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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1.01.07 최영미 - 서투른 배우
  2. 2010.11.08 시를 읽는 이유
서투른 배우

- 최영미

술 마시고
내게 등을 보인 남자.
취기를 토해내는 연민에서 끝내야 했는데,
봄날이 길어지며 희망이 피어오르고

연인이었던 우리는
궤도를 이탈한 떠돌이별.
엉키고 풀어졌다,
예고된 폭풍이 지나가고

전화기를 내려놓으며
너와 나를 잇는 줄이 끊겼다
얼어붙은 원룸에서 햄버거와 입 맞추며
나는 무너졌다 아스라이 멀어지며
나는 너의 별자리에서 사라졌지
우리 영혼의 지도 위에 그려진 슬픈 궤적.

무모한 비행으로 스스로를 탕진하고
해발 2만 미터의 상공에서 눈을 가린 채
나는 폭발했다
흔들리는 가면 뒤에서만
우는 삐에로.

추억의 줄기에서 잘려나간 가지들이 부활해
야구경기를 보며, 글자판을 두드린다.
너는 이미 나의 별자리에서 사라졌지만
지금 너의 밤은 다른 별이 밝히겠지만…

<출처> 최영미, 『문학사상』, 2009년 1월호(통권 435호)

*

모든 서정시는 연애시라고 대학의 시창작실습 시간에 그렇게 배웠었다. 연애(戀愛)의 개념은 광대무비(廣大無比)하였다. 사랑할 것이 없어 어느 시인은 병(病)에도 정(情)을 주었다. 서정시가(敍情詩歌)의 원형을 그리스문학에서 따진다면 다시 종류별로 발라드(譚詩)·엘레지(悲歌)·오드(頌歌)로 나뉜다. 최영미의 이 시를 그와 같은 구분으로 나눈다면 ‘발라드’에 속할 것이다.


음악에서 ‘발라드’란 말의 어감은 그 자체가 서정적인 노래를 뜻하는 것으로 받아들여지지만 실제 속마음은 비탄에 젖었다 하더라도 음조나 창법은 담담하게 노래하는 것을 말한다. 그에 비해  ‘엘레지’는 슬픔을 있는 그대로 표출한다. 그런 의미에서 ‘엘레지’는 통속(通俗)적이다. 이유야 어찌되었든 포르투갈 민속요인 파두(Fado)의 음색은 가사의 내용과 상관없이 곡의 형식만으로도 ‘엘레지’로 느껴진다(그런 의미에서 허수경의 옛날 시들은 발라드인데도 엘레지로 들린다. 당시의 허수경은 '이미자'이거나 '심수봉'이었던 셈이다. 흐흐).

‘오드’는 매년 신춘 벽두에 신문 1면을 장식하곤 하는 시들이다. 엘레지와 오드는 음악적으로도 장식음이 많고, 되풀이되는 후렴구가 도드라진다는 공통점이 있는 것처럼 시에서도 이런 부류의 것들은 장식적인 수사가 많고, 되풀이되는 구절들이 있다는 공통점이 있다. 그런 의미에서도 엘레지와 오드는 서로 다른 방식의 직설적인 화법이다. 최영미의 신작에서 내 마음을 울린 구절은 “지금 너의 밤은 다른 별이 밝히겠지만…”이다. 마지막 한 방을 날리기 위해 전반부의 연주가 그토록 담담(潭潭)했던 거다.

어쨌거나 사랑은 오드로 시작해서, 엘레지로 끝나고, 마지막에 가선 발라드로 남는다. 발라드로 마치면 예술성 점수가 높아지지만 오드로 돌아가면 추해지고, 엘레지에서 멈춰버리면 추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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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바람구두 windshoes

장정일은 책을 내는 자신을 일컬어 '위조지폐범'이라고 말했다. 8,900원 하는 책 한 권을 내면 인세 10%를 받으니 자신은 890원짜리 지폐를 발행하는 존재라는 것이다. 읽고 보니 맞는 말이라 피식 웃었다. 한국은행이 지불을 보증한 한국은행권의 액면 가치로 환산되긴 하지만 그는 분명히 책 한 권당 890원어치의 가치, 화폐 가치와는 다른 가치를 창출해내는 위조지폐범이다.  

얼마전 누군가 나에게 '왜 시를 읽느냐'고 질문한 적이 있었는데 그때는 그저 '글쎄'라고 답했지만 오늘 최영미 시인의 신작 시집 "도착하지 않은 삶"을 읽으며 마음에 드는 시에 포스트잇을 가만히 붙여 나가다가 문득 떠오른 생각이 있었다. 어쩌면 나는 강태공이 곧은 바늘로 세월을 낚듯 그렇게 시의 바다에 낚싯대를 드리운 어부처럼 앉아 있다는 것이다.  

정권이 바뀌기 전에도 나는 세상에 온통 절망하고 있었다. 솔직히 나는 MB가 노무현보다 더 나쁜 놈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나는 노무현이 이라크에 한국군을 파병한다고 했을 때 사진 속 이라크 소녀를 보며 대성통곡을 한 적이 있다. 나 스스로도 놀랄 만큼 크게 울었기 때문에 내 눈물의 의미가 대관절 무엇을 뜻하는지 내 스스로도 놀랄 만큼 큰 울음이었다. 그렇게라도 울지 않고서는 내 마음이, 내 양심이 견딜 수 없을 만큼 아팠기 때문이리라.  

며칠 전 누군가에게 그 경험을 이야기하며 남을 위해 많이 울라고 충고해준 적이 있다. 남을 위해 우는 눈물이 사실은 자기를 구원해주는 눈물이라고 말이다. 그것이 비록 악어의 눈물 같은 것일지라도... 울지 않고 잘 참아내는 잘난 인간보다 우는 인간이 차라리 덜 비루하다. 어떤 사람은 그렇게 말할지도 모른다. 지난 해 촛불시위 때 거리에 나설 때마다 주변 사람들에게 간혹 듣던 이야기다. 지금은 정권 초반이라 촛불을 들어도 안 될 거라는 식의 비판, 촛불을 들고 그저 거리를 배회한다고 해서 세상이 어떻게 되진 않을 거라는 답답함. 

왜 시를 읽느냐? 그건 지난 촛불시위에 나갈 때 사람들에게 해준 말과 별반 다르지 않은 이유에서다. 시를 읽는 시간에 내가 다른 어떤 일을 한다면 그보다 더 세월을 잘 보낼 수 있겠냐고?  "시란 어둠을 어둠대로 쓰면서 어둠을 수정하는 것"이라던 김지하의 시에 대한 정의에 내가 감복한 이유다. 시의 바다에서 마음에 드는 시 한 편을 낚는 시간이 남들 보기엔 한가롭고, 무료하게 보일지 몰라도 나는 나 나름대로 어둠을 어둠이라 말하면서 내 안의 어둠을 치유하려고 노력하는 중이다. "쓰면서 저도 몰래 햇살을 이끄는 일"이라지 않는가...  

어쩌면 나는 그 안에서 한국은행이 발행한 가치 이외의 다른 가치를 찾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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