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세기의 역사 - 마이클하워드. 로저루이스 외 | 차하순 옮김 | 이산(2000)


이 책은 지난 1998년 영국 옥스포드 대학 출판부에서  <20세기의 역사 "The Oxford History of the Twentieth Century">를 번역한 책이다.  


이런 류의 책들에 대한 독후감을 하기 위해서는 무척 많은 역량을 필요로 한다. 이유는 일단 책 자체가 다루고 있는 하중이 만만치 않은 데다가 분량 역시 만만치 않은 탓이 크다. 일단 그 묵직함이 무엇인가를 보여주는 가장 좋은 방법은 목차를 보여주는 것이다. 목차는 책을 읽기 위해 필요한 일종의 로드맵이자, 그 책의 구조를 보여주는 가장 합리적인 설계도인 셈이다.

우리나라와 같이 중복 출판의 악명이 높은 곳이라면 목차의 중요성은 더욱더 커진다. 만약 같은 책이 중복 출판되었는데 그 중에서 좀더 좋은 책을 고르고 싶다면 우선적으로 목차를 자세히 살펴보는 것이 중요하다. 목차가 상세하게 되어있고, 찾아보기가 잘 되어 있는 책일수록 번역의 질이 전반적으로 높은 책일 확률이 비약적으로 높아진다. 잡소리가 길었는데, 굳이 그런 이야기를 서두에서 장황하게 늘어놓고 있는 이유는 이 책이 그런 점에서 질적으로 매우 뛰어나기 때문이다.



이 책은 크게 5개의 장으로 이루어져 있다. 제1장 '20세기의 구조'에서는 20세기를 규정할 수 있는 성격들을 모두 7개 단락으로 나누어 풀고 있다. 물론 그 면면이 20세기의 구조를 밝히는데는 과부족이다. 이 책을 읽기 전에 무엇보다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다음의 세 가지이다. 하나는 이 책이 기술된 시점이 20세기 말엽의 현실사회주의권 몰락의 역사적 결과를 바라보며 기획되어서 나토의 유고공습 시점에 집필되었다는 것이고, 둘째는 이 책의 주요기술자들이 영미권 역사학자들을 중심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셋째는 이들의 시각이 실증적인 관점을 가지고 있으나 주된 관점은 영미적인 시각을 중심으로 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 책은 먼저 그런 세가지 사안들을 유념해서 보아야 한다. 이 책은 그런 점에서 20세기의 역사를 다루고 있는 또 한 권의 주목할 만한 책인 에릭 홉스봄의 "극단의 시대"와는 극명한 차이를 가지고 있다.

대표 저자인 마이클 하워드 (Michael Howard)는 1922년 영국 출생으로 제 2차 시계대전에 참전하였고, 1946년 옥스퍼드 대학을 졸업하여 이듬해인 1947년부터 1963년까지 런던대학 킹스 칼리지에서, 1963년부터 1968년에는 전쟁사 석좌교수로 재직하였다(마이클 하워드의 책 중 국내에 번역된 것은 이외에도 "평화의 발명" 등이 있다). 그외에도 로저 루이스, 윌리엄 맥닐, 1979년 노벨물리학상 수상자인 스티븐 와인버그, 우리에게도 중국사 전문가로 널리 알려진 조너선 스펜스(그의 책은 국내에 번역 출판된 것이 많은 편이다.), 아키라 이리에, 사회학자 랠프 다렌도르프 등이다. 이 책은 단지 저자들이 유명한 것으로만 이야기할 수는 없다. 그것을 번역해낸 연구자들 역시 국내의 저명한 학자군들이 대거 참여하고 있다. 우선 대표 번역자로 서강대 명예교수인 차하순 선생을 비롯해서 경제쪽의 인하대 경제학과의 김진방, 중동분야의 권위자인 한양대 문화인류학과 이희수 선생 등등 그들이다. 이외에도 라틴 아메리카 부분을 번역한 서성철 선생 등도 모두 해당 분야의 최고 전문가 그룹이다.

그렇다면 그 내용도 과연 최고인가?를 물을 수 있을 것이다. 먼저 말하고 싶은 것은 앞서 말했던 이 책의 세 가지 특징을 염두에 두라는 것이다. 이 책은 이념적인 부분에 대해서는 실증적인 관점을 유지하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영미적 시각을 고수하려는 경향을 보인다. 즉, 이 책에서 구소련과 중국, 공산주의는 전체주의와 다르나 아주 다르지는 않다는 식으로 다뤄진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0세기에 대해 쓰여진 현존하는 역사서 중에서 '아직까지는' 이 책을 열 손가락 안에 꼽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 책의 저자들을 비롯해서 근현대사를 연구한 많은 학자들이 우리들이 흔히 생각하듯 물리적인 시간으로서의 20세기는 기왕에 종료되었으나 지난 세기인 19세기가 역사적으로는 과연 언제 종료되었는가를 규정짓는데 여러 의견이 있는 것처럼 물리적인 21세기는 시작되었으나 역사적인 맥락에서의 20세기는 아직 종료되지 않았다고 볼수도 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이 책이 말하고 있는 20세기는 먼 과거의 일이 아니라 현재와 밀접한 연관을 맺고 과거의 관점과는 다른 새로운 관점에 의한 해석의 통로들을 열어놓고 있기 때문이다. 가령, 이 책에서 언급하고 있듯이 빌헬름 뢴트겐이 X선을 발견한 것은, 사건 자체로는 그다지 대단한 것이 아니었으나 그것을 통해 19세기의 물리학자들이 더이상의 과학 발견은 없다고 믿었던 자연상의 발견에 대한 새로운 통찰을 제공해주었고, 그로부터 새로운 20세기의 물리학이 시작되었다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우리는 20세기와 아직까지는 너무나 밀접한 삶을 살고 있으므로 20세기를 역사적으로 규정짓고 의미를 부여하는 일은 종료된 과거의 일이 아니라 현재진행형이다.


이 책은 서구 제국주의의 팽창으로부터 양차 세계대전, 스페인, 러시아 혁명과 대공황, 냉전에서 공산주의의 붕괴 그리고 홍콩의 중국 반환과 동티모르 사태 등 정치적인 사건의 맥락에서 혹은 양자역학과 상대성 이론에서 DNA  복제 문제에 이르는 다종다양한 사건들을 다루고 있다. 그리고 그 안에서 세계화에 대해 비교적 긍정적인 시각으로 바라보고 있다. 아마도 이 책이 2000년에 나왔다면 틀림없이 1999년의 세계화에 대한 전세계 민중들의 뜨거운 반대 함성을 들을 수 있었을 것이다. 1999년 시애틀 전투 말이다. 어떤 맥락에서도 21세기가 20세기보다 희망적일 것이라는 증거는 없으며 그것은 앞으로 우리들의 삶으로 체현되는 역사이기 때문이다.

21세기를 살아가고 있는 당신에게 20세기는 이미 지난 과거에 불과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20세기는 당신이 살아있는 동안에는 여전히 현재 지속형으로서 존재하며 당신과 나, 우리 지역사회와 대한민국, 그리고 나아가 한반도와 동아시아, 세계 문제에 계속되는 영향력을 행사할 것이다. 그러니 지금이라도 당신의 20세기를 찾아가는 지적인 여행을 펼치는 것은 어떠한가?
이 책의 작은 재미 중 하나는 본문 사이사이에 배치된 120컷에 달하는 컬러와 흑백화보다. 또, 70쪽에 이르는 20세기 연표는 지난 100년의 흐름을 각 분야별로 일목요연하게 살펴볼 수 있도록 편집되어 있는데, 바람구두연방의 문화망명지에서 제공하고 있는 연표를 만들 때도 참고하였다. 물론 전적으로 참고하지는 않았다.

끝으로 많은 분들이 이 책을 읽었으면 좋겠고, 그와 더불어 번역에는 제법 문제가 많지만 에릭 홉스봄의 "극단의 시대"도 함께 읽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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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바람구두 windsho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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