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은 없으나 걸어가면 만들어지리


책을 덮고 나서 한동안 막막했다. “관련분야의 전공자도 아니고 그렇다고 풍부한 소양을 갖추었다고 하기도 뭐한, 그런 분야의 책을 맡을 때는 오랫동안 망설이게 마련이다. … 그러나 결과적으로 이 책은 몇 가지 이유에서 내 손을 거칠 운명이었다.”는 옮긴이의 말이 없었다면 서평을 겸한 에세이 한 편을 써달라는 청탁에 끝내 응할 수 없었을 것이다. 나 역시 관련분야의 전공자가 아니고, 풍부한 소양을 갖췄다고 할 수 없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나는 이 책이 몇 가지 이유에서 내 손을 거칠 운명이었다고 말하고 싶어졌다.

고전적 지식인과 근대적 지식인

『다른 곳을 사유하자』는 ‘정주하지 않는 지식인의 삶과 자유’란 부제를 통해 더 자연스럽게 설명될 수 있다. 저자는 우리를 “어디에도 멈추지 않고 한없이 달릴 듯한 착각에 빠지게 하는” 사유의 국제특급열차로 이끈다. 시대적으로는 근대 초 계몽주의 지식인 몽테스키외로부터 탈국가지역담론의 최신이론가 아르준 아파두라이에 이르고, 게오르그 짐멜, 한나 아렌트, 칼 만하임, 발터 벤야민, 피에르 부르디외 같이 우리들에게도 널리 알려진 지식인이 있는가 하면 ‘바벨의 도서관’에서 찾는 것이 빠를 것 같은 낯설고 생소한 이름들이 텍스트 위에 ‘유령의 집’이라도 들어선 것처럼 도처에서 잇따라 출몰한다. 글쓰기의 형식면에서도 저자의 텍스트는 자신의 사적인 체험으로부터 사상사의 한 대목, 때로는 픽션까지 동원하며 경계선상에서, 경계 너머로 자유로운 월경을 마다하지 않는다. 수많은 지식인들의 이름과 사유가 현란하게 호명되지만, 그들에겐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

우리는 자기 고장이나 터전을 떠나지 않고도 다른 곳을 사유할 수 있다. 하지만 거리두기, 사회의 규준이나 권력 중추 및 기관들에서 벗어나는 행위는 바로 그 사회를 이해하고 분석하며 그곳의 긴장과 변화를 포착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조건이다.
결국 비판적 지식인이란 ‘이동한 사람’이다. 실제적인 의미로는 자신의 배경이나 다소간 고통스러운 역사적 우연 때문에 본디자리에서 떠나야 했던 사람. 하지만 비유적인 의미에서는 인식론적 필요성 때문에 극적으로 자신의 자리를 떠나야 했던 사람이다. - <본문 26-27쪽>


‘통행, 이주, 이동, 이산, 혼합, 전환’ 등 다양한 열쇠 말들을 통해 분류되고, 호명되고 있긴 하지만 저자가 불러내고 있는 지식인들은, 본래 뿌리내리고 있던 글쓰기의 거처를 떠나 고통스러운 거리두기를 통해 새로운 인식에 도달한 ‘비판적’ 지식인들이다. 이들은 교조주의와 불관용, 지배계급의 보수적인 관성에 맞서 싸우며 스스로를 유배하거나 망명하는 과정에서 획득한 비평적 거리두기를 통해 새로운 길을 내고자 시도한다. 지식인의 정의에 대해 저자는 코저(L. Coser)와 네틀(J. Nettle)의 정의에 입각해 있는 것으로 보인다. 코저와 네틀은 단순히 개인이 수행하는 사회적 역할에 따라서 지식인을 규정하는 것에 반대한다. 이들은 교육의 정도, 새로운 이념이나 사상을 창조했다고 해서 지식인이 되는 것이 아니라 ‘비판 정신’, 개인이 가지고 있는 관심, 창조하는 이념과 사상의 내용에 의해 지식인을 정의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지식인을 하나의 계급으로 부르지 않는 이유는 무엇보다 이들 집단이 끝없이 분열되고 재구성되기 때문이다.

역사상 이들이 거의 유일하게 분열되지 않은 채 존재했던 시대가 있었다면(실제로는 이 시대조차 그럴 수 없었지만), 서구의 지적 고향인 고대 그리스의 도시국가에 살았던 철학자들이 아니었을까 싶다. 소크라테스 이전의 철학자들은 진리를 추구하고, 시민을 계몽하며, 정치가들에게 조언을 하는 최초의 지식인이자 동시에 지배계급이었다. 이 시대의 철학자들을 지식과 권력이 결합된 이른바 ‘고전적 지식인’이라 한다면, 프랑스 혁명 이후 출현한 지식인들을 가리켜 ‘근대적 지식인’이라 부를 수 있을 것이다. 18세기 프랑스 계몽주의는 계몽(교육)을 통해 누구나 지식인(철학자)이 될 수 있고, 특권적 소수(지배계급)가 지식의 생산과 배분을 담당하는 것에 맞서 공론공간을 확장하고자 했다. 계몽시대의 살롱문화는 봉건시대 절대왕정과 교회로부터 고립된 공간에 갇혀있던 지식인들에게 새롭게 제공되기 시작한 공론의 공간이었다. 그러나 계몽의 이상은 혁명 이후 부르주아의 교양으로 전락해갔다.

이런 까닭에 동서양을 막론하고 근대적 지식인의 기원을 프랑스로 이야기한다고 해서 특별한 이견이 있을 것 같지는 않다. 프랑스대혁명 이후 본격적으로 시작된 산업혁명은 산업화와 도시화를 유발했고, 대중사회의 도래를 촉발했다. 언론의 자유가 제도적으로 보장되면서 잡지와 신문을 비롯한 대중매체들이 등장하기 시작했고, 매체들은 대중교육의 역할(사회화)을 맡으면서 새로운 지식인뿐만 아니라 새로운 대중을 생산했다. 다양한 대중매체의 출현은 지식인들에게 보다 넓은 지식시장을 제공했고, 신문과 잡지들은 근대화된 노동자 대중을 새로운 고객으로 확보했다. 이 과정에서 지식인들은 거대한 집단을 형성하고, 매스미디어라는 공론공간을 장악하게 된다. 그 힘을 바탕으로 프랑스 지식인들은 정치권력과 사회권력에 도전하는 드레퓌스 사건 같은 앙가주망의 전통과 신화를 수립할 수 있었다. 그러나 『다른 곳을 사유하자』는 지식인들의 앙가주망 전통과 신화를 더욱 극적으로 부각시키는 책이 아니다. 저자는 도리어 20세기와 함께 막을 내리고 있는 지식인들의 앙가주망과 역할이 쇠락해가는 지점으로부터 새로운 과정적 성찰의 세계로 우리들을 이끈다.

방황하는 화란인, 지식인의 저주

비판적 지식인에 이르는 과정적 성찰로서 저자가 제시하고 있는 ‘통행, 이주, 이동, 이산, 혼합, 전환’은 그 형태가 어느 것이든 현재에 멈춰있지 않는 상태, 정주하지 않는 것을 의미한다는 점에서 바그너의 오페라 <방황하는 화란인(Der Fliegende Holländer)>과 정반대에 위치한다. <방황하는 화란인>은 신의 저주를 받아 죽음을 맞이하지 못하고 유령선을 탄 채 영원히 바다 위를 떠돌아 다녀야 하는 화란인 선장의 이야기이다. ‘망명자이자 통행자이자 경계에 있던’ 칼 만하임을 빌어 말하면 그는 ‘자유롭게 떠도는 지식인(free floating intellect)'인 셈이다. 그는 7년에 단 하루만 육지로의 상륙이 허락되는데, 이날 하루 동안 자신을 영원히 사랑해 줄 순수한 여인을 만나야만 저주가 풀려 죽음을 맞을 수 있다. 고통스러운 방황이 끝나고 안주하는 순간, 지식인은 죽을 수밖에 없다. 어째서 지식인들은 이처럼 끊임없이 방황해야 하는 것일까? 니콜 라피에르는 짐멜의 ‘이방인(etranger)’, 한나 아렌트의 ‘파리아(paria)', 에드워드 사이드의 ‘망명자(exile)' 등을 이용해 설명하고 있다.

짐멜은 이방인의 불편하고도 불안정한 이 상황이 그가 현재 머물고 있는 사회와 좀더 객관적인 관계를 맺게 해준다는 점에서 긍정적인 것으로 판단한다. “그의 사고는 집단의 편파성이나 특수성에 근거하지 않으므로 ‘객관성’이라는 특정 태도를 취하며 거리를 둘 수 있다. 이 객관성이란 초탈이나 무관심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관계를 맺고 있는 동시에 거리두기, 관심과 무관심이 특수하게 조합되어 이루어진 태도다.” - <본문 76-77쪽>

그녀는 이후로 관념의 세계에 숨어서 진짜 세상을 외면할 수 없었다. 진짜 세상이 아무리 모질고 음험해도 어쩔 수 없었다. 파리아들에게는 정치적 사유와 그에 따른 행동 외에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으니까. - 본문 <88쪽>

팔레스타인 독립을 옹호하기는 했으나 자신의 나라를 포함하여 어떤 형태의 민족주의도 편들지 않았던 그는 “조금 비껴나 있는 것, 어긋나 있는 것을 선호한다”고 말했다.
두 세계 사이를 항해하는 그의 작품 또한 두 가지 모습을 띤다. 하나는 현재의 증인이자 비판자로서 20세기 망명 유럽지식인의 고독한 모습이다. - <본문 121쪽>


결국 지식인이란 『니코마코스 윤리학』 제1권에 적혀있는 “Amicus Plato, magis amica veritas(플라톤은 친구지만 진리는 그보다 더 큰 친구이다)”란 말대로 자발적 선택이든, 상대적인 조건에 따른 어쩔 수 없는 선택이든 진리 이외의 것들에 대한 사랑을 포기한 존재이다. ‘자기 고장이나 터전’, ‘사회의 규준이나 권력 중추 및 기관’들에서 벗어난다면 지식인으로서의 모든 책임을 다하는 것일까. 만하임은 지식인이 매인 데가 없더라도 책임까지 없는 것은 아니라고 말한다. 그들 앞에는 “대립적인 계급들 중 어느 한편에 기꺼이 가담”하여 그 계급의 대변자가 되든가, “지식인이라는 운명을 받아들여 사회 전체의 변호사로서 임무를 완수”하든가 둘 중 하나의 운명이 놓여 있기 때문이다. 지식인이란 개념이 언제나 논쟁적인 까닭은 지식인은 노동자와 달리 자발적으로 선택할 수 있는 위치, 다시 말해 더 나은 삶의 기회를 선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교수가 될 수도 있었지만 선동가가 되기를 꿈꾸었던 젊은 학위 소지자 린하르트는 작업 속도를 따라잡는 것만이 힘든 게 아니었다. 그는 노동자들의 수동적인 태도와 공포에 부딪혀 ‘산산이 부서진 프로파간다’에 지쳐버렸다. 게다가 그가 어디서 왔는지 밝혔을 때에는 심각한 몰이해에 부딪혔다. 왜냐하면 그들은 선택의 여지가 없이 공장에 들어온 사람들이었으니까! - 142쪽


지난 1980년대 우리 사회에서도 청년지식인들은 ‘위장취업’을 통해 노동현장으로 진출했다. 노동자들과 삶의 조건을 공유하고, 이를 통해 사회를 개선해보겠다는 이들의 노력과 헌신을 통해 우리는 절차로서의 민주화를 성취할 수 있었다. 과거의 청년지식인들은 민변 출신 대통령, 노동운동가 출신 도지사, 학생운동가 출신 국회의원으로 변모했다. 그리고 우리는 오늘 ‘진보의 위기’, ‘지식인의 종말’을 이야기할 수밖에 없는 상황과 대면하고 있다. 민중계급 출신의 지식인 제라르 누아리엘은 비록 68혁명의 반체제운동에는 관심을 가졌지만,  자신이나 그와 비슷한 과정을 거친 이들은 오히려 “거대한 공장에서 빠져나오는” 것이 관건이었다며 쥘 미슐레를 인용해 이렇게 말한다. “올라가는 게 아니라 올라가면서 자기 모습을 지켜나가는 게 어려운 것이다.”

지식인의 죽음 - 대중의 배신인가, 지식인의 배신인가

볼리비아 산중에서 체 게바라와 함께 포로가 되었던 레지 드브레는 “20세기 초 위풍당당하게 시작한 프랑스 지식인들의 영웅 서사시는 오류와 망상에 빠지더니 급기야 오늘날에는 조롱거리가 됐다. 그것은 더 이상 아무런 의미도 없다. 공연을 중단하고 무대를 떠나는 것이 바람직하다”며 지식인의 죽음을 말한다. 그는 파리고등사범의 촉망받는 철학자, 알튀세르의 수제자였다가 무장게릴라로, 다시 학자로 돌아와 사회당 미테랑 대통령의 보좌관을 역임했으나 자신도 얼마 전엔 좌파 대신 우파 후보를 지지했었다. 어쩌면 그 자신이야말로 ‘근대의 종언’과 함께 나타나고 있는 ‘지식인의 죽음’이란 현상에 가장 잘 부합하는 인물일지 모르겠다. 그러나 그가 질타하고 있는 오늘날 지식인의 5가지 중병(重病), “자신들 속에 갇혀 대중 혹은 민중과 단절되어 있으며(집단자폐증), 공부도 제대로 하지 않고 현실을 제대로 인식하지도 못하면서(현실감 상실증) 여전히 사회의 모럴을 선도한다고 자만하고(도덕적 자아도취증), 들어맞지도 않는 예측을 쏟아놓고(만성적 예측 불능증), 자신의 이름이 자칫 잊혀질까, 매스컴의 리듬에 맞추어 설익은 견해들을 유창한 언변으로 늘어놓는다(순간적인 임기응변증)”는 지적까지 폐기할 수는 없을 것이다.

우리 사회에서도 1987년 이후 민주화 20년을 맞아 ‘지식인의 죽음’을 이야기한다. 사실 이 논쟁의 연원은 여야 정권 교체를 이룬 김대중 정부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김대중 정부는 학력 위주의 지식인 개념을 독창성, 능동성 위주로 확장시킨 ‘신지식인’이란 슬로건을 제시했다. 관이 주도한다는 사실만 제외한다면 평범한 대중이라도 그만한 능력과 식견을 갖추고 있다면 지식인으로 대접해야 한다는 발상은 계몽주의 시대의 이상에 부합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문제는 국가가 ‘제2의 건국’ 캠페인과 함께 대대적으로 주도했던 ‘신지식인’이란 것이 얼마나 많은 부가가치를 생산해낼 수 있는가라는 산업적 측면만 고려대상으로 삼았다는 것이다. 과거 민주화운동을 거치며 사회적 현실비판과 공적담론의 생산자였던 지식인은 오늘날 대중과 괴리되고, 비판정신이 거세된 채 논문연구업적과 연구비 따내기에 몸 바치는 논문기술자로 전락하고 말았다. 대학은 산학연 협력이란 미명 아래 재벌로부터 기부금을 따내고, 그 돈으로 새로운 건물을 짓고 동판에 기업명을 새겨주며 한 몸이 되어갔다. 이 같은 지식인 사회의 위기 속에서 대중은 지식인과 학력을 열망하면서도 이에 대한 혐오 증세를 가중시켜 나갔고, 신정아 사건을 맞아 네티즌들의 연예인 학력검증 사태, 황우석 ․ <디 워>를 둘러싼 반지성적 논쟁으로 분출되기에 이르렀다.

이 같은 현상은 어디에 뿌리를 두고 있을까. 마르크스를 비롯한 지식인들이 인간의 물적 욕망을 과소평가하고, 지배계급의 문화적 헤게모니에 장악된 대중에 대해 지나치게 낙관한 결과일까. 어떤 이는 현실사회주의의 붕괴로 자본주의가 세계의 유일한 체제가 되어 역사는 종말을 고했고, 더 이상의 외부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지금 대한민국의 현실을 바라보면 제국과 신자유주의가 ‘지구적 규모’로, ‘무의식적 수준’까지 관철되고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을 것처럼 보인다. 외부가 없으므로 ‘다른 곳’을 사유할 수 없고, “어디로도 떠날 수 없는, 절망의 끝에서 떠나는 여행”의 본보기는 자살이다. 저자는 ‘자살’이란 출구가 없을 때 이루어진다는 점에서 ‘데드 엔드(dead end)'라고 말한다. 오늘날 대한민국은 하루 평균 35.5명이 자살하는 세계 1위의 자살 국가다.

과연 역사는 종말을 고했고, 우리들은 새로운 외부를 상상할 수 없는 것일까. 알튀세르는 마르크스의 “이데올로기는 역사를 갖지 않는다”란 테제의 의미를 그것이 역사를 갖지 않는다는 의미가 아니라 그 반대로 이데올로기가 모든 역사에 걸쳐 어디서나 나타나고 역사를 관통한다는 뜻이라고 말한다. 이 말을 “다른 곳을 사유하자”는 방식으로 바꿔보면 진보는 모든 역사에 걸쳐 어디서나 나타나고 역사를 관통하므로 “진보는 역사를 갖지 않는다”, “진보는 축적되지 않는다”고 할 수 있다. 진보는 언제나 현재를 고민하는 가운데 출현하며, 그것은 도달해야 할 목표가 아니라 현실 속에 모순이 존재하는 한 끊임없이 등장하는 새로운 삶의 태도이기 때문이다.

다른 곳을 사유하는 일, 문화망명

이제부터 앞서 이야기했던 운명 혹은 인연에 대해 이야기해보아야 할 텐데, 나는 지난 2000년부터 “사람으로 본 20세기 문화예술사 - 바람구두연방의 문화망명지”라는 사이트를 현재까지 8년 동안 운영하고 있다. 아마도 이 책 『다른 곳을 사유하자』가 내 손에 쥐어진 인연 중 하나는 거기에 있을 것이다. 저자 니콜 라피에르가 책 속에서 주장하는 ‘다른 곳을 사유하자(pensons ailleurs)’는 말은 끊임없이 걸어가며 묻고 생각하는(과정적 성찰) 행위를 말한다. ‘다른 곳’이 지향하는 바가 반드시 현존하는 거의 유일한 체제로서의 자본주의와 그것이 배태하고 생산하는 문화의 바깥만을 지칭하는 것은 아닐지라도 현재와 다른 문화를 꿈꾸고 사유하며 이것을 실천하자는 주장은 내가 생각하는 ‘문화망명’과 닮아있다. 문화란 우리의 외부(세계)와 내부(의식)를 총체적으로 규정하는 본성(뿌리와 근본)이 본래부터 존재하는 것으로 자연스럽게 믿도록 만드는 신화의 체계를 지녔다. 새로운 세상은 기존의 지배이데올로기에 의해 주어진 문화에서 벗어나 우리가 새로운 세상을 상상할 수 있을 때 비로소 가능하다. ‘문화망명’이란 이 같이 외부를 상상할 수 없는 세계체제 속에서 나를 새롭게 발견하고, 주체를 재설정하여 새로운 세상을 상상하고 실천에 옮기는 행위를 의미한다.

우리는 20년 전 그토록 힘들고, 아프게 외쳤던 민주공화국이 신자유주의가 만들어 낸 적자생존의 공포 속에서 재벌권력의 시장형 자기 계발 인재들에 둘러싸여 한없이 추락하는 광경을 목격하고 있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일까. 마르크스를 변주해 현재의 상황을 이야기해 보면 우리 인간은 이미 지나버린 과거를 만들어낼 수 없다. 우리는 현실의 조건들을 만들어 내지만, 반대로 우리들 또한 그 결과물이다. 우리는 모든 죽은 세대의 전통, 과거의 망령들과 싸우고 있는 것이 아니라 어쩌면 내 안의 또 다른 나를 이루고 있는 존재와 싸우고 있다. 현재 우리 사회, 아니 전 세계적으로 맞닥뜨리고 있는 위기는 표면적으로는 경제의 문제이지만 동시에 담론의 위기이기도 하다. 이 위기 속에 길을 만들고, 다리를 놓을 자가 누구인가? 마지막 질문에 답을 하자면 ‘지식인은 지도하지 않는다. 그는 방향을 잡고, 길을 내고, 다리를 놓는다. 그대 길을 내는 자여, 길은 없으나 걸어가면 만들어지리.’




출처 : 기전문화예술, 2007년 겨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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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바람구두 windshoes
『전쟁의 역사』 - 버나드 로 몽고메리 | 승영조 (옮긴이) | 책세상(2004)


개정증보판의 의미

이 책은 지난 1995년 두 권으로 분권되어 같은 출판사에서 출판된 적이 있다. 나는 구판을 가지고 있었는데 동생이 사학과에 진학하는 바람에 큰 맘 먹고 몇 권의 역사 관련 서적들을 동생에게 넘기면서 그 때 이 책도 함께 넘겼다. 예전에도 한 차례 이 책에 대해 리뷰를 쓴 적이 있었다. 당시엔 너무 짤막하게 썼기 때문에 아쉬움이 있어서 이번에 다시 한 번 리뷰를 쓰려고 결심하게 되었다. 어찌보면 같은 책에 대해 두 번의 리뷰를 하는 셈이다. 어떤 이는 왜 같은 책을 두 번 사는가? 혹은 출판사에서 무엇 때문에 개정증보판을 내는가? 물을 수도 있을 것이다
(이때의 개정증보판은 중복출판과는 엄연히 다른 것이다).

이를 출판이란 맥락에서 간략하게 이야기해보자. 모든 책에는 판권이란 것이 있다. 여기에 보면 "판과 쇄"란 말이  나온다. 책을 만드는 일도 사람이 하는 일이므로 아무리 공을 들인다 하더라도 실수가 있을 수 있고, 경우에 따라 작가나 편집자가 수정보완할 필요를 느끼기도 한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열악한 출판환경에서 대개의 책들은 초판 이후를 기약할 수 없는 실정이다. 설령 인기가 좋아 초판이 모두 판매된다 하더라도 초판의 실수를 수정보완해서 다시 책을 만드는 건 상당한 비용이 들기 때문에 출판사들이 쉽사리 이런 작업에 나서지 못한다(성의있는 편집자가 출판되어 나온 책을 다시 교정해두거나 독자들이 읽다가 지적해 준 오식이 있더라도 개정판을 만들기 전엔 수정되지 못한다). 우리나라 출판 사정상 재판이라는 건 모 유명작가들의 장편 소설을 출판사를 바꿔 출판할 때나 하는 일처럼 되어 있다. 출판사에서 수정증보판을 만드는 건 독자들에 대한 일종의 리콜 서비스와 같은 것이지만 불행히도 우리에겐 이런 관행이 일반화되어 있지 못하다.

나는 전쟁의 역사 1995년 판 초판본과 개정판 1쇄를 가지고 있다. 개정판이 이전 판본과 다른 점은 일단 분권되었던 책이 하나로 묶여 더욱 두툼해졌다는 것이고, 하드 커버 양장본으로 바뀌었다는 것이다. 물론 지질이나 기타 도판류들이 보다 많이 추가(일일이 대조는 해보지 않았지만, 이전 도판들보다 확실히 사이즈면에서 커졌다)되었고, 초판본에서 보이던 몇몇 오식들을 바로 잡았다. 그렇다고 개정판에 오식이 전혀 없는가 하면 그렇지는 않다.

예를 들어 개정판 276쪽의 편집자 주에서 <롤랑의 노래>에 대한 설명 중 다음과 같은 대목은 완전히 잘못된 것이다.
"1100년경에 지어진 프랑스 최초의 서사시이자 최고.최대의 무훈시. 롤랑은 샤를마뉴의 이름이다." 라고 설명하고 있는데 "롤랑"은 "샤를마뉴 대제"와 별개의 인물이다. "롤랑의 노래"에 등장하는 롤랑은 샤를마뉴 대제가  이슬람교도들과 전쟁할 때 그의 군대에서 활약한 기사 롤랑을 의미한다. 간략하게 내용을 설명하자면 이슬람교도와의 전쟁 당시 그들과 내통했던 간신 가늘롱이 샤를마뉴 대제의 군대를 곤경에 빠뜨려 후퇴하지 않을 수 없게 하는데, 가장 위험한 임무인  후위 부대 지휘를 왕의 충성스런 신하 롤랑이 자원한다. 가늘롱은 이교도들에게 이 사실을 알려 그를 위기에 빠뜨린다. 샤를마뉴는 그에게 뿔피리를 주어 위험에 빠지면 자신을 부르라고 말한다. 하지만 롤랑은 마지막 순간까지 왕을 생각해 뿔피리를 불지 않는다. 다른 사람이 대신 뿔피리를 불어 되돌아온 샤를마뉴 대제에 의해 간신은 처벌당하지만 롤랑은 이미 죽었다는 내용이다. 롤랑이 실존인물인지는 정확치 않지만 샤를마뉴 대제와는 확실히 별개의 인물이다.

그러나 이런 지적들은 개정증보판이 지니고 있는 여러 미덕들에 비하면 대단한 것은 아니다. 이 책은 무려 1,038쪽에 이르는 두툼한 책이기 때문이다. 거의 금성판 국어대사전 특장판과 맞먹는 두께다. 가끔 도저히 참을 수 없을 만큼 무지막지한 번역과 편집자의 무뇌충적인 교정교열 작업으로 망가진 책들을 볼 수 있다. 그런 경우를 제외하면 솔직히 우리나라 띄어쓰기, 맞춤법은 국어학 박사라 하더라도 완벽하게 구사하기 어렵다(이 말은 믿어도 된다, 흐흐)는 문제가 있다. 개정판은 이전의 책에서 보다 확실히 오식이 줄었고(이전 책도 오식이 많지는 않았다), 무엇보다 이 책의 장점인 풍부한 편집자주와 찾아보기, 지도와 도판, 참고문헌들이 충실하게 보강되었다. 물론 개인적으로는 전쟁이 벌어졌던 현장의 지도를 부록으로 뒤에 좀더 큼지막한 그림으로 삽입해주었으면 하는 바람은 있다. 하여튼 나는 "책세상"이란 출판사와는 개인적으로 독자 이상의 관계를 맺어본 적이 없지만 "책세상"이란 출판사를 좋아한다. 좋아하는 이유는 몇 가지가 있지만 그 중 하나는 이 출판사에서 새로운 번역으로 "니체 전집"과 "까뮈 전집"을 내고 있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책세상 문고"라는 문고본을 출판하고 있기 때문이다. 애서가들 말고, 애독자들 중 많은 이들이 문고본의 필요성을 느끼며 일본의 "이와나미 문고"나 프랑스의 "디스커버리 총서" 시리즈와 같은 것들을 떠올리며  부러움을 금치 못하는 경우를 종종 보아왔다. 그러나 문고본은 관리 및 영업의 어려움 등으로 출판사들의 외면을 받아왔다. 출판사가 영리를 목적으로 하는 건 당연하지만 출판이란 동시에 문화적 사명감이 필요한 사업이기도 하다. 그런 점에서 난 책세상 출판사가 이 둘 사이의 균형을 잘 유지하는 좋은 출판사로 생각한다. 게다가 책 값이나 올릴 요량으로 얇팍한 소설책을 하드커버 양장본으로 개정해 출판하는 곳들이 수두룩한 이 때 진짜배기 개정증보판을 내는 출판사는 또 얼마나 드문가?

이 책의 저자 버나드 로 몽고메리 (Bernard Law Montgomery) 는 어떤 사람인가?
만약 군대를 컴퓨터 게임 "FIFA2002"에서처럼 심리적 부담감 없이 고를 수 있는 거라면 난 단연 영국군을 내 팀으로 고르고 싶어 할 것이다. 물론 실제로 내가 좋아하는 축구팀은 독일팀이다. 내가 영국군을 좋아하는 이유는 축구에서 내가 독일 축구를 좋아하는 것과 흡사하다. 얼핏 보면 독일축구엔 브라질 축구처럼 빼어난 기교도, 프랑스나 네덜란드 축구처럼 토탈 사커니, 아트 사커니 하는 수식이 어울리지 않는다. 그네들 축구는 때로 무미건조할 만큼 덤덤하고, 재미없지만 축구의 정석 플레이, 기본에 충실한 축구를 한다. 축구장 전체를 골고루 사용하여 공격하고, 수비할 때도 특별히 허슬플레이를 한다기 보다는 공의 방향, 공격수의 움직임을 미리 예측하고 봉쇄하는 방식이다. 물론, 전쟁사를 살펴볼 때 영국군이라고 해서 어처구니없는 실수나 혐오스러운 실책이 없었던 것은 아니나 크게 보았을 때, 영국군은 모범생이나 천재의 그것은 아니라 할지라도 종국에 가서는 모범생이나 천재들을 능가하는 성실함과 인내력으로 승리한다. 전사를 살펴보면 영국이 승리한 전투도 많지만 그네들이 패한 전투도 무척이나 많다. 그럼에도 영국군이 패배한 전쟁은 그리 많지 않다는 결과를 나는 그런 힘에서 찾는다.


▶ 1942년 북아프리카 전선에서 롬멜이 지휘하는 아프리카 군단과의 전투를 승리로 이끈 몽고메리 장군


굳이 몽고메리의 전쟁사를 살펴보지 않더라도 세계사에서 영국군 만큼 보병을 사랑한 군대도 드물 것이다. 그들이 "백년전쟁"에서 우세한 프랑스 기병을 패퇴시킨 것 역시 보병의 힘이었고, 제1차 세계대전에서도 영국 보병들은 우수했다. 군대의 기본이 보병이라면 그에 가장 충실한 군대 역시 영국군이다. 물론 여기엔 그네들이 인도와 인도네시아, 아프리카를 식민지화하면서 저지른 전쟁 범죄를 논외로 한 표현임을 전제로 해서 말이다. 우리에게 "몽고메리 장군"은 소위 "고집 센 몬티"로도 잘 알려져 있다. 그렇게 보인 까닭 중 상당수는 역시 미군을 중심으로 한 할리우드의 전쟁 영화들이 만들어 낸 것이기도 하다. 영화 "패튼대전차 군단"을 보면 패튼과 몽고메리가 시칠리아 점령 과정에서 서로 경쟁하는 과정이 잘 드러나 있는데 역시 미국적 시각에 의한 것이다. 물론 팔레르모를 먼저 점령한 건 패튼이었다. 하지만 롬멜이 지휘하던 독일 아프리카 군단을 시칠리아까지 밀어낸 건 몽고메리였고, 그때까지 미군은 아주 멀리 있었다.

장군으로서 몽고메리에게 가장 빛나는 경력은 롬멜의 탁월한 지휘에 압도당해 영국군이 연전연패를 거듭하던 북아프리카 전선의 승세를 일거에 뒤바꿔버린 엘 알라메인 전투의 승리일 것이다. 그는 1887년 영국 국교회 주교의 아들로 태어나 일평생 성서를 탐독하고 절대적 금주가였다. 철저한 빅토리아풍 교육을 받고 성장한 그이지만 왕립 샌드허스트 육군사관학교에 입교해서는 학우의 셔츠에 불을 지른 사건으로 학교 당국의 처벌을 받은 적도 있다. 그는 제1차 세계대전에 참전해서 큰 부상을 당해 빈사 상태에 이른 적도 있었다. 39세의 나이로 베티 카버와 결혼했으나 결혼 생활 10년 만에 아내가 벌레에 물린 상처로 전염병에 걸려 사망하자 평생 재혼하지 않았다. 몽고메리는 헌신적인 아버지였으나 군인으로 임지에 따라 이동해야 했기에 아들 데이비드를 교장 선생집에 맡겨 그 집에서 따뜻한 가정의 정믈 맛보게 하려 했고, 교장 선생에게도 특별히 그 점을 간곡히 당부했다고 한다.



▶ 롬멜에게 연전연패하며 사기가 바닥까지 떨어진 북아프리카 전선의 영국군 제8군 사령관으로 부임한 직후부터 그는 부하들의 사기 진작을 위해 군기를 엄정하게 다루면서 최종적인 승리를 거머쥘 엘 알라메인 전투에 이를 때까지 훈련에 훈련을 거듭했다.

그런 그가 북아프리카 전선의 제8군 사령관이 된 것은 1942년 8월 12일이었다. 그는 다혈질이었고, 가시돋친 말을 인정사정없이 내뱉는 수다스런 다변가요, 그 자신은 틀에 얽매이기 싫어하면서도 부하들에게는 사막 한 복판에서도 엄정한 군기와 군율에 따르도록 했던 장군이었다. 몽고메리는 무슨 일이든 자신이 결심한 대로 밀고 나가는 다부진 장군이었지만, 당시 54세였던 몽고메리로서는 처음으로 이렇게 중요한 임무를 맡는 것이었다. 그가 맡은 영국 제8군은 롬멜에게 1년 동안 연전연패한 만신창이 군대였고, 사기는 바닥에 떨어져 있었다. 병사들은 롬멜이 지휘하는 한 독일군에게 이길 수 없다고 믿었고, 영국군 총사령부가 있던 이집트 카이로에서는 연일 전해지는 패전 소식에 기밀 서류를 불태우고, 피난 보따리를 꾸렸다. 몽고메리는 최전방에 부임하자 다음과 같이 말했다.

"오늘 이후 제8군은 진지를 1m라도 적에게 넘겨주지 않는다. 각 부대는 현 위치에서 싸운다. 현위치가 당신들의 무덤이다."


그는 부하들에게 매우 엄격했고, 사막 한 복판에서도 참모들은 정시에 시작하는 식사 시간에 언제나 단정한 복장을 하고 나타나야 했다. 그는 부하들을 다시 훈련시켰고, 용기를 북돋았다. 병사들은 부드럽고 성격 좋은 장군 보다 혹독하게 대하더라도 전쟁에서 승리하게 해주는 장군을 더 좋아했다. 왜냐하면 전쟁은 축구가 아니기 때문에 패한 결과로 지불해야 할 것이 자신의 목숨이라는 걸 잘 알았기 때문이다. 몽고메리는 후방인 런던의 다우닝가 1번지로부터 연일 쏟아지는 반격 독촉에도 불구하고 병사들에게 더 많은 휴식과 훈련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았기에 섣부른 반격에 나서지 않았다. 정치적 압박으로부터 초연한 그는 점차 병사들의 인정을 받게 되었고, 결국 롬멜은 그가 파 놓은 함정으로 끌려들어가 패하고 말았다(물론, 밀리터리 매니아들은 늘 이런 문제를 가지고 상반된 의견을 내 놓는다). 그는 마치 삼국지의 육손처럼 단 한 번의 공격으로 독일군을 220km나 후퇴하게 만들었고, 결국 퇴니지에서 독일군의 항복을 받아 북아프리카에서의 전쟁을 끝냈다.

그는 제2차 세계대전 후 독일 내 영국 점령지의 사령관을 거쳐 영국군 참모총장, 나토의 유럽 연합군 최고사령부 부사령관을 지냈고, 참모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며 여러 권의 책을 냈고, 1976년 세상을 떠났다.

전쟁의 역사
"인류의 역사는 곧 전쟁의 역사"란 표현은 진부한 만큼 진실이다. 나는 사람은 쉽게 변하지 않는다는 믿음을 가지고 있다. 이때의 사람이란 말은 아마 "인류"라는 말로 대치할 수 있을 것이다. 즉, 한 개인으로서의 인간이 변하지 않는다는 것이 아니라 크게 보아 인류의 본성도, 늑대나 개의 본성 만큼이나 변하지 않는 그들만의 본능을 지니고 있으리란 믿음이 그것이다. 만물의 영장으로서의 인류란 말에 대해 나는 눈곱만치도 신뢰를 보내지 않는다. 인류가 배움을 통해 무언가를 배운다면 문자 이래로 기록된 그 많은 비참한 죽음들이 번번이 재현될리 없지 않은가?

오에 겐자부로의 소설 200년의 아이들에는 이런 구절이 있다고 한다.

"어느 시대나 정치, 실업계, 매스컴에서 권력을 쥔 자들은 계획하고 가르치고 하나의 방침을 교육해서 그대로 따라오는 '새로운 사람'을 만들려고 해왔다. 나치 독일이 그랬고, 내가 열 살 때 전쟁에 질 때까지의 일본도 그랬단다. 그러나 이런 국가는 주변 국가들을 비참하게 만들고는 결국 패망했어. 내가 너에게 하고 싶은 말은 이런 틀에 박힌 인간과는 다른 홀로 설 줄 알지만 협력할 줄도 아는 진짜 '새로운 사람'이 되어주었으면 한다는 거다. 어떤 '미래'에서나 말이다."

우리나라는 늘상 전쟁의 위험 속에 살아온 탓인지  아니면 혹독한 군사독재 시절을 거쳐 온 반발 심리 때문인지 "전쟁사"에 대한 출판물이 그다지 많지 않은 편이다. 평화에 대한 염원과 필요성이 그 어떤 민족보다 클 것임에도 불구하고 늘상 전쟁의 공포 속에 놓여 있었던 탓에 아니, (군사)국가주의와 (극우)민족주의 아래 놓여 있었던 탓에 "반전평화"운동을 마치 덜 배운 어린 아이들, 세상 물정 모르는 철부지들의 배부른 소리로 치부하려는 경향이 있다. 전쟁과 평화가 마치 동전의 양면처럼 붙어 있음을 알지만, 알고 싶지 않은 아니, 외면하고 싶어 했다. 국내에 존 키건의 『세계전쟁사』를 비롯해 몇 권의 전쟁사가 번역 출판되거나 육사에서 펴낸 책이 있지만 대중적으로 널리 읽히지 않는 것, 간혹 읽더라도 밀리터리 매니아들의 취미 용도 이상이 되지 못한 것도 사실이다. 그런 점에서 몽고메리의 『전쟁의 역사』는 우리가 구해 읽을 수 있는 전쟁사 관련 도서들 중 가장 대중적이고, 잘 만들어진 책이다. 아마도 그런 장점 때문에 이 책의 개정판까지 나왔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 제2차 세계대전 초반 영국을 제외한 서유럽 전역을 석권한 나치 독일로부터 최후까지 저항하여 마침내 승리에 이른 영국이었지만 제1차 세계대전 이후부터 해가 지지 않는 대영제국의 신화는 저물고 있었다. 영국군의 마지막 자존심이었던 몽고메리 장군의 숙적은 롬멜뿐만 아니라 아군 가운데에서도 있었으니 그가 바로 조지 패튼 장군이었다. 두 사람은 전쟁 막판까지 자존심을 건 치열한 경쟁으로 전공을 다투었다.

전쟁에 대한 역사서로서 이 책은 고대 전쟁으로부터 한국전쟁 이전까지의 역사를 다루고 있다. 만약 그 뒤의 전쟁 사에 대한 책을 찾는다면 구태여 이 책을 읽을 필요는 없다. 그러나 이 책은 20세기 들어 가장 엄혹했던 두 차례의 세계대전을 다루고 있고, 그 이후 벌어진 다른 전쟁들 역시 이들 세계대전의 결과에 기인하거나 그 이전의 체제들로 인해 빚어진 것들이다. 그러므로 이후의 전쟁들에 대해 제대로 이해하고 싶다면 역시 이 책을 미리 읽어두는 것이 좋다. 이 책은 모두 7부 25장의 구조로 구성되어 있다. "제1부 전쟁의 본질"은 전체의 서두 역할을 하고, "제2부 고대 전쟁"부터 "제6부 1815-1945년의 전쟁"까지는 이 책의 본문인 전쟁사에 해당한다. "제7부 불가해한 숙명"은 이 책의 에필로그격이다.

이 책의 어쩔 수 없는 한계 혹은 필자의 한계라 할 수 있는 아쉬움이 남는 부분은 이 책의 전체 분량과 주목한 부분에서 대체로 동양에 대한 언급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오늘날 우리의 관점에서 보자면 너그럽게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이기도 하지만 우리는 이 책의 저자인 몽고메리가 빅토리아 시대 말엽에 태어나 그가 교육받고 성장하여 보낸 인생의 전성기를 서구제국주의 전성기로부터 몰락기에 해당하는, 다시 말해 식민지 국가들의 독립과 해방 이전 시기를 보낸 인물이라는 사실에 주목해 주어야 한다. 게다가 오늘날에도 동양에 대한 서구의 인식은 미미하기 그지 없다는 점을 생각해본다면 이를 몽고메리 개인의 잘못으로만 돌릴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런 시대적 한계를 생각해본다면 이 책에서 동양이 아주 무시당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특히 전쟁사를 언급하는 부분에서 몽골과 중국, 일본 그리고 인도를 중심으로 다룰 수밖에 없는 것은 말이다. 그 나름대로는 중국의 손자나 몽골의 징기스칸, 한국의 이순신 등에 대하여 각별한 존경을 표한 셈이다.

몽고메리는 이 책의 661쪽에서 662쪽에 걸쳐 "조선에는 이순신이라는 뛰어난 장군이 있었다. 이순신 장군은 전략가, 전술가, 탁월한 자질을 지닌 지도자였을 뿐만 아니라 기계제작에도 뛰어난 재능을 지니고 있었다...<중략>...일본 선원들은 용감하게 싸웠으나 이순신 장군의 철갑 전함(거북선)에는 저항할 수 없었다".라고 기술하고 있다. (뭐 그렇더라도 여전히 불만은 남겠지만 전쟁사에 여러 페이지에 걸겨 많이 기록된다고 썩 좋은 일도 아니지 않나? 흐흐)

솔직히 이 책을 추천하고 싶은 이유는 앞서 언급한 여러 장점들에도 있지만 한 명의 직업 군인이 평생 전장을 거쳐 살아오며 경험하고 느낀 진솔한 전쟁관과 평화관이 이 책 곳곳에 묻어있기 때문이다. 물론 장군들이 쓴 전쟁회고록이나 제너럴십에 대해 군사평론가들이 말한 책은 이미 많이 있다. 그러나 많은 책들이 일종의 회고담에 그치거나  출세기, 실증적인 전사 검토에 그치는데 반해 이 책에는 우리가 전쟁을 배워야 하는 이유가 전쟁 그 자체를 효율적으로 좀 더 잘 치르기 위해서가 아니라, 어떻게 하면 평화롭게 살아갈 것인가를 배워야 하기 때문이라고 강조한다는 미덕이 있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매우 좋은 책이다.

몽고메리는 "전쟁의 본질"편에서 전쟁을 이렇게 말하고 있다.

"전쟁은 왜 일어나는가? 더러는 전쟁이 문명의 소산이라고 말할 테고, 더러는 전쟁이 인간의 타고난 본성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말할 것이다. 그러나 한 가지만은 분명하다.즉 합의를 도출할 다른 방법이 없을 때 항상 중재자 역할을 한 것은 다름 아닌 전쟁이었다는 것이다. 전쟁이 내린 판결은 정의보다 힘에 기초한 것이었다. <46쪽>

전쟁이란 경쟁 관계에 있는 정치 집단 간의 장기 무장 충돌을 의미한다. 전쟁에는 반란과 내란이 포함되며, 개인적인 폭동이나 폭력행위는 제외된다.<47쪽>"


그는 전쟁의 승자가 곧 정의라고 주장하지 않으며 그건 영국군도 마찬가지였음을 솔직히 인정한다. 우리는 최근 이라크 파병 문제와 관련해 스스로를 오랫동안 자유주의자로 자처하던 어떤 지식인이 국회의원이 된 뒤 "국가이성"에는 도덕을 물을 수 없다고 주장하며 파병을 두둔했던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서구에서 자유주의가 파탄난 것은 자유주의 덕목 자체가 파탄났기 때문이 아니라 자유주의자들이 너무나 손쉽게 보수화하는 경향을 보였기 때문이다). 몽고메리는 전쟁을 수행하는 국가를 단지 "정치 집단'이라고 표현하고 있다. 물론 우리의 생존 목적을 "국가와 민족 중흥의 역사적 사명을 띠고 이 땅에 태어났다"고 믿는 이들에게는 불경스러운 일이겠지만, 그는 전쟁을 수행하는 국가에 대해 단지 정치집단으로 규정하고 있을 뿐이다. 최근에 나온 "헌법의 풍경"이란 책에서 저자 김두식은 이렇게 말한다. 헌법의 기본권 정신은 "그럼에도 불구하고"의 정신에서 출발한다. 여러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사상과 신앙, 표현의 자유는 인정되어야 한다. 권력자들이 "인정한다, 그러나"라며 필요에 따라 개인의 기본권을 규제하면 국가가 괴물로 돌변하는 것을 막을 방법이 없다면서 "강조하고 싶은 것은 '지금 어떤 나라가 괴물이냐'라는 것이 아니다. 국가란 본디 언제든지 괴물로 변할 수 있는 존재라는 점이 중요하다"라고 말한다.

"서구 중세를 통틀어 일개 국가의 인력은 그다지 중시되지 않았다. 전투 때는 노예들이 소모품으로 사용되었다. 그러나 14세기에 흑사병으로 알려진 일련의 전염병이 돌자, 인력이 귀해져 노예의 경제적 가치가 커지게 되었다. 그때부터 노예는 생명이 보호되어야 했고, 더 이상 소모품으로 사용될 수가 없었다. 현대에 있어서 한 국가가 전쟁을 치를 때 무장 병력 중 사병은 직업 육군이나 해군이나 공군이 아닌 민간인으로 채워진다. 그런데 민간인들은 결코 그러길 원치 않는다. 현대의 사병은 지난날의 노예나 용병들과는 딴판이다. 즉, 그들은 교육을 받았고, 사고할 수 있고, 식별할 수 있으며, 비판할 태세가 되어 있다.... 중략 ..... 현대전은 총력전이다. 또 몇 세기에 걸쳐 대단히 복잡해진 현대전은 한 국가의 활동과 존속 자체를 좌우할 정도여서, 과거와 달리 이제는 국가 전체의 사기가 중요해졌다. 그것은 필수적이다. 징용과 용병의 시대에는 국가적 전쟁에 종사하거나 전투를 하는 사람이 비교적 소수였다." <56-57쪽>


프랑스의 정치가 탈레랑은 "전쟁은 너무 심각한 일이라서 군인들에게 맡겨둘 수가 없다"고 말하지만 그와 같은 이유로 몽고메리는 "전쟁은 너무 심각한 일이라서 정치가들에게 맡겨둘 수가 없다"고 말한다. 물론 이때의 몽고메리가 말한 것은 군인과 정치가 모두에게 책임을 물어야 한다는 뜻일 게다. 우리는 앞서 몽고메리가 말한 것을 기억해야 한다. 전쟁은 너무 심각한 일이기 때문에 군인과 정치가에게만 맡길 수 없다. 더군다나 현대의 전쟁은 총력전이기 때문에 더더욱 시민사회의 감시 아래 놓여야 한다.

몽고메리는 전쟁의 여러 이유 중 하나, 특히나 현대전에서 두드러진 특징을 다음과 같이 요약하고 있다.


빈번한 전쟁에 대한 또 다른 근본적 이유로 집단에 소속하려는 인간의 뿌리 깊은 욕망을 들 수 있다. 한 사회 안에서 충성심이나 집단의 주체의식, 애국심과 같은 것이 발전하게 되면 결과적으로 이웃 집단에 대해서는 배타적이고 적대적이게 된다. 라틴어 hostis가 '이방인'과 '적'을 동시에 뜻한다는 것은 의미심장하다. 지상의 다양한 민족들은 저마다 자신만의 남다른 문화에 강하게 집착하는 경향이 있으며, 그러한 문화와 군사제도는 서로 밀접한 관계에 있다. <83쪽>


라틴어로 이방인과 적이 같은 단어로 표현되고 있다는 사실에 주목하는 장군을 만나기는 동서양을 모두 통틀어 보더라도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배타적인 마음, 조직에 대한 무조건적인 충성, 민족주의, 국가주의, 국수주의가 바로 타인에 대한 잔학 행위로 나타났었음을 우리가 "전쟁의 역사"에서 교훈으로 얻을 수만 있다면 평화의 발명에 더 큰 도움이 되지 않을까?

그는 25장 "에필로그 - 평화라는 이상"에서 예레미야서를 인용하여 "선지자로부터 제사장까지 모두가 거짓을 행하며, 평화롭다, 평화롭다 하나 평화가 없도다"라고 말한다. 분명 문명은 진보했고, 지난 2000년 동안 모든 선량한 사람들이 마음속 깊숙이로부터 평화를 갈구했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류는 20세기에 이르러 역사상 가장 잔혹하고 가장 혼란스러운 시대를 경험했다. 우리는 국가간의 전면적인 야만 상태가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것이라고 자신할 수 있을까? 숱한 시간들을 전장에서 보내고 전쟁을 연구한 학자로서 몽고메리는 말한다.

"진정한 군인은 타인을 적으로 삼지 않고, 인간 내면의 야수를 적으로 삼는다. 한 군인으로서 나는 희망한다. 황금빛 노을이 지고 반목과 싸움을 잠재우는 소등 나팔소리가 울리는 그날이 오기를. 이윽고 찬란한 태양이 솟아오르며 세계 온 나라의 친선과 평화를 깨우는 기상나팔 울리는 그 시대가 오기를."


아무리 많은 숫자의 군대라 할지라도 항상 승리를 거둘 수 없으며, 국민들의 마음을 영원히 장악할 수도 없다고 말이다. 평화를 애호한 사람들은 자유와 정의를 위해 싸웠다. 자유와 정의가 없으면 겁 많고 노예화된 사람들에게 평화가 주어졌다 한들 그 평화는 지상의 지옥과 같았을 것이다. 지금 우리가 누리고 있는 평화는 인간 내면의 야수와 싸워 얻은 평화이며, 만일 그 평화를 쟁취하고 유지한 미덕들이 상실된다면 평화는 지속되지 않을 것이다. 평화는 실천이라는 미덕과 함께 해야만 지켜질 수 있는 것이다. 우리 세대는 20세기의 전철을 밟지 않기 위해서라도 평화를 발명해내야 하는 도덕적 책무를 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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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바람구두 windsho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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