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현종'에 해당되는 글 3건

  1. 2011.05.06 정현종 - 말하지 않은 슬픔이
  2. 2010.11.19 정현종 - 떨어져도 튀는 공처럼
  3. 2010.10.28 정현종 - 고통의 축제.2
말하지 않은 슬픔이

- 정현종


말하지 않은 슬픔이 얼마나 많으냐
말하지 않은 분노는 얼마나 많으냐
들리지 않는 한숨은 또 얼마나 많으냐
그런 걸 자세히 헤아릴 수 있다면
지껄이는 모든 말들
지껄이는 모든 입들은
한결 견딜 만하리.

*

정현종 시인의 이 시는 딱 요즘 내 맘 같다.
"당신은 내게 평생 말해도 다 말할 수 없을 거야."라고 오래전 그 사람은 내게 말했었지. 그 말 앞에선 더이상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렇게 많은 말들을 당신에게 할 수 있는 사람이었고, 그대는 들어줄 수도 있는 사람이었겠지만 더이상 듣지 않겠노라는 그 완강한 선언 앞에 말은 시들어버렸다. 말하지 못한 것과 말하지 않은 것 사이엔 도도한 강물이 흐른다. 넘어설 수 없는... 그 앞에도 여전히 나불대는 수많은 입들이 있을 것이다. 사실 그 입들을 견디는 것이 더 쉬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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떨어져도 튀는 공처럼

- 정현종



그래 살아 봐야지

너도 나도 공이 되어
떨어져도 튀는 공이 되어


살아 봐야지

쓰러지는 법이 없는 둥근
공처럼, 탄력의 나라의
왕자처럼


가볍게 떠 올라야지

곧 움직일 준비 되어 있는 꼴
둥근 공이 되어


옳지 최선의 꼴

지금의 네 모습처럼
떨어져도 튀어오르는 공
쓰러지는 법이 없는 공이 되어.



<정현종, 나는 별아저씨, 문학과지성시인선3, 문학과지성, 1991>


*


"그래 살아 봐야지"란 의미심장한 독백으로 시작하는 <떨어져도 튀는 공처럼>은 '공'이 지닌 탄력성에 대한 새로운 해석의 역전이 울림으로 다가온다. 내가 다니는 직장에서는 1년에 한 차례씩 초등학생부터 어머니들까지 참가하는 전국백일장을 개최하고 있다. 백일장을 개최할 때마다 대략 5천에서 6천 명 정도되는 참가자들이 주어진 주제로 시나 산문을 작성하는데 내가 심사위원으로 참여하는 것은 아니지만 나중에 수상작품집을 엮어야 하기 때문에 읽을 수밖에 없다. '시'의 본질 중 하나는 사물이나 현실을 남과 다르게 본다는 '시선의 차이'에서 발생한다.


그런 의미에서 정현종 시인의 <떨어져도 튀는 공처럼>에서의 '공'을 백일장 주제로 주어졌다면 수많은 아마추어 문사들이 과연 어떤 시를 써냈을까, 생각해보게 된다. 한참을 궁리한 뒤에도 그래서 시가 어려운 것이란 생각이 든다. 남과 다르게 본다는 것이 시작(詩作)의 첫 걸음이고, 그 과정을 통해 시처럼 보이도록 도와줄 순 있어도 아니 시가 되도록 해줄 수는 있어도 좋은 시라고 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좋은 시는 남과 다르게 보는 것으로 시작해서, 남과 다르게 생각한 것을 보여주고, 그 과정을 통해 울림을 줄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만약 <떨어져도 튀는 공처럼>에서 "그래 살아 봐야지", "살아 봐야지" 두 행을 빼버린다면 이 시의 울림이 그렇게 커질 수는 없을 것이다. 다시 말해 시인이 가장 하고 싶은 말(핵심)은 '공'에 대한 여러 묘사들에 있는 것이 아니라 "살아 봐야지"란 진술에 있다. 그러나 '공'에 대한 묘사가 없다면 우리는 이 시를 읽으며 역시 아무런 감동도 받지 못할 것이다. "그래 살아 봐야지"란 진술 자체는 우리 일상에서 늘 듣는, 흔하기에 아무런 힘도 가질 수 없는 말이기 때문이다. 이 단순하고 힘이 실리지 않아 무의미한 진술에 힘을 실어주는 것이 바로 '공'이 지닌 여러 속성들, 특히 공의 탄력성에 대한 깊이 있는 탐구와 그 결과로 얻어진 묘사의 힘에서 발생한다.


"떨어져도 튀는", "쓰러지는 법이 없는", "움직일 준비 되어 있는" 공의 속성에 대한 묘사를 통해 우리는 생에 대한 의지와 자세를 가다듬게 되는 것이다. 만약 시를 활쏘기에 비유한다면 진술이란 화살촉이자 화살의 날개깃 구실을 하는 것이고, 묘사는 그 화살을 멀리 날려보내는 활의 역할을 하는 것이다. 활이 많이 구부러질 수록 더 멀리 화살을 날려보낼 수 있는 것처럼 묘사 역시 그러하다. 다만, 활이 부러지지 않도록 주의하는 것 또한 잊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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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통의 축제 ․ 2

- 정현종

눈 깜박이는 별빛이여
사수좌인 이 담뱃불빛의 和唱을 보아라
구호의 어둠 속
길이 우리 암호의 가락!
하늘은 새들에게 내어주고
나는 아래로 아래로 날아오른다
     쾌락은 육체를 묶고
     고통은 영혼을 묶는도다

시간의 뿌리를 뽑으려다
제가 뿌리 뽑히는 아름슬픈 우리들
술은 우리의 정신의
화려한 형용사
눈동자마다 깊이
망향가 고여 있다
     쾌락은 육체를 묶고
     고통은 영혼을 묶는도다

무슨 힘이 우리를 살게 하냐구요?
마음의 잡동사니의 힘!
아리랑 아리랑의 청천하늘
오늘도 흐느껴 푸르르고
별도나 많은 별에 愁心내려
기죽은 영혼들 거지처럼 떠돈다
     쾌락은 육체를 묶고
     고통은 영혼을 묶는도다

몸보다 그림자가 더 무거워
머리 숙이고 가는 길
피에는 소금, 눈물에는 설탕을 치며
사람의 일들을 노래한다
세상에서 가장 쓸쓸한 일은
사람 사랑하는 일이어니
     쾌락은 육체를 묶고
     고통은 영혼을 묶는도다

*



일찌기 문학평론가 김현은 정현종의 시세계를 일컬어 "변증법적 상상력"이라고 지칭했는데, 그건 내 알바 아니고, 김현이 정현종의 시에 대해서 한 다음과 같은 말은 동의하지 않을 수 없다. "정현종의 시를 읽는 것은 즐거운 일이다. 그러나 그것은 동시에 고통스러운 일이다. 그의 시를 읽는 즐거움은 즐거움의 없음을 확인시키는 그의 시에서 우러나오는 것이기 때문이다."

정현종의 시어는 까다롭다. 그의 긴 시에 대해서 나는 독해불능에 빠지거나 도대체 "정현종" 정도 되는 대가니까 이렇게 써도 시가 되는구나 싶은 상황에 빠질 때가 종종 있다. 가령, 그의 시에서는 "~의 ~의 ~의"라는 일상 생활 속에서라면 도저히 쓰일 수 없는 문장들이 도처에 널려 있다.

정현종의 시는 쉽게 좋아지거나 친숙해지기 어려운 편인데, 그런 선입견을 버리고, 차근차근 읽어보면 나름의 맛이 있음을 느낄 수 있다. 그럼에도 여전히 읽기 어렵다는 것은 변하지 않겠지만....
그의 시가 특히 매력을 발휘하는 순간은 잠언적인 경구들이 고통의 연장선상에서 레이저광선처럼 직선을 유지하며 눈으로 쏟아져 들어오는 순간이다.

가령, 이 시의 마지막 연에서처럼 말이다.
"세상에서 가장 쓸쓸한 일은/ 사람 사랑하는 일이어니"라니...
대관절 그걸 모르는 이가 뉘 있으랴만 그것이 앞 뒤의 시어들과 맞물려 기계 톱니 바퀴처럼 돌아가다가 쏟아져 들어오는 순간에는 가슴이 저릿저릿해옴을 느낄 수 있다.

그럼에도 이 시에서 가장 중요한 구절은 이 부분일 것이다.

     쾌락은 육체를 묶고
     고통은 영혼을 묶는도다

전체 4연의 시에서 후렴구처럼 따라붙는 이 구절은 축제가 어째서 고통인지 말해준다. 삶을 축제처럼 살고자 하는 사람은 누구나 고통에 영혼을 묶이는 수고로움을 아끼지 말아야 한다. 삶에 일정한 영역에서 축제성이 있다면 그 반대편에는 반드시 고통이 수반되는 것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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