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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발적 복종(Discours de la Servitude volontaire)
- 에티엔느 드 라 보에티 | 박설호 옮김 | 울력(2004)


“여기서 나는 다만 하나의 문제에만 관심을 기울이려고 한다. 과연 어째서 그렇게 많은 마을과 도시, 그렇게 많은 국가와 민족들이 독재자의 전제정치를 참고 견디는 일이 항상 일어나고 있는가 하는 점이다. 독재자는 다른 사람들이 그에게 부여한 그 이상의 권력을 가지고 있지 않다. 인민들이 그를 참고 견디는 만큼, 독재자는 그들에게 동일한 정도의 해악을 저지른다. 따라서 인민들이 모든 해악을 감수하지 않고, 무조건 참고 견디는 태도를 옳지 않다고 생각하면, 독재자는 인민들에게 어떠한 해악도 끼치지 못할 것이다.


그렇지만 놀라운 것은 인민들이 마땅히 느껴야 할 고통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태도이다. 실제로 인민들은 폭정을 묵묵히 참고 견디는 것을 당연하다고 여기고, 이를 자연스러운 일이라고 여긴다. 이러한 태도는 정말로 기이하지 않는가? 수백만의 사람들은 비참한 노예상태에서 생활하고 있다. 이는 어떤 막강한 권력에 의해서 강요당한 게 아니다. 오히려 인민들은 결코 두려워 할 필요가 없는 권력을 휘두르는 절대자의 명성에 홀리거나 그의 마법에 사로잡힌 것처럼 보인다. 왜냐하면 독재자는 홀몸이며, 자신에게 주어진 고유한 특권에 집착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이러한 신비로운 특성을 도외시하면 그는 비인간적이고 잔혹하지 않는가?” - 에티엔느 드 라 보에티, 박설호 옮김, 『자발적 복종』, 울력, 2004. 14-15쪽.

1987년을 거리에서 보낸 어린 시절, 그것이 나만의 경험일리 없으리라 믿으면서 입을 열어본다. 내가 처음 광주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된 시초가 어디에 있는지 잘 알지 못한다. 마치 태어나면서부터 궁금하게 여겼던 것이 아닐까 싶을 만큼 광주는 세상에 대한 내 호기심의 첫걸음마였다. 1980년 5월의 어느 날, 당시 초등학교 4학년이었던 나는 한양대학교 병원에  입원해 있는 담임 선생님의 병문안을 위해 몇몇 급우들과 버스에 올랐다. 아이들과 우왕좌왕하며 버스에서 내릴 정거장을 기웃거리며 창 밖을 내다보다 드디어 다리 건너 저 멀리 우리가 가야할 대학병원 건물이 보이기 시작했다. 누구랄 것도 없이 우르르 버스에서 내려 병원으로 향하는 길목에서 내가 발견한 것이 무엇이었을까.

대학병원 입구에는 군용 장갑차와 완전무장한 군인들이 기관총에 손을 얹은 채 날카로운 시선으로 거리를 쏘아보고 있었다. 민방위 훈련 사이렌이 울린 것도 아니고, 간첩이, 미그기가 귀순한 것도 아니었다. 따사로운 봄 햇살이 나른할 만큼 평온한 일상이었고, 거리엔 버스와 자동차들이 유유히 지나다니고 있었다. 그러나 대학병원 건물 앞에서 내가 마주 본 군인들은 무서웠다. 국군의 날 TV에서 방영해주던 군인들의 퍼레이드 광경이 아니었고, 휴전선 155마일을 지키는 국군 형님에게 보내던 위문편지로 상상하던 그들이 아니었다. 형용사 살풍경(殺風景)하다의 그런 살풍경까지는 아니어도 호들갑스레 짖고 까불며 뛰어가던 우리들을 나지막하게 만들 정도의 느낌은 철없는 우리들에게도 고스란히 전달되었다. 내가 기억하는 광주의 첫 기억은 MBC나 KBS, <조선일보>의 광주 폭도 뉴스가 아니라 대학병원 건물 입구에 진주해온 계엄군들이었다.

광주에 대한 호기심을 풀 수 있는 기회는 그로부터 몇 년 뒤 내가 중학생이 되고, 그 무렵 열심히 다녔던 천주교회에서 영화 <미션(Mission)> 상영을 빙자해 일본 NHK와 독일 ZDF의 광주 다큐멘터리 비디오 상영회에 참가하면서부터였다. 원래 어른들만 볼 수 있는 것이었는데, 주위가 컴컴해진 것을 기회로 몰래 비집고 들어가 한 자리를 차지했다. 충격이었다. 광주가 진압당한 뒤 도청을 청소하는 계엄군이 양동이 물을 계단으로 퍼붓자 시뻘건 핏물이 계단을 타고 흘러내려왔고, 죽은 시민군 병사의 양 다리를 거꾸로 잡고 계단으로 질질 끌고 내려올 때 시민 전사의 뒷머리가 계단을 찧으며 딸려 내려오는 광경은 지금 돌이켜 생각해보아도 가슴 저 밑에서 솟아오르는 분노를 참을 수 없게 했다.

천주교회에서 상영한 광주 다큐멘터리 비디오가 내게는 이른바 ‘의식화’의 첫 걸음이었다. 어려서 살던 동네 인근에는 특수전사령부(특전사)가 위치해 있었다. 같은 반 급우의 아버지들 가운데는 특전사 하사관들도 꽤 많았는데, 사령부 옆 군인 아파트에 살고 있는 친구들 집에 놀러갔다가 우연치 않게 친구 아버지들과 마주치게 될 때도 간혹 있었다. 그 비디오를 보고 난 뒤엔 구릿빛 얼굴에 검정 베레모를 쓰고 들어서는 친구 아버지를 맞닥뜨리는 일은 친구 집에 놀러갔다가 친구 아버지를 만나는 일과 완전히 다른 느낌이었다. 시일이 좀더 흐른 뒤에야 친구의 아버지들 가운데 몇몇은 정신질환을 앓는다는 걸 알게 되었고, 그로부터 이 마음의 울렁증이 슬픔으로 바뀌게 되었다.

‘광주사태’가 ‘5.18 광주민주화운동’으로 바뀌는 것은 단순히 용어와 명칭의 변경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것은 세계관의 변경을 요구했다. 어느 방송, 어느 신문, 어느 선생님도 우리에게 광주의 제대로 된 진실을 이야기해주지 않던 시대, 나 홀로, 아니 드물게 만나는 몇몇 친구들만이 진실을 알고 있었고, 그들과 비밀스럽게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우리는 소년 특유의 호기심과 친밀함 - 세상의 비밀을 공유하는 의식 - 을 나눌 수 있었다. 아마도 그것이 우리들이 가진 그릇된 낙관의 시초였을 것이다. 우리는 남들도 우리와 같을 것이라고 손쉽게 단정지었다. 세상이 진실을 은폐하고 있기에 지금의 악이 드러내놓고 선을 가장하여 우리를 통치할 수 있는 것이라고 손쉽게 낙관했다. 진실이 모두에게 알려지면 흡혈귀가 밝은 햇빛을 견딜 수 없는 것처럼 우리들을 둘러싸고 있는 공포와 억압의 존재들 역시 한 줌의 재가 되어 사라질 것이라고 믿었다.

그 같은 낙관을 더욱 강화해준 것은 6월 항쟁이었다. 6월 항쟁을 경험한 뒤, 집권세력의 항복 선언이라며 ‘6.29선언’이 가져올 후폭풍에 대한 예측을 지나치게 축소했다. 그렇게 87년 12월 대선이 치러졌다. 재야 운동의 원로들은 우왕좌왕 갈피를 잡지 못했고, 두 야당 후보들은 끝끝내 후보단일화에 실패하면서 잠시 열렸던 하늘은 순식간에 봉합되고 말았다. 우리는 길 위에서 길을 잃었다. 진실은 여전히 대중에게 은폐되어 있었는지 모른다. 그 뒤 20년 세월이 흐른 뒤 나는 ‘자발적 복종’을 뼈에 사무치는 느낌으로 읽었다. 조세희 선생은 1987년 12월 대선의 그 날을 ‘악이 드러내놓고 선을 가장하고, 선이 악에게 패배한 날’로 불렀다.  20년 전 명동성당 시위를 마무리 짓는 비참한 현장에서 나는 두 가지 깨달음을 얻었다.

첫째. 진실을 깨우치게 된다고 해서 누구나 자신의 삶과 안위를 떨치고 일어나 진실을 바로 세우는 일에 동참하게 되는 것은 아니란 것이었다. 다시 말해 세상은 보이는 것과 다른 이면을 가지고 있으며 자신에게 직접적인 해가 되거나 이득이 되는 일이 아닐 때 사람들은 그것을 자신의 일처럼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둘째. 이 싸움은 내가 평생을 전력투구한다 할지라도 도달할 수 없을지 모르는 목표를 향한 투쟁이 될 것이란 깨우침이었다. 진보란 축적되는 것이 아니라 언제나 새롭게 시작하는 것이다. 진보란 당대의 현실을 고민하고, 모순을 극복하기 위한 투쟁을 말한다. 그러므로 진보는 언제나 현실을 토대로 미래를 상상하는 것이다.

라 보에티는 “세상에서 가장 두려운 것은 우리를 은밀하게 노예로 만드는 유혹”이라고 말한다. 폭력으로 통치하는 방법은 도리어 겁날 것이 없다. 눈에 띄는 억압은 그만큼 명백하기 때문이다. 가장 두려운 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 유혹이다. 『자발적 복종』은 라 보에티가 20년 전의 내 나이 때 쓴 얄팍한 에세이다. 라 보에티 이후 스피노자, 마르크스와 그람시, 알튀세르, 푸코가 라 보에티의 뒤를 이어 어째서 “인민들이 마땅히 느껴야 할 고통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태도이다. 실제로 인민들은 폭정을 묵묵히 참고 견디는 것을 당연하다고 여기고, 이를 자연스러운 일”이라고 여기게 되는지 밝혀내기 위해 노력했다.

그의 절친한 친구였던 몽테뉴는 1563년 라 보에티(La Boetie)가 사망한 후로 오랫동안 슬픔에 잠겨 있었다. 그러나 몽테뉴는 라 보에티의 『자발적 복종』을 그의 저서가 아니라고 여러 차례 부인했고, 다른 판본의 존재를 시사하기도 했다. 라 보에티가 급진적이어서 그랬을 수도 있고, 종교적 불관용의 시대를 살았던 몽테뉴의 입장에서 라 보에티의 입장이 또 다른 교조주의와 불관용으로 흐르게 될지도 모른다고 염려했을지 모른다. 어쨌거나 영화 <매트릭스(Matrix)>에서 배신자 ‘사이퍼(Cypher)’는 매트릭스가 하이퍼 리얼리티 공간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이미 깨우친 존재였다. 그럼에도 그는 동료들을 모두 살해한 뒤 매트릭스로 복귀하길 희망했다. 이제 낡아버린 진실은 아무런 힘도 갖지 못한다. 은밀한 독재자가 드러내놓고 우리를 핍박하지만 않는다면 우리는 기꺼이 영혼을 바쳐 속아줄 용의도, 각오도 되어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알튀세르는 "나는 지성의 회의주의와 의지의 낙관주의라는 그람시가 인용한 소렐의 말에 결코 찬성하지 않는다. 나는 역사에서 의지주의를 믿지 않는다. 그 대신 나는 지성의 명철함을 믿으며, 또 지성에 대한 대중운동들의 우위를 믿는다. 이러한 우위 덕분에 지성은 대중운동들과 함께하며, 나아가 무엇보다도 대중운동들이 지나간 과오들을 다시 범하는 것을 막을 수 있는 것이다. 어쨌든 대중운동들이 역사의 진행방향을 바꾸는 것을 지성이 돕는다는 약간의 희망을 품을 수 있다면, 그것은 이 점에서 그렇고 또 이 점에서 그럴 뿐이다."라고 말했는지 모르겠다. 약간의 희망을 품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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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바람구두 windsho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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