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맹 속의 섹스(Sex among allies) - 캐서린 H.S. 문 | 이정주 옮김 | 삼인(2002)


대부분의 우리 역사를 통해 '조국'은 나를 노예처럼 다루어 왔다. 조국은 내가 교육을 받거나 재산을 소유하지 못하게 해 왔다. '우리' 조국이란 만약 내가 외국인과 결혼한다면 더 이상 내 조국이 아니다. '우리' 조국은 스스로 나를 보호하는 수단마저 부정하며 나를 보호한다는 명목으로 내년 거액의 돈을 남에게 지불하도록 강요한다. 그러고서도 나를 보호할 수가 없어서 .... 그러므로 만약 당신이 나를 또는 '우리' 조국을 보호하기 위해 싸우고 있다고 계속 주장한다면 당신은 내가 공유할 수 없는 성적 본능을 만족시키기 위해, 그리고 내가 공유해 오지 않았고 또 앞으로도 결코 공유하지 않을 이익을 얻기 위해 싸우고 있음을 진지하게 또 합리적으로 이해해야 한다. 당신은 나의 본능을 만족시키기 위해 혹은 나 자신이나 내 조국을 지키기 위해 싸우고 있는 게 아니다. 왜냐하면 사실 여성인 내게는 조국이란 없다. 여성으로서는 나는 조국을 원하지도 않는다. 여성으로 내 조국은 전세계이다. - 버지니아 울프, "3기니" <동맹 속의 섹스, 본문 220쪽에서 재인용>

 

마치 칼 마르크스의 “공산당선언”을 연상케 하는 버지니아 울프의 저 말은 우리 사회에서 혹은 국제 관계(한미동맹) 속에서 여성이 처하고 있는 위치를 상징적으로 드러내준다. "동맹 속의 섹스"는 여성으로 한 개인의 삶이 사회와 국가, 한미 외교정책, 더 나아가 국제관계 속에서 어떻게 자리 매김 되고, 틀지어지는가를 기지촌 여성의 삶이란 하나의 고리를 통해 설명하고 있는 책이다. 캐서린 H.S.문의 이 책은 미국 클라크 대학 여성학 교수인 "신시아 인로(Cynthia Enloe)"의 연구방법과 주제 의식을 한국의 기지촌으로 확장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신시아 인로 교수는 미국 버클리대학에서 정치학을 전공했고, 클라크 대학에 여성학과를 직접 설립한 인물이다. 그는 국제정치와 군사주의, 군수산업이란 거대 시스템이 여성의 일상에 미치는 영향 등에 주목해 군사주의와 성별정치학을 연구해왔다. (이 책의 저자 캐서린 H.S.문은 신시아 인로가 자신의 연구를 계승하고 발전시킨 학자로 인정하는 이이며, 신시아 인로는 이 책의 발문을 쓴 권인숙의 논문 지도 교수였다.)

 

"일상"의 개념은 특히 여성학에서 중요한 의미를 지닌 시간으로 재해석되었다. 의미 있는 시간으로 역사가 주목하는 시간이 권력을 장악한 남성들의 시간이었던 데 반해서 일상은 여성의 시간으로 이는 "소외"와 의미의 궤를 같이한다. 권력으로부터 소외된 시간으로서의 일상은 바로 여성의 시간이자, 동시에 의미 없이 소모당해야 하는 여성의 감옥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아무도 주목해주지 않는 소외된 시간으로서의 일상이 정치적 의미를 지닌 시간으로 부활하자 이런 일상의 정치사는 "가장 개인적인 것이 가장 정치적인 것"이라는 여성주의의 명제가 되었다. 신시아 인로의 연구는 이로부터 더 나아가 "국제적인 것은 개인적인 것이다"라는 명제까지 나아간 것이고, 캐서린 H.S.문은 바로 그 명제를 한국의 기지촌 연구로 증명해 보인다.

 

불과 10여년 전만하더라도 한국의 가장 진보적이라는 학자, 운동가들 가운데 누구도 기지촌 여성의 문제를 사회 문제로 인정하지 않았고, 이를 학문적으로 연구하는 일 자체가 금기시되어 왔다. 이는 여성의 몸에 관한 것, 특히 성행위에 대한 것은 지극히 사적이고, 개인적인 문제로 치부되었으며, 이런 지극히 사적, 개인적인 문제가  짙은 색 정장을 입은 남성 엘리트들의 국제정치나, 외교정책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는 것으로 간주되어 왔다. 이런 여성문제(성문제)에 대한 재인식은 때로 우리 사회에서 '윤금이 씨 피살사건'과 같이 끔찍한 형태로 부각되면서 국내 문제의 일부로 받아들여지기 보다는 외부의 문제, 외국, 외국인, 외국 주둔군의 문제로 그 책임을 전가하려는 경향을 보였다. 진보는 종종 민족주의와 혼돈되어 나타났는데, 이런 인식이 기지촌 여성의 문제, 성매매 여성의 문제를 해결할 수는 없었다.

 

내가 가지고 있는 "동맹 속의 섹스"는 2002년 6월 15일자 초판이고, 내가 이 책을 구한 것도 역시 이 무렵의 일이었다. 거의 2년여 동안 나는 이 책을 서재에 두고 묻혀만 두고 있었는데, 최근 나는 두 가지 이유에서 이 책을 읽기고 결심했다. 첫째 이유는 성매매특별법 시행 이후 이 법안을 어찌 볼 것인가? 하는 문제에서 비롯된 것이고, 둘째 이유는 역시 첫째 이유와 이어진 것인데, 그런 고민 속에서 후지메 유키의 "성의 역사학"을 읽고 새삼 이 책을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동맹 속의 섹스"가 지역적으로는 한국과 미국을, 국제관계 속에서  해석하고 연구한 책이라면, "성의 역사학"은 지역적으로는 일본의 문제를, 서구 제국들의 근대화 경험 속에서의 집창촌 문제와 낙태 문제를 국가주의와 근대를 고민하며 다루고 있는 책이다. 두 책의 공통점은 여성의 몸에 대한 남성 지배 이데올로기의 여러 형태를 고민하고 다루고 있다는 점이다.

 

"동맹 속의 섹스"는 머리말과 맺음말을 제외하고 모두 6장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당사자라 할 수 있는 기지촌 여성들과 미군과 그 군속들을 포함한 다수의 인물들을 인터뷰하고, 그들의 경험을 재구성하고 있는 연구논문이다. 캐서린 H.S. 문은 기지촌 여성들을 "도마 위의 고기"라는 말로 표현하고 있다. 21세기에 시행된 성매매특별법을 둘러싼 여러 의견들을 살펴보면서 나는 성매매와 성매매 여성을 둘러싼 논의들이 서구에서의 근대화 이후 본격적인 직업 성매매 여성이 출현한 이래 논의되었던 담론 및 주장들과 지독하게 일치한다.

 

기지촌 성매매 여성을 바라보는 주요 시각들은 단순명쾌한 이분법 혹은 불가항력적인 현상으로 파악하기 일쑤였다. 이는 부르주아 사회가 필연적으로 사회제도로서의 성매매를 동반하는 현실을 부인하거나 묵인하는 자세에서 비롯되며, 성매매를 한 개인 - 남성의 성적 방종이나 여성의 타락에 기인하는 - 적 책임으로 전가시킨다. 성매매 여성은 종종 윤리적으로 타락한 여성이거나 육체적 쾌락을 바라는 수지 웡(Suzy Wong)으로 묘사되거나 인식된다. 즉, 과거에나 현재에나 성매매 여성은 여전히 여성들의 저임금, 과소평가, 과중한 노동으로 야기되는 것임에도 이런 제반 환경에 의한 어쩔 수 없는 선택을 자발적인 것으로 간주한다.

 

거의 모든 매춘 여성들이 기지촌 세계에 들어오기 전에 이미 빈곤, 낮은 사회적 지위, 신체적, 성적, 감정적 학대가 얽힌 생활을 경험했다. 그들은 이미 '타락한 여성'이었다. 처녀성도 잃어버리고 가족과의 연계도 거의 끊어지고 교육도 많이 받지 못한 이 여성들은 종종 그들이 할 수 있는 일이 별로 없다고 털어놓는다. 그들은 이미 "도마 위의 고기"였다. 김연자 씨는 1950년대 후반 다른 여성들과 달리 고등학교까지 마쳤는데, 그녀는 자신이 기지촌 세계로 들어온 이유로 11살 때 사촌에게 강간당했던 일을 종종 이야기한다. 강간이 일어나지 않았더라면 그리고 만일 어머니가 집에 있어서 자신을 보호해줄 수 있었더라면 자신의 삶은 지금보다 훨씬 나았을 것이라고 믿는다. 그러나 아버지가 자신과 어머니를 버린 까닭에 어머니는 생계를 위해 행상일 을 해야만 했다. <본문 48쪽>

 

다른 문제는 이것을 '필요악'으로 간주하는 태도이다. 건강한 사회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일부 여성들의 희생은 어쩔 수 없는 것 아니냔 의식이다. 저자는 이런 기지촌 여성들이 어째서 오랫동안 한국인의 의식 속에서 추방되었는가에 대해 다루며 "기지촌 여성들은 파괴, 가난, 전쟁의 살육, 전쟁으로 인한 가족과의 분리를 보여주는 살아있는 상징"이었으며, "남북한의 지리적. 정치적 분단과 남한 군대의 불안, 그리고 미국에 대한 끊임없는 종속의 살아있는 증언"이었기 때문이라고 분석한다. 즉, 이런 굴욕은 형으로부터의 보호를 위해 아우로서 감당하지 않으면 안 되는 몫으로 간주해 왔기 때문이다.

 

정상적인 한국인의 눈에, 매춘 여성은 두 가지 중요한 사회적 기능을 담당하는 것으로 비쳤다. 그 기능이란 한국사회에 끼칠 외국의 바람직하지 못한 영향들을 견제하고, '존중받을 만한' 소녀와 여성들이 미군에 의해 매춘과 강간에 빠지는 것을 방지하는 것이다. <본문 69쪽 - 70쪽>

 

여기에는 진보를 가장한 민족주의 담론들도 한 몫하고 있다. 논개는 조국의 이익을 위해 자신의 순결과 삶을 희생한 여인으로 칭송받는다. 이런 담론들은 미군 전차에 의해 죽임당한 두 여중생을 순결한 민족의 꽃으로 승화시킨다. 다소 잔인하게 들릴지 모르겠으나 케네스 마클 이병에게 살해당한 윤금이 씨와 두 여중생은 본질적으로 '순결한' 이란 부분 즉, '존중받을 만한' 이란 부분에서 정확하게 갈린다. 대한민국은 기지촌 여성들을 필요악으로 대할 때도 있지만, 이들을 "국가방어와 GNP성장을 위한" 것으로 파악하기도 했는데, 1973년 당시 문교부 장관이었던 민관식은 도쿄를 방문했을 때 "조국 경제 발전에 기여해 온 소녀들의 충정은 진실로 칭찬할 만하다"고 하여 한일 양국의 여성 단체들과 언론을 시끄럽게 만들었다. 베트남전에서 목숨을 잃은 파월 한국군 장병들이 벌어들인 달러만 경제개발계획의 밑천이 된 것은 아니었다.

 

미8군의 한 정보장교는 군대가 1960년대 남한 GNP의 25%를 차지하는데 기여했다고 평가했다. 1987년 미군은 남한 경제에 10억 달러를 기여했으며, 이것은 전체 GNP의 약 1%에 해당한다. …<중략>… 1978년 한국 경제는 매매춘을 통해 일본인으로부터 700억 원의 수입을 올렸다. <본문 76쪽 - 77쪽>

 

저자는 이와 더불어 기지촌 여성 박 양의 사례를 제시한다. 박 양은 기지촌 클럽에 들어가기 전에 한국인에게 성을 팔았는데, 남자 형제들의 미래를 위해 미국인에게 성을 팔기로 선택한 경우이다. 그 이유는 본인이 한국인 남성에게 성을 팔 경우 언젠가 남자 형제들의 앞길을 막게 될지도 모르기 때문이었다. 그녀들 자신은 가족으로부터 버림받아 왔음에도 1988년 말지 보도에 따르면 한 명의 전직(기지촌) 성매매 여성은 등에 업힌 이민으로 평균 15명의 친척을 미국으로 데리고 가며, 그럴 수 없는 경우엔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 돈을 부친다고 보도했다.

 

캐서린 H.S. 문은 한국의 경우는 여성에 대한 외국의 통제와 지배가 가변적이며, 국가간 관계와 여성의 억압 사이의 마르크스주의적 상관관계가 이런 가변성을 설명해주지 못한다고 해석하면서, 사회적으로 아무리 박탈당한 위치에 놓인 여성들일지라도 세계정치학의 역할자로 볼 필요가 있음을 강조(저자는 이 부분을 제일 강조하고 있음에도, 이 부분이 두드러지게 느껴지진 않았다는 사실이 약간 아이러니지만) 하고, 국가간의 관계의 역동성과 여성들의 삶의 연관성을 파악하기 위해 강대국과 군대, 자본주의적 여러 이해들이 유기적으로 결합된 하나의 통일체가 아니라는 것을 먼저 인식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또한 국가와 비정부 엘리트들은 소위 '국가 이해'를 추구하기 위해 종종 다른 계급과 집단도 효율적으로 이용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고 말한다.

 

앞서 나는 이 책을 읽었던 두 가지 이유에 대해 말한 바 있다. 성매매특별법은 그 법안의 존폐 유무를 논할 단계는 이미 지났다고 생각한다. 성매매특별법은 그간 분명히 우리 사회에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없는 것처럼 행동해왔던 "성매매" 문제를 최초로 공론의 장으로 끌어냈다는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내가 성과 관련한 책들을 읽는 이유 중 하나는 성매매특별법 자체에 주목하기 때문이기 보다는 우리 사회 속에서 성매매가 작동하는 메커니즘이 복잡하지만 놀랄 만큼 정교하게 다듬어져 있다는 사실에 주목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동맹 속의 섹스"는 기지촌이라는 특수한(미군이 주둔하는 아시아적인) 환경에 주목한 연구로 성매매 일반에 대한 책은 아니다. 그러나 성매매 문제를 국제관계 속에서 연구하든, 국내적인 문제로 한정하든 그 본질은 주변부화 된 여성들의 문제, 그들을 국가 이해, 국가 안보, 사회를 위한 중요한 자원(사람이 아닌)으로 간주하는 시스템을 해체하는 데 있음을 다시금 느끼게 만든다.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
Creative Commons License
Posted by 바람구두 windshoes

섹스 - 사용설명서 1
스티븐 아노트 지음, 이민아 옮김 / 뿌리와이파리 / 2005년 7월

 

큭큭... 책을 받아들고 나는 두 번 웃었다. 한 번은 책 보내준 이의 꾸밈없이 순수한 감정이 읽혔기 때문이고, 다음 한 번은 책을 읽는 과정에서였다. 잠깐 출판사 이야기를 좀 해보고 싶다. 직업상의 이유로 그리고 책 읽는 경험이 축적되다보면 알게모르게 그 책을 만들어내는 곳과 사람들에 대해 '감정(feeling)'이란 것이 생긴다.  최근에 칼 G. 융에 대한 간략한 개설서를 읽었으니 그를 잠시 호명하여 이야기해보자. 융에 의하면 감정이란 '사고(thinking)'와 마찬가지로 내부의 정신적 과정에 의존하기 때문에 감각이나 직관과 달리 이성적인 기능으로 분류된다. 내가 융을 프로이트보다 좋아하는 이유다. 그는 감정이 이성적인 기능이란 사실을 인정해주고 있기 때문이다.

 

융에 의하면 우리는 감정을 통해 우리가 무엇을 좋아하고 싫어하는지 알게 해 준다. 그가 말하는 감정이란 사물을 가치 순서대로 나열하기 위해 사용하는 이성적인 기능이고, 그러므로 감정형(감정적이 아니고)의 사람은 전통적인 가치에 대한 깊은 이해력을 가지고 있으며, 이들에게 중요한 부분은 인간 관계라고 말한다. 독자와 출판사의 관계를 집단 대 개인의 관계로 단순히 환원시키지 않는다면 출판사 역시 하나의 이미지를 갖는다. 일종의 페르소나인 셈이다.

 

그런 점에서 "뿌리와 이파리"란 출판사는 내게 몇 개의 이미지, 인상으로 남아 있다.
첫째는 미안한 마음이다. 강상중 선생의 "동북아시아 공동의 집을 향하여"를 서평하기로 해서 출판사로부터 공짜로 책을 받아 챙겨놓고, 적당한 서평자를 물색하지 못하는 바람에 책만 공짜로 얻어본 꼴이 된 것이다. 이럴 때 그쪽 편집부 직원에게 얼마나 미안한지 모른다. 대개의 출판사들은 영세하기 때문에 몇몇 메이저 출판사를 제외하곤 신문 지면을 얻어 광고 한 번 한다는 게 사운을 건 일이 되곤 한다. 그도 아니면 신문사 문화부 기자들에게 보도 자료 보내놓고, 이들의 기사 한 줄에 일희일비하게 된다. 나도 해봐서 안다. 물론 그 기자들도 나름대로 양심에 따라 기사를 쓰지만 인간의 양심이란 얼마나 얄팍한가 말이다. 내가 속해있는 잡지에 서평이 실린다고 판매에 끼치는 영향이야 미미하기 짝이 없겠지만, 그래도 결과적으로 약속을 못 지키게 된 건 정말 미안한 일이다.

 

둘째는 고마운 마음이다. 개인적으로 고고학자 이선복 선생의 팬이다. 예전에 가서원이란 출판사, 실은 그보다 좀더 오래전 "사회평론 길"에 연재될 때부터 이 분의 글은 나에게 고고학이란 미답의 학문에 관심을 갖게 해주었다. 그런데 이런 좋은 책이 절판되었다가 다시 뿌리와 이파리를 통해 재출간(이선복 교수의 고고학이야기)되었다. 혹시 핵 물리학자 폰 노이만의 "죄수의 딜레마"라는 책을 아는 분들은 게임이론이란 말을 들어보았을 것이다. 바로 그 게임이론으로 인간본성 진화의 수수께끼를 풀어본다는 최정규 선생의 "이타적 인간의 출현"이란 책이 있다. 이 책 역시 이 출판사에서 나온 책이다. 나는 이 책의 초판 1쇄와 2쇄를 모두 갖게 되었다. 대개의 출판사들은 1쇄와 2쇄는 재인쇄를 했다뿐이지 사실상 거의 차이가 없다. 그런데 이 출판사는 1쇄에서 잘못된 부분들은 대폭 수정해서 새로 책을 만들었다. 실질적으로는 재판인 셈이다. 그런 비용을 감수하고 책을 다시 낸다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말이다.(이상에서 언급된 책들은 차차 시간 되는 대로 서평으로 올려보도록 하겠다.)


자, 뿌리와이파리 출판사에 대한 칭찬은 이쯤에서 접도록 하자. 다만, 책의 만듦새에 대한 점에서 신뢰를 보낼 만하다는 것이다. 어쨌든 내나름의 원칙은 원고료를 받아 서평을 쓴 책에 대해서는 알라딘 서재에 리뷰를 올리지 않는 것이 원칙이고, 공짜로 받은 책에 대해서는 이 부분에 대해 어떤 형태로든 언급해야 한다는 것을 원칙으로 삼고 있다.  그러므로 이걸 흔히 말하듯 뽐뿌질로 생각하고 읽겠다면 그러거나 말거나...

 

책의 첫페이지를 펼치니 "스티브 아노트"란 이 책의 작자가 얼마나 요설스러운지 읽는 내내 즐거웠다. 아마도 지금 내 글이 이렇듯 막 나가는 까닭도 그의 책을 읽은 후유증이리라. 까놓고 보면 우리네 몸이란 얼마나 거기서 거기란 말인가. 가끔 우리는 단순하게 반응하는 이들을 가리켜 "단세포"라고 말한다. 성서에도 나오지만 태초에 섹스는 없었다. 섹스는 없고, 오로지 말씀만 있던 시절이 아마 "단세포"의 전성기였으리라. 자기를 복제하여 번식하는, 사랑에 주린 외로운 단세포 유기체가 존재했다. 자기 세포를 분열하여 후손세포를 생산하면, 그 후손이 다시 자라나 자기 몸을 분열하는, 그런 고독한 과정... 순전히 성서적인 맥락에 보자면 스티브 아노트는 이브에게 정말 감사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세상을 심심하지 않게 해주었고, 그에게 이런 책을 쓰게 해주었으니 말이다. 게다가 정말 감사해야 할 이유는 우리들을 세상에 태어나게 해주었으니 더더욱 감사해야 하겠지.

 

이 책의 원제 "Sex : A User's Guide" "섹스 - 사용설명서"는 약간의 뉘앙스 차이가 있다. "유저스 가이드"란 말은 분명 사용설명서란 뜻이지만, 사용설명서를 뜻하는 다른 말 "매뉴얼(manual)"과는 약간 다른 뉘앙스를 지닌다. 매뉴얼은 말 그대로 이용하는 방법에 한정된 것이지만 가이드는 안내서의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의 제목은 사용설명서이기 보다는 사용안내서가 더 적합할지도 모르겠다. 물론 괜한 시비다. "섹스-사용설명서"를 읽기 위해선 넥타이나 코르셋을 착용해선 안된다. 그랬다간 금새라도 셔츠 속에 땀이 찰 테고, 코르셋을 했다면 웃다가 숨이 막힐 것이기 때문이다. 즉, 가벼운 마음으로 가볍게 접근하시면 되겠다.

 

번역작가도 그에 대해 충분히 감안했을 것이다. 그러니 이 책의 주요 부분에 붙은 제목들이 이런 것이다. 예를 들어 3장의 제목은 "자, 즐겨~봅시다! - 섹스를 위한 옷차림", 4장은 "어디 보여줘봐 - 그 소중한 곳의 안과 밖" 그리고 마지막 19장 "FUCK - 영어 음란어 소사전" 까지 시종일관까지는 아니어도 군데군데 장난스러운 부분이 많이 있다. 물론 마지막 19장 부분의 영어음란어 소사전은 국내의 음란 사이트로 만족하지 못하는 분들을 위해선 검색어로 활용되기에 충분하다. 그러므로 미성년자들은 이 책을 읽지 말지어다. 그런다고 안 읽겠냐만...

 

그렇더라도 몇몇 부분에선 내나름의 금기들, 혹은 심기를 건드리는 것들이 있었다. 우선 5장의 소제목과 6장 소제목 사이의 문제다. 5장의 제목에서 "남성의 상실"에 해당하는 것으로 "거세"를 들고 이에 해당하는 내용으로 환관(내시) 이야기를 다룬다. 그런데 6장에서 "여성의 상실"에 해당하는 것으로 "처녀성"을 들고 있다. 물론 역사적인 맥락에서 보자면 처녀성이 재산의 한 가치로 평가받아왔다는 점에서 일리가 없지는 않다. 하지만 거세와 처녀성의 상실은 현재의 성정치적 관점에서 보자면 문제로 지적될 수 있다. 물론 내용상에서 이 책과 저자가 의도한 바가 그것은 아니겠지만... 분명 그것이 이 책의 재미를 반감시키는 한계라고 할 수는 있겠다. "사용설명서" 시리즈는 현재 모두 3권이 나와 있는데, 앞으로 나올 "마약" "섹스"는 현재 우리 사회에서 첨예한 논쟁거리로 남아 있다. 성매매를 노동으로 인정해야 한다는 주장(왜 성매매 문제에 있어서만큼은 소위 정치적 진보를 말하는 이들이 보수와 한 몸이 되는가? 물론 그래서 페미니즘이 존재하는 것이긴 하지만)이 느닷없이 튀어나오는 현실을 생각할 때, 스티븐 아노트의 요설은 때때로 듣기 거북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저작자 표시 비영리 동일 조건 변경 허락
신고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
Creative Commons License
Posted by 바람구두 windshoes
이전버튼 1 이전버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