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지상의 책 한권』 - 이광주 | 한길아트(2001)

"아름다운 지상의 책 한 권"을 읽었다고 해서 갑작스럽게 책에 대한 없던 애정이 샘솟거나 서재를 좀더 잘 꾸리게 되진 않을 게다. 지난 2004년 국민 1인당 독서량 6권 내외였다고 한다. 최악의 경기침체니, 불황이니 떠들 때마다 엄살 아닌 엄살을 부리게 되는 곳이 출판사들인 걸 생각해보면, 지난 해 나름대로 선전했다고 해야 하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실제로 몇몇 메이저 출판사들은 나름대로 매출 증대에 성공했다고 들었다). 이광주 선생의 "아름다운 지상의 책 한 권"은 책에 대한 이야기이면서 동시에 교양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이광주 선생 자신이 "대학사"라는 뛰어난 저작을 남긴 학자이면서 또한 책에 관한 문필가로서 명성을 남긴 인물인 만큼 이 책에 대한 기대는 남달랐다. 하지만 나는 지난 2001년에 나온 책을 최근에야 읽었다.

 

그 이유는 일단 게으름 때문이고, 두 번째는 비슷한 시기에 나온 다른 책 "베네치아의 카페 플로리안으로 가자"를 읽고 다소 실망한 기억 때문이다. 엄밀하게 말하면 "베네치아의 카페 플로리안으로 가자" 전체가 날 실망시켰다기 보다는 이 책의 헤드 카피인 양 쓰인 문장 "유럽은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곳, 이탈리아는 유럽에서 가장 아름다운 나라, 베네치아는 이탈리아에서 가장 아름다운 도시, 성 마르코 광장은 베네치아에서 가장 아름다운 광장, 그리고 플로리안은 그 광장에서 가장 아름다운 카페이다. 그러므로 나는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곳에서 모카 커피를 마시고 있는 셈이다."가 나의 변방 의식을 부추기며 독서를 방해했다고 보아야 옳을 것이다.

 

이 문장을 약간 비꼬아보면 "네가 우리 반에서 수학 성적이 꼴찌야. 그런데 우리 반이 전교에서 꼴찌거든. 그런데 우리 학교가 우리 도에서 꼴찌야. 그런데 우리 도가 우리나라에서 꼴찌 했거든. 우리나라가 세계 수학 경시대회에서 꼴찌 했어. 그래서 너는 세계 꼴찌야."가 된다. 나로서는 카페 플로리안의 저 문장이 책을 읽는 내내 목에 가시처럼 걸려서 불편했었음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그것이 나로 하여금 이광주 선생의 "아름다운 지상의 책 한 권"을 읽는데 다소 시일이 걸리게 만들었다. 이 책에서도 그런 이광주 선생의 서구 편향은 계속된다. 그렇다고 이광주 선생의 서구 지향을 비난하고 싶은 마음은 없다. 그는 서구 지성사를 중심으로 유럽 문화 전반에 대한 폭넓은 연구를 해온 노(老) 역사학자이다. 당신의 교양과 학식에 어떻게 부인할 수가 있겠나. 이 책에서 서양이 그 중심이 될 수밖에 없는 것은 어떤 의미에서 보자면 당연한 귀결이다. 당신의 전공이 서양인 것이고, 어떤 책이든 책이란 그 사람 자신과 그의 관심을 드러내는 일이기도 하다. 

 

약간의 불만을 끝으로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 책 "아름다운 지상의 책 한 권"은 제목 만큼이나 잘 된 책임에 틀림없다. 그리고 매우 흡족하게 읽었음을 고백해야겠다. 책 자체의 만듦새를 놓고 따져도 그렇고, 내용은 두말할 것 없이 잘 된 책이다. 책의 만듦새면에서 구조를 이야기할 때, 이 책은 하드커버(총양장본)에 해당하는 FM격으로 제작되었다. 머리띠(꽃천), 배, 면지놀이, 헛장, 덮개, 책테, 가름끈 무엇하나 부족하지 않으며, 올컬러 4도인쇄에, 용지는 아마도 하이크림계열의 용지를 사용하고 있는 듯 보인다. 대개 이런 용지는 미술서적을 제작할 때 사용하는데 그 까닭은 이 책에 수록되어 있는 볼만한 도판들을 돋보이게 하고 싶기 때문이리라. 그리고 무엇보다 이 책의 주제 자체가 책에 대한 헌사이기 때문에 더욱 그랬던 것은 아닐까 한다. 4X6판형 하드커버 책들을 보는 일이 요새는 그리 어려운 일도 아니지만, 17,000원이나 하는 책이 문고본 판형이랄 수 있는 4X6판인 건 요근래에 와서야 볼 수 있는 현상이다. 어찌되었든 이만하면 이 책 값이 어째서 17,000원이나 하는지 약간의 설명은 되었으리라 생각한다. 다시 말해 이 책은 그만한 대접을 받을 정도는 된다는 뜻이다.

 

이 책이 책에 대한 헌사로 읽힐 수 있는 대목은 여러 군데에서 등장하지만 그 중 가장 압축적인 대목 한 곳을 고르라면 말라르메의 시 구절 "결국 세계는 한 권의 아름다운 책에 이르기 위해 만들어졌다"는 대목일 텐데 그 상징적인 의미는 둘째로 하고라도 과연 책을 사랑하는 이라면 한 번쯤 젖어봄직한 시구가 아닌가? 이광주 선생은 주로 서구 유럽의 책 이야기로 꾸려나가고 있는데, 당신의 전공과 연관시켜 생각해보면 쉽게 이해될 수 있는 대목이긴 하다. 예를 들어 아우구스티누스 시절의 독서는 모두 묵독이었다는 이야기는 이 책을 통해 처음 알게 된 사실이다. 중세의 책읽기는 모두 소리내 읽는 음독이었고, 묵독은 악마의 소행이라고 비쳐졌다. 묵독이 일반화되기 시작한 것은 12, 13세기에 이르러서의 일이었다. 이렇듯 "아름다운 지상의 책 한 권"은 서구 중세와 근세, 근대와 현대를 오르락내리락하면서 책의 롤러코스터, 책의 향연을 만끽하도록 해준다.

 

그야말로 독서인들의 독서 취미로부터, 책 자체에 정성을 들인 애서가들, 장서가들의 이야기에 이르기 까지 말이다. 그들 가운데는 고상한 책벌레로부터 그야말로 엽기적인 책벌레까지 다양한 독서편력과 장서수집을 위해 살인도 불사하지 않았던 이들의 이야기가 있다. 15세기의 어느 독일 귀족은 그가 소장하고 있는 책들 가운데 상당수는 훔치고, 강제로 빼앗은 것임을 고백하고 있으며, 어떤 신부는 성직자의 신분으로 책에 미친 나머지 고서점을 열어 진귀한 희귀본들을 탐내어 여러 소장가들을 살해하여 교수형을 받기도 했다는 이야기 역시 책에 미친 사람이 아니고서는 그 느낌을 알기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독서의 핵심은 몽테뉴의 독서론에서 찾을 수 있을 것 같다. "나는 매일 많은 사람들의 책을 읽으면서 산다. 그런데 그들의 학식에는 관심이 없다. 오직 그의 사람됨을 알고 싶을 뿐이다." 몽테뉴는 삶과 동떨어진 사유나 학식을 모두 '거짓 학문'으로 비웃었다고 하는데, 세계 최대의 도서관으로 전설적인 명성을 지녔던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에는 "영혼의 치유소"라는 문자가 새겨져 있었다고 하니 인간의 영혼은 인간의 영혼으로만 치유될 수 있는 모양이다.

 

평생을 두고 벗 삼을 수 있는 한 권의 아름다운 책이 있다면 당신의 영혼은 이제 절반쯤은 구원받은 것이라고 "아름다운 지상의 책 한 권"은 그렇게 속삭이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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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ing 책과 만나다 - 수유연구실+연구공간 너머 지음 / 그린비(2002)


book+ing 책과 만나다를 비롯해 올해는 ‘책에 관한 책' 혹은 '책을 소개하고 있는 책' 10여 권을 집중적으로 만날 기회가 있었다. 올해는 인터뷰를 엮은 책도 꽤 많이 나왔는데, 『book+ing 책과 만나다』 역시 어떤 의미에선 책을 주인공으로 한 인터뷰를 엮은 책이라 할 수 있다. 가끔 남을 인터뷰한 책들을 읽다보면(직업상의 이유로 나 역시 종종 누군가를 인터뷰하는 자리에 따라 나설 기회가 있지만) 인터뷰 내용의 질적인 문제를 떠나 천편일률적이란 생각이 든다.

한 인물을 각기 다른 사람이 인터뷰할 때도 그렇고, 각기 다른 인물을 한 사람이 인터뷰할 때도 그렇고 어째서 인터뷰 글들은 하나 같이 뻔한 이야기를 반복하게 되는 걸까. 그 이유야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우선 내가 생각하건데 인터뷰를 하는 사람이 인터뷰를 당하는 사람보다 덜 유명한, 그래서 명성자본이란 측면에서 약자의 위치에 있기 때문이다. 다른 한 가지는 인터뷰를 하는 사람이 인터뷰를 당하는 사람보다, 인터뷰 전에 아무리 열심히 공부한다 하더라도 그 방면에 비전문가이거나 문외한일 수밖에 없는 경우가 많아서 그런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을 종종 한다.

우리들이 제 아무리 스승보다 전문적인 지식이나 식견에서 모자란다고 하더라도 그 무식함을 솔직히 인정하고 대드는 학생의 무모한 용기와 치기를 높이 평가하는 까닭은 공부란 그 과정에서 축적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대개의 인터뷰 혹은 인터뷰로 엮은 글들은 뒷부분에 가서 "아, 좋은 게 좋은 거죠. 하하, 앞으로도 열심히 좋은 일 많이 해주시길"이라며 마무리 된다. 인터뷰어로 나선 이가 인터뷰이에게 잘 보이는 방식(일종의 면접)으로 마무리되는 인터뷰가 재미있을 리 없다. 그래서 공격적인 인터뷰를 찾아보기란 공격적인 서평 찾아보는 것만큼이나 어렵다.

그게 이 책과 무슨 상관인가? 그건 이 책 역시 그런 점에서 자유롭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 책의 날개에 적힌 필자 소개는 우습게도 개인이 아닌 집단을 필자의 위치에 놓고 있다. 물론 책 날개 하단엔 이 책의 작업에 참여한 고미숙, 고병권, 고봉준, 권보드래 등을 비롯한 필자 18명의 명단을 나열해두고 있지만, 이들 필자들의 프로필을 확인하고 싶다면 모모 사이트에 접속해보라는 설명이 달랑 놓여 있을 뿐이다.

물론 고미숙, 권보드래 등은 책줄이나 읽는다는 사람들 가운데 알만한 이들은 알만큼 유명인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이 책의 저자는 '수유연구실 + 연구공간 너머'다. 이 집단은 아예 사람 행세를 하고 싶은지 생년월일, 출생지, 출생에 얽힌 사연(일종의 태몽이라고 해야 하나?), 화두, 꿈꾸는 것, 주로 하는 일, 좋아하는 일 등을 소개한다.

참고로 좀더 자세하게 소개하면 "화두: 아는 것은 즐겁다. 즐겁지 않으면 지식이 아니다. 꿈꾸는 것 : 자신의 신체를 극한적으로 실험하는 구도로서의 지식과 저잣거리의 아우성이 끊임없이 접속하는 꼬뮨, 주로 하는 일 : 공부, 세미나, 글쓰기, 강의하기 - 듣기, 제도 밖 교육을 꿈꾸는 사람들이 모여 지식과 삶을 나누고 있다. 좋아하는 일 : 학력, 성별, 전공, 나이에 상관없이 맞짱 뜨고 엉겨 붙기" 란다. 자기소개만 놓고 보면 적당한 치기와 그에 상응하는 자신감을 엿볼 수 있다. '책머리에' 쓴 글을 보자.

만약 누군가가 '너희가 사랑하는 책들의 선별 기준은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우리는 500년 전 한 철학자의 입을 빌려 이렇게 말할 것이다. "발분하지 않았는데 저술을 하는 것은 마치 춥지도 않은데 떠는 것과 같고 병도 없는데 신음하는 것과 같다." 이성의 힘으로는 도저히 멈출 수 없는 욕망으로, 토해내고 싶지만 토해낼 수 없을 만큼 켜켜이 쌓인 분노로, 바로 지금 당신과 더불어 눈물과 웃음의 축제를 벌이고자, 우리는 이 책을 세상에 내보낸다.

만약 윗글 그대로의 내용이라면 이들이 낸 이 책은 발분하여 쓴 책, 멈출 수 없는 분노로 토해낸, 이 책을 읽는 나와 더불어 눈물과 웃음의 축제를 벌이기 위해 써낸 책이란 말이 된다. 이 글을 읽는 내내 신영복 선생의 책 강의의 겸손한 서문이 떠올랐다. 자신만만한 것도 좋다. 자신들이 한 말에 책임을 질 만큼 당돌한 "학력, 성별, 전공, 나이에 상관 없이 맞짱 뜨고 엉겨 붙기"라면, 그렇게 자신들이 대면한 세상의 책, 저자들과의 당당한 겨룸이라면... 말이다. 그런데 책의 본문을 읽는 내내 나는 '수유연구실 + 연구공간 너머'의 화두와 주로 하는 일이 떠올랐다.

"아는 것은 즐겁다. 즐겁지 않으면 지식이 아니다. 주로 하는 일 : 공부." 이 책을 읽는 내내 머리 속을 맴도는 말이 있었는데 "공부가 가장 쉬웠어요"다. 그렇다고 공부가 즐거운 이들이 부럽다는 말은 아니다. 어쩐지 '책머리에'에 그토록 거창하게 써 논 글의 느낌과 발분이 본문을 넘기면서 점차 시드는 거시기처럼 오그라드는 느낌을 받아서 말이다.
책이 주인공인 책이다 보니 남들에게 권하기 뭐한 책, 자신이 읽었을 때 별다른 감흥을 얻지 못한 책을 이야기할 수는 없는 노릇이란 사실을 감안하더라도 이건 내용이 좀 빈약하다. 대략 90권 가량의 책을 다루고 있는데, 판권 뒤의 백지까지 포함해서 368쪽이다. 이를 다시 90권으로 나눠보면 책 한 권당 4쪽씩 할애된 꼴이다.

새로운 장이 시작될 때마다 중간에 속표지 한 장씩, 새로운 글이 시작될 때마다 여백을 반쪽씩 할애하고, 본문 중간에 작가 사진 혹은 책과 관련된 도판을 삽입하고 있다. 예를 들어 이 책의 "4장. 한 시대의 철책을 뛰어넘은 광인과의 만남"이란 이름으로 시작된 장의 첫번째 책인 "디디에 에리봉"의 책 "미셸 푸코"를 이야기하고 있는 글 "저기 푸코가 있다"란 글은 239쪽에서 시작하는데, 제목 나오고 3분지 1가량은 여백이고, 글자로 가득찬 부분은 240쪽 하나, 241쪽은 푸코가 앞니를 드러내고 웃는 사진 한 장과 "푸코는 늘 전투의 먼지나 술렁임을 환기하고 있습니다. 사유 자체가 그에게는 하나의 전쟁 기계인 것처럼 보입니다." - 1986년 클레르 파르네와의 대담에서 들뢰즈가 한 말로 뚝딱 한 페이지를 해치워버리고 말았다.

이래서야 "한 시대의 철책을 뛰어넘은 광인과의 만남"은 방금 지나간 것이 뒤통수인지 앞통수인지 알아낼 재간이 없다. 전부하자면 3쪽이지만 실제론 이 글의 원고 매수는 얼핏 짐작으로 보아 200자 원고지 기준으로 6매 가량 되는 글이다.
참고로 "디디에 에리봉"의 책 "미셸 푸코"는 국내에선 "시각과언어"란 출판사에서 상하 분권으로 출간되었으며 상권이 352쪽, 하권이 316쪽의 책이다. 전부 668쪽의 책을 200자 원고지 6매로 압축해 리뷰할 수 있는 능력은 나로서는 매우 부럽다. 이 책의 글 면면에 무슨 문제가 있다거나 하는 지적을 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한 권의 책에 너무 많은 책과 저자를 담아내려는 욕심이 이 책이 지녀야 할 가장 중요한 미덕을 해치고 있다는 사실을 지적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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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 사람이 읽어야 할 모든 것 ㅣ 사람이 알아야 할 모든 것 3
크리스티아네 취른트 지음, 조우호 옮김 / 들녘(코기토) / 2003년 10월

 

"책이 책을 말하다" 책에 관한 책을 이야기할 때마다 나는 그런 생각이 든다. 책에 관한 책들을 분류해보자면 여러 종류가 있겠지만, 책에 대한 책들이란 대개 책을 만드는 것에 대한 책, 책을 둘러싸고 있는 저자들에 대한 책, 아니면 책 그 자체에 대한 책을 말할 것이다. 책이란 게 대관절 무엇이기에 사람들은 책을 둘러싼 이야기들을 흥미롭게 대하는가? 아마 책은 세상 그 자체일 것이다. 누구나 인생은 한 번 만 산다. 천 번을 다시 태어나는 고양이가 있다손 치더라도 이전의 기억이 계속 이어지는 동안만큼 그 고양이도 단 한 번의 일생을 사는 것과 진배없다. 만년을 사는 흡혈귀라도 그 기억이 이어지는 동안만 살아있는 것이다. 어떤 인간도 세계 안에 있다. 하이데거는 그것을 "세계-내-존재(In der welt sein)"라고 말한다.

 

어떤 인간도 그가 경험하고 익히고 배운 세상 속에 존재한다. 종종 나는 왜 누구의 자식으로, 나는 왜 이 나라에, 나는 왜 이 시간에 태어났는가를 후회한다. 그러나 위의 반문들은 의미가 없다. 지금 이대로의 나는 지금 이대로의 시공간 속에서만 '나'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인간은 자신이 속해 있는 시공간 속에서 의미를 얻는다. 그 말은 레오나르도 다빈치란 천재 역시 르네상스의 그 시기에서만 의미를 얻으며, 단테도 그 시공간 속에서만 의미를 얻는다는 걸 뜻한다. 그러나 과연 그러한가? 이 말은 절반만 맞는 말이다. 한 생명 개체로서 단테의 시간, 다빈치의 시간은 오래전에 끝났으나 그들이 남겨 논 유산은 책이라는 물건을 통해 시공간을 초월해 오늘날까지 이어진다. 불멸을 얻는다는 의미는 어쩌면 그런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책은 곧 누군가가 속해있는 세상의 끝이면서 동시에 다른 세상으로 초월할 수 있는 도구가 된다. 출판사에서 기획한 것인지, 아니면 이 책의 편집부에서 내보낸 보도자료를 따른 것인지 이 책의 소개글에 의하면 이 "책-사람이 읽어야 할 모든 것"은 얼마전 우리나라에서 인문학 서적으론 드물게 베스트셀러가 된 책 "교양"의 두 번째 권이라고 한다. 나로서는 잘 납득이 가지 않는데, "교양"의 저자인 "디트리히 슈바니츠"가 이 책의 '추천의 말'을 썼고, 이 책의 저자인 "크리스티아네 취른트"가 저자의 글에서 다시 "디트리히 슈바니츠"에게 특별한 감사를 표한 것으로 보아서 진위 여부야 그렇다손 치더라도 이 책이 "교양"과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나는 디트리히 슈바니츠의 "교양"을 읽고 독후감을 쓴 적이 있는데, 그 때 무슨 까닭에서인지 - 아마도 그가 말하는 교양이란 것이 철저히 서양적인 의미에서의 교양이었던 탓에 - 점수를 매우 박하게 주었던 기억이 있다. 지금 다시 읽고 평점을 매긴다고 생각하면 너무 박했다는 생각이 들 법도 하다. 그런데 나는 지금도 "교양"에 점수를 박하게 준 것에 대해서는 별로 후회가 없고, 이 책 "책 - 사람이 읽어야 할 모든 것"에 대해 점수를 후하게 주는 것과 상관없이 말이다. 두 책 사이에 어떤 차이가 있길래 나는 앞서의 책에는 박한 점수를 주고, 이 책에는 후한 점수를 주려는 걸까?

 

이 책의 저자 크리스티아네 취른트는 1965년생으로 독일에서 영문학, 예술사, 독문학을 공부한 인물이다. 일단 영문학과 독문학을 공부하고, 거기에 예술사를 전공했다는 것이 마음에 든다. 만약 이 책이 서양의 독서(교양)에 대한 체계를 잡기 위한 것이라면 일단 저자의 예술사 전공은 점수를 얻을 법한 대목이다. 게다가 이 책의 부제가 일견 교만하기 그지 없는 "사람이 읽어야 할 모든 것" 이란 표현 역시 나로서는 점수를 깍고 싶은 것인데도 불구하고, 점수를 깍기는 커녕 수긍하게 된다. 왜냐하면 이 부제가 지닌 역설을 긍정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모든 것"이란 곧 "책"을 수식하는 말이 된다. 이 책은 세상을 양적으로 알려주려고 덤비는 책이 아니며, 이 책의 저자는 당연하게도 자신이 지은 책 한 권을 가지고 세상을 다 알 수는 없다는 것을 너무나 겸손하게 써내려간다. 책은 다른 세상으로 건너가는 디딤돌이고, 그런 디딤돌 중에서 반드시 거치지 않으면 안 될 법한 책들이 있는 법이다.

 

취른트는 "세계, 사랑, 정치, 성, 경제, 여성, 문명, 정신, 셰익스피어, 현대, 통속소설, 컬트문학, 유토피아 : 사이버 세계, 학교 고전, 아동도서" 등 모두 14개의 항목으로 책들을 소개한다. 이 14개의 항목은 백과사전식의 구분법도 아니고, 도서관식 구분법도 아닌, 취른트만의 구분법이다. 이 14개의 항목 중에서 셰익스피어가 당당하게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는 사실만 보아도 그렇다. 게다가 저자 소개에 따르면 취른트는 셰익스피어에 대해 이미 한 권의 책을 쓴 적이 있다. 즉, 이 책이 소개하고 있는 책들은 지극히 개인적인 소개에 그치는 것이다. 그런 까닭에 다른 저자라면 하나로 묶었을 법한 성과 여성이 각기 다른 별도의 장에서 다뤄지고, 학교 고전과 아동도서가 우리가(사람이라면) 읽어야 할 모든 것 안에 포함된다. 이 책은 지극히 사적인 책 읽기에 대한 책이며, 동시에 매우 문학적으로 쓰인 책이다.

 

취른트의 이 책은 디트리히 슈바니츠의 책 "교양"과 달리 읽는 재미가 쏠쏠하다. 무엇보다 여러 권의 책을 다루면서 쉽게 빠지게 되는 유혹 - 백과사전식으로 정리해보고자 하는 - 으로부터 자유롭게 쓰였다. 이 책을 읽으며 하나의 체계를 상상하기 쉽지만 이 책은 그런 류의 것이라기 보다는 지극히 사적이면서 동시에 한 사람이 책을 통해 어떻게 세상을 읽어나갔는지 함께 따라가볼 수 있는 경험을 준다. 이 책은 보편적인 고전을 다루고 있으나 그것을 분석하여 우리 앞에 제시하는 방식은 취른트만의 것이 되도록 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것이 이 책에 내가 후한 점수를 주는 이유다.

 

취른트가 "사랑"편에 다루고 있는 <트리스탄과 이졸데>를 보자. 저자는 도발적인 문장으로 서두를 시작한다. "트리스탄과 이졸데는 실제로 사랑했을까?"라는 첫 문장 이후 취른트는 수백년 동안 서양의 시인과 예술가, 작곡가들에게 무한한 영감의 원천이 되었던 이 이야기가 어째서 오늘날의 독자들에게는 쉽사리 이해되기 어려운지 설명해준다. "사람들이 <트리스탄과 이졸데>를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여기서 묘사된 격정과 사랑에 대한 관념이 오늘날 우리들이 이해하는 사랑과는 너무나 동떨어져 있기 때문이다. 트리스탄과 이졸데의 사랑이 아름다운 것은 그것이 고통이고 포기이기 때문이다. 그들의 사랑은 죽음으로 비로소 완성된다." 트리스탄과 이졸데의 이야기에서 재미있는 점은 이 두 사람은 구태여 정절을 유지할 필요가 없는 동안에도 정절을 스스로 유지하는 것이다. 왜 이 두 사람은 숲에서 사는 동안 구태여 남편의 검을 그들의 침대 사이에 두고 고통 속에 번민하면서도 정절을 유지한 것일까?

 

취른트는 그 이유에 대해 이들의 사랑은 고통이며, 그 사랑은 수동적으로 참는 행위로 죽음과 흡사한 것이었다고 말한다. 죽음도 고통이고, 수동적으로 찾아오는 행위란 점에서 그렇다. 우리는 죽음이 찾아오는 것을 막을 수 없는 것처럼 사랑이 찾아오는 것도 막을 수 없다. 사랑의 미약은 그것이 운명적인 힘이라는 점에서 의미를 지닌다. 사람들은 자신도 모르게 사랑의 미약을 먹듯, 불시에 찾아드는 사랑을 거부할 수 없다. 사랑이란 사람들이 뜻하지 않게 경험하는 어떤 것이다. 스스로는 책임질 수 없는.... 취른트의 책에 대한 글들이 대부분 그렇다. 이렇게 거부할 수 없도록 만든다. 취른트는 이어 셰익스피어의 "로미오와 줄리엣"을 "타이타닉"을 통해 다시 읽어낸다. 그것은 고전이 어떻게 현재에도 여전히 작동하고 있는가를 보여주는 것이다.

 

이 책은 책에 관한 책이면서 책에 관한 책이 아니다. 책이 곧 세상이란 점에서 보자면 이 책은 책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책보다는 세상에 대해 더 많은 것을 알려준다. 종종 책에 관한 책을 읽을 때 사람들은 주눅들게 된다. 어떤 책들은 - 서구의 고전임에도 불구하고 - 우리나라에 미처 번역되지 않은 책이거나 번역된 책이라 할지라도 막상 읽으려고 하다보면 책 자체의 묵직함에 질려버리거나 이것도 오늘날 무슨 소용이 있을까 궁금해지기 때문이다. 이 책에서 취른트가 소개하고 있는 책들 가운데 일부도 예외없이 그런 한계 속에 있다. 그러나 이 책에서 언급하고 있는 책들을 미처 읽지 못했다고 해서 이 책을 읽는데 어렵거나 조바심 칠만한 내용은 거의 없다. 이 책은 그런 책들을 설사 읽지 못했다손 치더라도 읽어내는데 거의 전혀라고 할 만큼 지장을 주지 않게 쓰여졌기 때문이다.

 

책에 관한 책이라 할 수 있는 여러 종류의 책들을 읽어보았으나 이 책만큼 훌륭하게 그 임무를 다한 책을 찾기는 쉽지 않다.  풍부한 사례들과 전문적이기 때문에 쉽게 풀어낼 수 있는 식견, 그리고 그것을 잘 엮어낼 수 있는 문장, 다방면으로 넓은 이야기들을 다룸에도 불구하고 어느 하나 깊이를 잃지 않는 전문성 등을 이 책은 고르게 갖추고 있다. 그래서 나는 이 책에 대해서 만큼은 "사람이 읽어야 할 모든 것"이라는 부제에도 불구하고, 동양의 고전들은 하나도 포함되지 않았으나 아낌없이 별 다섯을 줄 수 있다. 어느 한 인간이 평생을 두고 읽어낸 세상에 대해 자신만의 시각을 곁들여 이렇게 풀어낼 수 있다는 점에 대해 나는 아낌없는 경의를 보내고 싶다.  이 책이 언급하고 있는 책 제목에 미리 주눅만 들지 않는다면 서양 문화와 교양에 대한 대단히 훌륭한 에세이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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