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으로 보는 세계문화상징사전 ㅣ 까치글방 87
진 쿠퍼 지음, 이윤기 옮김 / 까치글방 / 1994년 5월





이 책은 직접 구입한 것은 아니고, 누군가 선물해주어서 갖게 되었다. 모두가 알고 있는 방법이고, 학교 다닐 때부터 충분히 권유받아온 방법인지라 새삼 말하지 않아도 잘 알고 있는 방법이겠지만 쉽게 실천에 옮기기 어려운 것 중 하나가 사전을 찾아 그 정확한 뜻을 아는 것이다. 이 책의 옮긴이인 이윤기 선생은 "역자후기"에서 실례로 자신이 경험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 한 독실한 크리스천 의사 친구의 결혼 축하연에서의 일이었다고 하는데, 축하예배를 이끌던 목사가 군의관의 군복 깃에 달린, 지팡이를 감고 오르는 뱀의 형상이 수놓인 기장을 가리키면서 '여러분, 이 군의관의 기장을 보세요. 지팡이와 뱀을 보세요. 구약성경 출애굽기에 나오는 모세와 아론의 지팡이랍니다.'라고 했다.


목사는 군의관 기장을 성서적인 것으로 해석하여 이를 축하예배의 설교용 소재로 이용한 것인데, 이윤기 선생은 사실 이것이 그리스 신화에서 의료의 신으로 등장하는 아폴론의 아들 아스클레피오스로부터 비롯되었음을 알고 있었다. 아스클레피오스는 당시의 용한 의사이자 현인이었던 케이론의 가르침을 받아 대단한 의사가 되었고, 그가 설립한 의과대학은 수많은 명의들을 배출해냈는데, 오늘날 서양 의학에서 의학의 성인으로 받들어지는 히포크라테스도 이곳 출신이었다. 당시 의과대학은 아스클레피오스의 사당도 겸했고, 당시 의사들은 의사인 동시에 제관이기도 했다. 그 제관들이 사용한 엠블렘이 바로 아스클레피오스의 지팡이를 휘감고 있는 아스클레피오스의 뱀(전령이자 사자인 흑빛 무독사)였다는 것이다.


이윤기 선생은 끝까지 참지 못하고 사실은 이런 뜻이라고 말해서 그 자리에서 무안을 당했다는 경험을 토로한다. 불행히도 이런 자리에서 지적인 민주주의는 종종 중우정치로 변해버리곤 한다. 지식인의 반열에 오르지 못한 이라도 이런 경험은 한 두 차례 가질 법한 일이기도 한데, 그럴 때 좋은 지침서가 되는 것이 이런 류의 책이다. 이 책이 국내에 처음 출간된 것이 지난 1994년의 일이고 보니 점차 고급화되어가는 최근 유행을 감안해본다면 비록 양장본이라고는 하나 지질이나 인쇄의 질 등 모든 점에서 많이 뒤처진 감도 있다. "그림으로 보는"이라고 해서 1,500여 개에 이르는 표제어에 일일이 도판이 따라오는 것은 아니다. 또 사전이라고는 하지만 사전에 흔히 있는 반달색인(thumb index)이 있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이 책의 가격이나 기타 여러가지를 생각해볼 때 그 정도 사치는 바라기 어려운 일일 테고, 정 필요하다면 반달색인을 대신할 만한 포스트잇도 있으므로 그런 방법을 사용해보는 것도 좋다.


주변에서 이제 더이상 책으로 된 사전보다는 전자사전을, 백과사전도 간편하고 손쉬운 인터넷 백과 사전을 즐겨 찾는 경우가 많은데 물론 시대의 대세이니 무어라 말할 것은 없다. 그런데 가끔 사무실로 전화해서 핸드폰 분실했다고, 내 전화번호를 다시 묻는 친구들이 있다. 핸드폰에만 입력해놓고, 손으로 적는 수첩에 정리한 적은 없기 때문에 생기는 일이다. 다 자란 한국인 성인 남성의 대뇌 무게는 1,300~1,400g정도라 한다. 평생 살면서 몇 % 활용도 못한다고 하는데, 너무 놀려두면 나중에 써먹고 싶어도 써먹을 데가 없어질지도 모르겠다. 그런 친구들에게 아직 전자사전은 커녕 전자수첩도 생각해본 적이 없는 나란 사람은 영 구닥다리일지도 모르겠지만, 공부든 기억이든, 자기 책에 밑줄 긋고, 입으로 소리내 읽어보고, 손으로 직접 옮겨 적는 방법을 능가하는 것은 아직 발견되지 못했다는 걸 일깨워주고 싶다. 결국 책을 읽고 기억하는 건 사람이니까...




한 가지 더 현재 대한의사협회에서 사용하고 있는 휘장에 사용되고 있는 지팡이는 사실 아스클레피오스의 지팡이가 아니라 헤르메스의 지팡이로 이 둘은 지팡이를 뱀이 휘감고 있다는 점에서 공통점이 있지만 아스클레피오스의 지팡이는 원래 뱀이 한 마리이고, 헤르메스의 지팡이는 뱀 두 마리가 서로 몸을 얽힌 채 기어오르는 형상이다. 아스클레피오스가 앞서의 유래에 따라 의학을 상징하는 인물이고, 그와 같은 유래에 따라 의학 분야의 휘장으로 사용되는 것은 역사적인 연원이 있는 것이지만 죽은 이를 저승으로 인도하는 역할을 부여받고 있는 그리스 신화의
헤르메스가 사용하는 지팡이 '카두세우스'가 대한의사협회의 휘장으로 사용되는 것은 생각만 해도 으스스한 잘못된 사례이다. 그럼에도 이 휘장이 아무런 고민 없이 대한의사협회의 휘장으로 사용되었던 것은 미군 의무대가 처음 잘못 채택한 휘장을 우리가 아무 고민 없이 차용해 사용해 왔던 결과다. 이제라도 바로 잡는 것이 올바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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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바람구두 windshoes

『그리스로마 신화사전』 - M.그랜트 | 김진욱 옮김 | 범우사


“로고스와 뮈토스는 말의 양면이며, 양자 다같이 정신생활의 기본적 기능이다. 논증으로서의 로고스는 올바르고 논리에 닿을 경우는 진실이지만 뭔가 속임수가 있을 경우는 허위가 된다. 그러나 뮈토스는 오로지 뮈토스 외에 아무 목적도 없다.” - 피에르 그리말

 


▶ 그리스로마신화의 계보도

사실 신화가 우리에게 중요한 무엇으로 주목받기 시작한 것은 최소한 우리 국내의 문화사적인 측면에서 보자면 극히 최근 십여년의 일이다. 80년대말 90년대 초엽까지 우리는 민주화 문제에 전념하고 있던 상황인지라 신화 이야기는 어딘가 멀고 먼 나라의 이야기쯤으로 치부될 수밖에 없었고, 그저 교양의 일부를 이루기 위해 읽어두어야 할 무엇으로 간주되었다. 내가 정확히 그 문맥을 파악하고 있는 것인지 잘 알 수는 없지만 최근 우리 사회에서 신화가 주목받는 이유는 크게 두 가지이다. 하나는 역사의 시대가 저물고 있다는 것이고(이 말은 근대 이성의 시대가 저문다는 뜻이기도 하다), 다른 하나는 구조주의, 후기구조주의, 포스트모더니즘적인 차원에서 신화가 중요한 개념으로 다뤄지고 있는 탓이다.

 

요 얼마동안 깜짝 독서로 신화 관련 서적들을 집중적으로 읽었는데, 국내 신화 관련 서적들을 모두 통달했다는 뜻은 아니지만, 나름대로 몇 가지 공통점을 찾을 수 있었다. 한 가지는 이윤기 선생에 대한 불만이고, 다른 한 가지는 그럼에도 신화에 관한 책(혹은 기획)은 앞으로 무궁무진하겠단 생각이다. 실제로도 최근 십여년 동안 신화에 대한 출판 종수는 엄청나게 늘어나고 있는 추세고, 앞으로도 그럴 것 같다. 그럼에도 우리의 신화 읽기는 대중의 트렌드에 그칠지 모르겠단 생각이 든다. 출판종수는 많지만 적절히 커리큘럼화된 신화 읽기의 틀이 잘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사실 신화가 문화적으로 재조명 받게 된데에는 인류학과 언어학의 깊은 영향을 받은 구조주의의 출현과 관련이 있다. 문명화되지 않은 원시사회를 방문한 초기 인류학자들은 놀라운 사실을 발견하게 되는데, 문명화되지 않은 원시사회가 동물, 사람, 식물 그리고 각종 사물들을 분류하는 정교한 체계를 지니고 있었기 때문이다. 소쉬르의 "시니피앙과 시니피에, 랑그와 빠롤"이 사회학자 뒤르켐이 간파한 사회문화적 생활 속에 구조화될 수 있는 광범위한 틀로써 "집단적 표상"과 결합하면서 구조주의의 근간을 이루었다. 레비스트로스는 원시사회의 신화는 '그 사회가 지니고 있는 해결되지 않는 모순을 상상적으로 해결하려 하는 이야기'를 의미한다고 했다. 신화가 의미있는 이야기가 되기 위해서는 일정한 체제를 갖추어야 하는데, 그 체제 혹은 이야기체를 우리는 내러티브(narrtive)라 부른다.

 

신화를 분석하는 이들은 신화의 내러티브(서사) 구조를 분석함으로써 신화가 담고 있는 의미들을 해체하고 재구성하려 한다. 롤랑 바르트는 소쉬르의 기표/기의가 합쳐져 의미를 만들어 내는 방식을 1차적 의미화 과정으로 보고 이를 '외연'이라 불렀다. '외연'이 표상하는 것, 예로 들어 미모의 여배우 '***'라 했을 때, 이 배우의 이름을 듣거나 보면서 '참 예쁘다. 얼굴에 품위가 있어 보인다. 얼마전 재벌 2세와 이혼했다. 나이가 제법 들었는데도 여전히 젊어 보인다' 란 의미를 담고 있는 것, 그것을 의미의 2차화를 '내포'라 한다. 이를 CF 광고나 영화와 같이 나름의 내러티브 구조를 갖춘 분야에 적용시켜서 그 모델이 권하는 상품이나 서비스를 구입하도록 권하는 것을 의미의 3차화 과정, 즉 사회적으로 널리 통용되는 믿음이나 가치, 태도 등을 '신화'라 불렀다. 그런 점에서 신화는 지배 이데올로기의 다른 표현이기도 하다. 즉, 우리는 신화를 읽고 분석함으로써 우리 안에 오랜 세월 깃들어 있던 인간의 본성과 아직 문명이 썩트기 전 우리 선조들이 살았던 시대의 정신을 이해할 수 있다.

 

흐흐, 하지만 뭐 우리야 이런 머리 복잡한 내용까지 알 필요는 없으리라. 범우사는 내 개인적으로 인연이 좀 있다. 중고생 시절 범우사의 독서회원으로 가입해서 인문학 분야의 염가 문고판 시리즈인 사루비아 문고를 비롯한 꽤 여러 종의 책들을 우편주문으로 받아보곤 했다. 특히 인문학 분야의 저서들 가운데 꼭 범우사 것이 결정판이라고 할 수는 없어도, 범우사가 앞서 출판했다고 할 수 있는 고전들은 꽤 여러 종된다. 토마스 불핀치의 "그리스 로마 신화" 도 범우사 고전선 시리즈 가운데 하나로 나 역시 가지고 있는 책이다. 그런데 이 책의 뒤에 일종의 해설로 글을 쓴 사람이 프랑스의 신화학자 "피에르 그리말"이었다. 그런 범우사에서 M. 그랜트, J.헤이즐 공저의 "그리스 로마 신화 사전"을 펴냈다. 이 역시 당시로서는 꽤 발빠르게 펴낸 책이라 할 수 있다. 양장본에 금박지에 인쇄한 겉표지를 씌운 매우 고급스러운 장정의 책이었는데, 사전이란 특색에 걸맞도록 동아대백과 전집류에 있을 법한 튼튼한 박스 포장을 별도로 만든 책이었다. 지금의 거의 4만원에 가깝지만 처음 나왔을 때만해도 정가가 3만원이었다. 

 

그런데 열린책들에서 "피에르 그리말"의 "그리스로마신화사전"을 펴냈다. 어느 사전이 더 좋은 지 말하긴 현재 내 입장에선 다소 곤란하다. 열린책들의 "그리스로마신화사전"은 아직 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다른 사전 같으면 최신판이 당연히 더 좋은 것이겠지만, 이 사전은 이미 오래전에 소멸되어버린 신들에 대한 사전이므로, 최신판이라고 해서 갑자기 출현한 새로운 신의 명단이 들어있을리도 없다. 이럴 경우엔 어느 사전의 표제어가 더 많은가, 설명은 얼마나 충실하게 해두었는가? 그리스.로마신화의 수많은 이설들, 동명이인들은 어떻게 분류해놓았는가가 관건이다. 일단 내가 읽은 범우사판 "그리스로마신화" 사전은 나름대로 합격점을 받을 만하다. 당시엔 사전치고 지질이 좀 떨어진단 생각을 했는데, 최신판에선 얼마나 개선했는지 모르겠다. "열린책들"의 "그리스로마신화사전"도 찾아보기만 106페이지에 이른다고 자랑하니 무엇을 보든 상관없겠다.

 

다만, 내가 재미있는 건, 범우사판 "피에르 그리말"의 해설을 나름대로 잘 읽었다는 거다. 어쨌든 피에르 그리말을 먼저 안 건 범우사일 텐데, 그의 책은 "열린책들"에서 나왔다는 게 나의 작은 독서 취미로는 상당히 재미있는 아이러니다. 아참, 신화사전을 한 권쯤 가지고 있는 게 신화 책을 읽어 나가기 위해 반드시까지는 아니어도 상당히 필요하단 말씀을 드렸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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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바람구두 windsho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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