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과 그림으로 보는 북한 현대사 - 기광서 | 김성보 | 이신철 | 역사문제연구소 | 웅진지식하우스(2004)

출발하여 밤길을 걸어가는데, 구성시를 들어가지 않고 산고지에 집결하여 식사 등을 하는데 찬 돌 위에서 달게 먹으면서도 항상 집 생각에 눈물이 날듯하여 참을 수 없다. 저녁을 먹지도 못하고 출발하는 바, 떠날 당시 찬바람이 죽죽 부는데 눈물이 자연히 나도다. 내 아무리 고향을 찾아갈 날이 있겠지 라고 굳게 각오하고 목적지를 향하였다. 태천시, 자성시는 여전하더니 전부 불태워지고 말았다. 

<1950년 12월 13일 인민군 병사의 일기 - 본문 83쪽>


이 책은 1945년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건립부터 동구 사회주의 몰락 이후 현재에 이르는 북한, 북한 사회, 북한의 정치 경제사를 중심으로 알기 쉽게 풀어 쓰고 있는 일종의 역사책이다.  역사문제연구소가 기획하고 북한학을 공부하고 있는 소장파 학자 3인이 중심이 되어 북한 정부의 탄생부터 성공과 실패, 일반 주민들의 생활상들을 국제 정세의 변화 속에서 설명하고 있다. 이 책은 모두 6장으로 기획되어 있는데, 시간의 흐름에 따른 배열로 이루어져 있다. 제1장은 1945년 해방 이후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수립에 이르는 시간들을 다룬다.

 


제2장에서는 한국전쟁의 준비부터 휴전에 이르는 기간의 역사를 다룬다. 제3장에서는 전후 재건과 하나의 정치 체제로 수립되는 북한의 사회주의에 대해, 제4장에서는 재건 이후 북한의 최고권력자로서 그 지위를 확실하게 자리매김한 김일성과 주체사상의 형성을, 제5장에서는 소위 '우리식 사회주의'라는 북한의 독특한 정치체제 형성을 다룬다. 이 시기의 우리식 사회주의란 것은 동서 데탕트 분위기와 중소분쟁 등 사회주의권 내부의 균열을 북한이 어떻게 견뎌냈는가를 다루면서 동시에 북한의 자력갱생 경제 체제가 부딪치는 한계를 함께 다룬다. 제6장에서 다루고 있는 북한은 우리에게도 비교적 잘 알려진 시기의 북한이다. 동구 사회주의의 몰락 이후 김일성 주석의 사망이라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건국 이후 최대의 위기를 맞이한 북한과 그들의 선택에 대해 묻고 있다.


"사진과 그림으로 보는 북한 현대사"
란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 이 책은 북한 현대사를 관류하는 시대의 흐름을 사진과 그림을 통해 보다 생생하게 보여준다. 우리는 이 책을 통해 그의 정치적 행보와는 상관없이 암암리에 너무나 '잘 생겼다고 소문난' 김일성 주석의 여러 얼굴들을 볼 수 있다. 시오노 나나미의 "로마인 이야기"에는 로마 내부의 권력 투쟁이랄 수 있는 마리우스와 술라, 이들의 사상과 지도에 따라 벌어졌던 로마의 내전에 대해 이야기하는 부분이 있다. 시오노 나나미는 이 장에서 매우 중요한 언급 한 가지를 한다. "내전은 짧으면 짧을 수록 좋다"는.....


내전이 그 어떤 전쟁보다도 잔인한 까닭에 대해 생각해본다. 한 마을에서 한 가정에서 아버지와 아들이 그간 사이좋게 지내던, 혹은 약간의 다툼이 있었다 하더라도 서로를 죽일 정도로 증오하지는 않았던 사람들이 어느날 갑자기 서로 무기를 들고 서로를 죽인다. 그것은 학교에서 벌어지는 집단 체벌과 흡사하다. 서로 마주 보게 만든 뒤 같은 급우의 따귀를 올려부치게 한다. 마주 하고 있는 급우는 나와 가장 친한 친구일 수도 있고, 정나미 떨어져 하던 인간일 수도 있고, 별로 관심이 없었지만 그렇다고 때려주고 싶을 만큼 미운 친구는 아니었다. 처음엔 장난스레 한 대 때린다.


그러자 옆에서 구경하던 선생님이 몽둥이로 한 대씩 쥐어박는다. 그러자 맞은 편 녀석이 보다 힘차게 때린다. 맞은 녀석은 다시 보다 힘차게, 보다 힘차게 서로의 귀뺨을 올려부친다. 그 격렬한 귀뺨 치기가 지난 뒤 한동안 이 반 아이들은 서로를 미워하게 된다. 내전이 잔인해지는 까닭, 그것은 서로를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서로를 잘 안다고 생각한 이에게 당한 배신은 더욱 아프다. 이 책의 91쪽에는 낯익은 피카소의 그림 한 장이 소개되고 있다.
"한국에서의 학살"이다. 피카소가 한국전쟁 중 일어난 민간인 학살을 접하고 그렸다는 이 한 장의 그림이 증거하고 있는 것은 전쟁의 잔인함일 것이다. 혹자는 이 그림을 북한에서 일어난 신천학살을 다룬 것이라 분석하기도 한다. 신천학살이란 무엇이었던가? 북한 정부는 현재까지도 신천학살을 미군이 진주하며 일으킨 민간인 학살이라고 주장하고 있지만, 실제로는 미군과 국군의 입성 소식을 미리 전해듣고 봉기한 우익청년단들에 의해 일어난 사건이라는 것이 정설이다.


한국전쟁이 끝나고 북한은 이 문제를 어떻게 처리했는가? 북한 정부는 어째서 이 신천학살에 대한 진상을 알았을 텐데도 이를 미국의 소행으로 단정해버리고, 이들을 처벌하지 않았을까? 그것은 내전이었기 때문이다. 내전은 로미오와 줄리엣의 사랑도 이루어질 수 없게 만든다. 피가 피를 부르는 보복의 반복. 북한 정부는 이것을 그들 자신 속에서 일어난 사건이라는 사실을 너무나 잘 알았지만 이 사건을 외부의 적, 미국의 소행으로 규정함으로써 전쟁의 상처 속에서 다시 일어나야만 하는 그네들의 상처를 덮어버리는 정치적으로 올바르나 정치적으로 올바르지 않은 왜곡을 통해 치유한다. 북한으로서도 분단의 무게는 묵직했던 것이다.


한국전쟁은 미국이
"북한은 앞으로 100년이 걸려도 다시 일어서지 못한다"고  호언할만큼 잔인하고 처절했다. 한국전쟁 3년 기간 동안 미국은 북한에 대해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사용된 모든 폭탄양을 능가하는 폭탄을 투하했다. 그러나 북한 입장에서 보자면 한국전쟁은 패전이 아니었다. 제2차 세계대전을 통해 세계초강대국이 된 거인 미국을 상대로 싸워 북한 정권을 지켜냈기 때문이다. 김일성 정권은 이를 통해 1950년대 일어난 두 차례의 중요한 권력투쟁에서 승리했다. 물론 거기엔 우리가 미처 잘 알지 못했던 몇 가지 사건들이 소개되고 있다. 종종 북한의 정치사를 읽노라면 이것이 공화국의 역사인지, 아니면 고대 로마의 원로원에서 일어나는 정치인지 혹은 사마천의 사기에 등장하는 왕실 귀족들 사이의 정치인지 분간이 안 될 때가 있다. 김일성이 정권을 장악하는 과정, 정권에 대한 도전자 처리 등을 보면 더욱 그렇다. 이 책은 교과서이면서 동시에 참고서의 형태를 띈다. 개관하는가하면 부분적으로 잘 이해되지 않는 포인트들을 짚어준다. 그렇다고 우리는 북한을 잘 알게 될 수 있을까?


한반도...

단일 민족의 신화.
동일한 언어와 동일한 문화를 유지하며 살고 있으면서도 서로를 적대하는 마음의 강도만큼은 세계 그 어떤 국가간의 대립보다도 극심한 증오를 담아 우리는 서로 대치하고 있다. 냉전은 해방 이후 현재까지 반세기에 이르는 동안 밖으로는 남북한 간의 적대적 분단체제로, 안으로는 '국내 냉전(이 용어는 최장집 교수의 것이다)'이라 할 수 있는 보수적인 반공 질서를 통해 더욱 강화되어 왔다. 냉전과 분단체제는 우리 한국 사회의 악이면서 동시에 한국사회를 지탱하는 기둥이라는 이중적 역할을 해 왔다. 마치 "오토모 가츠히로""메모리즈(1995)"에 등장하는 '대포의 거리'에 살고 있는 사람들처럼 우리는 매일 포탄을 만들고 대포를 닦고, 네 거리 신호등처럼 일정한 시간이 되면 탄알을 장전하고, 거리를 측정한 뒤 한 방의 포화를 날린다.


이 대포를 처음 이 땅에 들여온 이들이 누구인지도 잊혀지고, 그 대포를 만든 이들이 누구인지도 잊혀지고, 그 대포가 누굴 겨냥하고 있는지도 잊혀지고, 그저 시간이 되면 울리는 자명종 태엽처럼 재깍이며 사람들은 국민이란 이름으로 태엽 인형처럼 움직인다. 재깍재깍.... 대포를 닦는 사람, 대포를 조이는 사람, 대포알을 만드는 사람, 매일 같이 학교에서는 탄도학을 가르치고, 이 국가의 모든 활동은 오로지 한 방의 포탄을 더 멀리, 더 높이, 더 힘차게 날리기 위해 이루어진다. 모든 생산은, 모든 학문은, 모든 여가는 어떻게 하면 한 방의 포탄을 좀더 잘 날릴 수 있을까를 고민하는데 쓰여야 했다. 대포 도시에서는 누구나 대포를 저주해선 안되었다. 대포의 존재 이유를 묻거나, 저주하는 것은 이 국가의 존재 자체를 부인하는 일이 되었다. 국가는 한 방의 대포를 위해 존재했고, 국민은 대포를 위해 아낌없이 자신을 바쳐야만 했다. 이 국가에 살고 있는 국민들이 절대적으로 염려하고 있는 것은 바로 대포의 안위였고, 사람들은 그것을 '안보'라 불렀다.


이 대포는 남한에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거울처럼 쌍동이인 북한에도 존재한다. 거울 속의 쌍동이가 오른 주먹을 들면 거울 속의 상대방은 왼 주먹을 든다. 거울 속의 쌍동이가 왼 주먹을 날리면 상대방도 마주 닿을 듯 주먹을 날려온다. 그러나 이 주먹은 서로 맞닿아서는 안 된다. 왜냐하면 그랬다간 거울이 깨져버릴 테니까. 이 둘은 50년 전에 거울 너머로 서로에게 달려들어 피흘리며 싸운 경험이 있다. 누가 이들 사이에 이렇듯 보이는 보이지 않는 거울을 두었는가? 누가 냉전이란 겁나게 반짝이는 살기등등한 거울을 두었는가? 누가 이들로부터 서로를 겁주고 으르렁대도록 만드는 거울을 한 방에 날려줄 것인가?


아쉽게도 이 책은 그런 사실에 대해 가르쳐주지는 않는다.

다만 거울 너머 저 편의 땅에도 사람들이 우리와 같은 사람들이 살고 있었다는 사실을 역사적으로 가르쳐 줄 뿐이다. 이 책은 매우 조심스러운 서술들로 일관한다. 그도 그럴 것이 대포국가에 살고 있는 국민들은 대포의 존재 이유에 대해서는 망각하고 있으나 대포의 존재 자체에서 안위를 느끼기 때문에 그 대포가 결국 아무도 죽이지 못하거나 모두를 죽일 수 있다는 사실을 잊고 있다. 냉전이 이 국가에 자유주의와 민주주의의 이념과 실천을 가져다 주었는가? 사람들은 모두 그렇지 않다는 걸 안다. 그러나 먼 북방에서 일어나는 한 오라기의 연기에도 기겁하며 새로운 대포를, 보다 구경이 크고, 보다 멀리 나아가고, 보다 많은 사람들을 죽일 수 있는 대포를 만들고, 수입하느라 온 힘을 다 한다. 그에 대해 이의를 달았다간 대포가 만들어낸 거대한 파놉티콘에서 다시 보다 음침하고, 보다 깊숙한 감옥으로 옮겨진다.


이 책이 다루고 있는 부분에서 가장 미약한 부분은 아이러니하게도 북한의 가장 강력한 파트너인 남한에 대한 것이다. 가령 북한에서 지난 1950년대 일어났던 두 번의 권력 투쟁에 대해 이 책은 중국의 팽덕회와 소련의 미코얀의 역할에 대해 언급하고, 헝가리에서 일어난 의거에 대해 다룬다. 하지만 북한의 반쪽 거울인 남한이 어떻게 북한을 궁지로 몰고, 서로의 독재권력이 공고히 할 수 있었는지에 대해서는 자세하게 다루지 못하고 있다. 그것이 꼭 이 책의 한계라는 것은 아니다. 어차피 그런 일은 남북한 사이를 가로지르는 휴전선이 사라진 뒤에도 한참의 시간이 흘러야 비로소 가능할 것이기 때문이다. 오랫동안 북한에 대해 알고, 이해하려는 시도는 적을 이롭게 하는 이적 행위로 규정당해 왔다. 권력의 최상층부에 있거나, 정치적으로 탈색된 학문 분야에 있어서만 그것이 부분적으로 허용되어 왔다.


우리는 우리의 반쪽을 너무나 모른다. 너무나 모르지만 정치적 좌파도, 우파도 통일을 주문외우듯 암송한다. 오로지 국민들만이 통일이 우리에게 줄 충격에 대해 염려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오늘날 남한의 일반적인 상식을 갖춘 시민들이 두려워하는 것은 북한이 남침해올까 하는 문제가 아니다. 그네들이 두려워 하는 것은 어느날 갑자기 아무런 준비없이 통일되었을 때 북한 사람들이 난민처럼 휴전선을 넘어 남한으로 쏟아져 들어올까 그것이 두려운 것이다. 오늘날 북한은 더이상 적대적 존재이기 보다는 우리의 발목을 잡는 애물단지 취급을 받는다.


마치 생판 한 번 본 적 없는 멀고 먼 친척이 어느날 갑자기 일가족을 대동하고 나타나 우리는 혈연이니 먹을 걸 다오. 입을 걸 다오. 나도 같이 좀 살게 해다오. 떼쓰는 것처럼 인식된다. 우리가 과연 진정으로 통일을 바라고 있는 것일까? 우리는 과연 진정으로 북한 사람들과 함께 살아갈 각오를 하고 있는 것일까? 물론 이 책의 저자들도 이 책을 통해 그런 고민에 대한 해결책을 줄 수 있다고 믿지 않는다. 지금 우리는 이 책을 통해 첫발을 내딛었을 뿐이다. 나는 그 첫발에 많은 점수를 주고 싶다. 이유없이 동상처럼 서 있는 거대한 대포의 그늘에서 이제막 벗어나려는 우리들에게 북한은 멀리 있지 않다. 그들은 우리가 원튼 원치 않든 우리들의 그림자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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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바람구두 windshoes

『개혁이 혁명보다 어렵다』 - 표명렬 | 동아시아(2003)


『나의 천년 - 발칙한 후손의 내 역사 찾기』란 책의 저자는 표정훈이다. 표정훈은 서강대학교에서 철학과 사회학을 , 성균관대학교 대학원에서 유학을 공부한 사람이다. 아직도 이 사람을 잘 모르겠다는 표정인 사람에겐 그의 직업이 출판평론가라는 사실을 넌즈시 일러주어야 한다. 그제서야 아하, 하는 표정이라면 당신도 책을 꽤나 좋아하는 사람이다. 이 사람이 낸 이 책을 지난 2004년 9월 3일자 <조선일보>에서 서평기사로 다뤘다. 이 기사를 쓴 이한우 기자는 최장집 교수의 제자라고 한다. 나는 이한우 기자 덕에 출판평론가 표정훈에 대해 좀더 자세한 가계를 알게 되었다. 물론 이제부터 내가 독후감을 올리고자 하는 표명렬 선생에 대해서도 함께 말이다.

 

"나의 천년"은 한 집안의 가계사를 추적해간 출판평론가 표정훈의 책이다. 그의 고랫적 선조 이야기는 빼고, 그를 기점으로 3대를 거슬러 이한우 기자의 서평 기사를 읽다보니 내용이 이랬다. 그의 할아버지 표문학은 철저한 사회주의자였다. 할아버지는 인촌의 친일 행적에 대해 자세하게 알고 있었지만, 그를 비난하지 않았고, 중앙고보에서 훌륭한 스승을 만나게 해준 인촌을 분명 존경했다고 한다. 그리고 그의 친일 행적에 대해서는 말을 무척 아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의 아버지 표명렬 장군은 보도연맹원에 남로당 출신의 아버지를 둔 그는 육사출신이었지만 라이트 밀스의 <들어라 양키들아>를 즐겨 읽던 '삐딱한' 군인이었다고 한다. 하여튼 이런 빛나는 가계를 둔 3대의 맨마지막 손자인 표정훈은 그런 가계 3대의 영향을 받은 탓인지 대학에서 운동권 학생이 되지 못했고, 대신 플라톤을 즐겨읽는 문화주의자로 남았고 그런 당당한 관찰자가 있다는 게 자랑스럽단다.

 

참 대단한 <조선일보>고, 대단한 <조선일보> 서평이다. 최근 나는 "조중동"의 서평기사들을 읽으면서 묘하게 꼬이는 감정을 주체할 수가 없다. 왜 꼭 집어서 말할 순 없지만 참 치사한 글쓰기의 전형을 보는 듯해서 말이다. 누구나 하고 싶은 말이 있어서 글을 쓴다. 나역시 종종 독후감을 빙자한 논설문을 작성하는 나쁜 버릇을 고치지 못해서 늘 안타깝지만, 최소한 내 의중을 교묘히 감추려고 하지는 않는데, 이 기사를 읽은 표정훈 씨와 표명렬 장군의 표정이 어떨지를 상상해보니 입맛이 더욱 씁쓸해진다. 그렇다면 <조선일보>는 아버지 표명렬 장군의 책에 대해서는 리뷰 기사를 올렸을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없다. 그도 그럴 것이 표명렬 장군은 책을 발간한 뒤에 <한겨레>와 같은 인터뷰에서 이런 말을 하고 있어서 그럴까? 에이, 설마 그래서 그런 건 아닐 거다. 다른 좋은 책들을 서평하다 보니 빠뜨렸을 게다. 난 틀림없이 그럴 거라 생각한다.

 

"세계 어느 선진군대도 '주적'을 명시하지 않습니다. <조선일보>를 비롯한 냉전수구세력이 주적 개념을 폐기해서는 안 된다고 외치고 있지만, 이건 전쟁의 원리를 모르는 말입니다. 전쟁은 증오심이나 적개심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냉철한 정신으로 하는 겁니다. 수구세력은 국가보안법도 폐지해서는 안 된다고 강변하는데, 이 법 때문에 국가안보가 유지된다는 건 말이 되지 않습니다. 인권 탄압의 대명사인 이 악법을 지키고 있는 건 문명사회의 수치입니다."


이 책의 저자 표명렬 장군의 약력에는 이채로운 점이 많다. 우선 그가 전남 완도 출신이라는 것, 육군사관학교와 고려대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했고, 우리나라 군인으로는 최초로 대만의 정치심리전학교를 수료한 최고의 심리전 전문가라는 것이다. 게다가 그는 베트남전에 전투 부대 제1진으로 참전했다. 그러나 그는 엘리트 장교가 걸어가는 길 대신에 정훈 병과를 택했다. 사회주의 국가의 군대엔 정치위원이라는 특수집단이 있다. 그들은 당원이고, 일반 병사들의 정신교육을 담당한다는 점에서 우리의 정훈병과와 비슷한 임무를 수행한다. 그러나 표 장군이 정훈병과를 택한 이유는 베트남전에서 목도한 우리 국군의 실상에 충격을 받은 탓에 우리 군개혁의 필요성을 절감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상은 이 책 "개혁이 혁명보다 어렵다"의 필자 약력 소개에 따른 것이다.

 

군사학 혹은 전쟁사 관련 서적들을 들춰볼 때 종종 "그렇게 전쟁이 좋아?"라고 묻는 이들이 있다. 그럴 때마다 느끼는 막막함이란... 평화네트워크의 활동가 정욱식 씨가 MD관련 책을 읽거나 글을 쓰는 게 전쟁이 좋아서 쓸리 없지 않은가. 우리 전체 국민의 3분의 1이 군대에 다녀온다. 그럼에도 이 나라에서는 그간 변변히 군대 문제를 다룬 책 한 권이 없다. 세계에서 몇 째가라면 서러운 출판대국에서 군사학 관련 코너는 물론 다른 분야를 다 뒤져봐도 우리 군에 대한 비판서적 한 권을 찾아보기가 어렵다. 혹자는 "군에 가야 사람이 된다" 말한다. 혹은 "원래 군대란 게 다 그렇다"고 치부해버린다.

 

어쩌다 신문에서 군대내 구타로 인한 사망, 자살사고, 혹은 성추행, 오발사고 거기에 최근 불거진 자이툰 부대에 지급된 철모, 방탄복 문제에 이르기까지 한달이 멀다 하고, 이런저런 군 관련 뉴스가 흘러나오지만 이런 문제들은 그저 변죽만 울릴 뿐 기획 기사로 다뤄지는 법도 드문 것이 현실이다. 군은 아직도 우리 사회의 성역이자, 신성불가침이기 때문이다. 군만이 국가안보를 담보하는 최후의 보루이기 때문에, 명예를 먹고 사는 직업군인들과 군 장성들의 자존심을 건드려선 안된다. 그 결과 주간 "미디어오늘"의 보도에 따르면 "이라크엔 한국 특파원이 없다"는 기사가 나와도 할 말이 없어진다. 지난 2004년 7월초 KBS와 MBC가 외교통상부의 권유로 이라크에서 철수한 뒤 이라크 현지에는 한국 언론의 취재진은 단 한명도 없고, 다만 프리랜서로 활동하는 PD 한 명이 있을 뿐이다. 정부가 앞장 서 보도 자제를 요청했기 때문이란다.

 

구멍이 뻥뻥 뚫리는 철모와 방탄복을 입혀 자국 군대를 내보내고 이에 대해 우리 군의 안전을 위해 보도 자제를 요청하는 정부다. 이 책은 모두 4부로 구성되어 있다. '1부 철학이 있는 개혁이 아름답다'에서 그는 평화가 아닌 전쟁을 기념하는 전쟁기념관이 웅장하게 서 있는 이 땅의 현실을 꼬집는 것으로 시작한다. 한 마디로 철학이 없다는 것이다. 여기에서도 친일 청산, 과거 청산 문제는 다시금 나온다. 1987년 10월 29일 제장된 우리 헌법 전문은 이렇게 시작된다. "유구한 역사와 전통에 빛나는 우리 대한국민은 3.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법통과 불의에 항거한 4.19 민주이념을 계승"한다고 되어 있으나 우리 육군사관학교는 신흥무관학교를 계승하지 못했고, 광복군이 우리 군의 주축을 이루지 못했다.

 

'2부 1950년에 멈춘 시계'에서 그는 우리 사회의 매우 민감한 문제들을 다루고 있다. 그것은 주적논쟁, 4ㆍ3사건 등과 같이 한국전쟁 전후의 민간인 학살 문제, 국가보안법 문제 등 현재에도 여전히 문제가 되고 있는 것들이다. 앞서 이한우 기자의 기사에도 드러나고 있듯, 이 책의 저자 표 장군이 진보주의자라서 그런 말을 하는 것은 아니다. 도리어 표명렬 장군은 매우 민족적인 보수주의자이다. 문제는 그가 진짜 민족주의자이고, 진짜 보수주의자로서의 의식을 가지고 행하는 비판조차 우리 사회 일각에서 오해받을 소지가 있다는 건 우리가 아직도 삐뚤어진 의식 속에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대표적인 보수주의 사상가 에드먼드 버크는 "프랑스 혁명"에는 반대했지만, "미국의 독립"엔 찬성했다). 표 장군은 그와 같은 맥락에서 그간 우리 가 행했던 “무자비한 학살이라는 반인권, 반인륜적 행위에 대한 반성이 없는 것이야말로 자유민주주의의 정체성에 반하는 행위”라고 말한다.  “냉전 수구 정치 세력들이 정치 군인들을 동원하여 저지른 특수한 역사적 사안에 대해 마치 군이 저지른 양, 군을 볼모로 하는 획책에 휘말릴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표 장군은 우리에게 합리적인 보수와 냉전 수구 세력이 어디에서 작별을 고해야 하는지 명확하게 보여준다. “총은 쏘라고 있는 것이고 총도 쏘지 못하는 군대는 존재할 필요가 없다”면서 연평해전이나 서해교전 등에 그야말로 군사적으로 대응하지 못한다고 난리치는 수구 언론이야 말로 군과 국민 사이를 이간질하는 이적행위자들이라고 규정한다 .

 

'3부 개혁의 나침반은 언제나 양극을 가리킨다'에서 그는 “군에 갔다 와야 사람된다”는 이상한 충고에 반기를 든다. “군에 갔다 와야 사람된다”는 말은 “군 생활을 통해 불합리하고 잘못된 현실에 대해서 무조건 체념적으로 순응하는 것을 습관화함으로써 비판력을 무디게 하는 소극성을 장점으로 둔갑시키는 말”이라는 것이다. 그는 “국민을 위한 국민의 군대라는 거창한 말” 구호를 앵무새처럼 반복하면서도 정작 제복을 입은 국민인 병사들을 제대로 보호하지도 못하면서 얼차례나 일삼는 장교들의 리더십을 비판한다. '4부 우리 시대, 새로운 군대를 향하여'에서 표 장군은 '군대에는 인권이 없어도 되는가'라는 근본적인 질문을 던진다. 마지막으로 그는 자신의 모교이자 군의 미래를 건설할 육군사관학교의 개혁을 요구한다. 입으로는 늘 정의의 편에 선다고 말하면서도 현실 정치 속에서는 선후배 관계를 통해 늘 강자의 편에 서 왔던 선배 군인들과 동기들의 행동을 비판하면서 그는 12.12 쿠테타에 목숨을 걸고 항거한 김오랑 소령을 참 군인의 귀감으로 삼는 육사교육을 꿈꾸는 것이다.

 

1979년 12월 12일 무렵의 나는 특수전사령부(일명 특전사)가 있는 동네에 살고 있었다.  12월 12일에서 13일로 넘어가는 자정 무렵, 나는 이유를 알 수 없는 총성(종종, 야간사격 연습이 실시되곤 했지만)에 깨어났다. 그때의 내가 그 사건이 우리 현대사에 어떤 파장을 불러올지 예상할 수는 없었다. 하지만 지금도 나는 그날 밤이 무섭다. 그날 밤이 무섭기에 우리는 오늘을 고민하지 않으면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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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바람구두 windsho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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