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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1.04.27 서정주 - 대낮 (3)
  2. 2011.03.03 한국 대표 시인 초간본 총서 | 열린책들(2004)
  3. 2010.12.24 윤동주 - 별 헤는 밤 (2)

대낮

- 서정주

따서 먹으면 자는 듯이 죽는다는
붉은 꽃밭 사이 길이 있어

핫슈 먹은 듯 취해 나자빠진
능구렁이 같은 등어릿길로,
님은 달아나며 나를 부르고.....

강한 향기로 흐르는 코피
두 손에 받으며 나는 쫓느니

밤처럼 고요한 끓는 대낮에
우리 둘이는 온몸이 달아......

* 핫슈 : 아편의 일종

*

사람들을 인솔해 미당 서정주의 기념관에 갔을 때, 반응은 대체로 두 가지였다. 그의 시에 대한 찬탄을 거듭하며 그의 행적에 대해 눈감거나 그의 행적을 지적하며 이런 시인의 기념관을 세우고, 이런 사람을 기념하는 것에 대해 불만을 표하거나, 물론 그 사람들의 속내를 알지 못하니 내가 한 마디로 단정지어 왈가왈부하는 건 폭력적인 단정일 것이다. 하지만 그 분들의 속내에도 불구하고 대체로 사람들은 두 가지 중 하나의 입장을 선택해 내게 물었다.

이유는 그날 인솔하고 간 사람들에게 미당에 대해 설명해야 하는 역할이 나에게 주어졌기 때문이다. 가끔 나는 위인이 된다는 건, 절묘한 시대, 절묘한 자리에 서 있기에 자신의 속내를 털어놓을 수 밖에 없는 위치에 선다는 걸 의미하는 게 아닌가 생각해보곤 한다. 내 나름으론 일개 필부에게도 세상의 흥망에 책임이 있다는 자세로 살고자 하지만, 그걸 남들에게도 강요할 수는 없는 노릇이고, 어떤 사람들은 정치적인 인식 없이 그저 열심히 살았는데 공무원이라거나 사회적 지위로 인해 무언가 입장을 표명해야 하는 자리에 설 수도 있으니 말이다. 역사가 흐른 뒤 그 사람을 비판하는 건 쉬워도 막상 지금 이 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들도 자신이 내린 어떤 입장이 항상 옳았다고 자신할 수 없다. 게다가 사람들은 너무 바빠서 다른 사람이 어떤 입장을 취할 때 그저 흑백으로 구분할 뿐 그 입장을 택하기까지 혹은 선택한 입장에서도 여러 갈래가 있을 수 있다는 것은 생각하지 않는다. 그런 것은 연구자의 몫일 뿐 일반인들에겐 단순히 흑과 백의 이미지로만 남을 뿐이다.

우리는 국어 시간에 청록파 시인들은 훼절하지 않았다고, 이육사와 윤동주는 저항했다고 배웠지만 따지고 보면 이육사는 독립운동가이자 시인이었지, 시인이자 독립운동가라고 평하기엔 곤란하며(이 말이 이육사 문학사적인 가치와 위상을 논하려는 건 아니다, 그의 삶에서 어느 쪽의 비중이 좀더 높았는가를 나름 생각해보았다는 의미이다. 사실 이육사가 활동하던 당시엔 시인 이육사 보다 그의 동생인 이원조가 더 유명했고 이육사는 그의 중형 정도로만 소개될 정도였는데 훗날 이원조가 월북하면서 우리 역사에서 잊혀진 인물이 되어버리고 말았다. 물론 이원조란 동생이 있었다는 사실을 기억하는 사람도 많지 않다.), 윤동주는 일제의 희생자라고 해야지 독립운동가로 구분하긴 애매한 위치에 있었다. 물론 청록파 시인들은 당시만 하더라도 너무 어린 시인들이었다.

이런들 저런들 미당 서정주가 욕먹어 마땅하다는 점에는 변함이 없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문제가 되는 건, 그런 인식을 저변에 깔고 보려하는 데도 여전히 나의 지조 없는 심미안에는 그의 작품들이 훌륭하더란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도스토예프스키의 테마 "아름다움이 세상을 구원한다"에 대해 깊이 생각해보아야 한다. 나는 그것이 참말로 무서웠다. 옳지 않았다는 것이 명확한 데도, 그의 시는 살아남았다. 예술이 더 오래 갈 것인지, 역사가 더 오래 갈 것인지는 알 수 없으나 서정주의 시가 살아남는 한 그에 대한 역사의 평가는 길고 긴 그림자를 남길 것이란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 나는 그 자리에서 사람들에게 무어라고 설명했던가? 머리로는 싫어하는데, 가슴으론 찬탄하지 않을 수 없다고 했던가? 미워하지만 좋아하지 않을 수 없다고 했던가? 아니면 역사란 인간을 제물로 삼을 수밖에 없으며 세상의 모든 약한 것들은 역사의 톱니바퀴에 짓이겨질 수밖에 없다고 했을까?

서정주는 너무 잘 살았다. 그는 너무 잘 살았고, 잘 살아남았고, 그로 인해 미움을 받는다. 그리고 그로 인해 쏟아지는 미움 역시 당연한 일이다. 능구렁이 같은 영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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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대표 시인 초간본 총서 - 전20권 
김광균 | 김기림 | 김소월 | 김영랑 | 박남수 | 박목월 | 백석 | 오장환 | 유치환 | 윤동주 | 이육사 | 임화 | 정지용 | 조지훈 | 한용운 | 박두진 | 이용악 | 김상용 | 김억 | 김창술 (지은이) | 열린책들(2004)





위에서 언급하고 있는 시인 18인은 우리 문학사를 다루고 있는 책이라면 어느 책이든 빼놓지 않는 이들의 이름이다. 그러나 정작 이들의 시집을 찾아 읽는 일은 쉽지 않다. 그 이유는 여러가지가 있겠지만, 우선 낯익음이 주는 게으름이 이들의 시집을 읽지도 않은 체 이미 다 아는 양하게 만들기 때문이고, 다른 하나는 이들의 시집은 주로 선집 혹은 전집 그도 아니면 여러 시인들을 한데 묶은 편집판본들이 허다하게 널린 탓이다.

 

모두 20명의 시인들의 펴낸 그네들의 시집 초간본을 한데 묶은 이 "초간본총서"는 "열린책들"이란 출판사의 기획력을 보여주는 좋은 본보기나 된다. 출판에 있어 총서(叢書)라는 것은 "일정한 주제(主題)에 관하여, 그 각도나 처지가 다른 저자들이 저술한 서적을 한데 모은 것"이라 정의된다. 그러므로 이들을 한데 묶어주는 기획에 있어 원칙이란 것은 매우 중요하다. 그것이 전체 기획의 통일성을 주기 때문이다. 이들은 시집을 선정하는 기준을 다음과 같이 밝히고 있다. "첫째, 한국 현대시 100년사에 남아야 될 작품성 있는 시집, 둘째, 그중에서 문학사적으로 의의가 있는 시집을 골랐다. 표기는 원칙적으로 현행 맞춤법에 맞추었지만 특별한 시적 효과와 관련된다고 판단된 경우 원문의 표기를 그대로 살렸으며 필요한 경우 편자 주를 달았다." 그외의 점에서 이 책은 총서로서 뛰어난 역량과 아담한 판형과 제본 솜씨를 보이고 있으며, 쪽수면에서 얇은 시집의 특성상 낱권 보관의 어려움을 배려하여 예쁘게 박스 포장하는 배려까지 기울였다.(소장용으로도 그만이란 뜻이다)

 

우리는 문학 수업 시간에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적 개인시집으로 소월의 스승이기도 한 김억의 시집 "해파리의 노래"라고 배웠다. 이 시집은 모두 164쪽으로 1923년 조선도서주식회사에서 간행되었다. 책의 첫머리에는 춘원 이광수(李光洙)와 지은이의 서문이 있고, 총 83편의 시를 9장의 구분으로 나누어 싣고 있다. "열린 책들"에서 출간된 김억의 시집 "해파리의 노래"를 살펴보니 틀림없이 내가 배우고 알고 있는 김억의 초판본의 수록 형태와 내용을 빠짐없이 담고 있었다. 춘원은 이 시집의 서문에서 "인생에는 기쁨도 많고 슬픔도 많다. 특히 오늘날 흰옷 입은 사람의 나라에는 여러가지 애닮고 그립고, 구슬픈일이 많다. 이러한 <세상살이>에서 흘러나오는 수없는 탄식과 감동과 감격과 가다가는 울음과 또는 우스꽝과, 어떤 때에는 원망과 그런 것이 시가 될 것이다. 흰옷 입은 나라 사람의 시가 될 것이다. .....<중략>..... 어디 해파리, 네 설움, 네 아픔이 무엇인가 보자." 라고 말한다.

 

이렇듯 이 총서는 우리 문학사의 중요한 시기이면서 상대적으로 접근하기 어려웠던 시기의 시인 18명의 시집 20권을 초간본 형태의 원형 그대로 접근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이런 기획 자체는 앞으로도 더욱 많아지길 희망하게 되는 그런 류의 것임에 틀림이 없다. 그러나 이 책의 장점은 이 책의 단점이기도 하다. 만약 원형 그대로의 초간본 형태를 보여준다면 일반 독자들은 과거의 맞춤법에 따른 이 시집들을 읽기 어려울 것이다. 그런 탓에 총서기획자들은 보다 대중적인 시집으로 읽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이 시집의 맞춤법과 문장 형태를 현대적인 것으로 개작하였으리라. 어떤 의미에서 보자면 이것은 매우 합리적이고, 대중을 위한 배려이다. 그러나 연구자료로서 이 책을 기대했던 문학연구자들의 입장에서 보자면 이 책은 이전에 출판되었던 다른 시집들과 변별점을 찾기 어렵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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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 헤는 밤

- 윤동주


계절이 지나가는 하늘에는
가을로 가득 차 있습니다.

나는 아무 걱정도 없이
가을 속의 별들을 다 헤일 듯합니다.

가슴속에 하나 둘 새겨지는 별을
이제 다 못 헤는 것은
쉬이 아침이 오는 까닭이요,
내일 밤이 남은 까닭이요,
아직 나의 청춘이 다 하지 않은 까닭입니다.

별 하나에 추억과
별 하나에 사랑과
별 하나에 쓸쓸함과
별 하나에 동경과
별 하나에 시와
별 하나에 어머니, 어머니,

어머님, 나는 별 하나에 아름다운 말 한마디씩 불러 봅니다. 소학교 때 책상을 같이 했던 아이들의 이름과 패(佩), 경(鏡), 옥(玉), 이런 이국 소녀들의 이름과, 벌써 애기 어머니 된 계집애들의 이름과, 가난한 이웃사람들의 이름과, 비둘기, 강아지, 토끼, 노새, 노루, '프랑시스 잠', '라이너 마리아 릴케' 이런 시인의 이름을 불러 봅니다.

이네들은 너무나 멀리 있습니다.
별이 아슬히 멀 듯이,

어머님,
그리고 당신은 멀리 북간도에 계십니다.

나는 무엇인지 그리워
이 많은 별빛이 내린 언덕 위에
내 이름자를 써 보고
흙으로 덮어버리었습니다.

딴은 밤을 새워 우는 벌레는
부끄러운 이름을 슬퍼하는 까닭입니다.

<1941. 11. 5.>

출처 : 윤동주, 홍장학 엮음, 『정본 윤동주 전집』, 문학과지성사, 2004

*그러나 겨울이 지나고 나의 별에도 봄이 오면
무덤 위에 파란 잔디가 피어나듯이
내 이름자 묻힌 언덕 우에도
자랑처럼 풀이 무성할 게외다.

*) 부분은 『정본 윤동주 전집』의 편자(홍장학)가 육필 초고 중 첨삭하여 삭제한 부분이다.

**
마감을 한 이틀 남겨놓고 집에 돌아와 밀린 원고를 쓸까 하다 문득 몇날 며칠을 텁텁한 논문들만 읽다보니 입안에서 군내 같은 산문 기운이 가득하다. 하여 시(詩)라도 몇 편 읽다가 자야지 생각하고 간만에 외국 시인들의 시집 속에서 골라낸 “프랑시스 잠(Francis Jammes)”의 시집 『새벽의 삼종에서 저녁의 삼종까지』를 읽었다. 읽다보니 나도 모르게 「별 헤는 밤」의 윤동주가 그리워졌다.

한국 현대시 100년의 스타 중 한 명인 윤동주. 그를 스타라 부르는 것이 불경스럽게 여겨지기는 하지만 학사모를 쓰고 있는 한 장의 사진 속에 새겨진 윤동주의 그윽한 눈빛은 그의 시에 접근하려는 독자들을 가로막는 장벽이기도 하다. 변절과 배신은 현대 정치판에서만 이루어지지 않았고, 문학과 예술의 세계에서도 치열하게, 때로는 치졸하게 이루어졌지만 영원한 청춘의 시인인 윤동주는 기형도가 출현하기 전까지는 최고의 청춘 시인이기도 했다. 비록 이제는 청소년기의 시인처럼 교과서 속에 박제되어 버리고, 민족시인, 저항시인이란 월계관이 미처 굵어지기 전인 시인의 시세계를 억누르고 있긴 하지만 말이다.

홍장학 선생이 엮은 『정본 윤동주 전집』을 찬찬히 읽어보는 가을밤이다. 아니 겨울밤인가? 하지만 67년 전 이 무렵의 윤동주는 11월을 가을이라 불렀다. 하여 나도 오늘밤이 영하 10도로 내려간다 해도 가을밤이라 부르련다.

북간도에 두고 온 어머니를 그리워하는 시인 윤동주의 마음이 절절하게 묻어나는 「별 헤는 밤」에 어째서 느닷없이 프랑시스 잠이 소환되어 나왔는지 신기한 노릇이지만 프랑시스 잠의 시집들을 읽노라면 그도 ‘윤동주답다’는 생각이 절로 든다. 프랑시스 잠의 시세계는 일상(日常)의 아름다움에 대한 예찬으로 가득한데 그건 윤동주의 시세계와도 그리 멀지 않은 지점이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두 시인은 서로 통하는 바가 있다.

1945년 2월 16일, 불과 28세의 나이로 일본 후쿠오카형무소에서 숨진 윤동주가 어떻게 프랑시스 잠을 알았을까 궁금해지기는 한다. 프랑스시 잠은 1938년 세상을 떠났고, 윤동주가 「별 헤는 밤」을 쓴 것이 1941년의 일이니 그의 시집이나 시를 접할 수는 있었을 테지만 요즘 문단이나 독서계의 풍경을 떠올려보면 도리어 이해가 어려울 수 있다. 일단 요즘 젊은 친구들은 시는 읽을지 몰라도 시집은 잘 읽지 않는다 하고, 더군다나 거의 당대에 해당하는 외국 시인의 시를 일부러 찾아서 읽을 것 같지도 않고(이건 나도 마찬가지지만 능력도 없고, 재주도 없는), 창작에 뜻을 둔 사람들은 더욱더 외국 시인의 시를 잘 읽지 않는 편이다.

시인을 꿈꾸는 문학청년들이 외국 시를 잘 읽지 않는단 점에선 그만큼 한국문학이 풍성해진 덕을 보고 있는 셈이기도 하다. 윤동주가 영문학도였다는 사실도 당시 외국 문학의 흐름에 관심을 많이 가질 수밖에 없었던 이유이리라. 김수영이 그러했던 것처럼...  그러나 아마도 가장 진정한 이유는 모든 것이 빈곤했던 시대, 바야흐로 문학이 극성을 맞았던 시대, 어쩌다 구한 한 권의 영미시집조차 얼마나 달콤하게 읽혔을까. 그렇게 상상해보는 것이 맞을 것이다. 한국전쟁이 끝난 직후 대구의 헌책방 골목엔 사회주의와 아나키스트들의 원전이 산더미처럼 쌓여 주인을 찾았다고 하는 것처럼 말이다.


어쨌거나 마지막 발길을 재촉하는 가을밤에 다시 읽는 윤동주의 「별 헤는 밤」은 감회가 새롭다.

별 하나에 추억과
별 하나에 사랑과
별 하나에 쓸쓸함과
별 하나에 동경과
별 하나에 시와
별 하나에 어머니, 어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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