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정일'에 해당되는 글 2건

  1. 2010.11.08 시를 읽는 이유
  2. 2010.10.30 장정일 - 충남당진여자

장정일은 책을 내는 자신을 일컬어 '위조지폐범'이라고 말했다. 8,900원 하는 책 한 권을 내면 인세 10%를 받으니 자신은 890원짜리 지폐를 발행하는 존재라는 것이다. 읽고 보니 맞는 말이라 피식 웃었다. 한국은행이 지불을 보증한 한국은행권의 액면 가치로 환산되긴 하지만 그는 분명히 책 한 권당 890원어치의 가치, 화폐 가치와는 다른 가치를 창출해내는 위조지폐범이다.  

얼마전 누군가 나에게 '왜 시를 읽느냐'고 질문한 적이 있었는데 그때는 그저 '글쎄'라고 답했지만 오늘 최영미 시인의 신작 시집 "도착하지 않은 삶"을 읽으며 마음에 드는 시에 포스트잇을 가만히 붙여 나가다가 문득 떠오른 생각이 있었다. 어쩌면 나는 강태공이 곧은 바늘로 세월을 낚듯 그렇게 시의 바다에 낚싯대를 드리운 어부처럼 앉아 있다는 것이다.  

정권이 바뀌기 전에도 나는 세상에 온통 절망하고 있었다. 솔직히 나는 MB가 노무현보다 더 나쁜 놈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나는 노무현이 이라크에 한국군을 파병한다고 했을 때 사진 속 이라크 소녀를 보며 대성통곡을 한 적이 있다. 나 스스로도 놀랄 만큼 크게 울었기 때문에 내 눈물의 의미가 대관절 무엇을 뜻하는지 내 스스로도 놀랄 만큼 큰 울음이었다. 그렇게라도 울지 않고서는 내 마음이, 내 양심이 견딜 수 없을 만큼 아팠기 때문이리라.  

며칠 전 누군가에게 그 경험을 이야기하며 남을 위해 많이 울라고 충고해준 적이 있다. 남을 위해 우는 눈물이 사실은 자기를 구원해주는 눈물이라고 말이다. 그것이 비록 악어의 눈물 같은 것일지라도... 울지 않고 잘 참아내는 잘난 인간보다 우는 인간이 차라리 덜 비루하다. 어떤 사람은 그렇게 말할지도 모른다. 지난 해 촛불시위 때 거리에 나설 때마다 주변 사람들에게 간혹 듣던 이야기다. 지금은 정권 초반이라 촛불을 들어도 안 될 거라는 식의 비판, 촛불을 들고 그저 거리를 배회한다고 해서 세상이 어떻게 되진 않을 거라는 답답함. 

왜 시를 읽느냐? 그건 지난 촛불시위에 나갈 때 사람들에게 해준 말과 별반 다르지 않은 이유에서다. 시를 읽는 시간에 내가 다른 어떤 일을 한다면 그보다 더 세월을 잘 보낼 수 있겠냐고?  "시란 어둠을 어둠대로 쓰면서 어둠을 수정하는 것"이라던 김지하의 시에 대한 정의에 내가 감복한 이유다. 시의 바다에서 마음에 드는 시 한 편을 낚는 시간이 남들 보기엔 한가롭고, 무료하게 보일지 몰라도 나는 나 나름대로 어둠을 어둠이라 말하면서 내 안의 어둠을 치유하려고 노력하는 중이다. "쓰면서 저도 몰래 햇살을 이끄는 일"이라지 않는가...  

어쩌면 나는 그 안에서 한국은행이 발행한 가치 이외의 다른 가치를 찾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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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바람구두 windshoes

충남당진여자  

- 장정일

어디에 갔을까 충남 당진여자
나를 범하고 나를 버린 여자
스물 세 해째 방어한 동정을 빼앗고 매독을 선사한
충남 당진여자 나는 너를 미워해야겠네
발전소 같은 정열로 나를 남자로 만들어 준
그녀를 나는 미워하지 못하겠네
충남 당진여자 나의 소원은 처음 잔 여자와 결혼하는 것
평생 나의 소원은 처음 안은 여자와 평생 동안 사는 것
헤어지지 않고 사는 것
처음 입술 비빈 여자와 공들여 아이를 낳고
처음 입술 비빈 여자가 내 팔뚝에 안겨 주는 첫딸 이름을
지어 주는 것 그것이 내 평생 동안의 나의 소원
그러나 너는 달아나 버렸지 나는 질 나쁜 여자예요
택시를 타고 달아나 버렸지 나를 찾지 마세요
노란 택시를 타고 사라져 버렸지 빨개진 눈으로
뒤꽁무늬에 달린 택시 번호라도 외워 둘 걸 그랬다
어디에 숨었니 충남 당진여자 내가 나누어 준 타액 한 점을
작은 입술에 묻힌 채 어디에 즐거워 웃음짓니
남자와 여자가 만나면 두 사람이 누울 자리는 필요없다고
후후 웃던 충남 당진여자 어린 시절엔
발전소 근처 동네에 살았다고 깔깔대던 충남당진 여자
그래서일까 꿈속에 나타나는 당진 화력 발전소
화력기 속에 무섭게 타오르는 석탄처럼 까만
여자 얼굴 충남 당진여자 얼굴 그 얼굴같이
둥근 전등 아래 나는 서 있다 후회로 우뚝섰다
사실은 내가 바랐던 것 그녀가 달아나 주길 내심으로 원했던 것
충남 당진여자 희미한 선술집 전등 아래
파리똥이 주근깨처럼 들러붙은 전등 아래 서있다
그러면 네가 버린 게 아니고 내가 버린 것인가
아니면 내심으로 서로를 버린 건가 경우는 왜 그렇고
1960년산 우리세대의 인연은 어찌 이 모양일까
만리장성을 쌓은 충남 당진여자와의 사랑은
지저분한 한편 시가 되어 사람들의 심심거리로 떠돌고
천지간에 떠돌다가 소문은 어느 날 당진여자 솜털 보송한
귀에도 들어가서 그 당진여자 피식 웃고
다시 소문은 미래의 내 약혼녀 귀에도 들어가
그 여자 예뻤어요 어땠어요 나지막이 물어오면
사랑이여 나는 그만 아득해질 것이다 충남 당진여자
이름이 떠오르지 않는


*

장정일의 이 시를 처음 접했을 때, 나는 솔직히 강한 충동을 느꼈다. 충남 당진 여자와 자 보고 싶다는... 보다 엄밀하게 말하자면 충남 당진 여자와 섹스를 하고 싶어졌다는 뜻일까. 장정일은 23살에 첫 동정을 잃었던 모양이다. 시적인 허구라고 해도 상관없다(난 그냥 그렇게 느낄 테니까....).

"나의 소원은 처음 잔 여자와 결혼하는 것
평생 나의 소원은 처음 안은 여자와 평생 동안 사는 것
헤어지지 않고 사는 것" 이라는 장정일의 순수한 욕망을 품었던 주변의 친구들을 알고 있다. 내가 주변의 친구들을 팔아 먹는 까닭은 내가 그들의 식습관을 알듯이 그들의 개인적이고 내밀한 "성의 역사(미셸 푸코와는 전혀 상관없는)" 몇 가지를 알고 있기 때문이다.

몇몇 녀석들은 정말 저리도 순수한 욕망과 갈망으로 처음 안은 여자와 평생 살고 그들과 가시버시해가며 알콩달콩 살겠다는 욕망을 품었다. 첫 섹스의 허무함을 깨우치기 전까진.... 첫 섹스 이후 성기에 피막이 벗겨지는 식의 표식이 남았으면 좋겠다. 싸구려 밀주 위스키와 고급 양주를 구별해주는 표식처럼 한 번 뚜껑을 따면 다시는 속일 수 없게 귀두(龜頭, 거북이 대가리라니 정말 좆대가리에 비유 한 번 그럴 듯하다)에 얇은 홀로그램 피막을 입히는 것이다.

아마 남성의 첫 섹스에 남는 추억 혹은 상흔이 여성의 처녀막과 같은 그런 파열의 흔적이었다면 인류의 역사는 보다 다른 방식으로 전개되었을지도 모르겠다. 가령 중세 십자군 원정을 떠나는 총각 아들에게 어머니가 채워주는 정조대 같은 것이 개발되지 않았을까? 이교도 여성들에게 동정을 헌납하지 말라는 기독교도 어머니의 독실한 신심 같은 것은 개발되었으면 훨씬 더 좋았을 텐데 말이다.

장정일의 이 시는 남성성의 시다. 좀더 거칠게 말하자면 남성의 성 판타지를 강하게 충족시켜 주는 혹은 그것을 자극하는 시다. 남자들은 팜므파탈의 환상을 만들어내지만 동시에 팜므파탈에게 정복당하는 환상을 가지고 있다. 아니라고? 최소한 난 그렇다.(그런데 아직까지 내가 만난 여자들 중에서는 최소한 나보다 사악한 사람들이 없어서 여태 정복이라곤 모르고 산다. 어허, 그걸 믿냐?)

시의 전반부에서는 착한 남성의 전설이 등장한다. 처음 잔 여자와 평생 해로하고 싶다는... 순진남.... 얼마전 일본인 필자의 책 <성은 환상이다>를 읽으며 본의 아니게 한.일 남성들의 뿌리 깊은 여성관 - 보다 정확히 하자면 "따 먹을 때 가장 맛있는 여자"에 대한 편견 - 을 알게 되었는데 그것은 한국과 일본에 거의 동시에 널리 유포되어 있는 유언비어성 속담 같은 것이다. 가장 맛나는(여성은 종종 정복의 대상에서 '먹을거리'로 전환된다. 카니발리즘의 대상으로서의 여성, 인류는 원래 모두가 식인종이었던 것이다.)여자에 순위를 매겨 두고 있다. 기억은 정확치 않지만 확실한 것은 하나였다. "가장 맛없는 여자는 자기 여자!"라는 것이다.

익숙한 성관계가 편하고 좋은 장점도 있겠지만 남성의 성 판타지는 기본적으로 expedition, invasion, campaign, playing tour다. 그런데 이런 식의 성관념은 역으로 여성에게는 해당되지 않는다. 아, 그러니까 일반적인 현모양처들 말이다. 다시 말하면 내가 데리고 살 여자. 더 쉽게 말해서 내 마누라는 절대 그런 여자면 안 된다는 것이다. 남성 동맹들끼리 통용되다가 결국 여성들에게도 알려지고만(도대체 어떤 빙충이 새끼가 남성동맹의 철통 같은 묵계를 깨고 일러바친 건지 참 잘했다. 흐흐) 데리고 놀 여자와 가지고 살 여자의 차이가 거기서 발생한다.

남의 여자는 잘 놀아주고, 헤퍼야 예쁘고, 내 여자는 다른 남자들을 돌 같이 보고, 철통 정조라야 예쁘다는 법칙 말이다. 충남 당진 여자는 그런 여자다. 그녀는 스스로를 일컬어 "질 나쁜 여자"라고 말한다. 그녀가 그렇게 말해야 하는 이유는 뒤이어 나온다. 그녀는 "발전소 같은 정열"을 지녔고, "남자와 여자가 만나면 두 사람이 누울 자리는 필요없다"고 말하는 당찬 당진 여자다. 나를 남자로 만들어준 당진 여자라니... 섹스 한 번 하고 나면 이미 남자도 다시 남자가 된다? 흐흐. 그러나 장정일의 이 시가 좋은 것은 솔직하다 못해 발칙할 정도의 정직함에 있다. "사실은 내가 바랐던 것 그녀가 달아나 주길 내심으로 원했던 것"이라고 말한다.

"만리장성을 쌓은 충남 당진여자와의 사랑은/ 지저분한 한편 시가 되어 사람들의 심심거리로 떠돌고"

그는 자기 자신조차 희화화하고 있다. 이 시의 멋진 점은 이것이다. 최소한 장정일은 앞으로는 근엄한 표정을 짓고, 뒤로는 호박씨 까는 바람구두스러운 놈은 아니다. 흐흐.(이럴 때 이 웃음이 지닌 효용가치는 엄청나다. 왜? 해석하기 어려우므로...) 어쨌든 1960년산 장정일의 만리장성은 그렇다치고... 1970년산인 나의 하룻밤 만리장성도 예정에 없었던 것은 사실이다. 하여간에 지금 나는 본적만 놓고 보자면 충남 당진 여자랑 살고 있으니 복 받은 것이다. 화력발전소가 아니라 수력발전소라 약간 아쉽다. 흐흐. (요건 조크다. 조크.... 확대해석하는 건 자유지만 울마눌에게 이르진 마라. 죽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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