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복'에 해당되는 글 4건

  1. 2011.07.22 이성복 - 내 마음아 아직도 기억하니
  2. 2011.03.16 이성복 - 꽃피는 시절 (1)
  3. 2010.11.04 이성복 - 세월에 대하여 (2)
  4. 2010.09.09 이성복 - 그 여름의 끝
내 마음아 아직도 기억하니

- 이성복

내 마음아 아직도 기억하니
우리 함께 개를 끌고 玉山에 갈 때
짝짝인 신발 벗어 들고 산을 오르던 사내
내 마음아 너도 보았니 한 쪽 신발 벗어
하늘 높이 던지던 사내 내 마음아 너도 들었니
인플레가 민들레처럼 피던 시절
민들레 꽃씨처럼 가볍던 그의 웃음소리

우우우, 어디에도 닿지 않는 길 갑자기 넓어지고
우우, 내 마음아 아직도 너는 기억하니

오른손에 맞은 오른뺨이 왼뺨을 그리워하고
머뭇대던 왼손이 오른뺨을 서러워하던 시절
내 마음아 아직도 기억하니 우리 함께 개를 끌고
玉山에 갈 때 민들레 꽃씨처럼 가볍던 그의 웃음소리
내 마음아 아직도 너는 그리워하니 우리 함께
술에 밥 말아 먹어도 취하지 않던 시절을


*


시인도 사람이다. 사람은 누구나 늙는다. 그럼에도 시는 아직도 저렇게 푸르고 아프도록 시리게 빛난다. 1977년 '정든 유곽에서'를 통해 혜성처럼 등장해 1980년대 한국 시문학의 절정을 찍었던 시인 이성복의 시는 늪처럼 묵직하고 끈적거렸다. 그의 시에서 깨달음은 멀고도 먼 세월 저편의 일이었다. 그 깨달음에 도달하기 위해 시인은 늪처럼 허우적대는 청춘의 무게를 질질 끌고 玉山에 올랐으리라.

그와 함께 玉山에 오른 것이 어디 개 한 마리뿐이었으랴. 비록 청춘의 무게는 그를 내리 눌렀을 테지만 "인플레가 민들레처럼 피던 시절"에도 그의 웃음소리는 "민들레 꽃씨처럼" 가볍기만 했다. 이성복은 "내 마음아 아직도 기억하니"란 시에서 시적 묘사와 진술을 매우 효과적으로 사용하고 있다.

분명 그 자신의 체험이었을 청춘의 연대기 "술에 밥 말아 먹어도 취하지 않던 시절"은 이제 흘러가고 없지만 기억과 그리움은 여전히 그를 괴롭힐 것이다. 아니 그의 시와 함께 지난한 세월을 견뎌 간신히 "어디에도 닿지 않는 길"에 도달한 우리들을 괴롭힐 것이다. "내 마음아 아직도 너는 그리워하니" 어디에도 닿을 수 없는 그 길을 찾자고 죽도록 헤매고 다녀야 했던 고통의 뻘밭을...

그럼에도 이처럼 환하게 빛났던 청춘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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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피는 시절

- 이성복


멀리 있어도 나는 당신을 압니다
귀먹고 눈먼 당신은 추운 땅속을 헤매다
누군가의 입가에서 잔잔한 웃음이 되려 하셨지요

부르지 않아도 당신은 옵니다
생각지 않아도, 꿈꾸지 않아도 당신은 옵니다
당신이 올 때면 먼발치 마른 흙더미도 고개를 듭니다

당신은 지금 내 안에 있습니다
당신은 나를 알지 못하고
나를 벗고 싶어 몸부림하지만

내게서 당신이 떠나갈 때면
내 목은 갈라지고 실핏줄 터지고
내 눈, 내 귀, 거덜난 몸뚱이 갈가리 찢어지고

나는 울고 싶고, 웃고 싶고, 토하고 싶고
벌컥벌컥 물사발 들이켜고 싶고 길길이 날뛰며
절편보다 희고 고운 당신을 잎잎이, 뱉아낼 테지만

부서지고 무너지며 당신을 보낼 일 아득합니다
굳은 살가죽에 불 댕길 일 막막합니다
불탄 살가죽 뚫고 다시 태어날 일 꿈 같습니다

지금 당신은 내 안에 있지만
나는 당신을 어떻게 보내드려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조막만한 손으로 뻣센 내 가슴 쥐어뜯으며 발 구르는 당신

*

모든 '시(詩)'의 기본은 '연애(戀愛)'라고 배웠다. 그리고 그 사랑(戀愛)의 기본은 그리움(戀)이다. 그리움이 없는 사랑은 사랑이 아니다. '그리움'의 기본적인 감각은 사랑하는 이와 함께 밥을 먹고, 잠을 자고, 아이 만드는 밤을 함께 지새우는 것으로 표현되는 것이 아니다. 물론, 사랑은 '하다'로 표기되지만 사랑을 이루는 근본적인 감정인 '그리움'의 원천적인 감각은 '보고 싶다'라는 말로 표현된다. 따라서 '사랑'은 '하다' 보다는 '보다'라는 감각에 좀더 접근되어 있는 감정이다. 한국말의 쓰임에서 가장 기본이 되는 말 중 하나인 '하다' 보다 더욱 많은 쓰임의 예가 있는 말이 '보다'이다. 그러나 '보다', '본다'는 말은 식물성의 느낌을 준다.

우리는 아는 사람을 만났을 때, 흔히 '한 번 보자'고 말하지, '한 번 하자'고 말하지 않는다. 물론 이렇게 말하는 것은 약간의 농이 섞인 말이긴 하지만, '하자'는 그것이 무엇이 되었든 목적을 지니기 때문에 매우 구체적으로 들리는 것에 비해서 '보자'란 말은 그와 같은 구체성을 지니지 못한다. '하다'란 말이 구체적인 목적을 지니는 것에 비해 '보다'란 말이 더 함축적이고 다양한 의미를 내포하기 때문이다. '나를 왜 사랑하느냐?'고 묻는 이에게 '나는 당신이 섹시하기 때문에 사랑한다'고 말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아마 그런 말을 듣는 이라면 상대방이 자신을 하찮게 여긴다고 생각할 것이다.  

사랑하는 이가 서로 영원히 작별할 때, 흔드는 손은 활짝 펴지지 않는다. 마치 갓 태어난 아기의 손이 무언가 잡고 있는 것처럼 꽉 오므려져 있는 것처럼 그리운 이를 마지막 보내는 손은 아쉬움으로 인해 활짝 펴지지 않는 것이다. 세상에 존재하는지, 존재하지 않는지 알 수 없는 존재(메일이든, 사진이든 구체적인 형상을 통해 보고 알고 느끼고 있는 것과 달리)를 사랑한다는 것은 그것이 아무리 지고지순한 사랑의 감정에서 출발한 것이라 할지라도 그립지 않다는 점에서 우리가 이 글에서 정의하는 사랑, 다시 말해 연애가 될 수 없다. 이렇듯 사랑은 '보는 것'에서 출발한다. 그러나 보는 것만으로도 사랑이 완성되었다거나 충족된다고 느낄 수는 있겠지만, 그것만으로 사랑이 완전한 면을 이루는 것은 아니다. 아마도 그건 우리가 '플라토닉 러브'라 하는 사랑의 한 측면을 일컫는 말에 불과할 것이기 때문이다.

'당신을 보고 있어도 당신이 그립다'는 표현이 있듯 사랑은 보는 것만으로 완결되지 않는다. '사랑은 마주 보는 것이 아니라 같은 곳을 바라보는 것'이라는 말이 있는데 이 역시 사랑이 단순히 상대방을 본다는 의미에서 그칠 수 없음을 잘 보여준다. '본다'는 것은 바라보는 대상이 존재한다는 것을 의미하지만, 보는 대상이 반드시 남이라고 할 수는 없기에 사랑은 '타아'적인 것이면서 동시에 '자아'의 표현이기도 하다. 바라보지만, 같은 곳을 본다는 것은 나의 시선과 상대의 시선이 일치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사랑이 때때로 엇갈리는 까닭이 거기에 있다. 마주보고 있는 동안, 두 연인은 행복할 수 있다. 그러나 같은 곳을 바라봐야 할 때 두 사람의 시선은 서로 엇나간다. 한 사람은 '달'을, 다른 한 사람은 '손끝'을 보거나, 두 사람은 각기 '해'와 '달'을 가리킬 수도 있고, 눈을 감을 수도 있다.  

'같은 곳을 바라본다'는 것은 각기 다른 자아를 지닌 두 존재가 하나의 의지 아래 다른 하나의 의지를 합치시킬 때만 비로소 가능하다. 이성복 시인은 '멀리 있어도 나는 당신을 압니다', '부르지 않아도 당신은 옵니다', '당신은 지금 내 안에 있습니다'라고 노래한다. 사랑이 그 어떤 감정보다 폭발적인 까닭은 서로 다른 두 사람, 그리워하는 두 사람이 감정적으로든, 육체적으로든 하나로 합쳐지는 순간이 있기 때문이다. 물론, 이런 상황에 도달할 수 있는 가장 손쉬운 방법은 '섹스'다. 섹스와 군중심리는 감정의 전이가 이루어진다는 점에서 서로 닮아있다. 혁명의 열기가 분출되는 극적인 순간, 공동체가 각각의 개인을 감싸고 있는 정신적 결계의 '해방'을 맛보고, 하나의 유기체처럼 여기게 되는 것처럼 연인에게 그와 같은 카타르시스를 제공하는 가장 손쉬운 방법이다.  

그러나 영원히 혁명하며 살 수 없는 것처럼 사랑하는 연인 또한 영원히 '당신은 지금 내 안에' 있는 그 순간을 경험할 수 없다. 그래서 사랑은 그립고, 그립기에 사랑이고, 그리움만으로 상대를 온전히 가질 수도, 느낄 수도 없기에 사랑은 미완이다. 사랑은 영원히 미완이기에 혁명과 닮았다. 그것은 돌고 돌고 돌고, 돌아가는 윤회의 고리와 같다. 가져도, 가져도, 채워질 수 없는 영원한 그리움이다. 그러니 사랑하는 동안엔 아무리 괴롭고, 힘들어도 '꽃피는 시절'이다. 우리가 사랑 때문에 아프고, 괴롭고, 힘들고, 온갖 악다구니를 쓰면서도 사랑하고 싶어하는 이유가 그 때문이다. 혼자이고 싶지 않아서...사랑도, 혁명도 알고보면 외로운 자들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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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에 대하여

- 이성복

1

석수(石手)의 삶은 돌을 깨뜨리고 채소 장수의 삶은
하루 종일 서 있다 몬티를 닮은 내 친구는
동시상영관(同時上映館)에서 죽치더니 또 어디로 갔는지
세월은 갔고 세월은 갈 것이고 이천 년 되는 해
아침 나는 손자(孫子)를 볼 것이다 그래 가야지
천국(天國)으로 통하는 차(車)들은 바삐 지나가고
가로수는 줄을 잘 맞춘다 저기, 웬 아이가
쥐꼬리를 잡고 빙빙 돌리며 씽긋 웃는다

세월이여, 얼어붙은 날들이여

야근하고 돌아와 환한 날들을 잠자던 누이들이여


2

피로의 물줄기를 타넘다 보면 때로 이마에
뱀딸기꽃이 피어 오르고 그건 대부분
환영(幻影)이었고 때로는 정말 형님이 아들을 낳기도
했다 아버지가 으흐허 웃었다 발가벗은
나무에서 또 몇 개의 열매가 떨어졌다 때로는
얼음 깔린 하늘 위로 붉은 말이 연탄을
끌고 갔다 그건 대부분 환영(幻影)이었고 정말
허리 꺾인 아이들이 철 지난 고추나무처럼
언덕에 박혀 있기도 했다 정말 거세(去勢)된
친구들이 유행가를 부르며 사라져 갔지만
세월은 흩날리지 않았다 세월은 신다 버린 구두
속에서 곤한 잠을 자다 들키기도 하고
때로는 총알 맞은 새처럼 거꾸로 떨어졌다
아버지는 으흐허 웃고만 있었다 피로의 물줄기를
타넘다 보면 때로 나는 높은 새집 위에서
잠시 쉬기도 하였고 그건 대부분 환영(幻影)이었다


3

세월은 갔고 아무도 그 어둡고 깊은 노린내 나는
구멍으로부터 돌아오지 못했다 몇 번인가 되돌아온
편지(便紙) 해답은 언제나 질문의 잔해(殘骸)였고 친구들은
태엽 풀린 비행기처럼 고꾸라지곤 했다 너무
피곤해 수음(手淫)을 할 수 없을 때 어른거리던
하얀 풀뿌리 얼어붙은 웅덩이 세월은 갔고
매일매일 작부들은 노래 불렀다 스물 세 살,
스물 네 살 나이가 담뱃진에 노랗게 물들 때까지
또 나는 열 한 시만 되면 버스를 집어 탔고

세월은 갔다 봉제 공장 누이들이 밥 먹는 30분 동안

다리미는 세워졌고 어느 예식장에서나 30분마다
신랑 신부는 바뀌어 갔다 세월은 갔다 변색한
백일 사진 화교(華僑)들의 공동묘지 싸구려 밥집 빗물
고인 길바닥, 나뭇잎에도 세월은 갔다 한 아이가
세발 자전거를 타고 번잡한 찻길을 가고 있었다
어떤 사람은 불쌍했고 어떤 사람은 불쌍한
사람을 보고 울었다 아무것도 그 비리고 어지러운
숨 막히는 구멍으로부터 돌아오지 못했다


4

나는 세월이란 말만 들으면 가슴이 아프다
나는 곱게 곱게 자라왔고 몇 개의 돌부리 같은
사건(事件)들을 제외하면 아무 일도 없었다 중학교
고등학교 그 어려운 수업시대(修業時代), 욕정과 영웅심과
부끄러움도 쉽게 풍화(風化)했다 잊어버릴 것도 없는데
세월은 안개처럼, 취기(醉氣)처럼 올라온다
웬 들 판 이 이 렇 게 넓 어 지 고
얼마나빨간작은꽃들이지평선끝까지아물거리는가

그해

자주 눈이 내리고
빨리 흙탕물로 변해 갔다
나는 밤이었다 나는 너와 함께
기차를 타고 민둥산을 지나가고 있
었다 이따금 기차가 멎으면 하얀 물체(物體)가
어른거렸고 또 기차는 떠났다……세월은 갔다

어쩌면 이런 일이 있었는지도 모른다

내가

돌아서
출렁거리는
어둠 속으로 빠져 들어갈 때
너는 발을 동동 구르며
부서지기 시작했다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나는 너를 사랑했다

나는 네가 잠자는 두 평 방(房)이었다
인형(人形) 몇 개가 같은 표정으로 앉아 있고
액자 속의 교회(敎會)에서는 종소리가 들리는……
나는 너의 방(房)이었다
네가 바라보는 풀밭이었다
풀밭 옆으로 숨죽여 흐르는 냇물이었다
그리고 나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문득 고개를 떨군 네
마음 같은,
한줌
공기(空氣)였다)

세월이라는 말이 어딘가에서 나를 발견할 때마다

하늘이 눈더미처럼 내려앉고 전깃줄 같은 것이
부들부들 떨고 있는 것을 본다 남들처럼
나도 두어 번 연애(戀愛)에 실패했고 그저 실패했을
뿐, 그때마다 유행가가 얼마만큼 절실한지
알았고 노는 사람이나 놀리는 사람이나 그리
행복하지 않다는 것을 알아야 했다 세월은
언제나 나보다 앞서 갔고 나는 또 몇 번씩
그 비좁고 습기찬 문간(門間)을 지나가야 했다.


*

언젠가 친구들 앞에서 이런 이야기를 한 적이 있었다. '내 나이 쉰살이 되었을 때, 나는 할리데이비슨 오토바이를 사서 내 뒷 자리에 예쁜 여고생 아이를 태우고 길거리를 달리고 싶다고...' 그랬더니 다들 나를 무슨 변태 취급하는 눈으로 바라보았다. 나이 쉰 살에 여고생 아이를 등 뒤에 태우고 달리는 내 모습을 내가 상상할 때는 전혀 문제가 없었는데(사실 이런 상상은 참 오래된 상상이었다, 다만 나는 그 아이가 내 딸이길 바랐을 뿐인데, 아무래도 딸 아이를 뒤에 태우고 오토바이를 타고 달리려면 더 일찍 아이를 가졌어야 했는데 이젠 아무래도 글러버린 것 같다), 그 상상이 남의 머리 속에 스며들자 나는 고만 옴짝달싹할 수 없는 변태가 된 거다. 또 얼마 전엔 내가 진행요원으로 참여한 백일장에서 여고생 아이들이 무언가 물어보기 위해 내 곁에 다가서다가 그네들이 젖살로 내 팔꿈치를 슬쩍 건드렸을 때 온몸에 봄물이 오르듯 짜릿한 기분을 느꼈다고 말했더니 이번엔 변태 중에서도 상변태(롤리타) 취급을 받았다.

나이는 그저 숫자에 불과하다고 누가 말했나? 나이는 나이고, 세월은 세월이다. 내가 제 아무리 알퐁스 도데의 스테파네트 아가씨 모시듯 하고 싶어도, 내가 제 아무리 윤 초시 네 손녀 딸 모시듯 하고 싶어도 상대방이 날 중늙은이 취급하면 변태가 될 밖에 도리가 없다. 그래서 시인 이성복은 이렇게 말한다.

세월은 갔고 세월은 갈 것이고 이천 년 되는 해

아침 나는 손자(孫子)를 볼 것이다 그래 가야지

노스트라다무스의 예언이 기승을 부리던 1980년 중반쯤 어느날엔가 나는 1999년에 내가 몇살쯤 되었을지 중학교 교실에서 친구들과 헤아려 보았다. 우리 나이 스물아홉에 죽기엔 허망했다. 그 나이쯤에 나는 결혼을 했을까? 아이는 있을까? 그 날이 과연 올까? 전부 헛소리라고 밀쳐두기엔 노스트라다무스의 예언이 모두 너무나 잘 들어맞았다는 일본 작가의 구라가 있었으므로 어느 점집 늙은이 이야기처럼 뒤로 젖혀두기엔 신빙성으로 넘쳐났다.

가로수는 줄을 잘 맞춘다 저기, 웬 아이가

쥐꼬리를 잡고 빙빙 돌리며 씽긋 웃는다

나는
'쥐꼬리를 잡고 빙빙 돌리며' 시에 등장하는 아이는 틀림없이 이성복 시인의 어린 시절의 자화상이었다고 그렇게 단정 짓는다. 아, 시인이여! 이 촌놈!

나는 세월이란 말만 들으면 가슴이 아프다

나는 곱게 곱게 자라왔고 몇 개의 돌부리 같은
사건(事件)들을 제외하면 아무 일도 없었다

그런데 시인은 왜? 세월이란 말만 들으면 가슴이 아플까? 사실 이성복 시인의 시에서 깊은 의미를 발견하고자 시도하는 일은 우습다. 이성복의 시에서 정황이 만들어내는 이미지를 빼놓고 나면 도대체 무엇이 남아서 의미를 찾는가? 그의 시에선 종종 한국 독자들을 감복시키려고 들어가
는 경구 같은 구절이 없어서 좋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시에선 내 가슴을 찌르르 울리는 한 구절이 있다.

세월이라는 말이 어딘가에서 나를 발견할 때마다

하늘이 눈더미처럼 내려앉고 전깃줄 같은 것이
부들부들 떨고 있는 것을 본다

시인의 말에 따르면 내가 세월을 발견하는 게 아니라 세월이 나를 발견하는 것이다.
그럴 때마다 나는 눈더미처럼 내려앉은 하늘, 그것이 부들부들 떨고 있는 것을 보게 된다. 이게 뭘까? 눈물일 수도 있겠단 섣부른 생각이 든다. 실패했던 두어 번의 연애, 놀리는 사람이나 놀림 받는 사람이나 그다지 행복하지 않다. 세월이란 그렇게 쓸쓸한 것인가. 어쨌거나 그래서 시인은 또 습기찬 문간을 지난다. 눈물의 시인이다. 얼마전 날 놀려먹었던 친구에게 그런 이야기를 해주었다. 내 나이 쉰살이 되었을 때, 나는 내 딸 아이를 등 뒤에 태우고 오토바이를 타고 싶었다고... 그런데 이제 올해 갓 태어난 내 딸아이를 내 나이 쉰 살에 등 뒤에 태우고 싶어도 그 아이는 고작 10살도 채 안 될 것이다. 과연 나는 내 나이 쉰 중반에도 오토바이를 탈 수 있을까? 아니 그 때도 여전히 오토바이를 타고 싶어할까? 세월이 서글픈 건 1999년에 세계 멸망이 오지 않은 것처럼 내 뜻대로 되는 일이 별로 없다는 걸 깨닫게 하기 때문이다.



- 사실 로열엔필드 같은 류의 모터사이클을 좋아한다. 비록 게바라가 탔던 녀석은 이게 아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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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여름의 끝


- 이성복


그 여름 나무 백일홍은 무사하였습니다 한차례 폭풍에도 그 다음 폭풍에도 쓰러지지 않아 쏟아지는 우박처럼 붉은 꽃들을 매달았습니다

그 여름 나는 폭풍의 한가운데 있었습니다 그 여름 나의 절망은 장난처럼 붉은 꽃들을 매달았지만 여러 차례 폭풍에도 쓰러지지 않았습니다

넘어지면 매달리고 타올라 불을 뿜는 나무 백일홍 억센 꽃들이 두어 평 좁은 마당을 피로 덮을 때, 장난처럼 나의 절망은 끝났습니다

*

우리 문학사에서 1980년대는 단연코 '시의 시대'로 기억될 것이다. 사실 그 이면에는 이해하지 못할 몇 가지 사건들이 있는데 한 가지는 1960년의 초반 최인훈의 <광장>을 필두로 황석영의 <객지>, 윤흥길의 <장마>, 전상국, 이청준, 박완서 등등 많은 작가들이 소설 문학의 부흥이랄까 - 특히 <광장>은 남한의 작가적 시선이 드디어 고루한 민족주의 경계를 넘어 세계사적 인식의 범위까지 가고 있다는 점에서 탁월하고, <객지>는 계급이라는 틀에 대해서 작가들의 발언이 시작된다는 점에서 중요하다 - 하는 것들을 이끌었음에도 80년대에는 어째서 그런 소설 문학이 일제히(이것은 사실 약간의 과장이다.) 침묵했는가 하는 것이다.

거기에는 이제 조금씩 정리되고 있는 몇가지 설들이 있다. 그 중 하나가 80년 벽두에 벌어진 <광주 5.18>이 그 주요 원인이라는 것이다. 그 엄청난 사건 앞에서 작가들이 끝없는 침묵 속으로 빠져들었다는 것이다. 거기에서 좀더 나아간 견해는 시문학이 이 엄청난 상황에서 좀더 발빠르게 움직일 수 있다는 장르적 기민성이 있는 반면에 소설은 이런 상황을 분석하고 내면화하는 데 시간이 오래 걸렸고, 1990년대 접어들면서 급격한 동구의 몰락 등으로 이데올로기적 혼선을 빚어, 이에 대해 말할 시기를 놓쳐버렸다는 견해가 그것이다.

그러나 작가는 작품으로 말하는 것이지만, 물론 1980년대의 작가들이 시대적 의무를 방기한 것은 아니었다. 아마 우리 공화국 건국 이래 가장 많은 작가들을 감옥에 보낸 시기가 그 무렵이 아니었던가 싶기 때문이다.(물론 이 자리에서 그것을 분석하자는 것은 아니므로 이쯤해두기로 하고.) 어쨌든 이런 말을 하는 이유는 아직까지 우리 문학의 전단계가 1980년 광주라는 숙제를 아직까지 짊어지고 있다는 사실과 지금 현재 21세기에 이르기 까지 비록 먼길(사소설 양식의 범람이나 엽기, 재기발랄 풍의 소설)을 돌아오고 있기는 하지만 언젠가 이 숙제를 해결하지 않고서는 그 의무를 다했다고 말하기 어려우리란 판단에서이다.

독일의 나치 정부는 하이네 시인의 시에 곡을 붙인 <로렐라이>라는 곡을 민요라고 가르쳤다. 그들은 하이네라는 민중 시인을 지워버리고 싶었을 것이다. 아마 이 글을 읽는 당신도 학교에서 그렇게 배웠을지 모른다. 우리는 하이네를 단순히 서정시인으로 알고 있지만 하이네는 단순히 서정시만을 쓰지는 않았다. 반대로 김남주 시인이 민중시만 쓰지는 않앗던 것처럼…

그 '시의 시대'를 빛낸 대표적 시인 중 하나가 바로 이성복이다. 지금 소개하고 있는 이 <그 여름의 끝>은 1990년 발간된 세번째 시집 <그 여름의 끝>에 수록되어 있는 시입니다. 어쩌면 여기에서 시인이 말하는 그 여름은 1980년대를 의미하는지도 모르겠다.

만약 1980년대를 상징하는 것이라면 연이어 불어오는 '폭풍에도 백일홍 나무'는 꺽이지 않는 무언가였다. 그것은 그의 '절망'이었다. 그것은 과연 절망이기만 했을까. 그의 절망은 물론 시대의 잔혹함을 바라보아야 하는 시인의 가녀린 감수성이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그의 백일홍 나무는 꺽이지 않았고, 붉은 꽃들을 매달았다. 그는 절망을 통해 어쩌면 희망을 간구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 어려움 속에서 붉은 꽃을 매단다는 것이 시인의 눈에는 장난처럼 보였을지 모른다. 그런데 여기에서 말하는 장난은 오히려 반어이자 역설이 된다. 그 연이어지는 폭풍 속에서 꽃을 맺는다는 것이 어찌 장난처럼 손 쉬운 일이었을까?

이 시가 성취하고 있는 고도의 상징성은 두 차례 반복되는 '장난처럼'이라는 비유에서 획득되는 것이다. 그 붉은 꽃은 장난처럼 피었다가 장난처럼 저버리고 만다. "백일홍 억센 꽃들이 두어 평 좁은 마당을 피로 덮을 때, 장난처럼 나의 절망은 끝났습니다" 시인이 백일홍 나무에서 붉은 꽃이 피는 것을 거부했을까? 이 시의 외면에는 마치 시인이 백일홍 나무에서 붉은 꽃이 피는 것을 거부하는 듯이 보인다. 그러나 우리는 시인이 "장난처럼 나의 절망은 끝났습니다"은 라고 말하는 순간 장난처럼 그의 절망에, 그가 걸었던 희망이 꺽임을 마치 선사의 '할'과 같이 맥이 탁 풀어지는 느낌을 받게 된다.

김수영 시인의 "혁명은 안되고 방만 바꾸어 버렸다"는 그 명제가 떠오른다. 저는 이성복 시인의 <그 여름의 끝>을 읽으며 어쩐지 4.19가 5.16으로 좌절되던 그 순간의 울분을 삼키지 못한 김수영 시인의 얼굴이 떠오른다. 이성복 시인은 1982년 <제2회 김수영 문학상>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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