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군기자와 전선기자의 차이


처음엔 그저 "정문태 선생"이라고 하자. 내가 처음 그를 불렀던 호칭이 그러했으니 리뷰를 올린다 하더라도 역시 처음 불렀던 호칭 "선생"을 빼는 것도 이상할 듯 싶다. 나는 그와 몇 년 전 전화통화로 그리고, 이 메일을 통해 만난 적이 있다. 내가 몸담고 있는 지면에 특집으로 "전쟁없는 21세기를 위하여"를 기획하며 그의 글을 싣고자 했으나 상황이 여의치 않아 그의 사진들과 그에 담긴 사연을 글로 적는 일종의 "포토에세이" 형태의 글로 급하게 전환하게 되었다. 그 과정에서 나는 정문태 선생의 깐깐함이랄까, 고집스러움이라는 일종의 자기 검열 덕에 일하기는 힘들었지만 마음은 한껏 고양되는 경험을 했다. "포토에세이"라 하면 자동 연상되는 사진작가는 유진 스미스다. 다큐멘터리 사진을 예술의 경지로 승화시켰다는 평가를 받는 유진 스미스는 매우 고집불통의 사내였고, 종종 자신을 고용한 언론사들과 마찰을 일으켰다. 그는 알프레드 슈바이처를 취재한 사진을 놓고 "라이프" 편집진과 불화를 일으켜 결국 "라이프"와의 계약을 파기(다른 말로 '쫓겨나는')하기도 했다.

사진이란 기껏해야 하나의 나지막한 목소리일 뿐이다. 그러나 항상 그런 것은 아니더라도 때로는 한 장의 사진이, 또는 여러 장의 사진이 이루는 전체적인 조화가 우리의 감각을 유혹하여 지각으로 매개되는 경우가 생겨난다. 이 모든 것은 바라보는 사람에게 달려 있다. 어떤 사진들은 그것들이 사색을 불러 일으키는 것 같은 느낌을 자아내기도 한다. 이것은 어느 한 개인이나 우리들 중의 많은 사람들에게 이성의 소리를 듣게 만들고, 이성을 올바른 길로 이끌며, 때로는 병을 치료할 수 있는 처방을 찾아내도록 인도해 갈 수도 있다. 다른 사람들은 아마도 생활방식이 그들에게 낯설어 보이는 사람들에 대해서 더 많은 이해와 연민을 느낄 것이다. 사진은 하나의 작은 목소리이다.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사진은 잘 구성하기만 하면 그 소리를 들려줄 수가 있다. - 유진 스미스

우리에게 익숙한 "종군기자"란 표현 대신 정문태는 "전선기자"라는 신조어를 대체어로 들고 나왔다. 이에 대한 정문태의 정의는 "종군"이란 말은 군대에 종속된, 군을 따르는 존재를 의미하고, 이는 다시 "복종한다" 거나 "거역하지 않는다"는 의미를 지니므로 의미이므로 자율성이나 독립성을 생명으로 삼아야 할 기자가 영원히 군대에 복속당한 존재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단어 하나에도 집착하는 그의 이런 고집스러움과 자기 검열 과정이 지금의 정문태를 있게 한다. "전선기자 정문태!" 그것이 이 책의 제목이라면 이 책의 부제는 "전쟁 취재 16년의 기록"이 될 것이다. 개정 헌법에 의해 우리나라 대통령 임기가 5년 단임제로 규정되었으니 그가 전선을 누빈 16년 성상(星霜)에 대통령이 세 번 이상 교체되었다. 노태우에서 김영삼, 김대중을 거쳐 노무현에 이르는 시간은 한국뿐만 아니라 세계적 격변의 시간이었다.

정문태가 경험한 20세기의 전쟁, 학살, 분쟁

20세기의 전쟁사를 나는 시기적으로, 역사적인 의미에서 3단계로 구분하고 있다. 하나는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두 차례의 세계대전을 하나로 묶어 파악한다. 제1차 세계대전의 주전장은 유럽이었고, 이 기간동안 유럽은 그야말로 한 세대가 전멸해버리는 전쟁을 체험한다. 그리고 잠시의 휴식기를 거쳐 인류는 다시 제2차 세계대전을 치른다. 혹자에 따라 이에 대한 평가나 규정이 다를 수 있겠으나 나는 이 두 번의 세계대전은 크게 보아 하나의 전쟁으로 생각한다. 잠시 휴식기를 거쳤을 뿐 제1차 세계대전 이후의 세계는 뒤이어 벌어질 전쟁을 예비하고 있었다. 그 이유는 제1차 세계대전이 벌어진 원인이 소멸되지 않았을 뿐더러 전후 처리 과정에서 다음 전쟁을 위한 뇌관을 고스란히 남겨두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20세기 인류사에서 벌어진 세계대전은 1914년 7월 28일에 벌어져 1945년 8월 15일에 끝난 30년 전쟁이었다. 세계대전의 원인은 유럽 중심의 세계통합 과정에서 소외된 신흥공업국들과 왕조 중심의 유럽 정치 질서의 붕괴라는 과도기 속에 자각하기 시작한 민족주의 의식이 맞붙으면서 세계대전으로 발전하게 된 것이다. 이 과정에서 미국은 자체의 식민지라 할 수 있는 라틴 아메리카에 대한 유럽의 간섭을 배제하며 힘을 축적해왔고, 유럽 내부의 충돌로 말미암은 몰락과정에서 유럽이 차지하고 있던 세계패권을 차지한 것이다.

두 번째 단계는 오랫동안 간접적으로 혹은 직접적이라 할지라도 힘의 일정한 비축을 전제로 한 참여를 통해 유럽의 질서를 조율해 오던 대영제국이 세계대전에 직접 참여하고, 전력투구한 결과 유럽 중심의 세계질서는 급격히 붕괴하는 과정에서 벌어진다. 이런 힘의 공백은 그간 유럽의 직접적인 통치 아래 놓여 있던 피식민지 민족의 민족적 자각과 맞물려 식민질서에 거대한 균열을 일으키고, 더이상 식민지를 직접 운영할 수 없게 된 유럽의 힘이 물러가는 틈새에서 수많은 전쟁, 분쟁, 내전이라 이름 붙일 수 있는 폭력상황들이 발생한다. 우리가 직접 당사자였던 한국전쟁, 베트남전쟁과 같은 국지전, 제한전쟁, 냉전의 이해당사자인 동서의 대리전 양상을 띤 열전들이 그것이다. 유럽의 패권이 밀려난 상황에서 그 힘의 공백을 둘러싼 각축에서 민족과 종교, 지역 등 복잡한 이해관계를 지닌 집단들을 선정해 동서 양대 진영의 이념적, 동지적 지원을 통해 전쟁을 치렀다.

세 번째 단계는 미국이 주도하는 군비경쟁의 하중을 견디지 못하고 붕괴한 소련과 동구 사회주의 국가들의 해체 이후 일어난 힘의 공백 속에 주도권 다툼을 통해 벌어진 내전들이 될 것이다. 이 전쟁들은 모두 서로 밀접한 인과율 속에서 때로는 우연처럼, 때로는 필연처럼 서로 긴밀한 연관을 지닌다.

정문태가 목숨을 걸고 전선을 누빈 지난 16년의 역사는 바로 이 세 번째 단계의 전쟁들이었다. 나는 그가 40여 곳의 분쟁 혹은 전선의 현장을 다녔다는 사실에 다시 한 번 깜짝 놀랐다. 그렇게 많은 곳이 현재 전쟁 상황인지 미처 몰랐기 때문이다. 그러고 보니 예전에 부록으로 "세계분쟁지도"를 만든 기억이 나서 다시 그 지도를 펼쳐보았다. 세계대전 이후 세계에 많은 신생국가들이 생겨난 것처럼 소련의 해체 이후에도 마치 도미노처럼 수많은 신생독립국가들이 생겨났거나 만들기 위한 전쟁이 일어났었다. 지난 90년대 이후 현재까지 발생한 분쟁 지역만 하더라도 "멕시코(사파티스타), 과테말라, 엘살바도르, 니카라과, 아이티, 콜롬비아, 페루, 파푸아뉴기니, 티모르, 아체, 캄보디아, 버마, 스리랑카, 카슈미르, 펀잡, 타지키스탄, 아프가니스탄, 아제르바이젠, 체첸, 쿠르드, 그루지아, 몰도바, 키프로스, 보스니아, 크로아티아, 얼스터, 이라크 시아파, 팔레스타인, 쿠웨이트, 예멘, 소말리아, 알제리 투아레그, 차드, 서부 사하라, 카사망스, 시에라리온, 라이베리아, 토고, 앙골라, 르완다, 수단, 에리트레아, 모잠비크" 등이다. 아메리카 대륙으로부터 아프리카에 이르는 지구상 전 지역에서 연일 수많은 사람들이 전쟁과 학살의 공포 속에서 살았다.
90년대 이후라고는 했으나 이들 지역에서 분쟁이 일어난 원인과 전개 과정을 살펴보면 이런 분쟁의 첫 번째 단계, 두 번째 단계의 전쟁들과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첫 번째 단계의 전쟁인 세계 대전 이후 유럽이 누린 평화는 그들이 오늘날 누리는 풍요와 복지의 혜택은 이렇듯 그들이 뿌려낸 원죄의 씨앗을 미국이 지원하고, 발아시켜 타지역에서 대신 추수하는 덕에 누리는 것들이다.

20세기 후반의 국지전들
- 피, 학살, 인종청소 그리고 미국


이 책은 모두 6개의 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제1장 "전선의 꽃, 전선의 부랑아들"은 그의 기자관, 취재관을 엿볼 수 있는 것들이다. 종군기자의 의미와 그가 어째서 전선기자라는 신조어를 사용하고 있는가, 자신이 어째서 목숨의 위협을 받으며 취재해야 하는 어려운 직업을 갖게 되었는지 소개하고 있다. 이 장에서 우리는 정문태 자신이 스스로가 일반에게 영웅시될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얼마나 경계(자기검열)하고 있는지 잘 살필 수 있다. "혈액형 G의 논리"에서 그는 스스로 고백하길 "여행지"로서 전선을 택했고, 그렇게 한 번 두 번 전선에 머물면서 "전선 중독" 현상이 나타났다고 고백한다.

피를 본 전선이 다시 그 피를 그리워하게 만드는, 내게 숨어있던 들짐승과 같은 속성이 드러났다. 전선에서 느끼는 공포, 분노, 전율 같은 격렬한 감정은 이 세상 어디에서도 경험할 수 없는 극단적인 쾌감으로 다가왔다. <본문 20-21쪽>

만약 그가 기자가 아니라 직업군인이었다면 이것은 일종의 전후증후군으로서 치료를 필요로 하는 일인지도 모르겠다. 오랫동안 전장을 누빈 병사가 평화로운 고향으로 돌아왔을 때, 모든 것이 평온하고 일상의 생활이 전혀 변함없이 돌아가고 있을 때, 전역한 병사는 이것을 평온이나 평화로 느끼지 못하고 이 모든 것을 거짓으로 느낀다고 한다. 그러나 그는 병사가 아니라 기자였다.

그러나 전선이 무엇보다 나를 사로잡았던 건 '역사적 현장에 내가 서 있다'는 스스로에 대한 자부심 같은 게 아니었던가 싶다. 그 역사가 굴러가는 현장을 내 눈으로 직접 바라볼 수 있는 대가로 나는 죽어도 좋다고 생각했던 적이 많다. 사람들이 사지로부터 빠져나오는 전선을 거꾸러 기어들어면서 나는 늘 내 존재를 역사 속에 집어넣었다. 그게 나를 위로하기 위한 방법이었는지 아니면 어떤 착각이었는지는 분명치 않지만. <본문 21쪽>

나머지 5개 장은 그가 실제로 경험한 전장의 기록들이다. 일부는 이미 다른 책이나 기사를 통해(나 역시 이 책에서 공개되지 않은 나머지 몇몇 사진들도 볼 수 있는 드문 경험을 하긴 했지만) 공개된 적이 있는 것들이다. 첫 경험이란 누구에게나 소중한 것이다. 그에게 "버마학생민주전선"의 경험이 그렇다. 그는 이 책의 2장 "나의 혁명, 나의 해방구"를 통해 버마의 마너플라우에서 경험한 학생 전사들과의 인연을 다소 감상적이기까지 한 필치로 회고하고 있다.

매복병에게 걸려 나자빠진 5분여, 나는 인생을 스무 바퀴도 더 돌고 돌았지만 그래도 시간이 남았다. 지루했다. 극적인 순간에 사랑하는 이들을 곧잘 떠올리곤 하던 영화나 소설도 내것이 아니었다. 내 거친 숨소리를 내가 들으며, 내가 의지적으로 생각할 수 있었던 건 오직 내 뇌가 정상인가 아닌가 의심해 보는 일뿐이었다. <본문 75쪽>

나는 이 책을 통해 앞서 말했던 20세기 전쟁사의 후반부를 조합해 볼 수 있었다. 3장 "끝없는 전쟁"에서는 동서양의 중요 교통로로 탈라스 전투를 이끌었던 고선지도, 인도로 가는 길을 걸었을 혜초도 머물렀을 발자취가 남은 아프가니스탄을 다룬다. 중요한 길목이란 하나의 이유로 역사상 수없이 많은 외침과 내분을 겪고 있는 아프가니스탄의 20세기 막바지, 21세기 초엽의 지배자는 미국이다. 그는 이를 다소 낭만적인 표현을 빌어 "아프가니스탄의 천년전쟁"이라 말하고 있으나 천지사방이 지뢰밭이자 클러스터 폭탄(집속탄)의 불발탄들 때문에 놀 곳이 없어 공동묘지에서 뛰어 놀다 탈리반에게 학살당한 꼬마 천사들에겐 잠시 머물다간 지상의 지옥이었을 것이다. 그외에도 남과 북이 이념으로 갈라져 있다가 1국 2체제의 형태로 잠시 통일되었던 남북예멘이 결국 잠시의 통일 기간을 거쳐 다시 전쟁으로 불거진 예멘 전쟁, 카슈미르 분쟁을 다루고 있는 제4장 "멀고 먼 전선"이 주는 교훈은 1국 2체제의 통일방안을 모색하고 있는 우리에게도 큰 교훈이다.

제5장 "비밀전쟁" 편에서 그는 20세기 후반기에 일어난 분쟁의 숨은 얼굴들을 드러낸다. 그것은 유럽을 대신해 새로운 전쟁의 씨앗을 뿌리고 가꾼 세계 유일의 초강대국 미국의 얼굴이다. 그는 "끝나지 않은 전쟁, 미국의 라오스 침공"이란 해묵은 과제들을 끄집어 낸다. 그리고 노벨평화상 수상자이자 세계적 석학으로 우리에게도 낯익은 한 인물을 호명한다. 그는 바로 닉슨 행정부 시절 대통령보좌관 겸 미국국가안전보장회의 사무국장을 역임한 헨리 키신저였다. 그는 취임 이후 국무부의 통상적인 외교경로를 무시하고, 이른바 ‘키신저외교’를 전개한 것으로도 유명한데, 그의 이런 비밀 외교는 닉슨의 중국 방문을 성사시키며 성과를 높였다. 그러나 키신저의 비밀 외교가 늘 평화로왔던 것만은 아니다. 일찌기 나치의 유대인 박해를 피해 미국으로 이주한 뒤 전술핵무기의 한정적 사용을 주장했던 그 답게 키신저는 베트남 전쟁의 배후 기지로 라오스와 캄보디아를 지목하고 이들 지역에 대한 폭격을 국회의 승인도 없이 비밀리에 실시했다.

우리가 시드니 쉔버그와 디스 프란 사이의 감동적인 우정으로 기억하는 킬링 필드의 실제 주역은 바로 헨리 키신저와 닉슨 행정부였다. 그들은 라오스에 1964년부터 1973년에 이르는 기간 동안 200만 톤에 이르는 각종 폭탄 700만 개를 라오스 상공에 투하했다. 당시 라오스 총인구는 400만명이었으니 경제학자들이 좋아하는 통계 방식을 빌자면 국민 1인당 1.75개의 폭탄 0.5톤씩을 선사한 것이다. 참고로 미국이 한국 전쟁 당시 사용한 폭탄의 총량은 49만 5천톤, 제2차 세계대전 때 일본군 공격에 사용한 폭탄이 65만 6천 톤이었다. 라오스에 대한 비밀 폭격은 1973년에 끝났지만, 라오스에서는 오늘도 아이들이 죽어간다. 당시 미군이 뿌린 폭탄의 저주들이 거듭거듭 자라나는 씨앗들을 거두어 가고 있는 것이다. 그렇기에 정문태는  전세계 언론 가운데 어디에서도 주목하지 않는 라오스의 비밀 전쟁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고 말한다.

캄보디아. 우리는 캄보디아에 대해 두 가지 이미지를 갖고 있다. 왕가위의 영화 "화양연화"로 우리에게 새삼스레 주목받게 된 "앙코르 와트" 유적과 크메르 루주에 의한 대량 학살을 지칭하는 "킬링 필드". 미국은 롤랑 조페의 감동적인 영화 "킬링 필드"를 전세계에 내보내면서 캄보디아에서 그들이 행한 잔혹한 폭격의 진구렁에서 살짝 비껴가고 싶어한다. 무려 200만 명이 학살당한 것으로 알려진 캄보디아 대학살은 2단계에 걸쳐 이루어졌다. 제1기인 1969년에서 73년 동안 미국의 폭격으로 60만에서 80만의 캄보디아 민간인들이 죽었고, 제2기인 1975년에서 1979년 사이에 크메르 루주에 의해 자행된 것이다. 만약 책임을 따지자면 미국 역시 전범재판에 회부되어야 하는 상황임에도 미국은 제2기에 벌어진 학살만을 문제삼는다. 물론 제2기에 벌어진 학살의 원책임을 묻자면 크메르루주의 지도자들에게 있겠지만, 미국의 폭격과 쿠데타 지원으로 말미암은 혼란이 없었다면 정글의 소수 게릴라 세력에 불과했던 크메르루주가 캄보디아 전역을 장악하는 사태는 벌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전쟁보도를 통해 본 언론의 자율성과 독립성

마지막 6장 "가슴에 묻은 이야기들"에서는 그가 첫 정을 주었던 버마의 마너플라우 함락 과정과 버마의 민주화를 위해 총을 들었던 버마의 소수 민족들과 학생들, 그리고 게릴라 지도자들의 최후와 내부 분열이라는 아픈 소식들을 들려준다. 소련의 최정예 군대를 상대로 치열한 전투를 벌이며 "판쉴의 사자"라는 칭호를 얻었던 아프가니스탄의 게릴라 전사 마수드의 암살과 얽힌 의혹들과 그가 추측하는 암살의 배후로 미국을 지목하는 이유를 말한다. 이 책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동티모르 이야기는 목숨을 걸고 역사의 현장을 누볐던 그만이 누릴 수 있는 가슴벅찬 감동이었을지 모르겠다. 무수한 희생을 뒤로 하고 동티모르는 인도네시아로부터 독립을 쟁취하는데 성공했고, 구스마오 동티모르 초대 대통령은 그의 어깨를 어루만져 주었으니 말이다. 그는 기자로서 흘리는 마지막 눈물임을 다짐하며 뜨거운 눈물을 흘렸다.

전선기자가 되었든, 종군기자가 되었든 글을 쓰는 사람들은 누구나 마음속에 칼 한 자루를 지니고 산다. 그 칼은 "장자"의 일화에 등장하는 천민 백정 포정의 칼처럼 뼈와 살을 발라내듯 쓰일 수도 있고, 에밀 졸라의 칼처럼 "나는 고발한다(J'accuse!)"의 거꾸로 흘러가려는 역사의 등뼈를 부러뜨리는 묵직한 칼일 수도 있다. 그러나 누구든 글을 써 세상에 알릴 때는 마음속에 지닌 칼을 꺼내 휘두르는 자객의 심정이 된다. 사마천이 실패한 자객들의 이야기를 사기열전에 포함시킨 것은 아마 그런 뜻일 게다. 정문태가 지니고 휘두르는 칼이 지닌 의미는 무엇일까? 베트남 전쟁을 통해 전쟁의 최고 상층부에 존재하는 이들이 휘두르는 폭력의 실태를 고발한 언론은 이후 군부와 정치, 보수화된 대중의 뭇매라는 반동을 경험한다. 그들은 자본과 검열이라는, 드러나지 않는 제약과 살해의 위협 속에서 더이상 과거의 힘을 보이지 못한다.

CNN은 알 자지라를 이기지 못했다. 그러나 세계 언론에서 헨리 키신저는 여전히 세계적 석학이고, 아흐마드 야신은 여전히 극악한 테러리스트로 포장된다. 베트남전 이후 미국은 본격적인 언론길들이기에 나섰고, 미국 언론은 겉으로는 여전히 최고의 자유를 구가하는 듯 보이나 보이지 않는 검열과 통제에 질식해 버렸다. CNN은 연일 뉴스를 현장에서 보도하지만 진실만큼은 교묘하게 편집한다. 그들은 걸프전의 최첨단 정밀폭탄을 통한 "깨끗한 전쟁"만을 강조하느라 패전 후 후퇴하다 학살당하다시피한 이라크 군대와 오폭으로 숨진 민간인 피해를 눈감아 버린다. 군대의 브리핑을 앵무새처럼 받아 적으며 군대의 뒤를 졸졸 따르며 파나마의 독재자 노리에가의 주방에서 발견한 밀가루를 흔들며 마약을 찾았다고 소리 지르는 미군 병사를 화면 가득 보여준다. 우리는 도덕교과서에서 언론 보도의 자율성과 독립성의 화신으로 "데일리 메일"의 일화를 배웠다. 그들은 전쟁 기간 동안 영국의 대포와 탄환에 불량이 많고, 불발탄이 많다는 보도를 내보냈고, 정부의 경고에도 불구하고 계속 이런 보도를 내보내 결국엔 이를 관철시켰다고 하는 이야기 말이다.

그러나 세상은 보이는 것과는 늘 다른 이면을 갖는다. 내가 알기로 "데일리 메일"은 영국의 보수신문이고, 그들은 1896년 창간 이래 일관되게 보수 논조로 일관해왔다. 1933년 1월 30일 히틀러가 독일 수상이 되고, 2월 27일 밤 베를린 제국의회의사당 화재 사건이 일어난 뒤 나치가 사회주의자들은 물론 유태인까지 체포해 강제수용소로 보내자 그들은 "나치의 젊은 전사들은 공산주의자들로부터 유럽을 지키는 파수꾼이다"라는 기사로 나치에 힘을 실어 주었다. 네덜란드 소년 한스와 아무도 현장에 있지 않았음에도 마치 현장에서 이를 본 듯 전해준 이승복 어린이의 "나는 공산당이 싫어요"란 말처럼 진실은 종종 현실에 압도당해버린다. 연일 쏟아지는 정보의 홍수 속에서 우리는 과연 무엇을 믿을 것인가(정문태의 기사를 국내 신문들이 받아주지 않는 것처럼 이 책을 서평으로 다룬 신문사 역시 "한겨레"뿐이었다) ? 책의 마지막 장을 덮으며 나는 최소한 정문태는 믿을 만하다고 생각했다.

끝으로 사족 한 마디를 더 달고 싶어졌다. 이 책을 읽으며 전쟁보도란 것이 과연 전쟁을 줄일 수 있을까?  전쟁보도로 잔인한 장면이 TV와 매스미디어에 홍수처럼 실리는 일은 과연 우리에게 전쟁을 멈추는데 이바지할 수 있을까? 혹시 그것이 도리어 전쟁을 뭔가 낭만적인 것으로, 타지에서 누군가는 죽지만 나는 살아남았고, 계속 살 수 있다는 즐거움을 선사하는 것은 아닐까? 반문해보게 된다. 이에 대해 수잔 손탁은 "타인의 고통(이후, 2004)"을 바라보면서 연민을 느끼는 행위, 살아남은 혹은 평화롭게 살고 있는 "특권을 누리는 우리와 고통을 받는 그들이 똑같은 지도상에 존재하고 있으며 우리의 특권이 (우리가 상상하고 싶어하지 않는 식으로, 가령 우리의 부가 타인의 궁핍을 수반하는 식으로) 그들의 고통과 연결되어 있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숙고해 보는 것, 그래서 전쟁과 악랄한 정치에 둘러싸인 채 타인에게 연민만을 베풀기를 그만둔다는 것, 바로 이것이야말로 우리의 과제"라고 말한다. 나는 이 말이 우리가 보도를 접하고, 본의 아니게 소비하는 자의 입장에서 지녀야 할 중요한 태도에 대한 말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수잔 손탁의 이 말은 값싸든, 비싸든 "연민"하는 행위, 그 자체를 거부하라는 말이 아니다. 이 말은 바로 "전쟁과 악랄한 정치"를 그대로 둔 채 연민만 보내는 행위의 가증스러움을 거부하라는 말이기 때문이다. "논리 없는 연민""자기 연민"이고, "연민 없는 논리"는 잔인해지기 십상이다.

그러나 연민과 논리를 동시에 지녔으되 행동에 옮기지 않는 것은 비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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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바람구두 windsho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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