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리카 - 500만년의 역사와 문화
롤랜드 올리버 지음, 배기동 외 옮김 / 북피아(여강) / 2001년 5월


내가 처음 영어사전을 구입했을 때 가장 먼저 찾아본 단어는
"섹스sex"였다. 지금도 기억에 생생한데, 중학교에 입학한 기념으로 막내 삼촌이 직접 서점에 데려가 골라 준 사전이 "혼비영영한사전"이었다. 영어공부를 열심히해야 한다는 다짐 끝에 골라준 사전이었다. 지금 알라딘에서 검색해보니 범문사에서 나오던 이 사전은 더이상 출간되지 않는 모양이다. "영한사전"도 아닌 "영영한사전"이 이제 갓 중학교에 입학하던 나에게 과연 적절한 사전이었는지는 모르겠으나 영어단어를 영어로 우선 풀이한 뒤, 다시 한국어로 풀이하는 형태의 이 사전은 내게 영어뿐만 아니라 언어에 대해 접근하는 경로를 열어준 첫 열쇠였다. 상식을 넓히는 방법은 누구에게나 대동소이할 것이다. 그건 사물이든 사건이든, 사람이든 그 대상에 대해 호기심을 갖는 걸 의미한다.

호기심이란 꼬리에 꼬리를 물기 마련이어서 뭔가 새로운 단어 한 가지를 알게 되면 그로부터 무수히 많은 궁금증들이 생겨나기 마련이다. 예를 들어 인터넷백과사전을 클릭해서 하나의 사건을 살피면 최소한 3개 이상의 링크들이 생겨나는 것처럼 어떤 하나의 대상에 대해 파악하는 과정이 단지 그 하나의 대상만으로는 불가능한 것과 같다. 영어사전에서 '블랙black'이란 단어를 찾아보면 대개 '검다'는 의미를 제외하고도, 'black'은 '음산한, 침울한, 화가 난, 험악한, 심사가 고약한, 사악한, 죄악으로 더럽혀진' 등등의 뜻이 있음을 알 수 있다. 이 때의 'black'은 접두사로 사용되거나 관용적 용례까지 살피더라도 'black'이란 단어가 좋은 뜻으로 사용되는 것을 찾기 어렵다는 걸 알 수 있다. 그에 비해 '화이트white' 의 의미는 '희다'는 의미를 제외하고도 '결백한, 순진한, 오점이 없는, 악의가 없는, 정직한, 공정한, 훌륭한' 등의 뜻임을 알 수 있다. 그래서 신영복 선생 같은 이는 "화이트와 블랙은 색을 가리키는 단어가 아니라 선(善)과 악(惡), 희망과 절망의 상징이었다."라고 말했는지 모르겠다.

우리에게 아프리카는 검은 대륙이다. 그곳에 사는 사람들의 피부색이 검고, 우리가 그곳에 대해 무지하다는 점에서 검다. 우리 말을 우리는 국어라 말한다. 우리 역사를 국사라 말한다. 생각하기에 따라 아무 문제 없는 듯 보이지만, 이것은 우리들의 협소한 세계 인식을 보여주는 한 증빙이다. 우리는 국어가 아니라 한국어를, 국사가 아니라 한국사를 배운다. 그리고 그 상대적인 개념으로 외국어, 세계사가 있다고 말해야 옳다. 국어와 국사란 말에는 이미 학문적 객관성을 상실하고 들어가는 측면이 있기 때문이다. 예를 바꿔 미국이란 나라가 자기들 기준으로 태평양을 서해로, 대서양을 동해로 표기하겠다고 나선다면 분명 우리는 코웃음 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에도 이스트코스트와 웨스트코스트가 있다. 그리고 태평양도 있고, 대서양도 있다. 동해와 서해, 남해의 개념은 바다를 육지의 연장선상으로 생각하는 협소한 개념이다. 우리의 바다 동해가 일본해로 표기가 바뀌어가는 싸움에 우리가 밀리게 된 것은 여러 이유가 있지만, 나는 우리의 세계 인식이 그만큼 협소한 탓도 적지 않게 작용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세계화를 부르짖은지 햇수로는 어느새 10년여가 넘어간다. 어떤 이들은 그때의 해프닝을 기억할 것이다. 세계화가 국제화, 지구화와 어떻게 다르냐는 질문을 받은 당시의 문민정부는 세계화의 영문 표기를 들어 개념도 미처 세우지 못했던 세계화를 다른 개념들과 차별화하려고 시도했었다. 어쨌든 문민정부는 세계화의 개념을 끝끝내 정의하지 못하고 IMF사태를 불러들였다. 오늘날 우리들도 세계화를 국제화나 지구화와는 조금 다른 무엇이지만 하여튼간에 잘 모르고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말이 되었다. 굳이 이 개념들에 차별을 두자면 세계화란 말에는 "우리가 주체적이고 자발적으로 나서서 세계속으로 한 번 들어가 보자"는 선언적 의미가 있다고 할 수 있을 게다. 어찌되었든 "세계화"란 단어가 인정투쟁의 과정에서 살아남아 성공리에 사용되고 있는 것 같다. 해외여행도 자유화되고, 유학생은 물론 단순한 여행목적의 해외방문도 흔해졌다.

그럼에도 아프리카는 아직도 멀고 낯설다. 롤랜드 올리버(Roland Anthony Oliver)의 책 "아프리카"는 부제로 "500만 년의 역사와 문화"란 제목을 달고 있지만, 원저서명은 "The African Experience"다. 'experience'를 사전에서 찾아보니 '경험(經驗)'이란 말로 체험보다는 간접적, 이지적인 인식의 함축성을 지닌다로 정의되고 있다. 지은이는 런던대학 아프리카사학과 명예교수로 아프리카사 연구에 뛰어난 업적을 남긴 인물이라고 한다. 그의 이력 중 이채로운 것은 그가 1948년 당시로서는 최초로 오리엔트, 아프리카사학과 교수에 임명되었다는 것인데, 이 말만 듣고 생각하기엔 1948년 이전엔 유럽, 영국에서는 아프리카를 역사적으로 연구하는 일이 많지 않았던 모양이다. 롤랜드 올리버는 이 책의 서문에서 "아프리카의 경험"은 그가 런던대학 교수에서 은퇴한 뒤 4년 동안 아프리카를 잘 알지 못하는 일반인들을 위한 교양사로서 집필한 책이라고 밝히고 있다. 책 한 권에 아프리카 500만년의 역사를 담는다는 것은 그만큼 쉽게 쓰였다는 걸 의미한다.

어떤 의미에서 쉽게 쓸 수 있다는 건, 대상을 잘 이해하고 있다는 뜻이 된다. 하지만 나는 이 책의 저자가 아프리카를 많이 공부하고, 많이 알고 있다는데는 동의할 수 있어도 과연 잘 이해하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의구심을 품었다. 이 책은 모두 21장의 구성을 갖추고 있다. 그 중 역자 서문에도 등장하고 있듯 제20장의 제목은 '완전노출(full exposure)'이다. 이  책의 기본적 관점은 서양인의 시각에서 발견해 들어가는 혹은 "아프리카가 서구세계에 등장하는 과정으로서" 의 아프리카사를 재구성한 책이다. 구태여 이런 시각을 조목조목 따지고 들면서 그네들의 역사 인식 혹은 이 책의 저자인 롤랜드 올리버 교수의 시각을 비판하고 싶은 마음은 없지만, 예를 들어 이런 부분만큼은 지적하고 싶다. 저자는 이 책의 '제10장 주인과 노예'편에서 악명높은 노예무역의 역사를 의도적으로 축소하려 들거나 책임을 외면하려 드는 인상을 준다.

대서양 해안에서조차 노예무역은 별로 신기한 것이 아니었다. 보다 문제가 되는 것은 어떻게 그 무역이 17, 18세기의 수준에까지 이르렀느냐하는 것에 있다. 이에 대한 짧은 대답은 그것이 아프리카인들 사이의 전쟁을 통해 이루어졌다는 것이다. 대서양 무역이 절정기에 왔을 때에도 대부분의 노예는 전쟁포로 출신이었으며, 상황을 좌우했던 유럽인은 그다지 큰 영향을 주지 않았다. 그러나 도처에서 이러한 전쟁상황이 벌어지게 된 것은 유럽인의 출현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흔히들 전쟁의 원인은 주로 현지 사정이라고 하며, 포로를 이송하는 해양무역이 없었더라도 이러한 전쟁은 역시 발생했을 것이라고 한다. <본문 193쪽>

아프리카에서 팔려나간 혹은 롤랜드 올리버 교수의 표현을 빌어 수출된(?) 노예의 수가 1,100만명에 이른다는 점을 감안했을 때, 과연 이들에 대해 조금이라도 연민의 마음을 품고 있다면 저런 방식의 기술은 쉽게 나오지 않을 것이다. 이런 식의 기술은 '나이지리아 내전(비아프라 전쟁)'에 대한 "무엇보다도 나이지리아 내전은 국가 기반 건설을 위한 사건이었음이 증명되었다. 이 전쟁을 통해 나이지리아 전체의 단결이 크게 고양되었기 때문" 이라는 식의 기술에서도 엿보인다. 나이지리아 내전의 원인에 나이지리아의 비아프라 지역에 있던 석유가 서구의 다국적 석유기업들의 이해관계에 크게 좌우되었다는 내용은 찾아보기 힘들다.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악명높은 아파르트헤이트 정책이 폐지된 뒤, 과거 백인정권과의 참회와 화해의 정책에 대해서는 "이 기적의 많은 부분은 넬슨 만델라의 성격에 돌려져야 할 것이다" 라고 적고 있다. 남아연방국민들의, 흑인들의 용서와 화해의 정신이 아니라 넬슨 만델라의 리더십도 아니고, 넬슨 만델라의 성격이 원인이라니...

이 책에 대해 "이코노미스트(The Economist)""대륙에 관한 한 그의 모든 지식들을 이 한 권의 책에 품위 있고 이해하기 쉽게 압축한 것" 이라는 평가는 절반만 맞은 것이다. 원문을 읽어보지 않았으니 문장이 품위(refinement)있는지는 모르겠으나 결코 품위(dignity)가 있어 보이지는 않기 때문이다. 최근 우리는 서울대 경제학부 이영훈 교수가 지난 2일 MBC 백분토론에서 했다는 발언으로 뜨겁다. 그는 공개적인 자리에서 일제시대 정신대가 조선총독부의 강제동원이 아니라 한국인의 자발적인 참여로 이뤄진 상업적 공창이었고, 역사청산은 먼저 우리들 자신의 반성에서 시작해야 한다는 요지의 말을 했다. 이영훈 교수는 경제학부 교수지만 한국경제사를 연구한 역사학자이다. 그는 '식민지근대화론'을 주장해 한때 사회적 논쟁의 한 가운데 있었다. 나는 앞서 국사, 국어란 표현이 학문적 객관성과 인식의 문제를 협소화시킬 우려가 있다고 말했다. 이영훈 교수는 지난(2003년)해 8월 21일 임지현 교수 등이 주도하는 ‘비판과 연대를 위한 동아시아 역사포럼’이 주최한 ‘국사 해체를 향하여’라는 이름의 공개토론회에서 '국사해체'론을 주장한 바 있다(이 토론회에서 발표된 내용을 담은 책이 "휴머니스트"에서 "국사의 신화를 넘어서"란 제목으로 지난 2004년 3월에 출간되었다).

어떤 의미에서 나는 이영훈 교수의 주장 "국사라는 이름 아래 닫혀진 다양한 (역사적) 측면들을 보는데 '국사'가 큰 문제가 되는 것이며, 이런 뜻에서 내가 말하는 국사해체는 '역사의 민주화'라고 할 수 있다"는 측면에 동의한 것이다. 재일동포인 이성시(와세다대) 교수는 "우리에게 국사는 은폐이며,억압이며,배제" 라고 말하기도 했다. 역사를 열린 자세로 논의하자는 주장은 합당하다. 그러나 그가 주장하는 '식민지근대화론'이란 것을 거칠게 보자면, 우리의 근대화가 일본에 의해서 수행되었고, 일본의 식민지화 과정을 단순히 착취와 수탈만으로 볼 것이 아니라 발전과 응전의 시기로 해석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나는 우리의 역사를 어느 시기이든 패배의 역사로만 바라보려는 시각에는 분명히 반대한다. 예를 들어 식민체험에 대해, 우리의 독립에 대해 어떤 이들은 우리의 독립이 자주적으로 성취되지 못하고, 세계 정세의 변화에 따라 우리에게 거저 주어진 것이라는 패배적인 역사인식을 할 수도 있겠으나, 나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란 말을 붙이고 싶다. 우리는 전근대적인 봉건사회였다가, 식민지가 되었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랫동안 일본 제국주의에 대해 저항했고, 그 결과 세계 각국도 우리 민족의 독립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고 말이다.

물론 그 과정에 이영훈 교수의 주장대로 자본주의의 맹아도 경험했고, 미숙하나마 자체적인 근대화의 추진도 시도해보았을 것이다. 그러나 이영훈 교수의 주장은 주장대로 학문적인 맥락에서 수긍한다 할지라도 이런 주장은 매우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학문적 논의에서의 논리란 것은 주장하는 이의 손을 떠나 논리 그 자체의 추진력을 갖기 때문이다. 만약 이 논리의 어느 일방만을 받아들여 꾸준히 밀고나간다면 그 결과 우리가 경험한 일본 식민지 체험은 앞서 롤랜드 올리버 교수의 말대로 나이지리아 내전이 나이지리아의 국민 통합을 이룩하도록 해줬다는 식의 논리적 귀결을 맞이하기 때문이다. 그 단적인 예로 '식민지 근대화론'을 주장한 이영훈 교수는 방송에 나와 너무나 손쉽게 "정신대 관련 일본 자료를 보면 (정신대) 범죄행위는 권력만으로 이뤄진 것이 아니고 참여하는 많은 민간인들이 있었으며 한국 여성들을 관리한 한국업소 주인들이 있고, 그 명단이 있으며 일제 징용 11만명의 한국인들 중에서 다수가 군위안소를 다녀왔는데 이들의 반성은 없었다"는 주장을 한 것이다.

그의 경제사적 주장이 터무니 없는 것은 아니다. 다만 그의 주장이 일면의 작은 사실에만 주목하여 문제의 본말을 전도시켰기에 문제가 생긴 것이다. 정신대에 자발적으로 참여한 사람을 찾아보면 없지는 않았을지도 모르겠다. 실제 정신대피해할머니들 중 상당수의 증언은 초기에 그 진실이 잘 알려져 있지 않은 동안엔 그것이 일본으로 돈벌러 가는 일인 줄 알고 나섰다는 분들도 많이 계셨다. 게다가 11만명이 일본에 의해 강제 징용에 동원된 동안 거기에 끌려나간 조선인 중에서 군위안소를 이용한 사람이 한 명도 없다고는 말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이영훈 교수의 주장대로 그런 일부의 문제로 정신대 문제가 자발적인 참여와 공창이란 식의 인식에 다다르게 되는 것은 분명히 문제다. 만약 그의 주장대로라면 우리는 그 누구도 처벌할 수가 없다. 5천만 겨레가 모두 죄인인데, 누가 누구를 용서하고 벌 줄 수 있겠나? 그의 논리대로라면 5천만이 여의도광장에 모여 총참회 의식이라도 열어야 하지 않는가?

최근 우리 학계 일각에서 첨예한 논쟁을 불러일으키고 있는 '탈민족주의 문제'에 대해 나 개인적으로는 의미가 있다고 생각하면서도 학문의 영역에서 일탈하여 사회적 이슈의 자리로 내려오는 것을 경계하는 까닭도 거기에 있다. 임지현 교수 등이 주도하는 "우리안의 파시즘" 논의가 '개인의 성찰' 이란 위치에 있을 때는 위험하지 않으나 이를 넘어 '사회의 성찰' 로 전이될 때, 지극히 합리적이고, 도덕적인 듯 보이는 이런 논의들이 도리어 수구보수세력들에게 매우 호의적인 반을 끌어내는 것, 매우 긍정적인 현상으로 받아들여지는 까닭에 대해서도 함께 고민해보야 한다. 이는 도덕적 근본주의 자체가 성찰을 타인에게 강제함으로써 파쇼화하고, 지적, 도덕적 폭력으로 진화해가는 내적 동력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E.H.카(Carr)의 고전적 명제 "역사란 무엇인가?"로 돌아가보자. 그는 역사를 "현재와 과거의 끊임없는 대화"라고 정의하고 있다. 카는 19세기를 지배했던 랑케의 실증사학에 반기를 들었다. 그는 "역사적 사실은 단순히 과거에 있었던 사실이기 때문에 역사적 사실이 되는 것이 아니라 역사가가 그 사실의 중요성을 인정하고 자신의해석에 따라 재구성함으로써 역사적 사실이 되는 것"이라고 말한다. 다시 정의해보자면, 역사란 단순히 현재와 과거의 대화가 아닌 현재의 역사가가 과거 사실과 나누는 끊임없는 대화란 것이다. 카는 근대역사학의 확립자인 랑케의 주장 "역사가란 자기 자신을 죽이고 과거가 본래 어떠한 상태에 있었는가를 밝히는 것을 그 지상과제로 삼아야 하며, 오직 사실로 하여금 이야기하게 해야 한다" 를 비판하면서, "모든 역사적 판단의 기초를 이루는 것은 실천적 요구이기 이기때문에 모든 역사에는 현대의 역사라는 성격이 부여된다. 서술되는 사건이 아무리 먼 시대의 것이라고 할지라도 역사가 실제로 반영하는 것은 현재의 요구 및 현재의 상황이며, 사건은 다만 그 속에서 메아리 칠 따름이다."라고 말한다.

이 책은 오늘날 많은 대학에서 필독서로 손꼽히고 있는 역사학의 고전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은 지난 1980년대 초 금서였다. 이 책이 금서였던 까닭은 무엇보다 이 책의 저자인 E.H.카가 역사의 진보성을 주장했기 때문일 것이다. 니체는 말하길 "역사가는 과학적 인식에 도달하기 위해 역사를 연구하는 것이 아니라 생의 문제를 고뇌하기 위해 역사를 이야기해야 한다. 우리는 생을 살아가는 지도를 구하기 위해 역사를 연구하고 이야기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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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바람구두 windshoes


폭력과 싸우고 근본주의와도 싸우기 - 김진석 | 나남출판(2003)


지식인은 무엇인가? 지식인은 누구인가? 지식인의 사회적 역할은 무엇인가?를 묻는 수없이 많은 질문들이 있다. 이때 우리가 잊고 있는 한 가지 맹점이 있다. 사람들은 지식인이란 무엇인가?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가?를 물을 뿐 어째서 이런 질문들을 하게 되었는지 물어보지 않는다. 제갈량과 정약용이 살던 시대의 지식인들에게도 '현실 참여'와 '안빈낙도' 사이의 고민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그러나 현대의 지식인들과 달리 이 시절의 지식인들이 말하는 현실과 이상 사이엔 마르크스가 말하는 그런 류의 "소외 현상"은 없었다. 1880년대 말부터 1920년대 사이 서구 사회는 정치, 사회, 경제, 문화 전반에 걸쳐 사상 유례없는 대변동의 시대를 경험했다. 정치적으론 프랑스 대혁명 이래 꾸준히 지속되어온 자유주의와 보수주의의 정치 혁명이 나름의 결실을 맺으며 보통선거가 실시되었고, 선거권의 제한이란 사회 위계질서의 마지막 정치(형식)적 보루가 해체되었다.

 

보통선거 이전의 정치란 교양인들(소위 지식인들)의 몫이었다. 이제 지식인들이 그들의 정치적 의도를 관철시키기 위해선 반드시 대중이란 필터를 통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지식인들은 이제  과거 노동자들이 노동으로부터 소외되었듯, 그들의 지식으로부터 소외된다. 그렇기에 지식인의 위기가 논의되기 시작한다. 사르트르는 "지식인을 위한 변명"에서 "지식인은 항상 구체적 사실과 마주치게 된다. 그리고 그 사실에 대해서 그는 항상 구체적 해답을 을 가져야 한다"고 말한다. 이는 지식인에게 사회가 부여한 책무이자 동시에 지식인 스스로가 자신에게 내린 책무이다. 지식인이 맞닥뜨리는 구체적 사실이란 현실이자, 구체적 보편으로서의 사건이다. 지식인들 앞엔 매일매일 해석과 분석을 요구하고 있는 새로운 사건들이 터져나온다.

 

오늘날 파시즘은 하나의 정치 이데올로기이기 보다는 조롱의 대상으로 전락한 감이 있다. 그러나 로버트 O. 팩스턴의 말처럼 "환호하는 군중의 이미지"에 사로잡혀 버리면 파시즘의 출현이 "한나라의 결함있는 역사가 파시즘을 탄생시켰다는 겸손한 듯 오만한 믿음"을 품게 만든다. 팩스턴은 이런 손쉬운 믿음이 "쉽게 파시즘을 방관하는 국가들의 알리바이로 바뀔 수 있다. 즉, 자기네 나라는 그런 일이 발생할 리가 없다"고 믿게 만든다고 경고한다. 즉, 파시즘은 단순히 민족적 증오를 부추기는 능력이 있는 파시즘 지도자의 카리스마 탓만도, 문제 있는 역사의 결과만도 아니란 것이다. 대중의 동의없이 파시즘은 불가능하다.  

 

그런 점에서 철학자 김진석의 책 "폭력과 싸우고 근본주의와도 싸우기"는 우리에게 여러가지 생각할 거리들을 던져주고 있다. 그의 글은 때로 단호하게, 때로 솔직하게, 때로 부드러운 어조를 구사하면서 마치 '패스트리(pastry)'처럼 여러 겹으로 겹친 이론과 현실의 자장 사이를 "포정의 칼"처럼 움직여 나간다. 머리말에서 김진석은 "파시즘이나 극우 세력처럼 거대하고 명백한 악이 있는 듯 하지만, 문화권력의 경우처럼 문화에 관한 세심한 구별이 요구되는 폭력"도 있다고 말한다.

 

"폭력과 파시즘을 비판하는 일에는 이상한 맹점이 있다. 이것들을 추방해야 한다는 열성이 지나친 나머지, 알게 모르게 모든 폭력을 파시즘과 동일하게 여기는 이들이 적지 않다. 모든 폭력적 경향이나 제도들이 그 자체로 악이며 따라서 아예 뿌리를 뽑아야 한다는 주장은 거기서 불과 한 걸음 거리에 있다. 도덕적 근본주의. 여기에도 여러 가지가 있다. 일상생활의 관습과 제도 속에 조금이라도 폭력의 기미가 있으면 깜짝 놀란 표정을 지으며 '여기 또 파시즘이 있다!'라고 호들갑을 떨며 소리치는 지식인들이 있는가 하면, 종교적 평화주의에 근거하여 보통 세속인들이 실행하는 다소 복잡한 모양의 행위와 실천에 모두 폭력의 낙인을 찍는 지식인들도 있다.


이들은 자신들의 도덕적 혹은 종교적 근본주의가 그 이념에서 현실적 폭력을 반대하기에 실제로도 폭력과 뚝 떨어져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천만에! 유감스럽게도 그렇지 않다. 이런 근본주의도 폭력적 성향을 띤다. 폭력이 전혀 없는 상태를 가정하는 것은 그 자체로는 별 탈이 없는 이상주의 같지만, 어떤 폭력적 실천이든 파시즘이라고 비난하고 추방하려고 하는 즉시 그것도 또한 그것에 고유한 폭력을 행사한다. 그리고 그 폭력은 아주 오랜 전통을 가지고 있다. 이를 테면 사제적 권력의 전통."

 

지식인 김진석은 이렇듯 자청하여 "여러 차원에서 폭력과도 싸우고, 근본주의와도 싸운다." 스스로 싸우기를 자청하여 복잡하게 얽히고 섥힌 문제의 여러 결들을 짚어간다. 그 와중에 가장 어려운 것은 그의 고백대로 다음과 같은 문제들이다.

 

"폭력뿐 아니라 근본주의는 어떤 차원에서는 그저 분석하거나 서술하는 것으로는 부족하다. 현재 한국 사회에서 폭력과 근본주의가 드러나는 방식에 대해 글을 쓰면서, 나는 싸우는 방식을 자청했다. ...<중략>... 힘든 이유는 그렇게 글과 담론을 통해 양쪽으로 싸워도, 결국은 현실의 바닥에 있기 때문이다. 현실의 바닥에서 기기 때문이다. 폭력과 근본주의 사이로 난 좁은 길을 따라 현실의 바닥에서 기어갈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 자신의 철학적 글쓰기는 "사회와 정치의 바닥, 밑바닥으로 내려와서 기어야 했다. 특별한 혹은 뛰어난 개인들의 정신적 성취를 목표로 삼는 대신, 세속적 삶을 사는 보통 사람들을 대상으로 폭력의 존재를 성찰해야 했다."고 고백한다. 어떤 이는 우리 사회는 행동이 과소하고 말과 글이 과대해 있다고 말한다. 그러나 엄밀하게 말해 이 말은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 상대적인 관점에서 보았을 때 분명 우리 사회의 말과 실천의 비율에선 압도적으로 실천이 과소하나, 절대적인 관점에서 보았을 때엔 이 둘 모두 절대적으로 과소한 상황이기 때문이다. 그런 상황에서 나는 김진석에게서 많은 것을 배운다.

 

이 책은 그가 계간 "사회비평"의 편집주간을 맡아 보면서 그간 우리 사회의 "폭력과 근본주의" 문제에 대해 그가 그때그때 발언했던 글들을 모아놓은 것이다. 책의 연원이 그런 탓에 읽는 중간중간에 다소 겹치는 부분도 보이지만, 그의 비판이 보여주는 힘은 조금도 줄어들지 않는다. 이 책은 전체 4부 - "제1부 안티조선에서부터, 제2부 통제권력에 시달리는 자율, 제3부 위험한 근본주의에 빠진 파시즘론, 제4부 개혁을 위한 철학" - 로 구성되어 있다. 안티조선 문제에서는 강준만 중심의 안티조선 운동이 지닌 선명성에 비해 대중들의 내면화된 지배논리가 강조되는 차원에서는 어떤 대응 방식을 보여주고 있는지, 구체적이고, 적극적인 대응 차원의 빈곤함을 지적한다. 김진석은 과연 안티조선운동은 우리 사회의 여러 운동 가운데 배타적 우선권을 부여받아야 할 만큼 시급하고 긴급한 문제인가를 반문한다. 극우경향에서는 조선일보가 제일이겠지만 다른 관점에서는 다른 유사한 악덕이 얼마든지 존재하고 있는 현실에서 안티조선운동이 비판의 주도권을 주장하거나 선명성을 주장하는데 몰두한 나머지 대오의 단일화만을 강조해 냉정하고 섬세한 비판의 가능성, 즉 유연성을 잃고 있는 것은 아닌지 되묻고 있다.

 

무엇보다 김진석의 비판이 가장 날카롭게 겨냥하고 있는 대상은 3부 "위험한 근본주의에 빠진 '일상적 파시즘론'과 비폭력주의 - 임지현과 문부식, 그리고 박노자"에 대한 것이다. 김진석은 근대적 국가권력과 제도 전체를 '악'(때로는 절대악)으로 간주하여, 이에 대한 전면적 해방을 추구해야 한다는 임지현, 문부식, (박노자) 등의 '우리안의 파시즘' 논의가 지닌 맹점, 사회내의 모든 권력(혹은 권위)를 파시즘과 맹목적으로 동일화하면서 현실적으로 도저히 도달할 수 없어 보이는  '유토피아'적 상태를 상정하는 것 자체를 또 다른 폭력이라며 날카롭게 비판하고 있다. 박노자를 괄호 안에 집어 넣은 것은 임지현, 문부식과 조금 다르게 취급하고 있기 때문이지만, 박노자에 대한 비판 역시 동일한 연장선상에 놓여 있다.

 

" '일상적 파시즘'이라는 문제들이 민중을 과도하게 메시아적 변혁의 주체로 삼는 민중주의에 대해 나름대로 성찰한다는 것을 부정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중략>... 이런 내면적 성찰을 실행하지 않으면서도 타자의 폭력에 대해서만 저항하는 태도가 일면적이라는 점도 충분히 알려진 사실이다. 또 지식인이라면 어렴풋이 알려진 사실이더라도 새로운 개념을 빌려 설명하려는 욕구와 의무가 있는 것도 부정할 수 없지만, 임지현과 <당대비평>은 '우리 안의 파시즘'이라는 이론적 틀의 소유권에 과도하게 집착하는 것이 아닐까? 그 과정에서 그 개념 자체가 공허해질 정도로 그것을 총체화시켰을 뿐 아니라 실천적으로도 이중적 결과를 낳은 듯 하다."

 

민중을 변혁의 주체라고만 보는 민중주의가 형이상학적 오류에 빠졌다면, 거꾸로 임지현의 비판, 민중이 무조건 억압되어 있기에 전면적으로 해방되어야 한다는 주장도 이에 못지 않게 형이상학적이며 관료적이라는 것이다. 모든 권력을 추방해야 할 것처럼 주장하면서도 어떤 저항이 조금이라도 권력을 행사하면 서슴없이 끝내는 저항운동 자체가 권력의 코드에서 벗어나지 못했다고 비판을 가하는 파시즘의 낙인을 찍을 준비를 한다. '일상적 파시즘'의 주장이 위험한 것은 그 논리 내부에 있다. 권력에 대항하기 위한 저항도 어디에나 편재해 있는 미시 권력을 완전히 극복할 수는 없기에 모든 저항이 권력과 파시즘 코드를 이미 내장하고 있을 수밖에 없다면, 저항 그 자체가 불가능해지기 때문이다.

 

"개인적으로 박노자는 "폭력과 절대로 어떤 형태로든 인연(악연)을 맺지 않겠다고 다짐한 바 있다"고 하는데, 그런 각오는 한 개인에게는 내면적 성찰의 계기로 작용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사회적, 역사적 차원에서는 그러한 기원을 가진 사람도 좀더 진지해질 필요가 있다. 사회화되고 제도화된 폭력은 군대나 궈투를 즐기는 일에 그치지 않는다. 경쟁적 교육환경 속에서는 열심히 공부하는 행위조차 얼마든지 폭력적일 수 있다. 개인적 성실함은 암묵적으로 폭력적 구조를 용인하거나 추인하는 결과가 될 수도 있을 뿐 아니라, 다른 사람들에 대해서는 일정하게 배타적으로 상징적 권력과 상징자본을 취득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구소련 체제에서 대학생은 병역을 면제받았기에, 그도 군대에 가지 않을 수 있었다고 한다. 폭력적 사회에서 폭력을 피하기 위해서도 특권적 집단에 속해야 한다는 평범하고도 무서운 진리가 확인되는 것이 아닐까."

 

김진석은 "박노자가 이처럼 '절대로 비폭력적인 양심'에 지나치게 호소할 때, 효과적 정치 경제적 관점이 많은 경우 근본주의"로 뒤덮히게 된다고 비판한다. '일상적 파시즘론'이 대중의 마음에 온통 파시즘의 낙인을 찍어놓고 권력과 국가로부터의 전면적 해방을 외치는 것은 공허하다. 극우적 민족주의, 정치경제적 파시즘과 싸우는 실천적 차원에서 박노자의 양심을 의심할 필요는 없지만, 그것이 개인의 차원을 넘어 사회의 차원으로 변환될 때 일상적 파시즘은 근본주의의 공허를 극복할 수 없다는 것이다.

 

김진석이 폭력과 싸우며 동시에 폭력의 완전한 제거를 주장(혹은 그것이 가능하다고 믿는)하는 근본주의와도 싸워야 한다고 말하는 것은 얼핏 우리가 오래전부터 혐오해 마지 않던 양비론과 닮아 있는 듯 보인다. 그러나 김진석의 좌충우돌을 양비론과 비교하는 것은 곤란하다. 앞서 김진석 자신이 말하고 있는 것처럼 그의 비판은 "현실의 바닥에서 기기" 때문이다. 또 그의 말대로 우리는 "폭력과 근본주의 사이로 난 좁은 길을 따라 현실의 바닥에서" 기어갈 수 밖에 없다. 현실을 거세한 이론의 공허함으로 무장했을 때, 비록 미끈해 보이는 논리를 따르는 개인의 양심은 흡족할지 몰라도 그것은 더러운 땅을 여의고는 누구도 깨끗한 땅을 밟을 수 없다는, 땅에 넘어진 자 그 흙을 짚지 않고는 일어날 수 없다는 가르침을 거스르는 일이다. 물론, 나는 김진석이 긋고 있는 전선의 동일한 위치에 서 있지는 않다. 하지만 그가 긋고 있는 전선에 동의할 수는 있다. 그것이 내가 그의 이 책을 읽고 내렸던 결론이다. 현실의 바닥을 기고 있기에 우리는 현재 동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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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바람구두 windshoes


국민으로부터의 탈퇴 - 권혁범, 삼인(2004)



"무인도를 꿈꾼다"는 말 속에는 단지 사람이 없는 세상을 꿈꾼다는 말은 아닐 게다. 그 말엔 존 레논의 소박한 무정부주의 찬가 "Imagine"의 노랫말처럼 도달해야 할 이상으로서의 "천국"도, 딛고 올라서야 할 사람들의 아우성이 들려 오는 "지옥"도, 우리를 옭죄는 "국가"도, 탐욕을 부추기는 "소유"도 없는 세상에 대한 막연한 희망을 담고 있다. 나 하나쯤 세상에서 흔적도 없이 사라진다 해서 세상에 종말을 고하는 것이 아니란 걸 알기에 일탈은 곧 자유를 의미한다. 그러나 이것은 어디까지나 자발적인 경우에만 아름답고, 즐거운 상상일 수 있다.

그 누구도 집에 돌아오는 길에 공안기관 요원들에게 끌려가 욕조물을 흠씬 들이키다 목이 눌려 죽고 싶어하지 않는다
(박종철). 그 누구도 민주주의와 직선제 개헌을 외치다 날아온 최루탄에 두개골이 함몰되어 식물인간처럼 지내다 끝끝내 숨을 거두고 싶어하지 않는다(이한열). 그 누구도 남편에 의해 홍콩의 작은 아파트에서 목졸려 숨지길 바라지 않는다. 더군다나 죽임 당한 뒤에 북에서 내려보낸 여 간첩으로 몰려 남은 가족들에게 피해를 주길 바라는 일은 없다(김옥분). 그 누구도 이라크에서 길을 가다 자동소총에 난사당해 죽고 싶어 하지 않는다. 간신히 생존해서 귀국한 뒤에도 여전히 걷지 못하는 몸으로 아무런 보상도 받을 수 없다는 사실을 알고 싶어하지 않는다(오무전기 노동자들). 그 누구도 피납되어 살려달라는 애절한 호소를 무시당한 채 목이 잘려나가는 고통 속에 죽고 싶어하지 않는다(김선일).

더군다나 국가라는 추상적인 민족공동체를 위해 자발적인 희생이 아닌 타의에 의해 억울하게 맞이하는 죽음 같은 것은 원치 않는다. 죽은 뒤에 아무리 열사가 되고, 애국자가 되고, 순교자가 되더라도 말이다. 우리는
"국가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던져 보아야 한다. 지금으로부터 1,600여년 전 성 아우구스티누스는 로마 제국의 멸망에 대해서 기독교인들의 책임 - 시오노 나나미가 『로마인이야기』에서도 누누이 밝히고 있듯이 로마인에게는 종교도 매우 실용적인 것이었는데 기독교의 침투로 말미암아 로마의 시민의식이 붕괴되어 로마인의 특성인 실용적인 기풍과 전투 의지를 약화시켜 그 결과 로마가 붕괴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로마인들은 로마라는 국가 자체를 위대하다고 생각했는데 기독교는 그것을 부인하고 모든 영광을 신의 것으로 돌렸으므로 - 이라는 역사가들의 논리에 다음과 같이 반박했다. 

“정의를 빼버리고 크게 보면, 왕국이 범죄집단과 다른 점이 무엇인가? 범죄집단도 조그만 왕국이 아니면 무엇이겠는가? 범죄 집단은, 한 지도자의 지휘 아래에서, 협약에 따라 약탈품을 나눠 가지는 결사체에 의해 묶인 사람들의 모임이다. 만약 이 악행집단이 부도덕한 무리들로부터 많은 지원자를 획득하여 영토를 획득한 후 거점을 구축하고, 도시들을 탈취하여 사람들을 복속시킨다면, 그 집단은 공개적으로 그 자신을 왕국이라고 사칭하고, 침략의 비난이 아니고 정당성을 획득하여 그 왕국은 세계적으로 인정된다. 알렉산더 대왕에게 사로잡힌 해적이 알렉산더 대왕에게 한 재치있고, 사려깊은 대답을 보자. 왕이 그에게 자신에게 대항할 때의 네 생각이 무엇이냐고 물었을 때, 해적이 대답하기를 '세상을 정복할 때의 당신의 생각과 같습니다. 그러나 나는 자그마한 배로 그것을 하기 때문에 해적이라 불리고, 당신은 강력한 해군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정복자라고 불립니다.'”

성 아우구스티누스의 입장에서 보자면 국가와 해적 집단 사이에는 규모의 차이를 제외하고 도덕적인 차이는 없었다. 두 집단 모두 성공을 위해 내적 조화와 조직에 의존하고, 다른 이들의 생명과 재산을 취하고 파괴하는 그들의 능력에 의해 성공여부를 평가받는다. 팔레스타인을 향한 이스라엘의, 체첸을 향한 러시아의, 이라크를 향한 미국의 행위를 보라. 우리는 그런 것들을 일컬어 국가테러라고 불러야 마땅하지 않을까. 권혁범의 저서
"국민국가로부터의 탈퇴"는 여러가지 의미에서 국가주의의 영향 아래서 벗어나지 못하는 이 땅의 불행한 국민들, 알고 있으면서도 어쩔 수 없다는 체념 혹은 이에 저항할 기력을 잃은 지식인들(혹은 중독되어 있는)에게 향하는 적절한 예방백신, 해독제 구실을 한다. 

립셋의 정의에 따르자면, 지식인이란
"문화, 즉 예술, 과학, 종교를 포함하는 상징세계를 창조하고, 배분하고, 적용하는 사람"이다. 그들은 물질세계와 구분되는 정신세계의 창조자이자, 전파자이며, 실천가인 셈이다. 그런 의미에서 권혁범이 보여주고 있는 일련의 지적인 저술 행위와 실천으로서의 "국민으로부터의 탈퇴"는 한 ‘비판적’ 지식인이, 우리 사회와 인간에 대해 그 나름의 이해와 소망을 담은 통찰이자 의견이다. 

그에 따르면 한국사회의 개인을 규정하는 것은 무엇보다
"국민적/민족적 정체성"에 의한 것이다. 이런 국민적 정체성, 국민됨으로 사유하기는 다른 모든 정체성을 종종 압도해버린다. 현실정치의 테제인 "국가안보"는 다른 모든 가치들을 초월하여 존재하고, 이를 위해 국민이라 불리는 집단이면서 동시에 해체해보면 개인일 수 밖에 없는 근대적 개념의 개인이 지닌 기본적 인권을 유보할 수 있게 만든다. 우리의 정체성에는 다른 제3세계 국가들과 마찬가지로 근대성과 더불어 식민적 요소들, 전근대적 질서들이 혼재해 있다. 국민을 규정하는 본질적인 기준 속에는 이렇듯 전근대적 가부장제, 혈통주의를 품는다. 국가라는 상상공동체는 종종 국경이 아닌 단일민족 신화와 같이 혈연에 의해 규정된다.

국가주의는 민족주의와 만나고, 민족주의는 보수와 진보라는 양 진영 사이에 다리를 놓고, 이 둘을 묶어주는 최소공약수가 되어준다. 국익이라는 이름 아래 반미민족주의는 종종 국가주의의 우산 아래에서 행복한 밀회를 즐긴다. 친미와 반미는 국가와 민족이라는 하나의 회로판에서 신호
(사안, 사건)에 따라 서로 도체가 되었다가 부도체가 되는 반도체적인 특성을 지닌다. 국익이라는 특수한 상황은 다른 모든 개별적인 보편을 능가한다. 권혁범의 문제의식은 탁월하다.

그럼에도 이 책에 대해 비판적 입장을 취할 수밖에 없는 몇몇 요소들이 두드러져 보이는 것은 단지 이 책의 저자 권혁범만이 풀고 해결해나가야 할 것은 아니다. 우리들은 우파 지식인들
(지식인은 결코 하나의 성향을 가진 집단이 아니다)에 대해 쏟아내는 비판과 동일한 강도의 비판을 마음속으로 동의를 보내는 지식인들에게도 보내야 한다. 지식인은 "권력(특히 근대국가), 시장(좁게 보면 지식시장), 여론(공론공간)" 사이의 긴장을 통해 자리매김되기 때문이다. 권혁범의 국가에 대한 비판은 그가 한동안 속해있던 "당대비평"의 문제 제기들 "우리 안의 파시즘"과 연결되어 있다. 권혁범의 비판들에 대해 구구절절이 다 옳다고 외치다 보면 어느새 자기도 모르게 허탈하기 쉽다. 그런 생각이 드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렇다고 우리가 무인도에 가서 혼자 살 수는 없기 때문이다. 권혁범의 국가, 권력, 집단에 대한 비판은 본질적으로 유토피아적 상상력에 도달하게 된다. 잘 알려져 있다시피
"유토피아"란 현실 속에서는 존재할 수 없는 가상의 이상향을 의미한다. 권혁범의 비판이 철저하면 철저할수록 그의 근본주의적 비판은 더욱더 공허해지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기 때문이다. 누구라도 개인적인 신념에 따라 국가주의와 파스즘으로 흐를 수 있는 집단주의에 대해 비판을 가할 수 있지만 그것을 현실변혁의 동력으로 바꿀 수 없는 것, 설령, 현실변혁의 동력으로 바꿀 수 있다고 했을 때, 이것이 크롬웰의 신성정치화될 가능성(즉, 또다른 폭력)이 열려 있다. 이것은 근본주의가 빠질 수 있는 공허다. 현실에 대한 비판은 논리적 프로그램만을 따질 수는 없기 때문이다. 

단적인 예로 UN의 보고에 의하면 1991년 냉전해체 이후 2001년 9.11 이전까지 전세계 약 45개 지역에서 57번의 주요 분쟁이 발생하였다. 분쟁의 결과로 360만명이라는 엄청난 인명이 희생당했다. 잘 알려진 대로 이 시기에 일어난 분쟁의 최대 희생자들 대부분은 민간인이었고, 이들 민간인의 대부분은 여성과 아동과 같이 사회적 약자들이었다. 최근 일어나고 있는 분쟁의 또다른 특징들은 그것이 국가간의 분쟁에 따른 것이라기 보다는 국가의 해체에 따른 국가권력의 부재상황에서 주로 발생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극단적인 국가주의, 국민주의를 회피할 필요는 여전히 인정된다 할지라도 개인으로서 자신의 생명과 권리, 평화와 안정을 보장할 공동체의 존재의 필요성이란 고전적인 명제들은 여전히 존재한다. 

권혁범의 비판적인 주장들을 개인적인 차원의 도덕으로는 쉽게 받아들일 수 있으면서도 민족 단위, 국가 단위의 도덕으로 받아들이기엔 여전히 어려운 까닭은 거기에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할 것인가? 어떤 의미에서 우리는 다시 고전적인 명제로 되돌아갈 필요가 있을 지도 모르겠다. 장 자끄 루소의 고전
"사회계약론" 의 세계 말이다. 어떤 의미에서 권혁범의 주장이 현실적 동력을 얻을 수 있는 지점은 거기에 있을 것이다. 우리는 근대 국가의 역할 자체를 부인할 것이 아니라 국가와 개인이 어느 지점에서 서로를 인정하고, 양보하며 공동체를 재구성할 것인지를 고민해야 한다. 유럽공동체의 출범과 같이 민족에 기반한 근대적 국가개념의 해체와 새로운 물적 토대에 기반한 지역 공동체의 출현은 우리들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그럼에도 우리에겐 여전히 문제가 남는다. 민족국가 건설이라는 근대화의 숙제에 우리는 여전히 발목을 잡히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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