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양으로 읽어야 할 절대지식 - 사사키 다케시 지음 | 윤철규 옮김 | 이다미디어(2004)

세상에 제 아무리 좋은 책이 널렸다 하더라도 그 책을 읽지 않는다면 그건 그저 인쇄된 종이에 불과하다. 영화 "투모로우"에서 도서관으로 대피한 청년들이 얼어죽지 않기 위해 벽난로 불쏘시개로 쓰는 것도 책이다. 그 도서관의 사서 역시 살아남기 위해 책을 불태운다. 이 때의 책이란 아무리 대단한 의미를 부여하더라도 생존에 반드시 필요한 것들은 아니다. 하지만 사서는 한 권의 책만큼 자신의 품에 꼭 품은 채 내놓지 않는다. 쿠텐베르크가 인쇄한 고인쇄물인 "성서"였다. 이 책이 "성서"라 불태우지 않은 것이 아니라 그것이 인류의 문명이 이 지구상에서 사라진다 할지라도 세상에 인류의 흔적으로 남기고 싶은 유물이었기 때문이다. 어찌되었든 초등학교 4학년의 손에 잡힌 "에밀"을 나는 몇날 며칠에 걸쳐 다 읽었다. 책을 읽는 동안에도 그 책이 잘 이해되어서 읽은 것은 아니다. 다만, "에밀"의 첫 구절이 내 가슴에 찌르르 와 닿았던 탓에 그저 이렇게 말하는 사람은 나중에 가서 어떻게 결말을 맺을까? 그것이 궁금했기 때문이다. 에밀의 첫 구절은 이렇게 시작된다.

 

"조물주의 손을 떠날 때에는 모든 것이 선하지만, 인간의 손으로 넘어오면 모든 것이 악해진다."

 

어린 나이에 읽은 "에밀"을 과연 잘 이해했는지는 지금도 알 수 없다. 그후로도 틈틈이 "에밀"을 읽었는가 하면 그렇지 않았기 때문에 나는 어린 시절의 내가 "에밀"을 잘 이해한 것인지 그렇지 않은지 알지 못한다. 다만 "에밀"이란 책의 말미에 소개된 "장 자끄 루소"의 생애가 날 또다시 경악하게 만들었다. 이런 근대의 탁월한 교육철학책을 쓴 장 자끄 루소가 정작 자신의 아이들은 태어나는 족족 고아원으로 보냈다는 이야기가 실려 있지 않은가. 책과 책의 저자가 위인전과 위인 만큼 실제와 다르다는 것을 처음 깨닫게 된 계기였다.

 

나중에 대학에 간 어느날 우리를 가르치던 교수는 자신의 강의 시간에 강독한 소설 작품들 가운데 "앞으로 100년 뒤에도 여전히 읽히게 될 작품"이라고 생각되는 작품 하나를 선정해서 그렇게 생각하는 이유를 정리해서 리포트로 제출하라는 것이었다. 앞으로 100년 뒤에도 여전히 읽게 될 작품을 선정하고, 그렇게 생각하는 이유를 선정하라니... 끔찍한 과제였다. 우리 근대문학의 역사를 이인직의 "혈의누"로 잡아도 2006년이 되어야 비로소 100년인데, 그로부터 100년 뒤에도 여전히 읽게 될 소설을 자신이 진행한 강의 시간에 강독한 10편 가량 되는 소설들 가운데 골라 보라니 끔찍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덕분에 나는 고전이란 무엇인지, 명작이란 무엇인지를 고민하게 되었다. 고전이란 시간이란 숫돌에 연마하여도 그 빛이 사라지지 않고 더욱 빛나는 것들을 의미한다.

 

김명수 시인의 시 "하급반 교과서"에 등장하는 한 대목처럼 "아니다 아니다!"하고 읽으니 / "그렇다 그렇다!" 따라서 읽는다./ 외우기도 좋아라 하급반 교과서/ 활자도 커다랗고 읽기에도 좋아라/ 목소리도 하나도 흐트리지 않고/ 한 아이가 읽는 대로 따라 읽는다. / 이 봄날 쓸쓸한 우리들의 책읽기여"를 하며, "참새 짹짹, 병아리 삐약삐약"을 외우듯 한국 최초의 개인 시집은 김억의 "해파리의 노래"라고 외우지만 정작 "해파리의 노래"란 시집이 오늘날 고전이라 할 수 있을까? 내가 이 시집을 처음 손에 넣은 것이 불과 일주일 정도 전이란 사실을 구태여 상기해보지 않더라도 이 시집이 오늘날 김소월이나 윤동주가 누리는 것과 같은 영예를 누린다고 할 수는 없다(열린책들 초간본시리즈). 이 시집은 어떤 의미에선 고전이라기 보다는 문학연구자들에게 필요한 연구자료에 가깝다. 고전은 그와 같은 의미에서 단지 오래된 책이란 의미만은 아니다.

 

그렇다면 고전이란 무엇인가? 어째서 "교양으로 읽어야 할 절대지식"이라는 거창하기 짝이 없는 제목이 붙게 만드는 것일까?  '고전(古典, classics)'과 함께 책을 의미하는 몇 가지 명칭들을 이야기해보자. 우선, 정전(正典(canon)이란 말이 있고, 실라버스(syllabus)가 있고 텍스트(text)란 말이 있다. 앞의 것일수록 범위가 좁아진다고 보면 맞을 것이다. 텍스트란 것이 말 그대로 '해석(규정)되기 이전의 원본'을 의미한다면, 실라버스는 이런 텍스트들 가운데 특별한 목적과 제도로서 선별된 텍스트들을 의미한다고 할 수 있다.

 

보다 쉽게 이해를 돕는다면 대학에서 어떤 강의 교재로 채택한 도서 목록이 있다면 그것은 그 강의의 실라버스라 할 수 있다. 정전(cannon)이라 하는 것은 갈대나 장대를 의미하는 고대 희랍어 kannon에서 유래된 말로 후에 '규칙' 혹은 '법'과 같은 의미를 지니게 된다. 이 말은 보다 발전하게 되어 다른 텍스트들보다 보존할 가치가 있는 어떤 텍스트들을 규정하는 말이 된다. 가령, 기독교 문화권에서는 성서와 이를 해석한 신학 서적들이, 이슬람 문화권에서는 꾸란이, 우리와 같은 유교문화권에서는 "사서 오경" 과 같은 책들이 정전이 될 수 있다. 정전이란 한 문화권이 위대하다고 동의하고 있는 혹은 간주하고 있는 작품들의 총합을 의미한다는 점에서 고전(classics)와 흡사한 의미를 담고 있지만, 고전이란 말은 보다 확실한 존경의 의미를 담아 사용되는 말이란 점에서 차이가 있다. 즉, 정전이란 말은 보다 객관적인 용어로 쓰인다는 것이다.

 

만약 한 개인에게 내 인생의 의미있는 책 100권을 고르라고 한다면 그것은 그 개인에게 있어서만큼은 확실히 정전이 될 수 있다. 그런 개개인이 100명이 모이고, 1,000명이 모이고, 다시 한 사회의 구성원이 되면서 서로의 정전이 겹치고 스며들면서 구성되는 것이 바로 그 사회의 정전이 되고, 세월과 함께 숙성되어 인정받는 것이 바로 고전이다. 그러나 어떤 고전들은 역사상 가장 위대한 왕들로 손꼽히는 이들치고, 그 백성들에게 가혹한 희생을 강요하지 않은 왕이 없는 법처럼 종종 이집트의 피라밋처럼 이중적인 의미를 지니곤 한다. 즉, 존경받아 마땅한 고전들은 종종 교양(敎養)이란 이름으로 - 그것이 culture이든, bildung이든 상관없이 - 지배계급의 이데올로기를 받아들이도록 강요하는 것이 되기도 한다. 어떤 인간도 그 시대와 괴리된 채 살아갈 수 없기에 우리는 교양이란 이름으로 그 시대의 지배 이데올로기를 교육받곤 한다. 교양이란 어떤 의미에서는 그 시대의 상식을 얼마나 잘 꿰차고 있는가를 의미하기도 하는데, 이때의 상식(common sense)이란 정상과 비정상을 가늠하는 기준이 된다는 점에서 또다른 정전이기도 하다.

 

이 말은 상식이 바뀌면 고전이나 정전의 지위도 바뀔 수 있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아마도 푸코가 말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그래서 고전이란 지배계급의 경전인지도 모른다. 그들은 상식을 장악함으로써 고전을 취사선택한다. 여기 "교양으로 읽어야 할 절대지식"이란 책이 있다. "절대지식"이다. 그것도 "교양으로 읽어야 할~" 이런 류의 책을 대할 때마다 주눅들기 십상이다. 읽었다고 해서 내것일리 없는... 비록 세상은 바꾸었을지 모르나 나 자신은 바꿀 수 없는... 그러므로 절대란 절대로 그렇지 아니하다란 뜻일 수도 있다. 절대로, 절대로란 말로 이루어진 사랑의 맹세를 절대로 믿을 수 없는 것처럼....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Posted by 바람구두 windshoes

『그리스로마 신화사전』 - M.그랜트 | 김진욱 옮김 | 범우사


“로고스와 뮈토스는 말의 양면이며, 양자 다같이 정신생활의 기본적 기능이다. 논증으로서의 로고스는 올바르고 논리에 닿을 경우는 진실이지만 뭔가 속임수가 있을 경우는 허위가 된다. 그러나 뮈토스는 오로지 뮈토스 외에 아무 목적도 없다.” - 피에르 그리말

 


▶ 그리스로마신화의 계보도

사실 신화가 우리에게 중요한 무엇으로 주목받기 시작한 것은 최소한 우리 국내의 문화사적인 측면에서 보자면 극히 최근 십여년의 일이다. 80년대말 90년대 초엽까지 우리는 민주화 문제에 전념하고 있던 상황인지라 신화 이야기는 어딘가 멀고 먼 나라의 이야기쯤으로 치부될 수밖에 없었고, 그저 교양의 일부를 이루기 위해 읽어두어야 할 무엇으로 간주되었다. 내가 정확히 그 문맥을 파악하고 있는 것인지 잘 알 수는 없지만 최근 우리 사회에서 신화가 주목받는 이유는 크게 두 가지이다. 하나는 역사의 시대가 저물고 있다는 것이고(이 말은 근대 이성의 시대가 저문다는 뜻이기도 하다), 다른 하나는 구조주의, 후기구조주의, 포스트모더니즘적인 차원에서 신화가 중요한 개념으로 다뤄지고 있는 탓이다.

 

요 얼마동안 깜짝 독서로 신화 관련 서적들을 집중적으로 읽었는데, 국내 신화 관련 서적들을 모두 통달했다는 뜻은 아니지만, 나름대로 몇 가지 공통점을 찾을 수 있었다. 한 가지는 이윤기 선생에 대한 불만이고, 다른 한 가지는 그럼에도 신화에 관한 책(혹은 기획)은 앞으로 무궁무진하겠단 생각이다. 실제로도 최근 십여년 동안 신화에 대한 출판 종수는 엄청나게 늘어나고 있는 추세고, 앞으로도 그럴 것 같다. 그럼에도 우리의 신화 읽기는 대중의 트렌드에 그칠지 모르겠단 생각이 든다. 출판종수는 많지만 적절히 커리큘럼화된 신화 읽기의 틀이 잘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사실 신화가 문화적으로 재조명 받게 된데에는 인류학과 언어학의 깊은 영향을 받은 구조주의의 출현과 관련이 있다. 문명화되지 않은 원시사회를 방문한 초기 인류학자들은 놀라운 사실을 발견하게 되는데, 문명화되지 않은 원시사회가 동물, 사람, 식물 그리고 각종 사물들을 분류하는 정교한 체계를 지니고 있었기 때문이다. 소쉬르의 "시니피앙과 시니피에, 랑그와 빠롤"이 사회학자 뒤르켐이 간파한 사회문화적 생활 속에 구조화될 수 있는 광범위한 틀로써 "집단적 표상"과 결합하면서 구조주의의 근간을 이루었다. 레비스트로스는 원시사회의 신화는 '그 사회가 지니고 있는 해결되지 않는 모순을 상상적으로 해결하려 하는 이야기'를 의미한다고 했다. 신화가 의미있는 이야기가 되기 위해서는 일정한 체제를 갖추어야 하는데, 그 체제 혹은 이야기체를 우리는 내러티브(narrtive)라 부른다.

 

신화를 분석하는 이들은 신화의 내러티브(서사) 구조를 분석함으로써 신화가 담고 있는 의미들을 해체하고 재구성하려 한다. 롤랑 바르트는 소쉬르의 기표/기의가 합쳐져 의미를 만들어 내는 방식을 1차적 의미화 과정으로 보고 이를 '외연'이라 불렀다. '외연'이 표상하는 것, 예로 들어 미모의 여배우 '***'라 했을 때, 이 배우의 이름을 듣거나 보면서 '참 예쁘다. 얼굴에 품위가 있어 보인다. 얼마전 재벌 2세와 이혼했다. 나이가 제법 들었는데도 여전히 젊어 보인다' 란 의미를 담고 있는 것, 그것을 의미의 2차화를 '내포'라 한다. 이를 CF 광고나 영화와 같이 나름의 내러티브 구조를 갖춘 분야에 적용시켜서 그 모델이 권하는 상품이나 서비스를 구입하도록 권하는 것을 의미의 3차화 과정, 즉 사회적으로 널리 통용되는 믿음이나 가치, 태도 등을 '신화'라 불렀다. 그런 점에서 신화는 지배 이데올로기의 다른 표현이기도 하다. 즉, 우리는 신화를 읽고 분석함으로써 우리 안에 오랜 세월 깃들어 있던 인간의 본성과 아직 문명이 썩트기 전 우리 선조들이 살았던 시대의 정신을 이해할 수 있다.

 

흐흐, 하지만 뭐 우리야 이런 머리 복잡한 내용까지 알 필요는 없으리라. 범우사는 내 개인적으로 인연이 좀 있다. 중고생 시절 범우사의 독서회원으로 가입해서 인문학 분야의 염가 문고판 시리즈인 사루비아 문고를 비롯한 꽤 여러 종의 책들을 우편주문으로 받아보곤 했다. 특히 인문학 분야의 저서들 가운데 꼭 범우사 것이 결정판이라고 할 수는 없어도, 범우사가 앞서 출판했다고 할 수 있는 고전들은 꽤 여러 종된다. 토마스 불핀치의 "그리스 로마 신화" 도 범우사 고전선 시리즈 가운데 하나로 나 역시 가지고 있는 책이다. 그런데 이 책의 뒤에 일종의 해설로 글을 쓴 사람이 프랑스의 신화학자 "피에르 그리말"이었다. 그런 범우사에서 M. 그랜트, J.헤이즐 공저의 "그리스 로마 신화 사전"을 펴냈다. 이 역시 당시로서는 꽤 발빠르게 펴낸 책이라 할 수 있다. 양장본에 금박지에 인쇄한 겉표지를 씌운 매우 고급스러운 장정의 책이었는데, 사전이란 특색에 걸맞도록 동아대백과 전집류에 있을 법한 튼튼한 박스 포장을 별도로 만든 책이었다. 지금의 거의 4만원에 가깝지만 처음 나왔을 때만해도 정가가 3만원이었다. 

 

그런데 열린책들에서 "피에르 그리말"의 "그리스로마신화사전"을 펴냈다. 어느 사전이 더 좋은 지 말하긴 현재 내 입장에선 다소 곤란하다. 열린책들의 "그리스로마신화사전"은 아직 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다른 사전 같으면 최신판이 당연히 더 좋은 것이겠지만, 이 사전은 이미 오래전에 소멸되어버린 신들에 대한 사전이므로, 최신판이라고 해서 갑자기 출현한 새로운 신의 명단이 들어있을리도 없다. 이럴 경우엔 어느 사전의 표제어가 더 많은가, 설명은 얼마나 충실하게 해두었는가? 그리스.로마신화의 수많은 이설들, 동명이인들은 어떻게 분류해놓았는가가 관건이다. 일단 내가 읽은 범우사판 "그리스로마신화" 사전은 나름대로 합격점을 받을 만하다. 당시엔 사전치고 지질이 좀 떨어진단 생각을 했는데, 최신판에선 얼마나 개선했는지 모르겠다. "열린책들"의 "그리스로마신화사전"도 찾아보기만 106페이지에 이른다고 자랑하니 무엇을 보든 상관없겠다.

 

다만, 내가 재미있는 건, 범우사판 "피에르 그리말"의 해설을 나름대로 잘 읽었다는 거다. 어쨌든 피에르 그리말을 먼저 안 건 범우사일 텐데, 그의 책은 "열린책들"에서 나왔다는 게 나의 작은 독서 취미로는 상당히 재미있는 아이러니다. 아참, 신화사전을 한 권쯤 가지고 있는 게 신화 책을 읽어 나가기 위해 반드시까지는 아니어도 상당히 필요하단 말씀을 드렸던가?

저작자 표시 비영리 동일 조건 변경 허락
신고
Posted by 바람구두 windshoes
판도라의 호기심을 통해 발견한 희망, 금서(禁書)


우리가 흔히 ‘문화’라고 부르는 일상의 공간은 지배계급의 이데올로기, 지배적 문화가 대중에게 널리 유포되는 장이자, 동시에 이에 대한 대중의 저항이 병존하는 공간이다. 문화(일상)는 사회를 구성하고 있는 피지배계급의 다양한 정체성, 저항력과 지배계급의 통합력 사이의 투쟁의 장(battle field)이다. 현재 우리 사회의 일상문화란 이와 같이 미시적인 영역에서 지배계급의 이데올로기(지배적 문화)와 대중(다중)이 매일 반복적으로 벌이는 투쟁과 타협이 서로 ‘타협적 평형(compromise equilibrium)’을 이룬 결과물이다.

그런 점에서 금서, 혹은 판금도서란 지배계급이 허용할 수 없는 금지된 지식 - 타협적 평형을 붕괴시킬 수도 있을 만한 파괴력 - 을 담고 있다고 간주되는 책을 의미한다. 금서란 당대에 발간 혹은 보급이 금지 ․ 제약 당한 책을 말하며, 검열제도의 존재를 전제로 한다. 금서의 범위는 단순히 법률로 정리된 것이기 보다는 그 책을 발간·보급·유통하여 처벌당하거나 심지어 읽었다는 이유로 불이익을 받는 책을 말한다. 이러한 금서는 대체로 정치적 이유(체제의 안전, 이데올로기, 공안질서 등), 종교·신앙적 이유, 사회적 이유(음란·외설 등)를 들어 만들어진다.

지배와 피지배계급의 문화적 투쟁이 역사 이래 지속되어 온 것처럼 금서의 역사는 책의 역사라 할 만큼 연원이 오래되었다. 금서의 역사상 가장 유명한 인물 가운데 한 사람은 중국의 진시황(기원전 259∼210)이었다. 그는 인류 최초의 분서사건인 분서갱유(焚書坑儒, 기원전 213년)를 통해 백성에게 꼭 필요한 의약과 복술, 농경에 관한 글과 진나라의 기록을 제외한 모든 서적을 불살라 버리고, 그 이듬해에는 유학자 460명을 산 채로 매장시켰다. 예언자 무함마드를 이은 2대 칼리프 오마르 1세(재위기간 634~644)는 이집트 알렉산드리아를 점령한 뒤 도서관에 보관된 장서들을 모두 땔감으로 썼다. 우리나라에서도 조선시대 태종이 참위술서(讖緯術書)를 요서(妖書)라 하여 모두 불태우도록 했고, 정조 9년에는 『정감록』에 대해 금서령을 내렸다. 금서는 왕정과 공화정, 종교를 불문하고, 자유주의와 사회주의 체제를 넘어 어느 시대에나 존재해왔다.

책(인쇄물)에 대한 검열제를 만들어낸 것은 종교개혁에 대항하고, 지동설의 유포를 막기 위한 교황청의 시도에 의한 것이었다. 가톨릭교회는 교회의 이념 및 정치권력을 확립하는 수단으로 학문을 통제하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했다. 이들은 트리엔트 종교회의(1545~63년)를 통해 이단에 해당하는 책들을 선정하여 이른바 금서목록(Index librorum prohibitorum)을 지정했다. 우리가 흔히 색인이란 뜻으로 사용하는 ‘“인덱스(index, 색인)”란 말은 이처럼 본래 금서목록을 의미하는 말이다. 그러나 사람들은 에코의 소설 『장미의 이름』에 등장하는 수도사들처럼 금지된 책들을 탐독했다. 도리어 이런 책을 찾아 읽다보니 금서목록이 닳고 닳아 ‘색인(index)’이란 말이 유래했다는 것이다. 가톨릭의 금서목록에 수록된 책들은 1966년 폐지될 때까지 무려 400여 년간 이단으로 취급되었다. 이외에도 프랑스, 독일, 영국 등에서는 모든 서적의 무허가 인쇄가 금지되었고, 영국의 경우에는 런던 ․ 옥스퍼드 ․ 케임브리지 이외의 지역에 인쇄기 설치가 허가되지 않았다. 19세기 이전까지 책은 자유롭게 인쇄되고, 읽을 수 없는 물건이었다.

우리나라에서 금서가 가장 많이 양산된 시절은 제5공화국 시절이었다. 한국전쟁 직후였던 제1공화국 시절엔 극도로 궁핍했고, 전후였던 지라 원칙적인 금서는 있었다고 해도 실질적인 금서는 별로 없었다. 4월 혁명을 통해 사상의 자유가 표출되었지만, 뒤이어 5.16쿠데타로 집권한 제3공화국은 수많은 금서들을 양산하면서 엄격한 사상통제를 실시했다. 유신을 계승한 제5공화국은 온갖 책들에 구실을 붙여 금서를 만들었지만, 금서가 된 책들은 당시 대학생들의 필독서가 되어 도리어 베스트셀러의 반열에 오르기도 했다. 이외에도 ‘가짜 김일성’설을 담아 당시 정권의 입장에서는 도리어 최고의 반공서적이랄 수 있는 이명영의 『김일성열전』은 김일성에 대해 다뤘다는 이유로, 1981년 발간된 무협소설 『무림파천황』은 정파(正派)와 사파(邪派)의 대결 구도를 변증법을 통해 설명했다는 우스꽝스러운 이유로 판금조치 당했다. 당시 독재정권은 길 가던 시민들의 가방 속을 뒤지며 불온문서를 소지하고 있는지 검열했다. 이와 같은 사상과 표현에 대한 검열 및 처벌은 민주화된 현재까지 국가보안법 및 기타 법률 속에 온존하고 있으며, 지난 권위주의 시대 만들어졌던 금서에 대한 해제 조치는 여전히 미흡한 실정이다.


프린스턴 대학의 유럽사 교수인 로버트 단턴은
‘1789년 프랑스혁명 이전 프랑스인들은 어떤 금서를 읽었는가’라는 질문을 던지고 있다. 그는 책과 지식의 전파 과정을 통해 프랑스혁명이 가능했던 원인을 찾는다. 단턴이 주목하고 있는 금서들은 뜻밖에도 오늘날 고전의 반열에 오른 계몽주의 서적들이 아니라 대중들이 전제왕권의 눈을 피해 읽던 대중문학서들이었다. 단턴은 이런 대중문학서들 가운데 어떤 것도 프랑스인들에게 전제군주의 폭압에 저항하라거나 사회질서를 전복하라고 강요하지 않았다고 말한다. 대신 이런 금서들은 왕권은 신에게서 부여되었다는 왕과 귀족의 권위를 밑으로부터 붕괴시켰다. 일견 경박해 보이는 대중문학서들은 마치 우리네 마당극의 해학과 풍자처럼 근엄한 왕과 귀족들을 조소하고, 우스개로 만들어 구체체(앙시앵레짐) 질서에 근본적인 타격을 가했다.

지금까지 ‘민주화항쟁’으로만 기록되어 온 87년 민주화운동은 이후 20년 동안 긍정과 부정을 떠나 우리 사회를 이전 ‘권위주의’ 사회와 질적으로 다른 사회로 변모시켰다는 점에서 서구의 68혁명에 비견될 만한 혁명이었다. 그와 같은 87년 혁명, 오늘날 우리가 누리고 있는 민주주의는 진지함과 경박함, 계몽과 음란을 떠나 지배계급이 밀실에서 금지시켜온 것들에 대한 대중의 도전이 만들어낸 결과이다. 세상의 모든 신화들이 증명해주듯 인간이 품고 있는 앎에 대한 의지는 판도라의 불행과 프로메테우스의 불온, 아담과 이브의 타락, 도마의 의심이라는 한계를 뛰어넘는다. 우리는 판도라를 통해 희망을 발견하고, 프로메테우스를 통해 노예에서 주인으로, 아담과 이브의 타락을 통해 지혜를, 도마의 의심을 통해 믿음을 얻는다. 그것이 지식의 힘이고, 오늘날까지 갇혀있는 금서, 금지된 지식을 자유롭게 풀어내야 할 이유이다.

2006.9.25.월요일자 <한성대신문>(389호)



저작자 표시 비영리 동일 조건 변경 허락
신고
Posted by 바람구두 windshoes
이전버튼 1 이전버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