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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0.11.01 신동엽 - 진달래 산천 (1)
진달래 산천

- 신동엽


길가엔 진달래 몇 뿌리
꽃 펴 있고,
바위 모서리엔
이름 모를 나비 하나
머물고 있었어요.

잔디밭엔 장총(長銃)을 버려 던진 채
당신은
잠이 들었죠.

햇빛 맑은 그 옛날
후고구렷적 장수들이
의형제를 묻던,
거기가 바로
그 바위라 하더군요.

기다림에 지친 사람들은
산으로 갔어요
뼛섬은 썩어 꽃죽 널리도록.

남햇가,
두고 온 마을에선
언제인가, 눈먼 식구들이
굶고 있다고 담배를 말으며
당신은 쓸쓸히 웃었지요.

지까다비 속에 든 누군가의
발목을
과수원 모래밭에선 보고 왔어요.

꽃 살이 튀는 산허리를 무너
온종일
탄환을 퍼부었지요.
길가엔 진달래 몇 뿌리
꽃 펴 있고,
바위 그늘 밑엔
얼굴 고운 사람 하나
서늘히 잠들어 있었어요.

꽃다운 산골 비행기가
지나다
기관포 쏟아 놓고 가 버리더군요.

기다림에 지친 사람들은
산으로 갔어요.
그리움은 회올려
하늘에 불 붙도록.
뼛섬은 썩어
꽃죽 널리도록.

바람 따신 그 옛날
후고구렷적 장수들이
의형제를 묻던
거기가 바로
그 바위라 하더군요.

잔디밭에 담배갑 버려 던진 채
당신은 피
흘리고 있었어요.

*

보고 이제사 생각난 옛날 추억거리 하나.
나는 이 시 때문에 얻어터진 절친한 친구가 한 명 있었다.

고등학교 시절 문제아였다는 이야기는 술자리에서 낯선 여자를 꼬시는 이야기로 제격이라고 생각한 시절도 있었다. 알고 보면 그것도 일종의 편견에 불과한 것이지만 그런 사실을 알게 된 것은 그로부터도 좀더 시간이 지난 뒤에 비로소 깨닫게 될 일이다... 알고보면 여자들 중에서 나보다 음담패설을 실감나게 떠들어 댈 줄 아는 친구들이 있다거나, 그도 아니면 나보다 더 멋지게 담배를 피울 줄 아는 이가 있다거나 팔씨름을 해서 날 이길 수 있는 여자가 있다거나 혹은 소주 병 뚜껑을 이(빨)로 멋지게 따서 한 잔 건네줄 수 있는 여자가 있다거나 하는 것들이다.

좀더 구슬프게 말하자면 군에 간 남자 녀석들 뒷바라지에 지친 나머지 백두산 부대가 강원도 어디쯤 주둔하고 있는지, '대대 ATT'가 무언지 더 소상히 알고 있는 여자도 있다. 어쨌든 알고 보면 여자들이 남자들보다 방청소도 안 하고, 자다가 머리 맡에서 나는 지린 냄새가 고뇬이 벗어 논 양말이나 팬티 등속을 뭉쳐 앉은뱅이 책상 밑에 구겨논 것이라는 사실, 남자들 보다 훨씬 더 지저분하게 살 수도 있다는 사실을 몰랐을 때의 나는 갓 알게 되어 사귀게 된 친구들 앞에서 고등학교 시절의 무용담 아닌 무용담을 은근한 멋을 부려가며 늘어놓는 재주를 익혔다.

요는 지금부터 하려는 이야기가 신동엽 시인의 시 <진달래꽃>에 얽힌 일종의 무용담이라면 무용담이라는 것이다. 나는 86년부터 88년까지 고등학교를 다녔는데 다들 아시겠지만 그 무렵엔 우리나라가 참 뜨거웠던 시절이었다. 내가 다니던 고등학교는 인근에서도 비교적 학풍이 자유로운 편에 속했는데, 남들에게 그렇게 보였던 까닭은 우리 학교의 축제가 그 인근의 모든 학교와 비교해도 비교적 규모가 크고, 활발한 동아리(당시엔 주로 써클이라고 불렀다) 활동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 무렵 나는 일명 '카생'이라고 불리는 가톨릭학생회에 소속되어 있었고, 동시에 내가 몇몇 친구들과 비밀리에 만든 언더그룹('언더'란 말에서 '일진'을 연상할 수도 있지만 그보다는 훨씬 불온한 지하출판물 발간 모임이었다.)과 당시 비교적 진보성을 띤 단체인 흥사단 소속 풍물패가 결합한 '민속문화연구회'라는 동아리를 출범시켰다. 87년 연말을 거치면서 88년에 우리가 고3이 되었을 때 나를 비롯한, 소위 사상적 문제아들은 대학을 본따 고등학교에서도 학생회장 직선제 쟁취를 위한 어쩌구저쩌구 활동을 했다. 당시로서는 학생의 대표기구로서의 학생회란 존재는 없었고, 전교에서 1,2,3 등 빼고(다시 말해서 서울대 갈 녀석들은 공부만 하라고, 제외하고), 연고대 정도 갈 수준인데 비교적 활달한 성격을 지닌 범생이들을 학교에서 임의로 선출하여 학생회장에 앉히는 것이 대체적인 관례였다.

그런데 이 학교에는 학교측에서 임의로 선출한 학생회와 달리 동아리연합이란 조직이 있었다(어째 '화산고' 분위기이긴 하지만). 그 동아리연합의 짱이 사상적 문제아였는데 그 녀석이 나와는 둘도 없는 친구 사이였다(왜 그런 사이 있지 않은가? 죽이고 싶도록 밉지만 그 녀석이 사라지면 살 맛 안 날 것 같은 - 그 관계는 오늘날에도 계속된다). 하여간에 동아리연합은 확실히 사상적 문제아들에게 장악된 상황이었고, 대외적으로는 그 조직을 중심으로 학생회장 직선제 안이 터져 나와 학교 당국을 당혹시킨 사건이 88년 초엽에 불거져 나왔다. 교사측과 학생측이 두 패로 갈려(이 무렵엔 아직 전교조가 공식 출범하기 전이라 그 전단계인 '민교협' 선생님들이 학교에 있었다) 서로 대치하는 형국이 벌어졌는데, 그 중 일부 교사들은 학생들 편이었다(이 분들이 나중에 죽도록 고생하셨던 전교조 선생님들이다). 결국 직선제관련 해서 학생,교사간의 간담회가 열리고 우리는 음악당에서 1,2,3학년 학생 대표들과 선생님(주로 학생부 소속)들 사이에 열띤 토론이 벌어졌다. 그전까지 음악당은 마치 예비군이나 민방위 교육장 같이 삼민투의 반국가성, 북괴의 인민민주주의 전술 등이 정체를 알 수 없는 반공 강사들을 통해 강연되던 곳이었다.

학생과 선생이 처음으로 머리를 맞대고 서로의 주장을 펼치며 논쟁을 벌이는 모습은 참 아름다왔다. 그러나 우리는 충분히 훈련되지 않았다. 선생님도 늘 당신들 주장을 쳘치는데만 익숙했을 뿐이었고, 우리들도 쉽게 흥분하고 격해지기 마련이었다. 지금은 명확하게 기억이 나지 않지만 나와 비교적 친하게 지냈던 수학 선생님과 나의 충돌로 결국 간담회는 이렇다 할 결론을 내지 못하고 끝났다. 그 선생님은 나에게 당한 수모(솔직히 내가 무슨 엄청난 모욕을 드린 것은 아니고, 당신이 느끼기에 많은 학생들 앞에서 면박을 당했다고 느낀 것 같았다.)에 대해 억울함을 호소하고 다닌 것으로 기억난다. 나중에 수업이 끝난 뒤 따로 불러 문을 걸어 잠그고 이야기했던 기억이 난다. 어쨌든 학교측과 학생측은 이후로 수업분위기 조차 냉랭해질 만큼 서로 긴장하고 있었고, 하마터면 동맹수업거부까지 갈 수도 있는 분위기가 조성되었다(쉽지는 않았겠지만). 학교에서는 한 발 물러나 직선제를 수용하는 대신 일정한 등위 안에 든 학생에게만 입후보 자격을 주겠다는 제안을 했고, 결국 그 정도 선에서 상황은 마무리되었다. 이 학생회장이 우리의 기대와 얼마나 다른, 어떻게 활동하게 되었는가는 말이 길어질테니 이만 접어보자.

다만, 이야기하고 싶은 것은 우리는 그 상황을 모두 잊었는데 선생님들은 그 상황을 오래도록 기억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특히나 당시 학생 주임 선생님은 말이다.
사건이 터진 것은 인근에서도 이름난 우리 학교 축제 현장에서 벌어졌다. 나와 친했던 동아리 대표는 문학동아리에 있었다. 나 역시 문학동아리에 들어오라는 제안을 받기는 했지만 나는 그때만 하더라도 문학이란 것이 떼로 몰려다니며 이바구나 떠는 재수없는 사람들의 것이 아니란 생각을 해서 가입을 거절했다. 하지만 그 그룹 사람들하고는 친할 수밖에 없었다. 어쨌든 문제는 이 문학동아리에서 시화전을 열었는데 그때 신동엽 시인의 이 시를 커다란 패널에 붙이고, 시회전 전시회장 바닥을 어디에서 구해왔는지 톱밥을 깔고 녹슨 철조망을 거둬다가 장식 해둔 것이 문제였다. 전시회장 안에는 신동엽 시인의 시만 있는 것이 아니라 김남주, 양성우, 김수영 등의 시와 함께 그네들의 자작시가 걸려 있었다. 축제 중에 학생 주임 선생은 시화전 전시회장에 와서 이 시를 문제삼았다. 빨치산을 찬미한 시라는 것이 그의 주장이었던 것 같은데, 이에 굴하지 않은 것이 내 친구의 화근이었다. 결국 인근 학교 여고생들이 가득한 전시회장에서 그 친구는 학주에게 귓방망이를 얻어터지는 불상사가 일어났고, 신동엽의 시를 비롯한 몇몇 시들과 철조망이 철거되는 사태가 빚어졌다.

그 학생주임 선생님의 담당 과목은 "국어"였다.
나는 신동엽 시인의 이 시 <진달래꽃>을 읽을 때 늘 그 날의 일이 생각난다.
당시 문제가 되었던 많은 시들이 오늘날엔 고교생들의 문학교과서 18종에 골고루 수록되어 있다.

그러나 교과서에 수록된다는 것이 이 시들의 확실한 신원복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김민기의 <아침 이슬>이 공공연하게 불리게 되었을 때 나보다 나이 많은 사람들이 느꼈던 감회도 아마 이런 것이었을 것이다. "세상 참 많이 좋아졌다"는 한 마디에 담긴 여러가지 회한과 의미들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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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바람구두 windsho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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