다 더 외로운 여자들은
결코 울리지 않던 전화통이
갑자기 울릴 때 자지러질 듯 놀란다.
그보다 더 외로운 여자들은
결코 울리지 않던 전화통이 갑자기 울릴까봐,
그리고 그 순간에 자기 심장이 멈출까봐 두려워한다.
그보다 더 외로운 여자들은
지상의 모든 애인들이
한꺼번에 전화할 때
잠든 체하고 있거나 잠들어 있다.


출처 : 최승자,  『기억의 집』, 문학과지성사, 1989

*

'외롭다'는 말은 '고독하다'는 말에 비해 표피적이다. 고독이란  『맹자(孟子)』 〈양혜왕장구(梁惠王章句下)〉 '호화호색장(好貨好色章)'에서 나오는 '환과고독(鰥寡孤獨)'에서 유래한 것이다. 제(齊)나라 선왕(宣王)이 맹자에게 왕도정치(王道政治)에 대해 묻자 "늙어 아내 없는 이를 홀아비(鰥), 늙어 남편이 없는 이를 과부(寡), 늙어 자식이 없는 이를 외로운 사람(獨), 어리고 아비 없는 이를 고아(孤)라고 합니다. 이 네 부류의 사람들은 천하에 궁벽한 백성들로서 의지할 데가 없는 사람들입니다."라고 답했다. 맹자의 말에서 알 수 있듯 고독이란 감각의 문제였다기 보다 본래는 처지(조건)의 문제였다가 그 의미가 확장된 개념이라 할 수 있다.

그런 탓인지 몰라도 '고독하다'는 말은 '외롭다'는 말에 비해 원근법적으로 말하자면 원경(遠景)으로 비춰진다. 최승자의 시 <외로운 여자들은> '잊혀진 여자가 가장 불쌍하다'고 했던 마리 로랑생의 시와 의미의 확장 형식이나 구조가 매우 흡사하지만 마지막 국면까지 구체적인 정황들을 진술한다는 점에서 고독보다는 외롭다는 감각에 끝까지 천착한다.  

그보다 더 외로운 여자들은
지상의 모든 애인들이
한꺼번에 전화할 때
잠든 체하고 있거나 잠들어 있다

시인의 말대로라면 '미인은 잠꾸러기가 아니라 외로운 여자들이 잠꾸러기'인 셈이다. 미인이 외로운 걸까? 아니면 외롭기 때문에 잠을 통해 죽음을 앞당겨 오려 하는 것일까? 여자들은, 아니 사람들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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